[단편] 여우

남극너구리 2015-02-19 2

사방에 뿌연 화약냄새가 맴돌았다. 전투복은 핏빛으로 물들었고, 온전한 정신을 유지하고 있는 자는 몇 없었다.
대장은 자신의 총기를 마구 쏴대다가 주위를 멍하니 훑어보고 있는 나를 보고 나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둔탁한 충격음. 어딘지는 몰라도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대장. 서서히 눈이 감기기 시작했다. 

" 정신이 드십니까? " 

너무나 눈이 부시는 탓에 부시시 일어나며 눈을 비비곤 말을 거는 상대를 쳐다보자 왼팔 어깨에 빨간색 십자가가 그려져있는 전투복을 입고 있는 여성이 말을 걸고 있었다. 군의관이거나 의무병이거나, 둘 중 하나겠지. 

" 난 멀쩡해, 그냥.. 내 장비만 돌려줘, 팀원들은? " 
" 저.. 그게.. " 

군의관이 시선을 돌리며 말 끝을 흐렸다. 느낌이 불안하다. 설마? 

" 팀원분들, 정확히는 경사님께서 근무하시던 폭스 팀은 작전 지역 소탕 중 차원종들의 대규모 습격을 방어하시고는 전멸하셨습니다. 몇몇분들은 위상관통탄이 아닌 일반 소총 탄알에 당하셨구요, 경사님은 부상자로 현장에서 기절해계셨습니다. " 

" 잠깐, 무슨 소리야. 전멸이라니? 난 분명 기절하기 전에 팀원들이 재정비하는 걸 봤다고. " 

" 말씀 드렸잖습니까, ' 대규모 ' 습격이라고. " 

군의관의 반박에 할 말이 없었다. 고개를 푹 숙이자 군의관이 내게 살기를 느낀듯 뒤로 물러났다. 내가 속한 폭스 팀은 특경대의 기동타격대 중 한 팀으로, 가장 훈련이 잘되고 실전경험이 풍부한 엘리트들만 모이는 팀이었다. 

같이 작전을 끝내곤 커피 한 잔 마시던게 어제같은데. 동료의 죽음에 슬퍼할 시간은 나중에라도 충분하다. 일단 장비를 챙기고 자세한 건 송은이 경정에게 듣기로 했다. 

" 무리하시면 안됩니ㄷ.. " 

군의관의 잔소리를 뒤로 하고 침대 옆에 놓인 내 전투복과 장비, 무기를 챙겨들곤 헮멧을 고쳐썼다.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헬멧에는 붉은색 여우 한마리가 그려져있었다. 엘리트급 특경대 팀들 사이에서는 유행처럼 퍼져나간 하나의 예술이었다. 

막사를 밀치고 나오니 특경대원들과 장갑차, 각종 보급품이 쌀여져있는 것만 빼면 그럭저럭 볼만한 광장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보급품이 쌓인 장갑차 옆엔 송은이 경정과 채민우 경감이 투닥투닥 거리며 장갑차 안으로 들어갔다. 

채민우 경감이 막무가내로 끌고 갈 정도라면 중요한 이야기가 있는 것이겠지. 천천히 경치를 감상하며 장갑차의 문 앞까지 걸어가 송은이 경정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안에서 말소리가 들리기에 몰래 엿들었다. 

" 아, 그거 말이죠? 네, 네. 성수대교는 어떻게든 막았어요. 아뇨! 어차피 그 대규모 습격은 예상됬던거니까요. 원래 특경대라는게 지들 목숨 걸고 온 애들인걸요. 네, 네. 성수대교 정찰은 이번에 방어전에서 생존한 대원 하나랑 나머지 기동팀 붙여서 실행하겠습니다, 네. 네. 수고하세요! " 

특유의 귀찮다는 목소리를 내뱉은 송은이 경정이었으나 내게는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 하-암, 드디어 끝났네. 가서 낮잠이나 자야.. 어? 어? " 

채민우 경감이 장갑차 문을 열고, 송은이 경정이 나오자마자 그녀의 멱살을 잡고 장갑차 위로 끌어올렸다. 채민우 경정이 내 헬멧의 여우 그림을 보곤 쏜살같이 달려와 나를 밀치고는 강한 어투로 말했다. 

" 뭐하는 짓거리야, 경사. " 

" 인에서 누구랑 ***거렸는지는 몰라도 저한테도 설명해주실 책임이 있다고 봅니다, 경감님. " 

평화롭던 송은이 경정의 얼굴은 인상으로 가득했고, 평소의 느긋함과 여유로움은 어디로 갔다고 해도 좋을만큼 흥분해있는 것을 겉으로 봐도 느껴질 정도였다. 뭘까, 이 여자에게서 느껴지는 살의는. 

" 경정님, 우리 팀은 .. " 

" 그래, 니네 팀은 미끼였어, 성수대교 곳곳에 흩어진 차원종들을 소탕함과 동시에 차원 유인장치를 가동해서 그 지역의 차원종들을 완전 소탕하는 임무였지. 하지만 인력이 없었어. 그렇다고 후퇴할 수도 없었다고. ' 검은 양 ' 팀은 현장으로 와서 우리가 미처 소탕하지 못한 차원종들을 소탕하는 가벼운 임무를 맡았지만, 우린 사령부에서 직접 클로저들이 올 때까지 사수하란 명령이었단 말야.. " 

" 그래서 인력을 전부 민간인 대피 및 차단에다 쓰시고는 우리 팀만 전투에다 파견했다구요? 핑계가 너무 심한 거 아닙니까." 

송은이 경정은 살기가 느껴지는 내 질문에 어깨를 움칫하고는 땅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도 나름 부관이랍시고 조용히 상황을 살피고 있던 채민우 경감이 천천히 걸어왔다. 그가 내 어깨에 손을 올리곤 엄청난 연설을 하는 장군마냥 입을 열고 주절주절 떠들기 시작했다. 팀원들의 희생은 헛된 것이 아니라느니, 반격의 한 걸음이라느니.. 귀찮았다. 그냥.. 허전하고 귀찮았다. 

연설을 계속 하고 있는 채민우 경감의 손을 고이 내려두곤 아직도 바닥에 시선을 두고 있는 송은이 경정을 도저히 멀쩡하게는 쳐다볼 수가 없어서, 경멸하는 눈빛으로 한 번 쳐다보곤 걸음을 옮겼다. 

나 혼자만을 두고 팀이 전멸한 탓에 막사가 있을리가 없었고, 그렇다고 갈 곳도 없었으나 일단 이 곳에서 이들과 더 같이 있다가는 팀원들의 복수심을 못 이기고 무슨 짓을 저지를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 뒤로 부들부들 떨고 있는 송은이 경정과 뒷목을 잡고 있는 채민우 경감. 멀리서 무슨 일인가 싶어 쳐다보고 있던 ' 검은 양 ' 클로저들도 이 상황을 보고 이해하기까지는 조금 시간이 걸렸다.

" 좋아, 여기까지. 콜사인 폭스 경사는 울프팀과 합류해서 이동하도록 해. " 

작전 감독관의 작전 브리핑과 설명이 끝난 뒤, 상황실의 문을 열고 나갔다. 오늘 작전의 내용은 성수 대교에 중요 인물인 ' 우정미 ' 가 납치됨과 동시에 성수 대교에 위상변곡률이 엄청난 속도로 상승하고 있다.. 는 사전 조사와 함께 현장에 녹화현상까지 관찰되고 있다는 정찰결과가 알려졌다.

 이에 나는 울프팀에 합류해서 성수대교의 중요 인물을 수색함과 동시에 성수대교를 확보하고 지원병력 도착까지 사수하란 명령이다. 최소 몇몇가지의 후방 지원이 있을거라고 하니 딱히 걱정은 안해도 될 듯 싶다. 멍하니 울프 팀의 장갑차량까지 걸어가며 동료들에 대한 생각을 떠올렸다. 

" 반갑습니다, 여우 경사님! " 

" 어, 어. 반가워. " 

" 폭스 팀원이라면 저희 자매팀이나 다름 없지 않습니까! 편하게 있으십시오. " 


 몇 시간 후, 작전이 시작됬고 울프팀과 나를 포함해 총합 30명이 성수대교 북쪽부터 천천히 밀고 내려가기 시작했다. 물론 말 뿐인 후방 지원이 없이도 울프팀장이 지휘하는 울프 팀은 내 과거 팀과 자매팀인 것을 드러내기라도 하듯 훌륭한 팀워크와 실력으로 차원종들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성수대교 중간 쯤에서 중요 인물이 타고 있었던 버스를 발견하고 둘러싸자, 갑자기 곳곳에서 게릴라마냥 달려들던 차원종들도 점점 물러나기 시작했다. 팀원 반이 버스를 둘러싸고, 반이 버스 내부를 뒤지려고 팀원 하나가 먼저 버스 입구로 들어가자마자 '피융' 이라는 소리와 함께 피를 흘리며 버스 밖으로 쓰러졌다. 

" 으악! " 

비명소리와 함께 팀원들 전부가 버스를 향해 일제히 사격을 가하고 버스가 벌집이 됬을 때, 비로소 사격이 멈춰졌다. 
근데.. 뭘까, 저 안에서 느껴지는 살기는. 이라고 생각하자마자 주위가 난장판이 되고 있었다. 사방에서 차원종들이 다시 달려들고 있었고, 버스 안에서도 갑자기 알 수 없는 레이저가 주위의 특경대원들을 정확히 명중시키고 있었다. 

" 뒤로 후퇴해! 후퇴! " 

울프팀장의 간곡한 외침에 20명 남짓의 특경대원들이 천천히 뒤로 빠지기 시작했다. 그 때였을까.
투쾅하는 소리와 함께 뒤 쪽의 도로가 갈라지고 후방에 있던 특경대원들의 사지가 갈갈이 찢기기 시작했다. 
저 멀리 차단 바리게이트 쉴드와 민간인들을 대피시키는 특경대 후방 부대가 보였다. 여기서 더 물러난다면 민간인들과 후방 부대가 위험해진다. 

" 야! 니네는 후방으로 합류해서 그 쪽으로 몰려가는 차원종들 처리해라! 전방은 내가 혼자서 막아볼게! " 

" 미치셨슴까?! 혼자 가시는 건 그냥 자살입니다! " 

" 가서 민간인들 구하라고, 경찰 아저씨 **야! " 

" 차원종들의 머리통을 날려버리겠습니다! " 

고개를 돌려 후방으로 달려가는 팀원들을 쳐다보자 이를 악물고 후퇴하는 그들의 고글 건너로 내가 비춰졌다.
하얀색 전투복 부분부분이 붉게 물들어있고, 헬멧에 여우가 웃고 있는 듯 비춰지며 나를 보여주고 있었다. 

끄덕거리며 다시 정면을 쳐다보니 스캐빈저와 마나나폰, 합성차원수로 이뤄진 차원종들이 천천히 밀고 올라오고 있었다.
탄창을 갈아끼우고, 군용 단검을 착검했다. 눈을 감고 천천히 기억을 되새겼다. 팀원들의 얼굴과 잡담, 내가 특경대에 입단했던 동기까지. 살기를 품으며 눈을 뜨자 어느새 차원종들이 가까이 걸어오고 있었다. 

나는 왜 경찰이 되었던가. 

"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내가 위협을 받지 않으면 남들이 받게 될 위협을 막기 위해. " 

지금 생각해도 참 쪽팔리는 말이지만 부정할 수 없이 이 말이 내가 경찰이 된 가장 큰 이유였다. 비록 나와 같은 사유로 특경대에 입대한 동료들은 멍창한 인간들에게 휘말려 목숨을 잃고 동료를 떠나보내는 슬픔을 겪었으나 나는 그 목적 하나로 극복해낼 수 있었다. 아마 송은이 경정도 후회하고 있겠지. 그거 하나면 충분하다. 

그리고 지금 나에게 위협이란, 내 앞에서 사람들을 덮칠 기회를 찾고 있는 차원종이였다. 지금 상황보다 어울리는 말이 저 말보다 더 있을까. 

방아쇠를 당기고, 개머리판과 단검을 휘둘렀다. 본래 차원종들은 위상력이 담긴 공격이 아니라면 공격이 통하지 않을 것이건만, 차원종들의 피가 전투복에 눌러붙어 점차 하얀색 전투복은 빨갛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합성차원수의 사나운 이빨에 어깨를 물리고, 마나나폰의 거대한 주먹에 배를 정통으로 맞았으나 절대로 쓰러지지 않았다. 

먼저 죽어간 동료들을 위해, 내 사명을 위해.

총을 지팡이로 삼고서라도 천천히 일어났다. 차원종들의 눈빛에서도 슬슬 공포심이 느껴질 때쯤, 그가 고개를 들고 차원종들을 향해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 니들은 여기 못 지나가. " 

보통 인간은 두려워하거나 이미 죽었을만 하거늘, 이 남자는 온 몸에 부상을 입고 피가 묻어도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먼저 떠난 동료의 곁을 지키는 한 마리의 ' 여우 ' 가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설날에 할것도 없고, 심심해서 혼자 써본 단편소설입니다. 
작붕이 있을수도 있고 이해가 안되실 수도 있습니다.. ㅠ
즐거운 설날 되세요. 

2024-10-24 22:23:34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