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결국 그날은 새벽, 아니 다음날 아침 7시까지 철야로 게임을 해 날을 지세웠다는 사실은 비밀이다.

그리고 다른 누군가와 같이 게임을 하는 것이 이렇게나 재밌는 거라고 꺠달은 것도 그날이였다.

--------------------------------------------------------------------------------

“...죽을 것 같아...”

온 몸이 피곤하고 하도 별별 소리(욕설)을 지른 탓에 목이 반쯤 맛이 가 아프다. 그리고 아마 지금 내 눈 밑에는 다크서클이 나있겠지. 그런거 치고는 아빠는 멀쩡한 것 같지만.

역시, 사람이 무언가에 몰두하게 되면 무서워진다는게 사실이다. 보아라. 그저 아무렇지도 않게 시작했던 게임 하나가 사람을 몇시간만에 이리도 폐인처럼 보이도록 탈바꿈 시켰다. 하지만 나에게는 단 한점의 후회도... 아니, 후회되네....

가뜩이나 오늘은 내가 당분간 이곳에서 지내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사러 가기로 해서 대형마트에 나왔다. 때문에 피곤함이 더욱 발목을 잡는다. 이럴줄 알았으면 그냥 잘걸... 그랬으면 이렇게 피곤한 몸을 이끌고 바깥에 나올 필요가 없었을 텐데.

하지만 어쩌겠어. 이미 저지른 일인걸. 저지른 이상 흘려보내야지.

그냥 잊어버리기로 하며 정신을 차린 나는 이내 아빠가 내게 장바구니를 건네주는 것을 보고는 고개를 갸우뚱 거리다가 이내 아빠의 의도를 깨닿고는 장바구니를 받아들었다. 그러자 아빠는 매장의 구석 부분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아마 여성용품은 저쪽 코너에서 팔거야. 가서 골라...”

갑자기 맥빠지는 얼굴을 지으며 말을 멈춘 아빠. 왜 그러는 것일까 의문이 들어 아빠가 바라보고 있던 방향들 바라보자 익숙한 얼굴들이 멀리에서 보였다.

날카로운 인상과 약간 삐쭉삐쭉하게 보이는 푸른 머리카락을 지닌 내 또래의 친구 나타샤, 그리고... 나머지 두명의 여성은 누구지? 또 다른 한명은 긴 검은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고 나머지 한명은 나타샤와 비슷한 푸른, 정확히는 하늘색의 긴 머리카락을 지니고 있다. 지금 내가 서있는 곳에서는 뒷모습 밖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잘은 모르겠지만 한가지를 확실하게 알 수 있는것은 바로 아빠가 저쪽에 있는 인물중 한명을 꺼려하고 있다는 점이였다. 그야 표정이 마치 이불을 뒤집어 쓰고 자고있는 사람이 침대에서 멀리 떨어져 시끄럽게 울리는 알람시계를 꺼야하는 사람의 표정같으니까. 간단하게 말하자면, 귀찮은 일에 휘말렸다는 표정.

하지만 나타샤와 나머지 두명의 여성은 아직 우리를 ** 못했기 떄문에 아빠는 마주치기 전에 서둘러서 자리를 뜨려고 하였지만 갑자기 난데없이 튀어나온 정장을 입은 남성이 아빠의 앞을 가로막으며 웃는 얼굴로 마주보았다.

“이세하님, 반갑습니다. 이곳에는 무슨 일이십니까?”

“...안녕하세요. 하이드씨.”

정장을 입은 남성이 아빠의 이름을 부르며 정중하게 인사하자 아빠는 한숨을 내쉬고는 이내 똑같이 인사하였다. 아무래도 저 정장을 입고있는 집사 분위기를 띄고있는 남성의 이름은 하이드 라고 하는가 보다.

“하이드, 거기 무슨 일... 어머, 이세하 씨. 안녕하세요. 우연이군요. 이런 곳에서 만나게 되다니.”

“어? 세하다~ 너 여기서 뭐해?”

결국 나머지 두 여성도 이쪽을 보는 바람에 서로 마주치자 왠지 아빠의 한숨은 아까보다 더 깊게 울려퍼졌다. 대체 왜 그렇게 한숨을 쉬는 걸까?

“안녕하세요. 바이올렛 씨. 그리고 서유리.”

“야! 왜 바이올렛 언니만 씨 호칭을 붙이고 난 그냥 이름으로 부르는 건데~?!”

“그야 넌 동갑이잖아. 그리고 세상이 두쪽나는 일이 있어도 내가 널 그렇게 부르는 일은 없을거다.”

...나는 저 흑발의 스트레이트 롱헤어를 지닌 여성이 누군지 알 것 같다. 아니, 알고있다. 저 활동적인 성격, 활기찬 분위기, 딱 봐도 유리이모다. 어째 분위기가 내가 알고있는 좀더 성숙한 유리 이모랑 비교해서 바뀐게 없는 것 같은데... 아니야. 헤어스타일이 다르네. 내가 알고있는 유리 이모는 포니테일인데 지금 내가 보고있는 유리 이모는 스트레이트 롱헤어네. 그런데 딱히 그거 말고는 아무것도 바뀐게 없는데...?

사람이 미래에서나 과거에서나 바뀌지 않는 경우도 많구나 생각하며 아빠와 유리 이모의 대화를 듣고있던 와중, 나타샤가 내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야, 이세리. 넌 여기에 무슨일이야? 그리고 꼴이 왜 그래?”

“묻지마... 그냥 당분간 생활하는데 필요한 것들을 사러왔어. 넌?”

“몰라. 갑자기 아빠 숙소에 찾아온 바이올렛 아줌마 때문에 어쩌다가 끌려나왔어. 그러다가 우연히 유리 아줌마랑 마주친거고.””

“바이올렛...? 설마 그 벌처스의 사장말이야?!”

“그래? 저 아줌마, 사장이였어? 난 그냥 부자인 것만 알고있었는데. 그런데 너도 저 아줌마 본적 있을거 아니야?”

“뭐?”

“그 왜 있잖아. 가끔 우리집에 찾아오던 푸르댕댕한 머리를 한 사람.”

그런 사람이 있었... 아, 본적 있다. 분명 가끔 집에 찾아와 소영 아줌마랑 이것저것 대화를 하면서 고급스러운 선물들을 들고오던 사람이였지...? 그런데 그 사람이 벌처스의 사장인 바이올렛이라고?

“...대체 대기업의 사장님이랑 무슨 사이길래 항상 집에 찾아왔던거야...?”

“나도 잘 몰라. 엄마 말로는 아빠랑 잘 아는 사이였다는데. 같은 팀원이였다나 뭐라나.”

“그런데 그런건 그렇고, 대체 왜 끌려 나온건데?”

“...나한테 옷을 이것저것 입혀보겠단다.”

“...헤?”

옷을 입혀? 그러고 보니까 나타샤, 애가 평소에는 전혀 입지 않은 여성다운 옷을 입고있네? 그것도 학교에서 옷을 대충대충 입기로 소문이 자자한 나타샤가? 장감컨데 소영 아줌마가 이 사실을 알게된다면 어디 아픈데 있냐고 추궁 할 것이고 나타 아저씨가 보게된다면 어이가 없는 표정으로 째려볼 것이다.

“푸흡!”

“야! 웃지마!”

“아하하!! 미안미안, 아.... 웃음이 안멈춰”

그 천하의 나타샤가 프릴이 달린 셔츠랑 미니 스커트라니...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나오네... 아, 너무 웃어서 배아파...

결국 웃음이 멈추지 않자 나타샤는 삐쳐서 고개를 돌리고 옷을 벗으려 탈의실로 향하였고 나는 그런 나타샤의 모습을 보고는 아직까지도 대화중인 아빠와 바이올렛 씨의 대화를 듣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이세하씨, 저 여성분은 미래에서 왔다는 따님이신가요?”

“네...? 잠깐, 그걸 어떻게...”

“어제 제이 씨가 말해주시더군요. 나타 씨와 이세하 씨의 따님들이 미래에서 찾아왔다고요.”

“...이 아저씨가 정말...!”

“그런데, 그래서 여기에는 무슨 일이신가요?”

“아, 당분간 저 애가 지내기 위해서 필요한걸 사러 온거에요. 바이올렛 씨는요?”

“아, 전 나타샤 양에게 어울리는 옷을 고르기 위해 본인과 함께 나온거에요. 그런데 보아하니... 옷을 골라줘야 할 상대가 한 분이 더 생긴 것 같군요?”

“!!!”

위험하다. 내 본능적 직감이 말하고 있다. 빨리 이곳에서 벗어나라고, 그러지 않으면 나타샤보다 더 심한 꼴을 보게 될거라고.

갑자기 느껴진 위협에 나는 즉시 뒤로 돌아 달리기 시작하였고 바이올렛 씨는 그런 나를 바라보며 씨익 웃고는 나지막히 말했다.

“서유리 씨. 잡아주세요.”

“옛써!”

내가 알고있는 유리이모는 무척이나 빠른 사람이였다. 어렸을 떄 술래잡기를 할 떄에도, 일이 생겨서 허겁지겁 달려갈 떄에도, 단련된 신체능력 때문인지, 아니면 그저 타고난 것인지 모를 스피드를 내고는 하였다. 본인 말로는 젊었을 떄 보다는 많이 느려졌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난 여전히 유리이모의 스피드를 따라잡지 못한다.

느려졌다고하는 스피드 조차 따라잡지 못하는데 젋을 적의 유리 이모에게서 도망치는 것이라니, 무모하다.

“잡았~ 다!”

눈 깜빡할 사이에 내 등뒤까지 쫒아와 그렇게 활기차게 말하며 내 어깨를 잡아채는 유리 이모.

역시, 그냥 집에 있을 걸 그랬어.

Hainsman님의 작품을 허락을 맡고 대신 업로드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