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모험담 중 일부인 이야기 3-10
한스덱 2018-10-13 0
이 이야기는 실제 게임 스토리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하지만, 게임의 스포일러가 있으니 주의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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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과 같이 설명을 들은 지수 역시 이 마스크의 심각성 때문에 심각해진 모양이다.
“그런 마스크를 네가 원해서 쓴 건 아닐테고… 군단이 억지로 씌워놨겠네.”
“그렇습니다. 당연한 일이지요.”
“무의식에 간섭한다니, 군단에선 그런 물건을 만들어낼 기술력까지 갖춘 건가… 아니. 기술이 제대로 완성된 건 아니겠지. 특정 대상에게만 간섭할 수 있다는 건 너무 비효율적이니… 잠깐, 그럼 군단은 그런 비효율적인 기술을 겨우 네 입을 막는 데다가 썼다는 거야? 내가 알기론 군단은 명확한 목적도 없이 그런 짓을 할 리가 없어. 그럼… 혹시 그 마스크에 다른 기능도 있어?”
나는 내 능력의 마지막 한계를 진작에 꿰똟어본 지수의 추리력을 이미 경험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진짜로 박수를 쳐주었다. 짝짝짝.
지수의 말 그대로다.
이 빌어먹고 **맞고 기가막히는 데다가 비범하기까지 하는 마스크의 놀라움은 아직 더 남아있었다.
나는 이걸 설명하기 위해 생뚱맞은 질문을 던졌다.
“당신은 제가 옛날에 가졌던 직책이 무엇인지 아시나요?”
지수는 살짝 당황한 것 같았지만, 곧바로 대답을 해주었다.
“응? 아마도 군단장이었거나 적어도 그 아래쯤 되는 고위 간부였겠지?”
역시. 내가 직접 이야기 해준 적은 전혀 없었지만, 지수는 그녀였던 시절부터 내 정체를 깨닫고 있었다. 나는 뜬금없는 퀴즈쇼를 이어나갔다.
“당신이 저한테 6 번째로 돌을 던졌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었죠?”
지수는 살짝 화가 났나보다. 그래서인지 대답이 약간 날카로웠다.
“너 대체 왜 그래? 갑자기 그런 걸 왜 물어보는… 아!”
역시! 지수를 두 번이나 얕잡아 보는 실수를 하고 만 나는 이번엔 거꾸로 지수의 능력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수는 내 기대보다 훨씬 더 빠르게 내 퀴즈쇼에 걸린 상품을 얻어냈다.
저 두 번째 질문의 올바른 대답은 바로, 내가 지수에게 보여준 최고난도의 묘기, 운동 ‘에너지’를 내 목소리와 똑같은 ‘소리’로 바꾸는 마법이다.
이건 지수는 물론이며 여러분도 이미 알고 계셨을 것이다. 그리고, 지수와 똑같은 상품, 그러니까 내가 전하고 싶은 뜻을 간파해낸 여러분도 분명 계실 것이다.
지수는 자신이 알아낸 정보가 확실한 것인지 확인을 해보는 신중함마저 가지고 있었다.
“그 마스크, ‘입막음’을 하려고 만들어진 거구나?”
완벽한 정답이다. 나는 우등생에게 엄지를 척 내밀어주었다.
이 문제에 대한 해설은 바로 이렇다.
나는 이름 없는 군단의 군단장이었다. 군단 내 고위직 중에서도 가장 높은 직책을 가졌던 나는 엄청난 권한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 권한들 중에는 군단이 수집하고 분류한 각종 정보들 중에서도 최고 등급의 기밀 사항까지 모두 열람할 수 있는 권한이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전 군단장, 더 정확히 말하면 죄수이다. 만약 여러분이 어떤 조직에 소속되어 있고, 그 조직의 기밀 사항을 상당히 많이 알고 있는 자를 ‘처리’해야 한다면 골치가 많이 아플 것이다. 게다가 그 자가 에너지를 사용한 물리적 형벌에 피해를 전혀 입지 않는다면 골머리를 더욱 썩혀야 할 것이다.
하지만, 군단은 그런 나를 최대한 깔끔하게 처리해버렸다. 그 누구도 감히 들어오지 못할 지옥 속에다가 나를 집어넣은 것이다. 게다가, 내가 여기서 빠져나가거나, 혹은 지수와 같은 면회자가 생겨버리는 만약의 만약의 경우를 대비하기 위해 이 마스크를 내 얼굴에다가 붙여버렸다.
내 입을 중의적인 의미로 틀어막고있는 이 마스크는 내가 무의식적으로 에너지를 조작하게 만들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조작되는 에너지는 바로, 내 위상력과 내 목에서 나오는 소리다. 즉, 이 마스크는 내가 전하고 싶은 뜻이 담긴 말을, 그 뜻을 전혀 이해할 수 없을 소리로 바꿔버렸다.
그렇다면, 어떻게 나는 지금까지 멀쩡하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일까?
내 해설도 없이 문제를 풀어낸 지수는 그 의문의 해답 역시 가지고 있었다.
“그 마스크, 네가 군단의 비밀을 직접 발설할 때만 작동하는 거야?”
“정확히 말하면, 제가 특정 단어를 발음할 때만 작동합니다. 하지만 당신의 말도 맞습니다. 단어들의 대부분이 ‘그 조직’과 연관되어 있거든요.”
그렇다. 나는 지금까지 그 특정 단어들을 의식적으로 피해서 내 뜻을 전달하고 있었다.
“흐음…”
그런데 지수는 뭔가를 골똘히 생각 중인가 보다. 왜 저러지? 지수는 내 뜻을 정확하게 알아차렸는데?
제법 오랫동안 고민에 빠져있던 지수는 마침내 입을 열었다.
“확인해볼 게 있는데… 혹시 그 단어들 중에 하나만 말해줄 수 있어?”
“그 단어들… 말입니까…?”
“아, 혹시 그걸 말하는 게 고통스러운 거야?”
“그런 건 아닙니다. 그런데… 좀…”
나는 지수의 부탁을 들어주는 걸 망설였다. 물론 내가 그 단어를 말한다고 아픔을 느끼는 건 아니다. 이 마스크는 내 목소리를 전혀 다른 소리로 바꾸기만 할 뿐이다. 단지 그것 뿐이다.
하지만…
“…너무 웃지는 말아주세요. 부탁 드립니다.”
여러분과 지수는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차렸을 것이다. 지수는 엄숙하고 비장한 목소리로 맹세했다.
“약속할게.”
덕분에 나는 약간이나마 안심이 되었다. 헛기침과 심호흡까지 한 나는 마음의 준비를 모두 마쳤다.
그리고, 마침내 그 금지어를 발음했다.
“아앙~!!”
아앙… 아앙… 아앙…
우리는 저 야릇한 상상을 떠올리는 소리가 만들어낸 메아리가 완전히 잦아들 때까지 침묵을 지켰다. 지수는 정말로 고맙게도 나와 한 약속을 철저하게 지켜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수치심에 사로잡혀 있었다.
정신적 고통을 받던 나 대신 지수가 먼저 입을 열어주었다.
“…미안.”
“…괜찮습니다.”
지수는 아무 잘못이 없다. 너무 웃기는 커녕 조금도 웃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지수는 먼저 사과를 했고, 나는 그 사과를 받아주었다.
그리고 지수는 내 용서를 받았는데도 여전히 심각하고 엄숙하고 비장해보였다.
“군단의 일원들 중에서 이런 정신나간 마스크를 만들 수 있는 녀석은 단 한 녀석밖에 없지.”
지수는 잠시 말을 끊어서, 녀석의 놀라운 정체를 더욱 강조시켰다.
“그레모리.”
나 역시 지수의 놀라운 추리 덕분에 심각하고 엄숙하고 비장해졌다.
“그게 누굽니까?”
또다시 침묵의 시간이 찾아왔다. 이번에도 지수가 먼저 그 침묵을 깨트렸다.
“…너, 정말로 모르는 거야? 군단의 기술 고문을 맡은 박사 녀석 있잖아?”
군단장이었던 주제에 군단의 중요 일원도 모르는 멍청이가 되어버린 나 역시 지수에게 따졌다.
“제가 당신들이 붙인 인식명을 어떻게 압니까? 아니 그 전에, 당신이 그 박… 녀석을 어떻게 알고 있는 겁니까? 그 녀석이 당신들의 세상에 제 발로 직접 간 겁니까?”
내 항의를 들은 지수는 더욱 당황한 것 같았다.
“너, 그 박사가 저 이름을 스스로 지었다는 것도 몰랐어? 그럼 대체 얼마나 오랫동안 갇혀 있었던…”
지수는 말을 흐렸다. 나 역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하지 못했다.
이번 침묵을 만든 범인은 바로 지수였다. 그리고 이 침묵은 앞의 두 침묵들보다 훨씬 더 무거웠다. 그녀와 내가 절망과 고뇌에 빠져버린 그 3시간에 필적하는 어색함이 가득했다.
지수는 세 번째 침묵을 두 번째보다 더욱 진심을 담아서 깨트려줬다.
“미안… 너한테는 괴로운 일이었을텐데…”
나 역시 지수의 진심어린 사과를 흔쾌히 받아주었다.
“괜찮습니다. 당신이 절 여기에 가둔 것도 아니잖습니까?”
우리는 더 이상 그녀와 내가 아니었다. 서로의 노력 덕분에 분위기는 금방 회복되었다. 하지만 지수는 아까의 사소한 경솔함 때문에 더욱 조심스러워졌다.
“몇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네가 괴로운 기억을 더듬어야 할 지도 몰라. 그러니까 미리 허락을 구할게. 괜찮겠어?”
나는 그런 지수를 위해 일부러 가볍게 대답해주었다.
“뭐 그런 걸 가지고 허락을 구하십니까? 당신이 명확한 목적도 없이 그런 질문을 하는 것도 아닐텐데요. 음, 대신 가급적이면 ‘네’나 아니오’로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면 좋겠군요. 아니면 혹시 그 망측한 소리를 더 듣고 싶으십니까?”
덕분에 지수는 홀가분해졌나 보다.
“하하, 그건 사양할게. 하지만 몇 가지 질문은 긍정이나 부정만으로 대답하긴 좀 어려울거야. 그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