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서로 같이 밥을 먹고 쾌감을 느끼고 잠을 자는 게 사랑인 건가?
설현은바이올렛 2018-08-28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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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하는 슬비에게 다가가지 않았다. 다가가도 슬비는 거부할 것이다. '이미 전생에 겪어본 일이다.'
트룹에 의해 열 명이나 죽는 바람에 인원이 부족해졌고 그에 따라 세하에게 일이 많이 배당되었다.
그러나 오히려 좋았다. 무언가 집중할 수 있는 것이 좋았다. 슬비에 대한 감정을 생각나지 않게 해주었으니까.
"형, 형!!"
지난 번에 초콜릿을 준 그 아이다.
"왜 무슨 일 있니?" 세하
"그게.. 차원종이 나타났어!!"
세하는 아이가 알려준 쪽으로 빠르게 달려갔다. 주저할 시간은 없다. 차원종을 죽이고 사람을 구한다, 그뿐이다.
도시 쪽으로 침범해오는 차원종은 처리 우선순위지만 이런 폐허에는 클로저를 보내지 않는다.
명목상 클로저 몇몇을 순찰 돌게 하면서 국민을 지킨다고 위선을 떨고 있을 뿐. 즉 세하가 아니면 이곳에 사는 사람들이 전부 죽는다.
얼마쯤 달려가니 정말 차원종이 있었다. 건 블레이드를 허리춤에서 뽑았을 때..
쿵!
차원종이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 세하
"뭐야, 클로저냐?" 나타
불량스러워 보이는 느낌이다. 나이는.. 또래인가. 제복은 아니었다. 클로저 같지는 않은데..
"벙어리인가? 아니면 폐허 같은 곳에 사는 사람이랑은 말도 섞기 싫다 그거야?" 나타
"아니.. 놀라서. 차원종.. 네가 처치한 거야?" 세하
"뭐 보다시피. 문제 있어? 차원종을 잡으려면 허락도 받아야 하나?" 나타
시비투였다. 그러나 세하는 싸우고 싶은 마음이 없기에 굳이 반응하지 않았다.
"다친 데는?" 세하
세하의 미덥지근한 반응에 나타는 인상을 구겼다.
"재미없는 놈이군." 나타
"그렇게 대놓고 도발하면 오히려 받아주기 싫어지니까 말이지." 세하
"뭐 문제 없어. 이런 스캐빈저 따위 처치하는 게 한두 번도 아니고." 나타
그가 말한대로 상처 없이 멀쩡해 보였다.
"넌 위상력을 가지고 있는 거지?" 세하
나타는 고개를 끄덕였다. 평범한 사람은 차원종을 상대할 수 없다.
"밖에서 살고 있는 거야?" 세하
"그건 아닌데.. 여긴 내 고향이라서 말이지. 시간이 나면 놀러오거든." 나타
위상력을 가지고 있다고 꼭 클로저가 되는 건 아니었다. 기업 소속이 되어 용병을 한다던가 하는 경우도 있다.
"너는 좀 다르군." 나타
"뭐가?" 세하
"차원종이 날뛴지 얼마 안 됐는데 바로 도착하다니 말야." 나타
"아이가 알려주어서.." 세하
나타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뜻이 아냐. '보통은 이런 곳에서 차원종이 날뛰어도 모른체한다고' 잘나신 클로저 나으리들은." 나타
설마...
"비약이야. 몇몇 사람은 나태할 수 있겠지만.." 세하
"과연 그럴까. 도시 밖에서 몇 명이나 죽는지 알고 있어?" 나타
"글쎄.." 세하
"하루에 100명이 넘어. 매일 시체 치우는 게 일이라구 이곳은." 나타
유니온의 보호를 받는 상류층이 사는 도시와,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하는 폐허에 사는 약자들.
무엇이 평등한 사람을 이렇게 나눈 걸까..
"나중에 기회가 있으면 또 보자. 내 이름은 나타야." 나타
"나는 이세하. 17살인데." 세하
"오, 동갑이네." 나타
세하와 나타는 악수를 했다.
나타가 어딘가로 간 이후로 세하는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나타가 하는 말에 틀린 것은 없다. 그래서 스스로가 비루해졌다.
안전한 울타리 안에 살면서 밖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하는 척하는 위선자라고 생각했다.
그에 비해 나타라는 남자는 얼마나 자유로운가? 얽매이는 거 없이 하고 싶은대로 싸우고 지키고 살아간다. 클로저라는 칭호는 그에게 더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2
업무를 끝내고 오피스텔에 복귀했다. 나타라는 남자를 만나서 마음이 왠지 싱숭생숭했다.
"왔어?" 유리
"응." 세하
유리는 된장국을 만들고 있었다. 요리에 솜씨는 없다. 먹어본 세하가 가장 잘 알고 있다. 다만 솜씨가 늘고 있긴 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 유리와는 알게 된지 얼마 안 됐다. 한 번에 반할 정도의 매력이 자신에게 없다고 세하 생각한다.
왜? 어째서?
"유리야." 세하
"웅?" 유리
"날 좋아하는 거야?" 세하
"당연하지!" 유리
그녀가 해준 음식을 먹는다. 간이 되있긴 했으나 맛이 없었다. 그래도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
"이해가 잘 안 돼.. 너처럼 예쁜 애가 왜 나를." 세하
"잘생겼으니까 키도 크고 또 착하고 멋있고. 반할 이유야 넘치지." 유리
그녀가 키스해온다. 세하는 굳이 피하지 않는다. 익숙하다.
키스를 하는 게, 옷을 벗기는 게, 옷을 벗겨주는 게, 안는 게, **하는 게 너무나도 자연스러워 처음했을 때 서투름 같은 건 이제 없다.
이게 사랑인 건가? 서로 같이 밥을 먹고 쾌감을 느끼고 잠을 자는 게 사랑인 건가?
"저기, 유리야." 세하
"웅..?" 유리
"클로저 그만두면 어때?" 세하
유리는 세하의 품에 안겨서 멀뚱히 그를 바라보았다.
"걱정해주는 거야?" 유리
"생활하는 건 나 혼자 일을 해도 부족하지 않으니까. 굳이 너까지.." 세하
"왠지 부부같아 우리. 꺄.." 유리
세하는 진지한데 그녀는 장르가 로맨스 코미디였다.
"저기, 나는 진지해." 세하
"음, 그치만.. 세하 혼자 위험한 건 싫어." 유리
세하는 불편했다. 생명의 위협을 항상 느껴야 하는 이 세상이, 내 직업이, 지켜주어야 하는 의무가 생기게 하는 여자친구가. '나타처럼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그럼 같이 관두자." 세하
"에.. 진짜?" 유리
"사실 내 어머니가 유명한 클로저여서 평생 쓸 돈 이미 있어. 네가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아, 나도 하고 싶은 게 하고 살게." 세하
"네가 하고 싶은 건 뭔데?" 유리
세하는 잠시 침묵했다. 내가 하고 싶은 건..
"도시 밖에 있는 사람들을 도시 안으로 들여보내고 싶어." 세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