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을 수 있나요 - 3-2. 교생 선생님 -
Articulus 2018-02-02 3
앞선 화(3-1)에서 내용이 이어집니다...
◆ 3-3
"긴급 속보를 전해드립니다. 한국 현재시간 6월 15일 오전 10시 경, 뉴욕 외곽에 집결했던 모든 차원종들이 유니온의 클로저의 대규모 진압작전의 결과로 모두 섬멸되었습니다. 이번 대규모 작전을 지휘한 사람은 인류의 영웅 검은양 팀의 관리요원이자 현 유니온 신서울지부의 부국장인 김유정 씨로 전해집니다. 또 다시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명성을 드높이게 되어, 정말 기쁨을 감출 수 없습니다. 자세한 소식은 정보가 더 들어오는대로 곧바로 전해 드리겠습니다."
잠시 쉬는 시간, 3교시로 넘어가기 전의 막간의 시간을 이용해 이세하는 자신의 휴대폰으로 긴급속보를 전해들었다. 수업시간 내내 뉴욕에서 싸우고 있을 동료들을 생각하며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었던 그였기 때문에, 쉬는 시간이 되면 곧바로 휴대폰을 꺼내어 뉴욕의 소식을 뉴스로 전해받고 있었는데, 이제 이처럼 기쁜 소식이 들려온 것이다.
그는 곧바로 서유리에게 달려가 소식을 전했다.
"서유리 이것봐! 뉴욕의 진압작전이 성공했대!"
"정말? 다행이야."
생각보다 돌아오는 반응이 크지 않아 시큰둥한 표정으로 이세하는 물었다.
"야, 왜 반응이 그래? 설마 걱정이 안 되었던 거야?"
"설마? 나도 얼마나 걱정했는데?"
"그런데 반응이 왜 그래?"
"음… 그게."
"응?"
"교생쌤이 보고싶어서…"
돌아온 대답이 얼마나 얼척이 없었던 것일까, 서유리를 바라보는 이세하의 표정은 한심함으로 돌변한다.
그의 표정변화를 눈치챈 서유리가 자신을 변호했다.
"이세하, 넌 몰라, 교생쌤을 바라보는 학생들의 마음을."
"나도 학생이거든?"
"교생쌤이 여자였다면 너도 다르지 않을걸?"
"아, 네네. 그러세요?"
아침에 반장이 소란을 떤 이후로 모든 학생들의 이슈는 오직 교생 선생님이었다.
그렇게나 교생이 반가운 것일까? 서유리의 말대로 만약에 이성의 교생이 왔다면 그 역시 마음이 들떴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정도까지는 아닐 것이라고 그는 자신했다. 그의 눈에는 교생 선생님 역시 어른이 되어가는 한 사람으로 보일 것이기 때문에.
익숙한 멜로디의 수업의 시작을 알리는 차임이 울린다. 한창 교실 밖에서 뛰어놀고 있던 개구쟁이 학생들도 수업이 시작되자마자 곧바로 자리로 돌아와 앉았고, 쉬는 시간동안 저마다의 휴식을 취하던 다른 학생들도 짧은 쉼을 마치고 각자의 가방이나 사물함에서 다음 수업의 교재를 꺼낸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학생들의 관심은 단 한 가지였다. 과연 어떤 과목을 교생 선생님이 맡게 될까 궁금해하며, 당장 이번 시간에라도 교생을 볼 수 있는 것일까 하는 기대감을 저마다 가지고 있다.
이세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고, 고개만 절레절레 흔들 뿐이다.
자리에 앉으며 그는 말했다.
"도대체 교생이 뭐라고 다들."
.
.
.
승리한 클로저들이 복귀하여 한껏 시끌벅적해진 유니온 임시본부. 파괴된 돔 아래에서는 오늘만큼은 성대한 파티가 개최되었다. 몇 시간 전 거둔 값진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유니온 총본부가 한껏 오늘은 돈을 쓴 모양이다.
파티의 주인공은 여기에 있는 모든 승리자이며, 그중에서도 이번 작전을 입안하고 며칠동안 지휘에 힘썼던 김유정 신서울지부의 부국장에게 많은 영예가 돌아왔다. 그녀는 파티장에서도 가장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곳곳에서 온 여러 인사들의 환대를 받았다. 계속되는 관심으로부터 피하기 위해 그녀는 잠시 파티장의 가장자리로 물러났고, 거기에서 와인잔을 들고서 이리저리 흔들고 있는 중년 남성의 옆에 다가섰다.
"트레이너 씨, 좀 더 음식을 즐기세요."
"아, 고맙소. 김유정 부국장이야말로 즐기시오, 요 며칠간 힘들었을테니까."
"고마워요. 그런데 트레이너 씨, 무슨 일이라도 있으신건가요?"
"왜 그렇게 생각한거요?"
"표정이 어두우시니까요. 무슨 일인가요?"
그녀의 물음에 트레이너는 잠시 손으로 흔들고 있던 잔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고선 잠시 하늘을 바라본다. 천장이 뚫린 돔 위로 모습을 완전히 드러낸 달이 밝다. 천장을 통해 들어오는 달빛은 고요히 트레이너를 비춘다.
"마지막 차원종 무리의 지휘관, 그 놈이 했던 말이오. 아자젤…, 그가 그들의 주인을 죽이려 들었다고."
"아자젤 이라면…, 과거 베로니카 씨가 몸에 봉인하고 있던 그 차원종들의 총군단장을 말하는 건가요?"
"그런 것 같소, 적어도 내가 아는 차원종 중에서 아자젤이라면 그 녀석밖엔 없으니. 녀석은 한달 전 데이비드와의 최후 교전에서 쇼그에 의해 이차원으로 강제로 보내졌소. 그 이후로 조용하나 싶었더만, 이차원에서 한창 싸움을 벌이고 있는 모양이더군."
"좀더 자세히 말씀해주세요."
"이 차원종들의 주인이라는 녀석이 아자젤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는 모양이오. 덕분에 이차원은 전쟁의 불바다가 된 모양이지. 우리가 지금까지 상대한 녀석들은 바로 그 싸움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이곳으로 도망쳐온 것이라고 하였소."
"그런…"
김유정은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 차원종의 말을 그대로 신뢰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신빙성이 아예 없는 말은 아니었기에 그녀의 생각이 복잡해진 것이다. 만약에 이 말대로라면 그들은 전쟁으로부터 도망쳐 온 피란민 - 비록 상대는 인간이 아니지만 - 을 섬멸한 것이나 다름 없다. 즉 처음부터 싸울 마음도 없는 이들과 싸움을 해버린 것이다.
김유정의 복잡한 생각을 꿰뚫어본 트레이너가 그녀를 다독였다.
"깊이 생각할 건 없소. 놈들이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이곳에 왔다해도, 우리의 세계에서 놈들이 있을 수 있는 곳은 없소. 인류와 차원종은 절대 공존할 수 없으니까."
"네, 그렇죠."
차원종은 차원종일 뿐이다. 그렇게 김유정은 생각의 끝을 맺었다.
이곳에 차원종을 위한 곳은 없다. 이 지구는 오로지 인류와 인류와 함께 오랜 세월을 함께해 온 자연만의 것이다. 결코 차원종의 자리란 존재할 수 없다.
"트레이너 씨의 말대로라면, 걱정되는게 하나 있네요."
"그렇겠지. 나도 같은 생각이오. 만약 이차원이 계속해서 전쟁에 휩싸이게 된다면…,"
"이번처럼 대규모로 차원종들이 지구 곳곳에 출몰하겠죠."
"어쩌면 요즘들어 세계 곳곳에 차원문이 열리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의 우려가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증거인 셈일지도 모르겠군."
"걱정이에요."
그 때 김유정의 휴대폰이 약하게 울었다. 전화의 수신 벨소리를 진동만 울리도록 바꿔놓은 상태라 규칙적인 진동이 들려온다. 트레이너는 그녀가 전화를 받을 수 있도록 배려했고, 그녀는 고개를 살짝 숙이고 눈인사 한 후 전화를 받아들었다. 그녀의 휴대폰에 표시된 발신자명은 그녀의 동료이자 그녀가 아끼는 아이들 중의 한 명인 이슬비였기에, 그녀는 화색을 띄우며 전화를 받아들었다.
"여보세요? 슬비야?"
"언니! 방금 소식 전해들었어요. 뉴욕 외곽의 차원종들을 모두 격퇴하는데 성공하셨다면서요! 정말 고생많으셨어요!"
"고마워, 슬비야. 다 너희들의 응원 덕분이야. 그리고 모든 클로저들이 열심히 싸워줬기에 가능했던 일이야."
"지금은 쉬고 계신거죠?"
"응. 총본부에서 클로저들을 격려하기 위해서 파티를 열었거든, 난 지금 거기에 와 있어. 바로 옆엔 트레이너 씨도 계시고."
"우와, 트레이너 씨에게도 꼭 안부 전해주셔요. 정말 고생많으셨다고요.
그런데 언니, 혹시 뉴욕에도 대규모로 차원종들이 출몰한 이유는 파악하셨나요?"
"그게… 응, 아마도…"
다소 작은 목소리로 답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트레이너와 나누고 있던 대화의 주제와 관련이 있는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였고,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사실 며칠 전에 강남에도 강남 사태 이후엔 처음으로 대규모의 차원종들이 출현했어요."
"그게 정말이니? 차원종이 강남에도?"
"네… 그 때 현장에 있었던 송은이 경정님께서 차원종들의 지휘관급 개체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신 모양이에요. 그 내용을 오늘 제게 문자로 보내셨더라고요."
"혹시 내용을 알려줄 수 있겠니? 여기에서도 트레이너 씨가 지휘관급 개체와 이야기를 나누셔서 몇 가지를 들으신 모양이야."
"차원종 아자젤ㅇ …ㅁ장 …의 영지에 침입해… 차원종 사이ㅇ … 전이 발생ㅎ…"
"슬비야, 잘 들리지 않아. 다시 한 번 말해줄 수 있겠니?"
"아자젤 …참ㅁ…"
통화가 끊어질 때 나는 특유의 알림음이 김유정의 귓가에 들려왔다. 갑자기 전화가 끊어질 정도라면 뭔가 통신상태에 이상이 생긴 모양이다. 전화가 끊어지자 다시 한 번 전화를 걸어보는 그녀였지만, 통화권 이탈이라는 음색만 들려올 뿐 전혀 신호가 가지 않는다. 갑작스러운 일에 그녀는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휴대전화를 내려놓는다.
옆에서 들은 내용만으로도 충분히 전화가 중간에 끊어졌음을 알 수 있었기에 트레이너는 왜 전화가 끊어졌냐는 것을 묻기보다 다른 내용으로 물었다.
"어디까지 들은거요?"
"중요한 부분에서 끊어졌어요. 뭔가 슬비가 이유를 자세히 알고 있는 것 같긴 한데…"
"내가 전화를 해보도록 하지."
자신의 휴대폰을 주머니에서 꺼내든 트레이너가 저장된 전화번호로 전화를 건다. 하지만 그의 휴대폰 역시 통화권 이탈이라는 말과 함께 전혀 전화가 이어지지 않고 중간에 끊어져버린다.
"이런이런, 내 휴대폰도 이상한 걸 보니 이 일대에 뭔가 이상한 일이 있는 모양이군."
"기지국에 무슨 문제라도 생긴 모양일까요."
같은 파티장에 있는 사람들 중, 두 사람과 약간 떨어진 곳에서 그들을 바라보는 젊은 여성이 한 명 있었다. 나이는 검은양 팀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아보인다. 마치 바람에 휘날리는 것처럼 산들산들거리는 흰 레이스가 달린 웃옷의 하단부에는 그녀의 요원증이 걸려있다. 그녀가 유니온 워싱턴지부의 클로저임을 증명하는 요원증에는 백색의 자켓을 입고 있는 그녀의 증명사진이 나와있다. 사진의 그녀가 입고 있는 평범한 백색 자켓은 단순한 옷이 아닌, 유니온의 '특수요원'임을 상징하는 요원복의 자켓이었다.
그녀는 멀찍이서 웃음을 띄우며 파티의 다과를 즐기면서 저 멀리 있는 김유정과 트레이너에게 시선을 두고 있다. 순진해보이면서도 음흉한 기색이 묻어나는 웃음을 얼굴 한 가득 보인채, 그녀는 귀에 꽂고 있는 이어폰의 버튼을 누르고 이야기했다.
"조금 늦었네, 테르스(Ters)?"
"미안, 유스(Hews). 여기 장비들, 생각보다 보안이 뛰어나서 말이여!"
"하여튼… 그래도. 덕분에 좋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으니까, 감사하다고 할게?"
"뭔 정보?"
여성은 미소를 거두고 자신 앞의 테이블 위에 놓아둔 찻잔을 집어 입가로 가져간다.
페퍼민트의 상쾌함이 그녀를 둘렀고, 무척이나 상쾌한 것인지 잔뜩 기분 좋은채로 여성은 말했다.
"역시 페퍼민트가 최고야. 역시 바람처럼 상쾌하거든!"
"쓰잘데기없는 이야기말고, 얼른 이야기해 줘. 뭔 정보를 얻은 것인디?"
"차원종 아자젤, 지금은 이차원으로 돌아가서 애쉬와 더스트랑 한참 전쟁 중인 모양이야. 덕분에 세계 곳곳에 차원종들이 마구 출몰해대는 실정인 것 같고. 이 정보를 잘 이용한다면, 분명히 우리 팀의 계획은 성공할거야."
"아따, 역시 유스는 다르구만. 그래서 세계 곳곳이 이 난리통이었구먼. 근디 어찌 한 것이여? 유스는 전류를 다루지는 못하잖어?"
무전기 너머의 질문에 그녀는 쿡쿡 웃으며 쿠키 하나를 집어다가 입에 넣었다. 작은 초코칩의 단 맛이 입 안을 가득 메우자, 그녀의 얼굴에는 더욱 화색이 돌았다. 지나치게 단 쿠키의 맛을 입 안에서 지우는 방법은 간단했다. 또 다시 페퍼민트의 상쾌함을 들이마시면 되는 일이다.
차를 다시금 마신 후에 그녀는 크게 하품을 내쉬며 말했다.
"그렇지, 나는 유카(Lewk)가 아니니까. 하지만 전파는 매질이 있어야 흐르지. 그런데 보통 매질은 공기거든. 이 매질을 살짝 흐트려놓으면 전파를 가로채는건 어렵지 않아. 물론 유카가 있었다면 더 쉽게 하이재킹 - 가로채기 - 을 할 수 있었겠지만."
"하여튼 대단한 녀석들이랑께. 근디 이젠 우짤거여? 당분간 전화는 막았다해도, 유니온 네트워크는 다른 일일텐디?"
"아, 그건 걱정마. 이미 위에서 손 써둔 모양이니까."
"역시 브레인 하나는 인정해 줘야 한다니깐. 같은 팀인게 다행이지, 이거 뭐 적이었으면…"
"그 말, 넘겨 듣기 힘든데? 마치 우리 팀이 악역이라도 된 것 같잖아?"
"물론 그라지만, 무서운 건 무서운 것이여."
"잊지마, 우리의 싸움은 인류를 위한 싸움이라는 걸."
소형 무전기 하나 사이로 나누던 대화는 끝이다.
그리고 유스 라고 불린 소녀도 이곳과는 작별이라는 듯 찻잔을 다시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는 발걸음을 돌린다.
"당신들만의 정의, 우리가 확실히 그 끝을 보여드리죠."
자기 홀로 들을 수 있을 정도의 성량의 혼잣말을 마치고, 그녀는 마치 보이지 않는 바람과 같이 모습을 감춘다. 바람이 불고 있다는 것은 모두가 알지만 그것이 어디를 향해 가는지 알지 못하는 것처럼, 그녀가 이곳을 떠나가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보았지만 그녀가 누구이고 어디로 가는지 관심을 가지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 3-4
"끊어져버렸네."
이슬비는 자신의 휴대폰을 내려놓으며 풀이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기껏 간만에 통화를 했는데, 알 수 없는 이유로 전화가 끊어져버렸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전화를 걸어**만 상대방이 전화를 받을 수 없는 상태라는 목소리만 들려올 뿐, 전화는 연결되지 않는다.
전화 거는 것을 포기하고 송은이에게 전달받은 메시지를 그대로 다시 김유정에게 전달해**만, 문자는 상대가 수신했는지를 전혀 알 방법이 없으니 보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답답할 노릇일 것이다.
어쩔 수 없다며 전화하기를 포기한 슬비는 휴대폰을 다시 자켓 속에 집어 넣었고, 자신의 위상력을 사용해서 이공간을 열어 무언가를 꺼냈다. 그녀의 특기는 염동력이지만 이를 자유자재로 활용해서 어딘가에서 물건을 꺼내는 것을 자주 보여주었으니 검은양 팀에게는 그다지 놀라운 건 아닐 것이다. 다만 그녀가 이공간에서 꺼내온 물건에 그들의 시선이 향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무척이나 커다란 도시락통들 이었다.
오늘 검은양 팀 세 사람은 옥상에 모여 함께 점심을 먹기로 하였다. 사실 이 세 사람은 같은 학교의 같은 학년에 재학중인 친구들이었지만, 처음엔 서로를 잘 알지 못했기 때문에 이렇게 함께 모여 밥을 먹는 건 오늘이 처음이다. 그들의 처음 만남은 철저히 업무 - 검은양 팀 - 로 시작되었으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다함께 학교에서 먹는 처음 식사라는 이유로 오늘 점심은 특별히 팀의 리더인 이슬비가 직접 싸온 도시락을 싸오겠다고 하였고, 이를 수락한 나머지 두 사람은 이슬비의 음식 솜씨를 기대하며 점심을 기다렸다. 특히 서유리는 3교시부터 계속해서 점심시간만을 쭉 기다린 모양이다. 그녀의 음식 사랑, 그중에서도 사랑하는 리더의 도시락은 더욱 그러하니 말이다.
도시락을 덮고 있던 포장이 풀리자, 일반적인 도시락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의 다양한 반찬이 돗자리 위로 펼쳐진다. 더욱이 반찬통의 뚜껑이 열리기가 무섭게 펴져나온 음식의 향미는 점심을 기다리며 고픈 배를 달래던 이들에겐 감히 이겨낼 수 없는 유혹으로 다가왔다.
솔직히 이세하는 그렇게 기대하지 않았다. 예전부터 이슬비가 텔레비전을 통해 수많은 음식 프로그램들을 시청해왔고, 그 덕분에 꽤나 다양한 요리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요리를 할 수 있는 것과 맛의 차이는 분명했다. 아무리 같은 레시피로 음식을 만든다고 할지라도, 만드는 사람의 손길에 따라 맛이 있고 없고가 정해지는게 요리의 영역이다. 그것은 어렸을 때부터 독특한 입맛으로 극상의 맛만을 추구해왔던 그의 어머니와 함께 자라며 요리를 해온 그이기 때문에 잘 알고 있다.
지난 주 금요일, 신서울지부의 중앙청사에서 밥을 먹으며 이슬비와 하기로 한 내기에 따르면. 만약 서지수의 음식을 먹고 맛 없다고 한다면 이슬비가 이세하의 집에 찾아가서 종종 함께 밥을 먹을 수 있고, 만약 맛 있다고 하면 이세하가 한 주 동안 이슬비에게 반찬을 만들어다주어야 한다.
이 내기를 지난 주 토요일에 그들은 당장 실천에 옮겼고, 이세하의 집에 초대받은 이슬비는 '세상에서 이렇게 맛이 없는 음식이 또 있을까'라고 생각할 정도로 맛없는 음식을 먹어야만 했다. 결국 두 손 두 발을 모두 들어보인 그녀는 종종 이세하의 집에 반찬을 싸들고 가서 함께 밥을 먹게 되었다.
그렇게 되었기 때문에, 사실 오늘의 도시락은 어떻게보면 이세하가 이슬비의 음식실력을 가늠하는 잣대가 될 것이다. 만약에 이 도시락이 맛이 없다면 그는 굳이 그녀에게 고생해서 반찬을 만들어오라고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별 기대를 하지 않았던 이세하는 이슬비가 벌려놓은 만찬의 음식들에 마음이 뛰었다. 어쩌면 이 음식들이 무척이나 맛있을 수도 있을 것이고, 그렇다면 이런 음식을 자주 먹게 될 수 있게된 자신은 무척이나 복을 받은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꺄아! 소불고기까지! 슬비슬비야, 정말 사랑해!"
"하나도 남김 없이 다 먹어야 해. 음식을 남기는건, 농어민 분들에 대한 무례니까."
"응! 잘 먹겠습니다!"
가장 먼저 나간 젓가락은 단연 서유리의 것이었고, 그녀는 무서운 속도로 여러 음식들을 하나씩 집어다가 자신의 앞에 수북히 쌓아놓는다. 그리곤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표정으로 밥과 함께 반찬을 입 안 가득 담아서 꼭꼭 씹어먹는다. 역시 이런 게 서유리답다, 그녀에겐 지난 데이비드의 테러와 같은 어두운 일은 어울리지 않는다.
"잘 먹을게, 슬비야."
간단히 감사의 말을 전하고 젓가락을 든 이세하의 앞에 이슬비는 또 다른 반찬통 하나를 꺼내어 뚜껑을 열었다. 그 안에 담긴 것은 다름 아닌 멸치볶음이었다. 지난 주 금요일에 그가 좋아한다고 말했던 바로 그 음식이다.
"슬비, 너 어떻게?"
"좋아한다며. 오랜만에 해본 거라 맛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맛있게 먹었으면 좋겠어."
"헤~. 이슬비, 이거 너 설마, 내가 저번에 멸치볶음 좋아한다고 해서 일부러 만든 거야?"
"아니거든요?"
"아, 그러셔요?"
아니라고는 해도 얼굴에는 그렇다고 다 써 있다.
감사한 마음 가득 품고 멸치 몇 마리를 집어 밥을 크게 퍼 올린 숟가락 위에 올려, 그대로 입으로 가져가 입 안 가득히 채운다. 밥의 고소한 풍미 뒤로 느껴지는 매콤하면서도 짭짤한 멸치의 맛은 간만에 맛본 진미였다. 비록 그가 어릴 적부터 먹어온 어머니의 음식만큼은 아니었지만, 이렇게나 맛있는 다른 사람의 멸치볶음은 처음이다.
얼굴 한 가득, 놀란 표정 반 기쁜 표정 반을 지으며 이세하는 입 안 가득한 맛을 음미했다.
그리고 잠시 후 그는 평가를 내놓았다.
"쿨럭! 켁켁!"
"세하야, 괜찮아!?"
"크크큽…"
"이세하…, 너!"
그의 소리 죽인 웃음소리를 듣고 이세하의 장난임을 깨달은 이슬비는 물을 따르다 말고 얼굴을 찌푸렸다.
그녀의 표정을 보면서 그는 무척이나 재밌어서인지, 웃지는 않았지만 화색은 완벽히 거두지 못하고 이야기했다.
"장난이야, 장난. 정말 맛있어, 이거."
"정말, 이지?"
이것도 장난이 아닐까 하는 마음에 이슬비는 의심을 완벽히 거두지 못하고 그의 말에 의문을 표했다. 하지만 지금 한 그의 말은 진심이었고, 그녀가 그것을 깨닫는 것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무척이나 부드럽고 편안한 목소리로 이세하는 말을 이어나갔다.
"엄마 이후론 처음이야, 이런거."
"맛있다면 다행이야."
"어디어디, 그럼 다른 음식도 한 번?"
이세하도 서유리만큼 빠르게 젓가락을 놀려 다양한 반찬들을 하나씩 가져왔다. 그리고 어느 것 하나 그의 기대를 배신하는 것은 없었다.
가능하다면 또 먹고 싶을 정도로 맛있는 반찬들이다. 게다가 이 밥, 특히 최고다. 정말 맛있다.
"슬비야, 이 밥은 어떻게 지은거야?"
"응? 그거? 반찬은 내가 만들었지만, 밥은 햇X인데?"
"풉!"
"뭔데? 왜 웃어?"
"아니, 크큽. 이거 갭 차이가 너무 심하잖아! 킥킥킥."
"밥은 오래 놔두면 맛이 변해. 차라리 그럴 바에야 햇X 먹는게 낫지!"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이건… 키키킥."
이세하의 비웃음에 기분이 상한 이슬비가 그와 투덜대며 말다툼을 시작하자, 두 사람의 말다툼을 보면서도 계속 밥을 맛있게 먹으며 서유리는 속으로 생각했다.
'먹을 수 있는거라면 다 맛있는 거지, 어느 걸로 만들었든 뭐가 중요해?'
.
.
.
수다스러운 점심시간이 반 이상 지나가고, 이젠 모두가 밥을 다 먹고서 슬슬 정리를 하는 분위기다.
반찬통은 한 군데로 모아서 각자 맞는 뚜껑을 찾아 닫았고, 식기류는 다시 모아 따로 비닐 속에 넣는다. 꽤나 많은 음식을 가져왔음에도 어느 하나 남지 않았다는 건, 여기 클로저들 모두가 먹성이 좋다는 것과 뛰어난 솜씨로 요리를 만들어 온 이슬비 덕분이겠지.
이제 점심시간이 다 끝나기까지 남은 시간은 약 20분. 아직 반으로 돌아가서 다음 수업을 준비하기엔 이른 시간이다. 배부르게 밥도 먹었으니 조금은 쉬어도 될 시간이다. 옥상의 바로 아래 3층의 창가에서 학생들의 재잘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대화의 내용을 완전히 다 들을 수는 없었지만 그 주제는 명확했는데, 그건 다른 학년의 중심 관심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3학년도 교생 이야기를 하고있네."
"온통 교생 이야기. 도대체 교생이 뭐라고."
이슬비가 화제를 정리하자, 이세하는 옥상 위에 굴러다니는 돌 하나를 주워 저멀리 던지며 투덜댔다. 그는 1교시부터 온 학교의 화제가 교생이라는 것에 불만이었다.
어쩌면 그것은 죽을 고비를 넘기며 인류의 적을 쓰러뜨리고 온 검은양 팀에 대한 관심이 단 한 순간 반짝했을 뿐이고 결국 일반 학생들의 관심은 결국 자기들의 관심사로만 한정된다는 현실에 대한 투정일 지도 모른다. 그것은 마치 어린 아이가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주지 않으면 투정을 부리는 것과 같다.
그의 감정 상태를 꿰뚫어본 서유리가 쿡쿡 웃으며 묻는다.
"분해?"
"뭐가."
"온 학교의 관심이 전부 교생쌤한테 쏠렸다는거."
"내 알바냐! 피-"
그의 반응을 보고 그의 마음이 토라졌다는 것을 확신한 서유리는 이세하의 어깨를 토닥인다.
"이제보니 이세하, 너 정말 어린 구석도 있구나?"
"어리긴 누가 어리다고! 그러면 너는 어른이냐!"
두 사람의 소박한 말다툼에 이번엔 이슬비가 끼어들었다.
"확실히 학생들에겐 새로운 선생님이라는 건 엄청난 흥미가 될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해. 교생선생님들은 보통 우리와도 나이차가 많이 안 나는 데다가, 대부분의 학생들은 매일 같이 보는 선생님들을 지겨워하는 경향이 있으니까."
"뭐야, 이슬비. 너도 서유리처럼 교생한테 빠진거야?"
"우리 반 친구들의 말을 들으면, 정말 멋지게 생긴 남자교생 선생님이라던데? 흥미가 가는 건 사실이야."
"야! 이슬비, 너 마저!"
"왜? 분해?"
이세하가 자신의 감정을 격하게 표출하며 그의 얼굴에 홍조가 떠오르는 것을 보고 이슬비는 그를 놀리듯 쿡쿡 웃었다. 예전부터 서로의 감정을 가지고 노는 것은 두 사람의 오래된 장난거리이다.
부정하긴 싫어도 두 사람은 사실 최근들어 급속히 관계가 좋아지면서, 은근히 서로를 의식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이것이 결코 사랑의 감정으로까지 발전한 것은 아니지만, 서로를 향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정도이기 때문에 세간에서 흔히 말하는 남사친 여사친보다는 좀더 심리적으로 밀접한 관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녀의 장난기 섞인 도발에 그가 괜히 얼굴을 붉히는 것도 아니다.
"장난이야, 장난. 그렇게 얼굴 붉힐 필요는 없어."
"누가 얼굴을 붉혔다고 그래?"
"그럼 열이라도 있는걸까, 세하는?"
"이, 이건, 아무 것도 아냐! 그냥, 햇빛이 뜨거워서…"
"어디?"
"으아아아아! 뭐, 뭐하는 거야!?"
이세하는 자신의 이마에 닿는 차가운 촉감에 깜짝 놀라 비명을 질렀다. 물론 촉감만이 아닌, 그가 의식하고 있는 사람이 가까이 다가왔다는 것도 이유가 되겠지만.
이슬비는 이세하의 이마에 자신의 손을 대보면서 그에게 정말 열이 있는가 없는가를 살폈다. 그녀는 이런 행동을 실행하기 이전에, 이미 이세하의 말은 변명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간파하고 있었지만. 그의 장단에 맞춰준다고 생각하며, 동시에 그를 놀릴만한 거리를 찾는다.
이슬비의 돌발행동에 화들짝 놀란 이세하는 앉은 채로 뒷걸음질쳐서 그녀와 거리를 두었다. 그에게는 다행히도, 이슬비는 그를 따라가지 않았다.
얼굴을 찌푸리며 그가 소리친다.
"야, 이슬비! 너 다 알고도 일부러 그런 거지!"
"흥. 멸치볶음 좋아한다고 해서 만들어왔는데 날 놀린 데에 대한 대가야."
"뭐야. 내가 좋아한다고 해서 만들어온 거 맞네."
"아, 아… 뭐 그렇다고 해. 그나저나 이세하, 너 얼굴 달아오를 때 귀엽더라? 사진이라도 찍어놓고 싶었어."
계속되는 그녀의 도발을 참다가, 결국 그는 입 밖으로 그녀를 평하는 말을 내뱉는다.
"거짓말쟁이."
이에 질세랴 그녀 역시를 그를 평하는 말을 뱉었다.
"철벽남."
서로 콧방귀를 뀌고 얼굴을 돌려버린 두 사람 사이에서 서유리는 이렇게 생각했다.
'나는 여기서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걸까?'
초여름의 열기를 우스울 정도로 싸늘한 냉기가 두 사람 사이에 휘몰아치는 듯 하다.
그 때, 냉전의 끝을 고하듯 점심 시간의 끝을 알리는 차임벨이 울린다. 이 소리는 5교시까지 이제 10분 남았으니, 다음 수업을 준비하라고 학생들에게 알리는 소리이기도 하다. 이제 반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얘들아, 일어나자. 이제 돌아가야지."
서유리의 중재로 두 사람의 냉전은 유야무야 끝이 났고, 이슬비는 모든 도시락통들을 이공간 속에 밀어넣은 후 돗자리까지 완전히 접은 후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다함께 2학년 반이 모여있는 2층으로 향하기 위해 계단으로 내려간다. 옥상과 연결된 유일한 통로인 중앙계단을 통해서 내려가는 길에, 이세하는 우연히 익숙하지 않은 누군가의 뒷모습을 보았다.
검은색에 가까운 짙은 색의 정장으로 생각되는 옷을 입고 있는 은발의 남자 - 적어도 키와 체격을 보건대 여자라고 생각이 들진 않았기 때문에, 이세하는 저 사람이 남자라고 판단을 내렸다 -. 처음 보는 사람이다. 적어도 이 학교의 사람 중에서는 저 정도로 백색에 가까울 정도로 머리가 흰 사람은 없었으니까.
그는 어디론가 가는 모양인지 곧바로 이세하의 시야에서 사라졌고, 그 때문에 이세하는 의문의 남자의 얼굴은 ** 못하고 뒷모습만 잠시 볼 수 있었다. 계단 아래로 내려오자마자 그가 사라진 곳으로 곧바로 향했지만, 이미 남성은 어디론가 사라져 복도에선 모습을 감춘 상태였다.
"이세하, 왜 그래?"
"아냐. 신기한 사람을 봐서."
"신기한 사람?"
"아냐. 그냥 외부 방문자인 모양이지. 우리 학교는 외부에서 자주 사람들이 들락날락하니까."
별 신경을 쓰지 않고, 이세하는 다시 2층으로 내려가기 위해 계단으로 향한다. 잠시 후 3층 복도의 한 쪽 끝에서 엄청난 환호성이 들려왔지만, 그는 그 역시 무시하고 갈 길을 재촉했다.
이제 수업까지는 5분 정도 남았으니, 지금 반에 들어가서 책을 꺼내고 자리에 앉으면 딱이다.
2층까지 내려와서 중앙계단을 사이로 두고 세 사람은 하교 때까지 잠깐의 작별을 고했다. 적어도 7교시까지는 어느 누군가가 다른 사람의 반에 찾아가지 않는 한, 만날 일은 없을 테니까.
누군가는 동관으로, 누군가는 서관으로, 서로의 반을 찾아 간다. 그리고 또 다시 다음 수업을 준비한다. 지금까지는 평범한 학교생활의 연속선이었다.
◆ 3-5
"아이 참! 이게 뭐하는 짓이야, 닥터 그레모리!"
"흣쨔-! 이 초천재 그레모리 박사님의 선물이야. 마음껏 받아 누리라구, 닥터 최보나!"
앳된 소녀들의 대화가 모니터 하나를 사이에 두고 신경질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한 명은 조롱하기 위해서, 한 명은 잔뜩 화가 난 자신의 심정을 보이기 위해서.
보라색 양갈래머리를 땋은 연구원 차림의 소녀가 자신의 마스코트와 같은 커다랗고 동그란 안경을 고쳐쓰며 물었다.
"최근 들어 왜 이러는 거야, 도대체? 왜 이렇게 우리의 연구를 방해하는 거냐고!"
"그야 물론~ 이렇게까지 이 초천재 그레모리 박사님이 해주지 않으면, 너희에겐 발전이 없기 때문이지."
"우리 인류를 우습게 **마! 네 도움 없이도 할 수 있는 일이야!"
"안돼. 너희는 지금보다 더욱 빠르게 강해질 필요가 있어. 시간이 많지 않기 때문에, 그래야만 하거든."
그 말이 상대답지 않다는 생각을 한 소녀는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시간이 많지 않다니?"
"그건, 한 번 연구해서 답을 찾아보시지, 닥터 최보나! 그럼 난 이만! 흣…"
"잠깐만! 말이 끝나지 않았어. 지금 네가 내준 이 과제, 이건 유니온의 연구원들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야. 이건 클로저 요원들이 필요한 문제라고."
"그거야 내 알 바가 아니지? 정 사람이 없다면, 차원압을 버틸 수 있는 약이라도 복용하고 들어와서 직접 해결하는 건 어때?"
"이게…"
모니터 너머의 상대는 소녀를 도발하기 위해 방금과 같은 말을 던진 것이리라.
애초에 위상능력자가 아닌 데다가 마땅한 전투 요원으로서의 훈련도 받지 않은 일반 연구원인 이 소녀에게 내준 과제는 그녀가 해결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차원종들을 무찌르고 거기에서 힌트를 얻어내야만 하기 때문이다.
소녀의 얼굴을 보고, 모니터 너머의 상대는 기분 나쁘게 귀여운 웃음을 흘리며 제안한다.
"아니면 동료의 도움을 받든지."
"지금 플레인게이트에는 클로저가 없어."
"아니~ 거기 - 플레인게이트 - 말고, 가까운 곳- 강남 - 에 있잖아? 우리 군단의 지휘관을 되돌려보낸 녀석들이 말이야."
"응?"
"힌트는 여기까지! 그럼 일 주일의 시간을 주겠어. 그 때까지 해결하지 못하면, 이 위대하신 판타스틱 초천재 그레모리 박사님께서 손수 만드신 바이러스가 너희 컴퓨터를 모조리 박살내고 말거야. 후후훗, 그럼 기대하고 있겠어, 닥터 최보나. 그럼 진짜 간다? 흣쨔-!"
모니터에 나타난 또 다른 소녀의 모습이 사라진다.
상대 - 차원종 - 가 남긴 기분나쁜 도발에 양갈래머리 소녀는 주먹을 쥐며 이를 갈았다.
"내가 못 이길 줄 알고? 기다려, 그레모리 박사."
들을 리 없는 상대에게 맞서겠다는 의지를 담은 말을 하고선, 그녀는 눈 앞의 컴퓨터를 이용하여 유니온 네트워크에 접속한다. 그리고 유니온 요원관리국을 수신자로 하는 문서 하나를 작성해가기 시작했다.
"수신. 유니온 신서울지부 요원관리국. 경유. 없음. 제목. 검은양 팀의 플레인게이트 파견 지원에 관한 요청…"
.
.
.
하교까지 20분이 남았다는 것을 알리는 하교 조회 차임벨이 울린다.
청소를 마친 학생들은 모두 반으로 돌아가, 반별로 담임 교사와의 하교 조회 시간을 가진다. 20분이라는 시간이지만, 사실상 10분 안에 조회가 끝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매일같이 보는 얼굴에 매일같은 일상이 반복되기 때문에 전할 말도 별로 없는게 어쩌면 당연한 걸지도 모른다.
그런데 유독히 2학년 C반은 다른 반들과 달랐다.
담임 교사가 들어오기를 기다리던 학생들은 어느 때와 마찬가지로 담임 교사가 들어오는 것으로 오늘의 마지막 학교에서의 공식 일정을 소화한다. 평소와 다를 바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던 학생들은 별로 교사와 눈을 마주치는 이들이 없었고, 이는 이세하 역시 마찬가지였다. 창 밖의 노을지는 풍경을 바라보며 어서 빨리 하교하기만을 그는 쭉 기다리고 있다.
"녀석들, 피곤한 건 알겠지만 선생님이 들어오면 눈 좀 마주치자.
오늘은 특별한 분을 소개할 건데, 앞으로 한 달 동안 우리 반의 부담임을 맡아서 고생해주실 분이시다.
아침부터 너희가 쭉 기다렸었지. 교생 선생님을 다들 박수로 환영하며 맞이하자!"
담임의 말에 모든 학생들이 눈이 휘둥그레지며, 탄성을 내지른다.
이내 교실 앞 문을 통해 모습을 드러낸 한 남성을 바라보며, 그의 얼굴을 보기 원했던 여학생들은 기쁨에 가득찬 비명을 질렀고, 남학생들은 압도적인 비주얼을 자랑하는 또 한 명의 남자를 보며 저마다 얼굴에 대한 평을 남기며 기가 죽은 모습이다.
쭉 무관심한 태도를 유지하며 창문 밖을 쳐다보던 이세하는 근처의 서유리가 내지르는 교성을 들었다. 그런데 그녀의 목소리는 기쁨에 찼다기보다 놀라움이 가득한 것처럼 들린다.
그리고 그녀는 곧바로 그를 찾았다.
"세하야… 저 사람…"
"응?"
그녀의 부름에 반응한 이세하는 시선을 창 밖에서 교단으로 옮겼다. 그리고 거기에 서 있는 남성을 본 순간, 그의 얼굴은 그대로 굳어버리고 말았다. 서유리가 놀람에 가득 찬 목소리를 낼 수 밖에 없었던 건 당연한 것이었다.
그와 그녀가 이미 알고 있는 얼굴, 잊을 수 없도록 재수 없었다고 생각했던 그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검은양 팀이 신서울로 돌아오던 날, 아이스크림을 사러갔던 이세하와 서유리가 가게 안에서 만났던, 차갑게 이세하에게 비난을 던졌던 바로 그 직원이었다.
"당신이 왜 여기에…"
들릴 리가 없는 이세하의 말을 뒤로 하고, 남자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짙은 색의 정장에 흰 셔츠, 그리고 슬림한 회색의 넥타이는 무척이나 차분한 모습의 그를 잘 드러내는 듯 하다. 거기에 마치 색을 맞춰서 입은 것처럼 백색에 가까운 은색의 머리색은 차가운 은빛의 눈동자와 무척이나 잘 매칭되는 듯 하다.
그리고 학생들을 향해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서, 자기 소개를 시작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여러분. 저는 한 달 정도 신강고등학교에서 여러분과 함께 하게 된, 교육실습생 '서주현'이라고 합니다. 한 달 동안, 잘 부탁드립니다."
거의 2주 만에 찾아뵙습니다. 물론 약간 더 된 것 같지만..ㅎㅎ
알바를 해서 시간이 없는건 마찬가지이지만, 그나마 다행힌 것은 아직 개강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쓸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제 초반부인데, 솔직히 모르겠어요.
좀 더 제 취향대로 써야할지, 아니면 달달하게 써봐야할지. 물론 제 취향에 충실하게 쓸 것 같습니다만. 독자분 중에 크고 아름다운 창을 꽂으시는 분께서 좋아하실듯
쓰면서도 틈틈히 루나까지 플레이하며, 신캐의 스토리를 모두 파악하고 있습니다.
모든 캐릭터의 스토리를 파악하지 않으면 설정 붕괴가 일어나기 때문에요... 그래서인지 종종 제가 인게임에서 루나를 키우고 있는걸 보셨던 분들도 있었을 겁니다. 물론 이제 루나의 이야기를 다 깨서 루나를 더 키우는 일은 없겠지만, 문제는 새로운 캐릭터 소마가 나온다는 겁니다. 바라기로는 루나와 같은 흐름을 타고 갔으면 합니다.
그나저나 주중에 클로저스의 스토리 담당이셨던 오트슨 님께서 클로저스의 집필을 그만두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한 사람에 의해서 계속해서 스토리가 쓰여야 설정 붕괴가 덜 일어날텐데, 과연 앞으로 어떻게 클로저스의 이야기가 흘려가려나 궁금해지네요.
오늘은 저번 화에 비해선 분량이 적은 편입니다만, 내용 면에서는 저번 화에 비해 더 풍성한 것 같아요.
일상 속의 비일상을 살아가는 검은양 팀을 응원합시다.
다음 이야기도 기대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