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프팩, 잊혀진 어금니 (12)
벨리에나 2018-02-01 0
그레모리 박사를 만난 볼프강과 루나는 그레모리에게서 적의가 없다는 것을 판단하고 우선 아무도 없던 휴게실로 데려갔다. 볼프강은 사비로 그레모리에게 물을 건네며 마시라고 했는데, 그레모리는 손사래를 치며 거부했다.
"이봐, 그레모리. 다시 안 나오겠다고 하지 않았어? 근데 이젠 대놓고 나오다니, 무슨 생각이야?"
그레모리는 기분이 나쁘다는 듯 이빨을 보이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무, 뭐! 나라고 나오면 안 되냐!"
"...... 그런 법은 없다만, 이상해서 말이야."
"뭐, 뭐, 뭐가 이상한데!"
볼프강은 그레모리를 내려다보았다. 노련한 클로저 볼프강은 자신의 촉을 믿으며 루나에게 쌍으로 윙크를 해줬다. 루나는 볼프강을 도와주기로 했다.
"아아, 우리 지부로 직접 들어와버렸으니 어서 잡아다가 연구실로 보내야겠는데? 물론, 유능한 차원종이라면 돌아갈 방법은 미리 구해놨겠지. 안 그래, 루나?"
"물론이죠, 선생님. 초천재라던 그레모리 박사가 그런 것도 준비 안 했을까요?"
두 사람은 씨익 웃으며 그레모리를 바라보았다. 그레모리는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결국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 와줘."
"뭐? 안 들리는데?"
"도와달라고, 클로저! 내가 저번에 많이 도와줬잖아!"
몇 시간 전, 그레모리 박사의 연구실.
그레모리 박사는 자신의 곰인형을 개조하면서 한결 같은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이곳에 오는 클로저를 좀 더 골탕 먹일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자신과 같이 놀다 갈 수 있을까. 하루가 다르게 강해지는 클로저. 그들과 놀고 싶은 그레모리에게는 큰 숙제였다.
"헤헤, 이정도면 그 녀석들도 한 번에 때려잡지 못하겠지?"
주변을 둘러싼 수많은 곰인형. 원래 이렇게까지 쌓인 적은 없었다. 최근 그레모리 연구실을 들리는 클로저가 급격하게 줄어들면서 그레모리의 곰인형이 쌓이고 있던 것이다.
"왜 안 오는 거지? 나랑 놀기 싫다는 건가...... ."
우울해지려던 찰나, 그레모리는 활짝 웃으며 벌떡 일어섰다.
"아냐! 이제야 이 그레모리 박사님의 힘을 깨닫고 더 이상 오지 못하는 거야! 꺄하하하!"
혼자 신난 그레모리는 곰곰이를 타고 자신의 연구실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뒤에서는 자신이 개조시킨 클론이나 곰인형이 따라오면서 그레모리의 기분을 더욱 들뜨게 만들었다.
"흐야! 자, 잠깐만! 나 머, 멀미약! 멀미약 안 먹었어어어!"
곰곰이의 등을 붙잡은 채로 대롱대롱 달리던 그레모리는 정신을 잃기 직전이었다. 그때, 어떤 공격으로 인해 그레모리의 곰곰이는 일격으로 날아가버렸고, 정신이 몽롱한 그레모리는 고개를 빙빙 돌리며 횡성수설했다.
"헤, 헤헤, 고, 곰곰이 한 마리, 곰곰이 두 마리, 흣! 쨔!"
그레모리는 실실 웃으며 뒤로 넘어졌다. 정신이 들자, 그레모리는 자신의 앞에 서있던, 소녀 아닌 소녀의 모습을 가진, 그레모리가 보고 싶어 하지 않는 존재가 있었다.
"차, 참모장!"
콱!
누워있던 그레모리의 옷깃을 짓밟으며 더스트는 버럭 화를 냈다.
"여왕이라고 불러. 난 그런 존재니까."
"더스트를 만났나고?"
볼프강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루나는 다시 한 번 그레모리에게 말했다.
"그게 사실이야? 더스트가 왜 너한테 찾아오는데?"
"몰라! 힘을 얻었다면서, 내가 돌아왔다면서 자기 자랑만 하다가 갑자기 나보고 이름없는 군단에 복귀하라는 거야! 그래서 싫다 했지! 자기들이 쫓아낸 이 초천재 박사님을 어떻게 다시 부른다는 거야? 그래서 거부하고 싸웠는데......!"
그레모리는 옆구리에 끼고 있던 곰인형에 입을 박으며 말했다.
"...... 내 곰곰이들이 다 파괴 당하고...... 내 연구실도...... . 도와줘! 클로저!"
"하지만, 더스트는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대상이 아냐. 서지수 선배님이 계시다면 모를까."
"서지수 말고, 여기 맥스 있잖아! 난 다 알아! 그 녀석이라면 참모장 정도는 가뿐히 찢어버려!"
볼프강과 루나는 서로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볼프강이 물었다.
"더스트는 불사잖아? 서지수 선배님의 능력이 아니면 죽일 수 없어."
"뭐야, 너희는 우리 세계에서도 그렇게 유명한 클로저의 능력을 몰라? 맥스가 가진 영역이라면 참모장이고, 군단장이고, 심지어 복귀한 총사령관이고! 다 꿀 먹은 벙어리라고!"
볼프강은 입을 쩍 벌렸다. 루나 또한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유일하게, 그레모리의 말을 듣고 말할 수 있었던 건 휴게실의 문을 열고 들어온 관리국장 슈타인이었다.
"자세하게 말해라, 그레모리 박사. 우리 요원들이 너의 말을 너무 믿은 것 같은데."
뒤돌아 슈타인을 발견한 그레모리는 반갑다는 표정을 지었다.
"뭐야, 슈타인! 너도 있었어? 그럼 맥스도 있겠네!"
"그는 이곳에 없다. 이미 유니온의 명령을 받고 출동...... ."
그레모리는 이빨을 드러내며 슈타인을 노려보았다. 그레모리는 곰인형을 쥔 채 슈타인에게 손을 뻗었다.
"너 생각 있어? 맥스를 유니온에게 보냈다고?"
슈타인 또한 허리를 숙이며 그레모리를 노려보았다.
"두 번째다. 제대로 말해라, 그레모리 박사. 유니온, 이름없는 군단, 그리고 맥스. 이 셋은 무슨 관계인거지? 아무리 조사해봐도 맥스에 대한 기록은 철저하게 지워져있었다."
"...... 넌, 차원전쟁 때의 슈타인 맞지?"
"난 여전히 울프팩 팀 고위 관리요원이다."
"좋아. 말해줄게. 대신 맥스를 바로 복귀시켜. 아니면 당장 내 연구실로 보내."
"노력해보도록 하지."
그레모리는 볼프강, 루나, 그리고 슈타인의 집중을 한 몸에 받으면서 이야기를 꺼냈다.
"총사령관 아자젤, 그리고 돌아온 참모장 더스트. 이 둘은 서로를 죽이려고 해. 이번에 참모장이 힘을 찾으려고 한 것도 이것 때문이야. 하지만 참모장도 잘 알아. 그 정도의 힘으로 아자젤을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것. 참모장은...... 인류 최초로 원반에게 인정 받은 인물을 자신의 것으로 삼으려고 해. 물론 목적은...... ."
그레모리가 말하는 시간은 급격하게 느린 속도로 흘러갔다.
"원반의 완전 제어."
휠 오브 포츈, 중국 상공.
휠 오브 포츈은 빠른 속도로 중국 상공을 지나고 있었다. 장미숙 요원은 사냥터지기 팀의 활약을 확실하게 유니온 본부에 전달하겠다며 시베리아에 남았고, 사냥터지기 팀은 다른 곳을 지원하기 위해 다시 휠 오브 포츈에 몸을 실었다.
늦은 밤이었기에 휠 오브 포츈 내부도 어두컴컴한 상태였다. 허나 그 누구도 쉽게 몸을 쉬지 못하고 있었다. 세계는 이미 불타고 있고, 그들이 구할 사람은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흑지수는 김도윤을 만나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잘 됐네. 약혼도 다시 생각한다고 하고."
"헤헤, 그렇죠? 역시 미숙이는 좋은 여자라니까요? 전투에 들어갈 때는 무섭지만."
"확실히, 그녀의 전투 스타일은 같은 여자인 내가 봐도 과격했어. 그래도 확실한 건...... ."
흑지수는 김도윤의 귀에 속삭였다.
"장미숙 요원도 너에게 마음을 가지고 있어. 쉽게 포기하지 마."
김도윤은 활짝 웃으며 말했다.
"네!"
흑지수는 김도윤에게 조금 쉬어두라고 말한 뒤 뒤돌았다. 맥스가 할 일이 있다고 내려간지 30분이 지났다. 아직도 오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흑지수는 맥스가 내려간 좁은 통로를 따라 가다가 불이 켜져있는 방을 발견했다. 흑지수는 어떻게 다가가야 놀래키지 않을 수 있을까 고민했지만, 그런 고민은 맥스에게 필요 없었다.
"마침 잘 왔다. 들어와라."
오히려 흑지수가 놀라고 말았다. 그녀는 한숨을 쉬며 방 앞에 섰다. 그리고 그녀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찢겨지고, 찢겨지고, 찢겨지고. 성한 곳을 찾아볼 수 없는 맥스의 몸. 정확하게 말하자면 뒤돌아있던 맥스의 등에서만 수많은 상처를 찾을 수 있었다. 마스크와 검은 망토, 그리고 그의 옷으로 보이는 검은색의 특제요원복이 옆에 지저분하게 놓여있었고, 바지만 입은 채 등을 드러내고 있었다.
"기계의수를 움직이려니 상처가 더 벌어져서 말이야. 네가 이 붕대를 감아줬으면 좋겠다."
맥스의 뒤에는 5개의 하얀 붕대가 있었다. 평범한 붕대로 보였으나, 다가와서 만져보니 그녀가 알던 평범한 붕대가 아닌, 특수한 재질의 붕대였다. 이미 진한 약이 손에 묻어나는 것을 보아 효과는 굉장할 것으로 여겨진다. 흑지수는 한숨을 쉬며 팔을 걷었다.
"...... 언제부터 이런 거야?"
"전쟁의 마지막 전투 때."
"차원 전쟁?"
"그렇다."
"실례가 안 된다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줄 수 있어?"
"너에게 서지수의 기억이 있다면 알 것이다. 차원종이 가지는 본래의 크기를."
"알고 있어."
"난 울프팩 팀이 그것들을 상대하기 전, 그들의 본래의 크기를 잃게 만들었다. 예외도 있었다. 군단장 헤카톤케일. 그는 현명했지. 날 막으러 오지 않고 대신 서유럽을 치러 갔으니. 대신 후에 배신 당해 죽게 되었다고 들었다. 헤카톤케일을 제외한 나머지를 상대하다가 내 몸은 이렇게 됐다. 다리는 그 후에 울프팩 팀을 구하다가 잃게 되었다."
2개의 붕대를 모두 감아도 맥스의 등은 채우지 못했다. 흑지수는 자신의 손에 묻은 피를 무시하며 계속 말했다.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물어봐도 돼?"
"마음대로 해라."
"날 보자마자 무슨 생각을 했어?"
"서지수."
"...... 뭔가 거침 없는 걸."
"그......, 아니, 서지수의 클론을 보면 당연히 서지수를 생각할 수밖에 없다."
"바로 알아챘어?"
"넌 서지수보다 약하다."
"후, 당연하지."
3개 째, 붕대는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울프팩 팀을 다시 만나볼 생각은 없어?"
"없다."
"어째서? 아끼던 팀원들이었다며?"
"제자였지. 모두 내 손으로 기른 클로저들이다."
"더더욱 만나봐야하는 거 아냐?"
"난 그들을 만날 자격이 없다. 스승이 되서, 제자들이 그토록 고통 받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 ."
4개 째, 흑지수는 마지막 붕대를 잡지 않았다. 맥스는 뒤돌아** 않고 말했다.
"빨리 해주길 바란다."
"진짜의 아들을 구하러 갔었지."
"그렇다."
"왜 구한 거야?"
"대답해야하나?"
"응."
"더 이상 서지수가 슬퍼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 오해의 소지가 있는 말인데."
"마음대로 생각해라. 나에겐 모두 소중한 제자였으니."
마지막 붕대가 맥스의 몸에 모두 감겼다. 맥스는 우선 마스크를 착용한 다음 일어섰다. 장신의 맥스가 일어서자 흑지수는 고개를 많이 꺾을 수밖에 없었다.
"흑지수."
"응?"
"넌 네가 뭐라고 생각하지?"
"글쎄. 주변에선 나답게 살라고 하지만 영 체감이 안 돼. 여전히 가짜라고 느껴지는 걸."
갑자기 맥스가 오른손을 뻗었다. 흑지수는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 손을 잡아봐라."
"왜지?"
"난 다른 클로저의 위상력을 판단할 수 있다. 네가 원한다면...... ."
흑지수는 거리낌 없이 맥스의 손을 붙잡았다. 맥스는 마스트 내부에서 희미하게 웃으며 눈을 감았다. 흑지수는 자신의 팔을 감싸고 올라오는 검은 위상력을 느꼈다. 시베리아에서 겪은 붕괴 직전의 위상력. 맥스는 이러한 위상력을 다룬다. 곧이어 검은 위상력은 점차 파란색, 순수한 위상력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흑지수는 위상력을 자유자재로 변환할 수 있는 그의 실력에 감탄했다.
"확실히, 너의 위상력은 서지수의 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다른 게 있다면...... ."
맥스는 흑지수의 손을 놓아주면서 말을 이었다.
"넌 경험이 부족한 클로저다, 흑지수. 네가 경험을 쌓고, 실력을 기르면, 그게 네 것이 되는 거다. 진짜, 가짜. 필요 없다. 태어난 이상, 넌 너 자신일 뿐이다."
흑지수는 밝게 웃어보였다.
"좋은 말 고마워."
휠 오브 포츈이 밝아지기 시작했다.
그들이 향하는 곳, 그곳에는 이미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수많은 이의 피가 흘러 바다로 흘러가고 있었다. 수십 차례의 공방전이 펼쳐지면서 사람들은 지쳤고, 쓰러졌다. 그러나 차원종의 검은 멈추지 않았다. 맹목적인 침략, 정복. 그들은 무엇을 위해 이토록 끔찍한 살육을 펼치는가. 이곳에 열린 차원 균열은 이미 태백산맥을 뒤덮은 상태였다.
미니휠로 다가온 맥스, 흑지수를 위해 앨리스는 그들이 도착한 장소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한국. 이곳은 강원도입니다. 본래는 호주로 가야하지만, 우리를 도와줄 수 있는 검은양 팀이 위험한 상황이란 연락을 받아 미리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