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w of Striker-이세하 Ep-15 A급 퇴치 작전 (하)
Sehaia 2017-12-25 3
말렉이 구속구를 벗어던진 직후, 우리는 개별적으로 흩어졌다.
한 명이 나타나 놈의 주의를 끌면 다른 사람이 공격해서 주의를 끌고 다시 사라지는, 여태까지 한 전투의 연장. 단 이번에는 한 사람씩만 말렉을 공격했다가 사라지고 바통 터치를 해야 했다.
이미 여태까지의 전투로 다들 알게 모르게 체력을 상당히 소진했다. 평소 같았으면 2시간 전투 한 정도로는 조금 힘들다 수준에서 끝났을 테지만, 상대가 말렉이다. 5시간은 쉬지도 않고 전투를 벌였다 해도 믿을 정도로 모두 녹초가 되어있었다.
제각기 각자 거대한 빌딩을 근처에 두고 몸을 숨기며 최대한 휴식을 취하다가, 버티던 사람이 한계를 외치면 다음 사람이 나타나 주의를 끈다. 그 틈에 버티던 사람은 재빨리 사라지는 작전이었다.
작전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을 끈다는 점에서는 가장 승산이 있는 작전이었다.
힘이 끝까지 버틴다는 전제 하에서는.
우리는 절대 놈의 힘을 간과하지는 않았다. 물론 시간이 지날수록 계속해서 약해진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놈이 구속구를 벗은 직후에 당할 정도로 놈에 대한 분석을 게을리 하지는 않았다. 작전을 게을리 세운 것도 아니었다.
“슬비야!”
다만 문제가 있다고 한다면, 그건 우리의 힘을 정확히 계산하지 않았다는 것.
가면 갈수록 놈은 상대하기 쉬워지기는커녕, 더 어려워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놈이 휘두르는 힘의 크기는 확실히 점점 줄고 있었다. 처음엔 도보를 뒤집어엎고, 빈약하다는 뒷다리로 껑충 뛰어 한순간에 거리를 줄이던 위용은 서서히 빛을 잃고 있었다.
그러나 놈의 시간제한보다 우리의 한계가 더 빨리 찾아왔다.
가장 먼저 위기를 맞은 건 위상력의 절대량이 가장 적은 이슬비였다.
평소의 전투도 적은 양의 위상력을 최대한의 효율로 운용하여 그 틈을 메꾸고 있었다. 전투가 막판으로 치달을 때는 우리 중 가장 능숙하게 위상력을 운용하는 만큼, 막대한 위력의 힘을 한 번에 끌어내기도 하지만, 그건 확실히 전투가 끝난다는 확신이 있다거나, 반드시 필요한 경우. 그 외엔 페이스 조절이 완벽에 가까웠다.
그러나 이번엔 약간씩 조짐이 보였었다. 어쩐지 아슬아슬하다 싶을 때까지 계속해서 말렉을 상대한다 싶더니, 드디어 일이 터진 거였다.
그런 상황에 장기전이 되었다. 방금 전 언뜻 본 타이머는 아직 1시간이 남아있었다. 놈을 확실하게 이기기에는 1시간이 모자랐다. 그걸 버티기에는 놈이 가진 힘이 우리에 비해 너무 강했던 것이었다.
원래 순번대로라면 이슬비와 바통터치를 하는 쪽은 나였다. 그러나 내가 뛰어 나가기 전, 서유리가 말렉이 뒤집어엎은 도로 파편에 튕겨 날아간 이슬비를 구하러 나섰다.
가까스로 이슬비를 구해낸 서유리도 그다지 상황이 녹록해 보이진 않았다. 이슬비를 지고 가는 걸음걸이에선 평소의 날렵함을 찾아볼 수 없었다. 위상력에 각성한 지 얼마 안 된 서유리도 이슬비 못지않게 위상력의 손실이 심했던 것이다. 몇 주 전의 나와 같이, 미숙한 컨트롤 때문에 이미 위상력은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거의 탈진한 상태에서 이슬비까지 지고 걸어가는 서유리의 위로 거구의 그림자가 올라섰다.
급한 김에 뛰쳐나왔지만, 도대체 무얼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내가 지금 뛰어간다고 해도 말렉의 앞을 막아설 여유도 없다. 막아선다고 해도 사이좋게 발톱에 꿰뚫리는 게 고작이다.
지킬 수 없다. 이 상황에서 밀어내 봐야 말렉의 발이 쟤들을 덮치는 게 빨라질 뿐이다.
그런 말은 필요 없다. 열 마디의 변명보다 했다는 한 마디의 결과가 절실하게 필요했다. 그리고 결과를 끌어내는 방법은 내 안에 있을 터였다.
밀어내는 것 밖에 못한다면, 저 애들에게서 말렉을 밀어내주지.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머리보다 몸이 먼저 이해했다. 양손으로 역수로 쥐어든 건블레이드에 힘을 집중했다.
몸이 기계적으로 위상력의 출력량, 방출 형태를 조절하고 있었다.
그 지긋지긋한 분홍 머리한테 위상력 컨트롤 따위, 지겹도록 배우지 않았나.
수직으로 땅을 향해 꽂아 넣은 건블레이드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폭발에 흩날려 날아간 위상력이 몸에 플러그를 꽂아놓은 것처럼 직접 연결되어있는 감각으로 이어져 있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이 모든 푸른빛은 나의 손이다. 흩날리는 위상력은 나의 눈이다.
거대한 폭발이 일어난 내 주변으로 공기가 휘몰아쳤다. 퍼져나가지 않도록 바닥을 향해 내리친 위상력은 거대한 반구를 그리며 주변으로 퍼져나가며, 말렉에게 닿은 순간 팽창을 멈췄다. 그리고 거센 바람과 함께 내 주변으로 돌아왔다.
몰아치는 돌풍은 말렉의 몸을 감쌌고, 한 순간 느려진 놈의 발톱은 아슬아슬하게 서유리한테서 비켜나갔다.
이만큼의 폭발을 일으켰는데도, 겨우 놈의 발목을 잡아 끌을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놈은 이쪽을 돌아봤고, 놈의 발끝은 그 누구에게도 닿지 않았다. 다시금 공격을 방해받은 놈은 거슬리기 짝이 없다는 듯 나를 향해 눈을 부라렸다.
“어딜 도망가, 넌 이쪽을 봐야지?”
건블레이드를 짚고서 겨우 서 있을 정도의 힘밖에 남지도 않았는데 나도 참. 어디서 허세를 부릴 힘이 나오는 건지 모르겠다.
말렉의 뒤로 멀어지는 서유리의 모습이 비쳤다. 해가 저물어가는 방향으로 걸어가는 그 모습이 해 때문에 눈부셔서, 대신에 푸르고 어두운 현실로 다시 눈을 돌렸다.
내 한 몸을 바쳐서 남을 구해냈다고 하면 듣기는 멋진데, 직접 하는 사람의 입장으로 보면 정말 잔생각이 많이 들 수밖에 없다.
아무런 문제도 해결되지 않았다. 지금 내가 이 녀석을 상대하기는 무리일 테니, 어서 아저씨나 미스틸과 바통터치를 해서 시간을 더 끌어봐야 한다. 그렇게 판단한 이상, 주저 없이 걸음을 옮겼다. 어서 빨리 도망을 가야 한다.
바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이렇게 절절히 와 닿는 순간도 없었다.
툭.
어라, 왠 돌부리가. 너 눈치가 정말 없는 친구구나?
멍하니 넘어진 몸을 뒤집어 봤을 때는 말렉의 앞발이 나를 향해 내려오고 있었다. 이건 못 피할 것 같다.
두 번째로 마주한 놈의 앞발이 새삼스러웠다. 데자뷰 같은 시답잖은 게 아니라, 이미 실제로 겪어 본 일이었다. 저번에 처음 만났을 때와 하나도 변하지 않았구나. 이 위압감도, 내 자신도 전혀 변한 게 없었다.
이제는 딱히 두려운 것도 아니었다. 단지 정말 싱겁고 무미건조할 정도로 원래대로 돌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조금은 다른가. 지난번에는 내 자신의 부주의로 인해, 이번에는, 뭐야, 똑같네. 어떻게 지켜낸 사람이 한 둘 추가 되었다는 것 외엔 질릴 정도로 똑같다.
이 묵직한 발에서 도망가는 건 내가 맡은 역할 상 불가능한 거 아니었을까. 애초에 이렇게 될 것이었던 건데, 잠시 그 기간이 늘려졌던 거다.
그렇다면, 차라리 이번에는 확실하게 끝내보도록. 이 이상 똑같은 일을 나에게 반복시킬 생각은 아니겠지? 자고로, 노가다 리플레이는 게임에서 가장 재미없는 파트다.
놈을 향해 있는 힘껏 비웃으며, 조용히 눈을 감으며 푸른 맹수의 손톱에 몸을 맡기려고 몸의 힘을 뺐다.
그랬을 터다.
“그워어어어어......”
“이 애들한테 손대지 마.”
아저씨는 하얀 머리를 노을과 피로 붉게 적시면서, 말렉의 머리 위에 서 있었다. 아저씨의 손엔 약병이 두 개 들려있었다. 아저씨는 병뚜껑을 까는 시간도 아깝다는 듯, 손가락으로 병뚜껑을 튕겨서 날려버렸다.
“상황이 상황이니까, 특별이다.”
두 병을 한 번에 들이킨 아저씨의 몸에서 노란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푸르지 않아서 순간 위상력인지 아닌지 못 알아볼 뻔했다. 잘 보니 몸에서 흘러나오는 위상력이 공기와 닿자마자 노랗게 변해서 흩날리는 거였다.
이걸 내가 눈치 채는 게 왜 늦었는가하면, 말렉과 비교하면 먼지 같은 아저씨의 몸에서 말렉 못지않은 위압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저씨의 몸에서 나온 위상력은 나온 그 순간 충격파가 되어 말렉의 머리를 밑으로 날렸다. 머리에 갑작스레 가해진 충격파에 대응하지 못한 말렉은 그대로 나자빠졌다.
“이봐 동생, 미스틸, 멀뚱거리지 말고 너희도 도와라. 일어설 수 있지?”
아저씨는 내 옆에 선 미스틸에게 손목에 찬 시계를 던져주며 말했다. 타이머에 남아있던 시간은 아직 30분이 남아있었다.
“다 죽어가는 눈은 그쯤 해둬. 다 이긴 싸움에서 꼬리 말고 도망가지 마. 벌써 다 쓰러져가는 적을 상대로 포기하지 마. 내가 지난번에도 동생한텐 따로 말했을 텐데. 전장에선 사는 게 우선이라고. 어, 어? 이런.”
그 때 했던 말은 죽지 말라면서 위상력 컨트롤 하라고 한 게 다였잖아요.
듣기 싫다는 듯이 몸을 뒤흔드는 말렉에게 공감이 됐다. 너도 저런 설교 따위 듣기 싫은가보네. 몸에 붙어있는 벼룩을 어떻게든 떼어내려는 말렉의 몸부림에 아저씨는 별 저항 않고 놈의 머리 위에서 내려와 땅에 착지했다.
“놈이 B등급이 될 때까지 앞으로 30분. 그럼 놈은 지금 얼추 B에서 B+사이라는 거잖아. 놈의 힘을 똑바로 직시해. 겉모습에 현혹되지 마. 그렇게 상대 못할 놈이 아니야. 이슬비도, 서유리도 살아있어. 아무도 죽지 않았어. 근데, 너가 그렇게 맥없이 죽어버리면, 걔네들이 얼씨구나 할 것 같아? 정신 똑바로 차려.”
아, 거 참 시끄러운 아저씨네.
“저 놈 땜에 안 그래도 귀 아픈데, 목소리 높이지 마요......성가시게. 미스틸?”
“예, 형?”
“그 이상한 창, 앞으로 몇 번 더 쓸 수 있어?”
“어, 위상력 강화 창이라면, 앞으로 두 번 정도밖에는 더 못 써요.”
두 번이라.
너무 많은데.
“난 한 번이면 돼. 내가 몸을 숙이고 ‘지금’ 이라고 하면 놈의 가슴께로 던져. 알겠지?”
“그럼 나도 한 번 부탁하마. 내가 공중에서 ‘어서’ 라고 하면 그걸 놈의 등짝을 향해 던져. 알겠니?”
“문제없어요. 근데 그럼 전 이번에는 지원만 하게 되네요.”
“그게 좋은 거야. 그런 줄 알고 있어. 그럼 맡겼다.”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내가 먼저 나가야 할 것을 알고 있었다.
놈이 나를 향해 튀어오는 것과 함께, 나도 동시에 놈을 향해 몸을 던졌다. 다시 보는 놈의 움직임은 여전히 답답할 정도로 느려서, 놈의 앞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간단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못할 것도 없었다.
팔과 다리, 건블레이드를 제외하고 몸에 둘러져 있는 위상력을 최소화한다. 공격을 받는다면 전치 몇 주로 끝날지 알 수 없지만, 맞지만 않는다면 다치지 않는다.
어차피 방금 전에 경매에 올린 목숨이라면, 조금 비싼 가격에 걸어 보기로 했다.
“지금!”
내 머리 위를 아슬아슬하게 지나간 창이 놈의 가슴께에 깊숙이 박혔다. 난데없이 왼쪽에서 날아온 공격에 놈이 정신을 빼앗기기도 전에, 놈이 휑하게 내놓은 몸뚱이를 베어냈다.
**가던 위상력에 다시 불이 붙기 시작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놈을 향해 휘두를수록 더욱 크게 타오르는 불꽃을 계속해서 키우기 시작했다.
더 크게. 더 빠르게. 모자라다고 생각하다고 생각하면 할수록, 더욱 놈을 압도할 힘을 추구하면 할수록 불꽃은 더욱 거세게 타올랐다. 저 창이 물건은 물건이다.
놈의 발을, 가슴을, 다리를 차례로 베어나가며 무너지기를 고대했다.
“이게 내 불꽃이다.”
남을 태우는 것밖에 할 줄 아는 게 없는 더러운 불꽃이다.
벌써 십 년 동안 끊임없이 나에게서 떨어져 주기를 간절히 바라온 추악한 불꽃이다.
A급 차원종 쯤 되면, 그걸 나에게서 빼앗아 갈 만큼 강할까?
아무래도 그 상대가 넌 아닌 모양인가 봐.
아저씨가 말한 대로 내 눈에 비친 건 아무래도 허깨비였던가 보다. 어지간한 집채만 하다고 생각했던 건 어느 새에 내 키의 2~3배 정도의 높이밖에 안 되는 크기의, 대략 대형 코끼리 정도의 덩치로 보였다.
뭔 차이인가 하니, 그냥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거다. A급이라는 껍데기를 벗기고 남은 건 우리 차원에 구속구 없이 거의 4시간 동안 내팽개쳐진, 발톱 부러진 맹수였다.
물론, 그렇다고 지금의 내가 맞아준다면 뼈도 추스르지 못할 정도라는 건 자명한 사실.
그러니까 우리는 팀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어서!”
어느 새에 놈의 뒤쪽에서 자리를 잡고 있던 미스틸이 다시 한 번 창을 던졌다. 창은 일직선으로 날아가, 방금 던진 창에 의해 구멍이 뚫려있던 자리를 정확히 다시 꿰뚫었다. 흡혈귀의 가슴에 말뚝을 박아 꿰뚫듯이, 두 자루의 창이 하나가 되어 말렉의 가슴에 구멍을 냈다.
날아온 창을 뒤쫓듯 아저씨가 공중에 있었다.
“근 십 몇 년 만인가. 지금의 네겐 내가 우스울 테지.”
있는 힘껏 뒤로 뺀 주먹이 미스틸이 꽂아놓은 창을 향하며, 공기를 갈랐다
“그럼, 한 번 버텨보라고!”
아저씨의 주먹이 창을 그대로 밀어내며 말렉의 몸에 새로이 생긴 구멍을 넓혔다. 갓 구속구를 부쉈을 때의 말렉이 만든 충격파에게도 밀리지 않는 진동이 땅을 뒤흔들었다.
폭발하듯 놈의 등에 꽂힌 주먹은 잠깐의 찰나 동안 멈췄다고 생각했다. 아저씨와 말렉 둘 다 잠시 동안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래서 말렉의 피가, 피부가 놈의 등에서 분출하듯 쏟아졌을 때 나는 경악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비가 되어 쏟아지는 차원종의 피로 범벅이 되어가며, 말렉은 그 자리에 쓰러졌다. 그 위에 무릎을 꿇은 채로 쉴 새 없이 피를 토하는 아저씨가 홀로 있었다.
아저씨는 이젠 희미해져 보이지도 않는 노란빛을 오른손에 조금 응축한 채로 비척거리며 일어섰다.
아직 자신이 할 일이 남았다는 듯이 머리를 쥐싸고, 피를 토해내며 다시 걸어갔다. 지난번 말렉과 전투할 때 남은 상처를 감싼 붕대가 문득 눈에 띄었다.
우리는 이런 사람을 영웅이라고 부르는 건지도 모르겠다.
“이걸로 마무리다, 지겨운 놈.”
그러기엔 자기 몸부터 챙기셔야지. 남한테 설교할 힘이 남아있는 꼰대들은 그 힘으로 자기 건강관리에 힘을 쓰는 게 좋을 거라고 진언하는 바입니다.
“아저씨, 그 이상 힘쓰지 마요.”
“뭐?”
힘겹게 몸을 일으킨 아저씨에게 말을 하는 대신 건블레이드에 위상력을 둘렀다. 이제 더 이상 이슬비의 도움이 없어도 된다. 수련하라고 했던 건 어느 정도 선에서 완성했다. 아직 응축하는데 시간이 좀 걸리긴 하지만, 상대방이 이렇게 널브러져 있는데, 뭘, 시간은 충분하다.
나선형을 그리며 건블레이드를 휘감던 위상력은 덩굴과도, 창살과도 같은 형태를 거쳐서, 긴 검으로 그 형태를 바꿨다.
이 검을 만들기 위해, 나답지도 않게 참 오래 연습했다.
그걸 본 아저씨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놈의 목 위에서 비켜 내려왔다. 내려왔다라고 하기 보다는 구르듯이 떨어지는 것 같았던 걸 보니, 역시 한계였던 듯하다. 하긴, 평소에 위상력이 거의 없다시피 하신 분이 그만큼을 쥐어짜냈는데, 한계가 아닌 게 이상하다.
이러는 나도 별로 힘이 남아돌지는 않지만, 하다못해 이 아저씨보다는 낫다. 이 짜증나는 힘은 상대방의 방어를 무시하니까, 마지막 일격을 넣기에는 차라리 내가 낫다.
엎어져 있는 놈의 목덜미에, 있는 힘껏 건블레이드를 박아 넣었다.
놈의 등줄기를 따라 천천히 건블레이드로 놈의 등을 가르며 걸어갔다. 다 **가는 목소리로 나지막이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귀를 간질인다. 건블레이드에서 나온 열기가 말렉의 피를 태우며 나온 매캐한 연기가 하늘을 향해 떠올랐다.
먼저 쳐들어온 건 너희들이니까, 죽는다고 해서 날 원망하지 마. 얌전히 이차원에 박혀있었으면 됐잖아.
나조차도 내가 무슨 말을 중얼거린 건지 이해하지는 못했다. 쓸데없이 풀어놓은 말은 그 누구의 귀에 들어가지도 않고 건블레이드의 열기에 녹아내렸다.
끝났다.
더 이상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말렉의 몸을 태워 갈라놓은 걸 확인하고 땅에 내려왔다. 땅에 다리가 닿았다고 생각한 그 때 다리가 꼿꼿하게 서 있기를 거부했다. 손으로 무너지는 몸을 받칠 힘도 없었기에 포기하고 쓰러지기로 했다.
“세하야! 아저씨! 괜찮아요?”
서유리다. 이슬비를 안전한 곳으로 옮기고 온 것 같은데, 이미 한 발 늦었다. 말렉은 쓰러졌다. 더 이상 할 일은 남아있지 않다. 나와 아저씨도 널브러진 건 덤. 미스틸이 그나마 멀쩡한 편인 것 같지만, 쟤도 많이 지쳤을 것이다.
“야, 서유리. 부탁 하나 하자.”
“어? 뭔데?”
“미안한데, 나 좀 실어다줄래?”
손끝 하나도 움직이지 않았다. 아저씨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도핑은 몸을 갉아먹는 일이다. 그런데 약을 두 병을 단숨에 비웠다. 그리고선 약해졌다곤 하나 A급 차원종을 압도하는 힘을 잠시 발휘했다. 그 대가는 싸지 않았을 것이다. 안 그래도 다 죽어가는 몸을 혹사시켰다. 먼지가 잔뜩 쌓인 마른 **를 쥐어짜서 물을 기껏 짜내는 일은 나로선 상상도 못할 고통을 수반하겠지.
드러누운 채로 올려다 본 하늘은 붉은 건지 노란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아저씨의 노란 선글라스 속에는 어떤 색으로 비쳤을지, 조금 궁금해졌다.
아무래도 상관없겠지만.
유리에 뒤이어 나타난 특경대가 들고 온 들것에 실려 가면서 조용히 눈을 감았다.
Ep-15 A급 퇴치 작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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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 A급 퇴치 작전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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