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세하. 진짜 이세하.
Be폭력0간개토대왕 2015-02-07 4
일어서기 위해, 남아있는 모든 힘을 긁어모아본다. 그러나 몸이 내 뜻에 따라주지 않는다. 이젠 무리라는 듯이 보내오는 지긋지긋한 통증이 야속하게만 느껴진다.
간신히 눈을 뜨자,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한없이 차가워 보이는 콘크리트 천장. 윙윙거리는 머리가 하얀 천장과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 더욱 더 크게 울리는 것만 같다.
과격하게 '집어드는' 힘이 쓰러져있는 나의 멱살을 잡고, 그 힘에 이끌려 강제로 일으켜 세워진다.
발이 지면에 닿는 느낌이 없어지고, 호흡이 버거워진다.
하얀 천장에 아까보다 더 가까워진 느낌이 든다.
그 힘에 저항해보고자 팔을 들어보려고 했으나, 팔은 연신 부들거리기만 할 뿐,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하늘을 바라보는 머리 또한 가눌 수 없었지만, 겨우겨우 눈을 아래로 향해 자신을 치켜들고 있는 자의 모습은 확인할 수 있었다.
군데군데 푸른 빛이 들어간 검은색의 자켓, 그 안쪽에 보이는 흰색 와이셔츠와 푸른색의 넥타이. 깔끔해보이는 정장.
한쪽 팔로는 나를 잡고, 다른 한 쪽 팔은 푸른빛으로 불타는 건 블레이드를 아래로 늘어뜨린 여유로운 자태. 그 자태에서 느껴지는 압도적인 힘의 차이.
핏자국과 상처가 한가득인 나를 바라보는 그 녀석의 얼굴에는 여유와 조롱이 가득 담긴 웃음이 녹아 있었다.
이 녀석은 <차원종이 된, 내 자신.>
이 공간엔 내가 둘.
하나는 가히 유린당하다시피 한, 클로저로써의 나 자신이고, 또 하나는 한쪽을 반죽음 상태까지 몰아넣은, 차원종으로써의 나.
녀석이 내 눈 앞에 나타났을 때까지만 해도, 녀석은 그저 나와 동급이거나 조금 아래라 생각했다. 이 기분나쁜 녀석을 얼른 해치우고, 고장난 '큐브' 를 나가서 게임이라도 해야지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실제로 그 첫 전투에서 이길 수 있었고, 큐브의 시스템은 일제히 점검에 들어갔다.
그러나 승급 심사의 마지막 과제로 하달된 내용은, 짧은 시간 내로 수리할 수 없어진 큐브를 위해서 내부에 출현한 차원종들을 제거하라는 것이었다.
큐브에 진입하자 내 눈 앞에 나타난 것은, 정식요원복을 입은 내 자신, 즉 이 녀석이다.
그리고 교전이 시작된 지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나는 이 녀석에게 마음껏 유린당하고서는 보이는 이대로 붙잡혀 있는 신세.
「어때? 이세하. 힘의 차이를 이제 실감하겠어?」
소름 끼치는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온다.
나를 마치 가지고 놀다시피한 힘의 주인공이라 생각하니 오한이 들었다.
「클로저인 네녀석과 차원종이 되어버린 나의 차이야.
넌 그저 끊임없이 서로 으르렁거리기만 하는 어른들을 위해 싸웠고, 그 대가로 지금같이 '고장난 큐브를 진압하라' 라는, 정예 클로저 요원들이나 맡을법한 임무를 받고 이 꼴이 났지.
그런데 난 말이야, 그런 어른들이 너무 꼴사납고 짜증나고 미웠어. 그래, 그 때 네가 느꼈던 그 살의도 느꼈지. 그래서 애쉬와 더스트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새 삶을 살기로 했어. 그 빌어먹을 어른들을 전부 죽여버리기 위해서 말이야.
그랬더니 어떻게 됐는지 알아? 지금 이 모습처럼, 나는 그때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강한 힘을 얻게 된 거야!
또 다른 나 자신의 가능성조차도 없애버릴 수 있을 만큼!
그래, 마치 게임 속에서 숱하게 봐 왔던 주인공들처럼!」
문득 유정 누나가 이 고장난 큐브에 대해 해 주었던 말이 떠올랐다.
'차원종 전향 설득을 수용한 나 자신의 가능성마저도 구현시켰고, 그 결과 너와 똑같이 생긴 차원종이 나타난 것'.
그렇다면, 그 때 애쉬와 더스트의 요구를 수용하고 차원종이 되었다면 나도 저런 힘을 가질 수 있었다는 것일까.
"-!"
복부에 경악할 정도의 욱씬거림이 전해지고, 입에선 검붉은 피가 쏟아졌다.
그와 동시에 녀석이 순식간에 멀어지며 고개가 앞으로 젖혀지고, 마치 몸이 공중에 멈춘듯 하더니, 시야가 천장으로 바뀌고는, 그대로 천장과 멀어졌다.
외마디 비명조차 내지르지 못하게 하는 충격이 온몸에 전해지고, 그대로 뒤로 밀려나버린 덕분에 등이 고통스러운 마찰열에 시달리더니 몸이 멈추고서야 잦아들었다.
이젠 고개를 드는 것조차도 힘겹게 느껴졌다. 몸 이곳저곳에서 아까보다 훨씬 심한 고통을 전해왔고, 뼈마저도 비명을 지르는 것만 같았다.
오른쪽 귀를 심하게 다쳤는지 '삐' 하는 소리만 들려오고, 나 이외의 소리는 그저 아득하게만 들려왔다.
왼쪽 귀에 그 녀석의 발자국 소리가 잡음과 섞여 들려왔고,
붉게 변해버린 내 시야에 곧 그 녀석의 얼굴이 들어왔다.
여전히 기분 나쁜 웃음을 짓고 있는 녀석이 한 손으로 내 얼굴에 건 블레이드를 조준했다. 격발하기만 한다면 두 번 다시 일어나지 못하리라는 감이 느껴져 허무해졌다.
내가 지금까지 했던 것은 다 어디 가고, 여기 쓰러져 있는걸까.
「솔직히, 이젠 어떻게든 되어 버렸으면 좋겠지?」
아아, 솔직하게 말해서.
「게임을 방해했던 어른들도, 짜증나지?」
짜증나, 어른들은 하는 게 뭐야 대체.
「정신차려, 이세하. 지금 넌 그저 영웅놀이에 심취한 장기말일 뿐이라고. 네녀석이 아무리 싸워봐야 어른들은 바뀌지도 않고, 파벌싸움도 끝나지 않아.
그리고 '클로저의 관리' 란 명목으로 너의 위상력 추가 개방을 가로막고 방해하겠지.」
녀석이 건 블레이드를 치우더니 내 얼굴을 바라보며 쭈그리고 앉았다.
녀석의 목소리는 내 귀에 너무나도 부드럽게 다가왔다.
심지어, 날 위로하던 유정 누나의 목소리보다 더.
「잘 생각해 봐, 이세하.
네가 학교에 다니는 동안, 친구 녀석들은 너보고 뭐라고 했어?」
.............
'야 야, 저 녀석이야.'
'아, 그 위상력인가 뭔가 쓴다던, 괴물?'
'솔직히 차원종도 싫고, 쟤들도 싫어.'
'둘 다 괴물이잖아? 괴물끼리 싸우는 것 아니야?'
'괴물!'
'괴물이야! 인간도 아닌 **!'
...............
아아, 그래.
분명 그랬지. 손가락질받고, 욕을 먹었지.
난 아무것도 한 게 없었는데 말이야.
「네가 계속 싸우는 동안,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준 사람은 있었어?」
................
'유니온도 망했군. 이런 어린 애를 파견하다니...'
'왜 너야? 넌 아직 학생이잖아.'
'파벌이 둘로 나뉘었어. 지원병력을 바라는 건 힘들어.'
'대체 어른들은 뭘 하는 건데요!'
................
나는 분명 목숨걸고 싸웠어. 아직 고등학생인데 말이야.
그런데 더러운 어른들은 날 도와준 적이 없잖아.
난 그런 어른들을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는데 말이야.
아하하하, 이거 완전 코미디잖아.
「그리고 너의 그 노력을, 순수하게 바라본 사람들은 있었어?」
................
'그런 행동은 안 돼. 언론들에 밉보인다구.'
'너희 클로저들, 돈 때문에 우릴 구하는거지? **!'
'수습요원을 이런 일에 넣은 것을 알면 시끄러워지니까.'
'어차피 너희들이 그러는 건 전부 가식이잖아?'
...............
그래그래, 그랬어.
도와주지 않을 바에는 적어도 진심으로 고맙다고라도 할 줄 알았어. 그럴 줄 알았는데, 그들은 그러지 않았어.
심지어 우리가 구해준 사람들은 우리를 모욕했고, 유니온의 어른들은 그런 우리를 장기말 그 이상으로도 이하로도 ** 않았지.
「애초에 넌, 대체 무엇을 위해서 클로저가 됐지?」
...............
'네가 알파 퀸의 아들이구나!'
'너도 훌륭한 클로저가 되어야지?'
'너라면 또 다른 전설의 클로저가 되겠어!'
'우린 기대하고 있으니까!'
................
아하하하, 난 그저 어른들의 기대감을 충족시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클로저가 되었을 뿐이잖아.
근데 난 결국 더러운 어른들에게 농락당한 것 뿐이었어? 어이가 없어서 말도 안 나오는군.
「이세하. 너의 본심은 아직도, 더러운 어른들을 죽여버리겠다고 말하고 있어. 그래도 넌 그 더러운 어른들을 지키고, 그 증오스러운 작자들이 붙여준 '클로저' 란 이름을 계속 달고 있을거야?
바보같아. 더럽다를 넘어 역겹다고 느껴지는 그 어른들을 지키고, 그 어른들을 위해서 상처를 입어가고 있는데, 정작 그 어른들은 너를 장기말로 쓰고 있을 뿐이라니.」
솔직히, 이젠 어떻게 되든 상관 없어졌다.
나는 그들을 지켜주고 있는데, 그들은 날 써먹을 뿐이야.
어른들을 지켜주는 것도 이젠 지쳤고, 어른들의 파벌싸움도 더는 신경쓰고 싶지 않아.
무의미한 상처도 더 이상 받고 싶지 않아.
생각해보면, 승급조차도 체면을 위해서였잖아.
아아, 이젠 다 싫어.
내가 왜 이렇게 힘들어야 해?
힘들고 싶지 않아. 다치고 싶지 않아.
싫어. 싫어. 싫어. 싫어.
더 이상, 힘들어하고 상처받긴 싫어.
그저 이용만 당하고 사라지는 장기말이 되는 건, 사양이야.
그렇다면, 내가 선택해야 할 선택지는,
「...너도, 역시 그런 결론에 도달한 거지?」
「클로저 이세하는 진짜 이세하가 아니야. 그저 어른들에게 이용당하고 희생을 강요당하는 호구같은 장기말일 뿐이지.
지금 눈을 들어서 주변을 보라고. 진짜 이세하의 진짜 적이 누구인지.」
「네가 그동안 억눌러왔던 억울함, 슬픔, 분노, 증오.
그걸 네가 그토록 증오했던 더러운 어른들에게 보여주라고.
이세하라는 존재가 지니고 있던 진심을.」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 이 녀석처럼 내 속마음을 파고든 존재는 없었다.
끝없는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이를 꽉 물고 노력해도 나는 엄마의 그림자를 벗어나지 못했다.
어른들은 점차 나를 무능한 위상능력자 그 이상으로도 이하로도 ** 않았고, 내가 밤잠을 설쳐가면서까지 클로저 요원이 되자 그제서야 능력이 발현되기 시작했다며 비웃기까지 했다.
애초에 어른들은 나를 이세하라는 인간으로 본 것이 아닌, '알파 퀸의 아들' 로써만 본 것이겠지.
그리고 그들이 본 '알파 퀸의 아들' 의 조건을 충족시키기엔 나는 한없이 부족해 보였을 것이다.
어른들에게 관심받고, 어른들의 기대로 위상력 제어 훈련을 받고, 어른들의 실망을 경험하고, 어른들의 말대로 클로저가 되어, 어른들의 적과 싸우고 있다.
그리고 그 어른들은 다시 나를 욕하고, 자기들끼리 파벌을 나눠 서로를 물어뜯고 있다.
그리고 어른들이 준 임무를 수행하는 내게는 칭찬의 말 한 마디도 없이 방해공작만 하며, 그들 중 일부는 날 숙청하려 들기까지 하고 있다.
애초에 난, 아무것도 안 했는데!
그저 자기들 입맛대로 싸울 존재를 정해주고, 자기들 입맛대로 임무를 맡기고, 자기들 입맛대로 일을 처리하고는 각종 공훈마저 조작.
내가 싸워야 할 적은, 차원종이 아니라 어른들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또 다른 클로저들은 어른들에 의해 날 죽이려고 들 것이다. 자기들이 이용당한다는 사실조차 자각하지 못하고.
<불쌍하게도.>
그리고 그들은 어른들에 의해 아무것도 모른 체 죽어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어른들은 또 다른 장기말을 희생양으로 내세우겠지.
쓰러져 있던 몸을 일으켜 세우고, 어느새 옆에 놓여진 건 블레이드를 다시 붙잡았다. 신기하게도 몸에선 끔찍한 고통 대신 알 수 없는 활기와 생기가 감돌았다.
녀석이 부드럽게 웃는 것이 보였다. 아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부드러운 미소.
「자, 이세하. 지금부터 시작이야.」
「진짜 이세하의 진짜 이야기가.」
[콰아아앙-]
멀리 떨어진 큐브의 벽이 굉음과 함께 사라지고, 검은 연기 뒤로 모습을 드러낸 건 특경대의 대원들.
은이 누나와 유정 누나, 아니, 송은이 경정과 김유정 요원이 대원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선두에 서 있었다.
「대장님-! 요원님-! 위험합니다!」
「시끄러! 쟤는 세하라고! 구해야 할 대상!」
「세하야! 세하야! 어떻게 된 거야! 괜찮아?」
모두, 가식이라고 생각하면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수없이 나를 속여왔던, 지긋지긋한 그 말들.
뒤를 돌아보았다. 녀석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건 블레이드를 잡고서는 열을 가하여, 미리 예열시켜둔다.
그럼 그 녀석 말대로, 진짜 이세하로써 더러운 어른들을 벌해야겠지.
아아, 그 동안의 설움을 여기서 날려보낼 수 있겠어.
건 블레이드로 특경대를 조준하여, 일발 사격을 가한다.
예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출력이 손에 기분 좋은 떨림을 전하고, 발사된 자리에 있던 특경대 대원들이 나가떨어지더니 일어나지 않았다.
시선을 김유정 요원과 송은이 경정에게 돌렸다.
들고 있던 총을 떨어뜨리는 송은이 경정의 옆에는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김유정 요원의 얼굴이 보였다.
김유정 요원에게 천천히 다가가기 시작했다.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김유정 요원의 얼굴에 녹아있는 경악과 공포가 짜릿한 느낌을 전해 주었다.
아아, 공포에 질린 어른들의 표정이란 이리도 나를 기분 좋게 한다는 것일까.
김유정 요원의 코앞에 다가가자, 그녀가 간신히 내뱉은 한 마디를 들을 수 있었다.
「너...넌...넌...」
말도 잇지 못할 정도로 놀란 어른들의 꼴이란!
싱긋 웃으며 건 블레이드를 조준했다.
「나는, 이세하. 진짜 이세하입니다. 김유정 요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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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저퀄리티 소설을 올리네요(...)
하도 큐브가 힘겨워서 '차라리 세하가 차원종이 되어버린다면' 이란 생각을 하다가
결국 이런 전개의 소설까지 끼적이게 되었습니다.
모바일의 한계가 있으니 오후에 컴퓨터로 수정해야겠네요 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