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필연 - 09

비랄 2017-02-18 1




***





불타는 뉴욕. 이런 상황보다 운명이 자주 바뀔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렇기에 나는 이곳을 선택했다. 원래 펼쳐질 이 무대는 내가 펼칠 공연을 만족할 모습으로 만드는데 필요하니까.


내 공연이란 희망과 절망의 교차를 조절해서 저들의 운명을 가지고 노는 것이다. 저들의 기쁨과 슬픔이 전부 나의 손에서 놀아나며, 온갖 비명이 들리리라. 그렇게 그들은 운명에 놀아나리라.


물론 신도, 세계도 이러지는 않으리라. 하지만 나는 둘다 아니다. 그러니 별로 상관 없다. 설령 비난을 들어도.


―최악이다.


나에게 악은 선과 동의어다. 이미 선악에 의미를 가지지 않으니까. 나는 천국의 정신으로 세상에 지옥을 부를 수도 있다.


-최저이다.


내가 썩었다고 비난하나? 긍정한다. 애시당초 정신이 모순되어 있는데 그런 표현도 틀리지 않으리라.


-왜 이런 선택을 하느냐?


나는 모순이다. 그것에 선택이 있는가? 없다. 단지 움직일 뿐이다. 결과만 그에 맞춰서 존재할 뿐이다.


-모순에게 결과란 무엇인가?


의미 없음.


-너에게 결과란 무엇인가?


의미 없음.


-존재에게 결과란 무엇인가?


존재의 증명.


-그렇다면 너는 존재하고 싶은 것인가?


부정. 존재 자체에 의미를 두지 않음.


-그렇다면 왜 존재하는가.


불명. 그렇기에 모순.


-…이해할 수 없다.


…모순은 이해하지 못하리라. 원래 그런 것일지니. 그러니 부질 없는 일은 그만하고 사라지거라. 고약한 자여. 이미 그대는 결과를 가지고 있다. 그러니 그대의 선택을 자신하라. 믿음을 듣고 싶다면 먼저 그대를 믿어라.


-…알았다.


저걸 끝으로 비난은 나오지 않았다. 귀찮은 일이 하나 끝난 참이다.





***










  

램스키퍼의 사람들이 나를 받아들이는 이유는 내가 적대하지 않고, 악인이 아니라는 인식이 심어졌기 때문이다. 초반에 살짝 트러블이 생겼지만 상관 없었다. 대화라는 것은 할 수 있다면 편리하니까.


처음 군수 공장에서 나와 교전을 벌인 사람들은 나에게 반감을 가지지 않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자신들이 먼저 잘못을 저질렀으니 말이다. 물론 그 이유를 모르니 의문이 나오지만 그 의문은 절대 풀지 못하리라.


그 다음은 미지를 경계하는 사람들의 요구를 적절히 순응한다. 대화를 할 수 있는 이성적인 존재에게 매우 무리한 요구를 하는 사람은 여기에 없었다. 반대로 요구에 순응한 나는 대화로 저들에게 호의를 얻을 수 있다.  


비록 오차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를 감안하고 움직이면 되는 일. 항상 준비한 패는 많아야 실수가 없다. 이런 간단한 일이라도 말이다.


이렇게 그들과 같이 무대에 올라섰다. 이제 시작하는 거다. 내 연극이.


아직은 아니겠지만..


"노운. 너는 무엇을 위해서 이곳으로 왔지? 네가 말한 목적을 생각하면 여기에 올 이유는 없을텐데 말이야."


이런 내용으로 앞의 인형이 질문했다. 질문에는 대답을 해야 한다. 이 녀석은 그러지 않으면 귀찮을거다. 영혼을 가진 인형이란 귀찮을 만큼 객관적이니 말이다.


"티나라고 했나? 확실히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것도 역시 선택의 하나다. 여기에 온다는 선택지도 분명히 나올 수 있어. 너는 선택지를 하나만 두고 사나?"


"아니. 그렇지 않다. 작전 수행에는 항상 많은 것을 고려하고 여러 선택지를 마련해야만 하지. 하지만 내가 이걸 묻는 이유는 네가 이런 선택을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가? 제법 많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말이야."

"무슨 이유가 있다는 거지?"


"사람들이 하는 말로 표현하자면. 나는 귀찮은 일은 매우 싫어하는 주의다. 하지만 동시에 정도를 구분하고 행동을 결정하지. 만약 내가 그대로 여길 이탈하면 나는 여행을 위해서 혼자 정보를 모아야만 한다. 물론 이곳의 정보 기술과 내 힘을 이용하면 그리 어렵지는 않겠지. 하지만 단순한 정보와 실제는 다르다. 아무 대책 없이 그런 상황을 맡게 되는 것은 지극히 곤란하지. 그렇기에 너희와 최대한 오랜 접촉을 해며 이 세계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그게 내가 내린 결정이다."


"…확실히 검색 엔진으로 정보를 모아도 실제로는 다른 것이 많지. 제법 합리적인 판단에서 나온 결론이군."


"제법이라고 말해줘서 고맙군. 이건 내 능력에 비해서 바보같은 태도나 다름 없다고 어디서 들었는데 말이야."


"그럴지도 모르겠군. 너의 능력은 내가 아는 누구보다도 뛰어나니 말이야. …교관은 그걸 쓸데없는 걱정이라고 하는 것 같다."


"교관이라.. 네 영혼이랑 같이 있는 영혼인가? 그 영혼을 교관이라고 부르는 것인가?"


"영혼? 무슨 소리지?"


"음? 아아.. 내 경험으론 사후 세계나 영혼은 실존하지. 이런 나에게 있어서 너의 영혼은 미숙함을 다른 영혼과 같이하는 것으로 보인다. 매우 훌륭한 자세로군."


"영혼.. 나한테도 영혼이 있다는 건가?"


"당연한거 아닌가? 너는 삶을 느끼지 않나? 아니면 존재한다고 생각치 않는건가? 설령 언데드라도 영혼은 가진다. 너에게도 없을리가 없지."


"그렇군.. 그런 건가. 그 대답에 감사하지. 나에게 영혼이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했으니."


"…이런 걸로 감사라니. 참 신기한 소리를 다 듣는 곳이군."


"아니. 나에겐 충분히 감사해야할 일이다. …아직 더 이야기하고 싶지만 이제 가야겠군. 슬슬 작전 시간이 되었으니."


"그렇군. 수고해라."


내 이 대답에 성의를 보이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나중에 다시 이야기할 생각인거 같다. 뭐 나쁜 일은 아니지만 귀찮은 것을 싫어하는 나에게 있어서는 그리 좋은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이제 막 영혼을 가진 인형이다. 당연히 자신에게 의문을 가지고 있겠지. 그리고 그건 내가 뭐라고 대답해도 해결될 문제는 아니니 어쩔 수 없겠지. 시간이 약이지 저건."


전에 갔던 기계 제국에는 자신에 대한 의문으로 능력에 비해서 성장하지 않았던 바보가 있었다. 그 세계에 맞지 않게 겁쟁이에 자신을 매우 비하하던 녀석이었다. 이런 경우는 남들이 도움은 줄 수 있어도 최종적으론 자신이 결정하는 일이다. 답이 필요한게 아니라 길을 만들어야하는 문제이니 말이다. 


'녀석은.. 으음... 그건 평범한 답이 아니였어.'


자기를 매우 부정하던 녀석은 급기야 자살까지 했다. 기계가 극도로 발달한 세상인 만큼 딱히 사후세계는 없었으니 원래라면 그냥 소멸이다. 그런데 마지막까지 자신을 비하하던 녀석이 죽고나서 미련을 가지고는 그 세상 최초로 사후세계가 확립되게 만들었다. 


녀석에겐 세상 하나를 만들어내는 집념이 있었다. 하지만 결국은 죽은 녀석이다. 일반적으로 죽은 자가 사후세계에서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게다가 그 세계는 자기 집념에서 비롯된 곳. 녀석은 어쩔 수 없이 그곳의 창조주이자 신으로 군림했다. 정말이지 어처구니 없는 결말이었지만 말이다.


'나중에 만나러 갔더니 순 기계 문명에서 살던 녀석이 마법까지 만들었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게 나아.'


비록 저 티나가 그럴 녀석이 아니라고는 생각하지만 가능성이 아주 조금이라도 있다면 나는 철저하게 귀찮은 일이 안생기는 방향을 택할 뿐이다. 즉,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게 한다는 것이다. 그랬다간 귀찮은 일이 한둘이 아닐테니.


'영혼을 확립한 시간이 짧다는 것은 나중에 여생에 대한 미련이 쌓일 우려가 있어. 아무래도 고려하는 방향으로 가야겠네.'


이렇게 급히 생각난 요소로 계획을 따로 짠다. 그래봐야 임기응변의 요소가 많고, 단지 선택지를 추가하는 것에 지나지 않지만 말이다. 게다가 언제든지 바뀔 수 있는 변덕까지 있으니 선택지가 많다면 극과 극을 전부 준비해야 한다. 이렇게 고민을 추가하는 노운이었다.






***










지금 나는 아주 귀찮은 일에 직면했다. 하지만 지금 이걸 할 수 있는 인간이 나밖에 없다. 이는 내가 자초한 문제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내가 가져온 물자로 인해서 일어난 일이니까. 아이러니도 이런 아이러니가 없다.


램스키퍼도 박살나고, 부상병은 많은데 물자는 극한으로 부족하다. 나는 이걸 고려해서 쓸 수 있는 물자를 얻을 수 있는 만큼 가져왔는데, 내가 가져온 물자 중에는 나에게 귀찮은 일을 시키게한 원인이 있다. 바로 싱싱한 식재료를 말이다.


원래라면 이런 상황에서 보관하기 어려운 싱싱한 식재따위는 수집할 것이 아니다. 약품이나 보관이 용이한 제품을 가져오는게 보통이니까. 하지만 나는 공간 능력으로 보관이 지극히 용이하다. 이 능력으로 인해서 이곳의 물자의 대부분을 내 공간 능력으로 저장 중이니 말이다.


내 보관 능력에서 저들이 보기에 가장 돋보이는 점은 위생과 영구적인 보존이다. 이런 곳에서 저 둘을 고려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니까. 원리는 그들에게 설명하지 않았지만 시간 기술을 이용하는 보존 능력이 내 보관 능력의 실체다. 하지만 지금 저들에게 그런 것은 흥미를 유발하지 않는다. 지금 내 보관 공간에 싱싱한 식재료가 있고, 나는 그걸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것이 그들의 보는 전부이다.


그리고 그들이 나를 이렇게 보는 인식은 나의 실수다. 그것도 아주 웃음 나오는 실수.


애시당초 램스키퍼에는 제대로된 요리사가 없었다. 고생에 비해서 맛있는 요리를 만들 요리사가 없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그들이 먹는 음식의 반은 인스턴트였다. 비록 식재는 있었지만 비상 상황의 연속이 계속되고, 그나마도 만들어진 음식들은 힘든 상황에 비해서 매우 만족스럽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딱히 식음이 필요하지 않다. 하지만 동시에 식음은 나에게 있어서 얼마 없는 낙이기에 그 맛없는 음식을 먹자마자 램스키퍼의 주방으로 쳐들어가서 염력같은 능력을 총동원해서 맛있는 음식을 만들었다. 홧김이라지만 잊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먹을 것도 만들었고 말이다. 그 일은 비록 한번이었지만 그로 인해서 지금 나는 꼼짝없이 요리할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요컨데 내게 취사 담당을 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온 것이 시작이다. 조금 더 설명하자면 한 사람의 말이 시작이었다.


"노운 씨. 식재를 가지고 있다고 했죠? 혹시 전처럼 요리 만들 수 없어요?"


"글쎄요.. 물이나 불은 나한테 문제가 안되고, 적당히 도구만 있다면 가능해요. 그런데 경정님. 도구는 없지 않나요?"

"있어요! 램스키퍼의 장비들 중에서 쓸 수 있는 녀석들은 전부 여기로 옮겼거든요."

"호오... 그런데 저는 여기오고 나서는 인스턴트만 먹은 기분인데요? 취사반이 저한테 가져간 물자가 대부분은 인스턴트였어요."


"상황이 상황이니까요. 게다가 취사할 인원이 압도적으로 부족하니 어쩔 수 없는 일이죠. 그런데 지금은 노운 씨가 있잖아요! 우리 물자 대부분을 보관하고 있고, 싱싱한 식재들도 잔뜩 가지고 계신 노운 씨가요! 전에 생전 처음보는 식재료를 잔뜩 꺼내던 것도 봤다고요!"


"다른 세상 식재료인데 그렇게 반응이 좋을 줄은 몰랐죠. 사실 저쪽 세상에서 보충하기 전까지는 아끼고 싶습니다."


"그럼 우리 세상 식재료요! 우리 물자 중에 많이 있을거 아니에요?"


"있기야 있지만 말이에요.. 아무리 저라도 지금 상황에서 언제 그걸 만들 여유가.."


"우리 취사반 애들이 도와줄테니 제발 맛있는 음식좀 만들어 줘요! 공항 떠나고서 노운 씨 음식 말고는 인스턴트 밖에 먹지 못했다고요!"


"그.. 그래도.."


식욕은 무섭다. 인간의 3대 욕구 중에서도 가장 일상적인 식욕에 눈이 먼 송은이 경정을 설득하는 것은 아무래도 불가능했다. 이 사람 정신이 어찌나 강인한지 아니면 무대포인지 모르겠지만 앵간한 정신계 기술은 먹히지도 않았고 말이다. 결국에는 들어주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었고, 나는 만나는 사람마다 환호를 받으며 취사 시설에 들어섰다.





***










"이 고기들을 이 레시피에 적힌 대로 양념하고 오븐에 넣어놔요! 국물도 필요하니까 이 재료들을 손질해주세요! 빨리 빨리!"


여기 환경은 인적인 의미에서 매우 심각하다. 이곳에 요구되는 식사량은 아무리 적게 잡아도 80인분이 조금 넘는다. 그에 비해서 이 취사 시설은 내가 오기 전까지 3명이 있었고, 그나마도 한명이 탈진해서 실려갔다고 한다. 이렇다 보니 도구들이 멀쩡하게 있는 것이 다행일 지경이다.


아무리 인스턴트 제품을 동원해도 80인분은 겨우 3명이 감당할 숫자가 아니다. 아니 한번 정도는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하루 삼시 **를 만든다면 그냥 죽기 직전이나 다름 없을 정도로 힘들다. 이 대책 본부가 형태를 갖춘지 겨우 하루가 지났는데 한명이 실려갔을 정도면 이미 설명할 필요도 없으리라.


게다가 지금 여기는 밤낮 가리지 않는다. 하루 종일 비상 사태이며, 하루 종일 전쟁이다. 물론 램스키퍼에서도 그런 힘든 생활이 극에 달한 사람들이다. 간단히 피폐해지지는 않겠지만 어찌 되었든 저들이 보기에는 근래 똑같은 것만 먹은거다. 내가 램스키퍼에서 요리했을 때도 사람 숫자를 많이 고려한게 아니라서 아주 적은 사람들만 내 요리를 먹었다.


내가 요리한다는 소식이 알려지니 밖에는 요리 내놓으라는 사람들이 득실거린다. 전에 만든 것은 식음을 완전히 락으로 생각하는 내가 만족할 정도로 맛있는 요리다. 평범한 사람에겐 극상의 진미로 보이고, 이런 상황에 처한 인간에겐 신의 선물이나 다름없다.


내 제한된 힘으로 감당할 수 있는 작업량은 아무리 잘해도 60인분이다. 원래라면 남은 2명이 10인분을 맡는다면 아슬아슬하게 요리를 완성시킬 수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10인분이라도 내 요리는 무척이나 까다롭다. 앵간한 작업을 내가 다해도 남는 작업만으로도 저 사람들은 힘들어 죽을거다. 분명히.


하지만 일단 식사를 맡은 자. 소임을 다해서 굴러야 한다. 삼시 **라면 정말 잠자는 시간도 부족하니 더더욱 굴러**다. 게다가 나도 이렇게 구르는데 저들이 구르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러니 굴린다! 나도 저들도 지금은 요리만 생각할 정도로!

"배식까지 20분! 힘내세요!"

참고로 나는 반말과 존대를 구분하지 않는다. 어떠 말이든 힘을 담아서 하기에 말에서 느껴지는 감정으로 상대가 그 진의를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나는 한명의 요리사. 나쁜 감정따위는 없다.







***













노운은 식욕이 아니라 미식을 즐기는 미식가나 다름 없습니다. 일단 3대 욕구가 없거든요. 다른 두 욕구에서도 수면욕은 애시당초 없고, 마지막 하나는 부처되든 광인이 되든 선택사항입니다. 







 


 








































  



 

2024-10-24 23:14:00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