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으로의 초대

엔세이테 2017-01-23 5

 스물이 넘어서고 나서는 그녀가 옆에 없는게 오히려 어색해지는 때가 있었다. 여차저차 모든 게 얼버무려지듯 마무리 지어졌고, 비록 검은양 팀은 해체되었지만, 나와 그녀, 이슬비의 인연은 참으로 질긴 모양이라, 각자가 다른 팀에 배속되는 와중에 우리는 또 다시 같은 팀에 배속되었다. 사실 같은 팀이라 해봤자 정작 현장 요원은 나와 그녀 둘 뿐인 팀이었지만. 물론 차라리 그녀의 잔소리 속을 살아가는 게 나았다. 영웅이니 뭐니로 떠받들여져서 애매한 시선으로 동물원 원숭이가 되느니 그녀와 티격태격하며 같이 임무를 수행하는 것은, 뭐, 그래, 즐겁다고 표현할 수 있었으니까.


 갓 스물이 넘어서 어머니에게 쫓겨나듯 유니온의 클로저 기숙사로 옮겨가고 나서는 정말 그녀와 있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팀도 같은 팀, 기숙사의 식당에서는 언제나 그녀와 함께. 관리 요원에게 꾸중을 들을 때도 함께, 칭찬을 들을 때도 함께, 팀이 치하를 받을 때도 함께. 생사의 경계를 함께 건너온 동료라서 그랬던걸까, 아니면 그 사이에 남녀 사이의 무언가가 있었던 것일까는 나도 알 수 없었지만, 여하튼 요약하자면 이미 내 일상 속에서 그녀가 없는 것은 이제 상상할 수 없다는 것일까.


 그러니까, 지금 상황은 생소하기 그지 없었다.


 떨떠름하게 내 앞에 온 서류를 받아보았다. A급 요원 승급시험, 열심히 준비하던 그녀에게 이끌려 반 강제로 보게된 시험이었지만(물론 나도 최선은 다했다), 결과는 참으로 얄궂게도 그녀는 떨어지고 나만이 이렇게 합격 통보를 받은 상황이었다.


 "축하해, 이세하."
 "어, 응, ……그래."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축하 인사를 건넨 그녀였지만, 그 미소 뒤에 어떤 감정이 있을지 두려웠다. 그녀가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알기에 더더욱. 차라리 나도 떨어졌으면 좋았으련만, 아니면 반대가 되었다면, 그랬다면. 어설픈 재능이 오히려 원망스러웠다. 옆에선 제이 형이니 테인이니, 축하한다고 시끌시끌했지만 나는 곧이 곧대로 그 축하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오늘은 그럼 세하가 쏘는 거야?"
 "아, 미안, 나는 오늘 선약이 있어서."


 눈을 반짝이며 얻어먹을 생각이 만만한 유리의 말에 슬비는 먼저 모임을 거절했다. 유리가 아쉬움을 표현했지만 그녀는 그저 살며시 미소 지으며 미안, 이라는 말을 남길 뿐이었다.


 "모처럼 모이는건데……."
 "미안해, 미룰 수가 없는 약속이라서."
 "어쩔 수 없네. 세하야! 오늘은 한우다 한우!"
 "야, 자, 잠깐!"


 어깨 동무를 한 유리에게 질질 끌려가면서도, 나는 묘하게 쓸쓸해보이는 그녀의 뒷모습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


 A급 요원이 되면서 달라진 것 중에 가장 큰 것이라면 역시 팀이었다. 슬비와 함께 소속되어 있었던 팀을 떠나고 내게 주어진 팀은, 없었다. 그래, 없었다. 유니온에서는 아무래도 적은 A급 요원들만으로 팀을 꾸리는 건 힘든 모양이었고, 그렇다고 타 현장 요원들과 섞어서 편제를 짜자니 발생하는 알력 다툼 때문에 팀이 터졌다는 소문은 나도 심심찮게 들었을 정도이니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어느 정도 짬이 찬 A급 요원들은 현장 요원 없이 부관 하나 내지는 보조 요원 몇을 데리고 팀을 꾸리는 모양이었지만 나에게는 그런 것도 없었다. 처음에는 크게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나도 단독 작전을 선호하는 편이었으니까.


 예전에 비해 위상력 컨트롤이 많이 좋아졌다고 해도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했던가, 전투 스타일이 많은 위상력으로 찍어 누르는 쪽으로 정착되어 버려 타인과 같이 현장 전투를 진행하기에는 아군 오폭 가능성이 커서 조금 무리가 있었다. 그러고보면 슬비와 작전을 하면서는 한 번도 문제가 발생한 적이 없었지.


 아니, 뭐, 그런데 문제는 그곳이 아니었다.


 "으아아……."


 눈 앞의 모니터를 바라보며 머리를 감싸쥐고 신음했다. 9시, 원래라면 진즉 퇴근해야했을 시간이었다. 그런데 왜 내가 지금 이 시간까지 남아있냐, 하면은, 다름 아닌 작전 보고서 때문이었다.


 작전이라고 해봤자 항시 슬비나 유정 누나가 짜준대로 진행했었다. 남이 짜준 작전대로 실행하는 것이 내 일이었고, 그 작전을 짜고 보고서를 작성하는 것은 언제나 그 둘이었다. 검은양 팀에서 다른 팀으로 배속된 후에도 나는 어디까지나 '현장 전투' 요원이었다. 그래, 솔직히 말하자. 저는 보고서의 비읍 자도 모릅니다. 문제는 그거였다. 더군다나 혼자이다보니 누군가에게 물어볼 수도 없었다.


 임무가 내려온다. 작전 지역을 관찰한다. 작전을 짠다. 작전을 검토한다. 그리고 수정한다. 실행한다. 결과를 분석한다. 늘어놓고 보면 별 거 없는 일이지만, 문제는 내가 보고서를 써본 적이 없단 거였다. 검은양 팀 시절에야 진술서라는 이름의 반성문은 몇장 써본 적 있지만, 아무리 나라도 진술서와 보고서가 다르단 것은 안다.


 임무 수행 장면을 떠올려서 그대로 서술 해보려고 해도 문제가 있었다. 아니, 그야, 받아라 펑펑 쾅쾅, 자, 차원종 토벌 끝. 수고하셨습니다, 로 끝나는 데 이걸 뭘 어떻게 하라는 건가. 내 전투를 이끄는 건 이론적인 작전이 아니라 경험에 기반한 감인 걸 어떻게 하라고. 보고서에 감대로 했습니다, 라고 적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아니 뭐, 물론 작전을 짜기는 짰다. 슬비가 짠 것에 비해 조악한 것이라고 해도 나도 생각없이 돌진하는 것만은 아니니까. 다만 그걸 구체적으로 정리해서 보고서를 작성하는 것은 나에게는 너무나도 높은 허들이었다. 새하얀 모니터에서 임무 번호 - 0000 작전 보고서, 라는 간단한 문구 뒤에 커서는 무심히 깜빡이고 있었다.


 한숨을 푹 내쉬고는 자리에 비척비척 일어나 사무실 한 구석으로 향했다. 믹스 커피 두 스틱을 한 컵에 때려박고 대충 뜨거운 물을 넣어 휘휘 저었다. 사람들이 왜 담배를 피는 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다시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키보드를 놀린다. 게임에서 부모님 안부 물었던 실력을 십분 발휘하여 대충 써내려간 글은 슬쩍 보기만 해도 수준 낮았지만 어떻게 하랴, 나에게 이런 일을 시킨 빌어먹을 유니온이 잘못한거다. 사람은 적재적소가 있는 것이고 그 적재적소에 맞게 일을 시키는 것이 사람을 다루는 법이거늘 이 엿같은 유니온은 참으로 비효율적이구나, 라고 남탓을 하며 어떻게든 조잡한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자니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느낌 왔는데, 라며 투덜거리면서 일어나 "누구세요?" 하고 물으며 문을 열었다. A급 요원이면 뭐하랴, 인생 짬이 딸리는데. 하지만 열린 문 너머에 있는 이는 지금와서 참으로 껄끄러운 존재였다.


 "야, 이세하. 너 뭐하고 있었어?"


 익숙한 분홍빛 머리에 파란 눈동자가 반쯤 감겨 나를 노려보았다. 그녀가 화났을 때의 표정이었다. 나도 모르게 윽, 하고 소리를 흘리고, 그녀는 성대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등 뒤로 보이는 모습을 예상이나 했다는 듯이 벌컥 문을 열고 성큼성큼 사무실로 들어갔다.


 그러고보면 요 며칠 새 식당에 가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실 이유야 단순했다. 그녀의 얼굴을 보기 참으로 껄끄러웠던 것이다. 그 날, 선약이 있다며 뒤돌아가는 그녀의 뒷 모습이 아직도 찝찝하게 머릿속 한 구석에 처박혀 있었으니까.


 "저녁도 안 먹었지?"


 그녀는 사무실을 쓱 둘러보더니 나를 노려보았다. 난 아무 말 없이 시선을 돌려 여기저기 흩어진 컵라면이며 삼각김밥이며, 인스턴트 음식 봉지를 보곤 주섬주섬 일어나 쓰레기를 모았다. 그녀는 그런 내 모습을 보며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쓰레기를 정리하는 동안 그녀는 들고 온 비닐 봉투를 내려놓았다. 뭉게뭉게 풍기는 치킨 냄새에 나도 모르게 시선이 향했다. 그녀가 사왔다는 껄끄러움이고 자시고 시선이 가는 것은 치킨이 문제다. 배에서 울리는 꼬르륵 소리에 그녀는 피식 웃고는 맥주 캔을 따 내 자리에 내려놓았다.


 "보고서 쓰고 있는거야?"
 "알면서 묻지 마."
 "보나마나 못써서 쩔쩔 매고 있었겠지, 해서."


 나는 강렬하게 아파오는 마음의 명치에 그저 맥주를 들이킬 뿐이었다. 정곡을 찌른게 퍽이나 웃긴지 그녀는 답지 않게 한쪽 입꼬리를 끌어올려 비웃었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내 혀가 부끄러워졌다. 아니, 혀는 치킨을 맛보고 있었으니까 부끄럽진 않았다.


 "먹고 나서 좀 봐줄게."
 "아니, 괜찮은데……."
 "이대로 놔두면 열 두 시까지 기숙사로 못 들어갈 거잖아. 내 말이 틀려?"
 "어, 아니, 예, 옳습니다."


 아직 어색한 내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는 내 이마를 꾹 밀어냈다. 평소와 다름 없는 모습, 을 연기하는 것 같은 건 내 기분 탓일까. 머릿속 한구석에 처박혀있던 그녀의 뒷모습이 슬며시 떠올랐다. 하지만 그런 모습을 보고 말할 만큼 나는 용기있는 편이 아니었기에, 그저 가만히 받아들일 뿐이었다. 그저 평소와 다르지 않는 그녀가 옆에 있는 것이, 마음은 편하다는 모순 속에 있었지만.


 그녀가 할 수 있는 갖가지 욕을 다 들어먹으면서 보고서를 완성했을 때 시계는 열 한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내 기준에서는 적어도 퇴근 시간 한 시간은 앞당길 수 있었던 셈이었다. 옆에서 한심하다는 눈으로 날 쳐다보고 있는 그녀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삼십 분이면 끝날 걸 이렇게 붙잡고 있니."
 "할 말이 없습니다."
 "한동안 도와줘야겠네."
 "어, 괜찮아?"
 "어차피 너 나가면서 현장 요원 없어서 임무 수행도 제대로 못하고 있어. 다른 현장 요원이 오던가 팀이 해체되던가 둘 중 하나겠지."


 그녀는 덤덤히 별 신경 쓸 것 없다는 투로 말했지만, 나는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 검은양 팀만큼은 아니더라도 둘이서 제법 오래 활동해왔던 팀이었다. 애착이 가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었다. 검은양 팀이 해체될 때만 해도 뒤에서 눈물을 보였던 그녀였다. 같이 시험을 본 나는 승급하고, 정작 본인은 떨어지고, 게다가 팀도 거취가 애매해진 상황. 괜시리 내가 더 씁쓸해졌다.


 "신경 안써도 돼. 그거나, 이거나."


 그런 내 모습을 바라보며 그녀는 살짝 고개를 숙이며 웃었다. 무언가 말을 하고 싶었지만, 목에 턱 걸린 것마냥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 날은 그 이후로, 서로 아무 말도 없이 조용히 기숙사로 향했다.


-


 "뭐, 이 정도면 합격."


 며칠 간 그녀에게서 욕이란 욕, 물론 해봤자 바보니 멍청이니 하는 것 뿐이었지만, 을 들으며 배운 결과, 어떻게든 보고서다운 보고서를 써낼 수 있었다. 그걸 뿌듯하게 보는 내 모습을 보며 그녀가 한심해한 것은 내 자존심을 위해 조용히 처박아두기로 하자.


 "이제 좀 사람답게 쓰기 시작했네."
 "야, 그건 좀 너무하지 않냐?"
 "사실대로 말하는 건데 그게 어때서?"


 그녀가 웃으며 그리 대답했다. 뭐라 반박할 말이 없어서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그러고보니 언제쯤부터였을까. 항상 엄격하고 진지하게 말하던 그녀가 나와 이렇게 티격태격 대화하게 된 것은. 너무 당연한 일상이라 딱히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농담이라도 진지하게 받아들이던 그녀가 나와 이리 가볍게 이야기하게 된 것은.


 "이제 한동안은 못 올거야."


 그녀가 그리 말한 것은 그녀가 내 사무실에 있는 게 오히려 자연스러워질 때 쯤이었다.


 "어? 새 현장 요원 배치됐어?"
 "아니, 잠깐 연수 좀 받으려고 해. 아무래도 지금 팀은 해체될 것 같아서."


 그녀가 기지개를 쭉 펴며 해방됐다는 듯이 말했다. 그간 이야기를 했던 걸 보면, 오히려 어중간해진 팀의 분위기를 견딜 수가 없었던 모양이었다. 그녀의 스트레스의 원인이 사라졌다는 것에 좋아해야할 지, 꽤나 오랜 시간 몸 담았던 팀이 해체될 거라는 것에 아쉬워해야할지 영 감이 잡히질 않았다.


 "나 없어도 밥 잘 챙겨먹을 수 있지?"
 "네가 내 엄마냐."
 "실제로 네 어머니한테 부탁 받았는 걸."
 "엄마도 진짜 쓸데없는 짓을……!"


 머리를 부여잡는 내 모습을 바라보며 그녀가 빙긋 웃었다.


 "됐어, 내가 애도 아니고."
 "출근 늦게 해서 눈치 안봐도 된다고 해서 늦잠 ** 말고. 아침 밥 꼭 챙겨먹고. 보고서 쓴다고 밤 늦게까지 야근하지 말고."
 "아, 네, 네……."
 "사무실에서 게임도 적당히 하고."
 "그건 좀……."
 "좀?"
 "어, 아니, 네, 아무것도 아닙니다."


 한바탕 시작된 잔소리에 두손을 들고 항복하고 나서야 그녀는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몸 조심하고. 나 없다고 작전 이상하게 짜서 다치지 말고. 어디까지 안전하게, 알지?"
 "어련하시겠어요."
 "알지?"
 "알다마다요."


 게임기가 뒤에 떠오르는 걸 보자마자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나 지금이나 게임기가 인질로 잡히면 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달그락, 게임기가 책상 위에 내려놓아질 때까지 집에 혼자 두는 어린애 걱정하 듯 잔소리 몇 마디, 아니 몇 문단을 쏟아낸 그녀는 그제야 만족했다는 듯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난 가볼게."
 "연수 잘 받고 와."


 떠나는 그녀에게 설레설레 손을 흔들고는 책상 위에 푹 엎드렸다. 달칵,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닫기고 발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갑자기 조용해진 사무실이 싸늘하게 느껴졌다. "나갔으니 게임이나 해볼까." 괜시리 혼잣말을 해**만, 요 며칠 새 내 일상에 녹아들어 당연한 듯 사무실에 있었던 그녀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하루 이틀이면 사라지겠지, 한 그 감각은 의외로 제법 사라지지 않았다.


 아침을 대충 챙겨먹고 나와서 사무실에 들어간다. 밀린 서류 업무. 때때로 현장으로 나가 임무를 수행한다. 돌아오면 작전 보고서를 작성한다. 그녀에게 배운대로, 그녀가 이제야 좀 볼만했다고 했던대로 타닥거리며 키보드를 두들기고 있자니, 검은양 시절 그녀가 항상 노트북을 보고 있던 기억이 났다. 이 지겨운 걸 어떻게 항상 그리 하고 있었는지.


 톡, 톡, 톡, 톡. 딱히 하는 일 없는 때에는 항상 붙잡고 있던 게임기 대신 멍하니 창문 밖을 바라보던 때가 잦아졌다. 이 시간이 되면 슬슬 슬비가 올 때인데, 라며 문을 바라보던 것을 그만둔 것은 그녀가 연수 받으러 떠나고 나서 일주일이나 지난 후였다. 대신 내 일상이 된 것은, 저녁 7시 즈음이 되면 그녀의 휴대폰으로 전화하는 것이었다.


 하는 것은 시시한 잡담. 오늘은 뭘 배웠니, 별 다를 건 없다니, 나는 오늘 뭘 했니, 뭘 먹었니 하는 것들. 때로는 잔소리만 잔뜩 들어서 툴툴거릴 때도 있었지만, 언제나 7시 즈음이 되면 나는 여지 없이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별 거 없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푸념을 하기 위해서, 그녀가 뭘하는 지 궁금해서.


 그리고 나서야, 뒤늦게 그녀가 필요하단 걸 느꼈다. 좋아한다고 깨달았다.


 딱히 극적인 감정은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이 말하곤 하는, 애타고 마음에 콱 꽂히는 그런 느낌은 아니었다. 단지 일상, 그래, 그녀와 함께하는 건 일상이었기에.


 나 혼자 A급 요원이 되었을 때 그녀의 등 뒤가 쓸쓸해 보였던 것도 내가 쓸쓸했던 것 뿐이었다. 그녀와 항상 같이 승급했고, 같은 팀에서 임무를 수행했고, 항상 티격태격 했으니까. 같이 있었으니까.


 그 뿐이었지만, 그 뿐이었기에.


 깨닫는 것도 참으로 느렸다, 싶었다. 그것도 궁상맞게 집에서 인스턴트 식품에 맥주나 까고 있을 때였다. 항상 같이 저녁을 먹던 그녀 없이, 굴러다니는 맥주 두 캔에 머리에 살짝 취기가 오를 무렵에나. 내 자신이 꼴 사납기 그지 없을 장면이었다. 그녀가 보면 붙은 정도 다 떨어질거라고 확신할 수 있는 장면이었다. 무어, 가끔 있는 일상이었다만.


 그래서 오늘은 다시 한 번 휴대폰을 집어들었다. 10시, 아직 자고 있지는 않을 때다. 그냥 이렇게, 내 일상 속에서 늘어져있을 때, 그녀가 내 일상 속에 자연히 녹아들었으면 하는 때에 전화를 하는게 맞다고 생각했기에. 내가 그녀를 좋아하는 건 그런 감각이었으니까.


 [네, 이슬비 전화 받았습니다.]
 "뭐야, 딱딱하게. 휴대폰에 내 번호 저장 안해놨어?"
 [어머, 들켰나.]
 "너 진짜……."
 [저장해놨으니까 걱정 마. 습관이야. 그런데 오늘은 무슨 일이야? 두 번씩이나 전화하고.]
 "아니 그냥, 네 목소리 듣고 싶어서."
 [오글거리게 왜 그래? 술 마셨어?]
 "어떻게 알고 그리 말하네?"
 [내가 이세하 너랑 보낸 날이 하루 이틀이야?]
 "……그러네. 하루 이틀이 아니지. 응, 하루 이틀이 아니야."
 [……이세하?]
 "그냥, 이상해서. 요 몇 주간 만날 사무실에 네가 있었잖아. 그냥, 그런데 뭔가 이상하더라고. 아무도 없으니까. 검은양 시절부터 주욱 같이 있다시피 했는데, 갑자기 없어지니까."
 [그러네.]
 "네가 그렇게 밥 잘 챙겨먹어라, 아침에 일찍 일어나라, 야근하지 말아라, 게임 적당히 하라, 그래도 밥도 안챙겨먹고, 늦잠자고, 야근하고, 게임만 하게 되더라. 궁상맞게. 지금도 되게 궁상맞게 혼자서 게임하면서 냉동에 맥주나 마시고 있고."
 [……그래서?]
 "그냥, 난 네가 필요하겠다 싶어서. 너 있을 땐 안 그랬는데, 안 그랬는데, 그런 생각 들더라. 너랑 보내는 일상이 되게 익숙해서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갔는데 지금와서야 그러네."
 [그래.]
 "슬비야."
 [왜, 이세하.]
 "좋아해."
 […….]


 한동안 서로 아무 말도 없었다. 휴대폰 너머에선 조그만 숨소리만이 들려왔다. 한참을 그러다, 집어든 맥주를 한 모금 넘겼다. 꼴깍, 하는 소리가 크게 울려퍼졌다. 수화기 너머로도 들린 모양이었다. 풋, 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세하, 술 작작 먹어.]
 "꼴랑 맥주 두 캔이야."
 [이제 10시 반이야. 내일도 출근해야할 거 아니야. 아침에 또 늦게 일어나게?]
 "그 땐 네가 깨워주겠지."
 [연수 아직 2주 남았어.]
 "그래, 그러네. 많이 남았네, 아직."
 [……좀만 기다려. 나 없다고 만날 늦잠자고 야근하고 게임만 하고 밥도 안 챙겨먹는 이세하 씨.]
 "그래, 기다릴게. 궁상맞게 늦잠자고 야근하고 게임하다가 밥도 굶으면서."
 [하아, 그래. ……너한텐 내가 없으면 안되겠네.]


 뚝. 그녀는 그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대로 전화기를 소파에 던지고 늘어졌다. 스스로 부끄러운 말을 했다는 자각은 있었다. 다만 후회한다고 하면, 그렇진 않았다. 오히려 웃음이 배어나왔다. 낄낄 웃으며 손에 든 맥주캔을 마저 들이켰다. 우그럭, 하고 손으로 대충 구겨서 쓰레기 통으로 던진다. 분리수거를 안하니 뭐니, 잔소리를 또 들어먹겠지만.


 그게 좋은 거니까.


-


 2주가 지나서 엉망이 된 내 사무실을 본 그녀가 처음으로 한 말은 나를 보고 무릎을 꿇으라는 말이었다. 그야말로 그녀의 연수기간 동안 못 들은 잔소리를 하루만에 몰아들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게 기분이 나쁘냐고 하면은 썩 그렇지는 않은 걸 보니 나도 꽤 중증이구나, 싶었다.


 "적어도 사무실은 깔끔하게 해놓아야 오고 싶은 마음이 들거 아냐."

 ……그 말에 빠릿하게 치우기 시작했지만.

 "연수는 잘 받고 왔어?"
 "별 일 없었어. 누구 씨 때문에 저녁마다 과제할 시간이 줄었지만."
 "너도 심심했을 거 아냐."


 그녀는 어이없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괜히 뻘쭘해져 시선을 돌렸다. 하긴 뭐, 내가 전화하지 않았으면 않은 대로 예습 복습을 하셨을 우리의 리더 님이시다.


 "근데 이번에 무슨 연수였어? 난 딱히 통보 받은 것도 없는데."
 "부관 지원자 연수."
 "응?"
 "그러니까, A급 요원 부관에 지원한 클로저들 대상으로 한 연수. 수석이어서 우선권 부여받았어. 부관으로 쓸지 말지는 해당 요원한테 달려있지만."
 "어? 팀 해체되면 너 부관으로 가게? 누구 부관?"


 멍청하게 되묻자 그녀는 정말 멍청한 것을 본다는 눈으로 날 바라보곤 한숨을 푹 쉬었다.


 "누구긴, 너지."
 "……어?"
 "나 없으면 늦잠 자고 아침도 안 먹고 툭하면 야근하고 게임하다 밥도 거르는 네 부관."
 "진짜?"


 아무 말도 못하고 그녀를 멍하니 바라보니 그녀가 빙긋 웃었다. 쪽, 하는 소리와 함께 뺨에 부드러운 감촉이 느껴졌다. 그녀가 나를 안고서 내 귀에 속삭일 때까지, 나는 아무런 반응도 할 수 없었다.


 "왜 그래, 나 없으면 안되는 이세하 씨?"


-


해가 저물면 둘이 나란히 지친 몸을 서로에 기대며


그 날의 일과 주변 일들을 얘기하다


조용히 잠들고 싶어




사랑해요 하현우 씨


2024-10-24 23:13:31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