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누스의 기사(Knight of Janus)-14편

에피메테이아 2016-07-29 0








오늘도 1편을 올리고 도주해봅니ㄷ...(이미 맞아죽은 시체입니다.)



다음편 링크: (추후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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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뼉소리는 그리 크지 않았다. 하지만 한창 수다에 열중하던 후안은 그걸 분명하게 들었고, 금세 심통이 난 표정으로 소피아에게 달려왔다.

“마스터, 마스터!”
“잘 들리니까 2번이나 부를 필요 없느니라.”
“그게 중요한 게 아니죠! 저 애들은 휴일도 주고 그러신다면서요?!”

소년의 볼이 복어마냥 부풀었다. 덩치가 크긴 해도 정신연령은 아직 또래 아이들과 같았다. 툭 건드리면 터질 것 같은 그 귀여운 모습에, 소피아가 낭랑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아하하하!! 그게 가장 신경이 쓰였나보구나?”
“당연하죠. 저랑 동생이 배울 때는 일요일이고 뭐고 없었잖아요. 차별입니다!”
“지금이야 휴일도 있고 그러잖느냐. 그때도 쉬는 시간을 안 주진 않았고. 게다가 기사단 훈련은 실전이 없이 학교처럼 훈련한다만, 저 아이들은 실전도 겸하고 있느니라. 휴식이 조금 더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
“체! 너무하십니다. 마스터께 섭섭해요.”

눈 하나 깜짝 않는 반박이었다. 육체파인 후안은 차마 뭐라 더 항의하지 못하고 툴툴댈 뿐이었다. 그렇다고 그가 여기서 토라지면 곤란하기에, 소피아는 당근도 같이 제시했다.

“이번에 일이 끝나면 길게 휴가를 주마. 그러니 너무 삐져있지는 말거라.”
“정말요?”

삐졌단 사실을 잊고 반색을 한 걸 보면, 진짜로 휴식을 원했던 모양이었다. 입 싹 씻고 기뻐하는 후안을 보며 소피아가 쓰게 웃었다. 같이 있던 네 명의 기사들 중 셋은 장난스럽게 그를 핀잔주었다.

“으이그~ 나가서 또 여자 꾀려고 그러네. 저번엔 항구 북쪽의 단발머리 아가씨였고, 이번 휴가 때는 누구랑 다니게?”
“그러면 그렇지. 우리 기사단의 카사노바께서 어디 가시겠나.”
“젊을 적이니 좋긴 하다만, 나중에 그러다가 크게 데이니까 조심해.”

그런데 그 핀잔들이 하나 같이 바람둥이를 연상케 하는 말들이었다. 찔리는 거라도 있었는지, 후안은 그 말들을 듣자마자 질색을 했다.

“아 진짜, 누가 들으면 절 난봉꾼으로 알겠네. 다른 사람도 있는데 오해할 말씀하지 마세요!”

잘 익은 사과마냥 얼굴은 새빨개지고, 곱슬곱슬한 머리카락도 살짝 곤두섰다. ‘나 화났음’을 선명하게 어필하고 있었지만… 후안보다 선배들인 다른 기사들에겐 웬 강아지 한 마리의 재롱으로만 비쳤다.

“우리가 뭐. 사실만 말했을 뿐이라고. 여자애들이 너 보면 꺅꺅 거리는 건 사실이잖니?”
“거기 여자애 둘도 주의해. 아차하면 이놈 두고 둘이서 싸울지도 몰라. 근처에서 몇 번 목격한 거니까 믿어.”
“둘만 조심하라고 하면 돼? 저기 마스터 옆에 있는 관리요원도 조심해야 한다고. 연상이든 연하든 가리지 않고 저놈 페로몬에 꼬이잖아. 저~기 있는 은발 꼬마도 내가 보기엔 아슬아슬한데.”
“미란다 선배, 저 아이는 남자애에요.”
“아. 그래? 그럼 다행히 안전선이네. 거기 꼬마, 미안하다. 이 누나가 오해했네.”

적나라한 폭로가, 필터링 한 번 없이 마구 쏟아져 나왔다. 후안의 얼굴은 아예 물감 칠하듯 완전히 빨갛게 물들었다. 슬비와 유리도 어쩔 줄을 모르긴 매한가지. 소문에 민감한 여자아이들답게, 기사들의 폭로는 두 사람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후안이 뭐라 말하기도 전에 그들은 몇 발자국 멀어졌다. 마치 벌레를 곁에 둔 것 같은 태도였다. 후안은 졸지에 상종 못할 종마 취급을 받아서 절망하였다.
그런 그에게 결정타를 날린 것은, 미스틸테인이 훈계하듯 또박또박 말하는 말이었다.

“형, 그러시면 못 써요. 남자는 한 여자만 바라봐야 한다고요.”
“테, 테인이 너마저.”

강력한 한방에 후안이 좌절했다. 이런 어린아이한테까지 오해를 받다니, 쥐구멍이 있다면 얼른 숨어버리고 싶었다. 그가 이를 박박 갈며 선배들을 째려봤다. 이미 놀린다는 목적을 달성한 그들은, 가볍게 그의 시선을 외면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소피아까지 한마디 농담을 건넸다.

“그러기에 진작 임자를 만들어두기 그랬느냐. 과인의 기억으로는 혼담도 집에 자주 온다고 들었다만.”
“마스터. 마스터까지 그러시면 전 어떡하라고요.”
“남자는 잡아주는 여자하기 나름이니까 말이다. 뭐, 농담은 여기까지로 하자꾸나. 사람들도 다 모였고.”

소피아가 양쪽을 바라보며 인원을 점검했다. 검은양 팀 5명, 그녀의 명령을 받고 온 백십자 기사단 소속 5명. 모두 모였음을 확인하고서 자기 자신은 기사단 쪽에 섰다.

“슬비 양에게 미리 이야기했지만, 오늘 훈련은 다수vs다수의 전투이다. 슬비 양이 지휘하는 검은양 팀하고 과인이 데리고 온 기사단원들의 5vs5 전투이지. 요컨대 팀워크를 체크한다는 것이다. 무슨 소리인지 알겠느냐?”
“예.”
“예, 마스터.”

양쪽의 대표가 진중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검은양 팀의 대표는 이슬비, 기사단 쪽의 대표는 가장 키가 큰 검은 갑옷의 기사였다. 투구까지 완벽히 쓰고 있어서 붉은 눈동자 외엔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얼굴이 안 보이는데다 갑옷 색깔이 색깔이라, 그 기사의 주변만 어쩐지 칙칙해보였다. 은백색의 갑주를 걸친 다른 기사들하고 분위기가 확 차이 났다.

“훈련을 시작하기 전에 통성명을 하고 싶습니다. 저는 검은양 팀의 리더이자 유니온 수습요원 이슬비입니다. 귀하께선 성함이 어찌 되시나요?”

그래도 이제부터 같이 훈련을 할 상대였다. 슬비는 감정적인 거리낌을 뒤편에 밀어 넣고서, 기사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검은 갑옷의 기사도 손을 내밀어 마주잡았다. 슬비의 손보다 두 배는 큰, 억세고 투박한 손이었다.

“백십자 기사단 백인대장, 라디아스 바르바리고다. 만나서 반갑군.”

다른 기사들과 달리 꽤 건조한 목소리였다. 자신과 비슷한 과라는 생각에, 슬비는 조금 긴장했다. 저쪽에서 봐주는 일은 없으리라. 직감적으로 그것이 느껴졌다.

“이쪽도 잘 부탁드립니다.”






인사치레가 끝나고, 도합 12명의 인원이서 넓은 운동장을 차지했다. 미리 섭외를 해뒀는지 민간인은 보이지 않았다. 사방 수십 미터에 20명도 안 되는 인원만 있으니 한산하기 그지없었다. 공간낭비도 이만저만이 아니라 생각하기 쉬웠지만, 몇 분 후에 있을 대결을 생각하면 이 운동장도 좁을지 몰랐다.

“룰은 특별히 없다. 실전처럼 훈련을 해야 하는데 제한이 많은 것도 우스운 일이지. 뭐, 장.외.로 퇴장시키는 것은 어떨지 모르겠다만. 의료반도 대기했으니 심각한 수준만 아니면 상대에게 부상을 입혀도 상관없다. 딱 하나만 당부하자면… 오늘은 좀 적당히 부술 것.”

‘아무래도 잔소리는 지겹거든.’이라고 소피아가 덧붙였다. 그동안 아이들하고 체육관을 몇 번 부숴먹다 보니, 주변 사람들의 민원이 빗발친 모양이었다.

“알겠습니다.”

물론, 곧 대련을 벌일 검은양 팀과 기사단원들은 그걸 신경 쓰지 않았다. 평소에 가장 의욕이 없던 세하조차도 찌릿찌릿한 투지에 몸을 움찔거렸다. 아까까지 헤실헤실하던 후안도 지금은 말없이 주먹을 지켜들었다. 적막한 가운데 보이지 않는 신경전이 오고갔다.

“서로 치명상은 가급적 자제하도록. 자잘한 상처는 치료 가능하니까 상관없겠지만 말이다. 그럼… 시작하여라.”

소피아가 올렸던 손을 내렸다. 그것이 신호가 되어, 검은양 팀과 기사단원들이 동시에 발을 박찼다.

“세하랑 제이 아저씨는 선공을, 유리는 중간에서 미스틸을 보호해줘. 미스틸은 나와 함께 광역 공격을 보조하고.”

먼저 진형을 짠 것은 검은양 팀이었다. 슬비가 바쁘게 지시를 내렸고, 제이 이하 팀원들은 재빨리 그녀가 한 말을 따랐다. 슬비와 미스틸테인이 맨 뒤로, 유리는 앞뒤를 보호하듯 중앙에, 마지막으로 세하와 제이는 맨 앞을 막아섰다. 앞에 선 두 사람은 반대편이 어떻게 진형을 짰는지 보았다.

‘아, 아저씨.’
‘갑자기 왜… 아차!’

거기서 그들은, 2가지를 알아차렸다.


하나. 기사단도 이미 사각편제로 진형을 단단히 짜두고 있었다.

둘. 기사단 인원 중에 ‘한 명’이 비어있었다.


“대장, 뒤!!”

제이가 경악해서 뒤를 돌아봤다. 그가 몸을 틀면서, 앞쪽의 상황이 뒤편에도 보였다. 슬비와 미스틸테인도 놀라서 주변을 둘러봤다. 불과 10초 전에 짜둔 진형이 흐트러졌다.

“어이쿠. 좀 지나갈게.”

그것이 사라진 한 명, 후안이 노리던 바였다.
후안이 나타난 곳은 무척 애매한 위치였다. 완전히 뒤였다면 슬비나 미스틸테인 중 하나가 돌아서서 상대했겠지만, 하필 유리의 뒤편이었다. 유리가 뒤를 돌면 앞에 있는 둘은 네 명을 상대해야 하고, 슬비와 미스틸테인이 나서면 화력지원이 끊긴다. 절묘한 선택에 슬비가 치를 떨었다.

‘세하야. 뒤로 빠지자.’
‘네?’
‘설명할 시간 없어. 어서!’

후안이 막 유리에게 주먹을 들이밀려는 도중, 제이가 이를 악물고 세하에게 후퇴를 지시했다. 세하가 반문했으나 제이는 듣지 않고 먼저 물러났다.

“쏘리. 첫날인데 주먹다짐부터 하게…….”
“어딜!”

후안의 주먹과 유리 사이에 제이가 끼어들었다. 3초 만에 십 여 미터를 좁혀온 것이었다. 주먹과 주먹이 부딪치는 묵직한 소리가, 공격이 실패했음을 알렸다.
하지만 공격은 한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후안이 안전거리를 벌리고서 앞에서도 달려왔다. 말 한 번 맞추지 않은 진형이었는데도 엉킴이나 흐트러짐이 없었다. 세하가 뒤늦게 합류하자 제이도 유리의 옆에 섰다. 처음에 만들었던 2-1-2 진형이 2-3 진형으로 바뀌었다. 다시 파고들려던 후안은, 좁게 모여 있는 검은양 팀의 진형을 뚫지 못하고 물러나야 했다.

“혹시나 했는데 말이다. 역시 제이 군은 경험이 있어서 바로 대응을 하는구나.”

지켜보던 소피아가 휘파람을 불었다. 만족스럽다는 표정이었는데, 전장의 혼란함만 주목하던 유정은 그 이유를 짐작하기 힘들었다.

“대응… 이라고요?”
“저런. 설마 급해서 후퇴했다고만 생각하는 것이더냐?”
“아무래도 저는 현장에 익숙하지 못해서요. 사실, 제 눈에는 그래보였습니다.”
“슬비 양이 세운 진형은 정석적이지. 그렇지만 진형을 꼭 매뉴얼대로 짤 필요는 없다네. 방어가 이미 뚫린 시점에서 후방의 둘을 위한 호위를 둘 이유도 사라져버렸고. 그러니 차라리 진형을 압축해서 방어를 강화하는 편이 옳아.”

이론에 집착하지 않는 변칙… 그것은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전쟁터를 누비며 배운 생존법이었다. 모든 일을 정교하게 구상하는 슬비하고는 완전한 대칭점. 그래서 슬비가 대응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제이의 경험이 빛을 발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하지만 경험이 풍부한 것은 우리 아이들도 마찬가지지.”

팽팽함은 오래가지 못했다. 상대가 뭉쳤음을 확인하자 기사단에서도 강하게 나왔던 것이다. 처음 만났을 때 미란다라고 불린 여 기사가, 자신의 몸통만한 머리를 가진 망치를 불러냈다. 뭘 하려는 지는, 물어** 않아도 짐작이 갔다.

“하앗!”

묵직한 고함소리가 터졌다. 힘껏 내려치는 망치엔 선명한 붉은 기운이 깃들어있었다. 망치와 땅이 부딪쳤고, 검은양 팀은 지진이 났다는 착각을 받았다.
뒤이은 것은 엄청난 양의 불길! 가스관을 건드린 것 마냥 세찬 불꽃이 땅에서 솟아올랐다. 불이 난 곳으로부터 땅이 녹아내리고, 질척해진 용암이 대지를 적셨다. 막나가는 공격에 검은양 팀은 급히 자리를 이탈했다. 위상능력자가 물리적인 타격에 내성이 있다지만, 수천도의 싱싱한(…) 용암을 밟고도 무사하기는 힘들었다.

“후안, 진형 무너졌다! 다시 흔들어!”

망치로 후려친 주변이 용암 밭으로 변했다. 당연히 발을 디딜 곳이 급격하게 줄어들었고, 검은양 팀은 그에 맞추느라 진형이 다시 흐트러지고 말았다. 그걸 재정비할 틈도 없이 기사단에서 다음 행동을 개시했다. 유정은 생각 이상으로 커진 스케일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물론, 그 경험을 실행에 옮길 힘도 있고 말이다.”

소피아는 그 광경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또 난장판이 된 것에는 속이 좀 쓰리긴 해도, 아이들이 좋으면 그만 아니겠냐는 생각을 하면서.






2024-10-24 23:10:18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