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저스 외전 - 하얀악마 6편

이제나는돌아서겠소 2015-01-30 0

소제목 : 소녀, 목줄이 걸리다.
 
 하늘을 덮은 검푸른 구름은 계속해서 비를 쏟아냈고, 자동차 앞유리에는 물방울이 모였다가 와이퍼에 의해 흩어지고, 또다시 모였다가 흩어지고 있었다. 잭슨씨와 나는 아무 말도 없이 어두운 밤의 도로를 달려가고 있었다.

『지지지직 잭슨 대장, 들립니까?』

차 안에 있던 무전기가 울리자 잭슨씨는 그것을 집어 들더니 그것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무슨 일 있나?”
“예, 이번에 맡으신 임무 있지 않습니까? 차질이 생겼습니다. 이번에 이용하시려고 하던….”  
“무슨 방법 없나?”
“우선 돌아오시는 게 …”
무전기 속의 누군가가 계속해서 이야기했고, 그에 관해 여러 이야기가 오갔다. 하지만 여러 가지 생각으로 머릿속이 꽉 차있던 나는 더 이상 그 소리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잭슨씨는 무전기를 내려놓고, 옆에 있던 나를 쳐다보며 무엇인가를 얘기하려고 하더니 이내 그만두고 차를 몰고 갔다. 그로부터 몇 시간 후 잭슨씨가 약간 멋쩍은 표정으로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음 이봐 꼬마 아가씨. 내가 저번에 한국으로 너를 보내는 게 내 임무라고 했잖아. 그런데 우리가 가려던 곳에 내전에 차원종까지 출현했다고 해. 그래서 계획을 조금 바꿔야겠어. 음… 네가 괜찮다면 우리 용병캠프에서 1달 정도 지낸 후 다시 잠잠해지면 한국으로 보내려고 하는 데 괜찮니?”

사실 너무 많은 일이 있어서 저번에 잭슨씨가 나에게 말해주었던 임무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것을 들을 때 계획에 무슨 문제가 생긴 것 같았고 아무것도 남지 않은 나에겐 그다지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저기요. 꼬마 아가씨? 거기 계시나요?”
“아, 죄송해요. 그럼 그러도록 해요.”
“그럼, 우리 캠프에서 1달만 지내자. 좋은 사람들이 많으니까 지내기엔 불편하진 않을 거야.”

그 말을 끝으로 다시 차안은 정적이 흘렀고 우리는 어두운 도로를 달리고 또 달렸다. 그리고 내 마음은 지치고 또 지쳐갔다. 저번에 들었 던 아름다운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검은 도화지는 그녀의 목소리에 따라 하얗게 하얗게 변하더니 어느덧 절반의 도화지가 그녀의 목소리에 따라 하얗게 변했다. 그녀의 목소리에 다시 매료되고 있더니, 갑자기 왼팔이 뜨거운 용암에 먹힌 듯한 느낌이 들었다. 큰 고통이었지만 그녀의 목소리를 계속 듣고 싶었다. 더는 고통에 참을 수 없을 때쯤 내 시야가 밝아지고 눈이 떠졌다.

“꼬마 아가씨, 일어났구나. 거의 다 도착했어.”
그가 말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나무가 울창한 숲 속에 나무들과 잘 어울리는 오두막 하나가 눈에 보였다. 차를 멈추고 잭슨씨가 앞으로 나서 우리는 오두막 안으로 들어갔다. 왠지 용병들의 캠프라기에는 작고 소박했다. 그는 그곳을 한번 둘러보더니 나를 데리고 오두막의 부엌 쪽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카펫을 걷어냈다.

“설마, 오두막이 우리 캠프라고 생각하진 않았겠지?”

잭슨씨는 사다리를 타고 내려갔고, 그 뒤를 이어 나도 사다리를 타고 내려갔다. 내려간 곳엔 꽤 많은 사람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대부분의 사람은 총, 검 등 여러 무기를 가지고 다니고 다녔다. 멀리 보이는 연습장에선 시뮬레이션으로 가상전투를 하는 여러 용병들이 보였으며, 그들의 모습은 진지해 보였다.

잭슨씨는 다른 용병들의 인사에 반갑다는 듯 인사를 하면서 나를 데리고 간부들이 머무는 구역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자, 여기가 네가 1달 정도 머무를 방이야. 다른 애들은 너무 많아서 소개 못 시켜주고 우선 간부들부터 소개해줄게. 우선 저기 쉼터에서 앉아있어라.”
그러더니 간부 방의 문들을 일일이 노크하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를 포함해 3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내가 있는 쉼터에 모였다.

“이 꼬마는 누구야? 설마 잭슨 너…”
“아니, 잠깐. 이번에 호위 임무로 데려온 세이야. 오해하지 마.”
“네가 하도 이 여자 저 여자 들이대서 말이지.”
그러자 그는 근육질에 검은 머리의 남들이 보기엔 잘생겼다고 할만한 남자 옆에 같더니 그의 옆구리를 꼬집었다.
“하하하.” 잭슨은 크게 웃더니 그에게 다가가 조그맣게 속삭였다.

『내가 지금 꼬마 숙녀 앞에서 무게 잡고 있는데, 맨 처음부터 내 이미지를 그렇게 바닥으로 떨어뜨리면 되겠냐?』
그는 안 들리겠다고 생각하겠지만, 솔직히 다 들렸다. 하지만 나는 짐짓 모른 체했다.

“우선 이 근육질 아저씨 이름은 마이클이야. 하고 싶은 말은 머리로 안 거치고 입으로 나오는 게 특징이지. 아 우리 몸빵/돌격 담당이야.”
“어이 이봐.”
그러자 그 옆의 사람이 입을 가리며 약간 음침하게 웃었다.
“에, 그럼 저기 음침하게 웃는 사람은 우리 작전, 보급 담당 아저씨. 이름은 음침이…가 아니고 오스워드야.”
그를 쳐다보니 많이 피곤한 듯 얼굴에는 다크서클이 내려앉아 있었고, 파란 빛깔 머리에 초록색 눈을 가진 남자였다.
“후후후 반갑다.”
오스워드가 그의 내려앉은 다크서클처럼 어두운 목소리로 말을 했다.
“오스워드 근처에는 가까이 가지 말고, 언제 이상하게 물들지 몰라.”
그 옆에 있던 마이클은 오스워드를 보더니 그를 비하했고 잭슨, 마이클, 오스워드는 서로를 가만히 쳐다보더니 이내 투닥거렸다.

『치-익』

간부구역의 자동문이 열리기 시작하고, 긴 금발에 파란 눈, 좋은(?) 몸매를 가진 한 여인이 조준경이 달린 커다란 저격총을 등에 메고 잭슨 앞으로 걸어왔다.

“잭슨! 너 딸이 있었어?”
“아니 제니퍼 아니야. 이 옆에 있는 애는 이번에 호위 대상으로 잠깐 일이 생겨서 여기서 한 달 정도만 지내기로 했어.”
“거짓말 마! 밖에 있는 애들이 딸 데리고 왔다고 수근 거리던데.”
그러자 잭슨은 쩔쩔매면서 제니퍼에게 사정을 설명하더니, 제니퍼가 수긍하자 약간 화난 표정으로 간부 구역 밖으로 한달음에 뛰어 나갔다.

『이것들이 내가 맨날 여자랑 사고만 치게 보이냐!!!』

문밖에 잭슨이 나가자 제니퍼는 크게 웃더니 이내 웃음을 멈추고, 나에게 인사를 했다.

“안녕, 난 제니퍼라고 해. 편하게 제니퍼 언니라고 부르렴. 요인 암살/저격 특수부대를 담당하고 있지. 혹시 이 아저씨들이 무슨 짓을 하려고 하면 나한테 이야기하렴.”
그녀는 나한테 환한 미소로 무서운 말을 하더니, 아저씨들의 사타구니를 노려보았다. 무슨 짓이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보았지만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왠지 아저씨들이 자신들의 사타구니를 필사적으로 보호하려고 하는 것이 보였다. 만족스런 웃음을 머금고 제니퍼씨는 ‘암살담당 제니퍼’라고 쓰인 명함을 나에게 건네주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잭슨씨가 얼굴이 벌게져서 간부 구역으로 들어왔다. 

“어라, 인사는 다 끝난 것 같고…. 다시 한 번 소개할게. 자! 내 이름은 알렌 잭슨이야. 이곳에서 대장역할을 하고 있지. 자 여기는 세이라고 송박사의 지인이야. 한 달 정도 여기 지낼 테니 잘 좀 챙겨줘.”

“알았어. 후후후. 저 이상한 아저씨들보단 언니만 믿으렴.”
3명의 간부는 각자 다른 인사말(?)로 나를 반겨주었다. 간부들과의 인사가 끝나고 잭슨씨는 시뮬레이션 훈련장이나 사격장, 간부 식당 등 여러 곳을 소개해 주었다. 

『대장, 딸이 아니면 이젠 꼬마 아가씨까지 손을 대는 겁니까?
우와 대장 그렇게 안 봤는데 이거 철컹철컹 해야겠구먼.
야! 이 녀석들아. 나는 쭉죽 빵빵한 여자가 좋단 말이다!』

간부들 외에도 여러 용병아저씨들을 만날 수 있었다. 많이 시끄럽고, 약간 짓궂은 면도 없진 않았지만 모두 좋아 보이는 사람들이었다. 식사 시간이 되자 잭슨 아저씨는 나를 간부식당으로 데려갔고, 식당에 들어가자 마이클, 오스워드 아저씨 그리고 제니퍼 언니는 서로 모여 앉아 맛있어 보이는 밥을 먹고 있었다. 그리고 나도 그 곁에 앉아 식사 하였다.
“세이야 어때? 맛있어?”
잭슨 아저씨가 나에게 궁금한 표정으로 물어보았다.
“네, 맛있어요.”
지금까지 나에겐 모든 음식이 알약 등 영양보충을 위한 것이 전부였고, 문헌에서만 본 음식을 먹자 꽤 만족감이 들었다. 나는 기쁜 표정으로 음식을 먹었고, 같이 식사하던 간부들은 밥을 먹다가 그만두고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냠냠 음? 제 얼굴에 뭐 묻었나요?”
“아니, 참 복스럽게 먹는다 싶어서.” “누가 늙은이 아니랄까봐.” “아직 나 30대밖에 안됐어!”
잭슨 아저씨와 제니퍼 언니가 티격태격하고 마이클과 오스워드가 그 둘을 말리는 사이에 나는 내 정량을 다 먹고, 그릇을 세척하는 곳에 두었다. 

“아니 왜 더 먹지?”
마이클 아저씨는 궁금한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에게 말을 건넸다.
“딱 이 정도가 신체활동에 좋아요. 잭슨아저씨 저 시뮬레이션 장에서 연습 좀 해도 될까요?”
“어? 그러렴.”

나는 식사를 다 마치고 시뮬레이션 장에서 모의전투를 하였고, 시작한 지 얼마 몇 분 지나자 잭슨 아저씨들을 포함한 여러 사람이 내가 훈련하는 것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우와, 누가 잭슨 딸 아니랄까봐 엄청난 움직임인데.” “누가 내 딸이냐!” “모든 과녁을 정 중앙에 맞추고 있어.” “빠른 속도로 적들을 베는 모습이 인상적인데.”

여러 가지 소리가 들렸으나, 나는 눈앞의 적들에게 집중하기 위해 노력했다. 계속, 계속 적들을 쏘아대다 보니 갑자기 이상한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렸을 적부터 나를 괴롭히던 연구원들, 그리고 줄리안 턱스…. 나는 나도 모르게 분노에 차서 그들에게 총탄세례를 퍼부어주었다. 

“휘유~ 이거 시뮬레이션 장소가 잘못하면 폭발하겠어.”
“무지막지한 무기사용이네.”

** 듯이 총탄세례를 쏟아붓다 보니 총기가 과열되어 그것을 RPG로 바꿔 들고, 다가오는 전차에 쏘았다. 쾅하는 소리와 함께 전차 이미지는 부서지듯 사라졌고, 시뮬레이션의 배경이 바뀌면서 이제는 거대한 정글이 눈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앞에 있던 적들은 다 사라지고 나무 뒤에 숨어 있는 적들 늪 밑에 잠복한 적들이 나를 노려보고 있는 것을 느꼈다.

“우와- 저기를 바로 찾네. 다 명중이야.”

정글에 있는 적들을 전부 처치하고 나니 다시 배경이 바뀌어 어떠한 실험실이 나타났고, 적들은 실험실 복을 입은 채 나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의 모습이 하나같이 아이(AAI)같아 보였고, 그 뒤에 나를 공격하도록 지시하는 사람은 송박사님 같아 보였다. 나는 갑자기 숨이 가빠 오르는 것을 느끼며 가슴을 움켜쥐고 주저앉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심각한 표정의 잭슨씨는 시뮬레이션을 끄고 급하게 시뮬레이션 장을 들어왔고, 나를 데리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얼마간의 정적이 흐른 뒤 그는 나에게 사과를 했다.

“미안하다. 시뮬레이션에 실험실 배경이 나온다는 걸 깜빡했어.”
“아니, 괜찮아요. 원래는 어떠한 상황이 와도 부동심을 잃지 않아야 하는데, 겨우 이 정도의 일 가지고 전투불능이 된 제 잘못이죠.”
그는 안쓰러운 표정을 짓더니 이내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하여튼 내가 너를 배려를 못 한 것 같다. 미안하다. 우선 방에 들어가 푹 쉬어라.”
나는 방을 나서려고 하다가 잭슨씨에게 궁금한 것을 물어보았다.

“잭슨씨…. 송박사님 아니 아버지는 어떻게 되셨나요?”

잭슨씨의 얼굴에 살짝 그늘이 지더니 이내 금방 담담해진 얼굴로 

“아직 송박사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확인 중이니 우선 몸을 푹 쉬고 있으렴. 최대한 빨리 알아내서 너에게 가르쳐주마.”
무언가 걸리긴 했지만, 잭슨 씨의 말을 믿는 척하며 내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간단히 샤워를 마친 뒤 침대에 누워 아버지께 받은 로켓을 손에 쥐었다. 그리고 그것을 열어 아버지와 아름다우신 여성 분 그리고 한 아이와 그리고 그 옆에 자그맣게 붙어있는 나를 보았다.

‘저 가족사진의 한가운데의 아이 옆에 내가 같이 웃으면서 있었으면….’
나도 모르게 이런 생각을 하다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리고 이내 사색에 잠겼다.

‘나 같은 애한테 가족이라니 참. 
아버지 보고 싶어요. 하늘엔 잘 계신가요. 오늘 잭슨씨에게 아버지의 행방을 물어봤지만, 아직 알아보는 중이라고 하네요. 아직 정보가 안 들어 왔다는 걸 믿고 싶지만 잭슨씨 표정을 보니 아버지는 확실히 제 곁을 떠나신 것 같아요. 부인 분과는 만나셨나요? 사실 저도 ’살아라‘라는 목줄을 끊고 아버지를 만나러 가고 싶었답니다. 하지만 아직 그곳에 가긴 이른 것 같아요. 아직 제 다른 동생도 구해내지 못했고, 아버지의 복수도 이루어내지 못했어요. 아버지는 저에겐 복수 따윈 잊어버리고, 행복한 곳에서 살라고 하실 테지만 이번만은 저를 심정을 이해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아버지 보고 싶네요. 그냥 다시 한 번 보고 싶어요.’

고장 난 수도꼭지처럼 눈물이 눈가를 스치고 내 베갯잇을 적셨고, 나는 한쪽 팔로 눈을 가리며 눈물을 막다가 이윽고 잠이 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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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말 : 늦어서 죄송합니다.
2024-10-24 22:22:32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