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누스의 기사(Knight of Janus)-8편
에피메테이아 2016-05-28 0
뭔가 되게 오랜만에 돌아오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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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에…….”
세하가 얌전히 죽도를 들고 앞으로 나섰다. 제이는 아프단 핑계라도 있지, 그는 튼튼하고 신체 건강한 남자 고등학생이었다. 게다가 미스틸테인을 대신 보내기엔 양심이 아파오니 어쩌겠는가. 자신이 나설 수밖에.
“스톱.”
소피아가 손을 들어 그를 제지했다. 설마 패스해주는 건가? 세하가 일말의 기대를 품고 소피아를 쳐다봤다.
“세하 군은 원래 무장으로 들고 오너라. 죽도로는 안 될 게다.”
그리고 그 기대는 아주 철저히 짓밟혔다.
“워, 원래 무장이요?”
“그래. 오! 과인도 이런 헐렁한 모습으로는 안 되겠구나.”
폭탄선언으로도 모자라서, 소피아는 그녀 자신도 원래대로 옷을 갈아입었다. 잠깐 황금빛이 터져 나오는가 싶더니, 후줄근한 운동복 대신 항상 걸치고 다니던 흑색의 예복으로 돌아와 있었다. 최소한도로만 쓰던 힘도 어느 순간부터 대놓고 풀어내었다. 유리랑 슬비를 대할 때하곤 대우가 천지 차이였다. 급격한 상황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한(…) 세하가 침을 튀겨가며 항의했다.
“자, 자, 자, 잠깐만요! 왜 저만 갑자기 난이도가 급상승이에요? 저도 쟤들하고 딱히 차이점이 없다고요! 이의를 제기합니다!”
“기.각.이.니.라.”
“어째서?!”
“부탁을 미리 받아놔서 말이다.”
딱 잘라서 거절한 소피아. 그녀의 두 손에서 불꽃이 일어났다. 몇 미터 떨어진 제이한테도 열기가 느껴질 만큼 화끈한 불이었다. 불빛에 비춰진 소피아의 얼굴이, 세하에게는 악마 못지않게 사악해보였다.
“부탁이라면, 설마?”
“그래. 그 설마란다.”
세하의 머릿속에서 누군가의 웃음소리가 재생되었다. 자신의 목소리를 닮은 맑고 고운, 그러면서도 여자다운 높은 톤의 웃음소리…….
“지수가 아들 걱정은 참 많더구나. ‘특별히’ 수련을 부탁할 정도면 말이다. 그래서 과인이 기꺼이 도와준다고 약속했느니라.”
‘그런 걱정은 안 해줘도 된다고요, 엄마!’
제이가 다른 아이들을 데리고 최대한 벽에 붙었다. 소피아에게서 흘러나온 힘은 어느새 체육관을 채워나가고 있었다. 밖으로 꾸역꾸역 새나가지 않는 것은 그녀의 컨트롤 덕분. 그러는 바람에 세하는 어마어마한 힘을 정면에서 마주봐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끄윽…….”
“정신줄은 단단히 붙들어라. 과인은 지금 지수가 가지고 있는 위상력 정도로만 힘을 쓰고 있다. 대처 못할 힘은 아니야.”
“아니. 말이야 그렇게 하셔도, 직접, 하는 사람 입장에선, 힘들죠. 으윽!”
“엄살은. 과인이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각자의 실력에 맞춰서 하는 것이니라. 실력을 넘는 것을 시키지 않을 테니, 염려하지 말거라.”
공기를 내리누르던 힘의 일부가, 빨려 들어가듯 한쪽으로 모였다. 모이는 장소는 소피아의 왼손. 그곳에서 힘은 아지랑이의 형태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래. 마치 칼처럼 길쭉한 형태로 변모하였다.
“건블레이드. 위상력의 폭발적인 발현에 유리하게 만들어진 무기이지. 세하 군, 너의 힘은 화염 계통이니 그거에 맞춰서 바람의 형태로 칼을 부딪칠 것이다. 기왕 속성을 이쪽이 불리하도록 맞춰줬으니 노력을 해보도록.”
검이 완성되자 소피아가 앞으로 걸어 나갔다. 거리가 좁혀지자 세하도 무기를 바로 세웠다. 몇 번 그녀를 보아온 그는 알 수 있었다. 여전히 웃음이 만면했지만, 아까보다 더 진중하고 날카로움이 그의 뇌리를 콕콕 찌르고 있었다. 진심으로 오려는 것이었다.
“준비는?”
“했어요.”
세하의 말이 신호가 되었다. 더 이상의 예고 없이, 소피아는 발을 박찼다.
“우아악!”
예고도 없는 돌진에 세하가 경악했다. 그러나 경악에 쓸 시간조차도 주어지지 않았다. 눈 한 번 깜빡인 시간에 소피아의 손이 움직였고, 그녀의 손에 들린 힘 덩어리 또한 세하에게 쇄도했다. 보이는 것은 부드러운 아지랑이였지만 느껴지는 것은 지극히 무거운 쇳덩이였다. 제대로 방어할 틈이 없던 세하는 어정쩡한 자세로 건블레이드를 들었다.
쾅!
‘큭.’
똑바로 막지 못한 대가는 컸다. 건블레이드와 힘이 부딪친 순간, 폭풍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어마어마한 바람이 그 사이에서 폭발했다. 두 사람이 서있던 바닥은 푹 파이고 갈라졌다. 바람을 이겨내지 못한 세하는 발을 질질 끌며 뒤로 밀려났다.
공격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처음이니만큼 전력을 맞춰서 해주마. 다음!”
소피아는 숨조차 쉬지 않고 바로 다음 행동에 들어갔다. 아까는 후려쳤다면 지금은 찌르기, 손을 앞으로 한 그녀가 일직선으로 돌진했다. 비슷한 실력이었다면 쉽게 빗겨낼 수 있었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눈으로 보기도 힘든 속도에 세하가 할 수 있는 행동은 본능적인 방어 뿐. 그것도 겨우겨우 시간을 맞췄다. 또 다시 굉음이 울려 퍼지고 폭풍이 몰아쳤다. 매끈하게 닦여졌던 바닥은 흉측하게 일그러지고 조각이 나고 있었다.
“우와. 나랑 하셨을 때하고는 또 다르잖아?”
“굉장해요. 물체도 없이 에너지만으로 저렇게 물리력을 행사할 수 있다니.”
“얘들아. 감탄하기 전에 체육관에서 항의할 걸 걱정해야하지 않을까? 이러다 바닥 다 부서지겠는데.”
저마다 탄성, 혹은 탄식을 내질렀다. 탄성을 뱉는 쪽은 구경하는 아이들이었고 탄식을 뱉는 쪽은 부서지는 바닥과 기물들을 보는 유정.
“배상이야 어르신이 알아서 하겠지. 우리는 그저 팝콘만 뜯으면 된다고. 말한 김에 편의점에서 하나 사올까?”
제이의 반응은 아이들 쪽에 가까웠다. 진짜로 나가서 과자를 사올 그의 태도에, 유정은 소리를 빽하고 질렀다. 이런 정신연령 낮은 아저씨 같으니라고!
“지금 장난하시는 거예요?! 클로저들이 공공기물 파손하면 사람들이 어떻게 보겠어요!!”
“아이고야. 귀청 떨어지겠다. 걱정하지 마. 소피아 어르신도 믿는 구석이 있어서 마음껏 해보시는 거겠지. 게다가 벌써 부서진 것들은 어쩔 수 없잖아, 안 그래?”
“으으으! 뒷수습 안 되면 책임 같이 지셔야 해요. 아셨어요?”
“오케이. 알았으니까 지금은 즐겁게 지켜보자고. 긴장도 풀고.”
‘아아, 내가 어쩌다가 이런…….’
능글맞은 제이를 보며 유정이 절망했다. 이러나저러나 그는 현장에서 몸으로 일하는 요원이었고, 자신은 서류를 붙들고 전화통을 붙드는 인원이었다. 제이와 아이들이야 현장의 일을 해치우면 그만이었으나, 그녀에게는 그 뒤처리가 항상 기다리고 있었다. 상상 속에서 그녀는 벌써 체육관 관리인에게 꾸중을 듣고 상부에 시말서를 쓰는 중이었다.
“조, 조금만 천천히 해주시면 안 돼요? 속도를 못 따라가겠어요!”
“아직 한 번도 안 맞지 않았느냐? 한계가 왔으면 한두 대는 벌써 맞았겠지. 잔말 말고 계속 하자꾸나. 이번에는 다리니라!”
유정이 절망하는 중에도 대결은 계속 이어졌다. 세하는 여전히 막는 데에만 급급했고 소피아는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신기하게도, 세하는 밀리면서도 직접 얻어맞는 것만큼은 간신히 모면하고 있었다. 순식간에 당해버린 유리나 무기가 잡혀버린 슬비하고는 정 반대의 양상이었다. 소피아가 봐주며 두들기는 것도 아니었다.
이것이 그와 다른 아이들 간의 간극이었다. 선천적으로 물려받은 강대한 위상력, 세상의 편견에 사로잡혀 게임이란 도피처를 찾기 전까지 해온 나름의 노력, 시작이 달랐기에 테스트도 다른 아이들보다 더 과격할 수밖에 없었다.
“막는 것은 잘 막는구나. 그런데 막기만 해서는 훈련이 지루하지 않겠니? 아무 공격이라도 해보아라.”
“그 막는 것만으로도 벅차 죽겠다고요!”
순식간에 열 번, 스무 번, 수십 번의 공방이 오고갔다. 공격은 대부분 소피아의 것. 세하에게 주어지는 선택지는 오직 방어였다. 회피조차 못할 지경으로 공격은 매섭고 빨랐다.
처음에는 힘 덩어리가 밀어내는 바람으로 공격을 읽어보려고 했다. 피부가 서늘해진다 싶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몸을 움직이는 방법이었다. 처음 예닐곱 번은 그것으로 어찌어찌 피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열 번째부터는 바람이 밀려나오는 것과 거의 동시에 충격이 밀어닥쳤다. 소피아가 눈치를 채고 공격을 더 빨리 해버렸던 것. 기껏 생각해낸 꼼수는 그렇게 어이없이 읽혀버렸다.
‘**, **, **!’
다음으로 해본 것은 정공법이었다. 건블레이드에 위상력을 마구잡이로 먹인 세하는, 폭풍이 일어나는 순간에 맞춰서 그것을 폭발시켰다. 가스 터지는 둔탁한 폭발음이 폭풍을 집어삼켰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그렇다면 힘에는 힘이었다. 위상력만은 얼마든지 쓸 자신이 있던 세하에게는 쉬운 선택지였다. 소피아가 처음에 했던 말대로, 바람은 불에 약한 것도 한몫을 했다.
“공격하라고 하셨으니 합니다!”
폭발에 소피아가 손을 멈추었다. 최초로 찾아온 공격 기회. 세하는 건블레이드를 위로 들었다. 칼날 아래의 탄창에서 탄환이 펑! 하고 뱉어졌다. 위상력의 자극을 받은 칼날이 푸른색 불꽃으로 타올랐다. 불꽃이 완전히 피어오르자 세하는 그것을 내리쳤다. 손의 움직임에 따라 불꽃은 한줄기 빛이 되어 나아갔다. 기이한 열기가 공기를 데우고 바닥을 지졌다.
“쯧쯧쯧. 아직 멀었구나.”
‘어라?’
그러나 그 뜨거운 일격은, 잠시 뒤 거센 역풍을 맞아야 했다.
“과인이야 너보다 강하니 일일이 말해주면서 공격할 여유가 있지만, 너는 아니란다.”
1초. 그것이면 충분했다. 멈췄던 소피아가 거칠게 힘 덩어리를 휘둘렀고, 그 폭력적인 움직임은 공기를 한순간에 터뜨렸다. 소리의 벽을 돌파한 움직임은 날카로운 울음소리를 남겼다.
불은 바람에 더욱 거세지지만 그것은 적당할 때나 그런 것. 불을 짓누를 정도로 어마어마한 폭풍은 바닥을 뒤엎고 불을 산산조각 냈다. 그러고도 남은 힘은 굳어버린 세하에게 돌진했다. 체육관의 반을 덮어버릴 크기의 바람은, 한 인간에겐 너무도 컸다. 발을 힘차게 굴렀지만 무리. 세하의 몸은 볼링공처럼 매끄럽게 뒤로 날아갔다. 꼴사납게 넘어지지 않은 것만 해도 천만다행이었다.
“다시 해보자꾸나. 넌 이번에도 막아냈느니라.”
몸 이곳저곳이 충격파에 삐걱거렸다. 하지만 겉으로는 어쨌든 멀쩡했다. 어떻게 막았는지 기억도 안 나는데, 손에 들린 무기는 심장을 보호하듯 가슴 앞으로 내밀어져있었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다는 생각이 심장을 내리눌렀다.
“과인이 갈까? 아니면 이번에도 네가 오겠느냐?”
“제가 갈 거예요.”
놀리는 것 같은 말이 호승심을 자극했다. 손가락까지 까딱거리는 소피아의 모습은, 게임에서 보스가 플레이어를 도발하는 구도와 꼭 닮았다. 세하는 소설 속 주인공처럼 거기에 곧이곧대로 넘어갔다. 불꽃이 다시 한 번 그를 휘감았다.
‘호오?’
소피아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이번은 위였다. 고개를 든 그녀는, 세하가 취한 기묘한 자세를 볼 수 있었다. 야구선수가 공을 던질 때처럼 뒤로 한껏 젖혀진 오른팔. 건블레이드는 아까보다도 더욱 새파란 불꽃을 머금었다.
공중은 상대가 공격하기 딱 좋은 위치였다. 탁 트여있기 때문이었다. 어릴 적에는 꽤나 훈련을 했으니 세하도 그걸 모르진 않았다. 그렇다는 것은, 결정적으로 밀어붙일 무언가를 쓴다는 소리. 애니메이션이나 게임에서 흔히 나오는 필살기였다. 충분히 강한 위력이겠으나, 실전으로 다져진 소피아에겐 어린아이다운 모습으로만 보였다.
‘큰 거 한방이라. 역시 아직은 아이로구나.’
그래도 조언을 잘 받아들였는지, 공중에서의 공격은 예고 없이 찾아왔다. 팽팽하게 당겨졌던 팔이 앞으로 내질러졌고, 공중에 잠시 멈춰있던 몸은 한줄기 유성이 되어 대각선으로 날아왔다. 그것은 아까 소피아가 휘두른 공격만큼 빨랐다. 두 차례나 소닉붐을 얻어맞은 체육관의 창문들이 산산이 깨졌다. 슬비는 다른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위상력으로 반투명한 막을 전개해야했다.
내리꽂히는 공격에 소피아가 한 행동은 간단했다. 한손으로만 잡았던 힘 덩어리를 두 손으로 잡고, 그것을 그대로 위로 쳐 올렸다. 절묘하게 건블레이드의 끝과 힘 덩어리가 마주쳤고, 위상력과 소피아의 힘은 서로를 밀어내려고 요동을 쳤다.
콰콰쾅!
충돌의 끝은 거대한 폭발! 불꽃이 사방으로 튀었고 그걸 밀어내려던 바람도 사방으로 날아가며 각자의 흔적을 벽과 바닥에 새겼다. 가루가 된 돌과 나무는 먼지로 변해서 시야를 가렸다. 지켜보던 검은양 팀의 다른 인원들은 멀뚱히 구름이 걷히기만을 기다렸다.
“50점. 공중으로 날아오른 것은 추천하지 않는다만, 그 위치를 그대로 힘에 가미한 것은 좋았느니라.”
“큭.”
먼지가 걷히고 두 사람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세하의 자세가 크게 바뀌어있었다. 독수리처럼 드높게 자리했던 그는, 지금은 한쪽 무릎을 꿇은 채 자세를 숙이고 있었다. 그를 그렇게 만든 것은 볼 것도 없이 소피아였다. 마찰음과 불꽃을 튀기며 두 무기가 맞물려 있었는데, 소피아가 든 힘 덩어리가 건블레이드를 힘으로 압도하는 중이었다.
‘빌어먹을.’
세하의 얼굴이 살포시 일그러졌다. 다른 아이들에게 했던 것과 다른 대응이, 그에게는 못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특별한 취급… 과거 주목을 받던 시절에 항상 따라다니던 꼬리표였다. 겨우 떼어냈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그것도 호감이 있던 어른에게 받게 되었다. 그나마 있던 호감이 조금씩 마음속에서 깎여나갔다.
“표정이 안 좋아 보이는구나.”
“힘든데 좋은 표정이 나올 리가 없잖아요.”
“그런 쪽이 아닐 텐데? 말이 나온 김에 확실히 말해주마.”
그리고 그것을 모를 소피아가 아니었다. 누르는 자세를 그대로 유지한 그녀는, 사근사근하면서도 단호한 말투로 세하의 마음속 불만을 부정해왔다.
“과인은, 네가 지수의 아들이라서 이러는 것이 아니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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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세하가 구르는 날입니다.(엄격, 근엄, 진지)
세하: 뭐?
...그럼 다음편에서 뵙겠습니다!(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