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누스의 기사(Knight of Janus)-3편
에피메테이아 2016-05-19 0
왠지 모르게 올빼미 유저가 되는 것 같군요.(먼산)
어쨌든 3편 스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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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음.”
소피아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다지 납득했다는 표정은 아니었다. 그녀라면 이 정도 설명만으로도 뜻은 이해했을 터, 데이비드의 의향을 더 떠볼 심산이 분명했다. 데이비드는 속으로 혀를 차며 설명을 계속했다.
“지금은 차원전쟁 때처럼 대규모 침공이 있진 않습니다. 정말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저급한 차원종만 넘어올 뿐. 이런 상황은 단순 시뮬레이션 훈련보다 더 경험을 쌓기 좋고, 반면에 위험도는 상대적으로 낮은 절호의 기회입니다.”
“현장만큼 좋은 교실은 없지. 그거야 과인도 잘 아니라. 허나 굳이 그걸 어린 아이들에게 감수하게 해야 하나가 문제라 본다.”
“어르신.”
“형식적으로든 실질적으로든, 성인이 되고서부터 시작하게 해도 늦지 않다. 2세대 위상능력자들의 탄생은 그 수도 많고 그중에서 성인이 된 이들도 충분하지. 새 프로젝트는, 그런 이들을 상대로 해도 문제가 없었을 것이니라.”
“이상적으로 생각한다면 그럴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니 말해보라. 아이들이 충분한 교육이나 준비시간도 가지지 못하고 바로 현장에서 경험을 쌓아야할 확실한 이유가 있는가? 내몰아야할 긴급한 필요성 말이다.”
생사고락을 헤쳐 온 여인의 추궁은, 서릿발처럼 매서웠다. 칼날과 같은 논리는 데이비드의 양심을 거침없이 베어나갔고 엄중한 재촉은 쇳덩이처럼 그 마음을 짓눌렀다. 산전수전 다 겪은 제이조차도, 소피아의 추궁을 듣는 중에 식은땀을 흘렸다. 지켜보기만 하는 입장도 이런데 직접 대응해야하는 입장에서는 어떨까. 데이비드의 흔들리는 눈동자만이 그 고충을 짐작케 할 따름이었다.
“있습니다.”
그럼에도, 데이비드는 결국 자신의 의견을 관철했다. 추궁을 이어나가려던 소피아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호오?”
“들으신 그대로, 그래야 할 확실한 이유가 있습니다.”
“말하라. 그것이 정말 확실한 이유일지는, 과인이 듣고서 직접 판단하겠다.”
판단. 그것이 말로만 끝나지 않을 것임은 곧 드러났다. 데이비드와 제이는 사무실의 공기가 급격히 무거워지는 것을 피부로 느꼈다. 그것은 환각이거나 기분 탓이 아니었다. 소피아에게서 흘러나오는 ‘무언가’가 사무실을 채워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여차하면 그것은 거대한 물살이, 혹은 돌 더미가 되어서 두 사람에게 내려치리라.
“지피지기 백전불태.”
데이비드가 답을 내놓았다. 소피아는 그가 내놓은 말을 이리저리 곱씹어보았다. 한자야 당연히 알고 있었고, 그 속뜻 또한 익히 들어본 것이었다. 데이비드를 바라보는 눈길이 한층 더 가늘어졌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아니하다. 좋은 고언이다. 헌데, 그것이 아이들을 싸움터에 내모는 것과 무슨 연관이 있는가?”
“위상력은, 어르신도 모르는 힘이기 때문입니다.”
우뚝.
공기가 멈추었다.
소피아에게서 뿜어져 나오던 무형의 힘이 그쳤다. 그것을 신호로, 데이비드는 봇물 터지듯 자신의 의견을 쏟아내었다.
“분명 어르신의 힘은 막강합니다. 군단장들조차 짓누른 당신께 그 누가 감히 약하다 하겠습니까. 당신의 힘을 전수받고, 당신이 이 땅에 조금씩 뿌려가는 힘은 조금씩이나마 결실을 맺고 있습니다.”
“…….”
“하지만 그것은 저희 쪽 사람들이 쓰는 위상력은 아닙니다.”
색다른 힘. 그것은 매력적이면서도 동시에 의문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소피아가 사용하는 힘은 그녀와 그녀의 휘하에 있는 기사단원에게만 전수되는 것이었고, 그 범위는 유럽과 아프리카로 제한되어있었다. 전 세계에 퍼져있는 위상능력자들은 소피아의 힘하고는 전혀 관련이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래서?”
“차원전쟁 동안, 우리 인간들은 위상력을 급하게 전쟁의 무기로만 쓸 생각을 했습니다. 그것이 어떤 힘이고, 어떻게 써야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될지도 모른 채로 말입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힘으로 자멸했고 심지어는 동료에게까지 상처를 주었습니다. 이것이 제가 처음에 말한 주먹구구식의 결과물입니다.”
“그렇다는 건, 아이들이 꼭 실험체라는 이야기처럼 들리는데.”
“아이들만이 아닙니다. 그들에게 지시를 내리고, 그들과 함께하고, 가르치는 입장인 저와 수많은 어른들도 실험체겠지요.”
자신이 실험체다. 그 과격한 자기비하에 소피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곳에 온 이래로 최초로 보인 격렬한 반응이었다. 흐르기를 멈췄던 힘이 다시 흘렀다. 그 방향은, 아까하고는 반대로 소피아 자신을 향했다.
“진심으로 하는 말인가? 데이비드군.”
“거짓말은 하지 않습니다. 당신에게 그런 것이 소용없다는 사실은, 당신하고 한때 전우였던 저와 제이도 잘 알고 있으니까요.”
데이비드의 말에는 열기마저 섞여있었다. 그 당당한 변명을 들은 소피아가, 데이비드를 똑바로 보았다. 찬란한 금색 눈빛이 X-레이처럼 그를 이리저리 훑어보았다. 잠시 후… 소피아는 한숨을 내쉬었다.
“최소한 각오는 확실해 보이는구나.”
이번 한숨은 안도감이 섞인, 편안한 한숨이었다.
“요지는 이해하였다. 너희가 다뤄야할 그 힘을 이해하기 위해서, 장기간에 걸친 팀 구성과 운영이 필요하다 이건가?”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좋다. 데이비드군이 말한 대로 과인은 위상력에 대해서 모른다. 사람을 구하는 데만 집중했으니까. 그대의 말마따나 어찌 보면 무능했던 셈이기도 하겠군.”
그녀의 자조어린 목소리가 힘없이 흘러나왔다. 지난 십 수 년, 소피아는 자신이 가진 힘을 기사단에 배분하였고 유럽과 아프리카의 땅에서 힘을 얻을 수 있도록 노력을 해왔다. 하지만 정작 자신이 다루지 않는 힘, 위상력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
합리적인 입장에서야 바로 다룰 수 있는 힘을 먼저 이용하는 것이 맞았다. 하지만 장기적인 입장에서 보자면 데이비드의 말이 옳았다.
세상에 널리 퍼진 힘은 엄연히 위상력이었다.
“죄송합니다. 어르신께 본의 아니게 폐를 끼쳤습니다.”
“아니다. 맞는 말인데 그것을 과인이 뭐라 왈가왈부하겠는가. 그래. 그거라면 더는 반대할 이유가 없겠군.”
그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데이비드와 제이는 숨이 탁 트이는 것을 느꼈다. 사무실을 짓누르던 힘은 완전히 사라져있었다.
“과인은 그대를 지지하겠다. 데이비드군. 검은양 프로젝트에 대해서도,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하지.”
“감사합니다, 어르신.”
이것으로 되었다. 유니온 이사직도 겸하고 있는 그녀가 지지해준다면, 자신을 경계하는 지부장마저도 누를 수 있는 힘이 생길 터였다. 데이비드가 바란 최고의 시나리오였다. 그것을 위해서 너무도 큰 위험을 감수한 셈이었지만, 다행히도 그 위험은 지나갔다. 데이비드의 입가에 그림 같은 미소가 어렸다.
“도움은 아마 직접 나서는 것이 아닌, 후방에서의 지원이나 조언으로 한정해야겠구나.”
“예. 그 점은 어쩔 수 없을 듯합니다.”
목적이 목적이니만큼 위상력을 지닌 존재만 프로젝트에 직접 참여해야했다. 소피아가 전면에 나서서 차원종을 같이 잡아줄 수는 없었다. 그녀는 위상력을 사용하지 않으니 표본으로서 적합하지 않았던 것이다. 놀이터에 나가지 말란 말을 들은 아이처럼, 소피아는 아쉬운 기색이 역력해보였다.
“나서지 못해서 아쉬우신가 보군요.”
“뭐, 솔직히 요새 몸이 많이 찌뿌둥해지긴 했더니라. 할 일이 많아서 스트레스도 쌓였고.”
소피아의 입에서 혀가 날름 나왔다 사라졌다. 진지한 분위기가 사라지니, 공항에서 아이들에게 보였던 쾌활한 모습이 돌아왔다. 차원전쟁 때 바로 옆에서 싸웠던 제이는 남몰래 피식 웃었다. 그녀는 한없이 진지한가 하면, 또한 한없이 가벼웠다. 어느 쪽이든 그녀라는 점이 더욱 신기하기만 했다. 마치 카멜레온 같다고나 할까나?
그것이 그녀의 주변으로 사람을 끌어들인 비결이기도 하지만.
“하하하! 나중에라도 기회가 있으시겠지요. 어쨌거나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알았다. 아, 그리고…….”
그녀가 제이를 바라봤다. 제이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꽤나 복잡미묘한 감정이 들어있었다.
“제이군하고 잠깐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자리를 비워줄 수 있겠는가?”
“오. 물론입니다. 그럼 전 먼저 일어나보겠습니다.”
데이비드가 눈치껏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이는 당황한 얼굴로 데이비드를 쳐다봤지만, 뭐라 항의하기도 전에 그가 사무실을 나가버렸다. 한 사람의 신속한 퇴장으로, 사무실에는 이제 단 둘이 남게 되었다.
“네가 그러면 과인이 꼭 나쁜 일을 하려는 사람 같지 않겠느냐? 후후.”
“어르신을 보는데 부담이 안 될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굳이 따지자면 부담이 될 사람은 네가 아니라 과인이겠지.”
그렇게 말하는 소피아의 안색이 흐려졌다. 그녀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짐작한 제이는 정색을 하고 먼저 입을 열었다.
“사과 같은 거라면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 일은 어르신의 잘못이 아니니까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어른에게 책임이 없으면 그 누구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그들이 이야기하는 것은 꽤나 오래 전, 그러니까 제이가 아직 어른이 아니었을 시절에 관해서였다. 제이를 지금의 꼴로 만든 ‘어떤 일’… 소피아는 그것을 언급하면서 소태를 씹은 듯 인상을 찌푸렸다.
“그래도 어르신이 나서주셔서 그 정도로 끝났으니까요.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더 늦지 않았다면 훨씬 나았겠지만 말이니라. 뭐, 너에게도 좋은 기억은 아닐 테니 이쯤으로 하자꾸나. 과인이 괜히 널 붙잡아둔 모양이다.”
한탄하는 얼굴에 짙게 그림자가 내려앉았다. 더 말하고 싶은 것들이 산더미 같았지만, 차마 말하지 못한 말들이 입속에서 허무하게 흩어졌다. 그것들을 나오지 않게 하려고, 소피아는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10대 소녀처럼 보이던 외관은 어느새 초로의 늙은 여인처럼 빛이 바래있었다. 나이를 종잡기 힘든 변화였지만, 제이는 어느 쪽이 소피아의 진짜 나이에 가까운지 알고 있었다.
“이만 가보아라. 호출이 있지 않니?”
“호출이라뇨? 아!”
대화에 너무 집중했던 모양이었다. 주머니에 넣어둔 휴대폰이 몇 번 울렸음에도 알아채지 못했던 제이는, 소피아가 손으로 가리키고 나서야 그것을 인지할 수 있었다. 전화를 받은 제이는 곧바로 휴대폰에서 귀를 멀리해야 했다.
[대체 왜 전화를 안 받으시는 거예요!]
“아으… 미안해 유정씨. 어르신하고 대화를 하느라 그런 거니까 봐 줘.”
[봐주고 뭐고 애들은 벌써 출동했어요. 장소는 또 CGV 일대, 제이씨도 얼른 가세요!!]
귀청을 찢을 것 같은 잔소리였다. 제이는 귀를 후비며 고통을 호소했고, 구경하던 소피아는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어깨가 들썩거리는 모습을 보면, 왜 이러는지는 안 봐도 비디오였다.
“쿡쿡쿡, 서두르는 것이 좋겠구나.”
“하아~ 애들 위해서 시작하긴 했는데, 잔소리가 매일 심해지고 있네요.”
“알았으니 갔다오너라. 난 내 할 일이나 하고 있으마.”
급한 대로 눈인사만 대충 하고서, 제이는 창문을 열고 사이킥 무브를 시전했다. 너무 급했던 터라 바로 나갈 수 있는 길을 택했던 것이다.(물론 먼저 나가버린 데이비드에 대한 소소한 복수도 겸해서) 공기를 찢는 커다란 소리에 이어서 유리창이 깨지는 날카로운 소리가 방 안을 울렸다.
“저런, 저런. 가끔 손발이 먼저 나가는 성미는 그대로로구나.”
소피아는 자신에게 날아오던 유리조각을 대충 털어냈다. 그녀가 말을 끝내고 얼마 안 있어서, 깨진 유리조각들은 시간을 되감듯 다시 창문을 향해 날아갔다. 창문이 다시 제 모습을 갖추기까지 3초도 걸리지 않았다.
“그럼… 할 일이나 해볼까나?”
직접 차원종을 잡는 일은 가능하면 지양. 그렇다면 그녀가 할 일은 정해져있었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소피아는 시장부터 들러야겠다고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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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인지는 다음편에서...(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