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자 4화
검은코트의사내 2016-05-07 1
종례시간이 되자 세하는 곧바로 내옆에 붙어서 같이 하교하자고 했다. 나는 당연히 흔쾌히 승낙한다. 거절할 이유가 없으니까, 그리고 나는 그녀의 반 앞에서 기다렸다. 아직은 E반의 담임선생님이 뭔가를 말씀하시는 듯 했다. 그것도 오래가지 않았다. 곧 교실에서 학생들이 나왔고 슬비도 나를 발견하자 손을 흔들면서 다가왔다.
"기다린거야? 미안해."
"아니야. 아무것도."
미안하다는 표정을 짓는 건 오늘 몇번이나 봤는지 모른다. 언제봐도 질리지 않을 정도로 귀여웠다. E반의 학생들이 전부 이쪽으로 시선을 집중한다. 아마 슬비가 나와 대화하는 게 거슬린 모양이겠지. 남학생들은 사나운 눈빛으로 째려보고 있었다. 왠지 부담이 되어서 앞장서면서 그들의 시선을 피했고, 학교를 나올때까지 등골이 오싹한 느낌을 받아야만 했었다.
교문밖으로 나오자 슬비를 덮치는 뭔가가 나타났다. 순간 놀래서 차원종인가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슬비는 갑자기 나타난 상대에게 안긴채로 발버둥치고 있었고, 그 상대는 나와 같은 반인 서유리였다.
"꺄아아! 슬비슬비, 기다리고 있었어."
"으윽, 서유리. 비겁해. 기습하다니..."
"그야, 항상 날 피하니까 그런거지."
뭔가 의아한 상황이었다. 세하는 늘 봐서인지 아무렇지도 않는 표정을 지었다. 나에게 귓속말로 원래 쟤내들 저러니까 신경쓸 거 없다고 말했다. 그 소문은 진짜였나보다. 유리와 슬비의 베스트 프랜드라는 사실말이다. 슬비의 얼굴은 그녀의 가슴에 파묻힌 채로 양손을 흔들면서 떼어내려고 하고 있었다.
"아, 석봉아, 안녕!"
슬비를 떼어낸 유리가 나에게 환한 미소로 손을 흔들었다. 나는 얼떨결에 손을 흔들었지만 슬비의 상태가 어떤지 신경이 쓰였다. 양볼이 빨개진 채로 얼굴표정관리하는 모습이었다. 혹시 유리가 슬비를 괴롭힌 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지만 슬비는 잠시 후에 헛기침을 하면서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아무튼 가자."
"아, 석봉아. 바래다 줄게."
"으응? 그건 고마운데... 이렇게 다 같이 갈 필요가 있어?"
확실히 그건 좀 아니었다. 자기가 집가는데 단체로 따라오는 게 왠지 부담스럽다. 세하는 그말에 일리가 있다는 듯이 슬비와 유리에게 말하자 그들은 잠시 상의하더니 결과를 알려주었다.
"좋아. 오늘은 나와 같이 가는거야. 내일은 유리, 모레는 세하, 이런 순으로 말이야. 알았지?"
슬비의 결정에 그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왠지 뭔가 부담스러웠다. 교대로 왠지 감시당하는 기분이라서 내키지 않았다. 만약에 슬비만 나와 같이 가준다면 모르겠지만 말이다. 차원종때문에 내가 이렇게 살아야되다니 한동안은 조용해지지 않을 거 같았
다. 어쩌면 준우일행에게 괴롭힘 당하는 것보다 더 위험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은 기분이다.
슬비는 내옆에서 아무말도 하지 않은 채 나만 따라왔다. 우리 둘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이미 슬비가 나에게 궁금한 건 전부 물어봤고 나는 대답을 다한 상태였기에 이제 더 할말이 없었다. 뭐라고 말을 꺼내야되는데 아 맞다. 세하와 혹시 손이라도 잡아봤는지 물어봐야된다. 궁금해서 미칠 거 같아서 물어보려고 했지만 입이 쉽게 열리지 않았다. 혹시나 슬비가 기분나빠하는 게 아닐까 생각하면서 하고싶은 말을 꺼내지도 못했다.
분명히 싫어할 거라고 생각했다. 슬비는 차가운 성격으로 시크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남학생들에게는 우상이었다. 하지만 오늘 슬비가 나에게 해줬던 행동은 소문과는 거리가 멀어보였다. 의외로 다정한 사람이다. 오늘 심장이 몇번이나 정지할 뻔했는지 모른다. 이대로 시간이 멈춰줬으면 했다. 비록 아무대화도 없이 걸어가고 있지만 그래도 같이 있는 것만해도 기분이 좋았다. 손까지 잡으면 어떨까 생각했지만 싫어할 거 같아서 쉽게 손을 움직이지 못했다. 아까는 슬비가 나에게 할말있어서 그런 것 뿐이다. 그러니 이번에 내가 이유없이 손을 내미는 것은 신사적인 행동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어떻게 그렇게 잘아냐고? 난 게임을 많이해봤다. 그 중에서 미연시 게임도 하면서 히로인들을 많이 공략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여자에 대해서 어느정도 잘 알고 있었다. 모르는 남자가 갑자기 자기몸을 만지려고 하면 불쾌하다는 듯이 바로 화를 내버리는 것도 잘 안다. 그리고 사람 성격마다 다르지만 보통 여자들은 남자가 먼저 손을 내밀어 자기손을 잡으려는 것자체를 싫어한다. 그래서 남자들은 끓어오르는 욕망을 억제할 줄 알아야된다. 그러지 못하면 연애는 실패다. 천천히 연애진도를 나가면서 행동해야되기 때문에 조심성이 많이 필요했다. 나도 이번에 처음으로 경험하는 느낌이었다. 물론 지금은 그런관계는 아니지만 그런관계가 되기 위해서라도 조심스럽게 행동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면서 지금까지 히로인 공략했던 것을 기억하면서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저, 슬비야... 많이 힘들지 않아? 클로저 일."
"응. 지금도 골치가 아플 정도야. 팀원들 관리하는 것도 차원종 처리하는 것도 쉽지 않는 일이지."
"고생이 많겠어. 슬비야. 그런데 나 때문에 이렇게 시간 뺏겨도 돼?"
"아니야. 석봉아.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이건 임무니까. 차원종에게서 민간인을 보호하는 건 당연한 거니까 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돼."
"그렇구나."
이런 대화를 끝으로 다시 어색한 분위기가 되었다. 뭐 일단은 넘어갔다. 처음에는 이렇게 해야된다. 나는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면서 걸어가며 또 무슨 말을 꺼낼까 생각했지만 이미 우리집에 다온 뒤였다.
"여기야. 슬비야."
"응, 난 이만 가볼게. 밤에 집밖으로 나오지 말고. 알았지?"
"으응. 그럴게."
슬비는 미련없이 뒤를 돌아서 어딘가로 걸어간다. 나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뭐라고 말하려다가 말았다. 그래, 오늘은 이정도로 끝내기로 하고 초인종을 누르며 집안으로 들어갔다.
"어서와라. 아들."
부모님이 활짝 웃으며 나를 맞이해주신다. 항상 이런식이지만 나는 싫지않았다. 오히려 오늘은 평소보다 더 기분좋았다는 듯이 미소를 짓자 부모님은 조금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뭐 좋은일 있었어?"
"아뇨. 아니에요."
"밥먹어라. 지금 막 저녁먹으려던 참이었어."
"네."
나는 부모님이 반갑게 맞이해준 것도 좋았지만 바라는 게 있었다. 내 장래희망에 간섭하지 말아줬으면 하는 것, 내 장래희망을 얘기하면 또 부모님이 화내실 게 뻔했다. 저번에 한번 한소리 들은 이후로 나는 장래희망을 바꿀 수밖에 없는 상황, 거대기업회장을 목표로 하겠다고 말하자 부모님은 그 때 이후로 이렇게 맞이해주셨다.
나는 저녁식사를 마치고 침대에 누워서 멍하니 천장을 보면서 슬비생각만했다. 클로저일로 차원종을 처단하면서 지키는 게 쉬운일인가? 게임에서는 쉬울지도 모르지만 현실은 어렵다. 목숨을 걸고 하는 일이니까 항상 그녀는 죽음의 문앞에서 싸워야만 하는 셈이었다. 그런 그녀가 왠지 안타깝게 느껴졌다. 세하도 유리도 차원종과 싸우면서 크거나 작은 상처를 달고 학교에 온 적이 있었다. 나라도 뭔가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위상력이 있었으면... 이렇게 바랬다. 그렇게 나는 일단 오늘은 푹 쉬고 내일 다시 그녀를 만나서 확실히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불끄고 잠자리에 들었다.
차가운 냉기가 느껴졌다. 분명히 나는 이불덮고 자고 있었다. 이불에 얼음이라도 들었나? 왜이렇게 춥지하면서 두손으로 가슴을 감싼채로 덜덜 떨었다. 손을 뻗어보니 내가 이불을 걷어찼나보다 생각이 들어 잠이 덜깬 눈으로 이불을 찾으려고 했지만 아무데도 없었다. 그러고보니 내가 누워있는 곳이 뭔가 울퉁불퉁하고 딱딱한 느낌이었다. 내 침대는 부드러운 매트로 되어있는데 어떻게 된거지 하면서 눈을 뜨고 살펴보았다. 시멘트로 된 도로길이다. 왜 침대가 이렇게 변했지? 이렇게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주변을 돌아보니 여기는 골목길이다. 우리집이 아니었다. 왜 내가 여기에 있는 것일까? 영문을 모른 채로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뭔가 오싹한 느낌이 들어서 그곳을 보자 사람 한명이 쓰러져있는 게 보였다.
"저기요. 여기서 주무시면 감기걸려요."
어두워서 그사람 얼굴이 어떤지 몰랐다. 하지만 마침 자동차가 지나가면서 비춰진 헤드라이트 불빛으로 그사람의 얼굴을 볼 수가 있었다.
"허억!!"
설마 잘못봤겠지 하면서 잠시 서있다가 그 사람의 주변에 떨어진 스마트폰을 주워 그것의 불빛으로 밝혀보자 나는 저절로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몸전체가 할퀴어진 상처로 되어있었고, 그사람의 옷이 빨갛게 물들어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얼굴을 자세히보니 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는 나를 괴롭히던 준우일행 중 한명이었기 때문이다.
"으아아아아악!!!!"
나는 비명을 지르면서 그 현장에서 출행랑을 쳤다. 왜 저렇게 죽어있는 거야?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나는 무서워서 그대로 도망을 쳤다. 다행히 밤늦은 시간이라 아무도 본 사람은 없겠지만 곧 알려질 것이다. 그래, 그건 차원종의 짓이다. 하지만 왜 나는 여기에 있었단 말인가? 그건 나중에 생각할 일이다. 지금은 도망치는 것 뿐이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