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경대 이야기. -어떤 경찰의 푸념-
거츠 2016-04-29 1
누구 말마따나 '시대는 변한다' 라고 한다. 그래서 살아오면서 눈으로 지켜본 결과 확실히 뭔가 바뀌기는 했다. 문제는 그 변화가 브레이크 날아간 내리막길의 자전거마냥 주체하지 못한 채 가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내 나이 34. 특히 지금 나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울지 못해 웃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놈의 지긋지긋한, 차원종.
20대 중반에 처음으로 만난 녀석들 덕분에 일단 잘 다니던 내 회사가 건물 송두리째 반파되는 어마어마한 광경을 목격할 수 있었다. 그 때 생각해보면 어버버 거리면서 '괴물이다' 라는 것 말고는 자세히 기억나지 않는다. 실금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말을 증명하기라도 하듯이 때마침 등장한 수많은 위상능력자들 덕분에 여차여차 잘 넘어가는것 같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의 안전과 생명보존 뒤에는 늘 그러하듯이 희생자들이라는 대역들이 존재했다. 그들 덕에 지금 이렇게 숨을 쉬면서 살고 있으니 그들이 매우 안타깝다. 그래, 더 안타까운건 그 희생자들 속에 내 부모와 동생마저 있다는 것이지.
몸이 반으로 뚝 갈라진 동생의 시체를 보면서 나는 무엇을 느꼈는가?
분노? 아쉽지만 그런 형편좋은 감정치레를 그 역겨운 괴물들 앞에서 불태우기엔 나는 너무 현실적이었고 또 지독히도 겁에 질려 있었다.
두 다리가 달려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도망이라도 칠 수 있었으니까.
용가리 통뼈를 씹어먹는 위상능력자들이 아닌 다음에야 그들에게 대항할 수 있는 방법은 대위상무기를 보유하는 것 말고는 답이 없는데, 그 위험한 살상무기를 겁에 질려 도망다니는 민간인에게 줄 바보는 또 없었다.
시간이 더 흘러 가족이 차원종에게 '살해' 당했다는 것을 인지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조금 길었던 모양이다. 항상 깔끔하던 수염은 이제 삐죽삐죽 그 형태가 일정하지 않고 무작위로 나 있었고 그 당시 내 마음은 텅 빈 깡통마냥 볼품없었다.
나는 위상능력자들이 우리를 구원해줄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우습게도 내 아버지는 항시 '오는게 있으면 가는게 있다'고 주장하던 양반이었다. 어쩔 수 없이 그 사람 아들로 태어난 마당에 조금 물들었던 건 내 선택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이젠 모든 일에서 '우연'을 찾지 않는 나름 객관적인 시야가 생겼다고 할까?
차원종이 없었다면 위상능력자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 생각. 아주, 막연한, 그런 생각.
나는 과학자가 아니다. 그저 20대 중반에 운 좋게 중견기업에 신입사원으로 들어간 샐러리맨이라고 부르기도 어색한, 사회의 어중이떠중이다. 쉽게 표현하자면 군중의 일부이고 잉여시민이겠지. 그런 나에게 어떤 전쟁의 정의니 대의니 부르짖어봤자 내 눈에 보이는 건 위협받는 내 생명과 위상력이라는 희대의 특권으로 떵떵거리는 몇몇 클로저들 뿐이었다.
문을 닫는 자들이라니. 거 참 형편좋은 이야기 아닌가?
정신차렸을 때 손에 쥐어진 건 단 하나도 없었다. 볼품없는 양복 한벌과 찢겨진 넥타이가 당시 내 처지를 설명해줄 뿐. 가족의 죽음이후 내 의식을 뒤덮고 있던 명제는 딱 하나였다.
'이제 어떻게 살지?'
막연한 감조차 잡히지 않는 지독한 초조함이 폐부를 찌르며 서식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이, 너무나도 변해버린 세상과 절대로 친해질 수 없다는 기시감을 인정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아마 나는 그 때
정말로 절망했던것 같다. 가족의 죽음을 목격했을 때 보다 더.
그렇게 흘러흘러서 우습게도 나는 어렷을 적 누가 줘도 안할 거라고 소리쳤던 '경찰'이 되어버렸다. 심지어 '특수경찰'이다.
빌어먹게도 차원종과 싸우는게 내 본업의 사명이란다.
허름하게 낡은 방탄복과 선배의 선배로부터 물려받은 싸구려 대위상 장비들이 내 신분을 나타내준다. 미안하지만 외부에서 바라보는, 그 2류 SF영화에서나 등장할 법한 우스꽝스러운 투구는 속이 진짜 불편하다. 심지어 그게 어떤 특별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첨단장비라서 항상 머리에 뒤집어쓰고 다닐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짜증나는 오토바이 헬멧이다.
전쟁 전에 내 성격은 그래도 봐줄만 했다. 적당히 소심하고 적당히 용감하고 또 적당히 해 먹을 수 있었다. 군대도 나와서 어느 정도 사람구실은 한다고 스스로 생각했던 시기였다고나할까. 문제는 이놈의 차원종들이 인류 뒤통수를 후드려갈기면서 일으킨 차원전쟁의 여파로 인해서 내 성격도 약간 맛이 가 버렸다고 해야할 것이다.
뇌가 차원속 분진에 오염되서 그런건지 아니면 정말 앞에서 말한 그놈의 망할 투구가 제 기능을 잃어버려서 오염되어 버린 건지는 모르겠지만 우수한 유니온의 과학자께서 날 보시더니 '얼마 못 살것이다' 하는 그런 시한부판정까지 깔끔하게 내려주신 마당이다.
'삶은 아름답다' 라고 말한 어떤 철학 책의 구절이 생각난다.
지금 여기서 다시 되묻는다. '정말 아름다운가?' 내가 이렇게 망가질 때까지 혹은 정말 죽을 때까지 삶을 구가할 가치가 있는 것인가? 웬지 중2때 하던 낯 간지러운 오래된 사춘기 시절을 상기하는 것 같지만 그 말이 주는 무게감이 그때와 지금은 다르다.
특경대 경위 이진오.
지금부터 말하는 건 강남에서 벌어진 일들이 아닌 강북에서 일어난, 그리고 단 한명의 클로저의 지원도 없이 한 달을 버티던 3분대 특경대원들의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