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하슬비] 용서해주세요 - 5. 시민아파트 -

Articulus 2016-03-29 7




※ 이 내용은 기본적으로 클로저스의 기존 설정에 기반하지만, 작가의 상상력이 매우 많이 가미되어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이와 마찬가지로 국제공항 이후의 스토리는 완전히 작가의 상상력에 근거하므로, 본작의 에피소드와는 차이가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5-1



  "좋아해."


  내가 뭐라고 한거지?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그 말, 내 안에서부터 막을 수 없이 뛰쳐나온 그 말은, 나의 진심.

 

  "이세하…"

  "모르겠어? 나, 너 좋아한다고, 이슬비."


  슬비의 얼굴은 더욱 붉게 물들어간다.

  고개를 푹 숙여버린 그녀의 앞에 다가가 그녀의 고개를 억지로 치켜올리곤 다시 말했다.


  "네가 싫다면 난 깨끗이 포기할 수 있어.

   하지만 이렇게 아무말도 안하면, 나는… 당장 죽어버릴 것 같아."

 

  마주 본 우리의 얼굴.

  그녀의 얼굴 만큼이나 나도 확실히 얼굴이 달아올라있는지 너무나도 덥다.

  이 말을 하는 동안에도 내 심장은 터질 것만 같다. 이것이 고백의 느낌일까?


  "말해줘! 이슬비!"

  "난… 난…"



  어디선가 노래가 들려온다.

  마치 이건 드라마가 끝날 때 들려올 것 같은 노래다.


  갑자기 내 눈 앞에 왠 TV가 있었고, 방금 전까지 내가 있던 그 자리에는 나와 함께 이슬비가 있다. 나는 그 장면과 함께 제작지원으로 유명한 커피전문체인점인 카페네네의 로고가 나오는 것을 TV로 보고 있었고, 그 노래는 TV 안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 이거 꿈이구나.


.

.

.


  한참을 자리에 앉아있었다. 20분 정도는 그대로 멍하니, 침대 위에서 상체만 일으키고 있었던 것 같다.

  원래 일어나는 시간보다 1시간 정도 일찍 일어났기에 망정이지, 안그러면 나는 꼼짝없이 지각했을테지. 평소같았으면 더 잤겠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잘 수 없었다.

  아마 꿈 때문일까?


  남산타워 위에서 우리는 11시쯤 내려왔다.

  그곳에서 내려와서 버스를 탈 때까지는 분명히 같이였지만, 비록 우리 두 사람은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살고 있었어도 환승하는 분명히 버스는 갈렸기에, 나와 슬비가 타는 버스는 신서울역 환승센터에서 헤어져야만 했다.

  버스를 타서는 잘가라는 메시지만 주고 받은 뒤, 우리는 집으로 돌아갔다.


  "아, 내가 도대체 왜 이러는거야."


  얼굴을 이불 속에 파묻는다.

  하지만 동틀녘의 여명의 빛이 창문을 통해 들어온다. 잠을 자긴 글러먹었구나.


  시계를 본다.  

  "5시 반."


  어쩔 수 없다.

  일어난 김에 확실하게 일어나버려야지.

  좀 씻고나면 이 뒤숭숭한 마음이 가라앉을지도 모른다. 


  이불 밖으로 나오자 썰렁한 공기가 온 몸을 감쌌다. 몸을 잠시 떨었지만, 곧 적응된건지 몸은 더이상 떨리지 않았다. 다만 여전히 머릿속에는 그 꿈이 잊히지 않는다.

   꿈에 나타난 그 녀석은 답을 주지 않았다. 그게 걸리는걸까.


.

.

.


  "다녀올게요."


  아마 잠에 취해있을 엄마에게 다녀오겠다는 소리는 들리지 않겠지만, 그래도 평소의 습관처럼 소리를 내어 내가 나간다는 사실을 알렸다.


  "그래, 잘 다녀오렴."


  엄마가 깨어있었나?
  보통 이 시간대에 엄마는 자고 있을텐데. 이상한 일이다.
 
  문을 닫고 밖으로 나갔을 때, 아마 그녀가 손목에 차고있는 시계를 보면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 녀석과 함께 등교길을 걷는 것은 나에겐 분명히 또다른 행복이다. 기꺼이 그녀가 나를 위해 시간을 내어주는 것이기에.

 

  하지만 문을 닫고 뒤를 돌았을 때, 나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슬비는 없었다.
  나와 함께가기 위해 기다리고 있던건, 어제로 끝이었던 걸까.


  혹시나 내가 제대로 못본 것일까 하여 다시 주위를 두리번거렸지만, 여전히 슬비는 보이지 않았다.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것일까?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거야?"


  슬비에 대한 생각을 털어낸다.

  그래 그 녀석이 날 기다려줄 것이라는 기대는 처음부터 하지 않아야했다. 오히려 그렇게 기대를 하는 것이 더 이상하다.

  정말로 난 슬비에게 푹 빠져버린걸까.


  손바닥으로 내 얼굴을 두 번 정도 치고서, 나는 제정신을 찾은 후 학교로의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래, 아마 이슬비는 먼저 학교로 갔을 것이다.


  발걸음을 내딛을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이 생각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설마 그 녀석, 시민아파트에 혼자 간거야?"

  나의 얼굴은 어느새 남산을 향하고 있었다.

 



  ◆ 5-2


  아침 일찍부터 나와서 지금은 사람이 살지않는 허름한 아파트 근방을 두리번 거리는 인기척이 있었다. 불어오는 바람에 흩날리는 분홍색의 단발머리가 잘 어울리는 이 소녀의 이름은 이슬비.

  그녀는 검은양 팀의 리더로서, 지난 밤 이곳의 수색을 다 마치지 못했기에 아침 일찍부터 이곳에 와서 단독수색을 진행중이다. 교복차림인 것을 보아하니 분명히 학교로 가는 길이었을 것이다.


  등교길에 오르기 전, 그녀는 먼저 이곳으로 왔다.

  과거 차원전쟁 당시에는 이곳에도 차원종이 자주 출몰했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이 근방은 사람들이 많이 살지 않고 인적도 매우 드문 곳이다. 이 주위 근방의 출입금지 구역에는 위상력 억제기가 몇 대 씩이나 설치되어 있어서 더 이상 차원종이 출현하지는 않지만, 엇그제의 신고와 어제의 사건을 종합해보건대 분명히 이 근방에는 차원종이 숨어 있다. 어디인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히 이 근방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형상복제자.

  그 차원종들은 분명히 일반 클로저들과는 또 다른 위상력을 사용한다. 사실 힘의 원형은 차원종의 위상력이지만, 분명히 인간의 그것과는 성질이 다르기 때문에 별개의 것으로 붙인다. 그렇다고 해도 그 근본은 위상력이라는 공통 분모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뚜렷하다면 클로저는 차원종의 위상력의 기척이나 흔적을 알아낼 수 있다.

 

  이것은 특경대와 같은 일반인들이 차원종을 발견해내는 위상변곡률과는 별개의 개념이다. 차원종이 등장한 시기에 한해서 특경대가 차원종을 추적이 가능하다면, 숙련된 클로저는 차원종의 등장 이후부터 일정 시간동안의 차원종의 움직임의 기척을 알아차릴 수 있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에서는 일이 잘 풀려나가고 있다는 기색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세하의 모습을 복제했던 그 녀석, 위상력을 감지해낼 수 없었어.

  지금 여기도, 전혀 위상력이 느껴지지 않아. 도대체 왜?"


 

  사뭇 진지한 표정을 지은 채로 그녀는 시민아파트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들어서는 입구조차 허름해서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생긴 이 아파트는 차원전쟁 발발 후에도 굳건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의 흐름은 결코 강인한 것도 그대로 놔두지 않는다.

  지어진 지 어언 50년이 다 되어가는 이 건물에는 더이상 사람은 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서울시는 이 건물을 철거하지 않고 그대로 놔두었는데, 그 이유는 알 수 없다.


  입구를 지나 복도에 들어서자, 확실히 사람이 살지 않는다는 것이 느껴진다.

  천장 구석구석에 방치된 형광등 사이사이와 구석진 곳으로 길게 늘어진 거미줄과 수북히 쌓인 먼지는 이곳이 금수(禽獸)의 공간임을 보여주었다. 매캐한 먼지가 올라와서인지 슬비는 두어번 정도 기침을 했다.


  불조차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는 보급품으로 나온 손전등을 켜서 어두운 아파트 안을 두리번 거리며 살폈다. 으슥해서 정말 무언가가 튀어나와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분위기이다.

  하지만 수많은 차원종을 상대해오면서 많은 일을 겪었던 그녀이기에 두려운 것은 없었다. 다만 그녀에게 걸리는 것은 이 안에 들어와서도 여전히 형상복제자의 기척을 못 찾고 있다는 것이다.


  "녀석들의 기척이 전혀 안 느껴져… 이 안에서까지도 전혀. 방향을 잘못 짚은걸까?"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있을 때, 이 케케묵은 공간을 울리는 감미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슬비."



  그의 목소리를 듣자, 슬비는 곧바로 뒤를 돌아보았다.

  거기에는 교복차림의 남성이 있었다. 그녀와 또래이자, 같은 팀의 일원인 그 남자 아이. 이세하다.


  "이세하…? 여긴 무슨 일이야?"

  "너야 말로 여기서 혼자서 뭐하는거야?"

  "어젯밤에 이곳을 수색하지 못했어. 늦게나마 지금이라도 와서 수색하고 있는거야."

  "빨리 학교가자. 이러다가 늦겠어."

  "이세하, 너, 여기까지 일부러 날 찾아온거야?"

  "여기로 가면 너가 있을 것 같아서."

 

  대답도 하기 전에, 세하의 손이 슬비의 손을 붙잡는다.

  따뜻한 온기가 손을 타고 그대로 다가왔다. 지금은 장갑도 끼지 않고 있어서 손의 살결이 그대로 와닿는다. 


  "학교로 가자."

  "응."


  슬비는 그대로 시민아파트를 빠져나올 수밖에 없었다.

  아파트 밖으로 그녀를 인도해낸 세하는 허름한 입구를 넘어서야 그녀의 손을 놓아주었다. 그리고 그녀와 함께 아파트 단지 아래로 천천히 내려간다.



  계속해서 걷는 중, 슬비는 문득 이상함을 느꼈다.

  분명히 발걸음을 맞추어 걷고 있던 것 같지만, 어느새인가 세하는 그녀보다 뒤로 쳐져서 걷고 있었다. 그를 기다리고 다시 발걸음을 맞추면, 또 어느새인가 그의 발걸음이 늦어져 그녀보다 뒤로 쳐진다.

  이상함을 느낀 슬비가 말했다.


  "이세하, 왜 이렇게 발걸음이 늦어?"

 

  뒤를 돌아본다.

  거기에는, 아무도 없다.


  "이세…하?"



  불길한 예감이 그녀에게 몰아친다.

  마치 매서운 눈보라처럼 그녀의 온 몸을 차갑게 얼리듯 이상한 느낌이 그녀에게 밀려온다.

  그제서야 그녀가 생각한 것은 형상복제자가 이세하의 모습을 복제했었다는 사실이다. 형상복제자는 여러 개체가 있더라도 하나의 의식으로 묶여있기 때문에, 주로 한 명을 여러 모습으로 복제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있었던 세하는, 어쩌면…



  그녀는 가방 안에 숨겨뒀던 페이즈 나이프 한 쌍을 소환해내어 꺼내들었다.

  비록 요원복 차림은 아니지만 그녀는 이미 전투에 임할 준비가 되었다.


  "작전 개시. 적을 섬멸합니다."


 

  그녀는 자신의 특기인 염동력을 사용하여 공중으로 높이 부유하였다.

  이곳 시민 아파트의 입구 부근은 시야가 확 트여있지 않고 막혀 있다. 특히나 그녀의 공격은 대다수가 원거리에서 공격을 쏟아붓는 방식이기 때문에, 이렇게 막힌 상황에서 근접전으로 갈 시에는 그녀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하다.

  그녀는 속으로 '이럴 때 세하가 있었더라면'하고 그를 찾지만, 그는 이 주위에 없다. 그것은 그녀가 단독 임무를 속행하기로 결정한 때로부터 이미 결정된 바이다. 그래도 그녀는 검은양 팀의 리더, 결코 차원종에게 무릎 꿇을 정도의 실력만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녀가 가진 클로저로서의 능력은 이미 A급 요원에 필적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그녀가 고작 형상복제자에게 당할리는 없다.


  공중에 부유하여 시민아파트의 옥상에 착지한 그녀는 그녀의 주위로 비트들을 소환해내었고, 근방을 두리번거리며 적을 찾는다.

  분명히 그 녀석은 이 근방 어딘가에 숨어 그녀의 목을 노리고 있을 것이다. 이세하의 모습을 복제했다면 놈은 원거리 공격보다는 근거리 공격을 택할 것이다. 녀석이 접근해온다면 반드시 그녀에게 포착된다. 그 때 놈에게 공격을 퍼부으면, 그녀는 손쉽게 승리를 얻을 수 있다.



  그 때, 그녀의 뒤로 저벅- 하고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렸다.

  "거기냐!"


  그녀는 소환해낸 비트 중의 일부를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쏘아내었다.

  빛의 속도처럼 쏘아진 탄환(비트)은 이미 공기와의 마찰열로 녹아내렸지만 그 잔해는 그대로 도달하여 직격한다. 그녀의 공격은 모든 것을 열과 운동에너지로 관통해내는 대구경 탄환이라고 할 수 있다.

  아무리 차원종이 단단한 갑주를 가지고 있다한들 그녀의 공격을 막아낼 수 없다. 그것은 이미 외부 차원의 탐사 때도 증명된 바이다. 그 녀석들보다는 훨씬 하위의 존재일 형상복제자가 감히 그녀의 공격을 막을 수 있으랴?



  슈앙- 슈앙- 슈앙-

  쏘아진 세 발의 비트가 그대로 무언가를 관통한다. 

  들려온 소리는 무언가 돌과 같이 딱딱한 것을 관통하는 소리였다. 하지만 소리는 오래가지 않아 사라졌고, 그녀의 시선이 탄환을 향했을 때에 그녀는 발사한 세 발의 비트가 모두 옥상 바닥에 박혀있다는 것을 재빨리 인식했다.


  그 때, 등 뒤에서 날카로운 소리가 들린다.

  공기가 모여드는 소리와 같다고 하면 좋을까? 하지만 그것과는 분명히 구별되는 소리이다. 이 낮은 떨림으로 인해 발생하는 이 소리는 이미 꽤 여러차례 들어본 적이 있다. 이것은 이세하가 자신의 건블레이드에 위상력을 집속시켜 공격의 범위를 크게 넓힐 때 나던 소리이다.

  하지만 세하는 이곳에 없다. 그 말은 바로 그녀의 뒤에 '녀석'이 나타나있다는 말이다.



  "에잇!"

  그녀는 공격을 당하기도 전에 남아있는 모든 비트를 일제히 소리가 난 곳으로 발사시켰다.

  도합 4발의 남은 탄환은 모두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공기를 작게 팽창시켜 폭발하듯 날아간다. 공기총을 쏘는 것 같은 이 소리가 들리는 것이 무섭게, 까앙- 하고 네 번의 격철음이 시끄럽게 울었다.


  슬비는 기겁했다.

  이 형상복제자는 그녀가 쏘아낸 네 개의 탄환을 모두 튕겨내버렸다. 그리고 곧바로 그녀를 향해 날카로운 칼날을 들이대려고 했다.

  무언가가 재빠르게 공기를 가르며 날아오는 것이 들린다. 그리고 가까워져오는 푸른 섬광은 '녀석'이 세하의 어떤 능력을 사용했는지도 보여준다.



  세하가 이름 짓기로는 '유성검'.

  아마 '녀석'이 사용한 기술의 정체는 이것이리라.


  찔러들어오는 검 끝을 피하기 위해서, 그녀는 주머니 속에 있는 초소형 웜홀 캡슐을 등 뒤로 던졌다.

  그리고 그녀는 마치 빨려 들어가듯 모습이 사라졌고, 그녀가 사라지기가 무섭게 그 자리로 파고든 푸른 인영 속에서 교복을 입은 이세하의 모습이 나타났다. '녀석'의 검은 옥상 바닥 깊숙히 박혀버렸는데, 만일 슬비가 일찍 눈치채지 못했거든 어떤 일을 당했을지 생각하면 아찔하다.


  웜홀을 생성하여 충분히 '녀석'과의 거리를 벌린 그녀는 바닥에 박힌 건블레이드를 빼기 위해 힘을 쓰고 있는 녀석을 향해 재소환한 비트 7발을 일제히 쏘았다.

  발빠른 슬비의 공격을 미처 피하지 못한 녀석은 그대로 몸이 7발의 비트에 관통당한 채로 땅에 쓰러진다. 그리고 '녀석'의 사체는 여느 차원종이 죽을 때에 그러하듯 빛의 가루가 되듯 바람에 날려 허공으로 사라진다.



  "후우…"


  한숨을 내쉬고 다시 숨을 들이키려던 차에, 갑자기 또 다시 뒤에서 철컥-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 소리 역시 이세하의 건블레이드의 소리이다. 특히 재장전을 끝내고 탄실을 다시 닫고 노리쇠가 후퇴할 때의 소리이다. 뻔하다, 또 다른 '놈'이다.


  형상복제자는 아직 완전히 섬멸된 것이 아니다. 한 명이 이미 죽었을지라도, 이미 또 다른 하나가 이 주위에 있다가 그녀를 죽이기 위해 전투에 끼어든 것이다.

  그녀는 재빨리 자켓의 주머니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초소형 웜홀 캡슐을 던져 탈출할 생각인 것이다. 하지만 주머니 속에 남은 여분의 캡슐은 존재하지 않았다. 요원복이 아닌 일반 교복에 그것이 있는 것이 더 신기할 정도이기에, 그녀는 이제 완전히 탈출할 수단이 없다.


  소리는 바로 뒤에서 들려왔다.

  녀석은 이슬비를 향해 토해놓을 화염과 폭발을 준비하고 있을테지. 아마 놈이 1초도 지나지 않아 방아쇠를 당길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푸른 화염이 그녀의 온 몸을 삼킬 것이다.

  급히 회피를 하기 위해 염동력을 풀고나서 중력의 법칙에 온 몸을 맡겼지만, 녀석 역시 마찬가지로 건블레이드의 끝을 그녀에게로 향한 채로 똑같이 지상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더이상 탈출구는 보이지 않는다.



  "세하야…"


  그녀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그 남자의 이름을 불렀다.

  죽기 전에 그녀가 남길 말은 이것 뿐일까?


  이세하의 형상을 한 그 녀석은 입가에 차갑게 미소를 흘리면서 방아쇠에 걸고있는 검지를 안쪽으로 천천히 당겼다.

  파쾅!


  무언가가 폭발하는 소리가 들렸다.

  슬비는 질끔 눈을 감았다.


  아픔은 느껴지지 않았다. 아픔을 느낄새도 없이 그녀가 죽은 것일까? 하지만 아픔 대신 그녀를 무언가가 끌어당겨 안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금새 온 몸이 따뜻해진다. 이렇게 그녀를 품에 꼭 안아준 사람이 누구인지 알기 위해 그녀는 눈을 떴다.


  그녀를 붙잡은 팔.

  억세게 그녀를 한 팔로 끌어안은 그 남자의 체취가 느껴졌다. 급하게 뛰어온건지 헐떡거리는 숨소리와 함께 약하게 풍기는 땀냄새. 하지만 그 사이에서도 확실하게 맡을 수 있는 이 향기는, 이세하이다.


  "이세하?"

  "이 멍청아! 누가 혼자 작전 나가랬어! 죽으면 어쩌려고!"


  말 대답을 할 틈도 주지 않은채 세하는 놈을 향해 또 다른 화염을 쏟아놓았다.

  발사된 두 발의 화염덩이가 '놈'의 몸을 감싸는듯 하더니, 녀석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느려졌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세하는 급격하게 녀석과의 거리를 좁혀, 녀석의 숨을 끊어놓을 마지막 공격을 선보였다.

  공격을 하기 전 그는 말했다.


  "꽉 잡아."


  그의 목소리에 담긴 의지는 분명했다.

  이유조차 물을 여지조차 허락받지 못한 그녀는 말없이 그의 옷자락을 있는 힘껏 잡았다.




  "별빛에…"


  주위로 몰려드는 푸른 섬광.

  마치 헬리혜성처럼 푸른 빛에 섞인 무색의 빛이 주위로 모여들었고, 세하가 쏘아낸 위상력에 반응하듯 폭발하며 충격적인 스피드를 세하에게 부여했다.



  "잠겨라!"


  공기를 가르고 재빠르게 날아가는 세하에 마치 매달린 것처럼 슬비는 붙들린채로 적을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세하의 검 끝은 녀석의 몸 한 가운데를 정확히 노리고 있었고, 채 2초도 되지 못해서 놈과 그들 사이의 거리는 0으로 좁혀졌다.

  그리고 녀석의 몸은 세하의 건블레이드에 완벽히 관통되었고, 바로 그 광경을 슬비는 눈 앞에서 목도했다. 세하의 표정은 무서우리만큼이나 단호하고 결연했으며 차가웠다.

  그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도 평상시의 세하라고 보기는 힘들었다. 그는 눈 앞의 이 녀석을 완벽히 제거하고 싶어하는듯 했다.


  "죽어."

  "운이, 좋구나."


  그렇게만 말하고서 이세하의 모습을 한 그 녀석은 서서히 형체가 사라져갔다.

  마지막으로 녀석의 얼굴만 남았을 때,


  왜 일까?

  녀석은 슬비를 보면서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그것은 마치 웃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 5-3


  시민 아파트의 소동이 끝나고 학교에 도착할 때까지, 나는 녀석의 말을 무시했다.

  그것은 그녀가 무모함에 도전했기 때문이다.


  만약에 너가 죽었다면, 나는 얼마나 허탈할까.

  너는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너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바보같은 이슬비.



  나는 토라진 표정으로 일관하며 학교 앞까지 왔다.

  슬비는 중간중간마다 나와 대화를 하기 위해 분위기를 바꿔보려고 했지만, 그런 시도를 모를 내가 아니다. 나는 여전히 무관심과 침묵으로 일관했고, 어느새인가 슬비는 더 이상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이 어색한 침묵은 학교의 담장에 이르기까지 이어졌고, 거의 등교시간이 빠듯할 무렵이 되어서 우리는 학교 앞에 도착했다.


  이 안으로 들어가면, 나는 아마 서유리 때문에 이 녀석과 대화를 잘 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단 둘이 있을 수 있는 시간은 지금이 끝이다. 이 시간이 지나가기 전에, 내가 묻고 싶었던 것을 물어야할 것 같다.


  "이슬비."

  "어?"


  침묵으로 일관하던 나의 목소리에 슬비는 꽤 놀란 모양이다.

  반응하는 녀석의 모습이 조금은 귀엽다. 조금더 놀려볼 생각이지만, 지금 내가 하려고 하는 말은 내 속에서부터 나오는 말이다. 결코 거짓은 없다.


  슬비와의 거리를 좁혀가며, 나는 그녀를 벽으로 몰아갔다.

  슬비가 벽에 완전히 달라붙자, 나는 녀석이 도망치지 못하도록 두 팔로 벽을 짚고섰다. 흔히 말하는 '벽

쿵'이라는 자세인데, 이것을 하는 나도 엄청 부끄럽다.

  이 녀석도 부끄러운 건지 얼굴이 시시로 붉게 물들어간다.


  "하나 묻자." 

  "…"

  "꿈에 너가 나왔어."

  "뭐?"

  "너한테 나는 이렇게 말했어.

  나, 너 좋아해."

  "ㅁ, 무슨 말을 하는거야, 이세하!"

  "난 이어서 물었어. 거절해도 좋으니까, 답을 달라고.

  넌 날 어떻게 생각하냐고. 하지만 너는 답이 없었지. 그렇게 난 잠에서 깨어났어."

  "그러니까 지금 너 말은, 지금 꿈에서 내가 하지 않은 말을 현실에서 답해 달라는거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슬비는 다소 어이없어하는 표정을 지었다. 게다가 매우 곤란해하는 표정까지 짓고있는 표정은 금방이라도 내 뺨을 때리더라도 할 말이 없을 것 같다.


  녀석은 나를 꿈과 현실도 구분못하는 바보로 보고 있는 것일까?

  하지만 아무래도 좋다. 나는 녀석에서의 답이 필요하다.

  답을 듣지 않으면 정말로 내가 죽어버릴 것 같다.

  거절이든지 승낙이든지, 어떤 것이든 좋다. 단 한 마디라도 좋으니 말해줘, 이슬비.



  "난… 난…"


  꿈에서와 똑같은 말이다.

  여기는 꿈이 아니다. 절대 여기에서 깰 일도 없다.

  돌아온 답은 예상 외였다.


  "이세하."


  나를 부르는 목소리.

 

  "응."

  "좋아해."

 

  잘못 들은거 아니지?

  내 귀를 의심하며 나는 다시 물었다.


  "다시 한 번 말해줘."

  "……"

  "이쯤하면 알아들을 만 하잖아, 이 바보야.

  나도 널 좋아해."




  그 한 마디에 나는 무너졌다.

  그리고 그대로 녀석을 있는 힘껏 끌어당겨 안았다. 아담한 녀석이 내 품 안에 완전히 안겨있다.

  거부의 손길 따윈 없이, 그녀도 나를 포근히 안아주었다.


  우리는 학교 등교종이 울릴 때까지, 그대로 서로를 안은채 놓아주지 않았다.







  얼마만에 올리는 소설인지... 하하..

  한 달 동안 교생실습 기간이라 소설을 쓰지 못해요. 이해해주시기 바라고...


 

  시간 있을 때마다 짬을 내서 연재해보도록 하겠습니다만, 빠른 연재 속도는 당분간은 어렵겠습니다.

  죄송해요 여러분!


  그리고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2024-10-24 23:00:21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