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반의 충견-1화-
하윤슬 2016-01-28 0
“있지, 델타. 나, 의료 기술자가 되고 싶어.”
강남의 어느 봉쇄구역에서 그녀, 알파가 말했다.
“여태껏 많은 작전구역을 돌아다녔지만 전투는 나에게 안 맞는 것 같아. 차라리 내 능력을 살려서 사람들을 치료하는 기계를 발명하고 싶어.”
알파는 위상력을 흘려보내서 물체나 생명체의 투시도를 머릿속에 그리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확실히 전투보다는 전투의 보조에 도움이 되는 능력이다.
“그래, 그렇게 되면 좋겠다.”
델타, 그러니까 ‘나’는 그녀의 말에 적당히 맞장구를 쳤다. 실은 그녀의 말에 내뱉은 대꾸는 빈말이다. 그녀와 내가 속해있는 팀 ‘넘버’는 벌처스의 처리부대 소속으로 온갖 더러운 일을 도맡아 하는 부대다. 그 ‘더러운 일’에는 당연히 인명을 해치는 일도 포함이 되어있다. 그녀가 어떤 경위로 이곳으로 들어왔는지는 알 수 없으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의사 같은 번듯한 직업은 절대 가질 수 없으리라는 것이다. 그녀는 직접적으로 사람을 해치지는 않았지만 간접적으로 그런 기술을 제공해왔다. 차원종이나 인간의 어디를 공격하면 가장 효율적으로 죽일 수 있나, 같은 식으로 말이다.
알파는 후후, 하고 웃었다.
“델타는 처리부대의 일이 끝나면 무슨 일이 하고 싶어?”
“나는 위상력을 전기로 바꾸는 힘을 가졌으니까 발전소에서 일하고 싶어. 그렇게만 되면 떼돈을 벌 수 있을 테니까.”
이 대답 역시 거짓말이다. 벌처스의 처리부대의 일에 ‘끝’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으니까. 적어도 살아있을 때까지는. 즉, 죽어야만 끝난다는 것이다.
나는 인간적으로는 알파를 좋아한다. 이렇게 지저분한 직장에서 일을 하는 데에도 이렇게 순수하고 우직하니 말이다. 자기의 이름이 처분되고 인식명인 ‘알파’가 붙여졌을 때에도 차원전쟁의 영웅의 호칭과 비슷하다고 좋아했을 정도니 말이다.
반대로 요원으로서는 알파를 무척이나 짜증났다. 내가 알파랑 같이 일을 한지는 3년이 넘었다. 그 3년 동안 직장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고 생각 없이 희망찬 소리나 내뱉는 알파가 한심하기 그지없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내가 입에 발린 소리나 하고 있다는 것을 전혀 모르지 않는가?
끓어오르는 짜증을 꾹 참고 일어서서 알파에게 손을 내밀었다.
“가자 알파. 임무는 아직 안 끝났잖아. 그 면류… 뭐 시기의 실험 말이야.”
알파는 픽 웃었다.
“면류관이야, 면류관. 벌처스의 새로운 의료기구. 근육이나 뇌에 전기 자극으로 불치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최근 우리의 팀 넘버가 실적을 못 내기는 했어도 신상품의 실험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임무에 투입을 하다니…….
내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오랜만의 살상이 없는 임무에 알파는 그저 신이 나 보였다.
“그래, 그 면류관을 장착한 식물들이 움직이는 것은 확인했고, 남은 것은 동물실험이야. 남은 동물은 폐쇄된 역에 있으니까 빨리 확인하러 가자고.”
알파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역으로 향했다.
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그 뒤를 따라갔다. 알파는 나에게 어서 오라면서 손짓을 했다.
그것이 내가 본 알파의 마지막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