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저스 외전 - 하얀악마 5편

이제나는돌아서겠소 2015-01-23 1

소제목 : 소녀, 목줄이 걸리다.

투박한 하얀 철문은 세이와 내 사이를 갈라놓았다.

‘좀 더 빨리 이곳에서 구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세이야.’

세이가 달려가는 소리를 듣기 위해 철문에 귀를 대다 등을 대고 스르르 미끄러져 주저앉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연구소 전체에 빨간불이 들어오며, 커다란 경보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실험체가 도망갔다! 빨리 찾아라!”
“이런, 그 녀석 오늘이 폐기날짜인 줄 어떻게 알았지?”
“이 철통경비를 뚫다니! 대체 보안 시스템은 어떻게 된 거야?”
 
‘드디어, 올 것이 왔군.’
나는 태연하게 일어나서 앞으로 올 녀석을 맞이할 차비를 했다. 그리고 10여분 후 턱스 녀석이 보안요원들과 함께 내 앞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송박사, 나는 언제고 자네가 일을 저지를 줄 알았지.”
“하하하 줄리안 자넨가? 뭐 내가 이런 녀석이란 건 나와 오래 지낸 자네가 잘 알지 않나?”
“네놈! 네가 무슨 짓을 한지 알고 있나? 실험체를 탈출시키다니, 그 녀석이 우리의 위상력 주입 조건은 충족시키진 못했지만, 전투력 하나 만큼은 엄청난 괴물이라고. 너는 지금 괴물을 풀어 준거야!”
“턱스! 괴물이 아니다. 내 딸이다.”
“그래, 네가 딸 하니 생각나는군. 네놈의 잡혀있는 딸이 이대로 무사할 것 같나? 그리고 네 제자는 이런 짓을 하고도 무사할 거라고 생각 하냔 말이다!”
“후훗, 자네는 도연이가 최근 출장 가서 늦는 게 이상하지 않나? 그 모든 것을 철두철미하게 지키는 아이가 말이야.”
“설마, 정도연 그 년이!”
“도연이겐 이 ** 실험에 대한 자료와 너희가 한 일을 알리기 위해 유니온으로 갔지. 얼마 안 있으면 유니온 특수요원들이 이곳으로 오겠군.”

『펑, 콰콰쾅』

큰 폭발음과 함께 연구소 보안요원들의 비명소리, 그리고 연구 자재들이 터져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왔구만.”
줄리안이 분노한 표정으로 나를 맹렬하게 노려보기 시작했다.
“네놈 그렇다면 네 친딸은 어쩔 것이냐?”
“후후후 자네들이 내 딸을 풀어줄 리가 없지 않나? 한 딸을 지키려다 두 딸을 다 잃을 순 없지 않겠나?”
“하하하 하나를 살리다가 둘을 잃느니 둘을 지키겠다라. 어차피 도망친 실험체는 네 친딸이 아니잖나?”
“나에게는 소중한 존재네.”

턱스는 자신의 관자놀이를 지그시 누르더니 옆의 보안요원들에게 다가가 무엇인가 속삭였다. 그리고 자신의 권총을 빼더니 빠르게 내게 겨누었다. 
“아무리 자네가 뛰어난 과학자라도 조직을 배신한 자를 살려둘 수는 없네. 자네 같이 천재적인 두뇌를 가진 자가 이를 몰랐을 리 없고 말이지. 마지막으로 남길 말은 없나?”
“나 같은 죄인이 무슨 딱히 남길 말이 있겠나. 그저 내 딸들의 무사안위를 빌 뿐이네.”
턱스가 가진 총구가 불을 뿜었다. 나는 한 발짝, 한 발짝 뒤로 물러나며 하얀 철문에 등을 기댔다. 뿜어지는 피가 문 그리고 바닥을 적셨다. 턱스는 뒤돌아서더니 그의 보안요원들과 함께 어디론가 급하게 가기 걸어나갔다. 이제는 붉게 변한 문을 부여잡으며, 그리고 온 힘을 다해 다른 사람에게 들릴지 모를 말을 했다.
“미안하구나.”
땅에서 올라온 손이 어둠 속으로 나를 끌어당기는 듯한 감각과 함께 모든 것이 암전되었다.

땅을 박차고 달린다. 울창한 숲 속 사이를 달린다. 커다란 바위를 다람쥐처럼 재빠르게 뛰어오른다. 달리고 또 달린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하하하하핫”
드디어 저 악마의 구렁텅이에서 탈출하는 것이다. 내 마음속은 깊은 환희로 가득 찼다. 그리고 박사님과 아이의 약속을 지킬 수 있다는 충족감에 가슴이 차는 기분이었다. 무언가 거슬리는 느낌도 있긴 했지만 이런 충족감에 비해 매우 작은 부분이었다. 내 옆으로 수많은 나무들이 스쳐 지나간다. 냇가도 지나가고, 커다란 산도 보이기 시작한다. 밝은 햇살은 땅을 어루만지듯 이곳저곳을 비춰주었고, 그 따뜻함에 얼어붙었던 내 감정도 녹는 기분이었다.

“그 무서운 곳, 밖에는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도 있었구나!”

 좀 더 뛰어가자 숲이 나왔고, 우선 그곳으로 들어가 몸을 숨겼다. 그리고 박사님이 주신 배낭을 **보았다. 그러자 여분의 식량, 돈, 의복과 함께 지도를 찾을 수 있었다. 식량을 꺼내 우물우물 씹으면서 지도를 펼쳐보았다. 그러자 지도에는 이 근처 카이로시티가 표시되어 있었고, 그 주점에 가면 나를 도와줄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거라는 글씨가 정갈하게 쓰여있었다. 우선, 내가 가야할 루트를 탐색 완료하였고, 실험복인 채로 다닐 순 없으므로 평상복으로 갈아입었다.

“매일 실험복만 입다가 이런 걸 입으니 왠지 기분이 묘하네.”

그리고 짐을 챙겨 다시 떠나려던 순간이었다.

『펑』

바닥이 흔들리는 느낌과 함께 연구소 쪽에서 큰 폭음이 울렸다. 무엇인가 마음에 걸려 다시 되돌아가려고 했으나 갑자기 박사님이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녀석 내가 누구니? 나, 이래 봬도 연구원 중에서는 최고의 두뇌로 소문난 송박사야! 그들도 내 두뇌가 아까워서 함부로 하지 못할 거다. 걱정하지 말고 어서 떠나라.”』

‘내가 가장 존경하는 박사님이 하신 말씀이라 문제없을 거야.’
다시 짐을 추스르고 카이로시티를 향해 빠르게 달려가고 있을 즈음이었다. 무엇인가 가슴 속에서 뚝 끊기는 느낌이 들었다. 왠지 불길한 느낌이 들었지만 무시하고 계속, 계속 달려나갔다. 하늘엔 물을 많이 머금은 듯한 구름이 조금씩, 조금씩 몰려왔다.

서녘으로 해가 지고 하늘이 어두워졌다. 달은 이미 검푸른 구름에 가려졌고, 조금씩 빗방울이 땅을 적시기 시작했다. 조금씩 내렸다 그쳤다 하는 빗방울을 맞으며, 지친 몸으로 저 멀리 밝게 보이는 카이로시티를 바라보았다.

‘박사님은 괜찮으실 거야. 박사님 정도의 인재를 조직에서 쳐낼 리 없어. 그리고 나중에 내가 박사님을 구해내면 모든 게 괜찮아 질 거야.’

조금씩 젖어가는 옷이 무거워지는 것처럼 내 마음도 무거워져 갔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새에 카이로시티의 주점 문 앞에 도착하였다. 주점 앞에 다다르니 주점의 간판은 고장이 난 듯 불이 들어왔다 나왔다 하였고, 문 안에는 여러 사람이 내는 왁**껄한 소리가 들렸다. 문밖에 서서 옷에 있는 물기를 조금 짜낸 뒤에 문 안으로 들어갔다. 내가 들어가자 일순간 사람들의 눈이 나를 향하는가 싶더니 이내 별 신경을 쓰지 않고, 자기들의 이야기를 다시 떠들었다. 들어가서 입구에서 몇 초간 서성거리자 요즘 시대에 맞지 않는 카우보이 복장을 한 30대 초반쯤 되어 보이는 남자가 나한테 조용히 걸어오더니 내 손을 잡고 귀에다가 무엇인가를 속삭였다.

“네가 세이지. 맞으면 조용히 날 따라와라.”
그는 내 손을 잡더니 갑자기 큰 소리로 말했다.
“아니, 왜 이제오니. 얼마나 내가 기다렸다고. 자 위층으로 올라가자.”
그리고 나는 그의 손에 이끌려, 주점 2층의 한 방으로 들어갔다.
“자, 꼬마 아가씨. 궁금한 게 많겠지만 우선 그건 가면서 이야기하고 우선 여기 의복이 있으니 옷부터 갈아입어라. 여자아이가 그렇게 젖어서 다니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봐.”
그는 나에게 수수한 의복을 건네주고 문밖으로 나갔다.
나는 간단하게 샤워를 마치고 그가 건네준 옷을 갈아입었다. 그리고 2분 뒤 문밖에서 누군가가 노크를 하는 소리가 들렸다.
“다 끝났나? 꼬마 아가씨?”
“네, 들어오세요.”
문이 열리며 그가 들어왔고, 문을 닫더니 방 안에 있던 의자에 앉아서 나에게 앉으라 손짓하였다. 나도 그의 맞은편에 앉았고, 그가 건네준 따뜻한 차를 받아마셨다.

“음. 의외네. 그토록 고생했으면 처음 보는 사람이 주는 차는 받아 마실 때 의심할 줄 알았더니.”
“저는 독성에 대한 내성이 있어서 괜찮아요.”
그러자, 그는 왠지 나를 안쓰러운 표정으로 쳐다보더니 말을 이어갔다.
“자, 꼬마 아가씨. 우선 내 이름을 소개하지. 내 이름은 알렌 잭슨이야. 꼬마 아가씨 이름은 세이가 맞지? 내가 과거에 송박사 한테 빚을 진 게 있는데, 이참에 갚으라고 하더군. 한 사람을 안전한 곳까지 옮겨주라고 해서 여기 왔는데 말이지. 뭐 내가 돈 되는 일을 위주로 하는 용병이다만, 은혜는 반드시 갚는 성격이니까.”
그는 그렇게 말하더니 자신의 머리를 벅벅 긁었다.

“저기 잭슨씨.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저 같은 애가 이렇게 옷이 젖어서 술집에 들어갔는데, 혹시 무슨 일 생기는 건 아닌가요?”
“걱정 마. 꼬마 아가씨. 이 주점은 여러 사연이 있는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는 곳이라 그 사람들 그 정도의 일은 신경도 잘 안 쓰는 편이야. 그리고 밑에 있는 사람들은 다 나랑 어느 정도 친분이 있는 사람들이기도 하고 말이지. 이 주점에선 너의 안전은 확실하게 확보되니 걱정하지 말고, 앞으로 일에 대해 의논해보자.”
그러더니 그는 내 앞에 커다란 지도를 꺼내놓고 이런저런 설명을 하였다.
“우선, 송박사가 부탁한 건 꼬마 숙녀분의 안전, 그리고 한국까지 안전한 이송이 내가 받은 의뢰야. 한국에 가면 그의 지인이 너를 돌봐주신다고 하더군.”

그가 그 이외에도 여러 가지 설명을 하였지만 잘 들리지 않았고, 송박사님에 대한 걱정만이 머릿속에 가득 찼다.
“어이어이 꼬마 아가씨. 내 얘긴 듣는 거야? 아, 송박사 걱정을 하는 건가? 걱정하지 마. 그 양반은 죽이려고 난리를 쳐도 안 죽을 작자야.”
그의 말을 듣자 왠지 마음이 놓였다.
“자 그럼. 이제 가보자고.”
박사님이 주신 배낭을 챙기고, 잭슨씨와 함께 그가 모는 자동차 안에 올라탔다. 곧 시동이 걸렸고, 차창 밖의 사물들이 내 눈 앞을 빠르게 지나치기 시작했다.

“아. 맞다. 송박사가 너한테 전해달라고 한 물건이 있었지.”
그는 차를 몰며 자신의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은빛으로 빛나는 로켓을 나에게 건넸다. 
“아, 걱정하지 마라 나는 그거 안 열어봤으니. 의뢰물건엔 손 안 대는 게 내 철칙이지.”

나는 조심히 로켓의 뚜껑을 열어보았다. 그러자 송박사님과 아름다운 여성분 한 분 그리고 내 5살 적과 비슷하게 생긴 아이가 그들 사이에서 해맑게 웃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엔 내 어릴 적 연구소 시절의 모습의 사진이 조그맣게 붙어있었다.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니 갑자기 차가 덜컹하였고, 내 몸이 위로 살짝 솟구치다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로켓에서 편지지로 보이는 하얀 무엇인가가 떨어졌다. 나는 재빨리 그것을 주어서 펼쳐보았다.

『사랑하는 세이에게

이 편지를 보고 있다면, 네가 무사하다는 거니 정말 다행이구나. 

우선, 너에게 여러 가지로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네가 그렇게 실험에서 고통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빨리 구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게 그 첫 번째다. 

그리고 두 번째론 그러한 실험을 빨리 끝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내가 맨 처음 그 실험에 참가하게 되었을 땐 갑자기 시작된 차원종의 출현과 그에 따른 전쟁이 시작되었다. 정말 수많은 사람들이 다치고 죽었지. 내 소중한 와이프도…. 전쟁은 사람을 미치게 했다. 그리고 나는 내가 여러 사람의 피를 묻히게 될 엄청난 죄인이 될 것을 알면서도, 그 실험에 참가하게 되었지. 하지만 실험에 고통을 받는 아이들을 보며, 나의 아이와 비슷하게 생긴 너를 보며, 나는 이 실험에 회의가 들었다. ‘이렇게 차원종에게 이긴다고 한들 이러면 우리가 차원종들과 다른 것은 무엇인가?’ 너희를 살리기 위해 다방면으로 뛰어다녔다. 하지만 조직에선 내 아이를 잡아가 나를 협박하더구나. 정말 수많은 고민을 하였다. 내 아이와 너희들 그리고 미쳐버린 이 세상까지 그리고 결심했다. 고통 받는 너희를 살려내기로. 수많은 준비가 필요했다. 그래서 늦어버렸고, 내가 구하려고 할 때에는 너 하나만이 살아남았지. 너무 늦어버렸다.

세 번째로 미안한 건 너에게 거짓말을 한 거란다. 너를 구해내면서 조직의 치부를 낱낱이 유니온에게 밝혔단다. 내 두뇌가 아무리 그들에게 유용하다고 해도 그들은 배신자를 살려두지 않는다. 아마 이 글을 볼 때쯤 나는 죽어있겠지. 하지만 후회하지 않는다. 나는 내 양심을 지켰고, 내 부인과 딸의 명예를 지켰으며, 또 너를 지킬 수 있었다. 
아마 너에게 웃어달라고 했을텐 데 네가 웃어주었을지 모르겠구나. 남에게 보일 때는 차갑지만 은근히 여리고 친한 사람에게 모질지 못한 너는 반드시 웃어주었겠지. 고맙구나. 이런 나를 향해 웃어줘서. 사후엔 나는 분명 지옥에 갈 테니 너를 만나지 못하겠지만 너의 앞날에 행복과 행운이 가득하기를 빈다. 

고맙고 행복해라. 사랑하는 나의 딸아.

어리석고 못난 아빠가     』

그렇다. 나는 알고 있었다. 사실 송박사님 아니 아버지가 돌아가실 것이라는 걸.
『“세이야, 마지막으로 부탁할 게 있다.” “한 번만 웃어주겠니?”』
그렇다. 나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그것을 외면하진 않았을까? 그렇지 않았을까? 갑자기 잊은 줄 알았던 눈물이 밖에 내리는 빗물처럼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목에 걸린 것 같은 목줄을 잡아 뜯기 시작했다. 잭슨씨는 그런 내 손을 잡더니 차를 옆에 대고, 옆자리에 있던 나를 가만히 안아주었다.

“으아아아아. 으아아아아. 아아아아아.”

차창 밖을 바라보니 하늘도 내 마음과 같은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
각주 : 로켓(locket) 사진 등을 넣어 목걸이에 다는 작은 갑 - 네이버 사전

필자의 말 : 이번 편으로 세이의 연구소편을 마칩니다. 세이가 구르면 구를수록 필자의 마음이 조금 찔립니다. 이거 세이가 꿈속에서 나타나 저한테 원망하는 건 아닐지 원
아 그리고 필자가 약 빨고 쓴 클로저스 팬픽 ‘서유리의 여친(?)이 되어버렸다’도 쓰고 있으니 시간 나시면 한번 보러 와주세요.

2024-10-24 22:22:05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