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저스 외전 - 하얀악마 4편

이제나는돌아서겠소 2015-01-20 1

소제목 : 소녀, 목줄이 걸리다.

“■■■■! ■■!”


“■E■! ■■■-■■4!”
“S■I-52■!” 
“당장 그 녀석을 처치해라.”


귀에 들리는 이명. 부들거리는 다리. 호흡이 가빠지고 내 앞의 시야는 점멸한다. 들리는 것은 이상한 기계음. 그리고 앞에서 죽어가는 상대의 숨소리와 내 숨소리, 숨소리뿐. 

『하아- 하악- 하아- 흡-!』

심호흡을 크게 하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굳게 닫힌 하얀 철문, 괴이한 소리를 내는 기계들. 높은 곳에 보이는 투명한 유리. 그 건너편에는 우리를 냉막한 시선으로 보는 연구원들이 있었다. 그들에게선 어떠한 인간의 온정도 기대할 수 없을 것 같았고, 굳게 닫힌 철문은 그들과 나의 사이를 나타내주는 것 같았다.  

“못합니다. 못해요. 턱스! 어떻게 동료를 죽이라는 겁니까!”
“SEI-524, 너에겐 이 상황을 선택할 권한 따윈 없다. 나는 명령하는 거다! 어서 그 녀석을 죽여라!”

연구원 중 최고 책임자인 그는 벌레를 보는 듯한 표정으로 나에게 담담하게 상대의 처형을 명령하였다. 

『반가워, 내 실험번호는 AAI-252야. 아이(AAI)라고 불러줘. 나는 이곳에서 반드시 살아남겠어. … 너는 꼭 살아남길 바랄게.』

만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아이는 내 동료였고, 또 내 벗이었다. 그녀와 만났을 때부터 결국 이렇게 될 것이라는 걸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지만 이런 식으로 결말이 날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당장, 처치하지 않으면 네가 죽는다. SEI-542."

가늘게 떨리는 내 손에는 그녀를 쏜 저주스런 검은색 총이 보였다. 그리고 그 총은 그녀의 머리를 다시 겨누었다가 다시 아래로 떨구어졌다.

“… 못하겠다면 하는 수 없지. 자네가 사라질밖에."
“턱스님! 송박사가 이곳으로 오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완전한 인간병기로 만들려 했는데 그녀석이 또 방해하는군. 쳇! 처리해라.”

나는 눈을 감고, 앞으로 다가올 죽음을 기다렸다.

『탕!』

눈을 꼭 감고 있었으나, 어떠한 고통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상한 생각에 눈을 떠보니 아이는….
‘아이가… 아이가 죽었다. 아이가 죽었다. 아이가 죽었다. 아이가 죽었다. 아이가 죽었다. 아이가 죽었다. 아이가 죽었다. 아이가 죽었다. 아이가 죽었다. 아이가 죽었다. 아이가 죽었다.’ 


“으... 으아아아아아––––––!”
“패자는 처리해야지.”

얼마 안 있어서 2층의 연구원들이 모인 곳이 시끄러워졌다.

“송박사, 왔군.”
“줄리안 턱스! 이게 무슨 짓이지. 왜 내 허락도 없이 이런 전투실험을 강행한 건가!”
“송박사 자네는 연구원이 되기에는 너무 물러. 여기저기 차원종이 범람하고 인간들이 수도 없이 죽고 있네. 이 정도의 희생은 불가피한….”
“아이…”
주저앉아 괴성을 지르던 남아있는 마지막 힘으로 아이의 이름을 부르고 그렇게 정신줄을 놓고 말았다.

누군가가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린다. 내 눈앞에 검게 칠해진 도화지. 앳되면서도 아름다운 목소리. 그 소리는 울릴 때마다 검은 도화지를 하얗게 또 하얗게 만들어주었고, 나는 그 아름다움에 매료되었다. 그런데 아름다운 목소리에 갑자기 노이즈가 끼기 시작하더니 그 소리를 끝으로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윙- 윙- 윙- 윙-』
지금 시각은 오전 5시 이 괴상한 굉음이 싫어서 조금 일찍 일어났지만 오늘은 왠지 늦어버린 것 같다. 침대에서 일어나 팔에 꽂혀있는 호스를 거칠게 잡아 뜯으며, 침대 가장자리에 걸터앉았다. 그리고 가만히 아주 가만히 앉아있었다. 눈은 메마른 듯, 한 방울의 눈물도 흘리지 못하였고, 마음은 공허하기만 하였다.

『지잉-』

송박사님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리고 멍하니 앉아 있는 나를 보더니 다가와 조심히 안아주었다.

“세이야 미안하다. 미안해.”

『으흑-, 으어어어어엉』

메마른줄 알았던 눈에선 구슬 같은 눈물이 쏟아져 내렸고, 송박사님의 옷깃을 적시기 시작했다.

“미안하다. 미안해.”

얼마 지나지 않아 송박사님은 이런 실험에 대해 극렬히 거부하기 시작했고 결국 연구소의 상부층에 의하여 다른 곳으로 보내지게 되었다. 그 후로 몇 년이 지났다. 나도 어린 소녀에서 어느덧 2차 성징이 뚜렷해지는 15세쯤의 조금 자란 소녀가 되었다. 그리고 그 몇 년동안  아이(AAI) 이후 수많은 아이들이 실험이라는 목적으로 죽어갔다. 몇 년간 지내면서 연구원들이 말하는 것을 얼핏 듣기에 내가 받는 실험은 위상력이 없는 아이를 강제로 위상력이 생기게 하는 실험이었다. 우리 실험체들의 일과는 전투능력의 개발, 그리고 괴롭디괴로운 위상력 주입 실험 그리고 반복. 위상력 주입 시험에서는 수많은 아이들이 주입으로 인하여 몸이 터져 나갔고, 수많은 전투평가에서 나는 아이(AAI)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수많은 아이들을 처치하였다. 그게 죽도록 싫어서 이리저리 연구원들을 붙들고 울고, 웃고, 몸부림을 치고 애걸해봐도 그들은 벌레보는 듯한 시선만을 남겼고, 내 마음이 닳아 없어져 더 이상 표정을 드러내지 않게 되자 그들의 시선은 벌레를 보는 시선에서 무슨 괴물을 보는 듯한 시선으로 바뀌게 되었다.

“…이번 실험은 실패야.”

문밖에서 연구원들이 조용히 얘기하는 소리가 예민하게 발달된 내 귀에 들리었다. 그리고 실패라는 민감한 주제에 나는 문에 귀를 가까이하기 시작했다
.
“애초에 위상력은 극소수의 인간에게만 발현되는 건데, 재능이 없는 애들에게 단순주입으로 위상력을 발현시킨다는 게 무리수였어.”
“아니, 그러면 그동안 죽어갔던 애들은 그냥 개죽음인 건가.”
“쉿! 누가 듣겠다. 그리고 너만 알아. 우리가 했던 실험이 확실히 비인도적인 실험이잖아. 그래서 증거인멸을 위해 모든 실험체들을 폐기할 것 같아.”
“뭐? 정말? 그래서 며칠인데?”

『웅얼웅얼』

연구원들이 문밖에서 점점 멀어져가자 더는 대화가 들리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침대에 털썩 주저앉아 연구원들이 하는 말을 되뇌었다.

‘개죽음, 증거인멸, 비인도적, 폐기, 폐기, 폐기, 폐기’

거스를 수 없는 죽음의 사신이 내 목에 낫을 드리운 것 같았다. 그 낫을 피하기 위하여 몸부림치며 방도를 자문해보았지만 나에게 남은 것은 죽음뿐인 것 같았다. 엄청난 감시요원들, 여기저기 CCTV들, 그리고 몸에 장착된 폭탄장치까지 지금까지 배운 모든 전투 지식을 동원해봐도 살아날 길은 요원했다. 그 이후 날마다 꿈을 꾸기 시작했다. 내 앞에는 지옥의 업화가 불타오르고 있었고, 내가 그곳으로 한걸음, 한걸음 걸어가는 꿈. 사신과의 생활이 계속되면서 나는 점점 죽음에 대하여 달관하기 시작하였다. 그저 아이와의 약속을 지키게 되지 못하게 되어 미안할 뿐이었고, 송박사님께 죄송스러운 마음만 들 뿐이었다.“

『지이이잉』  

드디어 약속의 날이 온 것 같다. 문이 열리고 말았다. 이제는 담담한 마음으로 고개를 드니 보이는 것은 그토록 보고 싶었던 송박사님이었다.

“세이야, 아무 말도 하지 말고 나를 따라와라.”
“박사님 어떻게 여기에.”
“쉿!”

박사님은 내 손을 잡고 내가 그동안 가** 못한 길을 걸어가기 시작했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보니 하얗고 커다란 철문이 보였고, 박사님은 숫자가 가득한 패드를 이곳저곳을 조작하자 커다란 철문이 큰 굉음을 내며 열렸다. 그리고 박사님은 배낭 하나를 건네주시며 이렇게 말했다.

“이 배낭 안에 보면 지도가 있고, 그 지도를 보면 도시의 주점이 보일 거야. 그곳으로 가면 너를 도와줄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거다.”
“박사님 정말로 제가 가도 박사님은 괜찮으신 건가요?”
“녀석 내가 누구니? 나, 이래 뵈도 연구원 중에서는 최고의 두뇌로 소문난 송박사야! 그들도 내 두뇌가 아까워서 함부로 하지 못할 거다. 걱정하지 말고 어서 떠나라."

박사님은 내 등을 밀었고, 내 몸은 문경계선 밖으로 떠밀려 나갔다. 그리고 박사님이 버튼을 누르자 큰 철문은 서서히 닫혀가기 시작했다.

“세이야, 마지막으로 부탁할 게 있다.”

박사님은 잠시 무엇인가를 곰곰이 생각하셨고, 그동안 문은 서서히 닫혀갔다.
“한 번만 웃어주겠니?”

박사님은 왠지 떨리는 목소리로 나에게 요구하셨고, 박사님을 향해 한동안 잊어버린 줄 알았던 환한 웃음을 지었다.

“그래, 예쁘구나… 꼭 살아남거라.”

서서히 닫히던 문은 그 말을 끝으로 완전히 닫히었다. 인생을 포기했었던 나는 ‘살아남아라’ 라는 이름의 목에 걸린 목줄과 함께 길을 달리고 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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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전에 생각했던 세이의 어렸을 적 연구소 편입니다. 원래는 좀 더 길게 가려고 했는데
짧은 호흡으로 쓰는 것이 좀더 긴박감이 있지않을까 싶어서 한,두편 정도로 마무리 될 거 같아요
2024-10-24 22:22:00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