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저스 외전 - 하얀악마 1편
이제나는돌아서겠소 2015-01-11 1
소제목 : 소녀, 소녀와 떠나다
연필을 깎고 남은 톱밥을 입에 머금은 듯한 텁텁함에 약간 불쾌한 기분으로 잠에서 깨어났다. 그리고 몸을 일으켜 머리맡에 놓인 시계를 보니 오전 4:57분이었다.
“언제나 그렇지만 이곳에 온 뒤에는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해본 적이 없는 것 같군.”
『벌컥벌컥』
옆 탁상에 놓여있는 물 주전자의 물을 컵에 따라 마시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옆을 둘러보면 푸른빛이 감도는 촛대가 하나 놓여있고, 간단한 책상과 의자 놓여 있으며, 그 옆에는 다른 사람이 보면 이상하게 여길 커다랗고 검은 내 무기가 놓여있다. 창밖에 멀리 보이는 풍경은 폐허로 보이는 도시와 무너진 돌벽으로 이루어진 집들이 보이고, 그 밖에는 황량한 사막만이 보일 뿐이었다.
『삐비비비비비비비비비빅』
오전 5시 언제나 알람이 울리는 시각이다. 알람이 울리기 전에 일어나서 듣는 것은 내가 가지고 있는 징크스로 보통 알람이 울리기 전에 일어나는 날은 컨디션이 좋은 날이 되는 것이다.
『쉬리리리릭, 착!』
같이 일했던 용병 누구보다 빠른 속도로 검은 전투복을 입고 탄띠를 찬다.
“잭슨 아저씨 그리고 제니퍼 언니, 오늘도 잘 부탁해!”
책상 옆에 있는 검은 무기를 등에 들쳐 멘다. 문을 열고 아이가 깨지 않도록 조심조심 계단을 내간 후 거실을 지나 집 밖으로 나온다. 그리고 오늘 아침도 훈련으로 시작되고 훈련으로 끝나는 지긋지긋한 하루의 일과를 시작한다.
『휘휘휙 훅훅 솩』
들쳐 멘 무기를 앞으로 하고 마치 풍차같이 빙글빙글 돌리며 앞에 있는 나무 표적들을 무기에 달린 검 부분으로 맹렬히 공격하기 시작했다.
『스윽, 스윽』
구슬 같은 땀을 흘리며 훈련을 반복하고 또 반복한다. 그러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어둑어둑했던 날은 밝아지기 시작했고, 손목시계는 오전 8시를 가리켰다. 우선, 들어가서 샤워를 하고 거실에 있는 식탁에 간단한 음식들을 준비한 뒤 쿠무쉬를 깨우러 방으로 들어갔다.
“쿠무쉬, 일어나.”
“후암... 졸려, 언니 아직 아침 식사 준비 덜 끝났으면 좀 더 잘게.”
“쿠무쉬”
“음냐 음냐 이거 맛있네요. 조금만 더 주세요.”
쿠무쉬는 아직도 제대로 잠을 못 깼는지 아니면 나를 골리기 위해서 자는 척을 하는 것인지 좀처럼 일어나려고 하지 않았다.
“하~ 은이야 일어나야지.”
“응, 세이 언니 일어났어!”
쿠무쉬는 내가 은이라는 애칭을 불러주자마자 지금까지 피곤해 했던 건 다 거짓말인 것처럼 벌떡 일어나서 방실방실 웃으며 반갑게 아침 인사를 하였다.
“자 그럼 식사하게 나와.”
“언니... 나 좀 앉아있으면 안 되나?”
“하~ 그래 잠 다 깨면 나와.”
그렇게 말하고 나는 문을 나가 식탁 앞에 앉았다. 몇 분 후 은이가 나와서 내 맞은편에 앉으며 투덜투덜 거리며 내게 말하기 시작했다.
“언니, 쿠무쉬란 이름은 남자이름 같아서 싫어. 언니네 나라말로는 은(silver)이라면서 그 때부터 은이라고 불러달라고 했더니...”
더 이상 식사하기 전에 시간이 가는 게 귀찮아지기도 했고, 은이가 조금 귀여워 보이기도 한 나는 은이가 원하는 나에게 원하는 답을 생각했다.
“그래, 은이야 밥 먹자.”
“응, 언니. 근데 오늘도 군용식량 뿐이야?”
“매일 매일 군용식량 군용식량 싫다고 투정부려도 결국 니가 다 먹잖니?”
“응, 언니가 주는 건 다 맛있어.”
그리고 은이는 식탁 위에 있는 식량들을 게걸스럽게 먹기 시작했다. 나도 내 몫의 군용식량 분을 뜯어 조금씩 먹기 시작했다. 식사를 마친 뒤 남은 음식물을 치우려 하자 은이는 불퉁한 눈빛으로 나를 쏘아보며 그것을 가져가서 팔로 한가득 감싸 안았다. 그리고는 입안 볼록이 음식을 입에 넣고 우걱우걱 먹기 시작했다.
“알았다 알았어, 안 뺏어 먹으니까 천천히 먹어.”
다람쥐처럼 볼을 볼록하게 하며 음식을 우걱우걱 먹는 은이를 보며 나도 모르게 옅은 미소가 지어졌다.
“어~! 언니 웃은 거야? 웃은 거지 웃은 거 맞지? 언니 웃으니까 천사 같아 엄청 예뻐!”
“아니야, 나는 웃지 않아.”
나는 정색을 하며 은이에게 말을 했다.
“내가 언젠가 언니 제대로 웃는 모습을 보고 말 거야!”
은이는 약간 시무룩하지만 지지 않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고, 나는 그런 은이의 머리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그래, 그래 언제 그렇게 되길 바랄게. 그건 그렇고 이제 다 먹은 거 치워야지?”
“언니, 그럼 계속 수고해.”라고 말하며 쏜살같이 도망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군 훈련을 받은 내 속도보단 빠를 수 없었고, 머리에 큰 혹을 달고 구시렁거리며 식탁 위에 있는 잔해(?)들을 치우기 시작했다.
싱크대 앞에서 식사를 할 때 쓴 식기를 씻으며 나도 모르게 은이를 생각하며 미소가 지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문뜩 세차게 흐르는 물줄기가 식기를 지나쳐 하수구로 빨려 들어가는 것을 보며, 상념에 잠기었다.
‘나 같은 살인자가 이렇게 행복해도 될까? 이렇게 큰 행복을 가져도 될까? 혹시 나로 인해 우리 은이가 다치진 않을까? 그렇게 되면 어떡하지... 또다시 그렇게 되면 그놈들을 하나도 남기지 않을거야... 머리카락 한올 한올까지 남기지 않겠어...’
그리고 나도 모르게 잡고 있던 접시를 손으로 깨뜨려버렸다.
“언니, 괜찮아?”
“응, 아무렇지도 않아. 언니가 너무 세다 보니까 접시를 깨뜨려버렸네. 언니가 치울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다 치웠으면 방 안에 들어가 있으렴.”
“언니 내가 도와...” “어서!”
“응... 알았어.”
그리고 은이는 방 안으로 들어갔다.
‘나란 애는 참... 은이한테 쓸데없이 화를 내고, 한심해... 하여튼 난 강해! 그리고 지금이라면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아. 그리고 지금껏 불행하기만 했던 나에게 이런 행복은 그동안에 받아온 불행함에 대한 보상이야!’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부수어진 조각, 조각들을 치우기 시작했다.
‘이제 여기 숨은 지 2주째, 콰트로 놈들도 슬슬 눈치를 채기 시작할 때니 이제 출발할 때가 된 것 같군’
이제 슬슬 이 곳을 떠나서 은이를 안전한 곳으로 데려다 주어야 겠다는 생각을 할 때 즈음 나만이 느낄 수 있는 미세한 울림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런... 근처까지 온건가?, 은이야 우선 숨어있어!”
방안에 있는 은이에게 들리게 말한 뒤 무기를 들쳐메고 집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마을 밖을 좌우로 둘러보았다.
“흠... 기척이 근처에는 없는 걸로 보니 이 마을 근처로 오고 있는 모양이군.”
땅에 귀를 가까이 대보니 아까 느꼈던 미세한 진동이 느껴지기 시작했고, 얼른 집안으로 들어가 빠른 속도로 짐을 챙기고 은이의 방에 들어갔다.
“은이야 자 빨리가자!”
짐을 준비하고 자신의 의자에 뒤돌아서며 앉아 있던 은이가 나를 돌아보았다.
“언니... 또 가야돼? 귀찮은데 좀 이따가 가면 안돼?”
“쿠무쉬!”
“알았어 언니! 출발하자!”
은이는 조그마한 배낭을 메고 내앞을 쪼르르 달려나가 앞장서기 시작했다.
『도도도도... 콰당!』
내앞에서 쪼르르르 달려가던 은이는 스탭이 엉킨듯 앞으로 엎어져버렸다.
“은이야 괜찮아?”
『......』
잠시간의 정적이 흐른뒤 은이는 부끄러운 듯 약간 붉어진 얼굴로 벌떡 일어나며 아무렇지도 않은 듯 씩씩하게 걸어나가기 시작했다.
“훗! 이정도 고통 그 3배는 가져와야지.”
‘푸훗’
나는 속으로 웃으며 앞에서 씩씩하게 걸어가는 은이의 손을 잡고 우리가 비상시 대피하도록 한 지하에 숨겨져있는 지하통로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 지하통로는 성인남자가 간신히 들어갈 수 있을 만큼 작았고, 색이 바랜 벽돌들은 많은 세월의 흐름을 짐작하게 하였다. 통로마다 쳐져있는 거미줄은 이 통로가 오래도록 사용되지 않은 것을 나타내고 있었으며, 여기저기 끼여있는 이끼와 곰팡이들은 역한 냄새를 풍겨왔다.
“으휴 이 퀘퀘한 냄새. 어린소녀는 예쁜 것만 봐야되는데”
“쿠무쉬, 빨리 빨리 움직여야지.”
“알았어 세이 언니.”
‘어서 빨리 은이를 안전한 곳으로 데려다 줘야해. 이런 위험한 곳이 아니라...’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우리는 다음 여정지를 향해 길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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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 Kumushi(은) - 우즈베키스탄 어
필자의 말 : 세이가 은이를 데리고 여정을 떠납니다. 이번 편은 일상물로 산뜻하게 쓰려고 했는데 왠지 시리어스해진 기분이네요. ㅎ
그럼 즐감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