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클로저가 된 이유 上

제삼검 2015-09-18 2

5월 아직은 봄. 그러나 성격 급한 여름은 벌써부터 찾아와 햇살로 자아낸 베일을 기울였다. 덕분에 차갑게 식어있던 공기가 뜨겁게 달아올라서 학생들은 전부 얇은 하복차림으로 돌아다니고 있었다. 턱 선을 타고 흐른 땀을 손등으로 훔쳤다. 계절을 잘 타지 않는 편인데 이 정도면 이제는 여름. 이라고 말할 만 했다. 아침나절만 해도 동장군이 머문 공기에, 골라 입은 긴 춘추복이 조금 원망스럽다.

 

 

" 그냥 반팔에 가디건 입으라니까 "

 

 

문에 삐딱하게 기운 채 자신과 같은 검은 머리카락을 드리우며 말한 엄마를 흘겨보고선 그냥 티셔츠를 입었다. 귓가에 깔깔 웃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 그러다 덥다고 말하면 나도 모른다 ? "


 

그리 말하며 훌쩍 떠나기에 콧방귀를 끼고 말았었는데.. 어른들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나온다니까? 농을 섞어 말한 얼굴이 자꾸 아른거려서 구겨진 미간을 손가락 끝으로 꾹꾹 눌렀다. 소맷부리를 쭉 팔꿈치까지 당겨 입고서 하고있던 게임에 집중했다. 맑은 하늘은 조용히 흘러가고 점심시간의 운동장은 활기를 띄었지만 모두가 이세하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였다. 게임밖에 모르는 괴짜, 특이한 힘을 가지고있는 남자애 , 말붙이기 힘든 놈, 여러가지 수식어를 달고다니는 그에게 기댈곳은 저 운동장 같은게 아닌 작은 네모상자안에 있는 또 다른세계였다.

 

 

자신의 눈끝의 왼쪽 구름이 오른쪽 눈가의 끝까지 움직일때 까지 난간에 기댄채 게임을 하던 이세하는 곧 자신의 머리 밑에 드리운 분홍색에 깜짝 놀라 게임기를 놓은 채 뒤로 물러섰다. 그것은 평균 여성의 키보다도 더 작아서 그녀의 얼굴을 보려면 이세하가 조금 더 고개를 숙여야했다. 아무 말도 없이 다가온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염색이 불가한 신강고에서 분홍 머리란것도 신기한데, 그녀의 눈은 푸른 바다와 같았고 바다속은 빛에 반사되어 아름다운 광원을 담아내고 있었다.

 

 

" 네가 이세하지? "

 

 

다짜고짜 자신의 이름을 물어오는 그녀에게 이세하는 게임 속 캐릭터가 죽는 것도 잊은 채 그녀를 바라보았다. 또래친구와의 교제가 부족해서 이세하는 지금 이 소녀가 왜 자신에게 말을 거는지 생각하려고 했지만 아예 경험이 전무한 그의 머리는 쉽사리 답을 내주지 않았다. 잠시 말을 고르던 이세하는 결국 고르지 못한채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인형처럼 이쁘장하고 작게 생긴 소녀는 그에 어울리지 않는 차가움을 담은 얼굴로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 그리고 서지수씨의 아들? "

 

 

그 말에 들떠오르던 이세하의 얼굴로 그늘이 가라앉았다. 커다란 구름 무리가 둘 사이의 침묵을 파고들었다. 

먼저 침묵을 깬건 이세하 쪽이었다.

 

 

" 뭐야, 너도 우리엄마를 보고싶어서... "

 

 

그의 눈에서 불만을 읽어낸 그녀는 그의 마디가 끝나기도 전에 말을 자르고 들어왔다.

 

 

" 클로저 요원 팀의 정규멤버를 구하고있어, 아직 정식 팀은 아니지만 팀명은 ' 검은 양 '.. 네가 꼭 필요해 "

 

 

그녀에게 이세하는 또 한 번 실망했다. 불만뒤에 서린 분노어린 감정은 고스란히 이슬비에게도 전해질만큼 이세하의 얼굴에 그대로 나타나있었다. 클로저 , 위상력 , 서지수 이 세 단어들은 이세하가 가장 싫어하는 것들이었다.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들, 사람들은 자신에게서 자신을 보려하지 않는다. 오직 어머니의 후광 ,  숨겨진 힘만을 원할뿐이었다. 아니면 그것들을 두려워하거나..그리고 이 눈앞의 여자아이는 전자쪽이었다.

 

이세하는 고민도 하지 않은채 빠르게 답지를 뱉어내었다.

 

 

" 관심없어 "

 

 

더위를 잠깐이나마 날려버릴만큼 그의 목소리는 너무나도 냉랭해서 그녀의 얼굴에 서린 차가움마저 잠깐 깨뜨렸다. 이슬비는 당연히 이세하가 클로저를 하겠다고 생각했지만 정 반대로 나타난 결과에 그녀는 몹시 당황했다.

 

 

" 어째서, 그만한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사람들을 위해 쓰지 않는거지? "

 

 

" 왜 내가 그렇게 해야되는건데? "

 

 

" 네가 나서준다면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죽지않게 될거니까 "

 

 

" 위선이라면 관둬 "

 

 

" 위선따위가 아니야, 나도 차원종에게 부모님이 돌아가셨으니까 "

 

 

서로 언성을 높여가며 이어가던 대화는 이슬비의 마지막 떨림이 들어있는 말에 잘라졌다. 이세하는 어떻게든 반문하려고 했지만 떠오르는 말이없어 붕어처럼 입만 뻥끗거렸다. 결국 이세하는 말싸움에서 진 어린아이처럼 고개를 휙돌리며 교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 네가 뭐라 말하던간에, 난 그 클로저 따위 절대로 할 생각없으니까 다른 사람 알아보라고 "

 

 

구름궤적이 그들을 벗어났고 잠깐 구름에 가려있던 태양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2024-10-24 22:39:20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