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타이저! prologue.

예뻐질거야 2015-08-15 0

"하아-, 하아-."


소녀는 턱 끝까지 올라온 숨을 억지로 삼키며 달렸다.


"희영아 조금만 더 가면 수송기가......"


목소리가 아득하게 들렸다. 하늘이 빙빙돌고, 자신이 어디를 향해 달리고 있던가 조차도 기억해 낼 수 없다.


퍽.


소녀의 몸이 떠 오른다음 맹렬한 기세로 지면에 낙하했다. 돌부리에 걸린것이다. 발목에서 전해지는 아찔한 고통에 소녀는 이해했다. 


"이희영, 정신차려!"


이젠 자신의 몸이 더 이상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는 걸.


"오빠...."


날 버리지마.


울지마 이희영.


죽고 싶지 않아. 날 데리고 가줘-,


둘다 죽을거야.


제발-.


제발 정신차려!


"머, 먼저가. 오빠라도 도망쳐."


안 돼. 그러지마, 날 여기에 버리지마.


소녀는 이를 악물어, 자신의 머릿속에 밀려드는 공포를 밀어냈다.


"멈추지 말고 도망가!"

"널 놔두고는 아무데도 못가!"


소년이 돌아본다. 그리고 그것을 기다리기라도 한듯, 전투기에서 잘못발사한 미사일이 소년의 바로 곁에 떨어졌다. 무슨일이 일어났는지 깨닫기도 전에, 소녀의 작은몸이 다시 떠올랐다.


콜록, 콜록.


소녀의 입가를 타고 한줄기 피가 흘렀다.


"뀨뀨!"


부서진 벽을 차원종 몇마리 인가가 넘어오는 광경. 이제는 붉은 고깃조각으로 남은 오빠의 시체를 한번에 시야에 넣으며 소녀는 생각했다.


나는 여기서 죽는구나- 라고.





"**, 저놈들 또 늘어났잖아!"

"상사님, 더 이상 전선을 유지하기 힘들어 보입니다. 민간인 대피는 90%정도 완료했고, 남은 인원은 부상자나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입니다. 퇴각해야합니다."


강화전투복을 입은 사내는 가볍게 혀를 찼다. 부하의 요청은 어찌보면 당연했다. 위상능력자들의 공격이 먹히고는 있지만 결정적으로 적의 숫자가 너무 많아, 그 대단하다는 위상능력자들 조차도 서서히 물러서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이끌고 온 부대의 절반이 당했다. 전술적으로만 생각한다면 진즉에 퇴각했어야 했다. 아직 피난하지 못한 민간인이 있다-고 스스로를 몰아세우며 무리한 작전을 강행하고 있었지만, 분명히 말해 더 이상은 무리였다. 사내는 가볍게 혀를차며 어깨에 달린 무전기 버튼을 눌렀다.


"본부, 3팀은 더 이상 작전 수행이 불가능하다. 퇴각명령을."

"양호, 퇴각은 민간인, 위상능력이 없는 병사들을 최우선으로 해 합류 포인트 B로 이동. 위상능력이 있는 인원을 투입해 근처에 남겨진 민간인이 있는지 알아보도록."

"알겠다."


낮게 날던 전투기에서 미사일을 발사했다. 데미지를 입혔다기 보다는 몰려드는 차원종들을 밀어내는 수준이었지만 그나마 공중지원이 가능하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끼는 찰나, 다시 발사된 한발이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가 민간인 대피로를 막고 있던 벽 일부를 무너트렸다.


"대피로를 확인한다. 세명만 나를 따라오도록!"


사내가 총을 움켜쥐고 벽을 향해 달렸다. 다행히 벽이 무너진 것을 눈치챈 것은 소형 뿐. 물러서고 있던 위상능력자 중 한명이 재빠르게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흐에- 드디어 퇴각인가요? 죽는줄 알았다고요, 정말. 차원종도 차원종이지만 당신들 미사일 쏘는게 서투르잖아요? 머리가 엄청 그슬렸..."


달리는 와중에도 폭발에 휘말려 살짝 그을린 머리칼을 만지작 거리며 중얼거리는 그녀를 흘깃 바라보고는 무너진 돌무더기를 넘어섰다. 그곳에서 발견한 것은 미사일에 맞아 엉망진창으로 죽은 소년의 시체와 소형이라지만 차원종에게 둘러쌓여 떨고 있는 소녀였다.


총을 겨누는 그의 손을 곁에선 위상능력자 여자가 제지한다.


"미쳤어요? 이 거리에서 쏘다가는 잘못하면 저 꼬마가 맞을거에요."

"하지만 이대로 두면 저 애는......"


여자는 어깨를 으쓱해 보인다.


"뭐, 그건 그렇지만요."

"구해야 되잖아! 당신, 위상능력자 아냐?"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진 사내를 여자는 똑바로 바라본다.


"웃기지마요, 위상능력자라고 해도 당신 같은 군인도, 심지어는 공무원도 아냐. 일단 신분상으로는 민간인이라고요. 그런데 이미 함락된 도시에서 이미 가망없는 여자애 하나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라고요? 내가 왜 그래야 하죠?"


최소한 굴러서라도 옆으로 움직인다면, 묘하게 의욕을 보이지 않는 이 여자 대신 자신이 위상능력자 였다면, 그랬다면 - 사내는 이를 갈았다.


"꼬마야, 도망쳐!"


목이 쉬었던가. 사내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다.







어째서 보고도 구해주지 않는거야?


어른이잖아?


무기도 가지고 있잖아?


죽고 싶지 않아. 죽고싶지 않아, 죽고싶지 않아 죽고싶지 않다고!


차원종 한마리가 들고 있던 무기를 휘두른다.


나는-



"죽기 싫어!!!!!!!"



소녀의 외침. 죽음의 공포 앞에서 외친 단말마. 연약한, 아니 연약했을터인 그 한마디는, 계기. 그 한마디로 소녀의 세계는 반전한다.


끼이이잉-


그것은 세계가 뒤틀리는 소리. 소녀를 중심으로 아무것도 없을터인 공간에 균열이 퍼져나간다. 벽을 무너트리고, 땅 속에 묻혀 있던 수도관이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터져 물줄기를 뿜어낸다. 균열은 소녀를 중심으로 계속해서 퍼져나간다. 넋을 잃고 그 광경을 바라볼 뿐인 사내와 여자를 지나쳐, 인간만을 제외한 나머지 모두를 파괴한다.


위상능력의 갑작스러운 각성과 폭주.


그것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목격한 위상능력자인 여자는 그 현상을 그렇게 설명했다. 그렇게 밖에는 이해할 수 없는 그런 것이라고. 그것을 가능케 한 것은 죽고 싶지 않다는 소녀의 바람. 그것을 이루어낸 것은 채 10살도 되지 않은 소녀의 재능.


"상사, 50미터 이내의 차원종 반응이 갑자기 사라졌다. 대체 거기서 무슨일이...... 상사? 상사!"


 곁에 선 다른 사람들이 주춤거리는 사이 사내는 균열의 중심에 선 소녀를 향해 다가간다. 그리고 방금 전까지 입을 벌린 채 놀라고 있던 여자는 뒤로 돌아 소녀가 일으킨 '폭주'를 바라보며 슬며시 입꼬리를 올렸다.



10년 후-.



타다다닷-.


"이희영 요원, 통제에 따르도록. 지금 너무 돌출되어 있다."


허리까지 기른 흑발이 흐트러진다.


"이희영 요원!"


입꼬리를 슬며시 올리며, 눈 앞을 가로막은 쓰러진 표지판을 가볍게 뛰어넘는다.


그녀의 곁에는 두개의 구체가 떠올라 그녀의 움직임에 맞추어 어지럽게 움직여댄다.


"할 수 있어, 할 수 있어요!"


달리는 와중에 차원종 한마리를 가리킨다.


"모조리, 죽여버릴 수 있다구요!"


떠 있던 구체중 하나가 엄청난 속도로 그 차원종을 향해 날아든다.







"엄청난 위상능력을 최대로 활용해 특별히 개발된 사이코볼을 컨트롤 하는 능력. 이 특기라고 해야하나요?"


유정은 화면을 보며 식은땀을 흘렸다.


"뭐, 그런셈이지. 이번에 일반요원으로 승진해, 일주일 후 부터 자네팀에 배속될걸세."

"으... 말이 좋아서 승진이지, 사실상 좌천이군요! 어째서 또 저런 애가..."


2024-10-24 22:38:10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