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그러니까, 그래서.
한국의나나야시키 2014-12-31 4
신 서울. 신(新)이라는 이름을 붙이기에는 다소, 사실 심각하게 폐허가 된 구석이 많은 도시였다. 기초자본시설, 통상적으로 인프라라고 불리는 종류의 건물과 시설은 잘해야 반파, 심각하면 전괴. 예전에 서울이라는 도시를 떠올리게 하는 것은 고층 건물이었을 무언가의 철골 외에는 없었다.
실제로 도심 부분은 거의 바뀌어서 재건된 게 전부이고, 주거지의 경우도 거의 다 옮겨간 상태였다. 차원 전쟁, 이라고 하기에는 전장의 선택과 피해가 일방적이었고, 목숨 외의 피해는 전부라고 해도 좋을 수준으로 인류만이 피해를 입었던 것이다.
불공평.
불공정.
세상의 이치를 보여주듯이, 다른 차원에서 건너온 적들은 그 단어의 현신이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죽는다. 죽인다. 단지 그런 것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닌, 힘없는 민간인에 대한 학살. 일방적인 폭력마저 이루어진 그런 싸움이었다.
게임으로 치면 완전한 페널티 게임. 그런 가운데 사수해낸 것이 바로 지금의 신서울인 것이었다.
그런 의미 깊은 도시의 건물들에 어둠이 완전히 내려앉았을 무렵, 두 사람의 남녀가 밤하늘의 아래에 함께 있었다. 달 아래 나란히 앉은 두 사람. 로맨틱해도 모자라지 않은 광경이었건만, 그런 분위기는 쥐뿔도 없었다. 긴장감 MAX의 진지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며 경계하는 여자와, 늘어지게 하품을 하면서 게임이나 하는 남자. 꺄아 우후후하는 핑크빛 로맨틱은커녕 부조화와 어둠이 넘쳐나는 분위기일 뿐이었다.
“이세하. 게임은 그만 해.”
“기각합니드아, 대장.”
말꼬리 마지막에 하품을 참느라 늘어졌을 뿐이었지만, 묘하게 얄밉게 들리는 말투에 비꼬듯이 붙인 대장이라는 말에 이슬비의 위장은 뚫릴 지경이었다. 동료나 부하에 의한 스트레스로 위염이나 위천공이 생기면 보험 적용 되던가, 라는 아무래도 좋을 생각을 흘려보내고 슬비는 입을 다시 열었다.
“야간 임무는 번갈아가면서 하니까 지금은 우리뿐이야. 실수해도 방법이 없으니까 진지하게 있어.”
“어차피 나왔을 때 진지해져도 되잖아.”
임무만 잘하면 되지, 라고 중얼거리면서 답답한지 목을 돌리며 근육을 푸는 세하의 모습은 하품을 하는 입에 비트를 쑤셔박아주고 싶은 충동을 자극할 정도로 매력 넘치는 모습이었기에 슬비는 눈을 돌렸다. 실제로 임무 때는 제대로 하기 때문에 더 이상 말해봤자 전혀 의미는 없다. 게임기를 뺐어버리는 방법도 있기는 했지만 둘밖에 없는 상황에서 자극해봤자 좋을 것은 없다. 그렇게 판단한 결과였다.
그 때, 슬비의 머리에 불이 들어왔다.
어차피 염동력이라면, 모른 척하고 전원 버튼을 눌러서 강제종료도 할 수 있을 터. 세세한 조절이 필요하겠지만 될 지도 모른다.
그런 결론을 내린 채 그녀는 포기하는 시늉을 하며 눈을 감고 집중했다. 전원버튼 일점에 힘을 모아서 누르고, 그 힘에 밀려서 움직이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 반대 방향에 같은 크기의 힘을 가한다.
“어, 어어어어?”
눈을 감고 한참을 있자 세하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달빛 외에는 어두침침한 거리에서 눈 아프게 빛을 내던 게임기의 화면도 ** 있었다. 성공. 되거나 말거나 아무래도 좋은 일로 자신의 컨트롤이 성장했다는 사실에 슬비는 울어야하나, 웃어야하나 고민했다. 앞의 미덥다고 말하기에는 과분하기 짝이 없는 동료 겸 부하의 덕이기는 했지만 전혀 고맙지 않았다. 적어도 슬비 자신은 그녀의 위장과 정신을 희생해서 위상력을 개발하려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기에.
“**, 고장인가! 고장이냐고오!”
“어머나, 불쌍해라.”
자신이 생각해도 발연기. 욕하면서 보는 사랑과 차원전쟁에서도 못하는 축인 그녀보다도 연기가 못나기는 했지만 슬비는 신경 쓰지 않았다. 언제나 자신의 기분을 심해까지 끌어당기는 명실상부 악의 존재가 지금 생명을 잃었다는 사실에 조금 기뻤다. 그 마음을 표정에 나타내지는 않았지만.
“이슬비, 네가 했냐?”
“내가 어떻게 했겠어?”
깨끗하게 맑게 자신있게, 라고 광고에나 나올법한 캐치프레이즈가 어울리는 표정으로 슬비는 부인했다. 세하야 세하대로 의심암귀가 머릿속을 장악한 표정으로 슬비를 노려보고 있었지만, 야간 게임으로 창출된 다크서클이 박력은 개뿔 초췌함만 더해주고 있었다. 묘하게 안쓰러운 모습인 세하를 보며 슬비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진정 저게 동료라는 놈인가, 라는 고찰을 진지하게 할 필요가 있었기에.
“**, 이렇게 되면 밤샘이다.”
“하아. 적당히 해. 임무에 방해가 될 정도면 나한테도 멈출 권리와 의무가 있어.”
“누구도 날 막지 못해.”
그렇게 세하가 말한 순간, 경보가 울렸다.
「흐아, 졸려라. 어쨌든 일이야, 얘들아. 그쪽에 C급 차원종의 반응이 나타났어. 할 수 있겠지?」
“네.”
“끄으, 이런.”
“누구도 막지 못한다며?”
“공사는 구분하고 있어.”
반달이 중천에 뜨고, 아침노을이 서서히 동쪽 하늘에서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는 시간에 두 사람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
“그래서 결국 밤은 샌 거야? 독하네, 너. 게임에만.”
“그렇게 웃기는 걸 보는 표정으로 ** 말라고, 서유리. 완전 졸리거든.”
“자업자득이야. 낮 임무는 다같이, 인 건 알고 하는 거지?”
“알아, 안다고. 너까지 딱딱하게 이슬비같은 소리하지 말란 말이야.”
아침밥을 식당에서 적당히 푹푹 입에 쑤셔박으면서 무기력하게 늘어진 세하의 앞에서 유리는 낄낄대고 있었다. 비웃음 반 흥미 반의 그 웃음은 세하의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딱히 지적하지는 않았다. 자신도 분명히 지금의 자신과 같은 사람이 눈앞에 있다면 비웃을 것이 틀림없었다. 적어도 이슬비가 드라마 재탕으로 밤샘을 하고 늘어져 있었다면 전력으로 바닥을 구르며 비웃어줄 준비가 OK였다. 그 모습이 아무리 멍청이같아도 포기할 수 없는 행위라고 해도 좋았다.
“그래서 밤중에 남녀 둘이 아무 일도 없었는가?”
“내 게임기의 의미불명 전원OFF라는 불미스러운 사건만이 있었지.”
“너 정말 게임 외에는 관심 없구나.”
“게임은 사랑입니다.”
밥을 먹으면서 떠드는 것이 버릇이 없다고는 알고 있었지만 둘 모두 대화를 그만두지 않았다. 둘 모두 이런 걸로 떠드는 것만큼은 죽이 잘 맞았기 때문에 각박하기 짝이 없는 일상 속에서는 나름대로 즐거운 회화였기 때문이었다.
“다 먹었어?”
“더 먹을 기운도 없어.”
그 말에 히죽, 하고 웃은 유리는 빠르게 그릇을 정리하고 세하의 팔을 잡은 채 식당에서 나왔다. 금방이라도 아침 식사를 바닥에 다시 내놓을 표정으로 힘없이 끌려나오는 세하의 모습은 식당 주인에게도 안쓰러움을 어필할 정도의 수준이었지만 유리에게 적당히, 라는 말은 존재하지 않았다.
“야아, 토할 것 같으니까 그만 뛰어.”
“뛰지도 않고 끌려오고 있잖아?”
“여기 바닥이 울퉁불퉁해서 끌려가면 멀미난다고.”
“토 나오면 해. 버리고 갈게.”
나오면 네 얼굴에 뿜어주마, 라는 결의를 가슴에 품고 무참하게 끌려가던 세하는 그래도 속이 좀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자의는 없이 끌려갈 뿐인 상황인 건 그대로였지만 포장도로에 들어서자 바닥이 좀 편안해진 덕이었다. 위장을 직격하는 진동이 없어지는 것만으로도 좀 살 것 같았다.
“자자, 빨리 가자고!”
“더 빨리 가자고?”
슬슬 유니온의 건물이 보이기 시작한 탓인지 뭔지 흥분한 유리의 손아귀가 팔을 놓고 목덜미를 콱 잡아서 순간적으로 세하의 정신이 아득해졌다. 경추에 가해지는 압력과 함께 머리에 피가 덜 돌아서 핑 도는 느낌 속에서 세하는 입을 열었지만 입에서는 바람 새는 소리만이 나왔다. 살려줘, 라는 단어가 세상에서 사라진 것만 같은 느낌. 내고 싶은데 나오지 않았다.
“어? 세하 너 왜 그러고 있냐.”
살려줘, 살려주세요 라고 입 안에서만 멤도는 말을 뱉어내기 위해 노력한지 한참. 겨우 목적한 곳에 도착한 모양인지 멈춘 유리가 말했다. 컥컥대면서 쓰러진 세하의 모습을 보고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내려다보는 모습은 세하에게 진심을 내게 할 수준으로 그의 분노를 긁었다.
“크, 큼. 너 때문이라고!”
“자기 단련이 부족한 걸 남의 탓으로 돌리지 말아줄래?”
“방금 뭐라고 했냐!”
분노를 담아서 외쳤건만, 세하의 기력은 이미 바닥까지 떨어진 상태였기에 바닥에서 긁어 올라오는 것만 같이 안쓰러운 영혼의 외침으로 들릴 뿐이었다. 유리의 미묘하게 상냥해진 눈길을 받으며 불행해, 라고 중얼거린 세하는 비척비척 일어났다.
“아하하, 활기차네.”
뒤쪽에서 들리는 여성의 목소리에 오래 잡혀서 삐걱거리는 고개를 세하는 억지로 돌렸다. 그아아앗, 이라는 비명이 입에서 흘러나왔다.
“활기를 넘어서 생기도 없다고요.”
“그런 것 치고는 소리도 잘 지르던데?”
분노로 인한 순간 도핑입니다, 라고 중얼거린 세하는 다시 주저앉았다. 일하고 밤까지 샌 다음에 아침도 제대로 못 먹은 채로 거친 바닥 위를 끌려왔는데 HP가 남을 리가 없었다. 피가 부족해, 라고 외쳐도 이상하지 않은 몸 상태였다.
“그 꼴을 보니 결국 잠은 안 잔 모양이네.”
“그렇다니까—. 완전 이거 바보라고.”
“이거라고 하지 마, 수전노가!”
“누가 수전노야!”
발을 내려찍는 유리와 손으로 받쳐 막는 세하. 동료들 간의 훈훈한 우정을 느낄 수 있는 장면이었다. 적어도 김유정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실제로는 위상력까지 실어가며 전력으로 밟고 버티는 중이었지만.
“언제 일이 터질지 모르는데 그런 식으로 장난을 치는 건 그만둬.”
“장난이 아니라고!”
“아직 소리 지를 기운은 있네, 세하야!”
크허으억. 폐에서 바람이 나오는 소리를 내면서 점점 바닥에 처박히는 세하의 모습도, 그걸 보면서 웃는 유정도, 밟고 있는 유리도 슬비는 불만이 있는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지금 맡은 일을 생각하면 나올 수 없는 태도였지만, 다들 그런 건 개의치 않았다.
“그러니까 적당히 그만 해둬.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장난이 아니야.”
“슬비야. 그런 식으로 너무 딱딱하게 있지 말고 너도 같이 이야기도 하고 하는게 좋지 않니?”
“네?”
딱딱하게 군다. 분명히 관리직이고, 자신도 현장 리더라는 점에서 같은 상황일텐데도 불구하고 슬비는 유정의 말에 순순히 수긍하지 못했다. 단순히 공무원이라고 하면 적당히 일해도 상관이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분명히 들기는 하지만, 그들이 하는 일은 명백히 목숨이 달린, 생명을 지키는 일이었다. 저런 식으로 가볍게 넘어가는 어조는 절대로 용납할 수 없었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단순히 어울린다는 것과는 달랐다. 이건 슬비 자신이 딱딱한 태도이고 자시고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자신과 다른 사람의 생명을 건, 그런 일을 앞에 둔 상황에서 웃고 떠드는 건 용납할 수 없었다.
“그래?”
어울리지 않네.
유정의 시선이 그렇게 책망하는 것만 같아서.
슬비는 결국 시선을 돌리고 말았다.
검은양에게서도.
자신에게서도.
===
“그런데 너 진짜로 새로 산거야?”
“그럼 아니겠냐.”
또 갑자기 꺼졌다간 내 정신이 버티지 못해, 라고 말한 세하는 다시 양쪽 귀에 이어폰을 장착하고 시선을 게임기로 돌렸다. 고등학생이라는 입장만 생각해보면 돈을 물쓰듯 쓰는 모습이 좋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세하는 엄연한 공무원. 자기가 번 돈을 멋대로 쓰는 것이니 누가 뭐라고 할 방법도 없었다.
부모님이라면 또 모를까.
“원래 있던 건?”
“버렸어.”
이어폰으로 귀를 막은 상태에서도 용케 들었는지 세하는 유리의 물음에 대답했다. 시선은 고정된 상황이었지만 대답은 성실하게. 어깨와 배 근처에 난 발자국이 그 이유를 말해주고 있었지만 그 누구도 그 사항에 대해 입을 열지는 않았다. 임무 외에는 게임으로 인생을 채우고 있는 세하가 모처럼 대답을 제대로 하는 상황에서 초를 칠 필요는 없던 것이었다.
“버렸니?”
“그렇다고.”
멀쩡한 물건을 버리게 한 장본인인 슬비는 물건과 자원에 대한 미묘한 자책감이 느껴지기는 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뒤늦게 말해봤자 좋은 점은 사실 상 제로. 디메리트 뿐인 행동을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게임은 그만둬, 라고 슬비가 버릇처럼 입에서 나오려던 말을 곱씹던 중, 무전이 울렸다.
「얘들아. 구로역 쪽에 차원종이 출현한 것 같아. 준비는 다 됐니?」
“네—에!”
“네.”
“하아, 오늘도 결국 쉬지는 못하는구만.”
각양각색. 대답만 들어도 누구인지 전부 예상이 되는 발언에 무전 너머에서 살짝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누구는 목숨 걸고 일하러 나가는데 웃음이 나옵니까, 당신은 S인가요. 라고 따지고 싶은 마음이 한가득 차오른 슬비였지만 씹어 삼켰다. 주변은 못미더운 인간 투성이. 일일이 따져봤자 자신의 머리와 위장과 목만 아픈 것이라는 것 정도는 경험으로 깨달아가는 중이었다.
미묘한 수준으로 불쾌해진 기분을 억누르며 다른 두 사람에게 현장 지휘를 하기 위해 뒤로 돌아본 슬비는 열리려던 입을 꾹 다물었다. 공사는 구분한다던 멍청이 하나가 아직도 미련이 남은 것처럼 깔짝깔짝 게임기를 건드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세하.”
“알아. 무슨 말인지 알아. 하지만 기다려. 나에게 시간을 조금만 줘.”
“사형.”
게임기가 그대로 반토막이 났다.
“우아아아아아, 무슨 짓이야!”
“진지하게 하라고 했어. 오늘만 해도 몇 번을 말했는지 몰라.”
“오오. 한심하구나, 이세하. 신상이 부서지다니.”
“웃기지 마! 서유리 너는 웃지 말고!”
웃기지도 말고 웃지도 말고. 떼쓰는 애나 다름없는 발언에 살짝 얼굴을 찡그린 슬비는 하려다 만 것을 다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작전 지휘. 동시에 여러 군데에서 나타나기 시작한 차원종, 이라는 정보가 단말을 통해서 전해져 왔기에 내릴 지령은 하나였다.
“전부 흩어질 거야. 각자 내가 전송한 지역으로 가서 처리해. 그 후에 다시 이곳에 집합할 거야.”
“야, 내 게임기는 어쩔 건데! 배상해라, 배상!”
“그럼 작전 개시.”“무시하지 말고!”
뒤에서 궁시렁거리는 걸 넘어 아우성치는 세하를 무시해버리고 먼저 자신이 맡은 지역으로 슬비는 이동했다. 순간 자신답지 않게 분노 조절을 못하고 저지른 일이기도 했고, 다시 제대로 이야기를 해야 하는 사항이었기 때문에 당장은 먼저 닥친 일인 임무를 수행하기로 한 것이다.
“좀 진지해지면 좋을텐데.”
세하도.
유리도.
다른 사람들도 전부.
직급이나 하는 일에 관계없이, 다들 너무 들떠있다. 조금 더 진중하게, 진지하게 일에 임하면 안 되는 걸까. 어째서 저런 사람들이 민간인과 도시를 지키는 일을 맡아서 하고 있는 건지. 우습게 보는 것도 아니고.
여러 일이 겹치고 겹쳐, 확실하게 짜증이 쌓여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걸 풀어내듯이, 목표 지역에 있는 차원종들에게 명백한 오버킬을 가하고 있었다.
“언제나, 언제나 멋대로 굴기나 하고.”
오늘도, 어제도.
그리고 처음 만난 날부터 계속해서. 같은 ‘팀’이라는 유리와 세하는 언제나 멋대로였다. 임무에 임하는 자세도 진지하지 못했고, 당연히 가져야 할 책임감과 프로로서의 의식도 부족했다.
툭하면 밥통에 돈 타령.
툭하면을 넘어 생활인 게임.
“조금 더 제대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한 노력도 없이.”
유리는 그래도 검도를 하지만, 세하가 근무 시간 외에 뭘 하는 건 게임과 식사 외에 본 기억이 없었다. 언제나 붙어다니는 건 아니지만 그 성격에 몰래 연습을 하거나 위상력을 계발하기 위한 노력은 전혀 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현장 리더에 대한 배려도 없고.”
현장 리더. 이름뿐인 직책일지 몰라도 긴급상황이 닥치면 지휘권을 가지고 있는 건 슬비였다. 평소에도 배려나 존중을 좀 해주지 않으면 그런 상황에 자신이 통제를 할 가능성도 거의 없다고 생각됐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런 걸 기대하기는커녕 바라기에도 과분한 문제 덩어리 둘이었다.
“그런 식으로, 아?”
불평을 늘어놓으면서 파괴를 흩뿌리던 도중, 순간적으로 두통이 몰려왔다. 반사적으로 잡고 있던 무기마저 떨어뜨리고 벽을 짚었다. 그리고 그 다음 순간 깨달았다.
전투 중에 이렇게 되어버리면.
“큿, 잠깐.”
어지럽게 흔들리는 시야 속에서 떨어뜨린 걸 잡기 위해 손을 뻗었지만, 손이 닿는 것보다 빨리 몸에 충격이 가해졌다. 새어나오려는 비명을 삼키고 억지로 자세를 잡으려는 찰나, 옆에서 누군가 팔을 잡았다.
“정말이지. 불안하다 해서 와봤더니 이러고 있는 거야?”
“진지하게 하라던 본인이 이러고 앉아있는 건 좀 아니지 않냐?”
이제는 익숙한 두 사람의 얼굴.
언제나 진지하지 못하고, 언제나 노력도 하지 않고, 언제나 배려도 없이.
언제나 앞에 서버리는.
“…미안해.”
짜증나.
“조금 방심한 모양이야.”
매번 멋대로 구는 주제에.
“이번에는 신세를 졌네.”
노력 같은 건 하지도 않는 주제에.
“고마워.”
잘난듯이 앞에 서서, 사람을 바보 취급하고.
“흥, 알면 변상이나 해내라고.”
“…그래.”
정말로.
싫어.
===
“위험한 일이 있었다면서? 괜찮니?”
그런 가벼운 말투로 무시하는 것처럼, 언제나.
“네. 괜찮습니다.”
“오늘 야간 경비도 유리가 대신 하는 게 어때?”
사람을 필요 없다는 듯이 멋대로 뒤로 빼려고 하지 마.
“아뇨. 괜찮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그런 얼굴로.
“괜찮습니다.”
사람을 바보로 만들기나 하고.
“과하게 위상력을 사용한 것 때문에 잠시 동안 두통이 온 것뿐입니다.”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어쩔 수 없지만. 세하한테 말은 다 해놓을테니까, 너무 무리하지는 말고.”
“네.”
슬비는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은 표정으로 수긍하고 물러났다. 표정변화가 적은 자신의 얼굴이 이번만큼은 고마웠다.
필요없는.
어울리지 않는.
자신이 말한 말조차 따르지 못하는.
그런 자신이 나오는 것은 싫었으니까.
“여어, 멀쩡하냐?”
“그래.”
지금 눈앞에 있는 상대를 보고 순간적으로 올라오는 분노를 억지로 눌러 담은 채, 슬비는 대답했다.
“오늘 야간 순찰은—.”
“평소에는 관심도 없었는데, 갑자기 무슨 자신감이라도 생겼어?”
“야, 그게 무슨 소린데?”
“몰라도 상관없어. 밤에 보자.”
싫으니까.
싫어서.
그 얼굴을 보면.
정말로—.
***
틱틱, 하는 소리만이 밤에 거리에 울리고 있었다. 달마저 그믐달. 빛이라고는 거의 없는 거리의 가운데에 환하게 빛나는 것은 기계의 액정뿐이었다. 세하가 실행 중인 게임이 어지럽게 그 화면을 바꿈에 따라 그 빛에 비치는 거리의 색도 조금씩 바뀌는 중이었다.
그 뒤,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아있는 슬비는 자신의 뒤에서 나오는 빛의 색이 변하는 것이 거슬리기는 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그저 앉아있었다. 게으르고 방만하기 짝이 없는 녀석의 얼굴 따위는 보고 싶지 않았다.
절대로 보고 싶지 않았다.
도시의 거리가 어두워지고, 매연도 없어지면서 그 모습을 신서울의 하늘에 보여주기 시작한 별들이 하늘에는 빛나고 있었다. 마음같아서는 우중충하게 비라도 오면 차라리 좋으련만,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기만 했다.
비가 오면, 이 답답한 시간도 끝날텐데.
슬비의 생각을 들어줄 마음은 없다는듯이 반짝이는 별들이 얄미웠다.
“아?”
한참을 혼자 하늘만 보며 있던 슬비가 이상을 눈치 챈 것은 꽤나 시간이 지난 뒤였다. 분명히 들려야 할 버튼의 소리도, 액정의 빛도 없었다.
주변에 있는 것은 완전히 내려앉은 밤의 어둠과, 정적뿐.
“어, 어디에 있어?”
한심할 정도로 작은 소리만이 슬비의 입에서 새어나왔다. 입술이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그럴 리 없는데, 없을것이 분명한데도 불구하고 막연한 상상만이 머릿속을 채우기 시작했다.
버려졌다.
또 혼자서.
어울리지 않으니까.
어울리지 못하니까.
그저 도움도 안 되는 주제에 딱딱하게 굴 뿐인 인간이라서.
버려졌다고.
“아니야….”
믿고 싶지 않았던 건지.
“그럴 리 없어….”
믿어버리면 무너질 것만 같아서였는지.
“아, 아아.”
말조차 되지 못한, 단순한 소리만이 입에서 나왔다.
아까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밤의 공기가, 무서울 정도로 시리게 찾아왔다.
“엥. 너 거기서 혼자 뭐하냐.”
“아, 아?”
“혼자 쭈그려서 뭐하냐고. 아냐 됐어. 말하기 싫으면 말고.”
전조도 없이 나타난 세하가 말을 걸기 전까지는.
“자, 잠깐 기다려.”
“응? 나 바쁜데. 방금 화장실에서 오느라 못한 보스전을 마저 해**다고.”
이유는 몰랐다.
그저 입이 움직이는 대로. 몸이 움직이는 그대로 슬비는 세하를 멈춰세웠다.
“너, 너는 내가 싫어?”
나온 건 한심하기 짝이 없는 질문. 달싹거리는 입술로 간신히 내뱉은 말은 유감스러울 뿐인 물음으로 끝났다. 세하도 잠시 멍청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꽤 시간이 지난 후에야 입을 열었다.
“그야 싫다만.”
끝났다.
뭐가 끝인지, 뭔가 시작은 했었는지 알 수 없었지만 확실히 슬비의 안에서 끝났다고 결정이 났다.
“언제나 귀찮게 건드리고. 게임 방해하고. 싫어하지 않으면 이상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렇겠지, 역시.”
세하에게는 들리지 않는 크기로, 슬비가 중얼거렸다.
“하, 하지만 말이야. 그 뭐라고 해야 되냐. 그, 아 그 뭐지. 너는 싫어도, ‘우리’는 별로 싫지 않다고.”
우리.
혼자인 네가 아니라.
“아, 잠깐. 잊어. 이건 잊어버려. 아, 씨. 쪽팔리게.”
진심인지 아닌지는 확인할 필요가 없었다.
확인하고 싶지 않았다.
“우리, 라는 건 나도 같이…, 인 거야?”
“응? 당연하잖아. 같은 팀인데. 애초에 우리가 좋다 싫다는 따질 입장도 아니라고 생각하는데으엑, 너, 너너너너너 갑자기 뭔데!”
갑자기 끌어안고 가슴에 얼굴을 묻은 슬비에, 세하가 꼬여가는 혀를 풀며 말했다.
“잠깐만, 잠깐만 이렇게 있어줘.”
“아니 그러니까 왜. 아냐 됐다.”
떨리는 목소리에 뭔가 눈치를 챘는지 입을 다문 세하의 가슴에 대고, 슬비는 나오는 눈물을 참았다.
보고 싶지 않으니까.
그 말을 한 세하의 얼굴을.
보여주고 싶지 않으니까.
엉망진창인 지금의 얼굴을.
“…나는, 난 말이지. 네가 싫어.”
“야, 그게 갑자기 또 뭔 소리야?”
“네가 정말로 싫어.”
“아니 그러니까 영문을 모르겠다고.”
정말로 싫어.
싫어하지만, 싫어하지 말아주세요.
정말로 싫지만.
그만큼.
그 이상으로.
정말 좋아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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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가벼운 마음으로 헤헤 5KB정도 짜리 일상물 써야지, 하고 썼더니 결과는 20KB. 이게 뭐야. 게다가 일상이 아니잖아 일상이.
후반부 급전개는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은 본인과 그 본인의 공복으로 인해 강제 완성.
저거저거 엔딩 짝사랑 엔딩임. 헤헤헤헤. 내가 여친이 없는데 쌍방향은 창작에 있을 수 없어.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여친이 없는 건 전부 여자들이 나쁘니 나는 욕먹을 이유가 없다.
이벤트는 어차피 될 이유도 필요도 없으니 안하는 걸로. 근데 이거 문넷마냥 취소선이 없으니까 뭔가 아쉽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