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편 ] [ 홍시영 ] 일생. 그리고 어쩌면….

노해미르 2015-08-03 4

팬무비


팬소설

[군단장 이세하] 운증용변 STD(雲蒸龍變 Seha The Dragon)










1

 “허억, 허억….”

 위가 쓰리다. 본래라면 이렇게 달리는 건 ** 짓이겠지만, 이제 와서는 전부 상관없다.
 왜냐하면….

 “어이!”

 “아, 당신들이군요.”

 뒤에서부터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늑대개팀. 개목걸이를 차고 있는, 자칭 사냥개. 애완견들이다.
 아니, 이제는 자칭 늑대인가.

 “후후, 저를 쫓아온 건가요?”

 “그래. 이 망할 여자야!”

 나타. 저 개들 중에서도 가장 짜증나는, 가장 나를 화나게 하는 작자다. 저 목의 초커를 폭파시켜서 머리통을 날려버리지 못한 게 아쉽지만, 이제 와서 거기에 집착 할 생각은 없다.

 “이제 이 몸도 얼마 안 남았군요…. 그러니까 끝이 오기 전에… 저는 그곳에 가지 않으면 안 돼요.”

 그곳으로, 그곳으로 가야만 한다.
 나는 벌처스 특제 스텔스 스프레이를 뿌렸기에, 겉으로는 변화가 없지만 차원종의 감식기관에서 벗어나 차원종에게 인식되지 않는다.

 “하지만 당신들은 그렇지 않겠죠. 열심히 차원종들과 싸우라고요. 전 그 사이에… 그곳으로 향할 테니….”

 그들에게서 등을 돌리고, 차원종들 사이로 달려간다.
 스프레이의 효과 덕에 차원종들은 나를 바라**도 않고 있었으며, 오히려 나를 쫓아오려는 이들의 앞길을 막았다.
 이것도 썩 나쁜 기분은 아니다. 저 차원종들은 자신들이 그런다는 자각조차 없이 나를 위해 움직이고, 그렇게 전부 목숨을 잃게 될 테니까.

 “허억, 허억….”

 그들 앞에서는 태연하게 굴었지만, 위가 쓰린 것이 지금까지 버텨온 정도를 가볍게 넘어섰다.
 굳이 표현을 하자면, 위장에서부터 칼날이 회전하며 식도를 난자하고, 그렇게 목까지 올라오고 있는 것 같은 아픔이다.
 어차피 이미 시한부 기간은 지난 지 오래. 언제 갈기갈기 찢겨져도 이상하지 않은 몸이다.

 “어쩌다… 어쩌다 이렇게까지 된 걸까.”


2

 이 모든 일의 시작은 15년 전. 내가 아직 초등학생이던 때였을 것이다.
 그 당시에도 나는 객관적으로 정상적인 아이는 아니었다. 개구리를 해부하며 그것을 즐기던 아이었으니까.

 물론 그저 생물을 죽이고 배를 째는 것만이 즐거웠던 것은 아니다.
 그게 아주 즐겁지 않았던 것도 아니지만, 진짜 목적은 개구리의 뱃속, 그 내부 구조를 보는 것이 즐거웠다.
 일종의 학구열이었던 것. 물론 초등학생이 가질 만 한 것이 아니었기에, 나는 아이들 사이에서 늘 겉도는 존재였다.
 공부하는 것 보다 뛰어놀기를 좋아하는 아이들 사이에서 공부를, 그것도 해부까지 해가며 내 학구열을 채우는 것을 좋아했으니.

 사실 이 또한 태어날 때부터 이러했던 것은 아니었다.
 흔히 있는 이야기로, 가정환경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
 아버지는 내게는 친절했으나, 술을 마시고 어머니를 때리기 일쑤였으며, 어머니는 그럴 때 마다 나를 때리셨다. ‘너 같은 게 태어나는 바람에 내가 저 사람에게 발을 잡혔다.’ 라던가, ‘너만 안 태어났어도 나는 좀 더 찬란한 삶을 살 수 있었을 거다.’ 라며.

 아이들에게는 괴롭힘을 당하고, 집에서는 폭력에 노출되어 살아가고 있었으니 정상적인 아이로 자랄 수 있을 리가 만무.

 특히 그 날은, 내 인생을 송두리째 뒤집어 놓은 사건이 일어났다.

 위이이이잉….

 내가 살던 작은 시골마을에는 여기저기서 사이렌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차원종 경보. 대피를 유도하는 목소리. 그 와중에도 나는 대피하는 사람들 사이에 끼어들 수 없었다.

 덜컹, 덜컹!

 “꺼내줘! 나 좀 꺼내줘!”

 캐비닛. 캐비닛이 덜컹, 덜컹 흔들리며 그 안에서 한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어릴적 나의 목소리.

 “누구라도 좋으니까 제발! 나 좀 살려줘!”

 그 때의 나는, 간신히 보이는 캐비닛의 틈새로 캐비닛 바깥을 보고 있었다.
 이미 다들 대피하고 교실은 텅 비어 있었으며, 복도도 대피하는 사람들의 떠드는 소리로 시끄러운 탓에 내 목소리가 거기까지 닿지 않고 있었다.

 아니, 이만큼 덜컹 거렸으면 누군가는 들었을 법도 하지만 아무도 오지 않았던 것은, 아마 듣고서도 무시한 것뿐이리라.
 자신이 아니더라도 누군가는 도와주겠지. 또는 아무도 이쪽에 관심을 갖지 않으니 잘못 들은 것일 터. 그 정도의 생각으로 무시하고 있다고 보는 쪽이 타당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계속해서 닫힌 캐비닛 문을 두드리며 소리치고 있었지만, 그 누구도 이쪽으로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포기하지 않고 있었다. 이미 모두들 대피하여, 캐비닛 문틈으로 보이는 복도는 침묵만이 가득하지만, 그래도 두드리며 소리 지르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때, 뒤늦게 복도를 달려가는 사람이 눈에 띄었다.
 담임선생님이었다.

 “선생님! 도와주세요! 여기 갇혀있어요! 열어주세요!”

 아까와는 상황이 다르다. 복도는 물론 학교 전체가 침묵뿐이다. 한참 떨어진 사람의 숨소리도 들릴 정도로 조용한 상황에서 내 목소리가 복도까지 닿지 않을 리가 없다.
 그리고 역시나, 선생님은 이쪽을 바라봤다.
 멈칫, 하고 달리던 자세 그대로 멈추어 이쪽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잠시 그 자리에 굳어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어?”

 선생님은 그대로 날 무시한 채 복도를 달려갔다.

 “꺼, 꺼내줘! 나 좀 꺼내줘! 같이 가! 나도 같이─”

 더 이상 존대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저 무작정 외치며 문을 두드릴 뿐. 헌데 그 순간, 아무도 없던 복도에서 누군가의 실루엣이 보이기 시작했다.
 사람은 아니었다.

 “─히익!”

 괴물. 이족보행 하는 커다란 쥐와 뿔이 달린 커다란 괴물. 해골 모양의 괴물 등.

 차원종이다.

 아까부터 시끄럽게 울려대던 차원종 경보조차 이제는 멈췄다.
 정말로 모든 소리가 사라지고 침묵만이 남았다. 저 차원종들의 발소리와 울음소리를 제외한다면.

 “흑, 흐끅…!”

 무섭다. 무섭지 않을 리가 없다.
 저 괴물들은 나를 찢어 죽이는 것 정도는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내가 개구리를 해부한 것과 비슷한 정도의 수고로도 충분하겠지.
 저들에게 있어서 나는 해부실의 개구리나 다름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어른들이라도 겁을 짊어먹고 주저앉을 상황. 눈물과 흐느낌을 참은 것만으로도 나 자신이 대견할 따름이다.

 다만, 애석하게도 나는 차원종이 인간과 다른 방식으로 대상을 인식한다는 걸 몰랐다.
 소리를 내지 않는다 해서 차원종에게 들키지 않을 수 있던 것이 아니었다.

 끼기기기기긱….

 그토록 애원하던, 캐비닛의 문이 열렸다.

 아니, 이걸 열렸다고 해도 좋은 걸까. 아마 일반적인 상식으로, 열린 문이 반으로 구겨지듯 접혀 있다면 그걸 열었다고 표현하지는 않을 것이다.

 “키가아아아아!”

 이족보행 하는 쥐 형태의 차원종이 나를 향해 입을 쩍 벌리며 포효했다.

 “힉…!”

 다리가 풀려서 주저앉았다. 두 팔로 머리를 감싼 채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숙였다.
 이것이 어떤 소용이 있을 리는 없지만, 본능적으로 그리고 반사적으로 나온 방어자세.
 허나 이 자세가 의외로 소용이 있던 것일지, 별다른 고통이 느껴지거나 하지는 않았다.

 “키, 게에에에에!”

 오히려 차원종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그 소리가 멀어지는 것으로 보아, 멀리 달려간 모양.
 서서히 고개를 들며 눈을 떠 보자, 주변의 차원종들이 하나 같이 괴로워하며 바닥을 기기 시작했다.

 “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라고 생각하며 캐비닛 안쪽 벽을 짚고 풀린 다리로 힘겹게 일어나는 순간, 갑자기 목과 눈이 쓰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콜록!”

 갑자기 기침이 튀어나왔다. 피와 함께.

 “피, 피? 어째서?”

 지극히 당연한 의문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대체 갑자기 왜 피가 나온단 말인가.
 허나 그 의문의 해답을 얻기도 전에, 나는 그 해답을 찾을 여력조차 남지 않게 되었다.

 “케, 헤엑! 흐엑! 헥!”

 따갑다. 목이 따갑고, 눈이 따갑고, 몸 여기저기가 따갑다.
 기침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기침은 나오지만, 목이 따가워서 제대로 기침을 내뱉지 못하고 공기만 내 뱉을 뿐.

 “으헥, 헤엑! 케엑!”

 괴롭다. 고통스럽다. 어서 여기서 빠져나가고 싶다.
 오로지 그 생각 하나만으로 교실 밖으로 나가, 차원종들이 괴로워하며 널브러져 있는 복도를 지나갔다.
 사방이 고통스러워하는 차원종이다.
 나는 그 사이를 유유히 걸어가며 생각했다.

 괴롭다. 고통스럽다. 무섭다. 빨리 여기서 빠져나가고 싶다.

 그리고─

 “─아름다워.”

 아름다다.

 차원종들이 괴로워하며 바닥을 기고, 그 중 일부는 피 같은 녹색의 액체를 내뱉으며 산산조각 나는 것도 있었다.
 그야말로 한 편의 지옥도. 허나 이것은 내가 생각했던 끔찍하기만 한 지옥이 아니었다.
 아름답다. 그야말로 아름다운 지옥이었다.

 나는 괴롭지만, 그러면서도 학교 곳곳을 돌아다니며 이 지옥을 뇌리에 새겼다.

 그 뒤에야 학교 밖으로 빠져나갔고, 한참을 걸어가다 쓰러질 무렵이 되어서야 누군가에게 구조되었다.

 그 이후 나는 당연히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한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내가 있던 학교의 차원종들이 죽어가고, 내가 고통 받았던 이유는 벌처스라는 기업이 차원종을 상대로 독가스를 살포하였기 때문이라는 것.

 병원에서 의사가 말하길, 20살을 넘기기 힘들 것이라고 한다.

 두 분 부모님은 난리가 나셨다. 두 분 모두 내게 그렇게까지 친절한 분들은 아니었지만, 하나뿐인 딸이 이렇게 됐으니 화가 나는 것도 당연.
 아니, 어쩌면 그저 노후가 걱정 될 뿐인 걸까. 반듯하게 키워놓고 노후에 내 보살핌을 받을 계획이었으나, 그게 망가져서 화가 난 것일 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든 두 분 부모님은 매우 화를 내셨다.

 허나 그것도 잠시. 벌처스의 사람이 부모님께 거액의 배상금을 지급하였고, 부모님은 이 일을 없던 것으로 처리했다.
 병원에서도 돈을 받은 건지, 내 망가진 소화기는 선천적인 문제로 처리되었다.

 돈의 힘은 위대하다. 아직 그 사실을 깨닫기에는 어린 나이였으나, 그 사실을 깨닫지 않을 수가 없었다.


3

 그리고 그것이 현제까지 이어졌다.
 신의 농락인 걸까, 아니면 그 의사가 돌팔이였던 걸까. 나는 20살을 넘기기 힘들 것이라는 의사의 말과는 달리 벌써 30을 넘어섰다.

 그저 죽은 듯이 살아가며 최후를 기다리던 20살 전후와는 달리, 사형선고일이 아득히 넘어간 뒤로는 한 가지 목표를 갖게 되었다.

 그 때 보았던 아름다운 지옥을 다시 한 번.
 학교 같은 좁은 공간이 아닌 이 세계 전체에.
 온 세계를 아비규환으로. 그리고 불바다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리고 지금이 바로 그 순간.

 “어이!”

 목표지점에 도착하여 준비를 끝내자, 개들이 나타났다.
 차원종들을 전부 상대하며 쫓아와야 했을 터인데, 그 전부를 뚫고 여기까지 쫓아온 건가.

 “당신들도 참 끈질기네요. 여기까지 절 쫓아온 건가요? 후후. 하지만 이미 늦었어요. 저는 준비를 끝냈다고요.”

 “준비라니…! 또 무슨 망할 계획을 꾸미고 있는 거야!”

 “그야 물론…지옥에 가는 계획이죠.”

 신은 내게 시한부를 내리며 자신의 뜻대로 죽으라 명했다.
 허나, 나는 누군가가 내린 명령에 충실히 따를 정도로 좋은 사람이 되지 못한다.
 그렇기에, 그 신에게 거나하게 엿을 먹이며 스스로 죽음을 택한다.
 내가 죽는 순간은 내가 정한다.

 “제가 준비한 최고의 병기인… 이 헤카톤케일 웨폰이… 이제 곧 이 죽어가는 몸을 내려칠 거예요.”

 그렇게 나는 지옥에 떨어진다. 스스로의 의지로.

 “무,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집어 치워! 이리로 오라고!”

 “나타. 그리고 개들. 한 가지만 충고하죠. 제가 죽는다고 해서, 당신들이 행복해질 거라고 생각하지 마요. 주인이 죽는다고 해도 개는 개에요. 또 다른 주인이 당신들의 목줄을 잡겠죠.”

 그럼, 이제 실례.
 썩 재미있는 삶이었다. 이제부터 가게 될 지옥은 더욱 더 날 즐겁게 해 주겠지.

 “그곳에서 당신들이 오길 기다릴게요. 새로운 개목걸이를 가지고요. 후후. 아하하. 아하하하하하하!”

 그들도 어차피 나와 같은 지옥에 떨어질 운명이다.
 그것이 범죄자 집단인 저들의 최후.
 나는 그저, 그들보다 먼저 그곳에 가서 그들을 맞이할 준비를 할 뿐이다.

 “자, 이제 저한테. 지옥을 보여주세요.”

 헤카톤케일 웨폰이, 그 거대한 팔을 들어올린다.

 …정말이지, 어쩌다 이렇게 되어 버린 걸까.
 나라고 해서 행복한 미래를 꿈꾸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는데.

 솔직히 억울하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리라. 저 살인마도, 수많은 사람들을 학살하고 동족을 상잔한 차원종도. 저렇게 살아가고 있는데, 나는 이렇게 죽는다. 죽어야만 한다.

 왜 나만! 저들도 저렇게 살아가는데 왜 나만! 저 차원종조차 저렇게 살아가는데!

 …뭐, 이제 와서 그걸 따질 생각은 없다.

 저들이 행복해 하는 모습이 아니꼬워서 주변 이들의 기억을 실컷 날려댔으니까.

 억울하긴 하지만, 적어도 후회는 남기지 않았다.
 저 범죄자들이 행복해지는 모습은 볼 수 없으니까.

 “…아아. 이제 와서 그 사람의 얼굴이 생각나는 건 왜일까요.”

 그 사람…. 채민우 경감. 솔직히 그 사람은, 짧다면 짧다고, 길다면 길다고 할 수 있는 내 생에서 가장 인상 깊은 사람이었다.

 돈을 받고 나라는 인간을 버린 내 부모와는 달리, 자신의 여동생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정의를 굽혔다.

 윗선의 명령이라는 이유만으로 내가 살던 마을을 무시했던 클로저들과 특경대원들과는 달리, 윗선의 명령이 떨어진 상황에서까지 원칙과 자신의 정의를 관철했고, 어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난민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만약 그 사람이 그 때 있었다면, 당연히 나와 마찬가지로 어린 아이었으니 아무것도 할 수 없었겠지만, 그와 같은 어른이 있었다면, 내 삶도 조금은 변하지 않았을까.


4

 “꺼내줘! 나 좀 꺼내줘! 제발, 나 좀 꺼내줘…!”

 캐비닛을 두드린다. 허나, 방금 지나간 담임선생님 이후로 그 누구도 근처를 지나가지 않는다.
 그리고, 차원종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다행히 차원종들이 나를 눈치 채지 못했는지 캐비닛 근처로 오지는 않았지만, 곧 알 수 없는 고통이 찾아왔다.

 목이 따갑고, 눈이 따갑고, 몸 곳곳이 따갑다.

 캐비닛 문틈으로 보이는 차원종들도, 고통에 괴로워하며 쓰러지고 있었다.

 괴롭다. 고통스럽다. 무섭다. 빨리 여기서 빠져나가고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

 탕탕탕탕! 콰앙!

 고통에 정신이 몽롱해지며, 캐비닛 안에서 무너져 내리듯 쓰러지려던 찰나, 밖에서 총성과 폭음이 들려왔다. 그리고.

 끼이익, 쿵!

 캐비닛의 문이 열렸다.

 “찾았다! 어린 아이다! 아직 무사해!”

 한 남자가, 자신이 쓰고 있던 방독면 같은 것을 내 얼굴에 씌우며 나를 안고 달리기 시작했다.
 몽롱한 의식 너머로 본 그는, 고통이 만만치 않은지 눈에서 눈물까지 흘려가며 달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우렁차던 기침소리도 점점 작아지는가 싶더니, 이제는 볼품없이 헤윽, 켈륵 거리는 정도다.

 “어…떻게….”

 학교 밖으로 빠져나오자마자, 몽롱한 의식 너머에서 사내에게 말을 걸었다.

 “콜록, 후우…. 아이들과 교사들이 말 해 줬어. 장난으로 캐비닛 안에 가둔 아이를 꺼내주지 못하고 도망쳐왔다고. 살려 달라 소리치는 걸 들었지만, 차원종이 나타나기 시작해서 구해주지 못하고 도망쳤다고. 아, 그래도 내가 이미 한 소리 했으니 너무 미워하지는 마라.”

 그는 그렇게 말했다.

 …그런가. 나를 가둔 아이들이 말 해 준 건가. 마지막에 나를 못 본 척 버리고 도망친 담임선생님이 말 해 준 건가.
 어찌 됐든 그들에게는 감사를 해야 하리라. 만약 그들이 그렇게 말 해 주지 않았더라면,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차원종들에게 죽었을까? 아니, 보아하니 독가스 같은 것이 살포된 모양인데, 어쩌면 그로 인해 몸이 망가졌을 지도 모른다.

 20년 정도의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고, 모든 걸 포기한 채 온갖 악랄한 일을 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온 세상을 아비규환으로 만들려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젠 아니다. 이렇게 구해졌으니까.
 사람의 따스함을 느꼈으니까. 내가 나쁜 사람으로 자랄 걱정은 아마 없겠지.

 “그나저나, 무사해서 다행이구나. 콜록”

 “경감님! 어서 진찰부터 받으십쇼! 이대로는 안 좋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 그래야지. 이 애 좀 부탁하마.”

 “걱정하지 말고 다녀오십쇼!”

 곧 한 남자가 달려와 나를 건네받고는, 날 구해준 남자에게 경례를 했다.
 그리고 그걸 본 나 또한, 어설프게 그 경례를 따라했다. 그러자.

 “충성. 힘들게 구해 줬으니, 꼭 좋은 어른이 되렴.”

 그는 내게 경례를 하며 그렇게 말 한 뒤, 등을 돌렸다.


5

 만약. 만에 하나, 그런 상황이 되었다면. 그럼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일단 시한부라는 이유로 20대 전후의 삶을 포기하지 않았겠지. 청춘을 즐기며, 꿈을 갖고 꿈을 위해 노력했을 것이다.

 어쩌면 날 구해준 이를 존경하여 특경대에 들어갔을 지도 모른다.

 아니면 내 특기 분야를 갈고닦아 과학자가 되어서 유니온에 들어갔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유니온에서 내려온 임무를 따르다 특경대와 연관이 되어 그를, 날 구해준 이와 닮은 채민우 경감을 만나게 되는 거지.

 그도 아니면, 뒤늦게 위상력이 발현하여 클로저가 되고, 임무를 나갔다가 그를 만나게 된다던가.

 다 아니면 단순히 민간인으로써 그에게 구조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정말 여건이 안 될 때에는 난민이 되어서 만나게 되는 건 어떨까.

 만약 그렇다면, 시한부의 인생이 선고되지 않았다면 나는 그에게 고백을 했을 지도 모른다. 거절당할 것이 두려워서 말을 하지 못하는 타입은 아니니까.

 그리고 만약 그가 받아준다면, 그와 연애를 하게 되겠지. 어쩌면 결혼까지 하여 아이를 낳고 행복하게 살았을 지도 모른다.

 “아아, 여자로써의 행복. 나도 느껴보고 싶었는데.”

 그저 인생의 미련이 있다고 한다면, 이 정도일까.

 “후, 후하하하하하! 아하하하하하하하하!”

 들어 올린 헤카톤케일 웨폰의 팔이 나를 향해 내려쳐진다.
 거대한 손이 하늘을 뒤덮어 그늘을 만들고, 내 시야를 점점 차단해간다.

 “아아, 채민우 경감. 당신은 살아남으세요.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을 구해주세요. 나 같은 사람이 더 이상 생겨나지 않도록.”

 쿠웅─!

 헤카톤케일 웨폰의 팔이 내려쳐졌고, 홍시영은 그렇게 지옥에 떨어졌다. 자신의 의지로.

 만약…. 아주 만약 그녀에게 기회가 있었더라면. 그녀가 시한부가 되지 않았더라면, 그의 삶은. 세상은 어떻게 변했을까….
 신이 아니라면 알 수 없는 이야기.
 허나 어쩌면, 그녀의 바람대로….









처음, 나타를 플레이 하며 소영이와 정미의 기억이 소거되는 순간에는 정말 뒷목이 당겨오는 걸 느꼈었습니다.
항암제를 몇 사발은 들이킨 것 같았죠.

요 며칠, 레비아를 하면서도 그건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홍시영의 과거 이야기와 재해복구지역의 채민우가 홍시영에게 들은 말(그 때 당신같은 사람이 나를 구하러 와줬다면 나도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지도 모르겠다.)를 보고 삘이 꽂혔습니다.

썅X이긴 하지만, 이런 캐릭터는 나름 좋아해서 말이죠.

물론 마지텐시영, 엔젤시영 같은 말을 하려는 건 아닙니다.

홍시영도 사실 나쁜 애는 아니었어. 과거가 그렇게 만들었을 뿐이지.

같은 말을 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홍시영은 태어날 때 부터 싸이코에 썅X이었습니다.

하지만, 갱생의 여지가 아주 없었던 건 아니다.

라는 이야기가 해 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여담이지만, 편돌이 짓을 그만두어 시간이 남게 되었습니다!

그런 고로, 운증용변 STD! 가까운 시일 내에 돌아오겠습니다!
(현재 기존에 썼던 분량을 다시 읽으며 스토리 플릇을 재정리 중)

늦어도 8월 중순까지는 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

부디 기대 해 주시기를!

그리고 부디 즐거운 시간이 되셨기를!
2024-10-24 22:37:34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