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만약 제저씨가 안경을 벗는다면. -김유정편: ...어색해...-
Maintain 2015-07-12 9
"What...? 제이...요원님...?"
"캐, 캐롤?"
...이를 어쩐다. 문을 열자, 그 앞에는 캐롤이 서 있었다.
"여, 여긴 웬일이야? 퇴근하는 길인가?"
좋아, 침착하자. 이럴 때는 최대한 침착하게 나가는 거야. 나는 애써 표정을 관리하며,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캐롤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Yes, 그렇긴 한데요...제이 요원님이... 어째서 유정 언니 집에서...?"
적잖이 충격받은 모양인지, 평소답지 않게 캐롤의 표정이 많이 흔들리고 있다. 눈동자가 저렇게 흔들리는 걸 보니 신기하긴 하군. 저게 요새 말하는 동공지진이라는 건가? 하긴, 나라도 그랬겠지. 좋아하는 사람 집에서 다른 사람, 그것도 자기도 잘 아는, 친하게 지내는 남자가 나온다면...
"아, 별 거 아니야. 집에 가다가 만났거든. 유정 씨가 먼저 초대를 해서, 하는 수 없이 들렸지."
아무튼, 이럴 땐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까. 속으로 끙끙대다가, 결국 사실대로 말하기로 했다. 괜히 거짓말했다간, 오해만 더 커져버릴 테니.
"아까 캐롤도 말했지만, 유정 씨는 검은양 팀의 관리요원이잖아? 관리요원인데도 요즘 나랑 우리 애들과 지내는 시간이 많이 줄어버렸지. 그래서 소식이 궁금하던 차에 날 만난 거야. 그뿐이라고."
"Oh...그렇군요. 그럼, 유정 언니는 지금...?"
"잠들었어. 이것저것 얘기하면서 한잔 하다 보니, 결국 뻗어버리더군. 술도 약한 사람이, 무리하더라니..."
내 말에, 캐롤은 뭔가 상당히 미심쩍다는 시선을 보냈다. 혹시 무슨 짓을 저지른 건 아니겠지 하는, 그런 시선을 말이다.
"걱정하지 마. 내가 그럴 사람으로 보여? 맹세하지. 유정 씨에게는 손끝 하나 건들지 않았다고. 궁금하면 들어가서 확인해 보던가."
"...No, 아니에요. 제이 요원님이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분명 그런 거겠죠."
"그래, 믿어줘서 고맙군."
뭐, 그래도 상황은 잘 풀린 거 같지? 속으로 안도하며, 나는 집으로 가려고 등을 돌렸다.
"저...제이 요원님...?"
그런 내게, 등뒤에서 캐롤이 말을 걸어왔다.
"또 뭐지? 뭐 할 말이라도?"
"아, 별 건 아니고...약은 잘 챙겨 드셨나 해서..."
"미안하군. 오늘은 하루 건너뛰기로 했어. 잔뜩 술먹은 날에 약 먹어봐야, 소용이 없잖아."
"그래요... 저, 그리고..."
뭔가 한창 우물쭈물하다가, 캐롤은 무겁게 입을 열었다.
"혹시...유정 언니가 저에 대해서 얘기한 건...있나요?"
"...그건..."
아까 했던 대화가 생각난다. 분명, 혹시 유정 씨를 만나게 되면 안부를 전해달라고 했었지.
여기선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할까. 아까처럼 솔직하게 말할까? 아니면 거짓말로라도 얘기를 했다고 말해 줄까?
"...아니, 딱히."
살짝 고민하다가, 결국 사실대로 말하기로 했다. 괜히 나중에 캐롤이 유정 씨와 얘기할 때 내가 거짓말을 했다는 걸 들키면, 분명 내 신용도 떨어지고 유정 씨와 캐롤 사이도 어색해질 게 분명하다.
"I see, 그렇군요..."
...역시, 캐롤은 상당히 실망했다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뭔가 위로라도 해 줘야 하나 싶었지만, 관두기로 했다. 지금 캐롤은 내게 위로 따위는 받고 싶지 않을 테니까. 아니, 솔직히 말해서 날 미워하지나 말아 줬으면 좋겠다.
"그럼 난 가 **. 아마도 내일 보자고."
"그래요...들어가세요, 제이 요원님."
축 처진 어깨로 돌아가는 캐롤의 모습을, 난 그녀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계속 바라보았다. 이거 걱정이군. 내일부터 굉장히 어색해질 거 같은데, 그렇게 되면 내 약은 누구한테 받아야 하나...? 쓴 뒷맛을 안은 채 집으로 돌아왔고, 잠은 술기운을 빈 덕분에 제법 잘 잘 수 있었다.
"...후..."
그 일이 있은 지 일주일. 오늘도 플레인게이트 탐사는 계속 이어진다.
오늘 탐사한 지역은 안개 벌판. 이름 그대로 안개가 자욱한 곳으로, 안개 덕분에 시야가 제대로 보이지 않는 데다 그 안개도 이차원의 영향으로 생성된 것이라 몸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전투가 끝날 때마다 몸이 굉장히 무거워져 나도 애들도 가기 꺼려하는 곳이다.
오늘 임무는 그 곳의 파수꾼이라고 할 수 있는 케찰코아틀이라는 차원종의 방패 일부를 수집하는 것. 수집한 파편은 유니온의 연구 자료용 샘플 및 김가면이의 장사 재료로 쓰인다. 참고로 오늘은 장사 재료가 아닌, 보나 녀석의 연구가 목적이다.
"이, 이제 쉴 수 있어...어제 못다 한 게임을 마저 할 수 있다고..."
"이번 임무도...힘들었어...헉, 헉..."
"아아~, 팔, 다리, 머리, 허리야~. ㄹ자 들어가는 데는 다 쑤시네..."
"우웅... 지쳤어요...ZZZ..."
아침 일찍 시작해서 지금까지 쭉 이어지는 일. 일은 점심 무렵이 되어서야 끝이 났고, 그때까지 열심히 일한 아이들은 전부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이미 막내는 꾸벅꾸벅 졸다가, 결국 꿈나라로 떠나버렸다. 솔직히 나도 힘든데 애들이야 오죽할까. 애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아프다.
"이봐 보나. 이 정도 양이면 충분하겠지?"
"예, 오늘 탐사는 이 정도면 되겠네요. 수고하셨어요."
"그래, 이제야 좀 쉴 수 있겠군. 자, 뒷일은 부탁하지. 그리고 이거."
"항상 주실 필요는 없는데. 그래도, 고마워요."
지친 아이들을 대신해서 모아온 파편들을 보나에게 건네줬고, 나는 임무 종료 허가를 받고 아이들에게 돌아왔다. 물론, 항상 그랬던 것처럼 보나에게는 사탕맛 알약을 하나 줬다. 이번에는 무려 딸기맛이라고? 아이들에게 인기 만점이라고.
"다들 고생 많았어. 이제 좀 쉬자고. ...쿨럭."
애들에게 그 소식을 전해주자마자, 재채기와 함께 또 입안에 찝찔한 맛이 감돌았다. ...또냐. 이젠 지겹다.
"저...아저씨. 괜찮은 거에요?"
그 모습을 가장 먼저 걱정해 준 건 동생. 게임기를 켜다 말고 나를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걱정하지 마. 이 형님은 아직 건재하다고."
"그렇게 건재하다는 사람이 요즘 안색이 영 좋지 않잖아요... 걱정된다고요."
"너무 걱정할 필요 없어. 아직 괜찮으니까."
근처 상자 위에 걸터앉으며, 나는 입안에 고여 있던 '그것'을 뱉었다. ...역시... 전보다 더 거무튀튀하고, 끈적해져 있었다. 이거, 몸이 점점 더 맛이 가긴 가고 있나 보군. 애들이 보기 전에, 입가를 닦고 그것을 신발로 문질렀다.
"그래도...아직 이런 데서 주저앉을 수는 없지..."
나는 주머니에서 그때 캐롤에게 받은 약을 꺼내려고 했다. 한창을 주머니를 뒤졌고,
"이게 마지막인가..."
주머니에서 나온 약봉지는 달랑 한 개. 벌써 시간이 그렇게 지났구만. 또 새로 약을 받으러 가야 하는 건가. ...그렇게 꾸준히 약을 먹었는데도 이 꼴이라니. 무리하고 있긴 무리하고 있는 거 같긴 하군.
"저, 아저씨... 그 약은...?"
이번에 다가온 건 대장. 내게 생수를 건네 주며, 걱정스런 표정으로 묻는다. 이 녀석, 이젠 아저씨란 말이 완전 입에 붙어 버렸군. 차라리 제이 씨라고 부르던 때가 더 좋았을지도.
"아저씨 아니고 오빠라니까... 아무튼 이거? 별 거 아냐. 그냥 단순한 감기약이라고."
"정말요...? 혹시, 어디 많이 아프신 거 아니죠...?"
"아프기야 매일 아프지. 하루라도 아프지 않은 날은 없어.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 대장."
"그게 무슨 소리에요? 그럼 더 걱정해야죠!"
여전히 활기찬 목소리와 함께, 옆자리에 유리가 앉았다. 유리는 내 이마에 검지를 올려놓으며 말했다.
"저번에도 말했죠? 아픈 건 숨기지 말라고요. 그렇게 계속 숨기다간 결국 언젠간 한 방에 뻥 하고 터져버릴 걸요?"
"숨기는 거 없어. 매일같이 아픈 건 사실이니까. 이거도 그 일부 중 하나일 뿐이라고. 다들 걱정이 너무 심해서 탈이야."
"그야 그렇죠. 아저씨가 아프지 않은 날은 없었죠. ...그래요. 단 하루도."
어째서일까. 방금 전까지의 그 활기찬 목소리는 어디로 가고, 유리는 갑자기 침울해졌다. 땅을 툭툭 차는 자기 발끝을 바라보는 그 표정은, 왠지 모르게 불만이 가득해 보였다.
"? 왜 그래 갑자기. 왜, 아까 보나만 사탕맛 알약 준 게 맘에 안 들어? 하나 줄까?"
"그런 거 아니거든요? 아무튼, 아픈 게 있으면 좀 숨기지 말라고요... 쉬어야 할 거 같으면 저희 눈치 ** 말고 푹 쉬시고요. 아셨죠? 아저씨 걱정되서 하는 말이니까, 귀담아서 들으세요 좀."
"그래그래, 알았다. 네가 날 앞으로 계속 오빠라고 불러 준다면, 한 번 생각해 보마."
나는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유리 이 녀석, 의외로 날카로운 구석도 있단 말이야. 정곡을 찔렸을 때는, 잠깐 자리에서 벗어나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
"또 어디 가시려고요?"
"어디 가긴? 유리 네 말대로 하려는 거지. 진료는 의료요원에게, 약도 의료요원에게. 감기약 받으러 갔다오마."
"알았어요. 아, 그리고 기왕이면 좀 약발 쎈 걸로 받아와요! 빨리 낫게."
"그래그래. 보통의 한 20배는 되는 걸로 받아오마."
나는 그렇게 말하며, 양손을 들어 다녀오겠다는 표시를 했다.
"...자, 그나저나."
캐롤이 있는 곳으로 걸어가며, 나는 고민을 했다.
이거... 캐롤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볼 수나 있으려나...? 그런 일이 있었으니, 분명 분위기가 많이 딱딱해질 거 같은데 말이야... 그래도 약을 받으려면 캐롤을 꼭 봐야 하니...
"씁...어쩔 수 없지."
일단 분위기는 분위기고 약은 약. 더 이상 애들에게 걱정을 끼칠 수도 없다. 더욱 더 약을 먹어야지 그럴 일도 없어지겠지. 나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쓸데없이 전의를 다졌다. 대장에게서 받은 생수와 함께 마지막 남은 약을 삼키면서.
예, 안녕하세요. 오늘도 글을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바깥에 비가 많이 오는군요. 태풍이 온다더니, 다들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오늘은 딱히 후기를 쓸 만한 소재는 없네요. 다만 제저씨의 몸상태가 점점 더 좋아지지 않고 있네요. 아마 조만간 큰 일이 터지지 않을까 조심스레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마 뒤로갈수록 이야기가 더 시리어스해질 거 같네요. 기대해 주세요.
오늘도 제 글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편에 다시 뵙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