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어른

테인쨩파댁 2015-07-07 11



 차가운 밤공기가 나를 놀리듯이, 뺨을 스치고 달아났다. 이어서 몇 방울, 빗물이 떨어져 머리를 적셨다. 왼손에 든 맥주캔을 따자, '치익-'하고 기분좋은 소리가 귀에 울렸다.
혼자서 아파트 베란다에서 맥주캔을 따고있는것은 오래전부터 계속해온 버릇과도 같은 생활이였다. 매일 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정말로 죽어버릴 것 같았으니까.

 아마 그 날, 그 때부터 그랬을 것이다. 내가 이렇게 맥주캔을 따고 목으로 넘어가는 시원한 음료의 풍미를 느끼게 된 것은… 삶의 고통을 잊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차원전쟁은 내 모든것을 바꿔놓았다. 내 생각과, 한 소년의 미래를, 아니 더 나아가 모든 사람들의 희망찬 삶을 망쳐놓았을것이다. 지금도 그때의 그 기억을 되살린다면
끔찍해서 구역질이 날 뿐이였다. 그렇지만, 그 안에서 조그마한 희망을 찾을 수 있었던 그 날을 생각하면 왠지모르게 웃음이 피어오른다.


“다 추억이지.”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을 혼잣말을 해본다. 그래, 다 추억이지. 설령 그것이 고통스러운 과거였을지언정 모든것은 추억으로 남는다. 인간의 심리에 큰 영향을 미치는
하나의 요소로 작용하는 것. '추억'이 될 뿐이다. 나는 다시 맥주캔에 입을대고 입에 털어넣었다. 아까만큼 맛이 좋진 않았다. 머리가 복잡했다.

 걸터앉았던 의자에서 일어서, 맥주캔을 아무렇게나 던져버리고 아파트 안으로 들어왔다. 밖은 비가 내리고있었다. 그 날과 같았다.
비가 내리는 그 날, 피가 내를 이루어 졸졸졸 흘러가고있었던 것이 기억이났다. 고개를 저었지만, 기억의 편린은 나의 마음을 조여오기 시작했다.
잊고싶었다. 하지만 잊을 수 없었다. 잊기위해 나는 기분좋은 생각을 하고싶었지만 기분좋은 생각이 날 리 없었다.


“지금의 난 행복해. 충분히 행복해.”


 정신을 차리자 나는 울고있었다. 아무리 지우고싶어도 지울 수 없는 기억이라는건 이런것인가. 내가 겪었던 그 빌어먹을 것들은 영원히 날 괴롭히는것인가.
잠에들 수 없었다. 악몽을 꿀게 분명했다. 차원전쟁의 그 날 그 때의 기억을, 내 머리는 비디오처럼 재생할게 분명했다.

 구토가 올라왔지만 억지로 참았다. 분명 아파트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않았다. 아직도 울프팩의 팀원들이 나를 지켜보고 있을 것 같았다.

병원에선 PTSD장애를 선고했었다. …당연했다. 그 일을 겪고도 PTSD가 오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할게 분명했으니까. 아니, 차원전쟁이 끝나고 내게 일어난 일을
겪는다면 100%, 아니 200% 분명히 모든 사람들이 고통에 절어 자살할게 분명했다. 그래, 맞아. 자살도 생각했었다.


“하지만 죽을 수 없잖아.”


 맞아. 죽을 수 없었다. 나를 살리기 위해 희생된 사람들이 몇이나 있는가. 그들의 희생을 나는 헛되이 버릴 수 없었다. 그렇기에 나는 앞으로 뛸 수 밖에 없었다.
참고 참으며, 어리광 피울 나이에 어리광 피우지 못하고, 가지고 싶었던 것도 가지지 못한 체 나는 그렇게 자라고 자라서 어른이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어른이 더이상은 생기지 않도록 나 혼자 쓰레기가 될 지언정, 과거를 되풀이해선 안된다. 그런 생각으로 살아왔다.


“…….”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전화기를 들었다. 시간은 아직 열한시 반이였다. "유정씨" 라고 저장되어있는 번호에 손가락을 가져다대고 통화버튼을 눌렀다.
'뚜루루-' 하는 연결음이 수차례 계속된 후, 마침내 '덜컥' 소리와 함께 유정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제이씨? 무슨일이에요, 이 시간에 전화도 하시고.”


“…아니, 유정씨 목소리가 듣고싶어서 말이야. 오늘따라 더 하네, 하하하하하하!”


 통쾌하게 웃어보였다. 하지만 내 두 눈에선 눈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난 울고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나 따뜻한 목소리가 내 귀에 들려오고있다.
더이상 잃고싶지 않은 나의 소중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나는 너무나도 행복했다.


“…유정씨, 미안해. 항상 미안해. 하지만 항상 고맙기도해. 그러니까 항상 우리와 함께해줘.”


“무슨 소릴 하는거에요 제이씨, 제이씨 설마 울어요? 목소리가 떨리는데… 아니 대체 무슨일인거에요! 제가 지금 그 쪽으로 갈테니까 기다려요!”


 들켜버렸다. 울고있는걸 들켜버렸다. 순간적으로 부끄러웠다. 하지만, 어릴때 피워볼 수 없었던 어리광을 피우고싶었던 아직 마음만은 어린이인 내 본심이
터져나오는 것 같아 왠지 모르게 속이 후련하기도 했다. 유정씨의 말이 끝나자마자 '덜컥' 하며 전화가 끊겨버렸다. 그리고 전화기에 문자가 도착했다.


'제이씨, 힘들면 힘들다고 얘기해줘요. 항상 그렇게 혼자 짊어지려고 하지 마요. 우리 함께잖아요? 혼자가 아니에요.
제가 지금 그 쪽으로 갈테니까, 거기 있어줘요.'


 오열이 터져나왔다. 하지만 슬프지 않았다. 이건 기쁨의 눈물이였다. 내가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위해 죽은 사람들도, 이런 행복을 누릴 권리가 있었을텐데…. 그렇게 나는 마음 한 구석에 생겨나는 죄책감때문에 더욱 더 크게 울부짖었다.

 나는, 정말 쓰레기같은 어른이다.
2024-10-24 22:36:19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