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어스물)그렇게 나는
Lumius 2015-06-17 0
나는 검은양 팀이 싫다.
정확히는 검은양 팀에 아이들이 있는 것이 싫다.
유니온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아이들을 전장으로 모는 걸까. 단순히 힘이 있다고 해서, 보수를 지급한다고 해서 그 아이들을 싸우게 하는 건 너무나도 아이들에게 가혹한 짓이라 생각한다.
물론, 그 아이들이 약하다는 건 아니다. 위상력이나 응용력은 현역 시절의 나만큼이나 강하다고 할 수 있고, 또 힘든 일이 있더라도 넘어설 수 있는 용기가 그 아이들에겐 있다.
하지만 전장이라는 건 그런 것만으로 이겨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언젠가 관리요원인 김유정 양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정말로 아이들을 전장으로 보내야만 하겠는지. 그리고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녀는 '일손이 부족하니까요' 라며 긍정의 대답을 했다. 너무 화가 나고 충격을 받은 나머지 오히려 평소처럼 약간 실없는 농담을 하며 자리를 피했다. 그녀는 전장이라는 것이 어떤 곳인지 잊은 건가. 아니면 너무나도 많은 전장경험에 마음이 무뎌진 걸까. 18년 전 그날로부터 이어진 악몽은, 그녀의 마음 속에 어떤 모습으로 남았기에 아이들을 전장으로 보내도록 하는 걸까.
18년 전의 나는 정말로.......
18년 전 - 서울의 한 대차원전쟁부대(對次元戰爭部隊)
"야, 넌 그래서 대체 언제 이름을 알려줄 건데?"
"시끄러 임마. 남자는 비밀이 있을 때 멋져 보인다고."
"이미 서로 알몸까지 본 주제에 비밀을 쥐뿔이 있겠다."
"고작해야 샤워 몇 번 같이 했다고 그런 말이 나오냐?"
"고작 샤워라니! 한 번 하기도 힘든 걸 몇 번씩이나 같이 해놓고 그렇게 말하면 섭섭하지."
"난 안 섭섭하니까 상관없다."
"자식, 끝까지 튕기네."
"됐고, 잠이나 자라. 어제 밤새도록 차원종 상대하느라 피곤하지도 않냐?"
"언제 죽을지 모르는 곳에 왔다고 생각하면 잠이 아깝지. 뭐라도 해야 직성이 풀리겠는데."
"내일 졸면서 싸우다가 진짜로 죽지나 마셔."
"그렇게 죽을 거였으면 진작 죽었겠지."
그것이 성훈이와의 마지막 대화였다. 다음 날 그녀석은 아군을 A급 차원종으로부터 대피시키기 위해 나와 둘이서 녀석을 상대하다가 죽어버렸다. 커다란 짐승의 모습을 한 차원종에게 카운터를 먹이려다가 공격을 제대로 피하지 못하고 머리를 맞아버린 것이다. 내 이름을 궁금해하던 마지막 녀석은, 그렇게 참으로 어이없게 세상을 떠났다.
당연한 말이지만 아무도 울지 않았다. 전장에서 사람이 죽는 건 일상다반사였다. 그건 옆의 친구일 수도 있고, 생판 처음 보는 사람일 수도 있으며, 내가 될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다들 죽음에 익숙해져 있었고, 감정이 무뎌져 갔다.
"어제는 민간인 포함 16명 밖에 죽지 않았어. A급이 출현했는데도 불구하고 말야. 기적에 가까운데."
한창 회의중인 작전과를 지나다가 얼핏 들은 말이다. 전쟁 중에는 사람의 목숨은 숫자로만 센다. 각자의 이름은 이미 잊혀진 지 오래다. 누가 죽었는지는 이미 중요하지 않고, 중요시해선 안된다. 그런 걸 신경쓰는 사람은 전쟁터에서 버티지 못한다. 차원종과 싸우기 전에 마음이 먼저 부숴져 버린다.
"16명이라.... 진짜 기적이군."
나 역시 마찬가지다. 어느센가 주변 사람들에게 일일이 정을 붙이는 건 포기했다. 그냥 알고 지내되 서로 깊이 관여하지 않는, 그런 정도가 딱 좋다. 그래서 나는 이름을 알려주지 않는다. 굳이 날 3인칭으로 부르려 하지 않는 녀석에겐 J 라고 부르라고 시킨다. 딱히 이름에 의미는 없다. 하지만 J 라는 이름을 들은 녀석들은 하나같이 이름의 뜻을 찾으려고 애를 쓴다. 내 이름이 주씨 성이라는 것 부터 시작해서 '항상 살아 돌아오니까 jubilant의 약자일 것이다' 라며 처음 듣는 단어로 추측하기도 한다. 가끔씩 좀 놀다 온 듯 한 녀석은 죽빵(Jugbbang)의 첫글자를 따온 것 아니냐고 말해서 실없는 웃음을 자아내기도 한다.
"에에에에에에엥!"
"긴급 상황 발생! 긴급 상황 발생! 전 클로저 요원들은 신속히 지정된 위치로 이동 후 대기할 것! 전 클로저 요원들은 신속히 지정된 위치로 이동 후 대기할 것!"
요즘 들어서 출동이 잦군. 다리에 위상력을 집중하여 최대한 빨리 달리며 생각했다.
"다 왔나. 브리핑을 시작하겠다. 현재 차원종이 숭실대학교 정문 쪽에 집결을 하고 있다는 정보가 들어왔다. 어째서 그곳을 골랐는지는 모르겠지만 중요한 건 그곳에 모인 차원종의 수가 이미 2000을 넘었다는 거다."
"2000!?"
"말도 안됩니다! 어떻게 그렇게 많은 차원종이 모일 때까지 경보가 울리지 않은 거죠?"
"본부에서도 지금 그걸 조사중이다. 어쨌든 우리는 그곳으로 가서 차원종을 포위한다. 둘러 싸서 중심 지점까지 몰아넣은 뒤 일제히 위상관통수류탄 200발을 터뜨려서 적을 약화시킨 후 섬멸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인원은 얼마나 됩니까?
"클로저만 80명이 투입되고 예비군으로 구성된 부대 100명이 추가로 지원을 오기로 되어 있다."
어이없을 정도로 부족한 인원이지만 어쩔 수 없다. 전쟁이란 항상 그런 법이다. 더군다나 그것들이 정체 모를 괴물들이라면 더욱더. 놈들은 얼마나 많은 부대를 보유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항상 적지 않은 수가 왔다. 인간이 많을 때나 적을 때나 상관없이 그들은 매번 수에서 우리를 압도했고, 어찌 보면 지금까지 이겨온 게 용하다 싶을 정도로 클로저 요원들은 잘 싸웠다. 이번에도 그렇게 좋은 끝을 내길 바라며 인원 수송 헬기에 탑승했다.
그런 애매한 희망을 품고 있었다.
일이 꼬였다는 걸 깨달은 건 포위작전을 실행하고 나서 1시간도 되지 않았을 때였다. 포위망을 좁혀들어 수류탄을 터뜨릴 준비가 끝났을 때, 갑자기 후방에서 비명이 들렸다. 다행히 비명을 지른 건 사람이 아니라 차원종이었지만 그쪽을 바라보고 나서 우리가 굳어버리기까지는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다. 어느센가 포위당했다. 포위망을 형성하던 우리가. 너무나도 많은 수의 차원종이 요원 하나하나를 각개격파할 기세로 우리를 포위하며 다가오고 있었다. 우리는 앞뒤로 모두 차원종에게 둘러싸여 버린 것이다.
"본부, 응답하라! 여기는 독수리 알파! 여기는 독수리 알파! 본부 나와라! 어서 응답하라고! 야! 응답해!!!"
통신병이 필사적으로 무전을 날렸지만 돌아온 건 잡음도 아닌 침묵이었다. 전파방해가 일어나고 있는 모양이다.
"**! 왜 안되는거야!"
이미 그의 외침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그저 목만 아플 뿐. 보다 못해 내가 외쳤다.
"일단 다들 뭉쳐! 따로 따로 있다간 그대로 먹이가 될거야! 어떻게든 저쪽 오르막길로 뚫고 나가자! 무조건 뭉쳐야 살아!"
"시끄러! 니가 대장이야?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마!"
"지금 그게 중요하냐! 징계라면 나중에 실컷 받아 줄테니까 일단은 저쪽으로 가잔 말야!"
말을 마침과 동시에 나는 너클을 낀 손으로 눈앞의 차원종을 날려 버렸다. 그것을 신호로 모든 요원과 차원종들이 전투태세에 돌입했다. 나는 눈앞의 차원종을 가능한 한 일격에 멀리 날려버리려고 노력했고, 어떻게든 길을 만들어 오르막길로 향했다. 얼마 남지 않았다 싶어 높이 도약해 오르막 정상에 올랐을 때, 뒤를 돌아본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나를 포함해서 겨우 17명만이 살아남았기 때문이었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그나마 그 중에서도 포위당해 곧 쓰러질 것 같은 녀석이 몇 보였다. 하지만 도우러 갈 수는 없었다. 못해도 5000마리는 될 것 같은 차원종의 부대가 사방으로 퍼지고 있었고, 우리도 그 공격을 받고 있었다. 후퇴다. 꼴사납든 말든 상관 없다. 비겁하든 뭐든 상관없다.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이 있었고, 지금 여기서 전멸을 당하면 이후의 전투에 쓸 수 있는 전력이 대폭 줄어버린다. 우리는 도망쳤다. 마지막으로 뒤를 돌아 봤을 때 내가 본 건 언젠가 자신의 이름을 이진성이라고 밝힌 한 여자 클로저 요원이 쓰러지는 모습이었다.
그 후로 5시간이 지나서야 우리는 구출될 수 있었다. 돌아가는 헬기 안에서 누군가가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떡해...... 민지 씨 어떡해....... 뭐라고 말하면 좋아...... 미안해서 어떡해 말해......."
"민지 씨...... 진성 씨 아이가 뱃속에 있는데......"
슬픔은 전염된다던가. 아무리 나라도 이건 견디기 힘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죽은 진성이라는 사람이 살아 돌아올 리는 없었다. 그렇게 나는 묵묵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시끄러운 헬기 안에는 이따금씩 누군가 코를 훌쩍이는 소리만이 들려왔다. 감정이 점점 무뎌져 간다. 처음 이곳에 배속받았을 때라면 나도 지금쯤 같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겠지. 하지만 전쟁터에선 그런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 사람이 죽는 걸 수도 없이 봐야 하고, 보기에도 무섭고 징그럽고 혐오스러운 괴물들을 매일같이 봐야 한다. 정신이 멀쩡하게 남을 리가 없다.
부대로 복귀하고 나서 나는 바로 침대에 쓰러졌다. 텅 빈 생활관을 눈에 담기 싫어서 오늘의 피로에 몸을 맡기고 잠에 빠졌다. 다행히 아무도 복귀한 우리를 찾지 않았다. 우리는, 살아 돌아온 우리는, 고작해야 14명이었다.
이후로도 지옥은 계속됐다. 이틀에 한 번은 무조건 사람의 비명을 들었고, 그의 몇 배는 되는 차원종의 비명을 들었다. 사람들은 죽어갔고, 차원종은 그보다 더 많이 죽어갔다. 내 앞에서, 옆에서, 뒤에서 죽은 사람이 있었다. 그걸 ** 않을 수도 없었다. 어느세 감정은 사람의 죽음에 대해 그렇게 격한 반응을 보이지 않게 됐다. 예전에는 괜찮은 척이었다면, 지금은 정말로 괜찮아져 버렸다. 그래, 사람으로서 소중한 걸 잃어버렸다. 그래서 기나 긴 차원전쟁이 얼추 정리되자마자 나는 바로 손을 털었다. 더 이상 무엇보다도 아픈 상처를 입는 것도, 입고서도 아프지 않게 되는 것도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위상력이 많이 약해졌다는 이유를 대고 현역에서 물러났다.
언젠가 들었던 민지라는 사람이 차원종의 습격으로 새 남편과 같이 죽었다는 말을 전직 요원으로부터 들은 건 그로부터 4, 5년 후였다. 슬비라는 이름의 아이는 홀로 남게 됐다고 한다. 불쌍해서, 그리고 미안한 마음에 지원을 해주기로 했다. 내 모습을 보이지는 않고 유니온을 통해 돈만 주기로 했다. 후견인인 척 하며. 그렇게 슬비는 무럭 무럭 자랐다. 부모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당차게 살아왔고,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하며 살았다. 그런 그 아이가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었던 걸 나는 알지 못했다.
데이비드라는 사람이 한국에 왔을 때, 나는 솔직히 그가 누구인지도 몰랐다. 김유정이라는 요원이 누군지는 지금도 요원으로 일하고 있는 전 동료에게 들어서 이름만 아는 정도였다. 그런 사람이 '검은양'이라는 조직을 만들었고, 슬비는 그 팀의 리더가 됐다고 들었다.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이야기였기 때문에 나는 전 동료에게 자세한 걸 물었고, 그 검은양이라는 팀은 현재 3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모두 미성년자라는 걸 알게 됐다.
이게 대체 무슨 짓인가.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아무리 위상력이 강하다고는 해도 아직 아이들이다. 그들은 아직 주변 사람들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고, 또 받아들여서도 안된다. 아직 그런 잔혹한 세계로 보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후에 들어온 정보는 나를 더욱 당황하게 했다. 3명 모두 제 발로 그 팀에 들어갔다는 이야기였다. 그 중에서도 슬비가 가장 적극적이었다고 했다. 이미 그 아이의 복수를 향한 결심은 확고한 것이었다. 내가 말린다고 해서 들을 것 같지도 않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디까지나 자유였던 참가에 가장 먼저 지원을 하지는 않았겠지. 하지만 이대로 두면 나는 그녀의 아버지를 지키지 못한 것도 모자라 본인까지 죽게 해 버리는 샘이 된다. 그런 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무엇이든 해야 한다. 그것이 설령 나에게 파멸을 가져다 주는 결과가 되더라도.
한참을 고민하다가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포기하게 하지 못할 거라면 내가 지키면 된다. 나도 검은양 팀에 들어가서 그 아이들을 지키겠다. 다행히 슬비는 내가 누군지 모른다. 나는 그저 팀원으로서 아이들을 지키기만 하면 된다. 위상력은 조금밖에 남지 않았지만, 만일을 위해 남겨둔 약물들이, 그리고 단련해 둔 몸이 있다. 18년 전에 지키지 못했던 한 가정. 그 자식만이라도 지켜내고 말겠다.
나는 곧바로 전 동료에게 전화해서 김유정 요원에게 나를 추천하도록 했다. 그리고 나는 그녀의 심사에 합격했다.
그렇게 나는 검은양 맴버가 됐다.
그렇게 나는 다시 J가 됐다.
전쟁이 끝날 때 까지 슬비를,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