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마시는 소설 - 下[2]

계란튀김정식후루룹 2015-06-14 2


 "대장. 어제 술."
 "…"

 응? 어제랑 술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잖아?

 "대장. 어제 술 마셨던 거 기억해?"
 "죄송해요. 마시려고 잔을 들었던 거 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그 이후는 잘 기억이 나질 않네요."

 필름이 끊긴 건가. 이러면 대장을 놀릴 수가 없는… 응?

 "그런데 대장. 얼굴이 조금 빨개진 거 같은데. 혹시 어디 아프기라도 한 거야?"
 "그, 글쎄요. 잘 모르겠는데…"

 모른 척 이었군. 하긴 진짜로 필름이 끊겼으면 애초에 노트북을 저렇게 하고 있을 리가 없지. 자. 그러면 뭐라고 말을 하면 우리 대장의 헌신적인 모습을 볼 수 있을까?

 "대장. 노트북을 거꾸로 들고 있는 것 같은데 말이야."
 "아? 아! 그, 그러네요."
 "아 그러고 보니. 대장이 아니라 여왕님…"
 "꺄아악!"

 여왕님 소리가 나오자마자, 우리 대장은 노트북을 떨어트리며 비명을 질렀다. 다행이 노트북은 멀쩡해 보였지만, 대장의 표정은 그렇게 다행스러워 보이지는 않았다. 물론 나에겐 아주 좋은 표정이었을 뿐이지만.

 "그러고 보니, 집에다 항상 챙겨 먹는 비타민제를 두고 와 버렸네. 나 잠깐 다녀올게. 대장"
 "제이 아저씨. 임무 시간 중에는 현장을 벗어나면 안 되는 규칙이…"

 유정 씨가 오늘은 임무가 없다고 했는데, 아무래도 못 들었나 보다. 물론 그걸 알려주진 않을 거지만.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 그리고 난 아저씨가 아니라 오빠야. 하지만 여왕님이 그러라는데 뭐…"
 "비타민제!!! 제가 가져다 드릴게요! 오, 오, 오… 오. 빠!!!!"

 얼굴을 붉힌 채 말을 더듬으면서 부끄러워 하는 게. 심장에 아주 좋지가 않았다. 우리 대장께서는 어지간히도 급하게 문을 박차고 뛰쳐나갔다.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의자에 몸을 기대며 중얼거렸다.

 "아. 어깨가 뻐근하네."
 "제, 제가 안마해드릴게요!!"

 유리의 안마를 기분 좋게 받으면서, 옆을 보니 미스틸이 책상 위에 엎드려서 곤히 자는 게 보였다. 흠. 저렇게 자는 건 많이 좋지 않은데.

 "우리 미스틸이 많이 추워 보이는데 뭐 덮어줄 게 없네…"
 "제 코트 벗어줄게요!"

 오. 우리 동생이 기특하게도 자발적으로(?) 코트를 벗어주었다. 하지만 동생아. 그렇게만 하면 안된단다.

 "책상 위에서 자면 많이 불편할 탠데… 누구 착한 사람이 우리 미스틸을 옆에 있는 침상으로 옮겨주지 않으려나?"
 "제가 할게요!"

 기특한 동생 같으니라고. 동생이 실수로라도 미스틸이 깨버릴까 봐 조심스럽게 미스틸을 침상으로 옮기는 모습은 흐뭇한 웃음이 나오는 광경이었다. 아 그러고 보니 정미랑 석봉이는 어떻게 됐으려나? 나는 핸드폰을 꺼내 들어 먼저 석봉이에게 전화를 걸어보았다.

 뚜루루-

 ─ …
 "여보세요. 석봉아?"
 ─ …
 "…? 석봉아?"

 전화는 무사히 연결됐는데? 대체 뭘 하길래 아무런 말도 없이 있는…

 ─ 으아아! 석봉아!! 자살은 안 돼!!
 "…?!"

 잠깐 고민을 하던 중. 휴대폰 너머에서 처음 들어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자, 자살? 석봉이가 어지간히도 충격을 받았나 보다…

 ─ 죄송합니다! 다음에 다시 연락을… 서, 석봉아!!

 그 말과 함께 전화는 끊어졌다. 누구였을까? 아버지인가? 후. 하여간 나는 석봉이의 멘탈이 하루빨리 회복되기를 바라며, 이번에는 정미에게 전화를 걸어 보았다.

 뚜루루-

 ─ 끊어요!!
 "여보세…"

 무슨 말을 할 틈도 없이 순식간에 전화가 끊겨버렸다. 정미가 매우 쑥스러웠나 보다. 후후… 그러면 둘의 상태도 확인했겠다. 오늘은… 조금만 즐겨보도록 할까?





"우욱… 제이 씨. 고마워… 우으윽."

 유정은 제이가 준 약으로 간신히 구토를 참아내며 속을 진정시키며 혀를 내둘렀다.

 "과연. 일반인은 장비 없이 탔을 땐. 죽을 정도 라더니, 유니온에서 새로 개발한 장비를 입고도 이 정도 라니… 애들이랑 제이 씨는 이런 걸 매번 타는 건가?"

 새삼스럽지만 클로저의 대단함을 느끼며 유정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아무 생각 없이 방문을 열었는데…

 "… 이건 또 뭐에요?"

 방안은 고대 이집트를 떠올리게 하는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방안의 중심에서 제이에게, 슬비가 접시에 담겨있는 알약을 한 알씩 넣어주고 있었고, 옆에서 유리는 어디서 구해온 것인지 모를 커다란 부채를 들고 있었고, 세하는 코트를 벗은 채 제이의 어깨를 주무르고 있었다.
 그 와중에 미스틸은 세하의 코트를 덮고는 천사처럼 잠이 들어있었다.

 "오. 유정 씨 왔어. 여기 비타민D 알약 하나 먹을래?"
 "됐어요. 그것보다 애들을 왜 이렇게 부려 먹는 거에요?"

 유정이 한숨을 내쉬며 제이에게 따지자 제이는 능글맞은 웃음을 지으며 어깨를 으쓱 해 보였다.

 "부려 먹다니? 난 부려 먹은적 없어."
 "그럼 이건 다 뭐에요?"
 "모두 애들이 날 위해서 자발적으로 하는 거지."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 마시고요!!"

 기가 막혀서 소리를 지르는 유정을 보며, 제이는 자기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듯이 두 손을 들었다. 그리고는 세하와 유리, 슬비를 둘러보았다.

 "얘들아. 유정 씨가 내가 너희를 부려 먹는다고 생각하는 것 같구나. 우리 그냥 자리에 앉아서 어제 술 마시던 얘기나 하자꾸나."
 "아니에요!! 유정 언니!! 이건 저희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거에요. 그, 그렇지 슬비야?"
 "그, 그럼요! 제이 아… 아니! 오빠의 건강을 위해서 하는 거에요. 그렇지? 이세하!"
 "무, 물론이지! 유정 누나. 절대 아저… 형은 저희를 부려 먹는 게 아니에요!!"

 유정은. 환하게 웃으며, 자신의 말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어이가 안드로메다로 날아가는 것을 느꼈다. 대체 뭘 하면 상황이 이렇게 되는걸까? 제이는 기분 좋은 웃음을 지으며 선글라스를 고쳐 썼다.

 "앞으로 한 달은 편하겠어."

 움찔-

 제이의 기분 좋은 미소만큼이나. 세하와 유리, 슬비의 표정에는 어두운 먹구름이 꼈다. 힘내라 얘들아!

 "쿠울…"

 오직 미스틸만이 편안한 얼굴로 잠을 자고 있을 뿐이었다.


 - 完 -








 한 달 후. 제이는 살이 5kg 정도 쪘다고 합니다.
2024-10-24 22:28:45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