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x정미] 짠! 유리가 늑대인간입니다.

낮밤곤냥 2015-06-08 4

사람이란 건 그랬다. 간이고 쓸개고 다 빼줄 것처럼 굴면서 정작 도망칠 구멍을 만들어 놓는다. 한 번 마음 먹으면 끝까지 도망칠 이들이 더욱 그랬다. 정상적이지 않다는 이유만으로도 그들은 도망쳤다.

하물며 사람이 아닌데 도망치지 않을 리가. 뾰족한 송곳니, 짐승의 귀와 꼬리. 그 누가 나를 사람으로 볼까. 찢어진 동공. 거울로 보는 자신조차 무서운데.

- 우리 딸, 이사갈까.

이번이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조절되지 않은 저주는 밤만되면 날뛰었다. 지독하리만치 이성적인 정신으로 변해가는 자신을 두러운 얼굴로 보고있는 부모님을 봐야했다. 목 안에서부터 소리가 끓었다. 짐승이 된 자신의 목소리를 들어본 적은 없었다. 분명 참혹하겠지. 두려워하면서도 조금씩 다가오는 이들이게 고개를 끄덕였다.

새로 이사간 곳에서, 우정미와 사이가 괜찮아졌다.

상냥했다. 툭툭 내뱉는 직설적인 말버릇은 사실 걱정과 부끄러움을 내포하고 있다는 걸 오래 있지 않아도 깨달을 수 있었다. 옆에 있고 싶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오른쪽 눈이 아파온다. 거절당하면 어떡하지. 포악하고 흉측한 나를 안다면 넌 분명 도망쳐버릴 터였다.

지금은 작은 맹수와 같은 크기였지만, 시간이 지나고 몸이 자랄수록 똑같이 커진다는 걸 알았다. 사람을 믿지 못한다.

- 정미정미.
- 왜?
- 도망칠 거면, 엄청 멀리 도망쳤으면 좋겠어.
- 뭐? 갑자기 무슨 소리야.

의아함으로 눈썹을 찌푸린 정미가 되물었지만 유리는 그저 고개만 내저었다. 미심쩍어지는 표정은 캐묻고 싶다는 생각이 다분하다. 웃음을 터트렸다. 웃긴 것도 아닌데 그냥 웃음이 나서, 정미에게 등짝을 한 대 맞아야했다.

정미의 옆에 있는 자신은 스스로가 보기에도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행동했다. 부모님은 1년 전쯤 완전 이곳에 정착한 것 같았다. 거울 속에 자신은 드디어 괴물이 되었다. 원한다면 몸 전체가 털로 뒤덮인 커다란 괴물도 될 수 있었고 귀와 꼬리만 난 채로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면 뭐하나, 이 눈은 변하지 않는데.

찢어진 동공, 사나운 눈꼬리. 말로 형용할 수 없지만 부모님들은 이 눈을 가장 무서워 했다. 이제껏 도망친 사람들도 이 눈을 가장 혐오했다. 정미 보고싶어. 오른 눈이 아파왔다. 누군가가 불로 지지는 것만 같았다. 이불을 덮어쓰고 끙끙 앓았다. 

그런 나날을 보내다가, 언뜻 클로저가 되어버렸다. 제의를 받은 순간 생각했던 건 정미 생각이었다. 정미는 클로저 싫어하는데. 신체능력 자체는 무척이나 좋았다. 그래서 시작했던 검도였는데, 갑자기 위상력 각성이라니. 사실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다. 괴물인 자신이 위상력이 있는 것쯤이야.

이제껏 받았던 상들이 처참하게 보자기 안으로 떨어지는 걸 보며, 같은 동료가 괜찮냐며 물어오는 소리에도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냥 정미가 보고 싶었다. 너도 지금 도망을 준비하는 중이니. 울 것 같은 얼굴로 뒷모습을 보이던 정미가 떠올렸다. 아니면 도망가고 있는 중일까. 이왕이면 멀리 갔으면 좋겠다.

- 아, 정미 보고싶다.

눈이 아파옴에도 아무렇게나 중얼댔다. 손이 심심하다. 무어라도 잡고 싶었다. 괜히 주먹을 꽉 쥐었다가 폈다.

위상력 억제기는 목줄같았다. 꽉 매이지 않음에도 조금 답답하다고 생각한다. 임무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욱 어려워졌고, 벌쳐스 아저씨가 준 선글라스를 멋이라며 쓰고다녔다.

- 네 그 고양이 머리띠는 진짜 귀 같다니까.
- 진짜 귀야. 아, 예민하니까 만지진 말아줄래?!
- 진짜 잘만들었다, 이거.

눈만 보이지 않는다면, 들키지 않는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했다. 

그렇게 잘 지냈다. 정미랑 매일 밤 문자를 주고받지 않아도 살만은 했다. 매일 바쁘고 정신이 없다보니 그런 걸까. 좀 더 멀리 도망가라. 눈앞에 있어도 손을 닿지 못하게 해줘. 차라리 그런거라면 미련남진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 왜, 왜 하필 너야.

- 서... 유리?

왜 거기 있었어. 네가 거기 있으면 안돼. 위험하잖아. 많이 위험하단 말이야. 이상하게 울음이 터질 것 같았다.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어리석었다.

- 나가자, 정미야.

정신을 차리고 보면 차원종들은 이미 섬멸되어 있었다. 놀란 눈으로 자신을 보는 그녀가 점점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너. 짧게 내뱉는 숨이 이상하게 격하다. 그러다가, 발견했다.

- 너, 서유리...

그 눈에 비친 내 얼굴이.

끔찍했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비워졌다. 끔찍해. 소름이 끼쳤다. 사람을 믿지 않았다. 언제부터인가 마음속에서 새운 그 나만의 마지막 공식이 으스러져가는 것만 같았다. 그래, 무섭구나. 순간순간 떠오른 기억들이 무너져간다.

- 들켰네.

목소리가 들끓었다. 눈치채지 못했었어. 괴물모습의 난 이런 목소리였구나. 본래 목소리와 비교하면 지나치게 낮고 톤이 일정했다. 그 사이에 섞인 짐승의 으르렁거림만 아니었더라면 어쩌면 괜찮았을지도 모른다.

저기, 나도 진정할 수 없으니까 그런 얼굴로 보진 말아줘. 평상시라면 자연스럽게 행했을 행동들이 실현되지 않았다. 조금 맺힌 눈물을 닦아주고 싶고, 떠는 몸도 안아주고 싶었다. 괜찮다며 달래주고 싶은데, 주먹을 꽉 쥐었다. 정미 앞에서 숨만 골랐다. 간신히 마주친 눈 안에 자신은 낮이 내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 ......그것도, 위상력 때문이야...?
- 아니.

흠칫하며 올려다보는 눈에 빙그레 웃어주었다. 차라리 위상력 때문이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무리 끔찍하고 흉측해도 이것은 나야. 부정하고 싶더라도 내 본질은 괴물이었다.

- 미안해, 정미.
- 잠깐! 그렇게 멋대로...!
- 이왕이면 끝까지 숨기고 싶었어.

언젠가, 내가 네게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다. 도망칠 거라면, 아주 멀리 도망쳐. 내 눈앞에 있어도 닿게 하지마. 그렇게 하지 않으면 평생 내옆에 놓고 싶다고 욕심부릴 테니. 말문을 닫고 고개를 숙인 정미를 빤히 바라봤다. 동그란 머리통이 사랑스러워서 한참을 보고 있었다. 작게 보이는 귀도, 좁은 어깨도, 손도 작다.

- 가야지.

한참있어 꺼낸 말이라곤 그것이었다.

정미는 일어나지 않았다. 다만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들리지 않아서 무릎을 꿇어 얼굴을 가까이 댔다. ㅡ워? 언뜻 들린 단어에 유리의 얼굴 위로 당황이 떠오른다.

- 서유리.

끌어당겨지며 옷깃이 잡혔다. 정면에서 마주본 정미는 가슴 아플 정도로 펑펑 울고 있었다. 안 돼. 숨이 멎을 것만 같다.

- 넌 항상 모든게 그렇게 쉬워?! 운동도, 표정관리도, 사람관계마저도 너에겐 다 쉽냐고!!
- 어...?
- 끝까지 숨기고 싶었다고? 대체 그 끝이 언제까지인데! 자그마치 8년이야! 이제야 다 알겠어.

정미가 아랫입술을 깨물며 울고 있었다. 사고회로가 꼬인다. 정미가, 울고 있어.

- 도망치라고? 무서우면 도망쳐도 된다고? 다짜고짜 그런 말만 내뱉으면 내가 어떻게 알아! 그리고 안다 해도 내가 어떻게!!

나 때문에, 울고 있어.

- 내가 어떻게 도망쳐...

왜. 유리는 눈가가 시큰거렸다. 왜? 목에서 울렁거리며 무언가가 튀어 나올 것만 같았다. 특히 오른 눈이 아팠다. 왜 도망치지 않아. 옷깃을 잡아챈 작은 손이 미끄러져 허리를 끌어안는다. 꽉 안은 팔힘 때문인지, 다른 무언가가 작용한 건지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 왜, 안 도망쳐?
- 그러는 넌 왜, 안 붙잡아.
- ......
- 내가 이렇게까지 매달리는데 넌 왜 안 붙잡아.

이상해. 오늘의 정미는 유난히 솔직한 것 같았다. 그래서 더 이상했다. 그럴만한 가치가 나한테 있나. 매달린다고 붙잡을 수 있는 자격은 있었나.

- 무섭잖아.

정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래서 허리를 감은 팔을 떨쳐내려 했지만 팔은 더욱 강하기 휘감길 뿐이었다. 난 네가 대체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무섭다면 도망치면 된다. 붙잡히면 상처 입혀서라도 달아나면 된다. 이제껏 전부 그랬다. 

- 무서우면 도망쳐도 돼.
- 싫어.
- 왜?
- ......넌 화도 안나?

화를 내야 했나. 윽박이라도 질러야 했을까. 도저히 그런 감정은 들지 않았다.

- 너도 무서웠잖아.

순간, 돌아가던 사고가 멈췄다. 무서워? 내가? 내가 무서워했어? 이제껏 도망쳤던 이들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처음엔, 아주 처음엔 붙잡았다. 가지 말아줘. 그저 팔목을 붙잡았던 것 뿐인데, 어린아이는 덜덜 떨며 돌을 던졌다. 눈에 맞아서 피가 흘렀는데, 하염없이 멀어지는 친구였던 이의 뒷모습만 바라보았다. 집으로 돌아가 어머니에게 치료받았다. 아버지는 천천히 신문을 접으시더니 이사갈까, 라며 운을 띄었다. 

울지 못했다. 울어버리면 아무도 위로해 주지 않을 것만 같았다. 답답한 마음에 화를 내도 혹시 아무도 받아주지 않거나, 맞서주지 않는다면.

- 넌 충분히 화내도 돼, 서유리. 그 정도의 믿음도 주지 못한 나한테 화내도 된단 말이야.

그건 너무 비참하잖아.
눈앞이 흐릿해졌다. 어쩌면 이제껏 혼자서 갑인 척 행동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도망쳐도 돼. 내가 일부로 놓아주는 척, 망가져가는 자신에게 망치질했다. 무서우면 도망쳐도 돼.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정말 죽어버릴 것 같았으니까. 

- 가지마.

볼을 타고 뭔가가 흘러내렸다. 그게 뭔지 몰랐다. 그저 정미의 목을 감아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가지마. 병적으로 중얼거렸다. 가지말아줘. 추했다. 제발, 날 떠나지마. 추해도 붙잡았다.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나 좀 살려줘. 사실, 너마저 가버린다면 더 이상 심장에 철심을 박아 망치질할 수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찢어지는데, 꼬맬자리가 있는지 알 수 없었다. 

- 아무데도 안 갈거야.
- 아무것도 쉬운 게 없어... 내쳐질까봐 웃었어. 또 아플까봐 운동도 열심히 했어. 혼자 있고 싶지 않아서 열심히 말 걸었어. 그렇지만 항상 불안해서...!

스스로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저 담아두었던 게 터졌다는 것만 알았다. 어린애처럼,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징징댔다.

- 엄청 아팠어. 피가 흘렀어. 근데 눈을 감을 수가 없었어. 붙잡아야 하는데, 또 던져서 왼쪽 눈까지 다친다면 더 볼 수 없을 것 같아서...
- 응... 응....
- 있지, 정미야. 내가 그렇게 무서워...? 많이 흉측해...? 

사실 처음엔, 남들과 다르다는 걸 알았을 땐 멋있어 보였다. 그 생각이 변한 건 언제부터였더라. 매끄러운 검은 털이 더럽고 쭉 뻗은 몸신이 흉측하고 날카롭지만 멋있는 눈이 무서운 걸로 변해버렸던 건 대체 언제였나.

천천히 변했다. 눈앞에 있는 이가 놀라지 않게 아주 천천히. 이가 날카롭게 변하고 짐승의 귀가 올라오머, 몸 이곳저곳이 털로 뒤덮히기 시작했다. 손톱이 자라며 눈조차 변해갔다. 정미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완전히 괴물이 되었다. 시야가 엇나가서 느리게 고개를 내려 아무말 없는 이와 눈을 마주했다. 그리고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손을 뻗어 머리를 기분좋게 쓸었다. 속이 몽글몽글하다. 

- 뭐, 봐줄만 하네.

조금 툭 뱉어내는 그 말에 담긴 감정이, 나를 괴물이 아니게 만들었다. 정미가 다가와 목을 끌어안았다. 고마워. 속삭여지는 말에 괜히 털을 비볐다. 

나야말로 떠나지 않아줘서 고마워.








그 후.



- 정미야, 왜 사람들은 내 눈을 보고 기겁한걸까.
- 음... 본능적인 거야.
- 엥.
- 울타리도 없는, 자기를 곧 잡아먹을 것 같은 맹수 앞의 초식동물 같은 마음...일까.
- 정미정미는 이제 안 그래?
- ...네가 날 잡아먹을 리가 없잖아.

일단, 성인이 될 때까지 잡아 먹겠다는 마음은 보류해두는 유리였다.



그 후.


포장마차에서 송은이 경정님과 술을 마시고 조금은 흐릿한 시야로 밤길을 걸어가던 어떤 관리요원 김모씨 (30)는 커다란 대형견을 산책시키고 있는 정미를 발견했다. 평소처럼 웃는 얼굴로 반갑다는 말을 하자 정미는 자연스럽게 인사를 받아왔다.

- 키우는 개니?
- 네, 뭐...
- 개가 잘생겼네.
- ......

어쩐지 제 관리 아래에 있는 유리를 닮은 것 같기도 하다. 그 커다란 대형견은 관리요원이 갈때까지 한 번도 짖지 않았다고 한다.
2024-10-24 22:28:26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