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ent
토와허셜 2015-06-07 2
6월 3일. 세하는 느지막히 일어나 기지개를 폈다. 오늘은 그의 생일이면서 학교도 쉬는 날이고 어찌된 일인지
검은양의 활동도 없는 날이다.
오늘은 정말 편안한 하루가 되겠구나, 하면서 세하는 아침을 준비하면서 얼마전에 나온 신작 게임을
즐길 생각으로 들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세하의 핸드폰이 울렸고 곧이어 그의 친구이자 검은양의 동료인 서유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세하의 집에 그의 동료들인 서유리, J, 미스틸테인이 찾아왔다. 저마다 손에는 케이크와 선물을 들고 있었다.
이윽고 세하의 생일을 축하하는 파티가 시작되었다.
'세하야 생일 축하해~'
'나이를 먹을수록 건강을 잘 챙겨야 한다고 동생.'
'우웅?'
'하하... 모두들 정말 고마워. 그런데 슬비는 안 왔어?'
그 자리에는 검은양의 리더이자 최근 세하가 신경쓰고 있는 이슬비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다른 맴버들은 왔는데 그녀만이 보이지 않자 세하는 약간은 상심한 듯한 표정이 되었다.
'아... 그게 슬비는 오늘 아침에 갑자기 아파서 못가겠다고 연락이 왔어. 원래는 다같이 오려고 했는데...'
'매사 자기관리가 철저한 슬비가 웬일이지...'
검은양 사무실. 김유정은 오늘 처리해야 할 서류를 들고 사무실로 들어간다.
'오셨어요 유정이 언니.'
'어, 그래 안녕 슬비야. 그런데 다른 애들은 아직 안 왔니? 곧 업무시작해야 하는데.'
김유정은 슬비외에 아무도 보이지 않은 것이 약간은 의문스러웠다. 아무리 늦게 와도 이시간쯤이면 지각이 습관화된
세하를 제외하면 다 있어야 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저기... 사실은 그것 때문에 언니한테 드릴 말씀이 있어요.'
'응? 뭔데?'
'오늘 검은양팀은 리더인 제 독단으로 자체휴가를 내렸어요. 죄송합니다 유정언니. 대신 오늘 업무는 제가 다 할게요.'
이윽고 김유정의 얼굴표정이 굳어졌다. 평소의 슬비라면 이런 독단적인 행동은 하지 않기에 무슨 일이 있는지 의아했다.
'자세히 얘기해볼래 슬비야?'
'그렇구나... 오늘이 세하 생일이었지. 그렇지만 슬비야, 너도 잘 알겠지만 공사구분은 확실히 해야지 않겠니?'
'네... 저도 잘 알고 있어요. 하지만... 요즘 연이어서 사건이 많아서 다들 많이 다치고 피곤해해서... 그래서 오늘만은
생일이기도 하니까 친구들하고 즐겁게 보냈으면 해서...'
슬비는 계속 말끝을 흐리면서 이어나가질 못했다. 김유정은 그런 슬비를 보며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유는 대충 짐작이 간다. 최근들어 세하를 보는 슬비의 모습이 예전같지 않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계속 지각하고, 임무에 태만하고, 명령도 듣지않는 짜증나는 상대를 바라보는 듯한 느낌의 그 표정이
요즘엔 싸우다가 정이라도 든 것일까... 사랑에 빠진 소녀의 부끄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세하가 걱정이 되었는지 나름대로 배려책을 쓴 것이다. 그래도 그 짐을 자신이 전부 끌어안으려 하다니
슬비답기는 하지만 무모하다고 느낀 김유정은 자신이 이 아이를 돌봐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알았어. 슬비야, 더 이상 뭐라하진 않을게. 오늘은 우리 둘이서 빨리 끝내고 돌아가자.'
'네? 그 말은 혹시...'
'너 혼자서 하면 저녁달 보면서 퇴근해야 할 거야. 그리고 난 너희들의 담당요원이니까 그냥 지나칠 수도 없고 말이지.
또, 빨리 끝나면 늦게나마 세하생일을 챙겨줄 수도 있고.'
'유정언니... 정말 고맙습니다.'
점심무렵, 세하가 생일 답례로 식사를 대접했고 곧이어 다같이 밖으로 나왔다. 오늘의 주인공인
세하의 뜻에 따라 근처에 있는 오락실에 가기로 했다.
'오호 몸으로 움직이면서 하는 게임이라... 잘 쓰면 건강에도 좋겠는데.'
'우웅? 아저씨 미스틸은 저게 하고 싶어요.'
미스틸이 가리킨건 미소녀 땅따ㅁ...기 였다.
'안 된다. 테인아 방금 그건 잊어버리렴.'
'우웅... 예쁜 누나들하고 친해질 수 있었는데...'
'저기 저기 세하야. 우리 저거 할래?'
유리가 가리킨건 2인용 댄스게임이었다.
'...어? 아, 그래.'
'세하야 무슨 걱정있어? 왜 넋나간 표정을 짓고있어?'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혹시 슬비가 걱정되니?'
슬비의 이름이 나오자 세하는 순간 몸을 움찔거렸다.
'역시 슬비가 걱정되서 게임이 눈에 안들어오나 보구나?'
'아... 미안해. 오늘 나때문에 이렇게 와줬는데 이런 모습만 보여서.'
'아니야. 나도 슬비가 걱정되서 이따가 병문안이라도 가려고 생각하고 있었거든. 그럼 이따가 같이 가자.'
세하는 이내 정신을 차리고 유리와 함께 게임을 했다. 하지만 그렇게 좋아하는 게임을 하고 있음에도
그의 표정은 아직도 뭔가 아쉬움이 묻어났다.
'슬비랑 같이 했으면 좋았을텐데...'
'으음 이상하네... 병원이라도 간걸까?'
오락실에서 나온 이후 슬비의 집으로 향한 일행은 초인종을 몇번 눌러봤으나 아무런 기척도 없었다.
휴대폰으로 연락도 해봤으나 전원이 ** 있어 받질 않았다.
'어디로 갔는지 알 수도 없으니 찾을 수도 없고... 아참, 유정씨라면 대장의 행방을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군.'
'그럼 빨리 연락해봐요 아저씨'
'글쎄 아저씨가 아니라니까. 아무튼 지금 전화해볼테니 잠시만 기다려봐.'
비슷한 시각, 검은양 사무실에선 전화를 받으러 나갔던 김유정이 다시 돌아왔다.
'슬비야, 방금 유니온 본부에서 연락이 왔는데 급한 일이 생겨서 잠시 다녀와야겠구나. 끝까지 도와주지 못해서 미안해.'
'아니예요 언니. 이정도 도와주신것만 해도 정말 감사드려요. 덕분에 조금만 더 하면 끝나겠는걸요.'
'그렇게 생각해주니 정말 고맙구나. 그럼 난 먼저갈테니까 끝나면 내 책상에 올려두고 가렴.'
거짓말이다. 김유정은 J의 전화를 받고 슬비를 걱정하는 아이들을 보자 차마 거짓말을 할 수가 없었다.
지금 그녀는 슬비가 그들과의 시간을 갖게 하기 위해 자리를 비워주는 것이었다.
'힘내렴 슬비야.'
김유정이 나간 후 혼자 남은 슬비는 또 다시 묵묵히 일을 계속했다. 하지만 얼마가지 않아 빠르게 움직이던 손놀림이 멈췄다.
'애들은 지금쯤 신나게 놀고 있을까...'
자신이 거짓말을 해서 만든 그들의 휴일. 자신도 거기에 있었으면 하는 마음도 간절했지만
애써 마음을 달래며 다시 일을 시작했다.
약간의 시간이 흐르고 검은양 사무실의 문이 열렸다. 김유정은 일이 있어서 나갔고 여기에 올 사람이 없을텐데 하면서
문쪽을 바라본 슬비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거기에는 오늘 그녀가 이 고생을 하게 된 이유이자 그러면서도 만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던 그 남자,
이세하가 서 있었기 때문이다. 세하는 화가 난듯한 얼굴로 매섭게 슬비를 노려봤다.
그러고는 난폭한 발걸음을 하며 그녀 앞에 섰다.
'야, 이슬비! 오늘 검은양팀 휴가라는거 거짓말이라면서?'
자신이 거짓말을 했다는 것에 화가난것이라고 생각한 슬비는 말을 돌리지 않고 바로 사실대로 얘기했다.
'맞아. 내가 독단적으로 벌인 일이야. 하지만 요즘 우리팀이 일이 많아서 다들 지쳐있었고 마침 오늘이 네 생일이니까
즐겁게 보내라는 뜻에서 그랬어.'
그 말을 듣자 세하는 머리끝까지 화가 났는지 슬비가 앉아 있는 책상을 주먹으로 힘껏 내려쳤다.
'깜짝이야. 이게 무슨 짓이야.'
'이 바보야! 네가 이렇게 해주면 누가 즐거울줄 알아?'
'뭐? 기껏 생각해서 배려해줬는데 뭐가 불만인건데?'
'너는 네 생일을 누가 대신 희생한다는 조건으로 맞이하면 즐겁겠어? 그 사람이 신경도 안쓰이겠냐고!
그리고 아프다고 거짓말까지 하다니 우리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그...그건 그렇지만... 그래도 난 생일같은거 맞아본 기억이 거의 없으니까... 어떻게 하면 좋을까 생각하다가
이러면 좋겠다 싶어서 한건데... 너희한테 괜히 걱정만 끼쳤구나... 미안해...'
들어보니 세하의 말이 지당히 맞고 자신이 괜한 짓을 했구나 생각한 슬비는 바로 사과를 했다.
그리고 자신이 벌린 일이 오히려 세하를 화나게 했다는 사실에 슬비는 슬펐는지 기운 없이 축 늘어진 모습으로 서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세하도 화가 누그러졌고 이내 윽박지른것이 미안해졌는지
머뭇머뭇 눈치만 보다가 힘겹게 입을 뗐다.
'슬비야 지금 하고 있는거 얼마나 남았어? 도와줄테니까 빨리 끝내고 돌아가자.'
'아... 아냐 그럴필요없어. 유정언니가 많이 도와주셔서 방금 다 끝났어. 이제 정리만 하면 돼. 저기, 근데 다른 사람들은?'
'따라오겠다고 했는데 내가 혼자가겠다고 해서 다들 돌려보냈어. 다들 네 걱정 많이 했으니까
내일 만나면 제대로 사과해야 한다?'
'응... 알았어. 그리고 정말 미안해.'
'아, 아냐... 우릴 위해서 그런건데. 그 마음은 나도, 모두도 알아 줄거야.'
돌아가는길. 해는 어느새 뉘엿뉘엿 지려하고 있었다. 세하와 슬비는 나란히 걷고 있었다.
그러다 슬비는 중요한 말을 한다는걸 깜빡한걸 알아 차렸다.
'아 맞다. 세하야 오늘 생일인데 아직까지 이 말도 못하고 있었네. 늦었지만... 생일 축하해 이세하.'
슬비가 자신의 생일을 축하한다고 말해주자 세하는 아침에 받았던 그 어떤 축하인사보다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 정말 고마워 슬비야.'
'아 그런데 아직 선물도 준비 못했는데 어쩌지...'
슬비가 어쩌지 하면서 안절부절못하자 세하는 할까말까 잠시동안 망설이다가
이윽고 질러보자는 마음으로 슬비에게 말을 걸었다.
'선물이라면 여기있는걸? 슬비야.'
그리고 나서 세하는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하고 있는 슬비의 팔을 잡아당겨 그대로 자신의 품안으로 끌어 안았다.
'꺄앗?! 이게 무...무슨...'
얼굴이 새빨개진채 말도 제대로 못하는 슬비를 그대로 안은채 세하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언제나 무뚝뚝하고 잔소리 많고 고지식한 이슬비'
'뭐, 뭐라고?'
'하지만 서툴지만 상냥하고 남을 위해서 자기몸을 아낌없이 희생하는 이슬비.
그런 네가 내 곁에 있어주는게 나한텐 최고의 선물이야.'
'세하야...'
'슬비야, 네가 나를 위해서 이렇게 해준 것처럼 나도 널 위해서 무엇이든 할 수 있어. 좋아해 슬비야.'
자신이 말하고도 창피했는지 세하는 얼굴이 빨개진채 고개를 돌려 슬비의 시선을 회피했다.
'나는...' 슬비는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자신도 분명히 그를 좋아하고 있는데 어째서인지 말이 나오지 않았다.
'하하 미안해. 내가 괜히 이상한 말을 했지? 방금 한말은 그냥 잊어버려.'
그렇게 말하고서 안고 있는 슬비를 떼놓으려고 하는데 슬비의 팔이 세하의 등을 꽉 붙잡았다.
'슬비야...?'
'나는... 이런말 하는거 서투니까... 이상해도 웃으면 안돼? 나도 널 좋아해 세하야...'
슬비가 아무 말도 없어서 거절당했다고 생각해 슬픈 표정을 지었던 세하의 얼굴에 다시 웃음꽃이 피었다.
그리고 다시 있는힘껏 따스하게 슬비를 품에 안았다.
세하는 오늘 여태껏 받지못한 최고의 선물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