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lfDog] 마지막 장미

바베나 2015-06-06 3


.

.

.




"허억... 허억... 허억..."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른다.

온 몸의 피가 다리 쪽으로 쏠린다. 그렇게 중심을 잃고 쓰러질 뻔 하기를 수십여 차례, 하지만 소녀는 끝까지 쓰러지지 않았다.


따돌렸나? 아니, 아쉽게도 그건 아니었다.


잠시 숨을 돌리기위해 걸음을 멈췄던 소녀는, 고개를 돌리자마자 시야에 들어온, 수백은 거뜬히 넘어가는 차원종 군단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맞서 싸워야하나?


...


아니, 체력도 거의 한계. 남은 위상력도 얼마 없어.


"..."


현재 피로 얼룩진 폐허를 홀로 가로질러 나아가는 이 소녀에게는 마지막 임무가 하나 남아있었다.

그건 자신이 몸을 담고있는 특무 강습부대 '[BLUE ROSE]블루 로즈' 분대의 전멸을 본부에게 알리는 것. 현재 모든 통신수단이 먹통이었기에, 그녀는 직접 본부로 귀환하여 소식을 알리는 수 밖에 없었다. 아마 차원종 녀석들의 만행이 분명할테지만,  녀석들이 무슨 수작을 부린건지는 알 턱이 없었다. 사실 녀석들의 방해공작이라는 것도 심증만 가득할 뿐. 물증은 어디에도 없었다.


'내부에 배신자가 있다... 유니온에 이 사실을 알려야해. 남아라, 넌 반드시 살아서 돌아가라. '


윤시운.


그는 블루 로즈 분대의 분대장이자, S급 클로저들 중 하나였다. 알파퀸 서지수와 마찬가지로 1세대 클로저였으며, 서지수 만큼은 아니더라도, 그 역시 클로저 세계에서는 알아주는 거물이었다. 발화계 능력을 가지고 있던 시운은 '염제(炎帝)'라고 불리울만큼 강력한 클로저였다.


허나, 염제 윤시운은 이제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수십기가 넘어가는 A+급 이상의 차원종들의 갑작스런 출현.


그리고 미리 준비하고 있었다는듯이,  망설임없이 시작된 신속하고 정확한 공격.

결국, 블루 로즈 분대에 속한 최정예 클로저들은 전멸을 면할 수 없었다. 습격해온 차원종들은 블루 로즈 분대가 어디로 향할지 처음부터 알고 있었고, 그리고 비상 시에 그들이 어떻게 빠져나갈지도 모두 파악하고 있었다. 그건 누군가 정보를 넘기지 않은 이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역시, 들었던대로군.'


그리고, 전멸 직전에 시운이 생각했던 배신자가 있을꺼라는 추측은, 그들과 맞섰던 간부급 차원종의 입에서 나온 한마디로 확실해졌다.


"반드시 살아서 돌아가야해...모두를 위해서라도."


아라는 주먹을 꽉 쥐었다.


시운을 포함한 모든 분대원들은 자신의 퇴로를 뚫어주기위해 모두 장렬하게 희생되었다. 그건 가속 및 운동에너지 전이 능력을 가진 아라를 돌려보내는게, 본부에 소식을 알릴 수단들 중에서 가장 확률이 높다고 파악한 블루 로즈 분대원들이 택한 마지막 비장의 수였다.


그렇게 아라는 수십마리의 차원종들에게 둘러쌓여 산채로 뜯어먹히는 분대원들을 뒤로한채, 차원종 무리를 가로질러 전장을 이탈했다. 그녀 역시 분대원들과 함께 최후까지 싸우고 싶었지만, 블루 로즈 분대가 여기서 전멸하면 인류는 내부의 배신자가 있다는 것도 모른채, 서서히 붕괴해 나갈게 분명했다. 결국, 그건 차원종에게 이 세계를 넘겨주게 되는 결과를 불러오게 될 것이기에, 아라는 쓰린 가슴을 달래며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나가야만 했다.


"생쥐같은 년, 제법 발이 빠르군."


아라를 뒤쫓던 고위 차원종, 제피로스는 미간을 찌푸리며 이를 뿌득거렸다. 군단장들을 보좌하는 자신이 일개 인간을 뒤쫓아야된다는 사실이 영 맘에 안들었지만, 그는 자신이 섬기는 위대한 존재로부터 한명도 빠짐없이 말살하라는 명을 받았다. 그렇게 된 이상,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위대한 존재의 명을 받들어야만했다.


"나 제피로스에게 죽는 것을 영광으로 여기거라, 인간."


제피로스는 거대한 날개를 펄럭이며 아라를 향해 빠르게 하강했다. 마치 거미의 것처럼 둥그런 머리에 박혀있는 여섯개의 눈이, 일제히 아라의 뒷목을 향해 노골적인 살의를 드러내며 깜박거렸다. 곧, 그의 턱이 네갈래로 나뉘었고, 검붉은 가시가 그의 입에서 뿜어져나와 그대로 아라의 몸을 꿰뚫기위해 지면을 향해 내리꽂혔다.


?!


허나, 상대는 수년간 전장을 누벼온 최정예 전사.

비록 가녀린 소녀의 몸을 가지고 있다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이 피비린내 나는 전장 위에서 지금까지 살아남은 전사였다. 자신의 전신을 덮쳐오는 노골적인 살의를 느낀 아라는, 재빨리 몸을 틀어 제피로스의 공격을 피하는데 성공했다. 아슬아슬하게, 단 한끝차이로. 그녀는 자신의 볼을 살짝 스치고 내리꽂힌 제피로스의 혀를 보며 이를 뿌득였다.


'도망칠 수 없어. 싸워야해.'



상대는 S-급 차원종.


녀석을 따르는 본대와 합류하기 전에 전투를 끝낼 수 있을까?


아니, 그 전에... 이길 수는 있을까?




"하하하! 제법이구나 인간!"


잠시 잡념에 빠져있는 사이, 제피로스는 또 다시 공격을 강행해왔다. 붉은 아지랑이를 뽑아내며 그걸 장창처럼 들어올려 매섭게 투척해온다. "**!" 순간 아라의 입에서 욕설이 터져나왔다. 순수한 감탄과, 절망감이 뒤 섞인 외침이었다. 양 손에 권총을 뽑아들고, 쇄도해오는 붉은 장창을 겨눈다. 할 수 있어. 스스로를 다그치며 그대로 방아쇠를 당겼다. 얼마 안남은 위상력이지만, 최대한 효율적으로 힘을 안배하여 싸워**다. 아라는 신속하게, 하지만 최대한 신중하게, 녀석의 공격을 요격해나갔다.


한 발, 두 발, 세 발...


빠르게 뒤로 물러서면서, 적의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격파해나간다. 마지막 붉은 창까지 격파했을 때, 다음에 거리를 좁혀온 것은 제피로스 본인이었다. 녀석의 턱이 또 다시 네갈래로 나뉘어지고, 걸걸한 울음소리가 귓가를 타고 들어오며 등줄기를 타고 소름을 전파시킨다.


역겨운 **들.


아라는 이를 빠득거렸다. 어찌나 세게 이를 갈았는지, 잇몸에서 피가 터져나왔지만 신경쓰지 않았다. 아니, 고통조차 느껴지지 않았기에 그녀는 지금 자신의 잇몸이 터졌다는 것조차 모를거다.


눈 앞의 존재.


절망의 돌풍, 제피로스를 상대해야하기에 아라는 모든 신경을 전투에 집중시켜야만했다.


제피로스의 두터운 왼팔이, 아라의 목을 향해 날아들었다. 네개의 손톱. 손톱 하나 하나의 길이가 성인 남성의 손바닥보다도 거대한 그 위용에 아라는 위축되었다. 허나, 물러설 수 없었다.


사아악-!


바람을 가르며 녀석의 공격이 쇄도해온다.


어떡하지?

육탄전? 아니, 무기가 버틸 수 있을까?

거리를 벌릴 수도 없어, 스피드도 상대가 위다.


상대의 공격에 대응할 수를 생각하는 사이, 제피로스의 공격이 아라의 목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 순간 소름이 온몸을 훑고 지나갔다. 방금 전에는 자신도 모르게 반사신경에 의존하여 제피로스의 공격을 회피했다. 말 그대로 운이 좋았을 뿐, 아마 또 다시 녀석이 공격해온다면 아라의 목은 곧바로 바닥에 떨어질게 분명했다.


이길 수 없어.


아라의 눈에 절망이 드리워졌다.


그 순간,



'블루 로즈는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는 반드시 살아서 돌아간다.'



"..."


블루 로즈 분대의 구호가 아라의 뇌리를 스쳤다.

제피로스의 공격을 회피한 아라는 막다른 벽에 등을 기대었다. 그녀의 앞을 막아선 제피로스는 비열한 웃음소리를 토해내며 천천히 거리를 좁혀왔다. 아마도, 자신의 승리를 확신하고 있는 것이겠지.


"클클클, 나름 버틴다고 용썼다만, 여기까지구나 인간이여, 그만 죽어라."


거리를 좁혀오던 제피로스는 손가락을 까닥이며 붉은 장창을 또 다시 수십여개 만들어냈다. 이전보다도 더욱 더 많이, 녀석은 일부러 압도적인 힘의 차이를 보여줄 모양인지, 자신의 최대 한계치까지 붉은 창을 생성시켰다. 녀석의 몸을 휘감은 붉은 기운이 웅웅거리며 기분나쁜 소음을 토해냈다.


허나, 아라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눈을 반짝였다.


"아니."


날이 잘 선 군용 대검을 뽑아든다. 얼마 남지 않은 위상력을 대검에 쏟아붓는 아라. 그녀는 자신의 몸을 보호하기위해 분배했던 위상력을, 모두 자신의 대검과 양발로 분산시켰다.


"블루 로즈는 사라지지 않아. 나는 반드시 살아서 돌아간다."


그리고 한발 앞으로 내딛으며, 결의에 찬 목소리로-


"가엽구나, 헛된 희망을 품다니."


그리고 제피로스가 그에 맞받아치며 수십개의 붉은 창을 일제히 쏘아보냈다.



쏴아아아악-



아라는 눈을 부릅뜬 채, 자신을 향해 쇄도해오는 붉은 장창들을 노려보았다.

현재 자신의 몸은 위상력을 두르지 않고 있다. 일반 인간과 다를 바 없는 몸. 스치기만해도 몸의 일부가 낙엽처럼 바스라질 것이다. 단 한번의 공격도 허용해서는 안된다.


앞으로 한발 내딛으며, 우선적으로 고개를 숙였다. 매서운 바람소리와 함께, 그녀의 머리칼이 공중으로 휘날렸다. 오른발을 떼고, 그녀가 이전에 발을 딛었던 곳에서 부서진 암석 파편들이 무수히 튀어올랐다. 그렇게 한발 더, 그녀의 건빵 주머니가 통째로 뜯겨나가며 공중으로 튀어오른다.


'더..더....더.....더......!'


눈 바로 앞으로 붉은 창이 스쳐 지나간다. 온 몸의 피가 차갑게 식는 것만 같은 착각이 일었다. 괜찮아, 아직 움직일 수 있어. 스스로를 어르고 달래며 지면을 박차며 나아간다. 속도를 올리고, 지면으로 쏟아지는 무자비한 공격을 피해 벽을 딛고 달린다. 덕분에 승기를 잡았다고 확신하고있던 제피로스의 얼굴이 구겨졌다. 그 역시 인간을 하찮게 여기는 차원종들 중 하나였기에, 아라의 선전이 썩 내키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 어디 끝까지 저항해보거라. 어차피 네가 도달할 운명은 단 하나 뿐."


마지막 창까지 투척한 제피로스는 어느새 자신의 목전까지 도달한 아라를 보며 자세를 고쳐잡았다. 제피로스가 가한 무자비한 공격에 아라의 무장상태는 거의 넝마나 다름없었으나, 그녀의 몸은 상처하나없이 말끔했다. 그 점이, 제피로스의 신경을 긁어내렸다. 절망의 돌풍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몸의 공격이, 고작 인간 하나도 제대로 맞추지 못한다면, 그건 정말 체면이 구겨지는 일이 아닌가? 그래, 정말 엿같은 상황이지. 그건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다. 제피로스는 그렇게 생각했다.


"오로지 죽음이다!"


제피로스는 자신의 오른손에 위상력을 가득 실어, 그대로 아라를 향해 매서운 속도로 내질렀다.


'지금이다!'


허나, 제피로스의 공격은 아라의 몸을 꿰뚫지 못했다.

또 다시, 아슬아슬하게 제피로스의 공격을 회피한 아라.


분명 전반적인 능력치는 제피로스 쪽이 우위였다. 허나, 자신의 능력을 다루는 숙련도 만큼은 아라 역시 뒤쳐지지 않았다. 겨우 13살의 나이에 차원전쟁에 내던져졌던 소녀. 그녀가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탁월한 상황 판단 능력 덕분이었다. 언제 능력을 발동시키고, 또 어떻게 능력을 운용해야할지. 그에 대한 발군의 판단력이 아라가 지닌 최고의 무기였다.


"이...이이이이이! 미꾸라지 같은 년이!"


약이 오를대로 오른 제피로스가, 다시 팔을 휘둘러 아라를 붙잡으려했다. 허나, 아라는 또 다시 자신의 몸을 가속, 제피로스의 팔을 스쳐지나가며 그의 손목을 대검으로 가볍게 그어버린다. 제피로스의 선혈이 허공에 흩뿌려졌고, 제피로스의 동공이 수축되었다. 두꺼운 핏대가 이마에서 솟아나는걸 보아하니 그는 그대로 이 상황이 믿기지 않는게 분명했다.


사악-!


아라는 멈추지않고 몸을 비틀어 제피로스의 팔오금을 그었다. 얕았다. 하지만, 데미지가 전혀 없는건 아니야. 아라는 재빨리 제피로스로부터 거리를 두고 물러났다. 그리고 그 순간, 제피로스가 맹렬한 포효를 내뱉으며 자신의 위상력을 폭발시켰다. 위상력으로 이루어진 순수한 붉은색 기운이, 화산처럼 폭발하며 공중으로 치솟아올랐다.


무거워, 녀석의 몸에서 뿜어져나온 기운이 몸을 스치자마자 든 생각이었다. 확실히 녀석은 강하다. 만전의 상태에서 맞붙더라도 아라는 승리를 장담할 수 없을꺼라 생각했다. 지친 자신과는 달리, 아직도 힘이 넘치는 상대... 최악의 상황이다.


하지만, 이게 오히려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피로스만큼 강한 상대를 만나** 못한 것은 아니다.

제피로스보다도 더한 차원종도 죽여보았다. 허나, 그건 상대가 약해서가 아니었다. 그리고 남아라가 강해서도 아니었다.


단지, 상대가 자신의 힘을 너무 과신하고 있었다는 것.


이쪽을 얕보고 있었다는 것.


그 것이 여태까지 아라가 수많은 강적들을 쓰러뜨릴 수 있었던 요인이었다.


'지금도 같아.'


이보다 더한 상황도 겪어봤어. 아라는 스스로를 달래었다. 그런다고 몸의 떨림이 멈추는 것은 아니었지만, 한결 나아졌다. 곧 기운을 다듬은 제피로스가, 쓰레기면 쓰레기답게 죽어라! 라며 돌진해왔다. 붉은 기운을 가득 실은 돌풍이 온몸을 찢어발길 것 같았지만 아라는 견뎌냈다. 아직, 아직이다. 단숨에 승부를 낼 수 있는 기회는 아직이야.


거대한 산이 전신을 뒤덮는듯한 위압감이 느껴지는 순간, 아라는 눈을 번뜩이며 지면을 박차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녀의 손에 들린 대검에서 푸른 섬광이 번뜩이며 매서운 속도로 허공을 갈랐다. 서걱- 하며 살이 썰려들어가는 기분나쁜 소음과 함께, 붉은 선혈이 허공으로 튀어올랐다.


"크으윽?!"


순간, 자신의 목에서 뿜어져나오는 피를 본 제피로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피하지 못했을텐데! 어떻게? 어째서?! 제피로스는 믿을 수 없다는듯이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피잉-


어둠 속에서 은은한 빛을 토해내는 직선이, 제피로스의 눈앞에서 여러겹 겹쳐진다. 순간, 제피로스는 자신의 몸을 죄여오는 미지의 힘에 비명을 지르며 몸을 비틀었다. 자신의 몸을 속박하는 이 성가신 것들을 끊어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제피로스 뜻대로 되지않았다. 그가 몸부림치면 칠수록, 그의 몸을 에워싼 와이어들은 더욱 더 그의 몸을 죄여올 뿐이었다.


그리고 그 뿐만이 아니었다.


"이...이건...! 네년... 흡귀였구나..."


"..."


차원종들 역시, 알파퀸 서지수라던가, 염제 윤시운처럼 유명한 클로저들에 대해서는 익혀두고 있었다. 아라 역시, 흡귀라는 별명을 가지고있었다. 상대와 몸을 직접 접촉하거나, 아니면 매개체를 통해 접촉해야만 발동할 수 있는 능력이지만 그녀는 상대의 위상력을 자신의 것으로 전이시킬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상대가 방심한 사이에 역습을 통해, 한 순간 무력화시키고, 와이어를 통해 위상력을 흡수시켜 완전히 제압. 그 이후 마무리를 짓는게 아라의 암살방식이었다.


그렇게 아라에게 제압당한 제피로스는 자신의 몸에서 빠져나가는 위상력을 느끼며, 쓴웃음을 지었다.


"죽여라."


그리고 아라를 똑바로 노려보며 매섭게 한마디 쏘아붙인다.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라의 대검이 제피로스의 목을 꿰뚫었다.




.

.

.




"허억...허억...허억..."


제피로스를 쓰러뜨리는데 성공한 아라는, 식어가는 제피로스의 시신 앞에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위상력을 허용범위 이상으로  소모한 바람에 머리가 깨질 것만 같았다. 온몸이 부서져 무너질 것만 같았다. 숨을 쉬는 것 조차 힘들어... 아라는 후들거리는 손으로 자신의 팔꿈치를 감싸며 몸을 둥글게 말았다.


케르르륵- 케륵-


제피로스 녀석의 추종자들인가... 결국 여기까지왔군. 마지막 임무는... 결국 실패인가.

아라는 희미해지는 시야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차원종들을 보며 쓴 웃음을 지었다. 배신자가 있다는 사실을 본부에 알리지 못했어... 하지만, S-랭크의 차원종을 쓰러뜨렸다... 아주 절망적인건 아니야. 스스로를 그렇게 달래며 최후의 순간을 받아들이기위해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 때였다.


퍼엉-!


"케에에엑?!"


갑자기 거대한 폭발이 일어나더니, 언덕 위에 서 있던 스케빈저 부대를 한 순간에 초토화 시켰다. 덕분에 눈을 감았던 아라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주변을 재빠르게 훑어볼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폐허 너머에서, 8개의 인영이 아른거리는 것을 확인했다.


"지원군인가...!"


순간 아라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리고 다시 일그러지기를 반복, 저들이 만약... 저들이 만약 조금만 더 빨리 왔더라면. 그렇다면 시운 분대장님은... 적어도... 우리 분대원들은...


아라는 무거운 몸을 일으켜세우며 고개를 떨궜다. 어차피 늦은 원군을 원망해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으리라는걸, 아주 잘 알았기에 그녀는 스스로 원망과 설움을 삼킬 수 밖에 없었다. 이제 자신에게 남은건 마지막 임무를 수행하는 것 뿐.


그 것은-


"블루 로즈 소속, 특수 요원 남아라. 블루 로즈 팀은 반역을 모의한 죄로 즉시 체포한다."


"어...?"


내부에 배신자가 있다는 것을 알리기위해, 입을 열려했던 아라는, 뜻 밖의 말을 듣고서 얼빠진 표정을 짓고 말았다.



무슨 소리야?


내가 배신자라니...?


무슨 소리야?


우린...


...


입은 계속 뻐끔거렸으나, 목 밖으로 목소리가 나오지는 못했다. 간신히 터져나오려는 울음도 억누르기 벅찼기에, 입 밖으로 말을 꺼내는건 거의 불가능했다. 그 사이에, 아라의 목에, 손목에, 발목에, 위상력 억제 구속구가 채워졌고, 그녀는 자신의 동료였던 클로저들 손에 붙들려 강제로 일으켜 세워졌다.







그렇게,


열흘이란 시간이 지났다.




"피고인, 남아라를 포함한 블루 로즈 분대는 이름없는 군단의 간부가 되는 조건으로, 유니온의 작계를 바람의 군단에게 넘겼습니다."


바람의 군단, 제피로스가 섬기는 군단장이 이끄는 군단이다.


"이후, 작전 지역에서 제피로스와 합류하여 군단으로 넘어갈 예정이었던 블루 로즈는, 그들의 의도를 파악한 아이언 폭스의 추격에 의해 계획이 물거품이 되었고..."


아라는 생기없는 두 눈으로 검사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는, 정말 내가 반역자라고 생각하는걸까? 그런건가?


"제피로스 역시, 아이언 폭스에 의해 제압. 이 후 저항하던 블루 로즈 분대 역시 아이언 폭스에 의해..."


거짓말.


아라는 너무 어이가 없어 자기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아이언 폭스?

그 녀석들은 경계 임무만 도맡던 녀석들이야. 가장 강한 클로저가 겨우 B급이라고... 근데, 우리 블루 로즈가 그런 녀석들에게 제압 당했다고?


아라의 적의 가득한 눈빛을 느낀 검사가 헛기침을 두번 뱉었으나, 그는 끝까지 모른 척하고 말을 이어나갔다.


"그리하여, 블루 로즈는 인류를 등진..."


"거짓말! 거짓말이야! 우린, 배신 따위 하지 않았어!"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라가 울부짖다시피하며 외쳤다. 덕분에 양쪽에서 그녀를 구속하고있는 클로저들이 일어난 그녀를 강제로 다시 앉혀야만했다.


"피고인."


재판관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의 목소리에, 아라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올렸다. 이제 겨우 열일곱. 전장이 아니었다면, 학교를 다녀야할 소녀의 두 눈에서는 살기를 가득 머금은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꽉 깨문 이 사이에서는 미처 아물지않은 상처에서 흘러나온 혈흔이 치아를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피고인은, 블루 로즈의 알리바이를 증명할 수단이 있습니까?"


재판관의 말에, 아라는 입을 굳게 다물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우리는... 유니온 본부의 명으로 바람의 군단장을 암살하라는 명을 받아 이동중이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적의 교란작전에 의해 통신이 두절..."


"적에 교란작전? 허나, 인근 위치에서 임무를 수행중이었던 다른 분대들은 통신상태에 이상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블루 로즈분대만이 끝까지 본부의 통신을 차단. 이후에 블루 로즈 분대가 전멸한건 아닐까싶어 생사를 확인하기위해 이동하던 3개 분대가 적의 기습으로 전멸..."


...


뭔가 잘못되었다.


"뒤늦게 소식을 전파받은 아이언 폭스가 출동. 이후에 제피로스와 접선한 블루 로즈 분대를 발견하여 대화를 요청했으나, 거절... 블루 로즈 분대에서 먼저 공격을 취했다고 들었습니다만?"


확실하게 잘못되었어.


아라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주변을 훑어보았다.

이 곳에 있는 사람들은, 유니온의 고위 간부들. 그리고 자신과 함께 전장을 누벼오던 클로저 요원들이다. 그들은 하나같이 아라의 시선을 외면하거나, 경멸하는듯한 차가운 시선으로 아라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왜?


어째서?


아라의 시선이 천천히 돌아간다.


머릿 속에서 이 상황이 어떻게 된건지, 정리를 해보려고 하지만 도저히 답이 나오질 않았다.

어째서? 적의 우두머리를 암살하기위해 임무를 나섰던 우리가... 우리 블루 로즈가... 반역자가 된거지? 어쩌다가? 왜? 어째서?


...


버림패다.


혼란스러운 와중에, 순간 뇌리를 스친 하나.


아라는 확신했다.


배신자는 분명 유니온의 고위 간부.

유니온의 간부들은 대부분 위상능력자가 아니다. 아마, 그들 중에서 위상력의 힘을 동경한 이가 이름없는 군단으로부터 위상력을 얻는 대신 유니온의 작계 정보를 넘긴 것이겠지... 아아, 그렇다면 대충 이야기가 맞아 떨어진다. 비밀리에 돌아간 임무가 왜 적에게 노출되었는지. 제피로스 녀석이 어떻게 모든 사실을 알고있었는지. 전부 맞아 떨어진다.


유니온은 현재, 유니온의 고위 간부들의 재력으로 유지되고 있다. 이 차원전쟁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지금, 유니온에게 있어서 클로저 요원 한명의 목숨보다, 재력을 쥐고있는 고위 간부의 힘이 더 크게 작용할 것이다.


배신자는 분명 죄를 면해주는 대신 더욱 더 큰 자금을 투자할 것을 요구받았겠지... 그는 당연히 그 제안을 받아들였을 것이고, 이미 퍼져버린 소문을 무마시키기위해 정보가 팔려 전멸한 분대들 중에 유일한 생존자인 내가, 버림패로 이용된 것이다.


사실, 반역자는 그 자리에서 즉결 처분이 원칙이나, 일부러 이렇게까지 공개적으로 재판을 하는건 의심을 분산시키기 위해서겠지... 아라는 허탈한 마음에 헛웃음을 뱉어냈다. 그렇게 믿고 따르던 유니온에, 한 때는 자랑스럽다고 생각했던 이 구원단체에 배신감과 함께 모멸감이 동시에 피어올랐다.


"... 여기까집니다. 재판장님."


아라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도, 재판은 계속해서 진행되었다.

결국, 최종판결만을 남겨둔채 모든 것이 마무리되려 하고있었다.


이대로, 블루 로즈는...


...


순간, 블루 로즈 분대원들의 모습이 하나 하나 아라의 뇌리를 스쳐지나갔다. 윤시운 분대장님, 하정석 요원님, 김주한 요원님, 오정현 요원님, 이나리 요원님, 그리고 막내 최미소...


위상력이 각성했단 이유로, 겨우 13살의 나이에 전장으로 끌려왔던 아라에게 있어서 블루 로즈 분대는 가족이나 다름없었다. 그런그들에게, 반역자라는 꼬리표를 달게할 수는 없었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아라는 자신이 해야할 마지막 일을 떠올렸다.


"아...니야... 블루 로즈는 반역자가 아니야."


간신히 터져나오려는 울음을 억누르며, 내뱉은 말이었다.


"피고인, 그런 식의 항변은 무의미..."


"계속하세요."


아라의 말을 자르려는 검사를, 재판관이 막아세운다. 그에 검사는 당황한듯한 표정으로 높은 곳에 앉아있는 재판관을 빤히 올려보았고, 재판관은 괜찮다는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 발언권을 얻은 아라의 입꼬리가 묘하게 말려올라갔다. 그녀는 뜨거운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또박또박 말을 이어나갔다.


"반역자는 단 한명..."


결국 목이 잠겨 입을 다문 아라는, 끅끅 거리면서 울음을 토해내다가, 결의에 찬 눈빛으로 간신히 말을 끝맺었다.


"나 남아라다."





그렇게,


그녀는 자신이 왜 반역자인지 재판관에게 증명을 해야만했다.

어떤 이유에서 그런 짓을 벌였는지, 없는 사실을 만들어가며 증명해야만했다. 아라는 말을 이어가던 중에 구석에서 들리는 웃음소리를 들었다. 웃겨? 그래, 당신이 이 일을 꾸민 주모자로군... 허나, 상관없어... 더 이상 살아갈 이유가 없었다. 더 이상 살고싶지도 않았다. 허나, 그럼에도 모든걸 포기하기 전에 해야될 것.


적어도 인류를 위해서 희생했던 동료들의 죽음을 불명예로 물들이고 싶지 않아.


"그럼, 피고인은 이제와서 이 사실을 밝히는 이유가 뭡니까?"


모든 증언이 끝나고,


재판관이 판결을 내리기 직전에, 아라에게 검사가 물은 대답이었다. 그에 아라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조용히 대답했다. 모든 것을 포기한듯한 차분한 목소리.


"단지... 변덕이야. 그들이 불쌍하게 느껴졌다."



땅- 땅- 땅-


아라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재판이 끝남음을 알리는 울림소리가 실내를 가득 메웠다.


'이제 다 끝났어.'


아라는 점점 거리를 좁혀오는 웅성거리는 소리에 의식을 맡긴채, 조용히 눈을 감았다.





.

.

.








그렇게 차원전쟁이 끝나고




그로부터...






...








오전부터 시원하게 쏟아지는 비 덕에, 한창 햇살이 쏟아져야할 이른 오후에도 어둠이 도시에 짙게 내리깔려 있었다. 그리고 그 어둠 속을 가로지르며 나아가는 검은 승합차. 좌측면에 UNION이라는 문구가 새겨진 그 승합차는 도시를 한참 누비며 달리다가, 곧 외진 풀숲으로 몸을 숨겼다. 그가 모습을 드러낸 것은 약 삼십분이 지난 뒤, 신서울 외진 곳에 자리잡은 위상능력자 교도소 문앞에서였다.


"후, 유니온 양반들이 해야할 일에 왜 우리가 나서야 하는건지."


멈춘 승합차에서, 먼저 발을 내딛은 사내가 투덜거렸다. 그러자 그의 뒤를 따라서 내린 한 여인이 안경을 고쳐쓰며 사내를 힐끗 쳐다보았다. 불만이 가득한듯한 눈빛이다.


"그야, 오늘 만날 위상능력자는 벌쳐스 처리부대에서 관리해야할 요원이 될테니까요."


여인의 말에 남자가 쓴웃음을 지었다. 어련하시겠습니까, 라며 비꼬는 그의 말에도 여인의 표정은 바뀌지않았다. 곧, 미리 기다리고있던 교도소장이 헤실헤실 웃으며 거리를 좁혀왔다. 여인은 그에게 고개를 살짝 숙이며 예를 갖추었고, 반면에 남자는 영 내키지 않는듯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었다.


"그나저나, 그 위상능력자가 대단하긴 한가봅니다? 경호원으로 A급 요원을 셋이나 붙여주고."


"많이 알려지진 않았지만, 그녀도 한 때 S급 위상능력자였으니까요. 비록 위상력 억제 장치에 구속되어 있다곤해도 만일의 경우에도 대비해야죠."


여인의 말에 남자는 짧게 탄성을 질렀다.


"S급이라... 이름이 뭡니까?"


"남아라요. 차원전쟁 당시 최악의 전범자로, 종신형을 선고 받았었죠."


"쯧, 그런 점범자까지 써야될 상황이라니... 최악이군."


여인의 대답에 남자는 침을 꼴깍 삼켰다.

그들은 곧 소장의 안내에 따라서 교도소 안으로 들어섰다.







-------------------------------------------------------------------------------------------------------------






사실 5부작 정도로 나눠쓸 생각이었지만... 단편으로 끝내야 된다는 말도 들리더군요...


덕분에 아라가 늑대개에 들어가게되는 과정과, 그 과정에서 생기는 이야기는 자연스레 생략하기로 하였습니다.


내용과 별개로 사족을 붙이자면, 차원전쟁 도중에 아라는 이름없는 군단의 상륙작전에 의해 부모님을 잃었습니다.


덕분에 자연스럽게 블루 로즈 분대를 가족처럼 여기게 되었고, 분대원 하나 하나에게 애정이 깊어지죠.


이 과정에서, 아라는 있는 줄 몰랐던 자신의 동생이 살아있다는걸 한참 후에 알게되는데 여기서 좀 갈등을 겪는 이야기를


써보려했지만, 너무 길어지면 안보시잖아요a.


뭐, 지금도 충분히 길지만...


아니, 지나치게 긴가 좀...


헤헤, 상관없습니다. 자기 만족이니까요^q^...안그래도 콘테스트와는 상관없이 가끔 게임 내에서 벌쳐스 처리부대에 관해서


이야기가 나올 때, 아! 범죄자 집단이면 차원전쟁 참전자 출신인 전범자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멋대로 상상했던


인물입니다.


그래서 이번 콘테스트를 계기로 혼자 꾸려왔던 망상(?)을 다른 분들께도 보여드리게 되어서 꽤 즐겁게 쓴 것 같습니다.


뭐... 제가 즐겁게 썼다고해서 읽는 분들도 즐거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모두 즐클하세요 ^^7




전... 이제... 차원의 핵... 캐러 가야된다눈고야...


그럼 이만, 안녕!


2024-10-24 22:28:21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