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양의 보충수업
롤링슬비 2015-05-31 2
내 이름은 이세하. 나이는 18살로 현재 신강고등학교 2학년 C반에 재적해있다. 혈액형은 A형이고 키는 174cm에 몸무게 56Kg로 대한민국 평균에 가까운 체격. 취미는 게임. 게임을 엄청 좋아한다. 그리고 특기도 게임. 자랑은 아니지만 게임을 엄청 잘한다. 여기까지는 고등학생 2학년 이세하로써의 프로필. 사실 나는 위상능력자로, 국가차원관리부 특수처리반 <검은양>팀에 소속해있다. 클로저 등록번호는 P37... 음... 아, P3721. 위상력 특성은 가열과 방출. 클로저로써 내가 사용하는 무기는 검과 총이 하나로 합쳐진 <건 블레이드>. 단, 총이라고 해도 총알을 발사한다기 보다는 위상력을 이용해서 열이나 충격파를 총열에 모아 발포하는 느낌이다. 무기가 <건 블레이드>이다보니, 자연스럽게 제이 아저씨와 함께 팀의 최전방에서 근접전투를 벌이는 물리 파워형 전투원으로써 활약하고 있다. 이렇게 말하고 있으면 내가 오랜 시간동안 차원종과 싸워온 베테랑 클로저처럼 느껴지지만, 사실 클로저가 된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하지만 신서울의 강남에 나타났던 A급 차원종 말렉을 상대한것부터 시작해서 (구) 구로역에서 **를 꾸미던 반인반차원종인 칼바크 턱스를 검거하는데 일조, 내가 다니는 신강고등학교에 나타난 진화하는 차원종, 크리자리드 블레스터를 처치하고 차원종들의 군대인 <이름없는 군대>의 참모를 맡고있는 애쉬와 더스트의 계략에 의해 차원종화 되던 유하나를 구출. 유니온 한국지부장과 벌처스 상층부의 **로 깨어난 전 <이름없는군대>의 최강의 군단장, 헤카톤케일을 물리치는데 성공. 결국, 신서울의 강남 상공에 나타난 데미플레인의 주인이자 <이름없는 군대>의 군단장 중 하나이자 제 3위상력을 다루는 아스타로트를 쓰러뜨리는데까지 도달했다. 실로 내 클로저로써의 인생은 파란만장. 하지만 이런 커다란 사건들을 겪으며 나는 무려 정식요원의 위치까지 도달한 것이다! 유니온 상층부의 체면을 위한 빠른 승진이라고는 하지만, 이로써 내 클로저로써의 길은 탄탄대로. 게다가 아스타로트를 쓰러뜨림으로써 신서울을 지킨 영웅이라는 칭호를 획득! 지금도 재해복구지역을 돌아다니다보면, 나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입을 모아서 말한다. ‘신서울의 영웅’이라고. 이렇게 신서울을 구해낸 영웅중의 영웅, 히어로 오브 더 히어로인 나 이.세.하는 지금...
“어. 그러니까, 여기 x값에 여기 식에서 나온 값을 대입하면, 답이 나옵니다.”
“선생님, 저 식 쪽에서 값이 하나가 틀렸는데요.”
“어머? 그런가요? 음... 아 그러네요. 고맙군요, 이슬비요원.”
“아니요, 저희를 위해서 특별히 보충수업까지 해주시는데요. 저희가 감사하죠.”
...방과후에 보충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아니아니아니, 뭔가 아니잖아. 이건 뭔가 아니잖아!
목숨과 목숨을 건 피땀어린 혈투를 벌이고 복귀한 THE 영웅 이세하가 왜 보충수업을 받고 있어야 하냐고!
“이세하. 졸리면 고개숙이지 말고 세수라도 하고 오지 그래?”
내 앞쪽에서 수업을 경청하던 이슬비가 나를 쏘아붙였다.
“존거 아니야... 그저 지금 내가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는지 잠시 생각했을 뿐이지...”
나는 출동 대기실의 탁자 위에 펼쳐진 교과서를 보고 한숨을 쉬며 말했다.
뭐, 왜 이런 상황이 되었는가 생각을 해보면, 어제 저녁의 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내일 세하, 슬비, 유리는 학교에 가렴."
언제나와 같이 재해복구지역 근처의 차원종 잔당들을 소탕하고 온 우리 <검은양>팀에게 관리요원인 김유정 누나가 말했다.
"어라? 갑자기 왠 학교에요?"
차원종 잔당들이라고 해도 여간내기들이 아니다.
이 지역을 담당하고 있는 우리 <검은양>팀이 활동하지 않으면 금세 복구지역으로 쳐들어 올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갑자기 왠 학교.
학교에 또 차원종이 나타났나?
"왠 학교라니... 너희들은 일단은 성인이 아니라 학생의 신분이잖니? 아스타로트도 물리쳤으니 이제 다시 학교에 가서 수업을 들어야지."
"유정언니, 그럼 저희들이 담당하고 있던 이 재해복구지역은요?"
슬비가 내 옆에서 유정누나에게 물었다.
바로 방금 전까지 전투를 하고 왔기 때문인지 조금 피곤한 기색이 역력하다.
"너희들이 학교 가있는 사이에는 다른 클로저들이 와서 너희대신 순찰을 돌꺼야. 데이비드 지부장님이 이 지역에 클로저들을 몇몇 파견한다고 하는구나."
"에에? 정말요? 그럼 저희는 이제 계속 학교가면 되는건가요?"
슬비 옆에 서있던 유리가 눈을 반짝거리며 말했다.
이 녀석 학교 수업에 대한 생각보다는 분명 쉴 생각 가득이다.
"계속 학교에 다닐 수는 없을꺼야. 지금 강남 지하에 벌처스의 상층부가 헤카톤케일의 부품을 들여올때 사용한듯한 장치를 발견했거든. 얼마 안있어서 그쪽으로 파견될꺼야. 그 전까지만 잠시 클로저로써의 일은 쉬렴."
물론 제이씨와 테인이는 계속 순찰해주세요. 하고 대기실의자에 앉아서 노트북으로 바둑을 두고있던 제이아저씨와 그것을 구경하던 테인이에게 말했다.
"자자자, 유정씨. 애들이 학교 가는데 우리도 잠시 데이트를 즐기고 오자고. 내가 근처에 다시 오픈한 건강차 카페를 발견했는데..."
"됐으니까 제이씨는 내일 새벽에 구로일대에 다녀오세요. 그쪽에 또 A급 차원종 마리아 마리아가 발견된 것 같으니까."
제이아저씨의 데이트 신청을 딱 잘라 거부하는 유정누나.
저혈압이라 아침에 일어나기 힘든데...하고 제이아저씨가 탄식한다.
조금 불쌍하다.
"우웅. 저는 학교 안가도 되는건가요?"
미스틸이 자신도 학교 가고 싶다는 티를 슬쩍 낸다.
"미안하구나 테인아. 신강초등학교의 학부모들이 아이들이 걱정된다면서 학교에 보내지 않는다고 하는구나. 등교하는 학생들이 너무 적어서 한동안은 휴교한다고 해. 아쉽지만 내일은 제이씨와 같이 구로일대에 다녀오렴."
우웅...하고 미스틸이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대신이라고 하긴 뭐하지만, 내일은 저도 제이씨와 테인이와 함께 행동해요. 구로일대에 있는 난민들과 다시 접촉해봐야 할 꺼 같거든요."
"그, 그래? 그럼 어쩔 수 없네! 내가 유정씨를 지켜주도록 하지!"
아, 제이아저씨가 다시 살아났다.
밀당의 고수인가. 무서운 유정누나...
"그럼 내일 잘 부탁해요. 엄마!"
"어머머... 테인아 거기서는 엄마가 아니라 누나라고 부르는거야."
우웅. 한국어는 어려워요. 하고 헷갈려하는 테인이.
제이아저씨는 '뭐? 유정씨가 엄마면 아빠는... 혹시...?! 푸핫!'하고 부끄러워 하고 있다.
빨리 안 사귀나 저 바보커플.
"어쨌든 며칠 안되겠지만, 내일부터 다시 학교 생활을 즐기렴. 그래도 호출하면 바로 올 수 있도록 준비는 하고. 오늘은 이만 해산! 정리 잘 하고 나가렴!"
유정누나는 그렇게 말하고 기분 좋은듯이 대기실에서 나갔다.
아까 멀쩡한 편의점을 찾았다고 하던데, 설마 맥주 사러 가시는건가.
"세하야! 슬비야! 내일 학교 기대되지 않아? 야호! 오랜만에 학교 친구들이랑 노래방가야지!"
"유리야. 우린 내일 학교에 공부하러 가는거야. 벌써부터 놀 생각만 하면 안되지!"
"에이이이. 그러지말고 슬비 너도 같이 노래방 가자! 내가 내 친구들 소개시켜줄게!"
한걸음 앞에서 슬비하고 유리가 시끌시끌 떠들며 가고있다.
학교라... 나도 오랜만에 친구들이랑 만나서 게임이나 해야겠다.
그런고로, 오늘 나와 슬비, 유리는 오랜만에 신강고등학교를 갔다 왔다.
각자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서 이야기도 하고 수업도 들으며 학교생활을 즐겼다.
석봉이와 PSP로 대전게임을 하고 우연히 구워왔다는 정미의 수제쿠키를 먹어보기도 하며 지내다보니 어느새 방과 후. 밤이 되면 위험하니까 학교도 일찍 끝난 것 같다.
아직 태양이 머리 위에 떠있지만 나하고 슬비, 유리는 지금 출동대기실로 이동하고 있었다.
"아아아... 친구들이랑 같이 노래방 갈 생각이었는데..."
정말 아쉬운지 시무룩해져 있는 유리.
"나도 PC방 가서 컵라면 내기 할 예정이었다고..."
구로일대에 나가있는 유정누나에게서 방과후에 바로 대기실로 오라는 말을 들은것이다.
준비한게 있다나 뭐라나.
"나도 도서관에 갈 예정이 있었지만, 어쩔 수 없잖아? 준비한게 있다고 하니까."
슬비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으음... 그나저나 대기실로 오라니. 무슨일이지... 뭔가 불안해."
유리가 턱에 손을 갖다대며 말했다.
"야야야. 불안하다니. 유정누나가 설마 우리에게 뭐 이상한 걸 준비 했겠냐."
"그건 그렇지만... 뭐랄까... 여자의 감이 삐빗!하고 위험신호를 보내는 느낌이란 말이지..."
나왔다. 여자의 감.
"수고했다고 파티라도 열려는거 아니야? 구로일대에 갔다는건 거짓말이고 제이아저씨랑 테인이랑 짜서 깜짝파티를 준비했다던지."
"그랬으면 정말 좋겠는데... 그러고보니 언니가 어제 나가면서 정리하고 나가랬지. 평소엔 그 말은 한적이 없는데..."
어, 뭐야.
그 말을 들으니까 조금 기대하게 되잖아.
"정리하고 나가라는건 오늘 우리가 오기전에 빨리 파티 준비를 하기 위한걸까? 에헤헤. 갑자기 기대되는데?"
유리가 서서히 눈을 빛낸다.
"으음. 왠지 나도 조금은 기대되기 시작했어. 이런식으로 쉬는것도 나쁘진 않겠지. 그럼 빨리 가보자, 얘들아."
슬비도 조금 기대되는지 기분 좋은 표정을 지으며 빨리 걷기 시작했다.
나도 왠지 이건 기대할만 하다고 생각했다.
깜짝파티인가.
“후후. 여기서는 예의상 깜짝 놀라줘야겠지. 안그래?”
“그렇지, 그렇지. 그게 예의라는 거겠지.”
“미리 리엑션이라도 준비해 둘까?”
그렇게 김칫국 원샷을 하며 묘한 단합력이 생기는 우리 셋.
그렇게 기대를 가득 품고 대기실에 도착한 우리 셋을 반겨준것은.
"어서오세요. 여러분. 저는 오늘 여러분의 보충수업을 위해 유니온에서 파견나온 선생님입니다. 오늘 하루 잘 부탁해요."
보충수업 선생님이었다.
그리하여 현재.
“이세하요원이 조금 지친거 같으니 잠시 쉬다 할까요?”
유니온에서 우리의 보충수업을 위해 특별히 파견된 선생님이 쓴웃음을 지으며 대기실에서 나간다. 휴, 쉬는 시간인가.
“너 때문에 잘 되던 수업이 끊겼잖아. 모처럼 우리를 가르쳐주러 오신 선생님에게 죄송하지도 않아?”
슬비가 나를 째려본다.
흥, 째려봐도 하나도 안 무섭다.
“아니, 그래도 우린 일단 이 신서울을 구해낸 <검은양>팀이잖아. 어째서 우리가 고등학교 과정 수업의 보충을 듣고 있어야 하는거냐고. 클로저로써 우리 차원으로 침공해온 차원종을 쓰러뜨리는게 우리의 일 아니야?”
“그야 우리는 클로저지만, 동시에 고등학생이잖아. 학생이라고. 학생의 본분은 공부인거라고 어제 유정언니도 말하셨잖아.”
이런 만화속에서나 나올법한 모범생을 봤나.
“우리는 차원종들을 상대하느라 수업을 많이 빼먹었잖아. 그래서 유정언니가 일부러 유니온 상층부에 부탁해서 보충 수업 선생님을 불러오셨고. 유정언니가 우리들을 위해 준비한 보충수업인데 뭐가 그렇게 불만이 많아. 그리고 생각해보면 얼마 안 있으면 중간고사가 있어. 중간고사를 대비하기 위해 공부를 하는게 뭐가 이상해.”
슬비의 잔소리가 따발총처럼 내게 쏟아진다. 이래서 모범생이란!
아까까지 느끼던 깜짝파티에 대한 기대로 뭉친 단합력은 어디갔지...
슬비의 잔소리에 순간 귀를 막고 싶었지만 그런 행동까지 하면 이 귀찮은 모범생 리더는 정말 화낼꺼 같다.
안그래도 요즘 슬비녀석 잔소리가 조금 늘었는데 이 이상 들으면 귀에 딱지가 질것만 같다.
잔소리를 더 이상 듣는 것도 싫으니, 자연스럽게 화제를 바꿔야겠다.
“어, 어쨌든 보충선생님도 일단 쉬는 시간이라고 하셨잖아. 그럼 쉬어야지. 안 그래? 나는 이제부터 쉴 꺼니까 저리로 가셔.”
쉭쉭 손을 까딱이는 나를 보고 슬비는 불만인 듯 햄스터처럼 뺨을 부풀렸다.
...조금 귀엽다.
부풀린 볼을 손가락으로 콕 누르고 싶다.
“...좋아. 쉬는 시간이라고 하셨으니까. 이제 아까까지 배운 내용을 복습해야지.”
“...예?”
어이없는 말에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존댓말.
“쉬는 시간이란 것은 방금 전까지 배운 내용을 간단하게 복습하고, 다음 수업에 방해되지 않도록 용변을 보고 오는 시간이야. 주머니에서 게임기 꺼낼 생각도 하지마.”
“......”
어이가 없어서 망연자실하게 슬비를 바라보는 나.
“...아니, 아니아니아니 그건 아니지. 무슨 쉬는 시간이 그래? 그게 쉬는 시간이냐?”
“쉬는 시간은 원래 그런거야. 봐봐. 유리도 저쪽에서 복습하고 있잖아.”
슬비가 가리킨 곳에서 유리가 의자에 앉아 펜을 들고 교과서를 바라보고 있다.
공부할 때는 안경을 쓰는 건지, 검은색 뿔테안경을 끼고 있다.
“말도안돼... 쓸데없이 성실한 슬비라면 모를까 육체파 유리마저...”
“잠깐. 지금 뭐라고 했어? 쓸데없이 성실한?”
앞에서 슬비가 뭐라고 하는거 같았지만 나는 쉬는 시간에 유리가 공부한다는 충격적인 상황을 접해서 전혀 들리지 않았다.
그나저나 진짜 의외네. 내가 알기로는 위상력을 각성하기 전에도 두뇌보다는 육체를 쓴다는 이미지였는데...
학교 수업 빠지고 검도대회 나갔던 검도소녀 아니었냐고.
“...음?”
그렇게 멍하니 유리를 바라보던 나는 한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
유리가 움직이지 않는다.
펜을 들고 고개를 숙여 교과서를 들고 있는 상태에서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
“...어이, 설마...”
앞에서 쫑알쫑알 설교하려는 슬비를 놔두고 자리에서 일어나서 유리 옆으로 간다.
그리고 고개를 숙여 유심히 유리의 얼굴을 본다.
“......”
나는 그 상태에서 조용히 손짓으로 슬비를 불렀다.
“뭐 하는거야?”
자신의 말을 무시하는 나에게 조금 화난것 같기도 했지만 내 행동에 슬비가 유리 옆으로 쪼르르 다가왔다.
“...쉿.”
나는 손가락을 입술에 갖다 대서 조용히 하라는 제스쳐를 하고 손가락으로 유리 얼굴을 가리켰다.
슬비는 내 말에 따라 유리 얼굴을 보았다.
“...하아. 유리야...”
한숨을 쉬며 유리의 어깨에 손을 올리는 슬비.
그러자 유리의 어깨가 들썩하더니 유리가 머리를 들었다.
“히익?! 안 잤어. 공부하고 있었습니닷!”
그럼 입가의 침이나 닦아라.
“유리야. 웃긴 안경 쓰고 뭐 하는거야...”
슬비는 어이없다는 듯이 헛웃음을 한번 내쉬고 유리가 쓰고있는 웃긴 안경을 벗겨냈다.
이거 박심현 요원님이 우리한테 선물해준 그 안경이잖아...
“아아, 내 공부시간 머스트 헤브 아이템이...”
웃긴 안경을 벗겨내자, 조느라 충혈된 유리의 눈이 등장.
유리는 울상을 지으며 슬비에게 웃긴 안경을 돌려받으려고 달라붙었다.
...그나저나 저런 방법이 있었다니.
생각보다 머리 좀 쓴다. 서유리.
“유리야. 너 설마 보충수업시간에도 그렇게 졸고 있었니?”
“에헤헤... 어제 순찰 돌고 오니까 조금 피곤해서...”
슬비의 가벼운 힐난에 유리는 미안한 듯이 뒤통수를 긁으며 변명했다.
“그래도 그렇지. 보충수업시간에는 졸지 말고 집중해야지. 졸면 일부러 시간 내서 와주신 선생님께 죄송하잖아.”
“에헤헤...”
좋아. 슬비의 표적이 유리에게로 넘어갔다.
나는 조용히 내 의자에 앉아 주머니 속에서 PSP를...
“거기 스톱. 세하 너는 얌전히 복습하고 있어.”
내 주머니에서 PSP가 저절로 꺼내지더니 대기실 천장으로 올라갔다.
원망섞인 표정으로 슬비를 바라보니 슬비가 PSP를 염력으로 조종하고 있었다.
“게임은 이따가 퇴근 한 뒤에 해. 지금은 일단 공부에 집중하는게 좋아.”
“...으”
게임을 방해하는 것에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지만 나는 일단 펜을 집었다.
슬비 말마따나 중간고사가 멀지 않았다.
중간고사를 망치게 되면 분명 엄마가 가만히 있지 않으리라.
내가 위상력을 완전히 각성했으니까 이젠 봐주지 않고 과거 ‘차원종의 재앙’, ‘대량살상 마녀’ ‘알파 퀸’으로 불리던 위상력을 이용해서 내게 매타작을 할꺼다.
...공부하자.
나는 불만 가득한 마음으로 눈앞의 교과서를 바라보았다.
슬비도 내 PSP를 대기실 구석에 있는 선반으로 옮기고 자기 자리에 앉아 공부를 시작했다.
유리가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슬비가 잠에서 깨기위해 세수하고 오라며 화장실로 쫒아낸듯 하다.
“......”
"......"
대기실에 잠시 동안 침묵이 흘렀다.
내 눈은 교과서를 보고 있었지만 게임을 못하게 된 이 불만스런 상황에서 공부가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그저 내가 보고 있는 광경은 까만 것은 글씨요 하얀 것은 종이.
으으. 빨리 L○L이나 아이○스 하고싶다... 아, 요즘 바빠서 클○저스 못하고 있네... 서클 탈퇴 되어있는건 아니겠지... 석봉이랑 컵라면 내기 스○크래○트2 해야하는데...
이런식으로 잡생각 FULL모드인 나는 문득 눈앞에서 공부하고 있는 슬비를 보았다.
“...?”
뭔가 이상하다.
“야, 슬비. 네 책 뭐가 이렇게 두껍냐.”
내가 펼쳐놓은 교과서를 3번정도 겹쳐놓은듯한 두께의 책을 읽고 있는 슬비.
“응? 이거 차원종 대백과인데?”
“...예?”
무심코 다시 튀어나온 존댓말.
"차원종 대백과사전이라고."
슬비가 책의 표지를 내게 보여준다.
책의 표지에는 큼지막하게 '차원종 대백과사전'이라고 적혀있었다.
"야... 차원종 대백과사전이라니... 이런 무시무시한 책을 왜 보는건데...?"
“무시무시한 책이라니... 읽으면 차원종들과의 전투에 도움이 될까 하고 생각해서 며칠 전부터 공부하고 있어.”
“공부를 하고있어?! 그냥 흥미...로도 보기는 좀 그렇지만, 그걸 공부하고 있다고?”
이런걸 보는 사람이 있나.
내가 알기론 박심원 요원님 정도나 보려나.
"여기에는 현재까지 확인된 거의 대부분의 차원종들에 대한 설명들이 나와 있으니까. 생태, 특징, 공격방식과 약점등 다양한 정보들이 실려있어."
슬비는 다시 책을 탁**에 펼치고 옆의 노트에 메모해가며 공부를 시작했다.
"차원종들과 싸우면 싸울수록 내 힘이 아직 많이 부족하다는걸 느끼고 있어. 내 위상력은 기껏해야 B+라고. 단순히 위상력을 컨트롤하는 능력만으로는 언젠간 한계에 다다를꺼야. 그러니까 이런 지식으로 어떻게든 커버해야해."
"...너."
슬비녀석...
데미플레인으로 진입했을때를 생각하는건가.
아스타로트를 만나기 전까지는 어떻게든 낮은 위상력으로도 차원종들을 잘 상대해 왔지만, 아스타로트가 있는 용의 궁전쪽에 있는 차원종들은 역시 급이 다른지 슬비의 공격이 잘 통하지 않는 느낌을 받기도 했지만...
그 후에 설마 이런 식으로 노력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하지만 최근에 너 재해복구지역 순찰 다녀오느라 이런 공부 할 시간은 없었을꺼 아냐. 데체 언제 한거야."
"그야 당연히 퇴근하고 나서지."
슬비가 당연하다는듯이 말했다.
...어이. 퇴근하고 나서라니.
요즘에는 퇴근한 뒤엔 나도 피곤해서 PC게임을 졸면서 하다가 잠드는데.
"너... 무리하고 있는거 아니야? 퇴근하고 난 뒤에는 피곤할꺼 아냐. 좀 쉬라고."
"쉴 시간은 없어."
슬비가 딱 잘라 말했다.
"원래부터 위상력 랭크가 높은 너하고 테인이는 앞으로도 계속 강해질 수 있어. 유리도 클로저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벌써 이정도로 싸울 수 있다면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훨씬 강해지겠지. 제이아저씨도 내가 알기로는 원래 위상력은 우리와는 비교도 안될정도로 높다고 해. 전** 시절만큼은 아니더라도 제이아저씨는 꾸준히 위상호흡법으로 강해질꺼라고."
이대로라면, 나만 약한상태로 남게돼.
그렇게, 슬비가 조그맣게 말한 듯한 느낌을 받았다.
슬비의 얼굴이 조금 어두워졌다.
하지만 곧 애써 웃으며 내게 말했다.
"그러니까 리더로써 팀원들에게 뒤처지지 않도록 열심히 노력하는거야. 이 정도는 무리라고 할 순 없지. 차원전쟁 당시에는 훨씬 많은 사람들이 나보다도 더 노력했는걸."
어깨를 으쓱이며 슬비가 말했다.
"무슨... 야, 그래도 쉴 때는 쉬어야지. 그러다가 쓰러지면 어쩌려고 그래."
"이정도로 쓰러질 리가 없잖아. 난 신서울을 지켜낸 <검은양> 팀의 리더니까."
슬비가 여전히 웃는 얼굴로 말했다.
“나는 이 <검은양> 팀의 리더야. 난 이 점을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어. 그러니까 나는 검은양 팀의 리더에 걸맞는 힘을 얻기위해 노력하고 있을 뿐이라고. 언젠가 모두들 <검은양> 팀의 리더로 인정하는 클로저가 되어는게 목표야. 그러니까 조금씩 더 노력하는 것 뿐이야.”
슬비가 말을 이어간다.
슬비의 말이 거슬린다.
“뭐, 물론 아직 부족한 점이 많긴 하지만 팀의 리더로써 약한 소리를 할 순 없지. 앞으로 더 노력할꺼야. 이정도로는 무리라고 말할 수도 없는걸. <검은양>팀의 리더라는 직함에 걸맞을 때까지 나는 노력을 멈추지 않겠...”
“...아니야.”
나는, 그런 슬비의 말을 끊었다.
더 이상 듣고만 있을 순 없었다.
그리고 자신의 말이 끊겨서 당황한 슬비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건 노력이 아니야. 무리라고 하는거야."
"무슨 소리야. 아까도 말했듯이 이 정도는 무리의 축에도 끼지 않..."
"그게 아니라고!"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내가 소리치자 슬비가 당황했는지 굳었다.
"네가 하고 있는건 노력이 아니야! 넌 그저 무리하고 있을 뿐이라고!"
팀의 리더로써? 우리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해?
무리의 축에도 끼지 않는다고?
말도안돼.
"왜 그렇게 무리하고 있는거야. 뭐 때문에 그렇게 필사적인건데!"
데체 뭐가 너를 그렇게 몰아세우고 있는건데.
슬비는 곧 회복하고 내 말에 지지않고 말했다.
"말했잖아. 내가 아직 많이 부족한걸 느꼈을 뿐이라고. 내가 앞으로 나아가겠다는데 그거 갖고 왜 그렇게 화를 내는거야! 그리고 아까도 말했듯이 차원전쟁때에 비하면 이정돈 무리도 아니잖아!"
"그야 화를 내지! 전에는 무리하지는 않았으면서 갑자기 무리해서라도 강해지려고 하려고 하니까 걱정되잖아!"
슬비는 내 말에 잠시 주춤했지만, 곧 다시 말했다.
"난 그저 아스타로트를 상대 했을때 내가 왜 클로저가 되려고 했었는지를 생각해낸 것 뿐이야! 그리고 내 원래 목표를 떠올렸기 때문에 더 강해지려고 하는거고!"
슬비도 서서히 격양 되었는지 소리치기 시작했다.
"내 원래 목표는 차원종들의 말살이었어. 그런데 아스타로트를 상대해보니 차원종들이 내 생각보다 강하다는걸 알게 된거라고! 그래서 난 강해지고 싶은거야! 언젠가, 차원종 전부를 말살하기 위해서! 그래서 노력하고 있는거라고!"
...뭐? 차원종의 말살?
그런 바보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거야?
"부모님이 내 눈앞에서 차원종들에게 살해당할때부터 생각하고 각오한거야! 언젠가! 차원종 전부를 말살하겠어! 내가 부모님을 살해한 나쁜 차원종들을 전부! 전부! 전부! 없애버리겠다고!"
슬비가 이성을 잃고 소리쳤다.
"그러기 위해선 난 강해질꺼야! 모든 차원종을 없애기 위해서 난 강해질 꺼라고! 내 몸이 으스러지더라도! 내 정신이 한계에 다다르더라도! 나는 차원종들을...!"
"헛소리 하지마 이 멍청아!!!!!"
더 이상은 못참아.
"듣자듣자 하니까. 뭐? 차원종의 말살? 부모님의 원수? 너는 그런 얘가 아니잖아!"
내 말에 슬비도 반박하며 소리친다.
"이세하! 네가 나에 대해서 뭘 안다고 그렇게 말하는 건데!"
"그래! 난 사실 너에 대해서 잘 몰라!"
난 당당하게 말했다.
"네가 어떤 과거를 가지고 있는지! 네가 차원종과 싸울때 어떤 생각으로 싸우는지! 네가 지금 어떤 각오로 <검은양> 팀의 리더로 있는건지 하나도 몰라!"
"그럼 네가 뭘 믿고 나한테 큰소리야!"
"그래도 알고 있는것 또한 있으니까!"
이번에는, 슬비가 당황한듯 굳어졌다.
"하루를 시작할때는 모두 힘내자고 말해주는 너를 알고있어! 작전 내용을 완벽하게 알아두기위해 일일이 필기하는 너를 알고있어! 전투가 끝나면 자신의 상처보다 팀원의 상처를 먼저 살펴주는 너를 알고있어!"
그런 너를, 알고있어.
"클로저로써의 이슬비 뿐만 아니라 신강고등학교 2학년 이슬비도 알고있어! 평소에는 쓸데없이 진지하다가도 드라마 관련 이야기만 나오면 정신을 못 차리는 너를 알고있어! 단거 하나도 안 좋아할것만 같은 성격인데도 와플은 제일 단맛으로 시키는 너를 알고있어! 대기실에서 유리가 꾸벅꾸벅 졸 때 한숨을 쉬면서도 모포를 덮어주는 너를 알고있어!"
이런 너 또한, 알고있어.
그리고 무엇보다.
그런 세세한것에서 묻어나오는 네 샹냥함을 알고 있어.
"그러니까 그렇게 말하지마. 마치 우리가 남이라도 되는 것 처럼 말하지마."
우리를 밀어내려 하지마. 서운하잖아.
우리 빼고 혼자서 무리하려고 하지마. 걱정되잖아.
"...하, 하지만."
슬비는 내 말을 듣고 힘겹게 입을 떼었다.
목소리에 조금 떨림이 느껴진다.
"나, 나는 <검은양>팀의 리더잖아. 우리 팀을 대표하는 사람이야. 내가 노력하지 않으면..."
"바보."
나는 손날로 슬비의 머리를 가볍게 톡 쳤다.
맞은 자신의 머리를 감싸고 놀라는 슬비를 보며 말했다.
"그렇게 부담가질 필요는 없어. 책임감을 느낄 필요는 더더욱 없고. 솔직하게 말해줘."
아까부터 슬비를 보며 생각했다.
사실은 무서운게 아닐까. 사실은 힘든게 아닐까. 사실은 포기하고 싶은게 아닐까.
사실은. 무리하고 있는게 아닐까.
"우리에게 불평해도 돼. 우리에게 화풀이 해도 돼. 그러니까."
힘들면 쉬어도 돼.
무서우면 떨어도 돼.
울고 싶을 때는 울어도 돼.
“혼자서 무리하지 말아줘.”
힘들면 쉬어도 돼.
내가 네가 쉬는 동안 대신할게.
무서우면 떨어도 돼.
내가 진정될때까지 곁에 있어줄게.
울고 싶을 때는 울어도 돼.
내가 그 눈물을 닦아줄게.
“우리는, 같은 팀이니까. 그러니까,”
같이 노력 하자.
라는 말은 필요 없겠지.
분명, 슬비도 말하지 않은 뒷 말은 이해 했을거다.
“......”
슬비는 그 말을 조용히 듣더니,
“...어, 어라?”
당황한듯이 자신의 눈을 닦았다.
“왜, 왜 눈물이...?”
슬비는 당황한듯이 재빨리 눈물을 소매로 훔쳤다.
하지만 슬비의 눈물은 멈추지 않고 점점 더 흘러내렸다.
“...바보야.”
나는 어쩔 줄 몰라하는 슬비에게 다가갔다.
“말 한지 얼마나 됬다고 바로 닦아줄 때가 오냐.”
나는 요원복 상의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슬비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세하야...”
점점 더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서서히 울먹이는 슬비의 눈물을 닦아주며 생각했다.
바보.
역시 무리하고 있었잖아.
"부모님이 눈앞에서 돌아가시는걸 보며 생각한건... 차원종에 대한 증오나 반발심이 아니라 공포였어... 눈앞에서 소중한 사람이 사라지는 공포... 이 끔찍한 기분을 다른 사람들에게 느끼게 하고 싶지 않았어... 그래서 사람들을 지키려고 노력했는데... 끊임없이 노력했는데... 그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희생되니까... 팀원들은 나보다 다들 대단한 사람들인데... 날 믿고 움직이고 있을텐데... 나 때문에 팀원들이 실력발휘를 제대로 못할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자신이 없어져서... 내가 사람들을 지킨다는건 처음부터 무리었다고 생각하니까 조급해져서..."
말을 끝까지 잇지 못하고 본격적으로 손으로 얼굴을 가린 슬비를 보았다.
아까까지만 해도 그렇게 제멋대로고 드세던 슬비가.
왜 이렇게.
작아보일까.
나는 조금씩 오열하고 있는 슬비를 천천히, 조심스럽게, 살며시 안았다.
그 몸은 깜짝 놀랄정도로 너무나도 가냘퍼서, 힘을 주면 깨져버릴까봐 조심스레 토닥여주었다.
괜찮아.
넌 혼자가 아니야.
내가 여기 있으니까.
지금은 마음껏 울어.
마음껏 울고, 후련해질 때까지 울고.
내일부터 함께 노력하자.
“...저기, 이제 들어가도 되니...?”
슬비가 진정할때까지 토닥이고 있던 나는 그 목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슬비쪽도 그 목소리에 놀랐는지 어깨를 들썩이며 나를 밀쳐냈다.
내가 당황해서 문 쪽을 바라보니 문이 조금 열리고, 문틈으로 보이는건...
“아이참, 선생님! 이렇게 분위기 좋을 때 왜 말을 꺼내요!”
보충선생님과 유리였다.
“아아아아니, 이이이이이이건!”
내가 당황해서 말을 더듬으면서 설명하려고 했다.
그런데 잠깐. 냉정하게 생각해보니 이거 상당히...
“으으으으으....!”
슬비가 빨개진 얼굴로 고개를 푹 숙였다.
나도 슬비의 모습을 보고 고개를 돌려서 확 익어버린 얼굴을 식히려고 애썼다.
으아아아아!!! 생각해보니 이거 완전 오글거려!
뭐가 곁에 있어 줄께냐! 뭐가 닦아 줄께냐!
으아아아아아아!!!!!!!!
설마 내가 이런 오글거리는 말을 하게 될 줄이야!
내가 열심히 내 뇌에서 오글거리는 대사를 지우려고 할때,
“‘무리하지 않아도 돼.’”
끄아아아아아아아아!!!!!
유리가 내 흉내를 냈다!!!!
“야! 서유리 너!”
“헹~ 슬비야~ 힘들면 말해줘~ 나도 꼭 껴안아 줄게~”
잘 익은 사과처럼 빨갛게 익어버린 슬비에게 유리가 다가가서 꼭 껴안았다.
“우아우아우아우아우아”
...<검은양>팀 리더는 아직도 패닉인 듯 하다.
“좋아! 오늘은 친목을 위한 검은양팀 회식이다! 유정언니한테 회식 제안하러 가야지~”
유리는 부비부비하던 슬비를 품에서 놓고 신이나서 외치고는 대기실에서 빠져나갔다.
다시 대기실에 슬비와 나 둘만 남았다.
“......”
“......”
...어색하다.
아니, 상당히 부끄럽다.
그런 말을 한 1분전의 나를 말리고싶다.
누가 내 손발 좀 펴줘.
“...으흠.”
어색함을 깬건 슬비쪽이었다.
아무래도 패닉에서는 벗어난 것 같다.
“...세하...야.”
“응?! 응! 왜, 왜 슬비야!”
당황해서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이상하게 나온건 넘어갑시다.
“...그 ...내일부터 자, 잘 부탁해.”
슬비가 다시 얼굴이 조금 빨개지며 말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마음속으로 심호흡을 한 뒤, 웃으며 말했다.
“그래! 맏겨만 줘!”
그 말을 들은 슬비도 날 향해 웃었다.
그 웃음은 내가 본 슬비의 어떤 웃음보다 밝았다고 생각한다.
-검은양의 보충수업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