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세하의 위상력 -10-

이케아라 2015-05-30 7

유니온 본부에 대적하는 반 유니온 테러조직은 이렇다 할 정보라곤 조금도 발견하지 못한 폐쇄적인 조직이다.
그들이 직접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도 데미플레인이 격퇴된 강남에서 밖에 없었고, 그나마 확인된 정보라곤 차원종을 소환하는 장치를 대량으로 생산, 복제해서 미국 전역에 뿌리고 있다는 것 정도다.
그런 테러조직 때문에 얼떨결에 미국으로 끌려와 그들이 벌인 행위의 뒤치다꺼리를 하고 있던 검은 양 팀은 본부에서 임시로 정해준 대기실에서 대화를 나누는 중 이었다.


"왜 테러조직을 잡는데 순순히 협조한 거죠 제이씨? 이중에서 가장 유니온에 대한 반감이 크신 분이시니까 당장 거절 하실 줄 알았는데..."


제임스의 언변 때문에 타국의 방위임무를 수락 당해버린 슬비가 의아한 표정으로 질문했다.
자신은 미숙했기 때문에 팀의 임무를 멋대로 바꾸게 돼버렸지만, 백전노장이나 다름없는 베테랑 요원인 제이가 자신과 같은 실수를 저질렀다고 생각되진 않는다. 그렇다면 그는 무언가 의도를 가졌기 때문에 순순히 테러조직을 잡는데 협조했을 것이다. 그런 생각으로 질문을 한 슬비를 보고 제이가 역으로 질문을 던졌다.


"대장. 그리고 유정씨. 미안하지만 이 방에 도청기가 설치되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 확인해줄 수있겠어?"


"예...?"


"지금부터 내가 할 말은 유니온이 들어봤자 좋을게 하나도 없는 내용이거든."


"아... 알았어요. 도청기같은게 설치되 있나 탐색해볼게요."


경박해보이는 노란 선글라스를 반쯤 벗고 그렇게 말한 제이를 보고 김유정이 당황한 표정으로 주머니에 있는 전자 탐지기를 꺼냈다. 그녀가 꺼낸 전자 탐지기는 자신들이 위치해 있는 곳에 전자기기들을 화면에 표시해 주는 편리한 기능을 지닌 도구이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대기실에 있는 전자기기를 찾아볼 수있었다.
순식간에 검색을 마친 김유정이 안심한 표정으로 제이에게 말했다.


"이곳에 있는 전자기기는 저희들이 가지고 있는 핸드폰과 슬비의 노트북 정도에요. 천장에 걸려있는 감시카메라도 없고, 그 외에 이 방에 정보를 외부로 전송할만한 장치는 없는것 같아요."


"그렇다면 정말 다행이군."


제이도 드물게 안심한 표정을 지으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지금까지 계속 못미더운 모습을 보였던 제이가 도청기의 유무까지 의심할 정도로 심각한 말을 할 거라고 생각한 슬비가 긴장한 표정을 짓자, 제이가 가벼운 말투로 슬비에게 질문을 던졌다.


"대장. 이번에 미국에 와서 유니온이 어떤 조직이 란걸 알게됐지?"


"신용할 수없는 조직이라는 거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한 슬비의 얼굴은 귀기어린 형상을 띄고 있었다.
자신의 리더로써의 미숙함을 이용해 팀에 불이익을 가하게한 유니온의 고위 클로저를 만나고 난 뒤로 그녀의 유니온에 대한 가치관이 더 나쁜 방향으로 진화했나보다.
슬비의 표정을 본 제이가 쓴웃음을 지으며 다시 질문했다.


"맞아. 그럼 그렇게 신용할 수없는 조직이 테러조직을 잡기 위해 정직하게 움직여줄까?"


"그게 무슨...?"


아무리 유니온이 못미더운 조직이라고 해도 자신들이 살고 있는 나라에 차원종을 풀어놓고 있는 테러조직을 잡지 않을 리가 없다.
슬비를 비롯한 유리, 미스틸, 유정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들의 생각을 부정하듯 제이가 그동안 미국에서 일어난 일들을 입에 담았다.


"혼자서 미국으로 왔던 세하는 테러리스트들 때문에 소환된 키텐에게 습격을 받아 병원에 입원했고, 몇일 뒤엔 우리가 공항에 들어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차원종이 쳐들어왔지.  유니온은 그걸 빌미로 삼아 우리에게 차원종들의 처리를 부탁했고 말이야... 위상력 억제기가 넘쳐나는 미국에서 테러리스들이 좀 설친다고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미국의 위상력 억제기가 가진 성능과 그런 억제기를 지키고 있는 경비력은 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을 정도로 유명하다.
그런 대단한 장점을 지닌 미국이 한낱 무장단체들의 행패 때문에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할 정도로 약하진 않을 터.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전국에 있는 위상력 억제기를 지키지 못했다.
제이의 지적을 들은 슬비가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 말은 설마..."


"이건 내 억측에 지나지 않지만, 유니온과 반유니온 테러조직은 협력관계에 놓여있는것 같아."


제이의 말이 끝나자마자 대기실에 있는 모두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유니온과 테러조직은 서로에게 위협적인 집단인데 그들이 협력을 하고 있다는건 이번 사태가 두 집단의 자작극이라는 말이 되니까 말이다.


"하...하지만 제이씨. 유니온이 테러조직과 손을 잡을리가..."


"유정씨. 강남의 전(前)지부장과 벌처스가 헤카톤케일을 불러들인 이유가 뭔지 기억하고 있어?"


제이의 말을 부정하려 했던 김유정이 그 말을 듣고 순순히 기억을 떠올리며 대답했다.


"아...예. 강남을 난장판으로 만든 헤카톤케일을 자신들이 쓰러트려서 클로저의 권위를 향상시킨다는 계획이었죠... 정작 헤카톤케일을 소환한 것도 그들이었지만."


민간인이 클로저를 필요로해지는 상황을 연출한 다음, 자신들이 혼란의 원흉인 헤카톤케일을 처치해서 클로저의 사회적 지휘를 향상시킨다. 이 사건은 전(前)지부장과 벌처스의 연극에 불과했지만 한번있던 일이 두번다시 없을거란 법은 없다.
그런 생각을 차원전쟁시절부터 몸으로 체득한 제이가 비수를 박듯이 말했다.


"그렇다면 이번에 테러조직이 소동을 벌인 것도 유니온에서 준비한 자작극일 수도 있어."


제이의 말을 들은 검은양 팀은 입술을 꾹 깨물면서도 딱잘라 부정의 말을 내뱉을 수가 없었다.
비록 그가 한 말이 억측에 불과한 가설일 지라도 자신들이 신서울에서 겪은 경험과 미국에 출현한 차원종이 제이의 말에 신빙성을 가져다주고 있었다. 심각한 표정으로 사색에 잠긴 팀원들을 바라보며 제이가 말했다.


"물론 이건 내가 만든 가설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확정지을순 없어. 그래서 테러조직을 잡는 것에 순순히 협력을 한 거야. 이번에도 '부탁'이란 말로 우리들을 부려먹을 정도로 유니온은 바보가 아니니까 분명 우리가 부탁을 거절할것이라고 생각했겠지. 그렇다면 의표를 찔러서 우리가 직접 테러조직과 만나 유니온과 그들의 관계를 밝혀내는 수밖에 없어."


"하지만... 너무 무모해요. 아무리 위상력을 지닌 클로저라고 해도 적은 차원종 소환 장치를 지닌 무장집단이라고요! 게다가 유니온에서 저희들이 참전한다는 소식을 접했을 테니 무슨 짓을 꾸밀지 알 수도 없고...!"


김유정의 절박한 외침에 슬비와 유리, 미스틸도 굳은 표정을 지으며 긍정했다.
비록 검은 양 프로젝트를 전면적으로 반대했던 전(前)지부장이 없어졌다고 해도 유니온엔 검은양 팀을 싫어하는 고위급 임원들도 아직 많고, 정말로 제이의 가설이 딱 맞아 떨어진다면 함정을 조사하러갔다가 되려 함정에 빠질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런 팀원들의 걱정을 잠재우듯 제이가 부드러운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런 정치적인 부분 때문이라면 걱정할 것 없어 유정씨. 울프팩 팀이 차원전쟁시절부터 난리를 피우고 다녔을 때 그걸 수습해준 믿음직한 전직 관리요원이 한명 계시거든."


"...?"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아해하는 김유정을 내버려두고 제이는 오랜만에 지어보는 후련한 기분으로 한 인물을 떠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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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저가 차원종과 전투를 치를때 승부의 승패를 결정짓는 요소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는 차원종에게 타격을 가할 수 있는 위상력. 그리고 두 번째는 자신보다 압도적으로 높은 신체스펙을 지닌 차원종의 공격을 회피할 수 있는 반사신경이다.
인간이 아무리 대단한 무기를 지녔다고 해도 그걸 활용할 수 없으면 길가에 떠돌아다니는 개한테도 당하는 것 처럼, 클로저가 아무리 대단한 양의 위상력을 몸에 담고 있어도 차원종의 공격을 한대라도 허용했다간 치명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래서 클로저들은 자신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차원종의 신체능력과 맞서 싸울 수있도록 극한의 반사신경훈련을 치루고 있는 것이다.


"흡...! 윽...!"


빠른 속도로 날아오는 탄환이 세하의 눈가를 스쳐 지나갔다.
평소 애지중지하던 게임기도 손에 놓은 채 훈련실에 틀어박힌 세하는 위상력의 치료가 끝날때까지 조금이라도 실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날아오는 공격을 피할 수 있을 회피력을 기르는 중이었다.
이미 공격력으론 검은양 팀뿐만 아니라 모든 클로저들과 비교를 해도 최상위권 안에 들 테니 방어력과 회피력을 키우는 게 가장 좋은 선택일 것이라고 오세린과 다니엘이 추천했기 때문에 이렇게 빠른 속도로 날아오는 탄환을 피하고 있는 중이었던 것이다.


"으왁!"


아무리 사람의 반사신경이 뛰어나다고 해도 총알만큼 작은데다가 시속 100km이상의 속도로 날아오는 탄환을 포착하는건 무리다. 하지만 위상력에 각성한 사람이라면 일반인의 범주에 취급할 수없나본지 세하는 연속해서 날아오는 공격을 나름대로 능숙하게 회피할 수 있었다.


'새삼 내가 인간이 아닌게 실감되는걸...'


이미 인외의 전투를 수없이 경험한 주제에 새삼스럽게 자신의 능력을 깨우친 세하가 씁쓸한 표정으로 생각했다.
일반인이라면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날아오는 공격을 반사신경에 의존해서 회피하고, 무기를 한번 휘두르는것 만으로 군대에서 사용하는 대포 이상의 위력을 자아내는 능력자.
이것을 정말 인간이라고 정의해도 되는걸까...
힘들게 훈련을 하고 있으면서도 그런 무거운 방향으로 고민에 빠지기 시작한 세하는 천장에서 울려퍼지는 사이렌 소리를 듣고 정신을 차렸다.


「삐────!!!!!!」


시간종료를 알리는 요란한 전자음이 훈련실을 가득 매우자 세하는 이제야 한숨 좀 돌릴 수 있겠다는 표정으로 바로 자리에 주저앉아 숨을 몰아쉬었다.
고도의 집중력을 필요로하는 훈련을 하면서 쓸데없는 잡생각에 빠졌던 데다가, 세하또래의 고등학생은 간단한 운동인 줄넘기를 10분만해도 지쳐 쓰러지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세하는 클로저의 신체능력만 믿고 줄넘기와는 비교도 안돼는 훈련을 1시간동안 했으니 지쳐쓰러지는게 아니라 온몸의 근육이 실시간으로 비명을 지르는듯한 기분이었다.


"아... 머리야...!"


숨을 쉴 때마다 피를 마시는 듯한 착각이 들고, 얼굴에 있는 모든 안면근육이 춤을 추듯 경련했다.
고통을 호소하는 것 조차 하기 싫어질 정도로 인상을 찌푸린 세하가 어느 정도 숨을 골라 호흡을 안정화 시킨 뒤, 근처에 있는 음료수를 집어 들어 입에 넣기 직전에...


"여~ 동생! 우리왔어!"


평소엔 병약하고 힘 빠지는 목소리를 가진 주제에 이번만큼은 활발하게 들리는 듯한 제이의 목소리가 세하의 심장을 놀래 켰다.

하지만 세하가 괴로워하건 말건 제이를 비롯한 갑작스러운 불청객인 검은양 팀의 멤버들은 놀란 표정으로 소리칠 뿐이었다.


"...너 정말 이세하 맞아?"


"오랜만에 보자마자 나오는 소리가 그거냐?"


슬비가 떨떠름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자 세하가 어이없는 말투로 반박했다.
이 짧은 시간동안 무진장 단련한다고 해서 세하의 신체가 갑자기 근육투성이가 되는건 아니다.
아마 슬비가 놀란 이유는 평소에 게임만 하며 임무 따윈 나 몰라라 하던 게으름뱅이가 성실한 자세로 훈련에 임하고 있었기 때문이겠지.

러닝셔츠차림으로 온몸에 땀을 흘리며 힘이 풀린 눈동자로 자신들을 응시해오는 세하를 보고 슬비가 얼굴을 살짝 붉혔다.
유리도 자신의 친구가 이렇게 변한것이 신선했나본지 쾌활한 웃음을 지으며 등을 퍽퍽 쳐댔다.


"우와~ 우리 세하 완전히 바뀌었네? 혹시 우리 몰래 좋은 보약이라도 먹은거 아냐?"


"형! 엄청 멋있어 보여요!"


힘들어 죽겠는데 괜히 어깨를 쳐대는 유리를 보고 세하가 인상을 찌푸렸지만,미스틸이 동조하듯 칭찬하자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아... 고마워 테인아."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유리의 말을 무시하고 테인의 머리를 쓰다듬은 세하가 의아한 표정으로 제이와 유정을 쳐다봤다.


"그런데... 아저씨하고 유정이 누나. 훈련실엔 무슨 볼일이세요? 저라면 이제 곧 훈련프로그램이 끝나서 금방 대기실로 돌아갈 예정이었는데."


"야! 이세하~! 내 말 무시 하지 마~!"


뒤에서 방방 뛰며 불만을 표출하는 유리를 냅두고 제이와 유정, 세하가 진지한 말투로 대화를 나눴다.


"세하야. 우리도 네가 대기실에 온 다음에 알리려고 했지만, 그래도 이런 건 빨리 말해야 좋을 것 같았거든."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요?


"정확히 말하자면 무슨 일이 있을 거야. 유니온에서 우리들의 업무를 바꿔버려서 말이지."


유니온과 관련된 일이라는 걸 듣자마자 세하가 불안한 표정으로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런 그의 심정을 잘 아는 듯 제이가 무언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유니온에서 이번 소동의 원인인 반유니온 테러조직의 체포에 가담하라고 '부탁'을 했어. 그리고 우린 그 부탁을 순순히 받아들였지."


"예?! 왜 테러조직을 잡는데 순순히 협조한 거에요 아저씨?"


처음에 김유정이 품었던 의문과 거의 비슷한 말을 내뱉은 세하를 보고 유정과 제이가 훈련실에 설치되어있는 도청기의 유무를 확인한뒤, 대기실에서 나눴던 대화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잠시 후)



"그러니까... 테러조직이 유니온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고요?


"아직까지는 가설에 지나지 않지만... 그럴 가능성이 높아. 그래서 우리들이 직접 테러리스트들을 잡으려는 거야."


"유니온한테 넘겼다간 자기들끼리 말을 맞춰서 잠적해버릴지도 모르니까 말이지."


유정과 제이에게 사정을 들은 세하는 분한 표정으로 이를 갈았다.
정말로 유니온이 차원종을 소환한 것이라면 미국을 혼란스럽게 만든 것도, 자신들을 궁지에 몰아넣은 것도 유니온의 계획이었다는 게 되니까.
은밀히 분노를 쌓아가고 있는 세하를 보고 제이가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너무 그렇게 신경 쓰지 마 동생. 내가 세운 가설이 맞는다는 보장은 없으니까. 그리고 정말로 테러조직을 체포할 수 있다면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도 가능할걸. 얼른 끝내고 돌아올 테니까 그렇게 인상 찌푸리지 말라고."


천천히 타이르듯 말하는 제이를 보고 세하가 쓴웃음을 지어보였다.
자신을 걱정해주는 듯한 사람들의 말과 얼굴을 보고 세하가 웃으며 말했다.


"알았어요. 저도 위상력에 관한 치료가 금방 끝날것 같으니까 얼른 끝내고 무사히 돌아와서 한국으로 돌아가요.

엄마한테 밥을 안 해준지 꽤 오래됐거든요. 이 이상 시간을 지체하면 어떤 일을 당하게 될지..."


"...그건 큰일이군. 최대한 빨리 끝낼 수 있도록 노력하지."
 
아련한 추억속에서 배고픔에 미쳐 날뛰웠던 알파퀸의 모습이 떠올랐나 본지 제이가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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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온본부 최상층.
높으신 분들은 높은 곳에서 얘기를 나누는 것을 좋아하나 본지 이곳은 유니온에서도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거물급 인사들만이 입장할 수 있는 곳이다.
그렇다고 G20 가입국들의 대통령들이 모여서 정상회담을 벌이는 건 아니고, 차원종과 위상력에 관해 절대적인 권한을 행사할 수있는 고위급 클로저들과 관계인들만이 이곳에서의 출입을 허가받을 수있다. 애초에 유니온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건 차원종과 관련된 일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니까 말이다.

미국의 국방부인 펜타곤만큼은 아니지만 이 곳은 상당히 엄중한 보안시스템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지금 같은 한밤중에도 철저한 경비를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사람은 커녕 개미한마리의 침입도 허용하지 못하는 이 곳은 이형의 존재와 한명의 클로저가 대화를 나누는 장소로 변모해버렸다


"검은 양이 테러리스트를 소탕하는데 순순히 협조했다는 말이지? 원래 이 작전에 그들은 불필요한 거 아니었어? 금세 마음이라도 바뀐 거야? 제임스 로빈."


회의실 중앙에서 발생한 사람의 마음을 순식간에 뒤흔들어 놓을법한 미성(美聲)이 제임스의 고막을 지배했다.
그의 정신을 흩트리고 있는 사람은 상당히 중성적인 외형을 지닌데다가, 21세기엔 어울리지 않는 중세시대 로브로 몸을 가리고 있어 체형도 확인 할 수 없었다.
한 가지 확실한건 전 세계의 유명인사들이나 들어올 수 있을 이 자리에서 신원을 파악할 수없는 정체불명의 존재가 가벼운 반말로 유니온의 고위급 인사인 제임스를 하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인물의 말을 정면에서 들은 S급 클로저 제임스가 송구하다는 듯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면목이 없습니다... 설마 그들이 이번에도 제 부탁을 들어줄 줄이야... 지난번에 제 말을 들었다가 미국에 발이 묶인 탓에 이번엔 거절할 줄 알았는데 제가 너무 안일하게 대처한 것 같습니다."


제임스는 이제 60대를 코앞에 둔 노년의 클로저다. 30년이 넘는 세월을 전장에서 걸어왔기 때문에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투기와 세월의 무거움을 가득 담고 있는 중후한 연륜은 보통 노인들을 가볍게 뛰어넘을 정도로 압도적일 터.

하지만 그런 제임스도 눈 앞의 존재에겐 한낱 미생물과 다름없나 본지 과하지 않은 적절한 저자세를 유지하며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제임스의 말을 들은 존재가 무심한 말투로 중얼거렸다.


"흠... 뭐, 그 녀석들이 본부에서 자리를 비워준다면 오히려 계획이 더 쉽게 진행될지도 모르겠네. 나중에 참모장한테 가서 내용을 좀 수정해달라고 해야겠어."


이건 좋은 생각 일지도? 하며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인 인물이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제임스에게 덧붙였다


"제임스. 작전을 언제 실행할 수있지?"


"아. 필요한 준비라면 이미 모두 끝마친 상태입니다. 언제라도 실행할 수 있습니다만..."


"좋아. 그럼 내일 당장 실행하도록. 괜히 시간을 끌어봤자 지루하기만 할 뿐이니까 신속하게 끝내 도록해."


목소리 이외엔 무엇 하나 쉽게 특정할 수없는 불가사의한 존재가 그렇게 말을 끝마치고는 기척을 완전히 지워 그 자리에서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자기 외엔 누구도 남아있지 않게 된 거대한 회의실을 시야에 가득 담은 제임스는 품안에 있는 사진을 꺼내며 눈물을 흘리듯 중얼거렸다.


"It'll be tomorrow. friends...."


사진 속 인물들을 바라보는 제임스에 눈엔 고인의 죽음을 애도하는 슬픔과, 다가올 파란의 폭풍을 맞이할 결의로 가득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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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평소보다 분량이 길었습니다.

별 생각은 없었는데 너무 설명과 대화밖에 없어서 좀 그렇네요.

참고로 말씀 드리자면 제이와 검은양 팀의 대화는 사망플래그가 아닙니다.

로그인으로 인한 조회수 상승은 저같은 피래미 작가에겐 무엇보다 중요한 글쓰기의 자양분입니다.

최소한 로그인이라도 하시고 봐주세요~ 하하...

2024-10-24 22:27:54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