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 / 클로저스x자작] 춤추는 칼날 :〈Chap.1 - 검을 버린 소녀〉
나예령 2015-05-19 1
춤추는 칼날
Dancing Blade
<Chap.1 - 검을 버린 소녀>
《=======1=======》
언제부터였을까.
우리 셋이 항상 붙어 다니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였을까.
우리 셋이 친하게 지내기 시작했던 건.
언제부터였을까?
서로가 곁에 없으면 쓸쓸해지기 시작한 건.
그래.
우린, 서로 친구였는데.
그래.
우린, 서로…… 그렇게나 친했었는데.
서로를 미워하는 게,
서로를 싫어하는 게,
서로…… 그저 이렇게 냉랭하게 비틀린 채 바라보기만 하는 게.
나는, 그게 너무…… 싫어.
-2020년, 5월 21일의 일기 中.
.
“……바람이 좋구나.”
위엄이 흐르는 목소리로, 백발백염의 노인이 앞에 앉은 소녀에게 묻는다.
“그래, 우리 강아지. 학교가 어디였던고?”
“……신강고예요.”
“허허, 신강 초등학교부터 시작해서 계속 올라가는구나. 신강 대학교까지 갈 생각이냐?”
노인의 물음에, 검은 머리를 사이드 포니테일로 묶어 단정하게 정리한 소녀가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힘이 닿는다면요.”
“허허, 그래…… 우리 강아지다운 대답이로구나.”
노인의 말에 소녀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이젠 강아지라고 불릴 나이는 지났어요, 할아버지.”
“허허, 우리 강아지가 나이를 얼마나 먹든, 이 할아비에게는 여전히 강아지인 게다.”
허허, 하고 너털웃음을 터트리는 노인의 이름은 주한규.
검도계에서는 전설이나 다름없는, 전국 검도대회에서 단 1패도 없이 스트레이트로 결승전까지 이겨 올라간 초유의 사태를 일으킨 강자.
그리고 그 앞에 있는 소녀는 그의 피를 가장 진하게 물려받아, 차기 당주로서 주씨 가문의 계보를 이어 나갈 것으로 가장 크게 기대 받고 있는 그의 친손녀, 주은빈이었다.
은빈의 부모는 차원종의 습격에 휘말려 죽었지만, 은빈만큼은 기적적으로 살았다. 그 때의 트라우마로 인해 말도 제대로 못하고 살 정도로 크게 성장 장애를 겪었던 은빈이 제대로 성장하기 시작한 것이 검도를 시작한 이후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은빈에게 있어서 검도라는 운동은 굉장히 소중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 우리 강아지… 친구, 누구라 그랬던고…… 그래, 그 서씨 아이는, 잘 해나가고 있는고?”
“서씨…… 유리, 말씀이세요?”
“허허, 그래. 유리. 유리라는 이름이었구나. 할아비가 기억력이 점점 안 좋아져서 말이다.”
주한규의 말에 은빈은 미소를 지었다.
“아직 할아버진 정정하신 걸요.”
“그래, 우리 강아지가 시집가는 걸 보고 죽어야 할 텐데…….”
“그런 소리 하시지 말구요.”
애교 있게 웃음을 지어 보이는 은빈의 머리를 쓰다듬어준 주한규는 밖을 보았다.
“그럼, 잘 다녀 오거라. 강아지야.”
“……네.”
주한규에게 가만히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서는 은빈은 가방을 둘러메고 집을 나섰다.
그러고 보면, 벌써 꽤나 오랜 시간이 흘렀다.
유리를 알게 된 것도,
정미를 알게 된 것도.
“바람 좋다…….”
산들바람이 불어와 은빈의 검은 머리칼을 흔들어놓고 지나갔다.
은빈의 가방 왼쪽에는 죽도가 든 검도 가방이 매달려 있다. 은빈에게는 정말로 소중한 인연을 만들어준 검이 그 안에서 잠자고 있다.
산들산들 불어오는 부드러운 바람을 맞으며 걸음을 재촉해, 학교로 향한다.
조만간 곧, 검도대회가 열린다.
유리도, 은빈 자신도 정말로 열심히 곧 열릴 대회를 위해서 서로 격려하며 노력해왔다. 이제 곧, 결실을 맺을 날이 온다. 서로 우승이라는 목표를 위해서 지금까지 노력해 온 결과를 볼 날이 다가오고 있기에 조금은 긴장되면서도, 조금은 들뜨는 것이 사실이기는 했다.
“빈아빈아~!”
저쪽, 반대편에서 활기차게 손을 흔들며 달려오는 검은 머리의 소녀가 보인다.
허리 아래까지 기른 윤기가 짙게 흐르는 검은 머리칼.
입가에 뾰족 튀어나온 송곳니.
그리고 같은 나이 대의 여자아이들을 압도적으로 짓눌러 버릴 듯한 바디 라인, 등에 둘러멘 검도 가방은 소녀가 은빈의 절친한 몇 안 되는 친구 중 한 명인 서유리라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손을 흔들어대는 유리의 옆구리를 쿡 쥐어박는 담갈색 머리칼의 다소 신경질적인 인상을 하고 있는 소녀의 이름은 우정미, 바보처럼 착하고 순진한 유리에게 태클을 거는 역할을 하고 있는 은빈의 친구다.
그들 셋은, 신강초등학교 때부터 친구로 지내온 오랜 단짝 사이다.
은빈은 늘 그렇듯, 차분한 목소리로 손을 들며 인사를 건넨다.
“안녕.”
“빈아, 안녕~!”
“빈, 안녕.”
빈, 이라는 건 세 사람 사이에서 은빈을 부르는 애칭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은빈이라고 불리는 것보다 빈이라고 불리는 일이 더 많았기에 이제는 익숙해져 버린 이름.
정미와 짧게 인사를 나누고, 유리와 손을 마주치며 오늘 아침도 활기차게 학교로 들어선다.
적어도 이 때까지만 해도, 우리 세 사람 사이에……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정말, 아무런 문제도.
그 사이에 미세한 균열이 생긴 건, 좀 더 뒤의 이야기다.
.
“그게 무슨 소리세요, 선생님?”
은빈은,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검도부의 고문을 맡고 있는 선생님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녀의 눈동자가 심각할 정도로 안쓰럽게 흔들리는 것을 똑바로 바라** 못하며, 고개를 돌려 그 시선을 외면한 선생님이 말했다.
“그게…… 은빈아, 네가 이번 대회에 출전하지 못하게 되었단다.”
“에엑?! 말도 안 돼요! 아시잖아요! 이 대회를 빈이가 얼마나, 얼마나 기다렸는데!”
옆에 있던 유리의 목소리도, 은빈의 귀에는 잠시 들려오지 않았다.
충격이 너무 컸던 것이다.
전국 규모로 벌어지는 최대의 검도 대회다.
지금까지 계속 기다려온 기회였다. 유리와 함께 출전하기를 그렇게 손꼽아 기다리며 밤을 새우며 검을 휘둘렀고, 할아버지에게 야단을 맞아가면서까지 얼마나 혹독하게 훈련했던가.
오로지 대회에 출장하기 위해서 쏟아온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느낌은 말로 형용하기 힘들었다. 옆에서 유리가 항의하는 것을 듣던 은빈은, 숨을 들이마시며 격동하는 마음을 추슬렀다.
어릴 적부터 줄곧 검도를 하면서 배운 것은, 언제나 침착해**다는 것.
침착한 마음가짐이야말로 상황을 직시할 수 있게 해준다.
격동을 애써 가라앉히고, 은빈은 힘겹게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알겠어요.”
“빈아!?”
“하지만, 출장은 할 수 없어도 관중으로는 갈 수 있겠죠……?”
은빈의 물음에, 선생님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미안하다, 은빈아.”
“아뇨. 괜찮아요. 정말로요.”
“빈아~!”
유리의 화가 난 듯한 목소리를 들으며, 은빈은 금방이라도 왈칵 쏟아질 것만 같은 울음을 겨우 겨우 참아내면서 교무실을 잰걸음으로 빠져 나갔다. 인사를 하고 교무실을 나서는 은빈의 뒤를 유리가 다급하게 쫓아 나왔다.
은빈의 뒷모습이 위태위태해 보인다.
저런 모습을 보인 적이 없기에, 유리는 입술이 바짝바짝 마르는 느낌이었다. 저렇게 흔들리는 은빈의 모습을 본 적은 그녀가 기억하기로는 거의 전무하다. 항상 침착하고 차분한 은빈이 저렇게까지 동요하는 건, 분명 검도대회에 나갈 수 없기 때문이리라.
“빈아! 빈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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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챕터 1의 시점은 유리가 검도 대회에서 반칙패당하기 전입니다.
그래봤자 챕터 1은 3회뿐이니, 어떻게 보면 서장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