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하 중점 단편] 성냥불
별h 2015-05-07 2
성냥팔이 소녀.
간략한 줄거리로는, 가난한 처지에 처한 채 성냥을 팔기 위해 몸을 혹사하다가 환상을 보며 죽어간 소녀의 이야기.
실제론 교훈을 주는 동화에 불과하지만, 내용 그 자체로는 아이들의 정서에 좋지 않은 것임을 알 수 있다.
아니면, 이러겠지.
" 이 소녀처럼 되고싶지 않으면 공부를 열심히 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해! "
....라고. 어른들은 애써 이 이야기를 포장할 것이다.
뭐, 감명 깊었던 것은 자그마한 성냥불 하나만으로 희망을 품을 수 있었던 소녀의 모습이였지.
그렇다고 한들 이 이야기는 내가 생각하기엔 동화로 쓰이는 것은 부적합해보였다.
아닐 수도 있지만-...
그런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졌다. 한가로이 대기중인 그는 그저 성냥팔이 소녀를 기반으로 한 판타지 게임을
시작하면서 부터 멍하니, 시간을 낭비할 뿐인 생각에 빠져들었다.
손은 바삐 움직이기만 할 뿐.
그러고보니 성냥이란 걸 언제 마지막으로 봤더라.
위상력이 각성한 이후, 나는 불과 열을 다루는 위상력을 갖고 있었기에 딱히 빛을 내주는 무언가가 없어도 충분히
주변을 밝힐 수 있었다.
각성하기 이전에도 그런 도구가 필요했던 적은 없었다.
애초에 성냥은 책에서만 볼 수 있던 것이였으니...
...그보다 내가 이걸 왜 생각하고 있는거야.
거기까지 생각하고 나서 시선을 게임기로 돌려보니, Game over가 뜬 게임기 화면이 보였다.
" 에이씨... "
신경질적으로 게임기를 주머니 속에 집어넣었다.
앉아있던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어 양 팔을 쭈욱, 늘여보았다.
창 밖을 내다보니 한산한 거리와 깜박이는 가로등 외엔 흥미가 가는 것도 없었다.
게임도 손에 잡히지도 않았다.
화상을 입어 소독을 하고 붕대를 감았던 팔은, 기분나쁜 무언가가 기어다니는 것 같이 욱신거렸다.
불쾌하고 마음이 정리도 되지 않고.
아아, 이걸 뭐라고 하더라. 분명, 그 단어가ㅡ......
" 심란하다, 라고들 하지? "
몸을 뒤로 뉘인 채 감고 있던 눈을 뜨니 어느새 더스트가 눈 앞에 있었다.
" ....ㅡ?????????!!!!!!!!!!!!!!!!!! "
너무 놀라면 소리도 나오지 않는다 했던가, 불안하게 흔들리던 의자는 그대로 뒤로 넘어가 큰 소리를 내며 넘어졌다.
" 어머, 내가 온게 그렇게나 기쁜거야? 이세하. 귀여운 면도 있네~. "
나의 넘어진 꼴을 보며 비웃는 그 놈을 노려보며 먼지가 묻은 곳을 툭툭 털었다.
어떻게 나타난 거지, 그보다 여기 밀실 아니던가? 누군가가 들어올 때엔 인기척은 날텐데.
위상력을 숨기고 들어온 건가?
검을 조심스레 빼어들며 수많은 의문을 머릿 속에 가득 매웠다.
누군가를 부른다 한들, 현재 시각은 자정에 가까운 새벽.
게다가 이 방에서 싸우는 것은 너무 무모하다.
" 왜 나타난 거야, 용건부터 말해. "
검을 빼어드는 순간까지도 더스트는 기분나쁜 조소를 흘리며 나를 바라볼 뿐,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이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그저 간을 보기위해 왔거나, 아니면.
" 그건 네 자신이 잘 알고 있을 거 아냐? 진짜 기회는 지금뿐이야, 세하. "
...지금 이 상황같은 일이 벌어지거나.
*
더스트가 찾아온 건, 출근 준비를 끝내고 집을 나서려 하던 그 순간이였다.
문을 열자마자 정면으로 바람이 불어오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라고 인식이 되기도 전에 더스트는 어느샌가 내 뒤로 와있었다.
" 오랜만이야, 이세하. "
싱글싱글 웃으며 세하의 건블레이드를 손에 쥔 채 빙글빙글 돌렸다.
검집을 확인해보니, 역시나 저 검은 자신의 검이다. 라는 것을 깨달았다.
" ..뭐야, 용의 군단장인가 뭔가도 이제는 사라졌잖아. 왜 다시 나타난거야? "
바깥에서 누군가가 보면 꽤나 곤란한 상황이 될 것만 같아 다시 문을 닫았다.
하교하자마자 바로 집으로 와 옷을 갈아입은 것이였기 때문에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석봉이와의 약속을 내일로 미룬 것이 다행인걸까.
" 또 한 번의 기회를 주러 왔어, 물론. 군단장으로써 차원종을 통솔하는 것까진 못해주지만? "
쿡쿡,웃으며 마치 도도한 고양이 마냥 걸어와 자신의 뺨에 손을 얹으려 하는 것을 쳐내며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불쾌하다는 듯 표정으로 티를 팍팍 내며 또 다시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 기회는 개뿔, 분명 나는 하지 않겠다고 말 하지 않았던가? "
도대체 왜 또 나를 찾아온거야. 라고 중얼이는 것 까지 들었던 것일까.
더스트는 여전히 웃는 얼굴로 세하의 팔을 낚아챘다.
" 내가 말한 기회는 네가 멀쩡히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거였어. 애쉬와 대화하던 걸 들었잖아? 나는 마음에 드는 건 파괴해야 직성이 풀린다고? "
그녀가 잡고있던 부위에서 치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났다.
" 세하, 넌 내 마음에 쏙 드는 존재야. 얼굴도 좋고, 성격도ㅡ...흐음. 꽤 반반하고. 꽤나 매력이 넘치잖아? "
고통이 엄습해와도 아랑곳 하지 않고, 이를 악 물며 그녀를 노려보는 그는 이미 식은 땀을 흘리고 있었다.
이런 고통은 항상 겪는 것이지만, 지속될 때의 그 순간만큼은 익숙하지않았다.
" 이렇게 강압적으로 나오는 건 예의가 아니라 말로만 하고 넘어가려 했는데ㅡ... 역시 우리 세하, 반항적인 모습도
나름 나쁘지 않은 걸. 길들이는 맛이 있겠어. "
그녀의 손을 뿌리치고는, 화상을 입은 팔을 부여잡았다.
어째서, 왜. 라는 의문은 저 멀리 감춰두고 더스트에 관한 적대감만을 표출했다.
이것이 지금으로써는 최선이였다.
" ..저리 **. 누가 누굴 길들여? 하, 취향도 참 가지가지네. 차원종이고 뭐고 될 생각 없으니까 꺼지라고! "
" 아하하하, 정말 그럴 생각이 없던 거야. 이세하? 그럼 그때의 큐브는 어떻게 된 걸까나? "
흠칫. 하고 동요하는 그의 모습을 즐기기라도 하는 듯, 입꼬리를 더욱 올리며 더스트는 이어 말하였다.
" 너도 생각하고 있던 거잖아? 차원종이 된다면, 하고. 물론 너희들 입장에서 우리는 차원종이라 불리지만, 우리는 달라.
힘을 가진 자. 그것이 우리세계가 부르는, 너희 세계에서 일컫는 차원종이야.
더러운 윗사람들에게 억지로 고개를 숙이지 않아도 돼. 그곳에선 너를 깔보고 상처주는 사람이 없다구?
그야, 넌 강자니까. "
그녀의 말 하나하나는 소년의 마음을 뒤흔들기엔 충분한 재료였다.
어릴 적부터 알파퀸의 아들이라는 편견에 갇혀 이리저리 흔들렸던,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던 소년은.
숨이 턱,하고 막혀왔다.
헛기침과 헛구역질은 한꺼번에 몰려와 소년의 목을 괴롭혔다.
저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흔들리는 자기 자신이, 그리고.
자신의 속마음을 차원종 따위에게 간파당했다는 분노가 한꺼번에 밀려왔다.
" ....아하하하. 고민하고 있는 모양이네, 세하. "
그럼, 이 곳 시간으로 자정이 되는 순간에 다시 찾아올게.
반드시 결정해야할거야.
괴로워하는 소년의 귓가에 그리 속삭인 한 명의 악마는, 이윽고 소리도 없이 모습을 감췄었다.
*
새벽 2시의 제일 높은, 어느 건물 옥상.
그 곳엔 두 명의 어린 아이...아니, 어린 아이의 형체를 한 무언가가 서있었다.
" 애쉬, 어째서 나 더러 이세하를 설득시키라 했던거야? 그냥 납치하고 세뇌시켰어도 변하는 건 없었잖아? "
" 더스트. 너는 아직 그 묘미를 모르는구나. "
" ....묘미? "
" 이 세계에, 예전에 성냥이라는 물건이 있었다나봐. 우리 세계에서도 이런 비슷한 물건이 있었지. "
위상력을 이용해 성냥갑을 띄워놓고는, 그것을 툭 툭 치며 말을 이어가는 소년의 목소리가 들렸다.
" 난 말이야. 여기에 불을 붙히는 것을 정말 좋아했어. 자그마한 것이 어떻게든 남아보기위해 자신을 태워가며 남아있으려 하는 것 처럼 보였거든 ."
그리 말한 후, 성냥갑은 어느새 불이 붙으며 찌그러들었다.
" ...난 그런 불씨를 두 손가락으로 꺼버리는 게 너무나도 즐거웠거든. "
불이 붙은,성냥갑이였던 무언가는 공중에서 떨어져 검은 양 수습 요원복 위에 떨어졌고
불은 그것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옷 위에까지 자신의 흔적을 퍼트렸다.
여느 때와 같이 한적한 야경이 흘러가는 밤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