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저스 - 부산 전면전 : 1화. 전투의 태동
hyunrang 2015-05-05 1
1.전투의 태동
푹푹 찌는 열대야 속의 순찰 만큼 짜증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어깨를 압박하는 무거운 소총을 매고 걷기를 이제 두 시간이 지났다. 부산 강서구 제 6 위상억제기와 억제기의 범위 지역을 담당하는 분대의 대원인 최태규 상병은 군모 아래로 흐르는 무수한 땀들을 닦아내며 하염없이 걷고 또 걸었다. 차원전쟁 이후 단 한 번도 없는 부산권 위상 방어선의 붕괴. 이 것을 잘 알고 있는 최태규는 의미없는 순찰에 진절머리가 난지 꽤 되었다.
"이 놈의 순찰 진짜 안 하면 안 되나?"
바위 조각물에 걸터 앉으며 군모를 벗고 목에 둘러 맨 물수건으로 흐르는 땀방울들을 계속 닦아냈다. 땀으로 흠뻑젖은 몸이 움직이질 않으니 이번에는 땀냄새를 맡고 찾아온 모기가 망정이었다. 차원전쟁으로 멸종해 버렸다면 좋았겠지만 차원종들은 아쉽게도 모기라는 곤충을 지구 상에서 없애주지 못했다.
화염방사기로 다 태워죽이면 좋겠지만, 그런 짓을 했다간 바로 영창 직행이다. 할 수 없이 파우치에서 소형 살충 스프레이를 꺼내 공중에 살포했다. 몇마리의 모기가 지상으로 추락했다. 여름 때마다 항상 찾아오는 불청객 모기. 8월인 지금에는 정말 극성이다. 덥지만 반팔, 반바지로 걷고 있던 군복을 다시 펴고 모기를 떨쳐내기 위해 내달렸다.
시간도 다 채웠겠다 막사를 향해 내달렸다. 막사로 가서 시원한 스포츠 음료 1.5L 짜리 페트병을 통째로 들이킬 생각을 하니 소소한 행복이 느껴졌다. 그러나 잠시 후, 신나게 뛰던 두 발은 서서히 느려지더니 막사를 약 50m 앞에 두고는 멈췄다.
"머, 뭔소리노! 이게!"
최태규는 자신의 두 귀를 믿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막사 건물 총성과 함께 사람의 비명소리와 짐승의 표효소리가 섞여들려 왔기 때문이다. 최태규는 혀를 차며 막사를 향해 전력질주했다.
막사 건물의 문을 발로 힘껏 차 열어 안으로 총구를 겨누었고 이어지는 경악.
"......!!"
개와 맷돼지 형태의 짐승형 차원종들이 분대원들의 사지를 식사하듯이 잘근잘근 씹어먹고 있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까? 최태규는 도저히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덧붙여서 이해하기도 싫었다.
위상 방어선의 붕괴와 차원종의 침입, 살육되는 사람들과 비극적인 광경. 텔레비전에서 차원전쟁 특집 방송 때에서만 봐왔던 것들이었다. 전쟁 후 절대로 일어나지 않았을 것 같았던 광경이 지금 눈 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최태규는 재빨리 탄환을 장전하고 인육을 먹는데에 정신팔린 차원종들을 향해 거침없이 난사했다.
"다 뒤지라 이 더러운 놈들아!!"
평소 쓰지 않는 욕설을 퍼부으며 50발 입 탄창을 모두 비워버렸다. 총구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고 소총은 총탄 대신 텅 빈 격철음만 울려댔다. 남아있는 탄창은 0개. 평소에 총알을 쓸 일이 없다보니까 무게를 줄이기 위해 항상 1개만 들고 다닌다. 권총이 있지만 있어봤자다. 10마리의 차원종 중 50발을 전탄명중시키며 쏟아부었지만 죽은 건 고작 3마리 뿐이다.
"**, 이제 다 끝났다..."
"크르르르르..."
날카로운 송곳니를 갈며 다가오는 차원종들은 노려보며 최태규는 이 녀석들을 다 죽이지는 못해도 군인으로서의 의무를 다하기로 했다. 허리춤에 둘러맨 수류탄 5개의 핀을 모두 뽑고 놈들에게 돌진하며 부산지부 클로저들과 군인들에게 뒤를 맡겼다.
* * *
- 3시간 뒤, 오전 3시 57분. UNION 부산지부 본부...
"정말입니까? 그 정보가..."
"예, 오늘 오전 0시 46분 경에 강서구 제 6 위상억제기 담당 분대로 부터 차원종 침입 경보가 들어왔습니다."
"그 분대는 어떻게 됐죠?"
"침입 당시 전원 전사했습니다."
UNION 부산지부 클로저팀 '하얀 갈매기(white gulls)'팀의 관리 요원인 한혜원은 부하 요원의 말에 관자놀이를 누르며 자신의 탁상 위에 놓은 클립보드를 내려다보았다. 클립보드 첫 장에는 강서구 남쪽에 붉은 원이 그려진 지도가 인쇄되어 있다. 혜원은 한숨을 깊게 내뱉은 뒤, 다시 입을 열었다.
"현재 상황은요?"
"현재 제 6 위상억제기를 포함한 4,5 억제기가 파손 되었습니다. 부산 강서 시가지 내 피해는 없고요."
"시가지 내 피해가 없다고요?"
"예."
"이상하군요, 차원종이 시가지 내부로 침입해 들어오지 않다니요."
"억제기를 노리는 것을 보니 입구를 넓이는 것 같네요, 마치 대군이 통과하기 좋을 만큼."
"그렇다면 이 침입은..."
"일반 습격이 아닌 차원종의 대대적인 전면공세로 볼 수 있겠지요. 목표는 부산이고요."
"전면공세라면 놈들도 공세를 준비하는 시간이 있겠군요."
"예, 아마 그럴 겁니다. 한꺼번에 쳐들어오지 않은 게 그 증거죠."
"그렇다면, 지금 당장 갈매기 팀을 본부로 소집하세요! 한시가 급합니다!"
"예!"
* * *
난데 없이 스마트폰의 진동이 울렸다. 갈매기팀의 클로저 요원인 한태현은 기분좋게 자는 자신을 방해한 진동에 짜증섞인 신음소리를 내며 머리맡에 있는 스마트폰을 잡고 수신자를 확인했다. 수신자의 이름은 연락처에 저장되어 있는 이름이었다.
"또 뭐야? 자고 있는데..."
태현은 통화버튼을 누르고 잠을 깨운 수신자에게 버럭 소리를 지르며 말했다.
"뭐야?! 새벽부터!"
[현아, 깨워서 미안한데, 지금 당장 본부로 와줬으면 해.]
"왜?"
[일일이 대답할 시간 없으니까 본부에 오면 설명할께. 지금 김소현 요원이 집으로 가고 있으니까 집에서 대기해.]
그 말을 끝으로 전화는 끓겼다.
"잠, 잠깐! 누나!"
혀를 차며 스마트폰을 침대 위에 내려놓은 후, 침대 옆에 있던 흰색 원목 장롱 문을 힘껏 열었다. 그 안에는 UNION 유니폼 외에는 걸려있지 않았다. 파자마를 벗어 장롱 서랍에 쑤서 넣고 UNION 유니폼을 장롱에서 빼내 그것을 입었다. 암갈색 일자바지와 흰색 와이셔츠, 탄창 파우치를 포함한 여러 파우치가 주렁주렁 매달린 벨트, 흰색 갈매기와 UNION 로고가 수놓아져 있는 검정색 롱 코트가 유니폼의 전부다.
태현은 마지막으로 장롱 옆에 세워져 있는 자신의 주무기 베넬리 사의 M4 샷건(M1014)을 어깨에 맸다. 그리고 현관문을 열고 집 밖으로 나섰다. 집 밖에는 밤하늘 빛과 같은 검은색 쉐보레 세단 하나가 세워져 있었다. 세단 앞에는 긴 쇼트컷과 밤색 눈동자의 소녀 한 명이 서있었다. 그녀가 누굴 기다리는지는 그녀의 얇은 트렌치코트에 달려 있는 UNION 인식표를 보니 바로 알 수 있었다.
"태현 군이지?"
"예, 그럼 당신이?"
"그래, 김소현 요원이야. 네 누나가 널 본부로 데리러오라고 했지. 어서 타."
태현은 소현을 따라서 조수석에 앉았다. 태현이 타는 것을 확인한 후, 소현도 운전석에 탑승하고 엑셀을 밟았다. 세단은 조용하고 재빠르게 도로를 달렸다.
"굳이 저를 불러야 될 일이예요? 저말고 클로저 한 명 더 있잖아요."
"그 애도 지금 데리러 가는 길이야. 이번은 너희 두 명이 모두 필요할 만큼 큰일이야."
"대체 무슨 일이기에..."
"자세한 건 본부에서 네 누나가 설명해 줄거야. 지금은 단지 차원종이 위상방어선을 뚫었다는 것만 알아 둬."
"방어선을 뚫었다고요? 차원종은 그 근처에만 가도 무인경비시스템이 발동해서 차원종은 모조리 섬멸당하는 것 아니예요?"
"차원전쟁까지는 그랬지. 하지만 전쟁 후 침입이 없다보니 시스템은 전력절약으로 꺼졌지."
소현을 말에 태현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한숨을 내뱉었다. 전기가 소중하긴 하지만 차원종의 침입을 그냥 허락해서는 안 된다. 침입해도 클로저가 처리하면 돼는데 그건 대규모 공세가 아닐 때만 그렇다.
소현의 세단은 연제구에서 금정구로 이동했고 한 빌라 앞에서 멈췄다. 태현은 바람이 쐰다며 차에서 내렸고 소현은 자신의 스마트폰을 꺼내 또 한 명의 클로저 요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15분 후, 클로저 요원이 빌라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밤색의 긴 포니테일과 캬라멜 빛의 눈동자, 등 뒤에 맨 M110 SASS 라이플이 인상적인 소녀였다.
소녀는 태현의 앞으로 다가오더니 맑고 귀여운 목소리로 반갑게 인사를 건냈다.
"안녕, 태현아?"
"으,응. 이름이..."
태현은 말 끝을 흐리며 소녀에 가슴쪽에 달려있는 인식표를 노려보았다. 태현은 클로저 일을 잘 하지 않아 이 소녀의 이름을 잘 모른다. 실상 이 소녀와 같이 일하는 것도 이번이 두 번째다. 태현이 소녀의 이름을 말하기도 전에 소녀가 먼저 말했다.
"예희야, 천예희. 기억도 안 해주다니 섭섭한걸."
"만난 적이 있어야 이름을 기억하지. 오늘을 제외하면 한 번 밖에 안 만났잖아. 훈련 때 말이야."
"그렇네, 일이 없었으니까."
예희가 살짝 웃으며 말하자 세단 창문 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소현이 말했다.
"예희 요원, 태현 요원. 잡담은 이 쯤 해두고 어서 타. 지금 무지 급하거든."
"아, 예, 죄송해요. 소현 언니."
"예, 예. 갑니다."
태현은 다시 조수석에 앉았다. 예희는 뒷자석에 앉았다. 소현은 다시 엑셀을 밟았고 본부를 향해 세단을 몰았다. 예희의 집이 있는 금정구에서동래역 앞을 지나 만덕터널과 덕천로터리를 통과해 북구 화명동의 UNION 부산지부 본부로 이동했다.
p.s
부산 얘기를 한 번 쓰고 싶어서 한 번 써봤어요. 부산은 제 2의 도시이기도 하니까요. 지금은 신서울이 아니니까 부산지부의 캐릭터가 등장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