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하x테인] 난 그저 게임을 위해 불렀을 뿐인데…
토이코 2015-03-22 3
"세하 형. 이 세모가 그려진 버튼은 뭐예요?"
"그게 가드. 공격이 오면 막는 용도지. 공격이 직격하는 타이밍에 맞춰서 가드랑 공격을 같이 누르면 반격기를 쓸 수 있어."
"헤… 빨리 해봐요! 재미있을 것 같아요!"
평온한 토요일 오후. 옛날에 테인이와 약속했던 '자신의 집에 불러 여러가지 게임들을 알려주겠다' 라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테인이를 집으로 불러들인 세하는 십수개의 게임을 한켠에 쌓아두고 먼저 제일 하기 쉬운 격투게임을 인스톨했다.
말 보다는 실전. AI 모드로 캐릭터를 하나 골라 테인이에게 게임 패드를 쥐어주고 게임을 시키며 옆에서 보조하는 형식으로 게임을 하나하나 알려주었다.
"거기서 반격. 그래, 잘했어. 처음치고는 상당히 잘하는데?"
"이렇게… 얍! 와아! 형! 이겼어요! 그런데 다른건 없어요?"
이겼다며 좋아하던 테인이가 갑자기 게임 패드를 내려놓고는 다른 게임팩을 뒤적거리자 세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재미가 없어?"
테인이는 귀엽게 고개를 저으면서도 게임팩을 뒤적이는 손을 멈추지 않으며 대답했다.
"아뇨, 재미는 있는데… 아무래도 격투게임 같은건 조금 힘든 것 같아서요. 아! 이건 뭐예요? 뭔가 아기자기한데…."
"그거? 그건 뭐랄까… 캐릭터 육성 게임이야. 마을 안에서 생활하는 주인공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빛을 갚아나가는 게임인데… 근데 나한테 저런 게임이 있었나?"
그렇게 말하면서도 게임팩을 열어 CD를 꺼내들고 인스톨해 몇가지 기능을 알려주었지만, 테인이는 금방 흥미를 잃어버렸다.
"우움… 그건 재미없는 것 같아요. 이런거 말고 다른건 없나요?"
"다른거? 그러면… 리듬 게임은 알아?"
조금은 오래되어 보이는 게임팩을 꺼내 CD를 빼내며 말하자 테인이가 작은 호기심을 보였다.
"리듬 게임이요? 춤 추는 게임인가요?"
"꼭 춤은 아니지만… 일단 보여줄게."
CD를 삽입 후 인스톨을 시작하자, 세하에게는 상당히 오랜만에 보는 게임 로고 화면이 나타났다.
'아마 이게 3년쯤 됬었나? 그때 한창 푹 빠져서 살았지.'
지금도 그때의 실력이 나올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테인이 앞에서 부끄러울 실력은 아니라고 자신하며 가장 어려운 V.Hard(정복) 모드를 선택했고, 깊게 심호흡을 한 세하는 정신을 집중하고 떨어지는 노드를 정확하게 눌렀다.
"우와… 세하 형. 정말 굉장해요!"
"이정도 쯤이야, 옛날에는 올 퍼펙트도 해봤다고!"
게임 패드를 열심히 두들기며 집중하고 있는 세하는 볼 수 없었지만, 테인이의 눈이 다른때와는 다르게 유난히 반짝이고 있는 것 같은건 비단 착각은 아닌 것 같았다.
그렇게 몇분 후. 아무래도 실력이 떨어진 모양인지 3미스를 낸 세하가 머리를 긁적이고 있을 때 이번에는 테인이가 다른 게임팩을 집어들었다.
"세하 형! 이건 뭐예요?"
"어? 아, 이건 네가 좋아할지도 모르겠다. 일정 캐릭터를 정해서 제한시간동안 많은 적들을 처리하는 경쟁용 게임이야. 한번 해볼래?"
"우왓, 네! 네! 해볼래요!"
보기만해도 저절로 치유되는 것 같은 테인이의 녹색 눈망울이 잔뜩 커진채 반짝이며 재촉하자, 세하가 못이기는 척 게임팩을 꺼내며 남몰래 미소지었다.
'같은 남자라지만 귀여운건 귀여운거구나.'
게임 인스톨 후 이지모드를 선택한 세하는 테인이에게 컨트롤러를 넘겨주었고, 테인이는 무엇을 할지 망설이며 열여섯 명의 캐릭터를 이리저리 둘러보더니 묵직한 양손검을 휘두르는 전사 캐릭터를 선택했다.
"우선 노하우를 알려주자면… 정해진 공간 안에서 피라미들을 처리하며 중간중간에 나오는 보스 몬스터들도 처리해야 해. 몬스터들을 처치하면 킬 포인트라는걸 주는데, 외곽쪽으로 가면 NPC 상인이 있으니까 도핑 아이템이나 물약같은걸 사면 꽤 버틸 수 있어."
"넷, 한번 해 볼게요."
컨트롤러를 꼭 쥐고 세하가 옆에서 알려주는 조작법대로 따라하던 테인이는 얼마안가 익숙해진 모양인지 세하가 알려주지 않은 콤보도 사용하며 적들을 도륙하고 있었다.
"오호… 잘하는데? 네가 우리 엄마보단 낫다."
"어, 알파퀸 님도 이걸 하셨어요?"
한창 게임에 집중하던 테인이가 세하의 말에 상당히 의외라는 듯 화면에서 눈을 돌리며 묻자, 세하가 어색하게 웃으며 테인이의 고개를 다시 TV로 돌려주었다.
"알파퀸 님이라니… 엄마도 나랑 게임을 하긴 했었어. 뭐, 그렇게 잘하진 못했지만."
"알파퀸 님도 못하시는게 있었구나… 으앗?! 주, 죽을 뻔 했어요."
방심하고 있는 사이 몬스터들에게 둘러싸여 죽을 뻔한 위기를 간신히 넘긴 테인이는 집중력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조심하며 컨트롤러를 조종했다.
커다란 대검은 양손으로 휘두르거나, 어쩔때는 한손으로 잡고 무차별로 공격하는 등 무시무시한 활약을 보여주는 테인이의 캐릭터였지만 갈수록 어려워지는 난이도와 노하우의 부족으로 결국 얼마 안가 죽어버렸다.
"아…… 끝났네요…. 형! 저 다른 게임들도 해 보고 싶어요!"
"그래, 뭐든지 골라봐. 형이 다 알려줄테니까."
세하가 게임에 대해 뭐든지 알려주겠다며 자신하고 있는 사이, 테인이는 이미 수많은 게임팩의 산 속에서 관심이 있는 게임팩을 집어들고있었다.
"이건 뭐예요?"
"그건 전쟁을 모티브로 만든 FPS 게임인 것 같은데… 뭐, 괜찮겠지."
어쩐지 새것처럼 반짝거리는 CD 케이스 위에 떡하니 19세 미만 이용 불가 딱지가 붙어있어 테인이가 초등학생이라는 점이 마음에 걸렸지만, 차원종도 학살하고 다니는 마당에 겨우 잔인한 게임이 무슨 문제가 되겠냐─── 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게임팩을 인스톨 했다.
그러나 그게 실수였다.
'────시, 실수했다.'
온갖 게임들을 한번 건드리면 어떠한 망게임이라도 반드시 엔딩을 보는 세하의 특성상 게임팩을 수시로 건드리기 때문에 처음 그 빛깔이 절대로 날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게임 케이스가 반짝거린다는 것은 사놓고 단 한번도 건드리지 않았다는 뜻이었는데, 세하가 가진 게임 중 지금까지 건드리지 않았던── 아니, 건드리지 못했던 게임은 하나밖에 없었다.
"……그건 무슨 게임이예요…?"
충분히 붉은 딱지가 붙을만한 프롤로그 영상이 초반부터 나오기 시작하자 테인이가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세하를 바라봤다.
몇달 전 석봉이의 지인을 통해 얻게 된 19세 게임.
산전수전을 다 겪은 주인공이 전쟁속에서 우연히 자신보다 조금 어린 소녀를 만나 생존해나가는 게임인데, 도중에 잔인한 장면이 섞여있는 것도 하나의 이유지만, 소년과 소녀 둘만의 여행이라면 그렇고 그런것도 있지 않겠는가.
세하도 한창때의 청소년인지라 흥미를 가지고 구입했었지만 구입 당시에는 엄마의 방해때문에, 그리고 최근에는 여러가지 일이 있는 바람에 까맣게 잊고 있었지만 테인이가 집어드는 바람에 이제서야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이상야릇한 소리와 영상이 튀어나옴과 동시에 세하가 비명을 지르며 게임을 강제로 종료시키고 게임팩을 재빠르게 빼내었지만, 테인이는 그 잠깐의 시간동안 본 살색의 장면들이 잊혀지지 않는지 무릎을 꿇고 정좌한 채 얼굴을 붉히고 손가락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물론 그 모습은 같은 남자가 보기에도 심장이 잠깐은 두근거릴 만큼 귀여운 모습이었지만, 지금은 그런것에 감동할 때가 아니지 않은가.
"……어어, 저기. 테인아?"
"……………잖아요?"
"뭐?"
"이젠 어떻게 되든, 상관 없잖아요? 그렇죠?"
작은 손에 힘을 주어 주먹을 꼬옥 쥔 테인이가 혼자서 뭐라 중얼거리고 있는 모습에 온몸에 소름이 찌르르 돋는것과 동시에, 테인이가 자리에서 일어나는 척 몸을 일으키려 하더니 갑작스럽게 펄쩍 뛰어 세하의 품으로 다이빙했다.
다만, 그 다이빙이 온 힘을 가득 실은 보디 프레스라는게 문제였다.
퍼억!
"커허억?!"
배를 강타하는 커다란 충격에 게임 CD를 놓치며 테인이와 함께 바닥에 쓰러지자, 세하의 위에 올라타게 된 테인이가 이리저리 자세를 잡더니 정확하게 세하의 배 위에 걸터앉았다.
"세하 형, 이젠 괜찮죠? 상관 없겠죠?"
촉촉히 젖은 녹색 눈망울에서 비추어지는 무언가를 열렬히 갈망하는 눈빛과 보기 좋게 달아오른 연분홍 빛이 감도는 새하얀 볼에 세하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으며 심장이 시큰거렸다.
'서, 설마. 아니겠지.'
최근 테인이의 상태가 심상치 않았던 것은 여러가지 시뮬레이션 게임들을 접해보며 감각적으로 눈치채고 있었지만 그건 최악의 수.
이루어질 수 없다는 말은 핑계에 가까웠지만, 이루어진다면 여러모로 큰일난다는 말은 완벽한 사실인 그 상황.
식은땀이 절로 줄줄 흐르는 그 상황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세하의 귓가에 테인이의 말소리가 다시 들렸다.
"이건 아닐거야, 이건 잘못된거야 하면서 이제까지 계속 억누르고 참고 있었지만… 더이상은 안될 것 같아요. 세하 형. 저 세하 형을 지금까지……."
"커헉!! 테, 테인아?! 그건 조금 아니지 않아!?"
"형! 이제 모두 상관 없어요! 전 그래도 형이……!"
"잠깐. 새, 생각. 생각할 시간을… 테인아!?"
갑작스러운 상황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한 세하가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고 당황해하는 사이, 테인이는 이제 들리지 않는다는 듯 세하의 품에 뛰어들어 그를 꼭 끌어안았다.
"이제 몰라요! 전 형이 좋은걸요! 형을 사랑한다고요!"
사랑한다고요…… 사랑한다고요…… 한다고요…… 한다고요…… 한다………
머릿속에 메아리치듯 울리는 그 한마디에 모든 말과 행동을 멈춘 세하는, 잠시 후 음침하게 웃으며 이마를 짚었다.
"후… 후후…… 후후후후허허허허허허허으아아아아아아아악**세상아멸망해라아마겟도오오온!!!"
**듯이 소리를 지르며 발광하기 시작한 세하는 테인이를 있는 힘껏 끌어안고는 바닥을 데굴데굴 굴러 위치를 역전시켰다.
여자같은 남자면 어떠하리오, 테인이가 남자면 어떠하리오.
좋아하면 그만이지, 뭐.
이후는─────── 이하 생략.
확실한 것은 그날 아무도 없는 세하의 집에서 신혼부부의 방에서 들을 수 있는 소리가 들려왔고, 다음날부터 세하와 테인이가 평소보다 몇배는 더 가까워졌다는 보고를 다른 팀원들이나 작전 지역을 함께 나간 특경대원들에게 자주 받아 고개를 갸웃거리는 유정만이 있었을 뿐이다.
"테인아. 우리 나중에 어디로 여행갈래?"
"어디로요? 전 형이 가는곳이라면 어디든 다 좋은데."
"음…… 우리를 받아줄 수 있는 곳으로 가야겠지?"
"──네, 앞으로도 계속 함께해요."
그렇게 웃고 떠들면서 작전지역으로 향하는 두 사람의 손은, 언제까지고 꼭 붙잡은 채 떨어질 생각도 하지 않았다.
End.
P.s
변형된 이야기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