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역전의 용사 - 上
아워글라스 2015-03-22 1
긴급상황. 긴급상황.
울프팩 팀은 완전히 고립되어 있었다. B급 차원종은 물론이고 그 개체 하나하나가 막강한 A급 차원종, 심지어는 급을 측정할 수 없는 군단장급의 차원종이 차원종 무리를 이끌고 포위망을 좁혀오고 있었다. 그 와중에 지금껏 알파퀸의 백업을 담당하며 그녀의 대활약에 기여한 일등공신이던 윤이 크게 부상당했다.
“아 썅, 이 상황에서 난 다치고 XX이냐.”
윤은 피를 너무 많이 흘려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 와중에도 그는 시큰둥하게 욕을 했다. 높은 위상 잠재력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그는 몸 움직이는 게 귀찮다며 직접 전투에 나서기보다는 주로 전투 작전을 세우고 팀원들에게 지시를 하는 등 두뇌파 참모 같은 사람이었다. 때문에 머리와 눈 색이 제대로 변하지 않고 검은 그대로라는 점이 특이했다.
지금의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서 그의 작전은 절실했다. 그러나 그는 필사적으로 괜찮은 척을 하며 몇 마디 하는 것조차 힘겨웠기에 깊은 생각을 하는 것이 어려워 보였다.
“윤, 괜찮아? 제발, 눈 감지 마. 죽으면 안 돼.”
서지수는 그의 곁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답지 않게 도대체 어쩌면 좋냐고 팀원들을 붙잡고 무너진다.
“야, 정신 차려. 너 알파‘퀸’이잖아? 여왕님이, 쿨럭, 그러면 안….”
“무리해서 말하지 말라고 했잖아!”
“말 안하니까 기절한 줄 알고 뺨 때렸으면서.”
제이는 티격태격하는 그들을 아련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뒤늦게 제이가 왔다는 것을 알아챈 윤이 그를 불렀다.
“야, 막내 왔냐.”
“형. 몸은 괜찮….”
“네 몸이나 잘 사려. 그래, 왜 왔냐?”
“누나, 팀원들이 기다리고 있어요.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다고.”
그 말을 듣자 윤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그는 품에서 쪽지 하나를 꺼내 제이에게 주었다.
“다 같이 가서 읽어 봐.”
윤이 제시한 선택지는 간단했다.
1. 날 미끼로 삼아 도망간다.
2. 윤을 미끼로 삼아 도망간다.
3. 다 같이 죽는다.
“뭔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고 있어.”
지수는 이를 갈며 그렇게 말했지만, 다른 팀원들은 감히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윤에게서 나온 작전이다. 이성적으로 생각한다면 부상자를 버리고 그를 미끼삼아 패전지에서 도망친다는 것은 아주 자연스럽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들의 리더는 이성적인 사람과는 거리가 멀었던 것이다.
“웃기지 말라 그래.”
“리더!”
“작전을 바꾸겠어.”
“제발, 이럴 때일수록 냉정해 져**다고.”
모두가 그렇게 말했지만 그녀는 막무가내였다.
“윤은 우리 팀의 브레인이야. 지금은 상황이 안 좋아 보이지만 그를 잃으면 장기적으로 울프팩 팀에도 큰 손실이야.”
“그래서 어떻게 하겠다는 거지? 시간이 없어. 당장 움직여야 한다고.”
“미끼는 우리 중 하나가 될 거야.”
알파퀸의 고집에 울컥한 타 팀원들은 저마다 손을 들며 자신은 미끼가 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힌다. 그리고 막내 제이에게도 차례가 왔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지수와 팀원들은 이제 그를 보고 있었다. 짧은 침묵 끝에 지수가 입을 열었다.
“됐어, 여기서 제이가 가장 어리잖아. 연장자의 도리가 아니지.”
지수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순간 그녀의 눈이 제이를 원망하는 것처럼 가늘어지는 듯했다. 제이는 눈을 깜박거리며 다시 그녀의 표정을 보았다. 강인한 사람에게서만 볼 수 있는 결연한 표정이었다. 그래, 방금 본 표정은 착각이었을 것이다.
“내가 나갈게. 윤이를 부탁하겠어.”
“누나….”
“얘들아, 막내 잘 챙겨줘.”
지수는 그에게 다가와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때, 제이는 알아챘다.
“아.”
그녀는 떨고 있었다. 그것을 보자 제이는 저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왔다.
“제가 할게요.”
그녀는 놀란 것처럼 보였다.
“…제이?”
“누나, 제가 할게요.”
여기서 그녀를 보내버리면 모두에게 잘못을 저지르는 게 아닐까 제이는 생각했다. 그녀는 우리 팀을 지탱하는 존재, 그러니까 항상 강한 모습만을 보여야 하는 존재다. 그 누구도 그녀가 느끼는 두려움과 떨림을 알지 못한다면,
내가 그녀의 약함을 지고 가겠다.
“윤 형이 많이 걱정되는 거죠?”
“그렇다고 해도 너에게 이런 짐을 맡길 수는 없어.”
“전 괜찮아요. 다시 말할게요. 제가 하겠습니다.”
“제이!”
지수가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넌 아직 어려. 목숨을 아껴.”
“…아낄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이 상황에서.”
전혀 막내답지 않은 제이의 대답에 지수는 할말을 잃었다. 세상물정 모르는 사춘기 소년으로 취급하기엔 그는 이미 너무 많은 전쟁의 풍파를 겪어버렸다.
“어리다고 감싸려고만 하지 마세요. 누나가 말했죠? 이건 진짜 전쟁이라고. 정말로 사람이 죽어나가는 곳이라고. 나는 윤형보다 이 팀에서 도움이 덜 되는 존재일지도 몰라요. 냉정하게 생각해야죠.”
“제이, 넌 도대체 무슨 소리를…!”
“괜찮아요, 안 죽어볼 테니까요.”
버틸게요. 당신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미안해. 그리고 모두를 위해 버텨줘, 제이.”
제이는 강하고 믿음직스러우니까. 모두를 생각하는 착한 아이니까.
지수는 그런 말을 남기고 팀원들과 함께 그를 남겨두고 떠났다. 아무도 그와 함께 남아 싸우지 않기로 한 것은 그만큼 제이가 이 모든 차원종들과 조우하여 살아남을 확률이 낮다는 뜻이기도 했다. 자신을 믿는다고 말은 했지만 실은 아무도 믿지 않고 있을 것이다. 전장은 그런 곳이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자신이 하겠다고 했다. 그러니 책임을 져야할 것이다.
모두가 무사히 빠져나가기 위해서는 자신이 차원종들의 주의를 끌어야 했다. 그는 베이스 캠프에서 한참 떨어져 나온 곳에서 한바탕 소란을 일으키기 위해 적진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차원종들 또한 그에게 점점 가까이 다가온다. 차원종들의 혼란스러운 위상력이 일렁거리며 그의 신경을 짓누르고 있었다. 그는 말했다.
“안 죽는다.”
파란 눈은 시리게 빛났다. 홀로 살아남아 모든 것을 헤쳐 나가야하는 어미 잃은 **늑대처럼 그는 있었다. 그는 다시 말했다.
“죽지 않는다.”
검이나 총을 쓰는 여타 능력자와 달리 너클을 쓰는 제이는 항상 손이 상처투성이였다. 그녀는 막내를 챙긴답시고 그 상처 위에 연고를 발라 주고 붕대를 매어주곤 했다. 비록 그녀는 어설퍼서 항상 헐렁하게 매어주곤 했지만, 그는 그것만으로도 좋았다.
그렇지만 이곳엔 이제 붕대를 감아줄 누나는 없다.
제이는 헐렁하게 매인 붕대를 이빨로 물고 팽팽하게 잡아당겼다. 단단하고 무거운 너클을 손가락에 끼운다. 울프팩 팀의 로고가 새겨진 외투는 잠깐 바닥에 던져 놓았다. 반바지를 툭툭 털며 눈을 앞으로 치뜨니 차원종들이 몰려오는 모습이 희미하게 보였다.
소년은 고개를 끄덕였다.
“가자.”
하나,
둘,
셋!
셋과 함께 소년은 총알처럼 빠르게 튀어나갔다. 넘치는 힘에 비해 그의 몸은 터무니없이 가볍다. 머리로 1을 생각하면 1을 실현할 수 있는 완벽한 신체, 아니 2를 할 수 있는 정신 나간 몸이었다.
제이는 순식간에 차원종들의 무리 한복판으로 파고들어갔다. 음속에 가까운 그의 질주에 휘말린 수십의 차원종들이 이미 정신을 잃고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한바탕 소란이 일자 그 주위의 모든 괴물들이 그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제이는 주위 상황을 파악했다. 예고된 A급, 군단장 급의 녀석들은 아직 보이지 않았다. 수가 많은 B급의 녀석들뿐이었다. B급 정도야 제이에겐 아무 의미 없는 녀석들이었다.
‘센 녀석들이 나오기 전에 빠르게 처리하는 게 좋겠어.’
소년은 무릎을 살짝 굽혀 그 반동으로 높이 뛰어오른다. 기가 질릴 정도로 신속하고 탄력 있는 움직임이었다. 까마득한 높이까지 뛰어오른 그는 너클에 위상력을 불어넣는다. 그리고 쏜살같이 하강하며 너클을 지면에 꽂아 넣는다.
쾅!
단 한 번의 일격으로, 땅이 ‘무너지는’ 소리가 났다. 소년이 꽂아 넣은 충격파는 지면을 통해 어마어마한 반경으로 퍼져나가며 수백에 이르는 차원종들의 숨통을 단숨에 끊어 놓았다.
이 재앙적인 인간의 출현에 차원종들은 본능적 공포를 느낀다. 물론 제이가 그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면 ‘나보다 더 대단한 인간이 있다’라고 태연히 말했을 것이다.
제이는 그녀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 강인한 뒷모습을 상상했다. 그런 그녀에 비하면 자신은 그리 놀라운 존재도 아니다. 바로 지금, 자신의 힘으로 그녀와 동료들을 지킬 수 있음을 증명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강해보이는 힘이라도 무의미했다.
제이는 오른손을 들어 가볍게 앞으로 내질렀다. 훅, 하는 소리와 함께 펀치에 실린 위상력이 매섭게 돌진하여 먼 거리에 있는 차원종들을 붙잡는다. 그는 주먹을 다시 되가져온다. 수십 마리가 자석처럼 순식간에 제이의 눈앞까지 붙들려 온다. 붙잡힌 괴수들은 소년의 힘에 압살되어 살점 파편으로 터져나갔다.
뼈와 살이 뭉개지고 터지는 둔탁한 감각이 그의 너클 끝으로 생생하게 전해져 왔다. 이건 일방적인 살육이었다. 분명 모든 생물에게 평등해야할 주위의 대기가 오직 소년의 무기처럼 작용하고 있었다. 소년이 원하면 공기가 적을 끌어오고, 소년이 원하면 공기가 적의 숨통을 조르고, 소년이 원하면 공기가 적들을 저 멀리 날려버린다.
누가 정말 괴물인가?
그의 펀치, 킥 한 번으로 수십의 차원종이 죽어나간다. 소년은 그 죽어나간 괴물들의 피를 흠뻑 뒤집어쓰고 있었다. 거무튀튀한 피에 벌겋게 물든 머리칼, 두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핏물. 그의 코는 이제 차원종의 피비린내를 거의 인식하지 못한다.
육체는 추악한 것의 잔해로 뒤덮여가고 있으나, 정복되지 않은 것은 소년의 눈빛이었다. 피투성이가 되어도 그의 눈은 순수함으로 도드라지게 빛났다. 오염되지 않은 흰**, 새파란 눈동자. 절망하지 않은 눈빛.
“눈빛이 참 마음에 드는군.”
“피를 온통 뒤집어쓰고도 그런 눈빛을 할 수 있다니 말이야!”
제이는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킥을 날린다. 그 발차기의 잔상에 정통으로 맞은 차원종들이 두동강 나며 툭 하고 떨어졌다. 그러나 목소리의 장본인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손가락을 뻗어 공격을 무효화했다.
“누구지?”
소년이 물었다. 그들은 까르르 웃었다.
“누굴까?”
“맞춰 보렴, 꼬마야!”
소년은 피투성이가 된 너클을 바지에 슥 닦아낸다. 그리고 말했다.
“하나는 알 것 같아.”
소년은 뛰어올랐다. 그리고 발끝에 위상력을 실어 지면에 킥을 꽂아 넣었다. 땅이 깊게 파이며 높은 충격파가 쓰나미처럼 일었다. 그 일격에 또다시 B급 차원종들 수십 마리가 널부러진다.
“내 편이 아니란 건 확실하지.”
그렇게 말하며 소년은 다시 전투자세를 잡았다.
“꼬마는 바보인 줄 알았는데 아는 게 있긴 하군?”
“깔깔. 그냥 너, 우리랑 같이 가지 않을래? 이렇게 널 혼자 버려 둔 인간들 따위는 알아서 잘 살게 내버려두고 말이야!”
“그래, 넌 버려졌어.”
“아니야, 난 버려진 게 아니야!”
소년이 화를 냈다.
“버리지 않았는데 ‘우리’ 같은 존재가 다가온다는 걸 알면서도 혼자 싸우도록 내버려 두었다는 거지?”
그들은 소년 앞에 모습을 온전히 드러냈다. 매끄러운 은발, 눈가의 새빨간 문신, 도무지 민간인의 옷차림이라고는 전혀 믿을 수 없는 화려한 옷차림이었다. 아마 인간이 아닐 것이다. 차원종인가? 차원종이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버리고 간 게 아냐. 날 믿어주고 있기 때문이라고!”
“그건 네 희망사항일 뿐이지.”
“어머, 왜 화를 내? 정곡을 찔렸나?”
“헛소리하지 마.”
“아아, 애써 모든 걸 좋게 생각하려는 건 그만두라고. 네 동료라는 자들이 너를 버렸다는 것부터 처절하게 인식하게 해주는 편이 좋겠어. 원래는 너 같은 녀석 따위는 한방에 날려버리고 저기 비겁하게 도망치고 있는 녀석들을 손봐줄 생각이었는데 말이야. 계획을 수정해야겠어.”
“너같이 예-쁘고 바보 같은 꼬마는 제대로 망가뜨려야 재밌으니까! 그렇지, 애쉬?”
“당연하지, 누나.”
그들은 붕 날아올랐다. 제이에게는 이제 그들의 목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너 하나 희생시켜 제 목숨들을 부지하겠다는 인간들의 심보가 참을 수 없이 건방져. 그러니 내기를 하자. 그들이 살 수 있다면, 그것은 네가 살 수 있을 때다. 네가 죽는다면, 그들 또한 죽어야 한다.”
“내가 왜 너희의 제안에 응해야 하지?”
“응하지 않으면 우리는 당장 그들부터 죽이러 갈 거니까. 못 할거 같나.”
부인할 수 없었다. 그들은 제이가 여태껏 봐온 차원종의 레벨을 아득하게 초월한 놈들이었다. 그런 위상력이 느껴졌다. 그들을 대면하고 있는 자신의 몸이 떨리지 않는 게 이상하다 생각될 정도로.
“끝까지 살아남는다면, 네가 이기는 거다.”
거대한 차원문이 열리며 A급으로 보이는 괴수들 수십 마리가 그를 에워쌌다. A급, 보통 [말렉]이라는 분류명으로 불리는 차원종이다. 이 타입의 차원종과 교전한 경험은 충분히 가지고 있었지만 이 정도의 숫자는 꿈속에서나 볼만한 것이었다.
“죽지, 않는다….”
목소리가 떨렸다.
“싸워라, 소년. 우릴 즐겁게 해 봐.”
수십 마리의 말렉이 일제히 괴성을 질렀다. 괴수의 울음소리에 귀가 먹먹해졌다. 소년은 전투자세를 취했다. 파란 눈이 시리게 빛난다. 쏘아보는 것만으로 살이 베일 것 같은 살벌함, 날 것의 눈빛.
“히야아아아아아아!”
1:1로도 종종 버거웠던 A급의 차원종이 수십 마리. 전략 따위가 있을 리가 없었다. 그냥 자신의 눈앞에 나타나는 모든 것을 물어뜯고 부수고 찢는다. 그것이 작전이었다.
살육은 나쁘지 않은가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전쟁터에 몰린 소년에게 더 이상 고민할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이 핏덩이와 거무튀튀한 살점을 아주 당연한 것으로, 평범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면 그는 제정신일 수가 없었다.
한 놈을 처리하는 사이, 다른 말렉 한 마리에게 다리를 붙잡혔다. 빠져나오려 해 봤지만 역부족이었다. 소년은 그대로 내동댕이쳐졌다.
“윽.”
부들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그가 다시 자세를 잡기도 전에 다른 말렉 하나가 돌진해오는 모습이 보였다.
저것을 정통으로 맞으면 죽는다.
그런 생각이 퍼뜩 들어 잽싸게 몸을 옆으로 굴렸다. 이 모든 것은 눈 깜짝할 새 일어난 일, 제이의 몸놀림이 울프팩 팀 내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빠르지 않았더라면 사망했을 각이었다.
소년은 다른 말렉의 턱에 힘껏 어퍼킥을 날리며 날아올라 말렉의 목 위에 착지했다.
제이는 오른손을 높이 들어올렸다. 혼신의 위상력을 너클에 끌어 모아 그것을 괴수의 척추에 꽂아넣었다. 소년의 힘은 괴물의 몸을 타고 흐르며 폭발했다. 우드득 우드득, 펑.
숨 돌릴 새도 없이 다른 놈이 그에게 달려들었다. 슈퍼아머가 어찌나 단단한지, B급 차원종을 상대하던 기술로는 그들에게 흠집조차 나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하지. 1을 생각해서 2를 하는 것으로는 부족한가.
그 때, 말렉의 날카로운 발톱이 그의 왼쪽 어깨를 파고들었다. 잠깐 생각에 빠져 미처 피하지 못했던 것이다. 끔찍한 고통이 느껴졌다. 발톱이 파고드는 순간 조금 몸을 비틀었기에 망정이지 그마저도 하지 않았다면 아예 팔이 잘려나갔을 것이다.
“하.”
왼팔이 움직이지 않았다. 전장 한가운데에서 평정을 잃으면 늘 이런 식이었다. 두려움을 가지는 순간 몸에 큼직한 상처가 생긴다.
왼팔은 마치 좀비의 팔처럼 덜렁거렸다. 소년은 두 다리와 한 쪽 팔만으로 어떻게든 싸우기로 한다. 상황이 아무리 개같아도 긴장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기로 한다. 어차피 결과는 똑같다. 오히려 그런 쓸데없는 감정은 자신을 패배하게 만들 뿐이다.
소년은 오른손으로 덜렁거리는 왼손을 꽉 붙잡고 하늘로 튀어 올랐다. 대충 궤적을 머릿속에 그려 본다. 위상력을 발끝에 집중시키고 음속으로 하강하며 말렉의 머리를 노린다.
쾅!
괴물의 턱이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그 반동으로 소년은 다시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그는 로켓처럼 날아오르고, 유성처럼 떨어졌다. 쉽게 이 광경을 설명하자면, 통통볼이 전장 하나를 헤집고 있는데 그 통통볼이 수 톤에 달하는 질량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아마 지금의 그와 비슷할 것이다.
“우와, 제법인데?”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할걸.”
속수무책으로 당하고만 있던 말렉들이 포효하며 자신의 손목을 속박하고 있던 족쇄를 물어뜯는다. 그리고 유성처럼 낙하해오던 소년의 발을 딱 하고 붙잡았다. 그리고 그 거대한 주먹을 꽉 그러쥐었다.
와드득.
괴수는 소년을 바닥에 패대기쳤다. 발이 ** 듯이 아파서 일어날 수 없었다.
“게임 끝이지?”
“아무래도 이 꼬마도 우리를 만족시키기엔 역부족이었나 봐!”
애쉬와 더스트의 말이 그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그는 생각했다.
내가 왜? 여기에 있더라?
왜나는지금혼자남아있지.누나는어디로가버린거지.만약전장에서죽는다면그것은반드시누나의곁일거라고믿고있었는데.왜혼자남아서싸우고있지?좋아하지만어떻게해야할줄몰라서.어린내가할줄아는거라곤당신의동료가되어싸우는것밖에없어서.초라한나는윤형만큼어른스럽고잘생기고똑똑하지도않아서.내가할수있는것은그저당신의곁에서싸우는것.그저옆에서싸우는것.그리고내가바라는것은싸움에서이겨서당신이내머리칼을쓰다듬으며잘했다고해주는따뜻한그한마디.그러니나는싸워**다.
내 몸이 부서져 사라질 때까지. 닳고 닳아 무너져버릴 때까지 싸운다 하더라도.
지금은 죽을 수 없다.
죽음에 근접하는 체험을 하며 인간은 폭발적으로 성장한다고 누가 말했던가. 죽음이 가득한 전장을 다니며 그건 무슨 헛소리인가 생각했다. 뭐, 실제로 많은 경우는 헛소리일 것이다. 그렇지만 가끔은 행운이 따를 때도 있는 법.
속에 있는 무언가가 팟 하고 깨지는 기분이 들었다. 어마어마한 압력이 그의 온몸을 휩싼다. 극도로 높은 밀도로 응축된 그의 위상력은 주위의 대기를 압도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짙은 황금색을 띠며 그의 주위를 맴돈다.
온몸에 황금빛의 위상력이 흐르는 느낌이 들었다. 발은 여전히 부서질 듯 아프지만, 그 힘 덕에 적어도 몸을 지탱할 정도로는 설 수는 있게 되었다. 소년은 으르렁거렸다.
“너희도 꼬맹이인 주제에….”
소년은 입 안 가득 차오른 피를 퉤 뱉어내었다.
“나보고 꼬마라고 하지 말란 말이야!”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까.
팔을 뻗어 너클을 한번 휘두르자 주먹을 내지르는 완력과 위상력이 뒤섞여 굉음을 내며 폭발한다. 괴수들이 다시 그를 향해 몰려들었다. 제이는 오직 오른손 하나만으로 싸웠다.
평소의 상태가 1:2라면, 현재의 상태는 1:4, 혹은 그 이상. 생각한 것의 네 배를 실행할 수 있는 힘. 게다가 이 기이한 힘은 마치 말렉의 슈퍼아머를 종잇장을 찢듯 쉽게 깨뜨리고 있었다.
수백의 사냥꾼들에게 둘러싸인 **늑대 한 마리가 이빨을 드러내고 처절하게 싸운다. 상처에서는 피가 솟아나고, 수십 군데에 골절상. 그렇거나 말거나 늑대는 자신의 적을 물어뜯고 발톱으로 쥐어뜯으며 그들의 숨통을 끊는다.
나는 싸우는 자다.
그르렁거리는 소리가 입가로 흘러나온다. 겉보기는 한 인간을 수백의 괴수가 둘러싼 꼴이나, 한 복판에 서 있는 저 '인간'이야말로 진정한 의미로 '야수'에 더 가까운 존재였다.
삼십분 정도가 지나자, 피투성이 전장에 꼿꼿이 선 채로 남아있는 것은
소년이었다.
“내기, 내가 이겼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