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하x유리 꼬마와 바보의 사이 下
블랙이세하 2015-03-21 7
*읽기 전에 주의*
-캐릭터 이해성이 부족해서 캐릭터 붕괴가 있을 수 있음
-세계관 붕괴일 수도 있고, 시간 축도 확실하지 않음
-그냥 시간 날 때 끄적인 것임.
-진짜 그게 다임
-그래도 괜찮으면 스압 조심하면서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그는 완전히 게임에 집중하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된 이상 분명히 그는 내가 하는 말을 하나도 듣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것까지 확인하고 나는 비로소 고개를 들었다.
"...하아..."
그가 이상한 말을 하는 바람에 그만 당황하고 말았다.
아니, 고맙다는 말은 생각해보니 그렇게 이상한 말도 아닌가.
하지만 최근 의외로 그의 가벼운 말 한마디 한마디에 반응하기 쉬워진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어째서인지 생각해보면 그건 매우 낯간지러운 일인데다가 처음 느끼는 감정도 섞여서 결국 답을 알아낼 수 없다.
으응~, 뭐. 난 바보니까 어차피 생각해봐도 답을 알 수 있을리 없나.
"...그나저나 실수 했는 걸."
옆에 있는 세하의 얼굴을 바라보는 걸 그만두고 머리를 긁적였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몇 시간 전, 나는 훈련을 끝내고 잠시 검은 양의 방에 들렸다. 학교 가방을 거기에 놔두고 훈련하였기 때문이었다.
별 생각 없이 문을 열었는데 거기에는 세하가 곤히 자고 있었다. 게임기를 손에 쥐고 자는 것에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나는 그의 얼굴에 시선이 박혔다.
귀찮아하며 불평불만으로 꽉 조인 듯한 언제나의 표정이 풀어져 있었다. 마치 이 곳은 마음을 놓을 수 있는 장소인 것 같은 표정이었다.
잠들어 있으니 그런 표정을 짓는 것도 당연하지만, 나는 내 마음대로, 내가 그와 단 둘이 있다는 사실에 더욱 중점을 두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몸이 저절로 움직여서 그에게 모포를 덮어주었고, 조금이라도 더 그의 얼굴이 보고 싶어서 그의 맞은 편에 앉았다.
깨워야 하는 건 알고 있지만 그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즐기기 위해서 깨우기가 싫었던 것이다.
"정말 조금만 더 지켜볼 생각이었는데..."
그것이 정신을 차리니 세하가 나를 깨우고 있었다.
마음이 편안해지는 그의 얼굴을 앉아서 바라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는 새에 잠에 들고 만 것이다.
그렇기에 왜 자신을 깨우지 않았냐는 그의 질문에 솔직하게 대답할 수 없었다. 자는 그의 얼굴을 조금 더 보고 싶어서 깨우지 못했다고 말하는 것은 아무리 나라고해도 창피하다.
아니, 그렇지도 않은가. 생각해보니 만약 그것이 정미나 슬비에게는 서스럼없이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정미나 슬비 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금 것은 분명 세하라서 이야기를 하지 못한 것이다.
...어째서지?
"으응~?"
무심코 목소리로 나올 정도로 고민해본다.
하지만 역시 바보라서, 답을 알아내지 못한다.
거기다기 이 문제는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가슴이 답답해지는 듯한 얼굴이 달아올라서 평소보다 빨리 생각하기를 그만두기로 한다.
"...히히, 뭐 상관없나. 오랜만에 그런 꿈도 꿨으니까."
나는 쓴웃음과 함께 지하철의 창문 밖으로 지나쳐가는 풍경을 바라본다.
나는 그가 나를 깨우기 전까지 꾸고 있었던 꿈. 그건 과거에 진짜 있었던 이야기였다. 잊을 수 없는 이야기.
나는 그가 게임에 빠진 사이에 그 꿈을 다시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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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은 새벽에 불려나가게 되었다.
갑작스럽게 차원종이 대량출현하는 바람에 어떻게든 인력이 필요했던 것이다.
위상력에 각성한지 얼마 안 되었고 갑작스럽게 검은 양이라는 팀에 소속되었지만 새벽에 불려나간다는 사실에 큰 감흥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예전부터 새벽에 일하러 돌아다닌 적은 많았다. 우유배달이라던지 연탄배달이라던지 골판지 줍기라던지...
돈이 없으니 해야할 건 많았다. 돈이 없는 자들에게 있어서 이 세상은 새벽이던 저녁이던 무엇 하나 다를 거 없이 전장이다.
"하앗...!"
그러니까, 수많은 차원종을 칼로 베고 총으로 쏴죽이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에도 무감각으로 있을 수 있었다.
애초에 일할 때는 쓸모없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저 몸만 지시에 맞춰서, 경험에서 흘러나오는 대로 행동하면 된다. 나는 바보니까 그게 가능하였다.
응, 문제없다.
"하아... 큿... 하아..."
그나저나, 지쳤다.
꽤나 체력을 쌓아왔을 터인데도 위상력을 쓰면서 여기저기 달리며 몸을 움직이니 금방 지쳐버리고 만다.
잠깐 숨을 돌리기 위해서 멈춰섰다.
"응...?"
그리고 그 녀석의 존재를 알아차렸다.
몰라보는 것이 이상할 정도의 존재감이 그 녀석에게서 발산되고 있었다.
그 녀석은 차원종들이 난리를 치는 이 자리에서 평소와 다를 바 없이 게임기를 쥐고 게임을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자신에게 다가오는 차원종들은 확실하게 처리하니 처음보는 사람이라면 도대체 저게 무슨 상황인지 궁금할 것이다.
"...아하하."
그럴만도 하다 처음 보는 게 아닌 나도 그 광경에는 실소가 흘러내렸다.
그러자 어느 정도 긴장도 풀려서 피로도 조금은 날아갔다.
"하여튼, 정말 못 말리는 녀석이라니까."
나는 고개를 옆으로 흔들고는 차원종들을 베어나가면서 그의 근처로 다가갔다.
"여! 세하야!"
놀래켜주려고 큰 목소리를 내본다.
그리고 그 작전은 멋지게 성공하여, 세하는 목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하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 쪽을 바라보았다.
"...뭐야, 서유리잖아. 놀래라."
게임기에 다시 시선을 되돌리는 이세하.
그와 동시에 그의 옆으로 재빨리 접근해온 차원종을 그는 멋지게 처리하였다.
"야, 너무하잖아. 사람이 말 걸었는데 다시 게임기를 보다니..."
나도 마찬가지로 이야기하면서 차원종을 처리한다.
"아아, 조용히 해봐. 지금 보스전이란 말이야."
"그게 뭐가 그렇게 대단한 거라고."
"뭐?! ...에효, 너한테 이야기를 하고 있는 내가 잘못이지. 내가 여기 쏟아부은 노력과 시간을 들으면 그렇게 말하지 못할 걸?"
"그걸 들으면 어이가 없어서 아무 말도 못할 것 같은데?"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계속하다보니, 어느새인가 우리는 등을 맞대고 대화를 계속하면서 차원종을 처리하고 있었다.
차원종들이 무리를 지어 주위에 나타나는 이 곳에서 우리가 있는 장소만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다.
그의 이야기에 나는 웃으면서 대답하고 거기에 그는 어이없어하면서 게임을 계속한다.
그 곳은 더 이상 전장이라는 장소가 아니었다. 이 곳은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나여도 마음을 놓을 수 있는 장소, 마치 학교와도 같은 장소였다.
"그나저나, 존경할 것 같다니까. 게임하면서 어떻게 그렇게 완벽하게 차원종을 쓰러뜨리는 거야?"
"...익숙해지면 별 거 아니야. 원래 게임을 방해하는 소리에 민감하니까 조금만 더 집중하면 출저도 알 수 있는 거 뿐이니까."
"아니, 그 정도면 엄청 대단한 것 같은데..."
무슨 마음의 눈으로 보는 것도 아니고...
"...응?"
"왜 그래?"
"조용히 해봐. 지금 사람의 목소리를 들은 것 같아서 그래."
"뭐!?"
아무리 우리가 차원종을 많이 처리하고 있다고는 해도 민간인이 들어온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이다.
그야말로 자살행위이다.
"이 쪽이야!"
비상사태라고 인식한 것인지 세하는 게임기를 자기 주머니에 바로 넣고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자신이 나서는 길을 막고 있는 차원종을 처리하면서 달려가는 세하를 나도 쫓아갔다.
그리고,
"히, 히익..."
그 곳에는 고 위험 차원종들에게 둘러싸인 일반시민으로 판단되는 여성이 땅을 기고 있었다.
필사적으로 땅바닥을 기는 모습은 그가 처한 상황이 긴급상황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하아...!"
그 상황을 나보다 먼저 인지한 세하는 바로 위상력을 개방하여 그 여성과 차원종 사이로 끼어들었다.
"너, 너는... 클로저스?"
갑작스럽게 나타난 세하를 보고 그 여성은 떨리는 목소리로 물어보았다.
"......"
세하는 대답도 하지 않고 바로 고 위험 차원종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내가 개입하기도 전에 세하는 위상력을 개방하여 평소보다 민첩하고 무거운 공격을 적에게 가하였다.
결과, 내가 손을 댈 것도 없이 그 주변의 고 위험 차원종은 반토막이 났고 그 차원종을 따르던 하급 차원종들은 당황하며 도망가기 시작하였다.
"......"
세하는 그대로 대쉬로 달려나가서 도망치던 차원종들을 하나하나씩 처리해나갔다.
푸른 빛을 내뿜는 위상력을 휘두르는 그 모습은 사람의 마음을 내리치는 것과 다름없는 감동을 전해주었다.
나는 완전히 거기에 매료되어 버려 정신을 차리니 주변에는 차원종이 하나도 없었다.
"...후우..."
주위에 차원종이 더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세하는 숨을 작게 내쉬었다.
그 후, 옷에 묻은 먼지를 털려고 손으로 옷을 몇 번 치더니, 나에게 시선을 보내었다.
의미를 몰라 멍하니 바라본 나에게 그는 엄지손가락을 척 들어보이더니, 바로 게임기를 꺼내서 다시 게임을 하기 시작하였다.
...아무래도 뒷처리는 부탁한다는 시선인 모양이다.
분명히 난 차원종을 쓰러뜨리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갑자기 뒷처리를 부탁받아도 말이지...
뭐, 어쩔 수 없나.
"저기요, 여기 계시면 안 되요. 어서..."
피난하세요, 그렇게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굉장해!!"
갑작스럽게 예상치 못한 말을 그 여성은 외쳤다.
"저렇게 차원종에 대해서 이 정도로 압도적인 강함을 보일 줄이야!! 아아, 정말이지. 감동적이야!!"
"에...?"
나는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잠시 멍하니 서있을 수 밖에 없었다.
"나 같은 평범한 인간은 절대로 이겨내지 못하고 살아있는 채로 분해당했을 저 차원종을 일격으로 없애다니, 역시 너희들은 인류의 마지막 희망이라고 불릴 존재이네!"
그녀는 만면의 웃음을 띠면서 나에게 다가왔다.
"이렇게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하디니, 마치 꿈만 같아! 응? 아하하. 아아, 미안미안.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지? 제대로 설명하는 걸 잊어먹었네. 정말이지, 글러먹었다니까."
가느다란 팔을 길게 펼치며 나를 안으려는 것처럼 그녀는 다가왔다.
"으음, 그러니까 말이지. 난 너네들을 여태까지 계속 존애해왔어. 애초에 여기 온 것도 너희들을 보러 온 거야. 죽기 직전에 너희들의 활약을 내 눈에 새기면 그걸로 오물 같은 인생에도 의미가 있었을 거야."
"그, 그런 이유로 위험 지역에..."
"그런 이유라니, 말도 안 돼. 인생을 걸만한 이유라고? 아아, 미안. 잊어버리고 있었어. 열악한 내 시점으로 너희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리가 없지. 응, 나는 그런 하찮은 이유로 여기까지 온 거야."
여전히 웃고 있었다.
자존심을 내버리며 비하할만큼 비하하면서, 우리들을 떠받들면서도 그녀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그것이 꾸민 미소가 아닌 진심으로 짓는 미소라는 사실을 깨닫고 나는 무심코 뒤로 발을 내빼고 말았다.
그녀의 미소는, 솔직하게 말해서 소름끼칠 정도로 기분 나쁘며 또 무서웠다.
위상력을 발현한 다음 나는 여러사람을 만나왔다. 위상력을 가진 것만으로 차별하는 사람, 위상력을 가진 것만으로도 자신을 특별한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모두 삐뚤어져 있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어서, 속을 썩혔었다. 그러나 모두 마음을 아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납득도 갔었다. 모두 다 자기자신의 생각을 혹은 마음을 소중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취한 행동이라고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눈 앞의 그녀는 조금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자신을 아껴서 하는 행동이 아니었다. 그녀는 그녀가 아닌 다른 누군가, 클로저스들을 압도적일 정도로 사랑하고 있기에 하는 행동인 것이다.
"응? 아아, 미안해. 생각해보니, 내가 너네들의 길을 막고 있는 거지? 마지막으로 한번만 안아봐도 될까. 클로저스인 너희들에게 건들면 이런 보잘 것 없는 나라도 뭔가 좋은 일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말이야.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괜찮겠지? 응?"
그녀의 말을 듣고 있자니, 클로저스에 내가 해당한다는 것이 버틸 수 없을 정도로 무서웠다.
점점 다가오는 그녀가 마치 뱀처럼 느껴졌다. 뱀의 눈초리로 이 쪽을 계속해서 바라봐서 더 이상 도망치는 것도 잊어버리고 완전히 얼어버렸다.
움직일 수 없는 몸이 공포로 부들부들 떨리는 것을 실감한 그 때였다.
"...그 정도로 해두세요."
세하가 갑작스럽게 다가와서 나와 그녀의 사이에 끼어들었다.
"저희는 바빠서 이만 가봐야 할 것 같네요."
그리고는 나의 손을 낚아채서는 재빨리 그 자리에서 벗어나려고 하였다.
하지만...
"...아아!! 기억났다!!"
뒤에서 손바닥을 치면서 기뻐하는 목소리에 우리는 다시 한번 발걸음을 멈추었다.
"계속 생각했거든. 너를 도대체 내가 어디서 봤더라하고 말이야! 지금 겨우 떠올렸네. 이렇게 중요한 사실을 잊어버리고 있었다니 역시 죽어서 다시 태어나는 편이 좋을 것 같네."
"......"
"너, 알파퀸의 아들이지?"
그녀는 종종걸음으로 달려와 이번에는 세하의 앞으로 돌아섰다.
"역시나! 그녀를 많이 닮았네! 어쩐지 아까 싸우는 모습도 눈에 익더라. 위상력을 아끼지 않고 싸우는 그 모습, 속이 후련할 정도로 시원시원한 공격...! 역시나 그녀의 아들이야!!!"
그녀와 대치한 것으로 인해서 세하의 손에 힘이 들어가지는 것이 느껴졌다.
"네가 그녀의 아들이라는 중요한 사실을 간과해서 말하기 힘들지만, 사실 나 그녀의 엄청난 팬이야. 애초에 내가 너희들을 존애하게 된 것도 다 너네 어머니 덕분이야. 그녀의 싸움을 한번 보고나니 내가 살고 있었던 삶은 전부 거짓이고 너희들이 사는 진실된 삶을 지원하는 엑스트라라는 것을 깨달았거든."
"......"
"아하! 좋네, 그 표정. 이런 나를 향해 그런 표정을 지어준다니 서비스 정신이 뛰어난 걸? 그런 점도 그녀를 닮은 걸까나?"
그녀의 말에 대해서 세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뒤에 서있어서 그가 어떤 표정을 지어보이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그는 화를 내고 있을 것이다. 이 정도의 말을 들었다. 화를 내지 않는 것이 이상할 것이다.
"지금이라면 이런 소원도 들어줄려나?"
"무슨..."
"응, 나를 죽여줘."
"뭐...!"
"생각해 봐. 너네들은 차원종을 죽이지만 사람은 죽인 적이 없잖아? 그거 역시 이상하다고 생각한단 말이지. 그게 그것도 그렇잖아? 너네들은 나같은 하찮고 평범한 인간을 초월한 위대한 존재인데, 인간의 법률에 매달려서 인간과 생활을 계속한다니 이상해."
그녀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나는 이제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그저 흘릴 수 없이 들려오는 그녀의 목소리가 너무나도 불쾌하여 청각을 잃어버렸으면 좋겠다고까지 생각하였다.
"인간 뿐만이 아니야. 너네들은 차원종들보다도 강해. 으응, 차원종 뿐만이 아니라 분명 이 지구 상의 어떠한 생명체보다 너네들은 우월한 존재야. 그런데도 이 세상은 그걸 잘 몰라. 나보다도 미천하게도 너네들의 중요함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배척하려는 자들이 그 증거야. 그러니까 다시 한번 이 세상에 알리기 위해서는 사람을 사냥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더 이상 무리다.
차원종을 쓰러뜨리는 것 이상으로 정신을 갉아먹혔다.
그녀의 말 한마디 하나하나가 나의 마음을 베어나가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부디 최저인 나를 죽이고 너희들은 앞으로 나아가 줘."
"...흐응. 그렇네요. 그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모르겠네요."
"뭐?"
나는 놀라서 눈 앞의 그를 바라본다.
"이, 이세하...! 너 지금 무슨 말을...!"
내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그는 정말로 손에 쥔 그 검으로 그 여성의 목에 가져다 대었다.
"아아, 멋져..."
여성은 이제 곧 죽는 사람의 얼굴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황홀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세하야...!"
나는 어떻게든 최악의 상황을 막으려고 세하의 손을 꽉 쥐고 끌어당기려고 하였지만 그가 힘을 주고 버티고 서있어서 제대로 되지 않았다.
"그럼 죽으세요."
그의 말에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한동안 침묵이 계속 되었다. 끝나버린 것일까.
...아니다. 그렇지 않다. 그렇게 생각하였지만 그래도 확신을 가지기에는 불안해서 조심조심 눈을 떴다.
그리고 곧 나의 생각은 정답이라고 판정되었다.
"라거나."
세하는 그녀를 죽이지 않고 칼을 거둔 것이다.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길래 혹시나 했는데 다행이다, 라고 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어째서..."
여성은 자신이 죽지 않은 것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절망에 빠진 듯한 얼굴로 이 쪽을 바라보았다.
"어째서 나를 죽이지 않는 거야!! 나를 죽이면 너희들은 새로운 단계로 넘어갈 수 있잖아!!"
"시끄러워요. 저희가 갈 길은 저희가 정해요. 당신에게 여러모로 들을 이유는 없어요."
"...아아, 그렇구나. 응, 하찮은 내 이야기는 의미를 가지지 않는구나. 후후. 그걸 잊어버리다니 역시 글러먹었네."
"뭐, 그런 의미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여기서 더 이상 이야기하는 것도 이상하니 대피하도록 하죠."
세하는 그렇게 말하고 난 다음,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거기에 나도 손이 이끌려 앞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저, 저기. 세하야?"
"뭐야?"
"손... 놔줄래?"
아까부터 조금 힘이 강하게 들어가 있어서 조금 부끄럽다고나 할가.
으응. 심장이 조금 빨리 뛰는 것 같은데... 기분 탓이겠지.
전혀 기분 탓인 것 같지 않아서 숨도 가빠지지만...
"어? 아, 아아! 응. 미안."
세하도 의식적으로 그런 것은 아닌지 놀래서 바로 나의 손을 놓았다.
그게 약간 아쉬웠다고 생각한 것은 어째서일까.
"풋풋하네요."
여성은 그런 우리를 바라보며 여전한 미소로 입을 열었다.
그리고 그 말의 뜻을 알기에 우리는 그녀와는 반대로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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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차원종들을 헤쳐나가서 그 여성을 제대로 안전한 곳까지 피난시키자 상황이 종료되었다.
다른 검은양 팀원들 및 클로저스들이 우리가 잠시 업무에서 이탈한 동안 모든 차원종을 처리한 모양이다.
"후우, 지쳤다."
나는 게임기를 켜서 다시 게임을 시작한 세하의 옆에 앉아 그렇게 말하였다.
세하는 아무 말도 되받아치지 않고 그저 기계처럼 콘트롤러 버튼을 누른다.
"게임 재밌냐?"
"뭐, 그렇지."
"고전하고 있는 것 같은데..."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그래. 그런 점도 포함해서 재밌다고."
"흐응..."
나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지만 도저히 물어볼 수 없다.
그건 과연 그가 오늘 같은 여성을 이미 과거에 한번 만난 적이 있을까 하는 것이다.
나는 위상력을 발현한지 얼마 되지 않았고, 슬비는 시설에서 자라서 위상력을 가지지 않은 자들에게 노출된 적이 거의 없다.
하지만 세하는 다르다. 어머니의, 알파퀸으로서의 명성 밑에서 위상력을 가지지 않은 자들에게 계속 노출되어 왔다.
그렇다면, 오늘 같은 여성을 몇 번 만났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
"으악, 갑자기 거기서 튀어나오는 게 어디있어!!"
그런 내 생각은 조금도 고려하지 않은 채 게임을 하며 소리지르는 이세하.
아까 의연하게 여성과 이야기하던 사람과 동일인물이라는 것이 아직 믿겨지지 않는다.
"...죽기 직전인 것 같은데...?"
"그렇게 쉽게 죽을까보냐."
역시 어린아이, 꼬마와 같은 말을 하는 그이다.
내 눈에 세하는 덩치만 큰 꼬마와 같다. 게임을 좋아하고, 귀찮은 건 배척하며 어른들을 싫어한다.
어째서 그렇게 되었는지는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다. 아마 오늘 그 여성과 만나지 않았으면 영원히 생각했을 일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 그 일은 일어났고 나는 어째서 그가 이렇게 되었는지를 상상할 수 있게 되었다. 분명히 그녀의 어머니의 인기에 힘입어 그에게도 여러군데에서 손이 뻗어져 왔을 것이다. 분명 오늘 만난 그 여성과 같은 사람에게로부터도.
그렇게 생각하니, 오히려 지금 이렇게 제대로 있는 편이 대단한 것이겠지.
"으아, 죽었다."
세상은 불공평하다.
위상력이 있는 자와 없는 자. 돈이 있는 자와 없는 자.
이렇게 태어났을 때부터 나뉘기에 세상은 불공평하다고 나는 어렸을 때부터 실감하여 자라왔다.
하지만 나는 어느 쪽이던 없는 자의 쪽이었기 때문에 있는 자들의 마음은 생각하지 않았다.
있는 자들은, 있는 자들 나름대로 고통이 있었다. 그걸 이세하를 통해 깨달았고, 그를 통해 깨달았다는 사실이 마음이 아팠다.
"으윽, 세이브도 제대로 안 했는데..."
그렇다면 뭐냐. 결국 있는 자도 없는 자도 둘 다 마이너스 요인이 존재한다는 거 아닌가.
너무한다. 있는 자들에게도 그리고 없는 자들에게도 불행만은 반드시 필연이라니. 어째서 세상은 이런 식으로 되어있는 걸까.
이런 세상 따위---
"...멸망해버리면 좋을텐데."
"어?"
한순간, 내가 입 밖으로 내뱉은 줄 알고 놀랐으나, 그것이 아니었다.
세하가 내뱉은 말이라는 사실에 나는 다시 한번 놀랐지만 애써 숨겼다.
"어째서?"
"뭐가 어째서야. 세이브를 안 했다니까."
...으이구, 그럼 그렇지.
나처럼 뭔가 생각이 있어서 그런 줄 알았네.
"그러게, 세상이 멸망해버리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지도."
"응? 그건 안 되지."
"뭐어? 세하 네가 말한 거잖아."
"생각해보니 그러면 게임을 못 하잖아."
"으이구, 정말 너답다. 너 다워. 그렇게 게임이 좋냐."
"응."
돌아온 대답은 역시 빨랐다.
나는 잠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어이가 없어서 그런 것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것보다,
"게임을 하고 있을 때 동안은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아도 되니까."
그의 눈동자에 완전히 시선이 빼앗겨버린 것이다.
무심한 눈동자. 마치 이 세상과는 무관하여 아무것도 비추지 않는 듯한 눈동자였다.
그 눈동자에 나는 숨을 내쉴 수가 없었다.
"...그렇구나."
나는 작게 중얼거렸다.
그렇게 중얼거릴 수 밖에 없었다.
그 후에 찾아온 침묵에 나는 결국 버티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다른 사람들 찾으러 나는 가볼게."
빨리 이 자리를 뜨자.
자존심이 강한 그에게 내가 그를 안타깝게 여기고 말았다는 것을 들키지 않도록.
"어? 같이 가자."
"으응, 게임하고 싶으면 굳이 따라오지 않아도..."
"아니, 괜찮아."
"어?"
세하는, 게임기를 주머니에 넣고 이 쪽으로 시선을 향하였다.
"그것보다도 다른 사람들 찾으러 가는 게 더 중요하잖아. 다쳤을지도 모르고."
"......"
"아니, 다쳤을리는 없나. 하하. 으음~, 예상하건대 이슬비는 분명히 또 우리가 없다고 난리를 치고 있을테고 늦게 나타나면 나타날 수록 내가 게임하다 늦었다고 그러겠지? 아저씨는 이렇게 많은 차원종들을 상대로 하고 몸이 괜찮을런지 모르겠네. 테인이는, 뭐... 괜찮겠지."
나는 이번에도 말이 나오지 않았다.
어이가 없어서가 아니었다. 그저 부끄러워서였다.
"...응. 그렇네."
나는 그가 불쌍하다고 생각하고 말았다.
그가 완전히 망가져서 이 세상의 어떠한 것도 눈에 비추지 않는다고 믿어버렸다. 더럽지만 아름다운 것도 분명히 있는 이 세상의 어떠한 것도 ** 않는다고 믿어버렸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그는 싫어하는 것으로부터 분명히 시선을 돌리고 있어 그 눈에 비추지 않지만, 좋아하는 것은 똑바로 쳐다보며 아낄 줄 안다.
주위의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이 가능한 사람인 것이다.
그런데도 나 혼자 앞서서 판단하고 말았다. 혼자서 모든 것을 이해한 듯한 자세로 그를 불쌍하게 여겼다.
역시 난 어쩔 수 없을 정도로 바보다.
"아, 저기 있다."
내 뒤를 가리키며 세하가 말하였다. 아마도 내 뒤에 슬비와 아저씨 그리고 테인이가 있는 것이겠지.
하지만 그들을 확인하기 전에 나의 시선은 다른 것에 박혔다. 그건 매우 짧은 순간이었다.
매우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의 눈동자가 반짝인 듯하였다. 아까의 무심한 눈동자와는 달리 빛을 발하는 눈동자였다.
그리고 입가도 미묘하게 풀어져 있었다. 그 얼굴에 나는 완전히 시선을 빼앗겨버리고 말았다.
"응? 뭐해? 가자."
그는 여전히 그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자신이 좋아하는 무언가를 따뜻하게 밝게 바라보는 그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았다.
아까의 무심한 눈동자와는 확연히 달랐다. 그리고 그 차이를 깨달았을 때, 가슴에서 무언가 이상한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어? 아... 응..."
...아아, 이건 당하고 말았구나.
그런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아직까지도 도대체 뭘 당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를 여태까지와 비슷하게 생각하는 것은 분명히 불가능일 거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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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하야. 도착했어."
게임기를 만지는 그를 흔들며 그가 내려야하는 곳을 가리켰다.
그는 게임기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지하철에서 내렸다.
으응... 인사도 안 하는 거냐. 여심을 모르는 녀석 같으니라고.
그렇게 조금 뚱해져 있자니, 갑작스럽게 세하가 이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 눈은 여전히 무심한 듯한 눈동자였지만, 그 안에 작은 빛이 짧게 흘러내린 것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내일 또 학교에서 보자."
그는 웃으면서 그렇게 말하고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윽...!"
또 당해버리고 말았다...!
지하철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여전히 뭘 당해버리고 만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뭐, 아무래도 좋나.
어차피 나는 바보라서 생각해봤자 모를 것이다.
나는 기지개를 쫙 피었다.
"오늘도 세상은 멸망하지 않고 잘 지나가는 구나."
세상이 멸망했으면 좋겠다고 오늘은 내가 먼저 이야기했다.
무심코 옛날이 생각나서 그렇게 말한 거지만, 설마 그가 그런 반응을 보일 줄은 몰랐다.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매우 궁금하지만 이것도 분명히 내가 알 수 있는 영역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알고 싶다면, 내일 다시 그와 만나 제대로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다.
"히힛. 기대된다...!"
세상이 멸망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다...!
알고 싶으니까, 나는 내일 다시 그와 이야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사실에 가슴을 부풀며 나는 창가에 비친 내 자신을 향해 웃어보였다.
아직 이러한 감정들이 무엇인지 나는 모른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그와의 기억들과 분명히 이 감정은 계속해서 살아나갈 것이라는 것이다.
기억들은 계속 갱신될테니, 분명히 이 감정도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어져 나가겠지.
그리고 그러다보면 언젠가 이 감정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 날을 생각하면 조금 두렵지만,
"...빨리 내일이 되었으면 좋겠네."
동시에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그 날을 맞이하고 싶다고 생각해버리고 만다.
그 날, 도대체 꼬마와 바보의 사이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 있을지 알고 싶다고 생각해버리고 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