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CLOSER _ J

굉장한펀치 2015-03-18 7

"어디 한 번 견뎌보시지 - !!"




쿵!!





굉음이 큐브 내부를 강하게 울렸다.




--




아스타로트를 쓰러뜨리고 얼마 후, 뒷 늦게 떨어진 승급 기회를 붙잡은 결과, 또다시 정식요원이다.



뭐, 원래대로라면 무시하고 넘어가려 했지만, 검은양 동생들에게 떠밀려 억지로 여기까지 해내버렸다.



"으잇... 간만에 무리했더니 허리가..."



사무실 문을 열고, 얼마 가지 못해 다리에 힘이 풀려 가까운 의자에 불시착한 제이는 자연스레 천장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몸 상태가 이래서야... 애들은 커녕 내 몸 하나도 못... 쿨럭!"



아아, 또 각혈이다.



제이는 다급한 움직임으로 주머니에서 알약을 꺼내 들고, 쓰디쓴 가루약과 함께 물없이 씹어 삼켰다.



쓴맛이 입 안을 괴롭혔지만 그는 딱히 신경쓰지 않는다.



이어서 이상하게 조용한 사무실 내부를 빙 둘러보았다.



"그러고 보니, 애들은..."



그제서야 이 공간에 자신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직후, 콰앙!! 하는 소리와 함께 기세 좋게 사무실 문이 열렸다.



안으로 뛰어 들어온 것은 작은 체구에 어느 모로 보나 이쁘장한 독일계 여자아이 같은 은발 소년 미스틸테인이었다.



"...이, 있다."



소년은 왠지 모르게 땀을 줄줄 흘리며 제이쪽을 한동안 조용히 응시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소년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아... 저씨... 세하, 세하형이..."



거기까지만 들어도 제이의 시간은 멈추었다.



제이는 이런 상황을 경험한 적이 있다. 십수년 전, 최초의 전쟁으로 인해 죽어나간 수만명의 클로저. 그들의 시체 옆에서 눈물



을 훔치며 삼켰던 절규, 그것을 참아냈을때 흘러나오는 억양.



현재 눈 앞에 서있는 소년의 목소리는 그에게서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알았어, 알아들었으니까. 건강에 해로운 말은 거기서 끝내."



그는 두 손으로 무릎을 짚고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 시선을 돌려 책상 위에 유니온에서 미리 지급해둔 정식요원복을 한동안 쳐



다본다.



"미스틸, 먼저 가서 시간을 조금만 끌어줘."



"...아저씨?"



"걱정하지 말고, 조금, 아주 조금이면 돼."



그때, 미스틸의 시선에 선글라스 너머로 보이는 남자의 강렬한 눈빛을 보았다.



그것을 봐버린 이상, 소년의 행동은 명확하게 정해졌다.



눈 앞에 청년에게서 무언가를 전해받은 소년은 자신의 얼굴에 흐르던 눈물을 훔쳐내고, 발길을 돌려 사무실 바깥으로 달려나


간다.



그것을 지켜본 제이는 비닐로 포장된 의복을 손으로 움켜쥐었다.



그리고.



"부정할수 있건 없건."



포장된 비닐을 벗겨내며.



"부정하고 싶은 일은 나중으로 미루고 싶어지는 법이지."



비닐을 벗겨낸 정식요원복을 양손으로 펼치면서.



"그러니까. 지금만큼은 이 빌어먹을 현실따위 필사적으로 부정해주겠어."




--




강남의 시가지 상공.



낮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주변은 칠흑같이 어두웠다. 그 이유는 바로 뇌운.



어떤 차원종에 의해 발생된 대량의 위상력으로 인해 생성된 먹구름들이 모이고 모여서 신서울의 하늘을 덮어버렸다.



그리고 그것을 덧칠하듯 팡!! 하는 소리와 함께 하늘을 가르는 무언가가 있었다.






사이킥 무브.






몸 전체에 분포된 잉여 위상력을 하체쪽으로 응축시켜, 단숨에 땅을 박차 지상에서 상공으로 자신의 몸을 포탄처럼 '발사'시킨


다. 그것만으로 자유롭게 상공을 활공해 장소를 옮기는 클로저들만의 이동법이다.



미스틸은 사거리의 육교 위에 가볍게 착지했다.



거기서 미스틸의 눈썹이 크게 찌뿌려졌다.



"뇌수... 키텐."



거리는 약 50미터.



그곳에서 크게 울부짖으며 몸에 번개를 쬐고 있는 사자형태의 마수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 무릎을 꿇고 힘없이 쳐져


있는 분홍머리의 이슬비와, 신호등에 기대어 정신을 잃고 있는 긴 생머리에 검은 스타킹이 특징인 서유리가 눈에 들어오고.


그리고 슬비의 몸에 얼굴이 가려진 채 쓰러져있는 이세하의 모습까지 볼 수 있었다.



미스틸의 마음 한켠이 강하게 일그러졌다.



"...세하 형."



그의 상태를 알기에 더더욱 가슴이 아프다.



"...반드시...!!"



미스틸은 손에 쥔 창을 더없이 강하게 움켜쥐었다.




--




같은 시각, 지급받은 새옷으로 갈아입은 제이는 유니온 건물 밖으로 걸어나섰다.



먹구름이 낀 하늘을 올려다보며, 그는 중얼거린다.



"오늘 같은 날엔, 조금은 맑아줬음 했는데."



그의 표정은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이 그의 기분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억누른다.



짐승처럼 이를 드러내지도, 분노가 담긴 절규를 내지르지도 않는다.



자신의 감정을 억눌러 죽여가며, 그는 조용히, 그리고 낮게 중얼거린다.



"마지막으로, 클로저로서 닫아야 할 문을 닫으러 갈 시간이야."



이제 그는 자신의 몸을 묶고 있던 지긋지긋한 질병도, 그에 대한 절제도 없다.




--




전투가 시작된지 3분쯤 지났을까.



"아악 - !!"



미스틸은 격통을 호소하며 차가운 바닥으로 무너졌다. 그가 자랑하던 랜스는 이미 산산히 부숴졌고, 의식마저 희미했다.



없는 힘을 쥐어 짜내어 고개를 들어보니, 번개의 괴물은 어두운 주변을 밝히는 빛을 뿜어내며 이쪽을 향해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젠, 장..."



짧은 시간에 클로저로서의 위상력마저 바닥을 본 상태의 소년은 미스틸테인이라는 이름을 가진 나약한 어린아이일 뿐이다.


그 상태로 덤벼든다 해도, 결과는 불을 보는 것보다 뻔하다.



"테인...아...!!"



뒤쪽에서 낮고 힘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볼 수는 없지만, 아마 슬비누나일 것이다. 내가 죽는 모습이 보기 싫어서 다급한 목소리로 말리고 있는거겠지.


만약 유리누나가 깨어있었다면 이런 날보고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아, 그리고 세하 형.



...



"...세하 형."



미스틸은 바닥에 돌맹이를 움켜쥐었다.


그것을 앞으로 내던지며, 마지막 힘을 쥐어짜내며 소리친다.


"왜, 왜 지금이야!! 왜 내가, 내가 가장 행복한 시기에 나타나서 모든걸 휘저어 놓는건데!!"


힘이 빠진 소년의 손에서 떠단 돌맹이는 괴물에게 닿지 못한다. 그럼에도 미스틸의 목소리는 한없이 높아져만간다.



"싫어, 이런건 싫다고!! 왜 전부 이렇게 가버리는건데!!"



그리고.



쿵!!



하는 발자국 소리가, 미스틸 바로 앞에서 울렸다.




뇌수 키텐.




A급 차원종 말렉의 아종. 말렉의 유전자가 돌연변이화 되어 더욱 강하게 변질된 변이종.


그 힘은 가히 신서울 전체를 먹구름으로 덮어버리고, 그 전체를 자신의 영역으로 삼아버린다.


그런 괴물의 거대한 팔이 하늘 높이 치솟았다.


그것만으로 시야는 하얗게 물들고, 지직 거리는 기분 나쁜 소리가 일대를 울린다.


이번 일격이 직격한다면 미스틸 뿐만 아니라 이 일대 전체가 새까만 재가 되어버릴 것이다.


그런 상황에도 미스틸의 입은 움직였다.



"뭐, 이제 됐어."



괴물의 거대한 팔이 미끄러지듯 움직인다. 미스틸은 눈을 감았다. 승리가 아닌, 죽음으로 편안함을 찾겠다는 마음마저 든다.


저항한다 해도 어떻게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저것은 처음부터 괴물 그 자체다. 팀 전체가 모여 힘을 합쳐 싸운다든가, 그런


형식적인 것들마저 한참 전에 봉인되었다.



이정도로 노력해봤으면 됐다. 이젠 정말로, 그만, 됐다.



...



그 직후였다.


어떻게 해도 뛰어넘을수 없는 상황 속에, 그것을 깨부수는 명확한 이변이 일어났다.



"...어?"



미스틸의 의식이 순간 흔들렸다. 눈을 멀게했던 창백한 빛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눈 앞에 괴물은 왠지 모르게 뒤쪽을 향


해 크게 넘어지고 있었다. 사고가 완전히 멈춘 미스틸은 한순간 그것을 바라보고만 있었고.



츠팡!!



하고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뒷늦게 따라 들렸다.


그리고 깨닫는다.


이것은 분명히.



"고맙다. 미스틸."



음속을 가뿐히 돌파하는 주먹에서 사출된 충격파.


그 기술을 쓸 수있는 사람은 미스틸이 아는 한 딱 한명뿐이다.



"이제 편히 쉬어. 뒤는 이 형에게 맡겨두라고."



눈 앞의 풍경이 야단스러운 채색으로 물들었다. 그리고 그 색을 덧칠하듯, 소년의 앞에 누군가가 내려앉았다.



"아, 저씨?"



그 광경을 멍하니 쳐다보며, 저도 모르게 입 속에서 중얼거렸다.


그에 이어서 소리친다.



"위험해요. 저희가 한꺼번에 덤벼도 쓰러뜨리지 못했어요! 승산도 없는 안이한 지원을 해봤자 어떻게 될지 뻔히 보인다구요!!"



그에 대해, 제이는 시큰둥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다시 말해서 '승산'만 만들어낼 수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러고 있는 지금도 맞은편에 쓰러져있던 괴물은 전투태세를 갖췄다. 기습은 통했을지 몰라도, 자신이 인식한 이상 더 이상 그


럴 일은 없다 라는 듯이.



직후, 괴물이 포효했다.



그것을 신호로 주변에 찌릿찌릿한 전기장이 생성되고, 이윽고 괴물의 거대한 몸이 로켓처럼 머리 위로 발사된다.


그것을 본 미스틸은 당황했다.



저것이야말로 패배의 원인. 저 괴물이 땅과 만나는 순간 모든것이 끝이 난다.



그런 생각을 할 때 즈음.




"돌아와라 - ! 나의 파 - 워 !!!"




쿵!! 폭음이 작렬한 순간, 제이를 중심으로 거대한 충격파가 발생하고, 미스틸 뿐만 아니라 이슬비, 서유리, 이세하까지 끌어들


이며, 피해가 가지 않는 안전한 장소까지 그들을 날려보냈다.


그때 미스틸은 보았다. 폭발의 순간, 그의 입모양을.


그의 목소리는 닿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입모양만으로도 그 뜻은 확실하게 전달되었다.


그가 평소에 입버릇처럼 달고 다녔던 말. 매일같이 자신이 만든 건강차를 건내주며 하던 말.


그렇다.


미스틸을 포함한 검은양팀 모두가 알고 있는 그만의 말버릇.




"건강이 제일이야."



"....!!"




미스틸은 아저씨로부터 명확하게 전달받았다.


'마지막으로, 동료들을 잘 부탁한다.'라는 듯한 아저씨의 표정을 읽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다시는 닿을 수 없는 곳까지 날아간 미스틸은 큰 소리로 절규했다.




--




이곳에 오기 전에, 가지고 있던 약들을 전부 입 안으로 털어넣었다.


슬슬 약기운도 강하게 올라온다. 심박수가 급격하게 증가하며, 온몸에 피가 빠르게 돌기 시작한다. 뿐만 아니라 위상력까지도


급격하게 폭주하기 시작한다.


언제부터였을까, 머리 속 사고까지 둔해지는 것을 느낀다. 방금 전 아이들을 날려보낸 것은 본능이었을까.


싸운다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생각나질 않는다.




제이는 괴물이 있을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마침 빌딩 옥상과 같은 높이까지 도달한 괴물이 눈에 들어오고, 녀석과의 시선이 교차한다.


그 직후 제이쪽에서 먼저 움직임이 있었다.




"약발 좀 받아볼까."




제이는 위상력을 가득 머금은 주먹을 허공을 향해 내질렀다.




비타민 콤비네이션.




그것만으로 공기가 터져나가고, 충격파가 일직선으로 곧게 뻗어나간다.


그것에 직격받은 괴물의 궤도가 살짝 흐트러진다. 하지만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오른손 다음엔 왼손, 왼손 다음엔 오른손을 교차로 빠르게 내지른다. 순간순간마다 공기가 사방으로 터져나가고, 그의 팔은 흐


릿한 잔상을 그린다.


그 수많은 주먹이 만들어낸 폭풍에 괴물의 낙하 속도가 현저히 줄어들고, 푸른색 가죽에 생체기가 나기 시작한다.



"쿠워어어어어!!"



괴물의 포효가 주변 일대를 울리자, 녀석을 중심으로 거대한 전기장이 발생했다.


주먹을 내지르던 제이는 온몸에서 짜릿짜릿한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딱히 신경쓰지 않고, 내지르던 주먹에 더욱더 힘을 가한다.


하지만 괴물쪽에서도 가만히 맞고만 있지는 않는다.


괴물의 오른팔이 빌딩쪽으로 향해지고, 자신의 손을 자석화 시켜 빌딩 내부를 지탱하던 철골을 몇개를 뜯어내 그것을 뭉쳐 방

패로 삼는다.



"칫."



제이는 혀를 찼다.


동시에 다리를 굽혀 강하게 도약한다.




사이킥 무브.




츳팡!! 하는 충격파와 함께 대각선으로 빠르게 날아올라 순식간에 괴물과 같은 높이까지 도달한다.


그리고 이어진것은 혼심의 힘을 다한 펀치.




두통 지압법.




괴상한 기합소리와 함께 두꺼운 철골 방패가 크게 찌그러지고, 다시 한 번 가했을때는 커다란 구멍이 뚫리고 그 뒤에 있던 괴


물의 면상에 강한 펀치가 가해졌다.


제이의 폭풍같은 공격은 계속 이어졌다.


부숴진 철골을 한번 밟은 뒤, 다시 한번 크게 도약해 괴물에 목에 팔을 걸어 넘기는 형식으로, 크게 한바퀴 돌려 그 반동으로


빌딩을 향해 내던진다.




카이로프랙틱.




유리가 깨지는 새된 소리와 함께 괴물의 몸이 빌딩 깊숙히 박혔다.


그에 이어서 주먹을 더할 나위 없이 강하게 움켜쥔다.


그런데.



"마무리...카학?!"



마지막 쐐기를 박기 위해 오른팔에 위상력을 모으던 도중, 몸이 먼저 반응했다. 순간적으로 온몸이 마비 되고, 공중에서 새빨


간 선혈을 토해내며 중심을 잃고 힘없이 떨어진다.




"제, **...!!"




쿵! 하는 둔한 소리와 함께 제이의 몸이 깨진 아**트 위에 격돌했다.


무려 40미터정도의 높이에서 추락했지만 그에 걸맞은 고통은 없었다. 딱히 그가 강인해서가 아닌, 이곳에 오기 전에 먹었던 대


량의 진통제 효과 때문일 것이다.




"아아, 기분 참 뭣같군..."




빌딩쪽으로 시선을 옮기자 이 틈에 잔해를 비집고 나온 괴물이 눈에 들어왔다. 녀석은 쓰러져있는 제이쪽으로 한동안 시선을


던지고, 이윽고 크게 뛰어 오른다.


다만, 가까운 곳에 쓰러진 제이쪽이 아닌, 조금 전에 그가 멀지감치 날려보낸 아이들을 향해서 말이다.




"...?!"




이대로 둔다면 아이들이 위험하다. 그것을 자각한 제이는 이를 악물고 떨리는 다리로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그오아아아아앗!!"




절규와 함께, 괴물을 향한 음속의 주먹이 내질러졌다.


하지만 조금 전과는 조금 다른, 무언가를 잡아서 끌어오는 목적으로.




"잡았...다!"




외치며, 이어서 내질렀던 주먹을 강하게 잡아당겼다.




옥돌 자기력.




그것만으로 괴물은 날아가던 방향이 억지로 수정되어 제이가 서있는 장소로 일직선으로 끌려온다.


그때.



'...!! 힘이, 안나와?!'



과부하가 걸리기 시작했는지 팔이 움직임을 거부하고 있다.


그 틈을 파고들어 괴물의 팔이 크게 휘둘러지고, 퍼걱!! 하는 타격음이 작렬하고, 제이의 상반신은 기역자로 구부러져 건물의


벽에 직격한다.


뚜두둑!! 싫은 소리가 몸속을 울린다. 갈비뼈가 나간 것 같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그에 걸맞는 고통은 느껴지지 않는다.


이러고 있는 지금도 괴물의 상처는 자연 재생되어 멀쩡하게 되돌아간다. 이대로 간다면, 그의 마음 속에 그나마 남아있는 삶의


이유마저 잃어 버릴 것이다.




...




<아아!! 됐어요!! 그만 그만!! 난 충분히 건강하단 말이에요!!>


너무 섭섭하게 굴진 말아달라구 동생, 이게 다 널 위해서야.


<고마워요. 제이 아저씨.>


아니 아니, 난 한게 전혀 없었다구. 대장.


<아저씨! 아저씨! 아저씨! 허리는 괜찮아요? 맨날 아프다고 골골대시던데에 ~>


유리야, 젊음이란 것은 말이다. 젊을때 지켜야 하는 거란다.


<아저씨! 선글라스 벗어봐요!!>


안돼 임마. 그리고 머리 위에서 내려와 임마.


<오늘도 수고하셨어요. 제이씨.>


그런고로 유정씨, 나와 함께 건강차라도 한잔...



...




아아, 주마등인가.



...




입술이 꿈틀거린다. 뜨거운 호흡과 함께 말이 미끄러져 나온다.



"아저씨 아니다. 이것들아."



선글라스 너머 제이의 눈빛이 바뀐다.


십수년 전, '역전의 용사'라고 불렸던 그는 앞을 향해 한걸음 내딛는다.


꽤 오래전에 멈춘 것 같은 시간이. 그제야 다시 달리기 시작한다.


색이 빠진 하얀 머리를 오른손으로 살며시 쓸어올리며.



"아아 그래, 즐거웠던 거구나. 나는."



이어서 빠지기 직전까지 벗겨진 검은 장갑을 마저 벗어던지며.



"마치... '날아 오를 것 같은 기분' 인걸."



다시금 두 손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그는 다리를 크게 들어올리고, 아무것도 없는 아**트를 강하게 찍어내린다.


그 여파로 발생된 풍압으로 주변에 먼지들을 전부 쓸어내고, 그 직후 이어진 심호흡으로 위상력을 조금 회복시켰다.



"스읍. 하아아..."




마그네슘 스트라이크 & 위상력 호흡.




"이번이... 마지막이다."



중얼거리며, 미량의 위상력을 발바닥에 응축시켜 땅을 강하게 박찬다.


그에 반응하듯, 괴물의 팔이 높이 치솟고 그 끝에 번개가 응축되기 시작한다.


그것을 보고도 제이의 표정엔 변화가 없었다.


이윽고 괴물의 팔이 땅을 향해 떨어졌다. 그와 동시에.



"느려."



일직선으로 달리던 제이는 몸을 비틀어 방향을 전환시켰고, 그 자리에 번개가 내리쳤다.


분명히 제이라는 남자의 반사신경이 번개보다 빠를 리가 없다. 하지만 그 번개가 떨어지는 과정에서, 그것을 미리 예측하고 미


리 실행 한다면 어떨까.


그냥 복싱에서 상대의 주먹을 피하듯 미리 예측하면 그만이다. 십수년간 파이터로 먹고 살아온 그에게는 일도 아니다.



"크워아아아아!!"



괴물이 포효를 내지르며, 이어서 반대쪽 팔을 휘둘렀다.


제이쪽으로 직접적으로 휘둘러진 거대한 팔은 마치 거대한 기둥을 휘두르는 것처럼 후웅!! 하는 무거운 바람소리와 함께 몸을


숙인 제이의 머리카락을 스쳐 지나간다.


그리고 마침내, 괴물 복부 밑까지 파고든 제이는 양팔을 머리 위로 뻗어 단단한 가죽에 열 손가락을 전부 박아냈다.


그리고, 그가 마지막으로 내뱉은, 최후의, 최후의 한마디.








"자, 가보자구."








--




서유리의 눈꺼풀이 가늘게 떨렸다.



"으읏..."



눈꺼풀이 천천히 뜨이고, 흐릿한 시야 속에서 천장으로 보이는 무언가가 잡혔다.



"나는..."



여기가 어디인지 서유리는 알 수 없었다.


그때였다.



"유리 누나!!"



"유리야!!"



슬비... 랑 테인이...인가?



"여긴, 어디야?"



가슴과 배에 무언가 붙어있는 감촉이 있었다. 아마 몸 속 데이터를 얻기 위한 전극 장치일 것이다.



"병원이야."



"...."



축 늘어진 손에 희미한 힘이 돌아오고, 흐트러졌던 정신이 점차 제자리로 돌아오기 시작하자.


뇌수 키텐.


패배.


이세하.


괴물의 일격을 받은 서유리는 의식을 잃었지만 그것만은 분명하게 생각난다.



"세하, 세하는?!"



서유리가 다급하게 물어보자, 미스틸은 손가락으로 그녀의 뒤쪽을 가리켰다.


유리가 그것을 따라 고개를 돌리자, 머리에 붕대를 감고 산소호흡기를 입에 달고 있는 이세하가 눈에 들어왔다. 아마 의식은


없을 것이다.


이어서 슬비쪽에서 입을 열었다.



"두개골은 손상됬지만 뇌는 무사한 것 같아. 수혈도 했고, 하지만... 앞으로 몇달은 지켜봐야 할 것 같아."



그 말을 듣자 왠지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흐윽..."


안심해서 일까. 긴장이 풀리니 참아 왔던 모든 감정이 한꺼번에 표출된다.



"미안해. 히극.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애애..."



흐르는 눈물을 훔쳐내고 훔쳐내봐도 그 자리를 다시 채워버리는 눈물에 서유리는 이내 머리를 푹 숙이며 얼굴을 가렸다.



"괜찮아요. 누나, 차원문은 완전히 닫혔고, 키텐의 위상력 반응도 완전히 소실됐어요."



"그래, 신서울을 위해 멋지게 싸워준 클로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패배는 아무도 묻지 않아."



그 말에, 서유리의 떨림은 뚝 그쳤다.



"우리...? 우리라니? 너희들이 막아낸게 아니야?"



"글, 쎄...? 나도 깨어나보니 침대 위에 누워 있었고, 생각나는거라곤 테인이가..."



"에?! 그럼 테인이 혼자서 막아낸거야?!"



"아, 아니에요 누나!! 저도..."



미스틸의 뇌리에 제이의 마지막 뒷모습이 스쳐지나갔다.



'건강이 제일이야.'



"저도... 모르겠어요..."



그의 마지막 모습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다. 미스틸은 그의 마지막 활약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지금은 중상을 입은 세하형만으로도 감정이 이만저만 아닐텐데, 거기에 기름까지 부어버리는 꼴이 될까봐.



"그러고보니, 아저씨는?"



서유리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미스틸의 어깨가 크게 떨렸다.



"승급 임무로 큐브로 불려간 걸로 아는데, 아직도 돌아오지 않은걸 보면 아마 근처 한약방에서 건강 상담이나 하고 있겠지."



"하핫, 그럴지도 모르겠네."



그 말을 들은 미스틸은 살짝 욱할 뻔했다.


우리를 구해준 히어로에게 사소한 오해로 인해 손가락질하며 웃고 있는 꼴이라니. 정말이지 속이 뒤집힐 일이다.


그럼에도 미스틸은 그런 자신의 감정을 간신히 다스리며 애써 웃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럴지도... 모르죠..."









그리고 얼마 뒤.


이세하의 치료는 성공적으로 끝이나고, 미스틸은 마침내 모두의 앞에서 이야기를 꺼냈다.


물론 직설적으로 '아저씨는 죽었어! 하지만 이 가슴에! 하나가 되어 살아가!!' 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모두에게 깊은 상처로 남지 않도록 꾸미고 꾸민 결과, 미스틸은 이렇게 말했다.





신서울의 검은 하늘을 걷어내는, 거대한 용오름이 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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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써봤는데... 뭐... 봐주셔서 고마워요.

2024-10-24 22:24:37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