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버린 날.

저로리콘아닙니다 2015-03-15 0


"오늘도 00지역에 차원종이 출현하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이에 유니온측은.."


티비에 떠있는 화면 속 아나운서가 오늘의 뉴스를 말해준다.

오늘도 여김없이 차원종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다.

나는 바닥에 뒹굴고 있는 리모콘을 주워서 티비를 꺼버린다.

그러자 뉴스를 보고있던 어머니가 나에게 말했다.


"아직도 차원종이 거북한거니?"


나는 못 들은 척 내 방을 향해 걸어갔다.

방문을 열고 방에 들어가면서 문을닫는다.

그 문 틈 사이로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시장 좀 갔다오마."


어머니는 나의 대답을 기다리는 듯 조용히 있었다.

하지만 내 대답이 없자 크게 한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잠시후 문이 열렸다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차원종이 거북하다.

아니, 차원종만이 아니라 그 곳에 얽힌 모든 것들이 다 싫다.

싫어서 혐오스러워서...

도저히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침대에 벌러덩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차원종, 어디서 온 지도 모르는 괴생물체.

클로저, 그 괴생물체로부터 시민을 보호하는 사람들.


두개의 이름, 분명하는 일은 다르다. 그러나 내가 둘을 바라보는 시선은 같았다.

혐오, 증오..

클로저는 선망의 대상이며 동시에 두려움의 대상이다.

위상력을 가지고 있기에, 특별한 힘을 가지기에.

누군가에게는 영웅처럼 동경하는 사람이 되며.

누군가에게는 괴물처럼 기피하고 두려워하는 사람이 된다.

차원종, 그 괴물을 인간의 몸으로서 처치한다.


그 자체 만으로도 괴물과 동급이란 것이 된다.

아니, 괴물이랑 동급? 웃기지마.

오히려 차원종보다 클로저란 작자들이 더 괴물에 가깝다.

차원종은 지능이 없다, 아니 있을지도 몰라.

하지만 그들이 하는 짓은 높은 지능을 가지고 체계적이고 구체적인 행동을 하는 것보다는

마치 짐승처럼, 동물처럼 그저 파괴하고 공격하는 것 뿐이다.

설마 모르지, 자신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차원문이란 곳에서 딸려나와서

아무것도 모르는 이 세계에서 떠돌다가 그 클로저라는 녀석들에게 목숨을 잃는 걸지도 몰라.

그저 자신들의 세계에 발을 들였다는 이유만으로 무자비한 학살을 하는 건 클로저 쪽일지도 모른다고.


ㅡ합리화야.


누군가의 목소리가 내 뇌리를 스친다.

합리화라고? 아니야.

나는 정당하고 논리적인 의견을 낸 것 뿐이잖아?

절대적인 선과 절대적인 악은 없어.

강한 쪽이 절대적인 정의고 그 강한 쪽이 정하는 쪽이 절대적인 악이 되는거야.

클로저는 절대 선이 될 수 없어.

절대적인 정의가 될 지는 몰라도.


ㅡ논리적이라고, 당치도 않는 말이네. 네 감정을 제대로 다루지도 못하면서.


내가 감정에 휘둘린다고?

나는 흥분하지도 않았어 그냥 침대에 누워서 조용히 생각해볼 뿐이야.

냉정하게 침착하게 그저 내 생각들을 하나 하나 맞추어

결론을 내는 것 뿐이라고.


ㅡ 그렇게 냉정한 녀석이, 티비에 차원종 뉴스가 나오기만 하면 참지 못하고 꺼버리는 거야?


...넌 누구야?

누군데 나를 이렇게 몰아 붙이는 거지?

나는 클로저가 싫어, 차원종이 싫어.

모든 것이 싫다고.

그것들이 시민을 지켜?

평화로운 생활을 보장해?

웃기지마.

내 삶을 파괴 시킨 주제에.


ㅡ ...아직도 과거에 사로잡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거야?


....


ㅡ 거울을 봐, 네가 누군지. 네가 무슨 일을 해야하는지 말이야.



더 이상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환청을 듣다니, 아무래도 정신병원에 가봐야겠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정신 좀 차리자고 생각해서 화장실로 향한다.

수도꼭지를 틀어 차가운물을 얼굴에 껸진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눈 앞에 있는 거울을 본다.

내 얼굴에 묻은 물이 눈을 따라 코를 따라 입을따라. 밑으로 흘러내려 떨어진다.

얼굴에 나있는 흉터를 스치며.


흉터가 욱신 거린다.

욱신거리며 과거의 기억을 불러일으킨다.

떠올리고 싶지않았다, 하지만 이 얼굴에 남아있는 흉터가 내 과거를 사로잡고는 놓질 않았다.

아직도 생생하다, 그 날카로운 발톱이 내 얼굴을 스치던 그 때가.

아팠다, 괴로웠다.

생 살이 찢겨나가며 붉은 혈액이 사방에 튀는 공포가,

죽음을 마주한다는 그 사실이 너무나 두려웠다.

하지만 그들은 말했다.

냉담하게, 왜 그런 멍청한 짓을 했냐고, 왜 도망치지 않았냐고.


전부 다 내 탓이야.


주먹을 꽉 쥐었다.

나도 모르게 거울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거울이 깨진다.

아니, 거울 뿐만이 아니야 거울이 달려있던 그 벽 한면이 모두 부서져버린다.

충동에 의해 거칠게 휘두른 주먹에서 붉은 액체가 흘러 내린다.

아프다, 괴롭다, 쓰리다.

그와 함께 온몸이 아파왔다.

벌써 한계인 것이다. 나는 서둘러 방으로 돌아와 책상에 올려져있는 수많은 약병들에서

약을 꺼낸다. 그리고 그 약들을 한 입에 털어넣고 차가운 물로 꾸역꾸역 넘겨버린다.

너무나도 찬물에 살짝 현기증이 났다.

몸이 살짝 비틀거렸다.


그와함께 분노가 식으며 싸늘해진다.

주먹에 난 상처의 아픔이 더욱 선명해지고

사고는 정상적으로 돌아온다.

무참히 부서진 화장실의 한 쪽 벽면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ㅡ 왜 과거를 잊으려고만 해?


또 그 목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귀를 틀어막는다.

하지만 목소리는 거침없이 손따위 장애물이 되지도 않는다는 듯이 나의 고막을 울려댄다.


ㅡ 자신과 마주하지 못해서 자신을 부수어버리다니, 감정조절이 잘되는 논리적인 사람이 하는 짓이 맞는 건가?


"**!"


거칠게 소리지르며 탁자를 내려쳤다.

탁자도 반으로 쪼개지며 거칠게 무너져내린다.

안돼, 더 이상은. 나는...


ㅡ 기억해, 그리고 마주해. 도망치지마. 후회를 너 자신에 대한 증오로 바꾸지 말라고.


나는 비틀거리며 거실로 나왔다.

거실에 있는 전신거울을 본다.

헬쓱한 모습에 여기저기 나있는 흉터.

마치 죽은 듯한 시체의 눈을 하고있다.


나는 누구지?


나는 살아있는 건가.

나는 도대체 무얼 하고있는 거지.

나는.. 나는...!


ㅡ 너는, 클로저 잖아.


무너져내린다.

내 자신이 무너져 내린다.

잊으려고 감추려고 노력했었던 내 자신이.


'가까이 오지마 이 괴물아!'


난 괴물이 아니야.


'저런 아이랑 놀지 마렴, 너도 차원종에게 공격받으면 어쩌려고 그래!'


나는 그 아이랑 놀고 싶었던 것 뿐이야.

나는 그 아이를 지키고 싶었던 것 뿐이야.


'정신차려, 너는 전사야. 상황판단 제대로 안해?!'


나는 전사가 아니야,  나는 약간 특별한 사람일 뿐이야.


'상처? 그까짓 생채기가 어떻다고 지금 네가 물러서면 사람들이 목숨을 잃어!'


두려워, 죽음에 마주한다는 사실이 극도로 두려워.


'가, 너에게는 더 이상 할 일이 없다.'


왜, 어째서? 내 모든걸, 내 전부를 포기하고 이 곳에 바쳤는데.

더 이상 나는.


나는..


나는 누구지...?



나는 클로저였다.


과거에 괴물 취급받고, 죽음에 직면하며, 사람 취급 받지 못하고, 끝없이 죽여가며, 괴생물체의 살토막들이

바닥에 굴러다니고, 사람들의 붉은 혈액들이 바닥에 흩뿌려져있는 그 곳을 떠돌던.


클로저였다.


한 순간이었다.

거대한 그 발톱이 내 몸을 꿰뚫은 것은.

그리고 그 때 나는 죽었다.

클로저였던 나는 죽었다.

그래서 버림 받았다.

클로저라는 이름이 전부였던 나였기에

클로저라는 사명을 잃은 나는.

죽었다.




나는 나를 괴물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나를 혐오했다.

나는 과거의 나와 얽히고 싶지않았다.


더 이상 떠올리고 싶지않았다.


ㅡ이제 도망치기만 할 순 없어.


목소리가 나에게 단언한다.

너에게 더 이상 숨어들어갈 구멍이 없다.

아직 희미하게 남아있는 이 힘이.

이 몸에 새겨져있는 나의 과거의 발자국들이.

나를 끌어낸다.


ㅡ 자 이제 어쩔꺼야? 너는 너를 마주볼꺼야?


나에게 다시 한번만 클로저라는 그 사명이 주어진다면.

-그 괴물이라는 이름이

-그 학살자라는 이름이

-그 전사라는 이름이

-내 전부였던 그것이


나는, 다시 마주할 수 있을까?


[삐리리리리리]


전화벨이 울린다.

나는 전화를 받는다.

전화기 속에서는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누님...오랜만이네요."


정적이 찾아온다.

목소리는 나에게 다시 강요한다.


ㅡ 자 어떡할꺼야?


...나는 과거를 마주할 것인가.


아니.


내 대답은 아니야.


더 이상 과거에 붙잡혀있지 않겠어.


그래 나는 나를 버릴거야.


무참히 나를 버리고 다시 나아가겠어.


"..누님, J라고. 부탁드립니다."


ㅡ 그래, 그게 너의 대답이냐.


목소리가 웃는다.


아니, 눈 앞에 있는 작은 소년이 웃는다.


그래, 내가 웃는다.


-괴물이었던 소년이.

-전사였던 소년이.

-클로저가 전부였던 소년이.

-겁쟁이었던 소년이.


웃는다.


그리고 말했다.


ㅡ 안녕.



몇 달 후.



"안녕, 애들아!"


눈 앞에있는 4명의 소년 소녀들.


"..."


한 소년은 누님의 아들이라고했던가. 게임기를 쥐고 놓지을 않는군.


"안녕하세요."


한 소녀는 진지 그 자체야, 마치 어릴적 나를 보는 것 같아. 


"어! 그 아저씨 아니에요? 안녕하세요!!"


한 소녀는 ... 밝아, 하지만 늘 웃는 사람은 그만큼의 슬픔을 간직하고 있다고하지.


"안녕하세요, 헤헤."


한 소..녀..? 소년? 어쨌든, 좋은 눈이야. 마치 사명을 가지도 움직이던 나처럼.


그래 새로운 시작인가.


"나는 J라고 한다, 앞으로 잘 부탁해."


나도 그럼 인사나 해볼까.


그래 과거에 사로 잡혀 고통스러워하던 나에게 말이지.


잘있어라, 000.


2024-10-24 22:24:31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