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큐브 ver.J -4부

브로유리 2015-02-28 4

 '슈-욱'


 녀석에게 달려듦과 동시에 재빠르게 주먹을 내지르는 제이. 바람 소리와 함께 굉장한 속력으로 허공을 가르며 날아오는 주먹을 남자는 피하지도 막지도 않고 제이와 똑같이 주먹으로 대응했다. 서로의 주먹이 맞부딪치는 순간, 커다란 굉음이 큐브의 빈 공간을 메웠다.


 '…으윽…!'


 주먹을 뻗은 쪽의 팔이 저려왔다. 그 고통을 약기운으로 버텨내며 제이는 쉴 틈을 주지 않고 연속해서 발을 뻗어 남자의 얼굴을 노렸다. 매서운 기세로 남자의 얼굴을 노리는 킥을 남자는 이번에도 제이가 내지른 발과 똑같은 쪽의 발을 뻗어 제이의 공격을 맞받아냈다. 두 다리가 부딪치는 순간, 팔을 부딪쳤을 때와 비슷한 강도의 고통이 제이의 다리를 파고들었다.


 '…***…!'


 살짝 뒤로 물러나는 제이. 그런 그를 조롱하듯이 남자는 말했다.


 "뭐야? 겨우 주먹질 한 번, 발길질 한 번 서로 맞대고 그걸로 게임 끝이야? 생각했던 것보다 많이 싱거운데?"
 "…천만에, 네가 예상보다 잘 막아내서 조금 놀랐을 뿐이야."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속으로는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고 식은땀을 흘렸다. 예상보다도 훨씬 상황이 좋지 않음을 단 두 합으로 제이는 직감했다.


 '이 자식….'


 분명히 가뿐하게 막아낼 수 있었다. 분명히 여유롭게 피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 틈을 파고들어 공격을 퍼부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굳이 자신과 똑같은 동작으로 공세를 받아내는 것은, 신체의 우월함을 과시하며 자신의 몸이 무너지기를 기다리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내 팔과 다리는 저려오지만, 녀석은 아무렇지도 않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물러설까보냐…!'


 다시 두 주먹을 질끈 쥔다. 그래, 누가 이기는지 끝까지 가보는 거다. 다시 상대에게 달려드는 제이. 그리고 그는 두 주먹을 기관총의 총탄마냥 쏟아냈다. 일명 '오메가3 러시'다.


 '버텨라, 내 몸…!'


 전장에서 그동안 수도 없이 외쳐온 기합이다. 아이들 앞에서는 장난삼아서, 홀로 전장에서 싸울 때는 기운을 불어넣기 위해서 외쳤던 기합. 그러나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한 기합이다. 진심으로 자신의 몸이 버텨주기를 간절히 바라며 제이는 몇 번이고 그 말을 되뇌었다. 기합을 굳이 내지르지 않는 이유는 그 기운마저도 지금은 주먹을 내지르는 데에 써야하기 때문이리라.


 "조금 세게 나오는데? 좋아, 나도 그럼 간다…!"


 진지하게 임한다고는 해도, 아직은 자신이 넘치는 것인지 남자는 느긋하게 말하며 주먹을 내질렀다. 이윽고 수많은 주먹들이 공기를 가르는 소리, 끊임없이 흔들리는 옷자락이 펄럭이는 소리, 그리고 주먹들이 서로 충돌하는 소리가 큐브를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다다다다다다다-'


 쉴 새 없이 공중에서 합을 겨루는 주먹들. 폭격이라는 말보다 이 모습과 어울리는 단어가 있을까. 길게 이어지는 이 공방이 어떻게 보면 지리멸렬하게 보이지만, 서로의 공격이 어지러이 난무하면서도 한 치의 빈틈없이 맞물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새삼 '확실히 이 녀석은 자신이다'라는 것을 실감하는 제이. 아니, 자신이라면 '지금의 나와 똑같은 녀석'이었으면 좋겠다.


 놈은 '나보다도 강한 나'다. 그건 온몸의 괴로움이 잘 알려주고 있었다.


 녀석의 주먹과 직접 맞닿는 손가락이 터져나갈 것만 같다.
 각각의 손마디는 너나 할 것 없이 끊어지기 직전이라며 고통을 호소한다.
 팔의 뼈는 모두 으스러지는 기분이다.
 쉴 틈 없이 쏟아내는 주먹질에 어깨는 떨어져 나갈 듯하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모두 참아내야 한다. 녀석에게만큼은 질 수 없다.


 "…하아앗!"


 모든 괴로움을 떨쳐내려는 듯, 제이는 필사적으로 함성을 지르며 더욱 거세게 상대를 몰아붙였다. 제이의 순간적인 폭발력을 예상하지 못한 것일까. 남자는 주춤하더니 크게 뒤로 물러나며 제이와의 간격을 벌렸다.


 "휴우, 제법 손이 얼얼하군 그래."


 손을 탈탈 털면서 중얼거리는 남자. 비록 제이의 기세에 눌려 몸을 뒤로 뺐다지만, 그 모습에는 아직도 여유가 담겨있었다. 하지만 그 여유는 오래가지 못했다.


 "…어딜 한 눈 팔고 있나…!"


 남자가 손을 털며 잠시 눈을 떼고 있던 틈을 제이가 놓치지 않고 파고들었다. 철산고로 상대를 강하게 가격하는, 일명 '칼슘 차징'.


 "…잠깐의 틈을 주지 않는군…!"


 예상치 못한 기습에도 입은 살았는지 남자는 또 다시 중얼거렸다. 이 정도면 아직은 피할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한 남자는 온 힘을 다해 몸을 틀었다. 그러나 간발의 차이로 공격을 피했다고 생각한 순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몸이 제이의 앞으로 끌려갔다.


 "잡았다, 요놈…!"


 '아뿔싸, 판단 미스인가…!'


 제이의 공격을 피하는 동작. 그 안에는 아주 잠깐, 그리고 아주 약간이지만 몸이 공중에 뜨는 순간이 있다. 그 무방비의 순간을 놓치지 않고 제이는 남자의 멱살을 낚아챈 것. 실수를 후회할 틈도 없이, 제이의 주먹이 남자의 명치로 날아들었다.


 "커헉…!"


 남자는 급하게 두 손으로 공격을 막아내려 했으나, 급소를 감싸서 충격을 완화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급소에 가해진 굉장한 충격에 남자는 고통에 찬 신음을 흘리며 얼굴이 일그러졌다. 기세를 놓치지 않고 연이어 날아오는 두 번째 주먹. 하지만 그는 두 번째 주먹을 허용할 정도로 약하지 않았다. 남자는 곧바로 주먹을 막아내고는 멱살을 잡은 제이의 손을 강하게 뿌리쳤다. ‘**’하고 낮게 욕설을 내뱉고 또 다시 뒤로 크게 물러서는 남자. 이를 가만히 보고 있을 제이가 아니었다. 확실히 몰아붙였을 때 더욱 압박을 가해야 하는 법.


 "…끌고 온다!"


 호흡을 한 번 크게 하더니 팔을 뻗었다가 자신의 쪽으로 잡아당기는 제이. 위상력을 이용해 상대를 끌어당기는 '옥돌 자기력'이다. 다시 자신의 쪽으로 끌고 와서 한 방 먹이려던 제이였지만, 이번에는 자기가 실수를 저질렀음을 깨달았다.


 "크윽…!"


 설마 자기력으로 당겨오는 힘을 역이용해서 공격을 가할 줄이야. 곧장 얼굴을 향해 날아오는 발길질을 팔을 들어서 막아냈지만, 그 힘에 밀려 몸이 크게 뒤로 밀려나갔다. 또 다시 거리는 멀어졌다. 하지만 그 누구도 쉽사리 상대에게 달려들지 못했다. 제이의 일격에 여전히 몸을 부여잡고 괴로워하는 남자. 맹공격을 퍼붓느라 온 몸의 힘이 다 빠져나가 손을 무릎에 얹고 숨을 헐떡이는 제이.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먼저 기운을 차린 것은 남자 쪽이었다. 제이의 공격이 무의미했다는 것이 아니다. 열심히 싸웠지만 애초에 남자의 신체 능력이 우위에 있는 이상, 피해를 입혀도 금방 복구가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에 비해, 제이는 한 눈에 보기에도 여전히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흐트러지는 호흡, 애써 참아**만 미약하게 떨리는 팔, 뺨을 타고 흐르는 식은 땀. 지금 제이에게 달려들면 승리를 거머쥘 수 있으리라. 그러나 남자는 그저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제이를 응시할 뿐이었다.


 "…그나저나 참 대단해."


 제이를 지그시 쳐다보던 남자가 입을 열었다.


 "네 실력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군. 너도 알겠지만, 너와 나 사이의 힘의 차이는 극명하잖아. 솔직하게 말하지. 그래서 난 네가 별 볼 일 없는 놈이라고 살짝 얕보고 있었어."


 머리를 긁적이는 남자. '아무래도 한 방 먹었다'라는 표정이다.


 "하지만 결국 보기 좋게 한 방 먹었지. …대체 왜일까?"


 순간 말투로는 여전히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선글라스 너머로 남자의 눈이 번뜩였다. 여태까지는 볼 수 없었던 날카롭고 분노에 찬, 아니 도저히 이해를 할 수 없다는 눈빛이었다.


 "약빨로는 이 정도의 위력이 나올 수 없어. 그렇다고 네 몸이 성한 것도 아니고, 그걸 커버해 줄 위상력도 네게는 없어. 그런데도… 그런데도 너는 어떻게 이렇게까지 싸울 수 있는 거지? 네 힘의 근원은 대체 무엇이냔 말이야."


 피식. 제이의 웃음소리에 남자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뭐가 그렇게 우습지?"
 "아니, 나도 내가 참 신기해서 말이야."


 제이는 무릎에서 손을 뗐다. 여전히 팔은 후들거리고 있었지만 호흡은 그나마 안정을 되찾은 듯했다.


 "네 말이 맞아. 몸은 만신창이에 약빨이 없으면 힘도 쓰지 못하고, 위상력은 죄다 날아가서 호흡법으로 흉내만 내는 수준이야. 그에 비해 너는 몸도 멀쩡하고 위상력도 되찾아 전**의 나보다도 강해. 그런데 내가 어떻게 이렇게 너와 맞서 싸울 수 있냐고?"


 숨을 다시 고르는 제이. 그리고 다시 싸울 태세를 갖추고 남자에게 달려들었다.




 "그걸 알면 네가 차원종이 될 일은 없었겠지…!"

2024-10-24 22:23:58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