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식의 계승자 EP.5 부산 16화 정화의 재해
Heleneker 2023-12-10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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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합니다
"전우치가.... 서피드를 총으로 쐈단 말씀이십니까?"
거점, 돌아온 임시클로저들의 이야기를 들은 아오이가 조금 놀란 듯 말했다.
"응. 섬의 주인에게 물어뜯긴 곳에 총을 갖다댄 채, 마구마구 총을 쐈었어."
"못 볼 꼴이였죠..."
"그는 차원종을 숭배하는 교단의 일원이라 하지 않았나요? 자신이 모시는 주인에게 그런 짓을 하다니... 저는 이해하기 어렵군요."
"정신을 간섭하는 아이들은 그런부분에서 좀 엇나가기가 쉽지. 나보다는 세린 아가씨가 더 잘 알테니지만."
뷜란트는 그리 말하며 오세린에게 시선을 주자, 그녀도 살짝 끄덕이며 말하기 시작한다.
"네. 말씀하신 것처럼 정신감응 능력자는.... 다른 클로저들보다 마음이 엇나가기 쉬워요. 자신이 무의식 중에라도 타인의 마음에 간섭하지 못하도록, 언제나 스스로를 통제해야 하거든요."
"유니온의 교육을 받지 않았다면, 저도 그렇게 되었을지 모르죠. 그 사람은... 길을 잘못 든 저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요."
"허튼 소리. 그 미 친놈과 너는 완전히 다르다. 너는... 녀석같은 쓰레기와 비교도 할 수 없어. 너는 그런 놈과는 다르다. 너는.... 놈처럼, 자기 힘에 휘둘리지 않는다."
"맞아요. 보스가 길을 잘못 든다고 그렇게 될까요? 미 친 소리나 늘어놓으면서 미 친 짓을 해대는, 그런 미 친놈이 된다고? 보스가?"
"그럴리가 없잖아요. 맨날 차원종들의 시커먼 정신을 들여다보면서도 자신을 지킨 보스인데 말이에요."
"동감이에요. 감찰관 당신은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더 강하고 굳건한 의지를 가진 사람이에요. 당신이 기억하지 못하지만, 나는 광기에게도 꺾이지 않았던 그 강하고 다정한 마음을 봤어요. 당신은 결코, 그놈처럼 되지 않아요."
"설령 감찰관이 전우치와 똑같은 환경에서 자랐다 하더라도.... 당신은 그 남자처럼 되지는 않을 거야. 그건, 당신이 담당하는 내가, 그리고 우리가 알아."
모두가 한마음 한뜻처럼 얘기했다. 오세린의 뺨이 살짝 붉어졌다.
"....과대평가예요. 저도 언제나 흔들리는 걸요. 그래도... 그런 말씀을 들으니 힘이 솟는 것 같네요."
"섬의 주인으로 인해 서피드의 전력은 크게 약화되었어요. 전우치의 행동까지 고려하면... 서피드가 당장 날뛸 걱정은 없을 것 같아요."
"그 사이에 제가 온 힘을 다해 그의 움직임을 멈춰보겠어요. 여러분은 이동 중인 섬의 주인을 추격해주세요."
"아, 세린 아가씨. 나와 루시 아가는 잠깐 쉬어도 될까? 내가 아직 이 몸이 적응이 좀 덜 되었는지 영 피로하기도 하고, 루시 아가도 컨디션이 영 별로인 듯 해서."
"저, 저는 괜찮아요. 나갈 수 있는 걸요!"
"루시, 너무 무리하지 말고 잠깐 쉬어. 얼굴색이... 너무 안 좋아 보여."
"지금은 추격만 하는 거니까 잠깐이라도 쉬고 있어. 영감 말대로 루시 너 진짜 안색이 안 좋아보이니까."
"그럼.... 잠시 쉬고 있을게요."
"네, 그래 주세요. 그러면 다른분들은 작전지역으로 향해주세요!"
루시와 뷜란트를 제외한 네 명의 임시클로저들이 작전구역을 향해 나선다. 오세린도 전우치를 대비하러 잠시 자리를 비우자 거점이 조금 휑해졌다.
"루시 아가, 잠깐 산책이라도 다녀올까? 아까의 상담도 연장할 겸 말이다."
"...네, 그러죠."
*****
"이쪽이야."
자온의 강화된 매핑을 따라 섬의 주인을 추격하던 임시클로저들. 자온이 잠시 발길을 멈춘다.
"....근처에 서피드랑 전우치가 감지되는데 어떡할까? 무시하고 가?"
"미래랑 아저씨만 괜찮으면 잠깐만 가죠. 해야 할 일이 있거든요."
미래와 김철수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자, 자온이 길을 안내해주었다. 이내, 그 둘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이, 미 친 놈."
"당신은...? 왜 우릴 쫓아온 거죠? 각하를 상대하느라 정신이 없을 줄 알았는데요."
전우치가 은하를 경계하던 중, 곁에서 날고 있는 서피드를 경계하던 김철수를 보곤 환한 얼굴을 하며 말한다.
"아, 나의 벗! 너도 있었구나! 너무 경계하지 마. 서피드는 보다시피 얌전해졌으니까. "
"......."
"당분간은 날뛰지 않을 거야. 나도 다음 계획을 위해서 잠시 휴식을 취할 생각이고. 그러니 나보다는 각하를 상대하는 게 낫지 않겠어? 각하의 독이 점점 더 짙게 퍼져나갈텐데."
"어이, 말했을 텐데. 널 볼 때마다 네 살점을 뜯어가겠다고 말이야."
"하아... 또 그소린가요? 슬슬 질리는군요."
살짝 짜증이 났는지 톤이 낮아진 전우치. 서피드에게 고개를 돌리며 말한다.
"이봐. 움직일 수 있겠지? 저 녀석을 상대해라. 날 위해서."
"......"
"대답은?"
"....하지만 조용히 하라고 해서."
"나한테 대드는 거야?"
"그, 그렇지 않아요. 안 대들어요. 시키는 대로 다 할게요. 그러니가.... 저 녀석을 상대할게요. 상대... 앗... 죄, 죄송해요."
"됐으니까 얼른 상대하기나 해!"
"히읏.... 네...."
"미래, 아저씨. 잠깐 저 미 친 놈 좀 상대해줄 수 있을까요? 저 날벌레한테 할 말 있는데 방해받고 싶지 않거든요."
"우리는 상관없지만 괜찮겠나? 약해졌다 해도 만만치 않은 놈일텐데."
"도와줄 놈 있으니까 괜찮요. 은근슬쩍 미 친 놈 상대하러 가지 말고 돕지, 엉?"
"칫.... 알았어."
"그리고 너 저 미 친 놈 숨더라도 어느정도 위치 알 수 있지? 그 놈 멀찍히 떨어지면 신호 좀 보내줘."
"그건 또 언제 알아서...."
볼멘소리로 불평하면서도, 자온은 주변에 실을 더욱 섬세히 흩뿌리며 감각을 더욱 예리하게 세운다.
미래와 김철수가 분투해준 덕에 기회는 생각보다 더 빨리 다가왔다.
.....반짝!
자온의 신호에 최대한 공격을 피하며 시간을 재던 은하가 순식간에 서피드의 품 안으로 파고들며 소근거린다.
"이 정도로 가까이 붙으면, 저 미 친 놈도 못 듣겠지. 야, 날벌레."
"...?"
아이돌이 어쩌고저쩌고 노래를 불렀지? 내가 알던 아이 중에도 그런 아이가 있어서 말이야. 물론 널 그 아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야. 죽었다 깨어나도 그런 일은 없겠지. 다만 [그 아이]의 기억을 어느 정도 네가 갖고 있다면.... 이 단어를 기억할 거다.
"....[깡]이다."
"....아!"
은하와 은하가 아는 [그 아이]만의 추억. 그 추억을 어렴풋이 기억한 것일까, 서피드가 무언갈 상기한 듯 했다.
"나머지는 네가 알아서 해. 계속 녀석에게 끌려다니든지, 녀석에게 한 방 먹이든지. 그럼 잘 가라, 날벌레."
"다들, 얼른 가죠."
"어라? 도망치려는 거예요? 제 살점을 뜯어가는 게 아니었나요?"
"시간이 너무 없어서 말이야. 안녕."
"그.... 있잖아, 은하. 어디 안 가도 되겠는데...?"
"뭔 소리래...."
콰아아앙!!!!!
건물을 부수는 폭음과 함께 아바돈이 독기와 함께 모습을 드러낸다.
"...여기들 모여 있었구나. 나의 양분들."
"아바돈...!!"
"불편하기 짝이 없는 몸이군. 독의 농도도, 힘도 파리왕에게는 미치지 못한다.... 역시 놈의 자식을 좀 더 씹어먹어야 했나. 양분이 부족하다.....!!"
"더 퍼져나가라, 나의 독이여...! 좀더, 좀 더 많은 양분을 만들어다오...!!"
아바돈의 독기는 이전보다 확연히 눈에 띌 정도로 더욱 짙게 퍼져 나왔다.
"감찰관, 섬의 주인과 조우했다."
"네, 지금부터 정신장악을 시도해볼게요. 전투를 통해, 그의 의식을 흩어놔주세요."
"서피드랑 미 친 놈은..... 도망갔네."
"하고 싶은 말은 끝냈어?"
"어. 그러니 이젠 눈 앞의 독벌레한테 집중해야지...!"
*****
챙캉!!
타캉!! 타카카카캉!!!
각자의 역량을 다해 아바돈과 분투하는 네 명의 임시클로저들. 그러나 더욱 짙어지는 독기에 각자의 면면에서 피로함이 확연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큭.... 감찰관, 아직 멀었나?"
"죄, 죄송해요. 저도 노력하고 있지만....!!"
"뒈 져, 아바돈!!!"
쿠왕!!! 쿠드득....!
"걸리적거린다. 썩 꺼 져라!"
"염라의 갑주..... 크헉!!"
공격한 반동에 피할 타이밍을 놓친 자온은 방벽을 짜내 막으려 했으나, 이전까지 되었던 경화의 능력이 갑자기 힘을 잃은 듯 실 방벽에 조금도 둘러지지 않아 간단히 뚫려버렸다. 공격에 직격 당해 튕겨나간 자온을 미래의 그림자가 받아준다.
"자온, 괜찮아?"
"고마워. 갑자기 갑주가 발동이 안 되서... 뒤에서 잠깐 재생 좀 해야 할 것 같아..."
"빌어먹을... 멋대로 날뛰어대는군."
그의 정신이 너무 견고해요....! 끝없는 복수심에, 제 정신마저 휩쓸릴 것 같아요!"
"알았어. 그럼, 내가 어떻게든 해볼게."
"혼자서 어떻게 하려고? 내가 시선을 끌어 볼테니까...."
"소용없다, 소용없다, 소용없다...!!!!"
아바돈이 자신의 거체를 임시클로저들을 향해 마구 휘두른다. 맹렬한 공세에 임시클로저들은 맥을 못 추며 뒤로 점차 밀려나갔다.
"너희는 나의 양분에 불과한 자들! 내 독기에 쓰러져 녹아버려라! 전부, 전부! 전부전부전부전부!!!"
밀려난 자온을 제외한 세 사람이 더욱 분투했지만, 그럴수록 아바돈은 더욱 더 짙고 농밀한 독을 더욱 멀리 흩뿌렸다.
"윽....!! 콜록, 콜록콜록....."
"가, 감찰관님...? 윽, 콜록콜록...!!"
무전 너머로 기침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감찰관...? 수현...!"
" 이쪽에도 독기가.... 죄송해요, 저희들도... 당해버린 것 같아요..."
"녹아내려라, 썩어 문드러져라! 네놈들은 나의 양식에 불과하다!"
"네놈들을 모조리 먹어치우고, 나는 다시 한 번 폭식의 좌에 오르리라!!"
"이런 망 할....!!"
"이러면 완전 나가리인데... 콜록...!"
"이대로면 우리도 위험하다! 물러서야... 쿨럭! 쿨럭!!"
임시클로저들 또한 하나둘씩 기침 하기 시작했다. 그런 와중에도 아바돈의 공세와 독이 더욱 맹렬하고 짙어지는 임시클로저들을 궁지로 몰아세웠다.
그 순간,
<아가야, 잠시 힘을 빌려가도 괜찮겠느냐?>
<영감? 무슨.... 아니, 됐어. 내 힘, 가져가...!>
떨어져 있던 뷜란트에게서 들어온 갑작스러운 요청에 따져 물으려던 자온.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자온은 자신이 아는 그를 믿어보기로 하고 힘을 빌려주었다.
------!!!
무언가 근본적인 탈력감도 잠시, 구름과 비 냄새가 섞인 돌풍이 몰아치며 불어왔다.
거점도, 거리도, 임시클로저들이 있던 작전구역까지 가득 메운 그 바람은 모두를 무릎 꿇렸던 아바돈의 독기를 맑고 청량하게 정화시킨다.
"내 독기가 사라졌다? 이 냄새..... 침식황....!!!""
"저는... 아직 괜찮아요."
정화된 공기에 조금 기운을 차렸는지 오세린은 비틀거리면서도 일어섰다.
"저는... 전투능력이 없다 하더라도, 여러분을 보호하는 감찰관이에요... 저도 어엿한 클로저인걸요! 이런 제가... 여러분보다 먼저 쓰러질 수는 없어요!"
"멈춰, 섬의 주인! 나는 당신의 복수심보다... 무거운 것을 지켜야만 해!"
오세린은 위상력을 쥐어짜내 아바돈의 정신을 다시 침투하기 시작했다.
"극, 그으으으으윽....!!!"
그리고 이윽고, 맹렬히 움직이던 아바돈의 움직임이 서서히 잦아들다 거의 완전히 멈춰섰다.
"...서, 섬의 주인이 움직임을 멈춘 것을 확인. 곧바로 리버스 휠의 주포를 준비하겠습니다. 여러분께서는 추가 변수를 대비하기 위해 귀환해주십시오."
아바돈이 멈춘 것을 확인한 임시클로저들이 조금씩 물러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성공한 건가..."
"후우... 돌아가자. 모두 움직일 수 있지?"
"응. 공기가 맑아지니까 움직이기 편해졌어."
"그런데 방금은 뭐였던 거예요? 갑자기 독이 혼자 정화될 리는 없고, 누가 도와준건가?"
"영감이 한 거야. 영감의 본질을 생각하면 가능한 능력이긴 한데... 어떻게 이렇게 딱 맞춰서 정화를 했지? 거점에 있어서 그랬나?"
"서로 말을 전할 수 있지 않았나?"
"안 그래도 물어보는 중인데 대답이 없네. 가서 물어 봐야겠어."
임시클로저들은 조그만 의문을 가지면서도 주포 발사를 위해 거점으로 복귀를 서두른다.
*****
몇 분여 전, 루시와 뷜란트가 산책 겸 주변의 차원종을 처치하고 있었다. 뷜란트는 루시를 찬찬히 바라보다 그녀에게 묻는다.
"안색이 아까보다 안 좋아 보이는구나. 몸 상태, 얼마나 더 심해졌드냐?"
"몸이 계속 저려와요. 입 안에서 역한 기운도 사라지지 않고요. 마치 진짜 피와 같은 맛처럼요..."
"예전의 나였다면 이 정도의 독기는 물러줄 수 있었을텐데.... 위상력을 건네주자니 온전한 내것이 아니라 주기 어렵겠구나. 도움을 주지 못해 미안하단다.."
"아, 아니예요. 제가 스스로 한 일인걸요. 제가 독기를 마시지 않으면.... 시민들이 더 많은 독기에 노출될 거예요. 그리고 4천년 전의 그 광경이... 다시 제 눈앞에 펼쳐지겠죠."
먼 과거, 악룡에게서 받은 저주로 인해 지독한 독을 품은 루시의 본체. 원하지 않았지만, 그 저주로 인해 죽은 수많은 사람들을 떠올리곤 입술을 꽉 깨물며 말한다.
"그런 건 싫어요. 절대로....!!"
그런 루시를 씁쓸히 바라보던 뷜란트는 갑자기 무언가 떠올린 듯 눈을 반짝 빛낸다.
"....아! 중독된 건 어쩔 수 없지만 공기의 정화라면 어떻게든 할 수 있을거 같단다."
"정말이요?"
"아가에게 적당히 힘을 빌려야하기도 하고 일시적이라 완벽하진 않을 테지만 쓸만은 할 것이야. 아가에게 물어보마."
"....그 전에 저 자부터 어떻게 해야겠구나."
"네? 누구를....? 읏...!"
골목 한 구석에서 익숙한 얼굴이 튀어나왔다.
"응? 당신은.... 하아, 끈질기게도 살아있었군요."
"전우치....!"
서로 불쾌하다는 눈빛이 오고 가던 중, 전우치가 먼저 입을 떼었다.
"당신의 동료인 배금주의자라면 지금 각하가 상대하고 있습니다. 가서 가세해 보시든가요. 그래봤자 소용 없는 일이겠지만.... 어라? 이단, 왜 네가 여기 있지? 분명 각하를 상대하는 걸 봤는데."
"이리 대면하는 건 처음인가? 불꽃에 눈 먼 아이야."
"그 분위기.... 그 이단의 신인가 보군요. 당신에겐 관심 없습니다, 이신(異神)이시여. 당신보다는 저를 잡아먹으려 하는 저 흡혈귀에게 관심이 가는군요."
"전우치....! 저는 당신을.....!!"
두근!
"아흐윽...."
독을 계속 마신 탓일까, 몸 안에서 강렬하고 저릿거리는 통증이 올라왔다. 끌어올리던 힘이 맥없이 흩어져 버렸다.
....응? 어쩐지 상태가 이상해 보이는군요. 단순한 갈증 때문은 아닌 것 같은데. 당신 혹시, 먹지 말아야 할 것을 먹은 건가요? 이를 테념.... [독]이라든가."
"....당신과는 상관 없는 일이에요. 이 정도쯤은, 달콤한 과자를 생각하면서 참으면.... 금방 괜찮아질 거예요."
"정말 어이가 없군요. 각하의 독을 자의로 마실 생각을 하다니. 사람들을 구하기라도 할 셈이었습니까? 그로 인해 스스로가 파멸할 거란 생각은 안 해봤고요?"
"저는 죽지 않아요. 마지막까지 살아남아서....!"
"아니, 꼭 그렇게만 이야기할 수는 없으려나? 살아 남더라도, 독기 때문에 미쳐버리면.... 당신은 그때야말로 흡혈귀가 되지 않을까요?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습격하는 괴물이 말입니다."
"후후, 그렇게 된다면, 실로 유쾌한 배교자의 말로겠군요."
"아니,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다."
쿵!!
어느새 창을 구현한 뷜란트가 땅이 울리도록 창을 세게 내려치며 이어 말했다.
"내가, 그리고 이 아이의 친구들이 그렇게 만들지 않을 테니까."
"그런가요? 그럼 발버둥 쳐보시죠. 신이였던 존재가 아끼던 것이 망가지는 걸 막지 못 해서 함께 망가져 가는 것도 나름 유쾌할 듯 하군요."
"그러냐. 그런데, 그렇게 은근슬쩍 도망치면 내가 모를 듯 하더냐?"
"후읏...!!"
뷜란트가 어느 한 지점에 돌풍을 일으키자, 그 속에서 환술로 몸을 숨기고 있던 전우치의 모습이 드러났다.
"....몰락했다 해도 신은 신이란 건가. 하지만 제게 신경 써도 괜찮겠습니까? 각하의 독이 더 짙어진 듯 한데."
"보십시오, 당신께서 그리 아끼시는 흡혈귀가 사람들을 구한답시고 또 독을 흡수하려 하잖습니까?"
그 말에 루시를 돌아보자, 그녀는 고통스러워 하면서도 독기를 또 다시 흡수하고 있었다. 뷜란트는 혀를 차곤 말했다.
"가거라. 네 말대로 네게 신경 쓸 시간이 없을 듯 하니."
"현명한 선택입니다. 그럼, 이만."
전우치가 떠나는 걸 보곤 다급하게 루시의 곁에 다가갔다.
"루시 아가, 그만 두거라! 몸이 버티기 힘들터인데...!"
"괘....괜찮...아요.... 시민들을.... 구할 수 있다면... 조그만 더 버틸.... 게요....!!"
고통에 헐떡이면서도, 루시는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며 독을 조금씩, 계속해서 흡수했다.
"멈추거라. 내가 조금 힘 써보도록 하마."
<아가야, 잠시 힘을 빌려가도 괜찮겠느냐?>
아바돈을 뒤쫓고 있었던 자온에게 전음을 전하자,
<영감? 무슨.... 아니, 됐어. 내 힘, 가져가...!>
<고맙다.>
뷜란트는 흔쾌히 승낙해준 자온에게서 [힘]을 잠시 되돌려 받았다.
몸에 그 [힘]이 감도는 것을 느끼자, 창을 가볍게 내리치면서 그가 다루는 모든 무기를 주변에 구현시켰다.
가볍게 숨을 고르며, 허공을 향해 읊기 시작했다.
[침식에 바라컨데, 나의 영혼을 이 세상에 침식시키소서.]
무겁지만, 경건하게 울려퍼지는 목소리. 구현되어 있던 무기가 그 목소리에 호응하듯 조금씩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별과 꽃이 수놓았던 세상을 품었던 바람.]
[상처속에서 파도를 품으며 흘러갔던 구름.]
[꽃도, 눈물도 그저 적시며 내려왔던 빗방울.]
[그런 모든 것을 품은 하늘이자 재해인 나의 영혼. 이를 침식시키고 가져가, 세상을 침식시키소서.]
어느샌가 그가 구현했던 칼날이 바람으로, 검들이 운무로, 창들이 물방울로 변해 주변을 맴돌며 빛나고 있었다.
[침식이여. 나의 바람, 나의 구름, 나의 빗방울로 이 세상을 나로써 침식하소서.]
[그리하여 부정한 것이 모두 내게 침식되어 이 세상을 정화할지어다....!!]
------!!!
그 구절을 마지막으로 섬광과 함께 돌풍이 일어났다. 비와 구름을 머금은 바람은 거리를 가득 메우던 아바돈의 독기를 침식하고 희석하며, 정화시켰다.
독으로 쓰러져가던 모든 이들이 느꼈다. 독기를 몰아낸 거칠고 두려움이 느껴지는 돌풍. 그렇지만 이상할 정도로 안도감 또한 느껴지는 비와 구름 냄새를 머금은, 그런 바람을.
섬광이 잦아들자 루시가 조금씩 눈을 떴다. 섬광 때문에 흐릿해진 눈으로 뷜란트가 서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흐려진 눈 때문에 착각한 걸 수도 있었다. 하지만 분명 루시가 바라본 그는 모습은 마치, 폭풍이 지나간 뒤의 쾌청한 푸른 하늘처럼 보였다.
TO BE CONTINUE
자, 오늘 더 읽어 주시라는 이유는 바로.....
침식의 계승자, 자온과 재해의 군주, 침식황 뷜란트의 일서스트가 나왔기 때문입니다!(데헷)
ILLUSTRATOR-LIAN 작가님께서 작업해 주신 커미션입니다!
쓸쓸하고 몇 십번을 꺾이더라도, 나아가는 인간과 옛 신.
침식-뷜란트 모드, 자온
그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