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식의 계승자 EP.4 사냥꾼의 밤 23화 햇살
Heleneker 2023-04-30 1
에필로그를 포함해, 앞으로 두편.
마지막까지 잘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시작합니다
24년도 개정판으로 수정 완료입니다!
시작부터 꿈이라는 것을 자각 정도로 꿈 속에서의 시간이 흐르고 또 흐르니, 처음 유폐됐던 그 시절처럼 온갖 잡념이 머리 속을 스쳐지나갔다.
다정한 나의 세 아이들과 그들을 따르는 충직스러운 휘하들. 어쩌면 아주 낮은 확률로 너희를 살리고 함께 할 수 있는 미래가 있지 않았을까, 이런 선택을 한 것이 늘 후회스러웠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를 다시 만난 그날부터, 그런 행복했던 가능성은 오직 그 한순간에만 허락됐단걸 알아버렸단다. 그렇기에 나는 너희와 함께했던 사랑스러운 시간을 그저 봄꿈으로 곱씹는게지.
추억을 곱씹는 것도 좋지만..... 네가 걱정되는구나, 아가. 내가 곁에 없는 지금의 네 기억이 꿈 속에 갇힌 내게 흘러들어오고 있구나.
어떤 답변도 받질 못해 불안하겠지. 내 흔적을 기억하는 이에 의해, 이기적이고 악의적인 그들의 속삭임에, 그 아이가 숨겨두었던 잊혀진 옛 상흔에 많이 아프고.... 고통스럽게지. 포기하고 싶을게고.
그래도 내가 준비한 최후의 보루로 진실을 보고 오긴 하겠지.... 내게 있어선 아프고도 아름다웠던 추억이지만..... 네게는 많이 아플 수도 있겠지.
그럼에도, 그 끝을 보고 어떤 길을 선택할지는 오로지 너 자신이여야지.
그들의 속삭임에 네가 볼 마음을, 너의 길을 잘못 들지 말거라. 눈 돌리지도 말고, 순연한 시선으로 그 시절의 기억과 마음을 보고..... 너의 길을 선택하거라.
네가 너의 길을 선택하는 그 순간까지, 여기서 기다리고 있으마.
하지만 빨리 돌아와다오. 내가 이 봄꿈에 지쳐 스러지기 전에...
너와의 10년이 아무래도 내 아이들과 보낸 시간만큼이나 소중했던 모양이라.... 많이 외로우니 말이다.
나의 바램에도 하염없이 반복되는 꿈에 지쳐 행복했던 추억에 그대로 마음이 가라앉는 와중, 한 가닥의 실이 내 앞에 내려왔다.
작고 여린 실, 그저 한 가닥일 뿐인데, 마치 절대 끊어지지 않을 동앗줄과도 같았다. 나는 그 실을 잡았고, 따스한 햇살같은 빛이 내게 흘러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아.... 그래, 결국은 너만의 마음을 찾았구나.
[인연]. 그랬기에 너는 잊혀졌던 가능성 속에서도 우리를 찾아 이어주었던 것이였구나.
[인연]이 품고 있었던, [희망]을 부르짖었던 그 아이의 [의지]가 나를 이끌고 나왔다.
"가마. 이젠 다시 너와 함께 하마. 껍데기를 깨고 나올 마음을, 그 인연의 품은 위대함을 보여주자구나."
******
"이 아이가 껍데기를 다 깰 때까지, 상대 좀 해주려무나!"
"닥 쳐!!! 네 놈이 권능에 제약을 걸지 않았다면 우리는 위대한 의지의 도움으로 모든 것을 되찾을 수 있었다!! 네 놈만... 네 놈만 아니였다면 우리가 이런 추악한 모습따위 되지 않았을 거란 말이다!!!!"
그들은 뷜란트를 향해 분노를 터트리곤 육체를 분열하고 재생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그의 눈 앞을 검붉게 물들일 정도로 수를 불린 그들은 자온에게서 빼앗은 뷜란트의 갑주를 겉에 두르며 자온과 뷜란트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하였다.
"거 참. 침략한 걸 살려주고 자유롭게 뒀더니, 기회가 생기자마자 배신했으면서 말은 많구나. 오거라, 두번째 바람."
촤자자자자작------!!!!
산들 바람과 함께 구현된 원형의 칼날이 확산하며 그들을 찢어내었지만, 자온에게서 그의 재생 능력도 빼앗은 그들은 육체를 순식간에 수복시켰다.
"우리는 이미 네 재생력을 얻은 상태다. 몇 번을 찌르고, 가르고, 찢어내더라도 우리는 결코 멸하지 않는다. 되려 나누어진 육편 각자를 재생시켜, 우리를 더 많이 만들어 낼 수 있지!!"
"발버둥 치지말고 저 육신을 내놔라! 그리하여 우리는 완벽한 신이 될 지어다!!!"
"해보거라. 너희의 저열한 탐욕이 이길지, 나의 오랜 기대가 이길지.... 천천히 즐겨보자고."
뷜란트는 살며시 씨익 웃으며 그들의 공세를 막으며 받아치기 시작했다.
******
산산조각의 깃발.... 산산조각나고 고통에 못 이겨 스스로 꺾어버렸던 나의 선의, 나의 마음....
누군가의 말에 흔들리고, 무너지고, 내가 세웠던 마음의 기준조차 스스로 부러뜨려 버린 나는.... 여전히 약하지만.....
하지만.... 이 다정한 마음들은 이런 나를 포기하지 않아줬어. 기대와 희망을 가지고 내게 따스한 마음을 전해줬으니....
그러니, 다시는 포기하지 않겠어.
이 산산조각의 깃발을 다시 들어올려보겠어.
몇번을 찢기더라도, 몇번을 부러지더라도, 몇번을 더럽혀지더라도....!
그 안에 품은 마음은 결코 바래지지 않도록.... 이 산산조각의 깃발을, 나의 마음을 포기하지 않겠어!!!
나는 나의 깃발, 나의 깃대를 힘차게 움켜쥐었다.
간절했던 그 마지막 바램이, 절망과 후회를 견디고 불합리한 섭리를 뛰어넘어 이루어졌으니.
많은 이들은 그것을 기적이라 부르지요.
영혼의 본질을 비추어, 다정한 신으로서 마지막 바램을 들어주시기를.
확고한 의지를 비추어, 바램을 지켜줄 버팀목이 주시기를.
간절한 마음을 비추어, 세상을 다정함으로 채워 기적을 일으키시기를.
깃발에서 흘러나온 옅은 빛이 하나로 뭉치더니, 사람의 형상을 띄며 내게 물어왔다.
가장 간절히 바라는 것은 뭐야?
"인연을 지키는 것."
지키기 위해, 더 강한 힘을 바래?
"강한 힘, 있으면 좋지. 하지만 이젠 내가 바라는 것은 강한 힘이 아니야."
그러면?
"지키는 힘. 내 소중한 인연을 침범하는 이들로부터, 나의 소중한 이들을 지키는 힘을 바래."
"마지막까지 아이들을 지키려 했던 영감처럼, 마지막까지 굳건히 버티고 지켜내는 힘이."
"만일 잡을 수도, 막아낼 수 없는 힘이 온다면, 그것을 굳혀서라도 강제로 막아낼 수 있는 힘을 바래."
막아내는 힘. 그것을 무시하려 든다면 굳혀서라도 막아낼 힘.
당신의 그 의지는, 거목처럼 굳건히 버티며 [내]가 바라는 모든 것을 지키기를.
부러져 덧대고, 금 가 있는 깃대가 다시 굳건해진 느낌이 들은 듯 했다.
[그]는 새롭게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소중한 이들을 지키고, 악의를 꺾고자 한다면 지키는 의지만으로 가능하겠어?
"내겐 영감의 무기도, 형님의 실도 있어."
그 힘들은 약해질 수도, 잃어버릴 수도 있어. 그들을 막고자 한다면 버티다는 의지만으론 부족할텐데?
"그땐, 내 영혼을 불태워서라도 막아내겠어."
나를 불태우고, 나의 소중한 이들을 불태워서라도 너의 적을 태울거야?
"안 돼. 불타야만 한다면 나, 그리고 부정한 것들과 죄업을 쌓는 자들만 불타야만해."
나 자신도? 어째서?
"다른 이들을 위해서라도 이 마음은 결국 욕심이야. 그러니, 그런 죄업을 쌓는 나 또한 언젠가 불타버리겠지."
"다만, 그게 오늘이 아니야. 그날이 올 때까지, 나는 소중한 인연을, 그 미소를 지키기 위해 싸울거야. 형님과 나의 영웅, 알파나이트가 차원종만을 불태우며 싸웠던 것처럼."
언젠가 자신이 불타더라도 소중한 이들을 지키고 부정과 죄업만을 불태우는 것.
맹세컨데 내 안의 불꽃의 영혼은, 악의만을 불태워줄거야.
깃대에서 잿빛과 진홍의 불꽃이 일어나더니, 순식간에 내 몸을 가열시키더니 은은히 백열하기 시작했다.
내가 가장 지키고 싶은 것은, 무엇이야?
"소중한 사람들. 나의..... 인연."
.....그거면 돼.
[그]는 미소지으며 나와 함께 깃대를 잡았다.
그 인연을 이은 이들의 마음과 함께 모든 것을 지켜.
간절히 바랜 다정함을 가지고, 눈물에 넘어지는 이들에게 손을 내밀어줘.
역경 속에서도, 절망하지 말고 누구보다 가장 앞에 나아가 서 있어줘.
기대와 희망을 품은 인연을 가지고, 미래를 비추는 기적이 되어줘.
이것은 언젠가의 나의 유언, 수많은 이들의 간절한 바램을 담은 나의 마지막 마음이자, 바램이야.
부디 너의 인연을 지키고, 이번은 꼭.... 행복해져야 해.
빛이 걷이며, [그]의 웃는 얼굴이 드러났다.
너는....!
눈물로 절여진 피로한 얼굴.... 그는 영감이 사랑한 이들을 구하싶었던 존재였으며, 형님과 나의 시간을 지켜주고 싶었던 존재인....[---]였다.
찬란한 빛과 따스히 어둠이 서로 어루러지며 나의 몸을 감싸며 길을 밝혀주었고, 나는 [그]가 남긴 작은 빛을 몸에 두르며 발걸음을 내딛었다.
******
"에구구..... 방어하기 빡세구만..."
허리를 두드리며 불평하고 있지만, 뷜란트는 여전히 웃으며 여유롭게 옛 군주와 군단장들을 받아치고 있었다.
콰아아아아앙-----!!!!!
저 멀찍히서, 거대한 포격소리 같은 것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 폭음에 자온을 통해 보았던 한 소녀의 사악한 미소를 기억하곤 피식 웃어버렸다.
"은하 아가 짓이군. 계획하는대로 잘 되면 좋을 턴데....."
"내 놔아아아아아아!!!!!!!!"
"이런, 내 걱정부터 해야겠구나."
그들은 육체를 과재생시켜 부피를 비대하게 늘리며 다가왔다. 원래도 많은 수에 크기까지 다시 뷜란트와 자온은 집어삼키려 달려든다.
"이거 참, 내 능력이지만 성가시구나. 오거라, 두번째 구름."
"......응?"
구현한 감각은 분명 있었는데 손에 아무것도 잡히지 않자, 뷜란트는 헛손질한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려 고개를 잠시 돌리자,
카가가가가가가각-------!!!!!
그 옆을 스쳐가는 주홍빛이, 자신이 구현한 검을 거칠게 지면을 긁으며 휘둘렀다.
"개방, 너울."
콰가가가가가!!!!!!
"아아아아아아아앍?!?!"
긁은 지면을 따라 정면으로 일어난 검기의 충격파가 그들의 몸을 터트리며 날려버렸다.
"바보 영감. 왜 이렇게 늦게 온 거야?"
"이제라도 와준 게 다행인거 아니냐, 아가?"
"변명은..... 무사해서 다행이야, 영감."
"뭐라고~? 잘 안 들렸는데 다시 말해줄래~? 키히히."
"시끄러, 영감. 괜히 말했어."
얼굴을 붉히며 괜스레 그렇게 말한게 후회됐다. 그래도 저 목소리를 들으니.... 조금은 안심되는 기분도 들었다.
"그나저나 그 모습은 뭐더냐? 그런 옷은 처음 본다만?"
영감이 나를 가르키며 물었다. 푸른빛이 감도는 어깨가 드러난 하얀 한복에, 겉에는 비와 구름, 바람 무늬가, 안에는 특이한 무늬가 새겨진 하얀 두루마기가 어깨에 걸쳐져 있었다.
"그게...."
"아아...... 아아아아아!!!!!!!"
뭐라고 설명하려 했지만, 그들은 내가 정신차린 걸 보고 더 이성을 잃었는지 울부짓듯 괴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조심하거라 아가. 저 녀석들 내 재생 능력을 앗아간 탓에 상처 입어도 순간에 바로 재생하고 흩어지면 그 육편에서 스스로 각자 독립된 개체로 재생한단다. 게다가 공격 할수록 네게서 앗아간 갑주의 적응 능력으로 점점 공격이 통하질 않게 되서 매우 성가시단다."
"그렇겠지. 그러니까 그거부터 다시 돌려받자. 침식 모드, 개방."
갑주와 재생 능력은 빼앗겼어도 남아 있는 영감의 힘을 내 안에 순환시키며 검을 구현하였다.
"....뭐하는 거냐, 아가? 검날이 안 만들어졌잖느냐?"
그런데 이상하게도 자온이 구현한 검은 날은 없이, 검의 손잡이만을 구현되어 있었다.
"알아. 그러니까 잠자코 봐."
"내 놔...... 몸을..... 내놔아아아아아!!!!!!!!"
원래도 그랬지만, 그 어중간한 형태마저 잃은 그들은 손이라고 불러야 할 듯한 기관을 내게 뻗어내었다. 나는 천천히 손을 휘둘러, 내 앞에 실의 장막을 펼쳐내었다.
카가캉캉!!!!
"아가, 이건.... 뭐더냐? 이 실은 경도가 없지 않았느냐? 어떻게 이런 강도를.....?"
초유연의 특성만을 가진 실의 장막은, 비대하고 수많은 그들의 악의 어린 손을 모조리 막아내었다.
"아아아아아악!!!!!!!!"
비명소리에 실에만 향해있던 영감의 시선이 돌아갔다. 그 앞엔, 실의 장막에 닿은 그들의 몸은 맹렬하게 불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살며시 웃으며 대답했다.
"나의 영혼, 나의 의지에 새겨진 나의 새로운 힘, 염화와 경화 능력을 실에 담아서 막으로 엮어냈어. 앞으로 내 친구들을, 그리고 영감 당신을 지킬 나의 방패.... 염라의 갑주야."
"그렇다면.... 그렇다면 압도적인 물량으로 짓눌러주마.....! 네 놈도, 당신도, 그 시건방진 방패까지 함께!!!!!"
그들은 불타는 부분을 절개하곤 몸을 잘게 나누어 육편을 새롭게 늘렸다. 일부는 엄청난 숫자로, 일부는 거대한 한 덩어리로 뭉쳐 달려들자,
"그래. 다 못 막겠지. 가만히 두진 않을 거지만."
자온은 그마저도 예상했다는 듯이 말하며 자세를 잡았다.
"그 힘은, 너희의 것이 아니야. 영감이 먼 미래를 기대하며 버티기 위한 힘이지. 돌려받겠어."
키이이잉-------
구현했었던 검 손잡이에 손을 댔다가 천천히 떼자, 그를 잿빛이 감도는 칼날이 솟아나더니, 2M에 가까운 장검이 되었다.
"이 검은 후회와 허상, 그리고 악몽을 베어가르는 구름. 구름은 형태를 무수히 바꾸어, 무엇이든 베는 검이 되었으니....!"
"하늘께 바라니, 그대의 구름이 베지 못 할 것은 없으리.....!"
"허상을 뒤덮는 구름, 검의 오의."
"봄꿈 깨우기."
"전부, 베어져라!!!!!"
후우우우우우웅-------!!!!
몸을 살짝 비틀어 회전을 더해 검을 휘두르자, 구름과 같은 운무의 검기가 퍼져나가며 그들의 몸을 깔끔히 베어갈랐다.
"소용없다!! 그래봤자 우리는 늘어날 뿐이다!!!!"
잘게 잘려나간 그들의 육편들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소리 지르며 재생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뭐야, 재생이, 재생이 왜 이리 늦는거지?"
서로 엉겨붙고 섞이고, 크기를 늘리는 등 폭주하는 것처럼 마구 재생하던 그들의 재생 속도가 갑자기 훅 떨어졌다.
"네 놈.... 무슨 짓을 한거냐아!!!!!???!?"
"말했잖아, 베지 못 할 것은 없다고. 단순히 너희 몸만 베어냈을 거라고 생각해?"
나는 투명하게 빛나는 검날을 찬찬히 들여다보며 말했다.
"내가 베어낸 것은 너희가 강제로 빼앗아가고 잇고 있었던 영감의 능력의 연결을 베어냈어."
"그런 게.... 그런 게 어떻게 가능......!"
그 순간, 그들은 어떤 오랜 기억을 떠올렸다. 침식황의 영지를 침범한 그날, 각성한 그와 그의 수하 중 하나, 구름이 다루던 세상의 규율과 개념조차 베어내던 그의 검을."
"아가.... 내 영혼의 진정한 힘을 다룰 수 있게 되었구나.....!"
"응. 제법이지? 그래도 아직 연발은 무리긴 하지만. 어쨌든 영감의 힘, 돌려받았다."
자온의 몸에 나있던 자잘한 상처들이 순식간에 사라지며, 뷜란트의 갑주가 그의 몸에 둘러지기 시작했다.
[위험해]
[능력을 뺐겼어...!]
[이런 허접한 재생력으론 이길 수 없어]
[남은 것으로 물고 늘어질까?]
[아니야, 그럼 아까의 불꽃의 방패를 꺼낼거야. 그 불꽃, 심상치 않았어]
광기, 옛 군주와 군단장들은 서로 수근대며 생각에 빠졌고, 이내 곧 한 가지 공통된 답변을 내놓았다.
[도망치자. 이 몸이 조금이라도 남아있다면 우리는 살아남을 수 있어]
[때를 기다리며 도모하자. 저들과 저힘, 이 인간들의 세상을 모두 집어삼킬 우리의 힘이 돌아올 때까지.....!!]
베어졌던 육편들이 꿈틀거리더니, 스스로 더 잘게 쪼개지며 자온과 뷜란트를 두 사람을 피해 각기 다른 방향으로 도주하기 시작했다.
"아가, 놈들이 도주한다!"
그들의 의도를 눈치챈 뷜란트는 서둘러 힘을 발현하려 했지만,
"괜찮아, 영감. 이미, 대처했거든."
자온은 손가락에 영역의 두번째 칼날을 빙글빙글 돌리며 말했다.
찌직....서거걱....사각....
무언가 갈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가장 먼저 도주하던 육편들이 아주 잘게 찢겨져 더이상 재생하지 못한 채 그대로 소멸되었다.
그 모습에 그들은 도주를 멈췄지만, 너무 멀리갔던 육편들은 다 잘게 찢겨져 상당 수가 소멸되어 버렸다.
"도망쳐서 어디서 힘 좀 쌓겠다고 꼭꼭 숨어 있으려고 했지? 그렇게 안 놔둬."
나는 손을 오목하게 모으고, 조심스레 펼쳤다. 내 손 안에 펼쳐진 세가지의 칼날들, 원형의 칼날들 안에 반달과 초승달의 형태를 띈 칼날들은 물고기가 헤엄치듯 자유롭게 유영하고 있었다.
"이 칼날은 대지와 하늘, 그 모든 것을 자유롭게 흐르는 바람. 그 바람이 머무는 곳은 하나의 세계, 그 자체가 되어 항상 흘러갈지니...."
"하늘께 고하니, 그 안의 모든 것은 그대의 품 안일지어다.....!"
바람이 일며 원형의 칼날이 그들의 흩어진 육편이 있는 모든 공간을 하나의 공간을 만들어 가두었다.
반짝....!
반달의 칼날이 그 공간을 빛을 뛰어넘는 넘는 속도로 가속하며 그 안을 빛과 어둠으로 가득 채웠고, 초승의 칼날은 꽃이 흩날리듯, 그리고 별빛이 반짝히듯 무수히 그 공간을 채우며 흩날리기 시작했다.
"하나의 세상을 수놓는 바람, 칼날의 오의."
"은하수 수놓기."
------!!
공간을 가득 채운 칼날들이 남아 있던 그들의 육편들을 찢어내기 시작했다. 그 공간 안은 너무나도 참혹하게 모든 것을 찢어냈지만 동시에, 맑은 하늘의 은하수 밤하늘처럼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아......아아....."
공간을 해제시키자, 그들은 찢기고 찢겨 한 손으로 집을 만큼 아주 작게 갈려 나갔다. 집념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직도 숨이 붙어있었다.
"보아하니 힘을 거의 다 잃은 것 같구나."
"끝이라고..... 생각하지 마시길..... 저 놈이 죽고 다음 세대로 넘어가면...... 우리는 다시 돌아올 겁니다..... 우리는 죄업 그 자체, 탐욕스러운 그대가 있는 한 영원히..... 돌아올 겁니다..... 그리고 그땐...... 완벽히 집어삼켜주죠....키....키킥..."
그들이 조금씩 소멸하면서도 끝까지 뷜란트를 비웃었다.
"아니. 이 악연은 여기서 끝날거야. 내가 그렇게 만들 거니까."
"검을 꺼낼 건 아니지, 아가? 아서라. 그 검은 개념을 베어낼 정도로 강력하지만, 커다란 개념, 혹은 이치를 베어낼수록 반동이 크게 돌아온단다. 게다가 그런 세상에 유지되어야 할 개념이나 이치는 반드시 제자리로 돌아오지."
"지금 여기서 이들을 베어낸다고 해도 그들은 죄업이라는 이치와 동화된 상태기에 언젠가 다시 돌아올테고, 오히려 그걸 무리하게 베어낸 너만 반동으로 위험해질 수 있단다."
"그거 아니니까 걱정 마. 영감."
슈르르르......
나는 한 손에 실의 화살을 엮으며, 사라져가는 그들을 향해 물었다.
"너희, 염라라고 알고 있어?"
"염라....?"
"응. 염라. 내가 태어난 이 나라나 아시아 쪽에 유명한 신인데, 저승을 다스리고 죄인을 심판하는 여러 저승신 중 하나지."
"시덥잖은 인간의 신 따위를..... 설명하는....이유가 뭐...냐?"
"기억 나지? 방벽에 둘러져 있었던 이 불꽃."
화살에 불꽃을 보여주었다.
"불꽃이 뭐.... 어쩌라는 것... 이냐....?"
"그냥 불꽃처럼도 쓸 수 있긴 한데, 이 불꽃은 아~주 특별한 힘이 있거든."
"부정한 것, 그리고 죄업을 쌓은 것을 불태워 멸할 수 있는 힘이지. 저승의 신들이 죄인을 심판해 멸하는 것처럼."
"......!!!! 하지마..... 하지 말란 말이다!!!!!"
"늦었어."
투웅--------
내 말의 진의를 파악한 그들이 애원하듯 절규하지만, 내 손을 떠난 불꽃의 화살은 하늘에서 구체 형태로 모습을 바꿔내며 마치 태양같은 형태를 이루었다.
"원래는 형님이 고안한 기술인데.... 빛을 응축시킨 후 거기서부터 발생하는 열로 주변을 태우는 기술이지만 아무리 모아도 생각만큼의 열기가 안 모이는데다 주변에 제법 피해도 가서 그만두셨지."
"하지만 이 불꽃, 염라의 불꽃이라면 너희만 딱 태울 수 있어. 능력 안에 남은, 너희의 잔재까지도."
"안 돼..... 안 돼...... 이렇게..... 이렇게 사라질 수 없단 말이야!!!!!!"
"형님이 그분의 등을, 그 다정했던 불꽃을 추억하며 만들어낸 이 기술. 감사를 담아, 너희에게 가장 먼저 보여주지."
"안녕이다. 탐욕에 눈 멀어 결국엔 자기 자신조차 빼앗기고 잃은 이들이여."
키이잉-------
태양처럼 타오르는 실의 구체가 점점 빛이 강해지기 시작했다.
"세번째 활 : 추억, 돋을볕."
화르르르르륵!!!!
이내 강렬한 빛과 열기를 뿜어내며 주변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주위는 온기로 따스하게 감싸안았고, 오직 남은 광기의 육편과, 능력 안에 깊숙히 잠식되어 있었던 광기만을 집요하게 불태웠다.
"아아아아아-----------------!!!!!!!"
"이대로, 이대로 소멸할 수 없어어어!!!!"
"저주하마, 우리의 마지막을 걸고, 널 저주하마!!"
"네가 믿는 이들에 의해 네 모든 것이 퇴색되어 나락으로 떨어질 지어다! 지옥조차 받아주지 않을 깊은 나락으로 반드시이!!!!!!!"
화르르르르륵!!!!
죄를 태우는 불꽃에 의해 과거의 군주와 군단장이였으며, 오랜 시간 동안 뷜란트와 그 후계들을 괴롭였던 광기는, 저주의 말만을 남기고 모두 불타 사라져 버렸다.
그들이 사라진 자리에 태양을 닮은 실구체의 찬연한 햇살이 두 사람을 따스히 비추었다.
TO BE CONTINUE.....
Illustrator- SAVOA 작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