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식의 계승자 EP.2 신서울 14화 WILL OF WISH
Heleneker 2021-09-10 0
24년 개정판으로 변경되었습니다.
텅-----
타다닥, 타닥, 타탁
《LOADING-----》
《STAND BY---》
화면 패널을 교체한 비둘기가 다시 작동하기 시작했다.
"후우.."
익숙한 듯 능숙한 손놀림으로 비둘기의 수리를 마친 한기남이 그제야 한숨을 돌렸다.
"....성대하게도 부숴졌더군요. 일단은 수리는 끝났습니다. 언제 다시 필요하게 될지 모르니까요."
".....미안해요, 아재. 다쳤던 건... 좀 괜찮아요?"
"치료도 받았고 크게 문제되는 것도 없었습니다."
견습 도사의 기습으로 생겼던 상처를 살짝 두드리며 웃었지만, 이내 한기남은 진중한 표정으로 바뀌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나저나....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들었습니다. 전우치라는 자와 당신이 나누던 얘기를요."
"....."
"가시면 안 됩니다. 명백히 당신을 도발하고 있었어요. 분명 함정이 도사리고 있을 겁니다."
그 얘기에 인상을 조금 찌푸리며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아재. 이제부터는 저 혼자 행동할게요."
"네? 갑자기 무슨 말이십니까?"
"이대로는 안 될 거 같거든요. 그놈이 말한 게 사실이라면, 분명 저는 이성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고 폭주할 가능성이 높아요."
"그러면 아재도, 은하도, 루시도 크게 다치거나...."
그 이상 말하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죽겠지요.
그 한 마디를 내기 싫었다. 말이 씨가 되어 버릴까봐, 그런 모습을 보는 건 더 이상 싫었으니까 나 스스로 그들을 밀어내기로 결심했다.
"내 곁에 있는 사람은 늘 사라져 버려요. 노력하고 열심히 해왔는데 막상 소중한 것과 소중했던 사람들은.....내 손에 남아있지 않네요."
"그렇게 저는 또 아무도 지키지 못했다며 또 스스로를 원망하면서 후회하겠죠."
"아재, 나는 더 이상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이 사라지는 건 싫어요."
"그러니까....사라질게요. 내가 더 이상 그걸로 슬퍼하지 않도록, 당신들이 미래로 갈 수 있도록 교단과 썩은 유니온의 근원만을 상대로... 함께 사라질게요."
"사라지실 거라뇨?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한기남이 정색하며 내 손목을 붙잡았다. 하긴, 그건 누가 들어도 그건 죽으러 가겠다와 똑같은 말이였으니까.
내 손목을 붙잡는 아재의 손을 살며시 풀며 말했다.
"내가 지키고 싶었던 모두가 사라졌는데 있어서 뭐해요. 그래도 당신들은 남아있지만... 또 지키지 못하고 후회하겠죠."
"짧은 시간이였지만... 즐거웠어요. 당신들은 행복할 수 있도록 내 모든 걸 내걸고 그들만은 없애고 사라질게요."
"그 날이 오면, 절 잊고 모두 행복해지시길. 둘에겐 먼저 떠나서 미안하다고 전해줘요."
아재의 손을 마저 뿌리치고 뒤돌아 떠날 준비를 했다.
미련이 없냐고? 그럴리가. 짧은 시간이였지만.... 얼마나 즐거웠는데.
그래도 내 곁의 사람들은.... 언제나 사라지거나 죽어 버렸는 걸. 그럴 바엔.... 더 이상 소중한 걸 만들지 않아.
나 홀로 싸우다가, 죽어버리자.
남은 망설임을 떨쳐내고, 떠나갔....
"잠깐만요!"
아재가, 다시 한번 내 손목을 붙잡았다. 다시 한 번 뿌리치려는 순간, 아재의 입에선 생각치도 못한 얘기가 나왔다.
".......실은 말입니다, 비둘기를 수리하던 중에 누군가가 메세지를 녹화해둔 것을 찾았습니다."
"녹화한 사람은 희망입니다. 수술 직전에 녹화된 거였고요."
".......?!"
"이걸 보시고 다시 한번 생각해주세요. 당신을 향한 희망이의.....유언을요."
놀란 내게 아재는 비둘기에 담긴 파일 중 하나를 재생시키며 내게 보여주다.
《PLAY》
[아, 됐다. 그럼......]
죽기 전의 희망이의 얼굴이, 화면에 떠올랐다. 목을 가다듬은 희망은 자신의 유언이 된 마지막 말을 시작했다.
[자온 씨, 이제 곧 수술이 시작될거래요."]
[우울한 소리는 하고 싶지 않지만 이게 마지막일지도 모르니까요. 당신께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어요.]
[만약에요, 정말로 이게 제 마지막이 된다고 해도.]
[슬퍼하며 멈추지 마시고, 당신이 다짐한 그 작은 소망으로 선하고 약한 이들을, 아이들을 지켜주세요.]
[....제가 본 당신은 말이죠, 실패하고 꺾이더라도, 희망을 놓지 않고, 선한 사람들을 지키는 다정하면서 순수한.... 동화 속 영웅처럼 보여요.]
[늘 자신을 비난하고 후회하지만, 희망을 놓지 않은 채 길을 걸어가는 당신의 그 눈은, 마치 쾌청한 푸른 하늘 같기도, 가장 어두운 밤하늘에 빛나는 북두칠성 같기도 했어요.]
[저도 그렇지만.... 은하 씨도, 루시 양도 당신에겐 솔직하게 대하는 게 빛나는 당신을 무의식적으로 기대는 거겠죠.]
너는.... 나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던 거야? 영웅? 하늘? 북두칠성? 너를 구하지 못한 나는.... 죄인일 뿐인데.
[혹시 아직도 스스로를 다시는 보답받지 못할 죄인이라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시죠?]
몸을 움찔 떨었다. 예상이라도 하고 있었던 걸까? 희망은 자신의 말을 이어 갔다.
[당신은 자신이 용서받지 못하고, 보답 받지 못 할 것이라 말했지만, 선하고 약한 이들을 지키려는.... 맑은 하늘빛 같은 그 마음은, 결코 보답 받지 못 할 일은 없을 거예요. 설령 그런 일이 일어나려 한다면,]
[제가 바랠게요. 간절히 바라고 바라서, 당신의 마음이 보답 받길 바라는 제 작은 소망이 기적처럼 피어나길 바랄게요. 제가 사라진다 해도, 그 마음이 계속 빛날 수 있도록 제 마음을 전부 보내드릴게요.]
[제가 죽어 사라진다 해도 슬퍼하지 마세요. 제가 남긴 이 마음을 가지고 다시 한 번 빛을 내서 아이들의, 당신의 곁에 있는 사람들의 빛이 되어주세요.]
[그게 제가 당신께 바라는... 제 작은 소망이에요.]
[수술 시작 전인데 이런 얘기는 조금 부정 타려나요.....? 하하.... 수술이 성공해서 바깥에 나가게 된다면... 당신을 만나는 것을, 기대할게요.]
녹화를 끝내려 손을 뻗던 희망이 무언가 생각난 듯 손을 멈추고 말을 계속 이어했다.
[아.... 이건 사족일 수도 있지만.... 아라에게 받은 동화책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었어요.]
[밤을 불러오는 악한 존재 <나이트 브링어>를, 새벽을 가져오는 영웅 <던 브링어>, 혹은 <던 세이비어>가 쓰러트린다고.]
[솔직히 말해서 당신이 <던 브링어>나 <던 세이비어>라고 부르긴 좀 느낌이 달라서 못 부르겠어요.... 아, 너무 솔직히 말했나? 후훗.]
생각치도 못한 디스에 잠시 당황했지만, 이어진 유언은 나의 마음을 다시끔 일깨워 주었다.
[거칠면서도 다정한, 누구보다 앞에 나서서 살며시 빛나면서 새벽을 향한 길로 이끌어 주는 당신을 저는, 이렇게 부르고 싶어요.]
[<나이트 엔더>(NIGHT ENDER). 밤을 끝내시는 분, 이라고요.]
[절망이라는 밤을 끝내준 나의 <나이트 엔더>. 수술이라는 깊은 밤을 끝내고 저를 만나러 와 주세요. 그렇게 해주실 거죠?]
대답해주고 싶었다. 응. 이라고. 몇 번이고, 몇 백번이고 이제는 부질없을 이 질문에 대답해 주고 싶었다.
[기다리고 있을게요. 나의 나이트 엔더, 나의 친구, 자온.]
정말 녹화를 끝내려는 희망이의 손이 또 다시 멈추었다.
[....아. 나가게 되면 놀렸던 거, 한 대 맞으려나? 하핫.]
뚝------
《STAND BY------》
".....영상은 여기까지 입니다."
"희망이는 당신을 원망하기는 커녕 마지막까지 당신을 믿고 있었습니다. 희망이가 부탁한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사라진다는 그런 말은....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눈시울이 뜨거워져 고개를 숙였다.
나는, 너를 지켜주지 못했는데, 너는, 너의 모든 마음을 보내 나의 행복을 바라주었구나.
똑, 또독
뜨거워진 눈시울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미안해. 너의 밤을 끝내주는 자였는데.... 그러지 못해서 미안해....
말 없는 그 뜨거운 눈물은 계속해서 흘러내렸다. 너를 구해주지 못한 내가 원망스러워서. 구해주지 못해 미안해서.
후회가 밀려왔지만, 눈물을 지워내며 일어났다.
"......아재. 역시 결판 내러 가야겠습니다."
"....마음이 변하지 않으신 건가요?"
"반은요. 전우치 그 놈을 작살내고 아이들을 구하는 건 바뀌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사라지지 않을 거예요."
그래. 어떻게 내가 죽을 수 있겠어.
"그 녀석이.... 희망이의 마음을 모두 받았는데 어떻게 사라지겠어요."
너의 밤은 끝내지 못했지만.... 전우치, 그놈이라는 밤에서 아이들을 구해낼게.
"갔다 올게요. 꼭.... 돌아오겠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꼭."
"....몸 조심히 다녀오세요.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살아가려는 의지를 느낀 한기남은 전우치가 비둘기에 남긴 좌표를 상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설명 받은 좌표를, 구로의 한 마천루를 향해 달려가며 다짐한다.
"나를 위해 보내준 그 따뜻한 마음을, 이 작은 바램이 이뤄질 수 있도록, 살아갈게."
"안녕. 널 결코 잊지 않을게. 너의 나이트 엔더가.... 밤을 끝내는 길을 그곳에서 지켜봐 줘."
"나의 친구.... 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