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게인 클로저 20화

검은코트의사내 2021-04-14 0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요? 교관!"

"그런 일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준혁이 반발했지만, 트레이너는 냉정했다. 의식이 없는 사람이 꼭두각시처럼 조종당했다가 제정신이 돌아왔을 때 수많은 죄책감이 밀려오게 되어있다. 정상인이라면 당장이라도 자살할 정도로 위험한 수준에 이르게 된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지금 이 시기에는 차원종으로 변한 인간을 원래대로 되돌리는 힘이 없었다.

"분명히 방법이 있을 거에요! 교관님."

"없다. 지금 현재 과학 기술력으로는 절대로 만들어낼 수 없어."

 트레이너는 이미 미래를 알고 있기에 하는 말이었지만, 준혁은 두 주먹을 쥐며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리려고 했다. 서로 안면이 없는 사이라해도 차원종이라는 공공의 적과 싸우는 편이었으니까. 

"교관님은 아무 생각도 안 드시는 거에요? 그 사람들이 얼마나 괴로워했을지 아무런 생각이 안 드냐고요!"

 준혁은 울면서 밖으로 뛰쳐나갔다. 트레이너는 뒤쫓지 않고 고개를 숙이며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이때부터였다. 준혁과 사이가 틀어지기 시작한 건, 그 이후에는 전쟁에 서로 협력하긴 했지만, 어색한 사이는 나아지지 않았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그 때처럼 어색한 관계를 맺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래를 조금이라도 바꾸려면 그 녀석과 가까워질 필요가 있다.

 비록 서로 성향이 맞지 않는다고 해도 준혁이 그 때와 같은 운명을 맞지 않으려면 그와 가까워질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나이 어린 소년인 그와 가까워지는 건 너무나 어려웠다. 가까운 미래에 늑대개 팀인 나타와 그렇게 친근한 관계는 아니었듯이.

 트레이너는 자리에 앉아서 홀로 고민했다. 어떻게 하면 준혁과 가까워질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울프팩 팀의 안 좋은 결말을 막을 수 있을까? 물론 그들을 구해내면 새로운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최악의 결말은 반드시 막아야 하는 법. 

"그래. 그 사람이야."

 답은 나중에 태어날 이세하의 아버지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이세하는 어렸을 때부터 안 좋은 취급을 받고 자랐음에도 타락하지 않고 오히려 상냥한 말투로 수많은 여성을 홀렸다. 그럴 수 있었던 건 서지수가 아니라 아버지라는 존재 때문이었다. 트레이너는 곧바로 발걸음을 옮겨 세진이 일하는 곳으로 갔다.

 세진은 현미경으로 차원종 세포를 관찰 중이었다. 트레이너의 방문에 그는 피곤한 얼굴을 드러내며 말했다.

"죄송하지만, 나중에 오시겠습니다. 지금 연구중이라 바쁘거든요."

"그럼 끝날 때까지 기다리겠소. 마침 추가 임무도 주어지지 않았으니 말이오."

 트레이너는 빈 소파에 앉아서 폼을 잡았다. 세진은 의외라고 생각했는지 고개를 갸웃하며 연구에 집중했다. 

 자정이 되어서야 세진은 슬슬 그만두고 퇴근하려고 했는데 트레이너가 아직까지 기다리고 있는 걸 보며 놀랐다. 한 번 연구를 시작하면 기본 10시간 이상은 걸리는 법이었는데 근성을 가지고 기다려준 모습에 놀랐다.

"이거 놀랍군요. 아직까지 기다리고 계셨다니. 대체 저같은 과학자에게 무슨 할말이 있으시길래 그러십니까?"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소. 당신은 미성년자를 대할 때 어떻게 대하는 거요?"

"음? 아니, 그런 걸 왜 갑자기 물어보시는 건가요?"

"실은 우리 팀에 나이 어린 요원이 있어서 말이오."

"아, 그 애 말인가요?"

 세진은 누군지 알 거 같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팀에서 나이가 어리다면 한정되어 있으니까. 세진은 트레이너의 진지한 얼굴을 보며 대충 무슨 일인지 눈치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팀원끼리 서로 친해지는 것도 좋은 일이긴 한데, 설마 당신이 그런 요구를 할 줄은 몰랐군요. 훈련 교관 때 엄격했던 이미지와는 딴판인데요?"

"무슨 말이오?"

"보통 훈련 교관 출신들은 팀원들과 친해지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어요. 특히 목숨을 걸고 차원종과 싸워야 하는 이 시기에 말이죠."

 세진은 안경을 끌어올리며 매서운 눈빛으로 올려다보았다. 마치 전쟁을 실제로 경험했던 거처럼 행동하는 듯한 말투였다. 트레이너는 잠시나마 민간인에게 섬뜩함을 느꼈다. 

"트레이너 씨. 훈련 조교나 교관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게 뭔지 아십니까? 바로 인간의 정입니다. 당신은 교육생들에게 일일이 정을 가지지 않는 엄격한 교관이라고 소문이 퍼졌어요. 울프팩 팀은 강하다는 건 저도 알고 있어요. 하지만, 그들이라고 해서 죽음을 피할 수 있을 거라고 여기나요? 인간으로서의 정은 가지지 않는 게 좋지 않을까요?"

 트레이너는 세진의 말에 깜짝 놀랐다. 그가 생각했던 인물과는 다르게 너무나 냉철했다. 이것도 자신의 손으로 운명을 바꿔버려서 그런 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원래대로라면 세진과 울프팩 팀은 서로 만나지도 않았는데 이번에 트레이너가 한 일로 인해 바뀌어버렸다. 

"물론, 그게 당연한 일이지만......"

"아니면, 그들을 꼭 지켜야 할 이유라도 있는 겁니까? 전에 한 소녀를 구하기 위해 직접 몸을 움직이셨다는 데 당신도 결국 인간이었군요. 인간의 정이라는 게 아직 남아있는 거 아닙니까?"

 정곡을 찌르는 발언에 트레이너는 할말을 잃었다. 교관은 기본적으로 훈련생들에게 마음을 주지 않는다. 인간의 정 때문에 후유증이 남으니까. 하지만, 티나는 자신의 트라우마가 될 정도로 소중한 인물로 마음속에 사로잡았다. 그렇기에 그녀가 위험에 처할 때 나가서 구해줬던 것. 그리고 지금은 울프팩 팀을 운명에서 끌어내려고 하고 있다.

"교관을 그만두신 이유를 조금은 알 거 같군요. 당신도 누군가와 원만한 관계를 맺고 싶은 거죠?"

"그렇다고 할 수 있소."

 본래 목적은 털어놓지 않았다. 어차피 말해봤자 쉽게 믿지 않을 거라고 판단했으니까. 세진은 무거운 한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현재 제가 알려줄 수 있는 건 별로 없습니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거든요. 제가 어떤 말을 해줘도 당신은 제 말대로 행동하기 어려울 겁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당신 답지 않다며 어색해할 수 있으니까요."

"그렇소?"

"정면으로 들어가기 어렵다면, 다른 방향으로 돌파구를 찾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전, 내일도 일찍 출근해야 해서 이만 가보겠습니다."

 세진은 그렇게 말하고 연구실을 나갔다. 트레이너는 다른 방향이라는 말을 떠올렸다. 방법을 알려준다해도 아무나 사용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사람이 한 번 습관을 들이게 된다면 쉽게 벗어날 수 없는 수준이었으니까.


* * *


 준혁은 밤길에 혼자 걸어가면서 교관에게 서운했던 걸 떠올렸다. 차원종으로 변한 인간을 절대로 구할 수 없다. 그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교관이 미웠다. 어떻게 같은 인간으로서 그렇게 말할 수 있는가? 사람의 목숨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교관이 미웠다.

"반드시 희망이 있을 거야. 인류는 항상 불가능을 가능으로 이끌었잖아. 그 분에게 가서 물어볼까?"

 형 뻘이 되는 세진을 떠올렸다. 위상력 억제기를 만들어냈던 그라면 어쩌면 차원종을 인간으로 되돌리는 방법 또한 찾아낼 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니까.

"어머, 고민하고 있나 보네."

"너, 너는?"

 준혁은 곧바로 위상력을 개방하여 경계했다. 하늘 위에서 깃털처럼 사뿐하게 내려온 더스트는 입맛을 다시며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을 걸었다.

"어머, 너무 그러지 말았으면 해. 난 싸우러 온 게 아니야. 너를 도와주려고 온 거지."

"뭐? 나를 도와주려고 왔다고?"

"그래. 우리 군단의 일원이 된 인간들을 원래대로 되돌리고 싶잖아. 우리 군단은 인간을 차원종으로 만들 수 있고, 그 반대로도 가능해."

 더스트의 말은 준혁에게 충격적이었다. 인간이 하지 못한 일을 차원종이 할 수 있다는 얘기였다. 준혁은 자신이 차원종이 되는 걸 상상했다. 분명히 의식을 빼앗기게 될 거라고 확신했는데 더스트가 그 생각을 읽었다는 듯이 그에게 말을 걸었다.

"어머, 오해하지 말았으면 해. 난 수많은 인간들을 군단의 일원으로 삼았지만, 의식을 빼앗는 일은 하지 않았어. 전부 자진해서 군단이 되었고, 자기 의지로 너희들과 적대한 거거든. 후훗."

"무슨 소리야!? 자진해서 벌인 일이라고?"

 차원종으로 변한 인간들은 살육의 본능을 드러내는 괴물처럼 행동했는데 그게 다 자기 의지로 한 행동이라는 사실이었다. 준혁은 그 말을 믿을 수 없다고 말했지만, 더스트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거짓말이 아니야. 너희 인간들은 끝나지 않은 전쟁에 슬슬 진저리가 나기 시작할 거야. 처음에는 우리와 싸우는 걸 당연하게 여기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몸도 마음도 지쳐가는 편이지. 솔직히 말하면 나도 인간들과 싸우기 싫었거든."

 준혁은 눈살을 찌푸리며 그 말을 안 믿으려고 했지만, 더스트가 슬픈 눈동자를 드러내며 서서히 다가왔다. 준혁은 오지말라고 했지만, 더스트는 그를 조용히 껴안으며 말했다.

"불쌍한 녀석, 매일 어른들을 지키느라 너도 많이 힘들지? 다른 사람들을 구하지 못한 게 너무나 후회스럽지? 내가 그걸 해결해줄 수 있어. 네가 차원종이 되어서 그 사람들을 전부 구해주면 되는 거야."

 차원종이 되어 차원종화가 된 인간들을 원래대로 되돌리라는 말이었다. 준혁은 믿으려고 하지 않았지만, 트레이너가 말한 사실 때문에 흔들렸다. 차원종을 섬멸해도 차원종으로 변한 인간을 구할 수 없으니까.

"자, 어떻게 할래? 나쁘게 대하지는 않을게. 사람들을 구하고 싶지 않아?"

 더스트는 준혁의 뒷머리를 바라보며 씩 웃었다.

To Be Continued......


Chapter.0 프롤로그(Pro ~ 3화)




Chapter.1 차원전쟁편(4화~10화)




Chapter.2 울프팩편(11화~)
2024-10-24 23:36:24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