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 그레이스] 비숍 上
Forgetter 2021-02-24 4
“지나 그레이스, 복귀 완료.”
“수고했어, 지나~!!”
“지수...”
임무를 마치자마자 맞닿은 사람의 체온이 그 ‘퀸’의 것이라니...무척 드문 일이었다.
서지수라는 엄연한 이름이 있음에도 어째서인지 ‘퀸’이라고 종종 불리 우는 지수는 지나와 마찬가지로 직전까지 임무를 뛰다 왔는지 체온이 평소보다 더 뜨거웠다.
임무를 끝마치고 팀원들이 있는 원대로 복귀를 했을 때, 지나 그레이스는 가장 먼저, 습관인 마냥 우선적으로 막내부터 찾았다. 이번 임무도 수고했다며 막 달려들려는 서지수를 바로 등 뒤에 업은 채로 말이다. 그들의 베이스캠프를 원심으로 두어 막내가 있을만한 곳을 전부 다 찾아보았지만 막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막내는 가끔 그러했다. 사람들이 뻔히 찾을 수 있는 곳에 우두커니 있으며 ‘나 여기 있어~!’ 라는 식으로 존재감을 뿜어낼 때도 있었고, 그 반대로 아예 그 누구도 찾지 못했으면 하는 마음가짐으로 꽁꽁 숨을 때도 있었다. 오늘은 그 중에서 후자의 경황인 듯하였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막내를 찾아내 다시 거점으로 복귀시키는 것이 지나의 맡은 임무 중 하나였다. 통상 임무는 아니고, 그냥 으레적으로...습관 같이 지나가 자처해 도맡은 역할이었다. 팀원들 중에서 발이 가장 빠른 지나였기에, 마음만 먹으면 일대를 한 바퀴 재빨리 돌아서 막내의 흔적을 그 누구보다도 빨리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가끔 그렇게 꽁꽁 숨어버린 막내를 지나가 아닌 다른 이들이 붙잡아올 때도 있었지만 대게는 지나가 막내를 붙잡아왔다.
숨 가쁜 임무를 마치고 온 직후임에도 별다른 휴식 없이, 무리하게 또 가속을 하려는 것 같은 지나를 만류한 건 지수였다. 정확히는 당사자가 부탁한 기밀 누설을 통해서 말이었다.
“막내는 아까 호수 쪽으로 가는 거 같았어.”
“호수?”
지수가 턱으로 어느 특정 방향을 가리켰다.
그러고 보니 이때가 당시 이 근처를 거점으로 잡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그래서 주변 경치를 느긋하게 볼 여유 따위도 없고, 물리적인 시간도 없었다. 그래도 새로 바뀌는 거점 주변을 한 바퀴 정찰하는 것은 지나의 몸에 배인 습관이라서 근처에 호수가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게다가 지수가 가리킨 방향은 지나의 기억 그대로 호수가 있는 방향과 일치하기도 했다.
가속은 아니더라도 정상 속도로 그쪽으로 향하려는 지나를 지수가 비밀을 누설해준 것치고는 만류하였다.
“그런데 지나도 가지 않는 게 좋을 걸?”
“...막내한테 무슨 일 있어?”
“좀 심상치 않은 얼굴이라서 몰래 뒤따라가려다가, 당사자한테 들키고 따라오지 말라고 단단히 잔소리나 듣고 오는 길이야.”
그러다가 우연히 복귀하는 지나를 본 거고~ 이제는 아예 지나의 뺨에 얼굴을 부비며 ‘막내랑은 달리 지나는 참 착하단 말이야~’ 라며 농담 아닌 농담도 던지는 건 덤이었다.
그렇게 별다른 내색은 안 하는 지수와 달리 지나는 자세한 사연 따위 모르는 제3자가 봐도 심각한 얼굴이 되었다. 그런 표정으로, 그 표정과 어울리는 자못 심상치 않은 어투로 이렇게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고민이...있나?”
“언제나와 같이, 비슷한 고민이겠지.”
분명 지나의 입장에서는 혼잣말이었는데 지수가 맞받아쳐서 본의 아니게 대화가 되어버렸다. 막내의 심상치 않은 행위에도 느긋해 보이는 지수에게 지나가 물어보았다.
“퀸은...걱정이 안 돼?”
“왜 안 되겠어.”
당연히 걱정되지. 그런데 본인이 별로 말하고 싶은 것 같지 않아서 그냥 잠자코 보기만 할 뿐이야. 퀸의 주장에 지나도 나름 수긍하였다. 수긍은 하는데...그래도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몸이 먼저 움직였다.
기어코 호수가 있는 방향으로 가려는 지나를 지수는 구태여 말리지 않았다. 나는 몰라도 지나라면 말할 수도? 라는 반응인 것 같았다. <울프팩>의 모든 팀원들이 막내에게 각별했지만, 특히 지나가 더 그러했다. 그러니 상대가 자신이 아닌 지나라고 한다면...막내도 나처럼 그렇게 각박하게 내치지는 못하겠지, 싶은 것이었다.
그리고 고민이 있는 막내를 일부러 따라가려 한 것도 막내의 고민이 무엇인지 정말로 궁금해서, 순수한 호기심으로 간 것은 아니었다. 막내가 지수 자신을 비롯한 팀원들에게 굳이 보여주고 싶지 않은 감정이라고 한다면...뻔하디 뻔했다. 이 전쟁터에서 버티고 있는 사람들의 감정은 대체적으로 비슷하였으니까. 다만, 지수가 문제로 삼는 것은 그러한 감정이 드는 것 자체가 아니었다. 우리 막내가 너무나도 착하고 상냥해서 자기 혼자 끙끙 속으로 앓으려고만 한다는 게 더 결정적인 문제였다.
* * *
지나는 막내를 손쉽게 찾았다. 애초에 지수가 자신에게 거짓말을 할 리가 없었고 – 특히 막내의 안위와 관련하여 – 막내가 그렇게 눈에 안 보이는 곳에 숨어있는 것도 아니었다. 바로 호수에 도착하자마자 지나의 시야에 담겨질 정도로 호수의 입구 격에 가까운 나무 밑에 쪼그려 앉아있었으니까. ‘막내는 호수로 갔어~’ 라는 지수의 밀고(?)가 없었으면 찾는데 시간이 좀 더 걸렸겠지만, 결과적으로 찾았으니 더 이상 다른 가능성은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인기척 없이 누군가에게 다가가는 건 지나가 가지고 있는 또 다른 능력이었다. 누구보다도 빠르고, 또한 기척도 잘 숨긴다. 이 두 가지의 조합은 지나가 팀 내에서 암살이라고 하는 조용한 임무의 1인자가 된 경위기도 했다.
아무튼 이 기척을 숨기는 건, 지나와 생사를 나눈 팀원들조차도 잘 인지하지 못할 때가 있을 정도로 정밀하였다. 그래서 지나가 바로 뒤에 오고서 자신의 어깨를 두드릴 때까지 막내는 그 누군가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아니면 미세하게 감지는 했어도 자신의 감정 – 혹은 생각 – 에 빠져서 미처 감지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었고.
지나가 어깨를 토옥- 치자 막내는 다소 날카로운 눈으로 지나를 바라보았다. 아마 자신이 여기 호수로 가는 걸 눈여겨본 지수가 – 그리고 신신당부로 쫓아오지 말라달라고 말도 전했던 – 자신과의 약속을 어기고 찾아온 것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지수가 아닌 지나를 보았을 때, 막내는 정말로 놀란 눈치였다. 그리고 그 놀라움의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한 건 지나가 임무를 마치고 벌써 돌아왔다는 사실이었다.
막내가 조심히 물었다.
“...누나, 언제 복귀했었어?”
“아까 전에.”
“...마중도 못 나가고 미안해.”
“괜찮아. 마중 한 번 안 나온 걸로 감정 상할 사이도 아니잖아.”
울었는지...아니면 지나가 오기 직전까지 괴성이라도 질렀는지 막내의 목소리는 미묘하게 끝이 다 갈라져 있었다. 지나는 자신이 참 말재간이 없는 게 이럴 때마다 참 힘들다고 생각했다. 시원시원하게, 무심코 툭- 내뱉는 것 같지만 요점은 잘 말하는 지수의 말솜씨가 부러워졌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말솜씨는 영 없지만 그래도 지나는 힘겹지만 대화의 물꼬는 틀었다. 사실 이때의 막내에게는 지수의 털털함보단 지나의 섬세함이 더 궁합이 잘 맞았다는 걸 지나는 끝내 모르게 되었다.
“지수한테 들었어.”
“...뭘?”
“심각한 얼굴로 이쪽으로 가는 걸 보았다고.”
“...누님도 참. 함구해주시지...”
어쩐지 들키고 싶지 않은 비밀을 들킨 얼굴이었다. 이 말에 배려심이 높은 지나는 그걸 곧이곧대로 – 그러면서 퀸의 말처럼 지금은 나조차도 같이 있는 걸 원치 않는구나, 하는 생각도 같이 하였다 - 받아들이며 일어날 채비를 하였다.
“내가 온 게 싫어? 그러면 지금이라도 가줄까?”
“아, 아니야...”
“그래? 그럼 같이 있어줄게.”
“...”
막아서는 막내의 옆에 다시 얌전하게 착석하는 지나. 어쩌다가 지나가 가는 걸 막은 꼴이 된 막내는 그 후로도 한동안 말이 없었다. 지나는 그동안 호수의 경치를 바라보는 척 하면서 곁눈질로 막내를 보았다. 막내의 눈은 차분하였다. 또래에 맞지 않게 상냥하고 슬픈 눈을 가진 아이였다. 그것이 마음에 걸려 막내를 좀 더 챙겨주던 것이, 이제는 당연한 일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불만은 당연히 없었다.
“...누나.”
“응?”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막내가 겨우 입을 열었다. 그때까지 참으로 길고 긴 시간을 인내해준 지나가 참 대단하게까지 보였다. 물론 바로 옆에 있던 막내의 시점에서 말이었다.
그래도 막내는 차마 말을 할 수 없었다. 아니, 하지 못하였다. 왜 이럴 때에 하필 말문이 막히는지, 막내는 평소에는 하지도 않는 자신의 말재간을 자책도 하기 시작했다.
“아니야, 아무것도...”
“왜 하려다가 말을 말아? 그렇게 중간에 어정쩡하게 끊는 거, 사람의 호기심을 더 증폭시킬 뿐이야.”
“...말을 안 하고 싶은 게 아니라, 못 하는 거야.”
막내의 변명은 걸출하였다.
“이 감정을 잘 표현하지 못하겠어.”
“...”
그리고 그 변명에 대해 지나도 다소 공감하는 점이 있었기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막내는 마저 이어서 다시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그냥...온통 뒤죽박죽이야. 기뻤다가도 슬펐다가도 화가 나다가도...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기도 하고.”
“...”
“전쟁이란...그런 건가 싶기도 하고.”
“...그걸 너만큼은 깨닫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지나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어두워진 지나의 옆얼굴을 보고, 이제는 직전 상황과 반대로 막내가 지나를 위로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알지 않아도 시간이 흐르면 알았을 거라고 생각해.”
“...”
“그러니 너무 자책하지 마.”
“그래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몰랐으면 했어.”
이게 더 막내를 향한 지나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나뿐만이 아니라 퀸도...다른 울프팩 팀원들도 그럴 거야...지나는 그렇게 단언할 수 있었다. 다들 은근히 막내를 챙기려고 하는 것도 다 그러한 목적에서 비롯된 것일 테지. 어쩌면 막내도 은연중으로 그런 걸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러한 감정에 사로잡힐 때마다 주변인들이 알아차려주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술래 없는 숨바꼭질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기가 막힌 건 술래를 정하지도 않았는데, 술래를 자처하며 자신을 찾아내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사람들은 지금, 막내에게 있어서 가장 좋아하는 형과 누나들이라는 점이었다. 그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라고 막내...아니, 제이(J)는 훗날 그렇게 회고를 할 때가 종종 있었다.
그리고 그 술래는 종종 게임을 숨바꼭질에서 다른 게임으로 전환하곤 했다. 그래, 예를 들자면...
“...그럼 달려볼까, 막내야?”
“...??”
그렇다. 갑자기 이렇게 목숨을 건(?) 달리기 내기를 하자고 제안을 한다던가.
[작가의 말]
센텀시티 챕터2가 목요일에 나온다는 소식에 지나 그레이스 과거 날조(+서지수, 제이) 단편을 부랴부랴 써봅니다. 센텀시티 챕터1 보면서 지나에게 너무 감겨버렸어요...오늘은 시간이 늦었으니 上편만 올리고 下편은 센텀시티 챕터2 업데이트 전에 올릴 거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