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비스의 주인 2장 11화, 가려진 진실과 거짓투성이 세계 / 공지+선택
AI미스틱 2021-01-09 1
시작하기에 앞서, 몇가지 공지사항을 드리고자 합니다.
AI미스틱입니다.
우선 쉬겠다는 이야기를 드리려는 것은 아닙니다.
일단 보잘것없는 작품이지만, 어비스의 주인을 읽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해드리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본론부터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개인적으로 몇 차례 스토리를 읽어보고, 계속해서 나아가본 결과, 부산행이 결정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저 혼자만의 불안감일지도 모르지만, 부산으로 가게된다면 검양, 늑대개와 같은 시점으로 가게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에 대해서 설령 부산으로 스토리가 나아간다 할지라도 양해해주셨으면 합니다.
물론 이에 대한 스토리텔링 부족 역시 제 실력 부족입니다.
두 번째로, 어비스의 주인은 전투보다는 대화와 묘사가 중점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최근 프레이 아델 로와 하늘새 팀과의 행적을 살펴보면 전투나 묘사보다 대화를 우선시하고 있습니다.
전투나 묘사보다는 대화를 통한 직접적인 상황 및 정보 전달이 빠르다고 생각했습니다.
현재에도 그런 생각은 변화가 없습니다만, 만약 껄끄러우시다면 댓글로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게 있어서 가장 우선시되는 중점은 대화 > 묘사 > 전투 순서입니다만, 여러분들의 의견에 따라 중요도를 바꿀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빠른 전개를 원하신다면, 저는 그에 응해드릴 수 없다는 점을 알려드립니다.
이상입니다. 부디 2장 11화를 즐겨주시기 바랍니다.
※피드백이나 비판 등, 여러 가지 모자란 점을 제게 지적해서 더욱 나은 방향으로 소설을 이끌어갈 수 있게끔 해주십시오.※
※해당 소설의 하늘새 팀이나 어비스 등은 게임 내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세이지가 사라지고 난 뒤, 프레이 아델 로는 고민에 빠졌다.
검은 위상력은 안정을 찾았지만, 그것과는 별개의 일이 남아있었기에.
“검은 위상력… 역사상 단 한 명만이 사용한 유일한 힘….”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이질적이기 그지없는 그 힘은 차원종의 것과도, 인간의 것과도 달랐지만.
어쩌면, 유니온이라면, 그 힘의 기록을 남겨두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에 자료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연하은이 나타난 19년 전의 자료부터 현재까지. ‘검은 위상력’에 대해서.
하지만 그 행동이 무의미한 것이라는걸 깨닫는데까지 큰 시간은 걸리지 않았다.
‘검은 위상력’이라는 한정된 의미 내에서는 당연히, 단 하나의 존재만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다면 그 정보의 폭을 넓혀보면 어떨까.
‘기적’과 ‘위상력’, 혹은 ‘색다른 위상력’ 등으로.
끄트머리라도 잡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해보는 행위였으나, 대부분의 행위는 무의미한 짓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어떤 정보조차 남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클로저 복제 프로그램? 인공 이외에도 여러 가지 일을 다 해왔었군.’
유니온이 행하는 일이야 뭐 거기서 거기였다.
인간 전지라던가, 클론, 더 나아가 생명의 부활을 꿈꾸는 영역까지.
신의 영역을 범한다고 해도 좋을 정도의 행동 그 자체였으나, 그에 대해 프레이 아델 로는 그다지 부정적인 생각이 들지 않았다.
분명 그 대상의 가족에게는 모욕이라고, 혹은 그 이상의 치욕일지도 모르는 일이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현재의 고통받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이 모든 일도 필연적이고 필수적으로 일어나야만 하는 일이었을테니까.
특이한 것은 그 ‘복제 대상’에 있었다.
‘민간인…?’
그것은, ‘클로저’조차 아닌 ‘민간인’.
어째서 민간인이 복제 대상이 되어야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으나, 이윽고 이어지는 자료들의 모습을 보며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 이게 있었기에.
검은 위상력 복제라는게 ‘현실화’가 될 수 있는건가.
흥미 이상으로, 이런 행위를 저지른 것이 마치 현재를 위한 일이었다는 것처럼 구성되어 있었다. ─해당 민간인을 복제에 넣어 기획한 인간은 다른 누구도 아닌 엘트 라 어스트, 검은 위상력 복제를 행했던, 현대의 생명공학자라면, 과학자라면 잊지 못할 정도로 역사에 한없이 등장하는 인간.
“재미있군, 총장은 알고있는 사실인가?”
타악, 하며 키보드에서 손을 떼낸 프레이 아델 로가 말했으나, 아무도 없는 연구실에서 그에 대답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허공을 적막하게 울리는 상황 속에서, 우연인지 노린 것인지 들어오는 총장의 연락에 웃으며 받은 그는, 총장이 묻기도 전에 물었다.
“클로저 복제 프로그램, 당신이 관여하고 있나?”
─그것은, 프레이 아델 로조차 몰랐던 ‘검은 위상력 복제’의 근원이었기에.
그리고, 돌아온 답은 프레이 아델 로에게 정말.
아주 기쁠만한 대답이 돌아왔다.
‡ ‡ ‡
얼음성 알현실.
앉아있는 성의 주인 외에도 손객이 한 명 있었으니, 새하얀 머리카락을 가진 연하은은 공허한 눈동자를 가진 채 이즈라엘이 내어준 차를 즐기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설화가 묻기를.
“한국에서의 일은 어떻게 되어가나요?”
“…너무 급하게 굴지 말라. 계획은 천천히 진행되어야하는 법. 갑작스레 일어나는 변화에 휩쓸려서는 안 된다.”
“맞는 말이지요, 하지만… 아직도 이 손이 떨립니다. 당신도 그렇지 않습니까? 그분이 가장 총애하는 분이시어.”
그러자 그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모습에 인간과는 다른 면모를 가진 것이 마음에 든다며 설화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앞으로 일어날 일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습니다. 저들은 결국 제 시종을 뚫어내기 위해 더욱 커다란 힘을 가진 채 돌아오겠죠. 하지만….”
인간은 인간.
그 추악함과 더러움을 버릴 수 없는 인간이기에, 그런 불의한 짓을 하고도 뻔뻔하게 살아있을 수 있는 것이겠지.
“파리에 존재하는 최대 규모의 유니온 연구소… 그곳에 그런 것을 숨겨뒀으리라고 누가 생각했을까요.”
정말 한숨이 나올 지경이었다.
인류를 위해, 인간을 위해, 미래를 위해. 말은 장황하고 번지르르하게 해놓고선 한다는 짓거리가 고작 그런건가.
“…그분의 현신은 얼마나 이루어진건가요?”
“거의 대부분. 그는 이 진행상황을 썩 좋아하지는 않는 것 같지만.”
“그렇겠죠. 하염없이 인간을 좋아하는 당신이 하는 짓이라고는 소원의 등가교환 정도니까.”
차를 한 번 홀짝인 설화가 찻잔을 내려놓은 채, 미소를 띄며 말했다.
“그리고 찾았죠. …그분이 가져야만 했던 ‘첫 번째 그릇’을.”
“…너….”
“들킬까봐 조마조마했지만, 적당히 훔치고 도망쳤으니 걱정하지 마시지요.”
물론, 나오는 길에 위협이 되리라고 여겨진 것들은 모두 부숴놓았지만.
“그럼, 조금 유희를 즐겨볼까요. …이곳에서 함께 바라보시겠습니까.”
새의 발톱을, 그가 가진 감정을 가지고 장난치는 것을.
인간의 마음을 가지고 장난치고, 유혹하는 것을.
그토록 재미있는 것을.
‡ ‡ ‡
그리고, 한국.
인간의 시체가 산처럼 쌓여있는 한 쓰레기섬.
사람이 살지 않는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한산하고 고요한 이곳에는 차원종도, 인간도, 심지어는 어떤 생물조차 살지 않는다.
사람이 살았던 문명만큼은 남아있었으나, 아무도 없다.
모두 떠난 것은 아니었다. 단지.
“앞으로 조금 더인가.”
단지, 모두 죽어 시체가 되어버렸을 뿐.
그 시체 옆에서, 가벼운 걸음걸이로 걷고있는 자그마한 하얀색─피어는 남아있는 생명의 소리가 하나도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인지한 듯 옆에서 나란히 걷고있는, 실로 2m를 훌쩍 넘기는 거구를 가진 다른 누군가에게 말했다.
“레비는 감지되는게 있나요?”
친한 듯 떠묻는 질문에 레비라고 불린 그는, 고개를 저었다.
“하나 더 있었으나… 몇 달 전부터 감지되지 않는다. 도망친 모양이군.”
“눈치를 챈걸까요?”
“그건 아닐거다. …자신들이 처한 상황에 대한 공포를 가진 채 행동한 것이겠지.”
인간은 ‘죽음’이라는 미지의 공포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렇기에 자신들에게 다가오는 죽음을 피해서, 살고싶은 육지를 향해 도망친 것이겠지.
하지만, 그 삶의 의지라는 것이 크게 의미가 있을 리가 없었다.
목 한번 부러트리면 죽고, 심장 한 번 파내면 죽는 그런 목숨을 가진 파리들이 도망친다 해도, 어차피 파리일 뿐이었으니까.
“그의 부활까지 얼마나 남았지?”
“인간 천 명분일까요.”
인간 천 명. 한없이 많은 숫자임에도 불구하고, 가볍게 말하는 그 목소리는 실로 섬뜩하기 그지없었다.
산처럼 쌓여있는 생명의 목숨들을 두고, 앞으로 1천명을 더 죽이겠노라 말한다고.
장난스러운 대화일 수도 있었으나, 그들이 하는 행위는 장난도 아니며, 사냥도 아니다.
단순한 살육. 목적 달성을 위핸 절대악의 행보.
아니, 절대악이 아니다.
절대악이라는 기준부터가 어차피 인간들이 선악을 나누기 위해 만들어낸 하찮은 기준이니까.
인간이 아닌 그들의 입장에서는 인간이야말로 절대악이며, 자신들이야말로 절대선인 것이다.
“도시에 있는 그 바글바글한 인간을 죽였더라면 벌써 준비가 끝났을텐데.”
그리 중얼거리니, 안된다며 피어가 제지했다.
“클로저라는 것들도 귀찮고, 무엇보다 그들은… 인간이라는 족속은 ‘악’을 표방하는 무리들과는 다르게, 한없이 사악해질 수 있는 존재들이니까요.”
목적을 알게되면, 쌓여있는 시체는 물론이요 핏물까지 불태울 정도의 폭염을 쏘아올려, 지상 모든 것을 파괴할지도 모른다.
그 폭염으로부터 지켜내는 것은 아주 간단한 일이지만, 굳이 행동해서 자신들의 행보를 널리 알려줄 필요는 없었다.
물론, 지금까지 찾아온 클로저의 숫자를 보면 이미 저쪽에선 알아차린 모양이지만.
“그럼… 이곳의 인간도 다 처리했으니 다음으로 넘어가죠.”
─다음은….
“이곳과 꽤 근접해있는… 부산이 좋을까요?”
“괜찮지. 인간이 많다고 생각되는군.”
재앙이, 대륙을 향하고 있었다.
‡ ‡ ‡
실로 이틀 만에 돌아온 세이지와 아나를 꾹 끌어안으며 단아가 반가움을 표시하자니, 그 모습을 차마 방해하고 싶지 않았던 것인지 다가가지 않았던 리르는, 그들의 재회가 끝난 다음에야 하늘새 2분대… 이젠 세 명밖에 남지 않은 2분대와, 1분대 모두를 불러들였다.
아직 상처를 치료하고 있었지만, 어느 정도 움직일 수 있는 정도에 이른 하얀까지 모두 참석하니 그제서야 리르가 입을 열기를.
“지금부터 ‘프레이 아델 로’를 국가급 범죄자로 인식, 추적 및 체포에 들어갈 겁니다.”
그리고.
─철컥.
불길한 소리.
총구가 겨눠지는 소리와 함께 삐걱대기 시작한 서로 간의 관계 속에서 리르가 침을 삼키며 물었다.
“…무슨 일인가요, 아나?”
그러자, 커다란 저격총을 손에 쥔 채 리르를 겨누고 있는 아나가 답했다.
“아빠를 쫓지 마.”
그 이상 아빠의 일에 개입한다면, 바로 쏠 테니까.
그 한마디에 유주가 분개하며 일어났다.
콰릉! 하며 순간적으로 폭음이 일어나니 아무리 주도권을 가진 아나라 해도 놀란 것인지, 몸을 움찔거리며 고개를 돌렸다.
온 전신에서 푸른 스파크를 일으키며 강한 분노를 드러내고 있는 유주가, 이빨을 부득 갈며 물었다.
“무슨 짓이지, 아나?”
─혼나는 것은 무섭다.
그것은 아나 스타피트라는 인간에게 각인되어있는, 무의식적인 본능과도 같았다.
하지만 그 본능을 찍어누르는 무언가가 존재했기 때문에, 지금의 아나 스타피트는 그 위협 앞에서도 방아쇠에서 손을 떼지 않은 채 있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유주의 질문에는 대답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인지, 그 맑고 투명한 눈동자를 빛내며 아나가 답했다.
“말한 대로….”
-아나 스타피트 양의 제어 코드를 작동시켰을 뿐, 그 외에는 아무것도 아닐세.
그들의 대화 속에 끼어든 것은 단 한 기의 뻐꾸기.
그리고 뻐꾸기 속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프레이 아델 로였다.
“…프레이 아델 로….”
-그녀의 몸에 부착해둔 통신기 덕분에 대충 잘 알았네, 리-르 앙골라 관리요원. 자네가 나를 국가급 범죄자라고 인식할 정도로 내가 하는 일이 인도적이지 않다는 것까지. 하지만 생각해보게, 파리가 불타는 상황에서 나를 우선시한다는 것은… 파리 시민 전체를 타오르는 화톳불에 집어넣겠다는게 아닌가.
“…당신의 행동이, 더 위협적이라고 느꼈을 뿐입니다. 실제로 클로저 셋은 돌아오지 못하고 있고요. 이 상황에서 파리 거리를 제압할만한 ‘힘’이 모자라졌으니, 당신을 우선순위로 삼는 것이, ‘이즈라엘’과 ‘아즈라엘’을 동시에 상대하는 것보다 더 이득이라 생각했을 뿐입니다.”
-결국에는 이득. 무엇이 더 무겁고 가벼운가의 문제인가? …확실히, 내가 지금 하는 짓은 자네들의 전력을 약화시키는 짓이지. 하지만 알아줬으면 하네. 나는 호프만 놈과는 달리 자네들에 대해서 자세히 아는 바가 없네. 아무리 위대한 과학자라 해도 인간의 마음 자체를 알 수는 없지.
-그렇기에 나는 완벽하게 제어할 수 있는 자들만을 사용하기로 결정했네. 세이지 군은 세 명의 목숨이 내게 붙잡혀있는 이상 복종할 수 밖에 없지.
“아나는 어떻게 한거죠?”
그 대화 속에 마나가 들어와서 질문했다.
말 그대로, 일전에 프레이 아델 로의 말을 따르자면 자존심이 강한 쪽이 더 영향이 강해야할텐데, 어째서 그중 가장 자존심을 찾기 힘든 아나가 이렇게 그의 제어 코드에 속박당해 있는 것인가.
그것에 대해서는 간단하다며 프레이 아델 로가 이야기를 꺼냈다.
-간단하네. 아나의 과거를 살펴보면 되는거지. 그녀는 과거에 꽤나 싸움광이어서 말이야… 막내인데도 불구하고 여기저기에서 사건을 터트려서 꽤 애를 먹었네. 그래서 나는 한 가지 가능성에 걸어보았지.
-인간의 선악과 도덕성을 결정하는 것은 교육이다. ─성악설의 내용을 어느 정도 이야기해보았네. 본래 인간에게는 선도 악도 아닌 것이 존재하나, 그것이 교육을 통해 가야 할 길을 잡을 수 있다는 아주 따분한 이야기지.
-하지만 잘 보게. 나는 그 아이를 직접 거두어 교육함으로써 그녀의 광적인 투쟁 본능을 억눌렀지.
“동시에 아이를 소심하고 소극적으로 만들었고.”
-그것에 대해서는 내 실수였지. 나는 그 정도로 심하게 하려고 하진 않았네. 하지만 결국 그렇게 되더군. 자신이 막 나가던 시절의 자신감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지한 다음에는 자신감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인식해버린 것이지. 아이의 아주 단편적인 시각일세.
-어쨌든 그렇게 해서 아나의 큰 자존심과 악질적인 성격을 고친 나는, 그 아이에게 부모로서의 교육을 시행했네. ─생각해보게, 아무리 안좋은 상황이라 해도 부모가 하는 말을 쉽게 무시할만한 아이가 그리 많을 리가 없잖나?
“순종적이게 만들었다고 말하시지.”
그 말에 더해서 유주가 축약해서 답하라는 협박을 내보내자, 프레이 아델 로는 알았다며 말을 이었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소극적이게 되었으며 순종적이게 된 아나의 성격은 제어 코드에 속박됨으로 인해 더욱 내 명령에 다뤄지기 쉬운 상태라는 것이지. 이해되었나?
아무런 반문조차 하지 않고 있으니, 프레이 아델 로가 말하길.
-사실 자네들을 크게 방해할 의도는 아닐세. 내가 아나에게 내린 명령은 아주 단편적인 것. ‘하늘새를 돕고, 감시하라’… 그 감시의 영역이 커졌을 뿐일세.
“어째서 우리를 도우라는 명령을 내린 거지?”
-어떤 일이 되었다 하건 인간이 삶을 잃어버리는 일은 일어나선 안 되니까. …자네들은 그 삶을 지켜주는 클로저고. 대답이 되었나?
“…….”
-되었다고 알아듣겠네. 사실 내 자네들에게 살짝 부탁하고자 하는 일이 있어서 말이지. …아, 그래. 우선 나에 대한 ‘국가급 범죄자’ 등록은 멈춰주게나. 지금 당장. …하지 않는다면 아나로 리르를 쏴버리고, 아나도 자결시키면 그만일세.
“알겠어요.”
리르가 태블릿PC를 조작하며 그에 대한 격상을 멈추니, 그제서야 대화가 통할 동등한 위치가 되었다며 프레이 아델 로가 말했다.
-나 자신의 안전 확보를 위해서는 우선 자네에 대한 제지력이 필요하겠군, 드래곤 박용태.
“…지금 이곳에 내가 없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텐데?”
-충분히 알고있네. 그렇지만 현 전황을 휩쓸어버릴 수 있는 정도의 존재가 있다는 것이 우선시되어야 하는걸세. 자네에 대해서는 한국으로의 귀환을 명령하도록 하겠네. 리버스 휠로.
“리버스 휠 작동 시간동안 이곳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는?”
-여기있는 이들은 모두 클로저. 이곳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현재 민간인 신분인 자네가 걱정할 필요는 없네. 리-르 앙골라 관리요원, 자네가 동행하게. 자네의 공석에 대해서는 내가 직접 대신하도록 하지.
물론 리르의 빈자리를 모두 대신할 수는 없을 터였다.
하지만 일시적인 대체제라면 될 수 있다며 말하는 그의 앞에서, 인질 넷을 사로잡힌 채 감히 거역할 수는 없었던 박용태가 순순히 그의 말에 다르니, 리르가 함께 그 뒤를 따라가며 걱정만을 내비쳤다.
남은 사람은 클로저와 뻐꾸기같은 기곗덩이, 그리고 벌처스에서 파견 나온 장사꾼 외 몇 사람 뿐.
-그럼, 우선 자네들이 해주었으면 하는 일이 있네.
가장 먼저 하게된 일은, 1분대는 회복 전념과 2분대의 경우 현재 파리 시가지를 유린하고 있는 세력.
어비스에 의해 조종당하고 있다고 여겨지는 클로저들을 제압할 것이었다.
-최악의 경우 사살해도 좋네. 결국 상대도 클로저… 봐줬다가는 자네들이 당할지도 모르니 말이야. …인식명 아즈라엘과 이즈라엘의 대면시, 후퇴를 최우선 사항으로 여기게. 자네들의 목숨은 한 사람분이 아니니까. 알겠나?
모두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자, 지금부터 빨리 움직여달라고 말한 프레이 아델 로는 뻐꾸기 통신을 켜놓은 채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고, 남은 사람들끼리 작전을 짜기 시작했다.
“외곽지부터 안쪽으로 압박하는 식으로는 인원이 너무 모자라. 녀석들의 활동 반경도 그렇고. …안쪽에서 넓혀가면서, 최대한 건드리지 않는 방식으로 하는게 좋을거야.”
“세 명밖에 없지만… 아나는 저격시에 무방비해지니 다른 한 명과 함께 활동하는게 좋겠네요.”
결과적으로 이루어진 팀은 단아가 혼자서 활동하는 쪽이었다.
애초에 그가 마음껏 싸우기 위한 조건을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그쪽이 훨씬 나은 편이었다.
어느 정도 인원을 정리하고 난 다음에는 마나가 그 사이에 끼어들어서 말하기를.
“하얀 요원님과 유주 요원님은 이쪽으로 오세요.”
하얀과 유주가 회복을 위해 자리를 비운 다음에야 무기를 들고 발길을 돌린 단아가, 세이지에게 넌지시 물었다.
“…후회할지도 몰라.”
“…후회하게 되는것도, 결국에는 운명이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죠.”
─지금도 그렇고, 미래에도 그럴 수도 있고요.
착잡하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답하는 세이지의 말에 몇 번 크게 발을 구른 다음 하늘로 날아올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거리에서는 커다란 만남이 몇 번 있었다.
한때 A급 요원이었으나 이즈라엘의 포로가 되어버린 클로저와 단아의 만남이라거나.
똑같은 총기를 다루는 클로저면서도 보다 경험이 출중한 요원과의 만남이라거나.
아니면, 세이지와 똑같이 움직이는 기행을 보이면서도 순식간에 그 힘으로 제압당한 클로저와의 만남이라거나.
어느쪽이건 그다지 좋은 결말을 맞이하지는 못했다.
단아의 끌어서 튕기는 일격에 몸에 구멍이 몇 번이고 나다 못해, 결국 쓰러져서 억지로 연행된 클로저나.
결국 검은 힘에 제압당해 피를 흘리며 연행된 클로저나.
온 전신의 구멍에서 피를 쏟아내면서도 움직이려고 억지로 움직이다가, 결국 절명해버린 클로저나.
어느 누구 하나 빠짐없이.
─구하지 못하는 영역에 있었다.
그들의 ‘가공’은 평범한 인간의 세뇌나 최면이 아니다. 그걸 알게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들의 가공은 정확히 자신의 어떤 ‘힘’을 통해 매혹시킨 상대를 산 채로 얼린 다음, 극저온 상태에서 천천히 죽인 뒤 명령체계를 입력하는 방식.
즉, 이미 사망한 상태에서 적의를 가진 채 움직이는 좀비와 같은 형태였다.
죽은 사람을 살릴만한 의료기술따위, 현대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심박은 제로, 뇌파도 제로. 혈관은 얼어붙어있는 상태에서 움직이는 것부터가 이상한 것이었다.
“…아무도….”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
살리지 못했다는 자책감.
그 두 가지 감정 속에 사로잡힌 마나는 결국 방문을 걸어잠근 채, 유주와 하얀에 대한 의료 행위를 제외하면 나오는 일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리르가 돌아왔을 때 즈음에는 죽어서 움직이는 클로저의 절반 정도가 제압된 상태였으며, 그 상황에서 보고서 자료나 정보들을 읽어보던 리르는 단지 경악할만한 일, 이라고밖에 표현하지 못했다.
─프랑스 파리 팀 대부분이 괴멸 상태. 현 시간부로 해당 팀들은 모두 파리로부터 철수.
팀 대부분이 괴멸, 이라는건 어느정도 알고있었다.
하지만 프랑스에서 철수라니.
테러리스트는 물론이요 어비스의 침공에도 대응하지 않겠다는 의사인가? 아니면, 바깥에서 틀어막겠다는건가?
어느쪽이건 이곳 파리가 냉동고가 되거나, 아니면 불바다가 되는 것을 피하지 못한다.
제정신이냐고 묻고 싶은 정도의 행위였으나, 그걸 차마 입 밖으로 내밀지는 못했다.
결국 그걸 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으며, 그 이후로 파리에서의 전투 행위는 거의 소멸한 것이나 다름없는 일에 이르렀다.
그리고 단아는.
“오랜만이네요, 단아 도련님.”
“…….”
싱긋 웃는 미소를 하고있었다.
그 미소는 아무리 적대하는 자라고는 해도 빠지게 만들 정도의 어떤 매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쭉 바라볼 때마다 심장을 직접 움켜쥔 채, 이리로 오라고 속삭이는 것 같았다.
한 발자국만 더. 그런 유혹이 계속해서 충동질하며 그를 유혹했으나, 끝내 그 한 발자국을 움직이지 않은 단아가 봉끝을 내밀면서 말했다.
“무슨 용건이지.”
그것에 대해 소녀─이즈라엘은 장갑을 낀 두 손으로 치마 양 끝자락을 들어올리며 적대 의사가 없음을 밝힌 뒤에야 허리를 숙인 그대로 말했다.
“…이리 찾아뵌 것은 다름아닌, 도련님께서 저희 주인님과 함께하시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수십을, 수백을, 수천을 그렇게 죽여놓고, 이제와서?”
“…….”
할 말이 없었던 듯, 아무 말도 하지 않던 이즈라엘은 이윽고 고개를 들었다.
여전히 그 창백하기 그지없는 표면으로부터는 어떤 감정도 스며나오지 않았다.
마치 인형극의 한 대목을 보는 듯한 상황 속에서, 어느 한 쪽도 쉬이 움직이지 않았다.
이런 상황이 되기를 원하기라도 했던 것처럼, 이즈라엘이 물었다.
“도련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유니온이라는 단체에 대해.”
“글쎄. 더럽고 추악하지만, 유니온이 없으면 이미 인류는 붕괴해버렸겠지. …그건 어째서 묻는거지?”
“…단지 흥미일 뿐이었습니다. 무례였다면 부디 용서하시길.”
흥미?
제 주인의 명령 외에는 어떤 일에도 흥미를 가지지 않는 녀석이, 흥미를 가질 리가 없었다.
사람이 가진 감정에 대해 흥미를 의도적으로 가지고 질문을 한다는 이유는 고작해봐야 하나겠지.
“이런 시시한 인형극을 즐기는 취미인가?”
“주인님에 대한 모욕은 참지 않겠습니다.”
대충 들이맞은 듯 반응한 이즈라엘의 모습에 한숨을 내쉰 단아가 말했다.
“그래, 그렇다면 이제 연극은 집어치우고 말하지. 여섯 번째 주인이 나더러 함께하기를 청한다고? 무슨 이득이 있는데.”
“…감히 제가 답해드릴 수 있는 사안은 아니온지라….”
“…그렇다면 무슨 배짱으로 내게 이렇게 다가온거지?”
봉을 한 차례 들어올렸다.
이곳에서 즉각 대화를 중단하고 싸울 각오가 되어있음을 의미하는 그 행동에 이즈라엘이 무례를 용서해달라며 말하기를.
“…그것에 대해서는… 직접 보여드리기 보다는 말씀드리기를 청합니다. 섣불리 보여드렸다가는 그 진노가 저와 주인님께 향할 우려가 있으니까요.”
“그래? 그럼 인류를 배반하라는 그 이유에 대해, 지금 제대로 설명해봐.”
“…알겠습니다.”
그 순간부터.
어느샌가 미소를 거둔 이즈라엘의 표정에서는 매혹도 아닌 진지함이 묻어나왔고.
필히 신중히 선택해달라는 선 경고를 받아들인 후에야, 그가 유니온을 등져야만 하는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말하는 것을 차례대로 듣던 단아는, 언제부턴가 무언가 꼬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유니온이 정말 그러는걸까?
유니온이 정말 그랬던걸까?
유니온은─
─도대체 어째서 그래야만 했던 걸까?
그리고.
“…잠, 시만….”
“…시간이 필요하신 것이로군요. 충분히 생각해주십시오.”
어지러웠다.
하는 한마디 한마디가 들어올 때마다 그 말 자체가 충격이라, 제대로 정리조차 되지 않았다.
어지럽기 그지없어서, 바들바들 떨리는 두 손으로 머리를 붙잡은 상태로 고개를 저었다.
“…거짓말….”
“실로 죄송합니다만, 주인님께서 직접 확인하신 사안입니다. 이에 대해 주인님 역시 분개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어떻, 어떻게 그럴 수가… …지금 한 말… 정말 유니온이 했다고, 할 수 있어?”
“물론입니다.”
“그걸 나더러 어떻게 믿으라고!”
강한 감정의 충동을, 방향을 바꿔서 이즈라엘에게 부딪히니 그녀는 어떤 충격도 받지 않은 듯, 담담하게 답했다.
“주인님은 물론, 위대한 그분에게 인간 따위가 필요한걸까요?”
“그건 무슨….”
“마음에 드는 것을 우연찮게 만난다. …인간 따위, 굳이 찾아다닐 필요조차 느끼시지 않습니다. 그리고, 유니온이라는 단체에선 이게 한두번 있는 일도 아닌 듯 싶습니다.”
─실제로 선례가 있는 일이니까요.
확고부동한 말에 흔들리는 감정을 숨기지 못한 채 동공에 지진을 일으킨 단아가 고개를 저었다.
그래서는 안되는 일이다. 인간이라면… 사람이라면 정녕 그럴 수 있는걸까?
인간을 위해, 인류를 위해. 대업은 번지르르한 것은 좋았지만, 정말 만든 뒤에도 그게 그 의도대로 굴러갈 리가 없지 않은가.
2분대만 해도 그랬다.
만들어놓고 말을 듣지 않을까봐 두려워서 명령에 따르게끔 만드는 코드를 우겨넣어, 인형처럼 조종했다.
그렇다면 그쪽도─
“어떠신─”
“…닥, 쳐….”
툭, 눈물이 떨어졌다.
상상만해도 고약하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지금 당장 혼자있고 싶었다. 그 상황에서 들어오는 이즈라엘의 목소리는 거추장스럽고, 듣기 싫은 소음에 불과했다.
얼어붙은 대기의 한파와, 고요한 바람소리 속에서 한참을 보낸 다음에야 비틀거리며 몸을 움직인 단아가 한 차례 발을 비틀거리더니, 이즈라엘을 바라보았다.
그 눈동자 속에서 결심따위 하등 찾아볼 수 없었지만, 이즈라엘은 그런 그의 잔잔해져가는 마음에 돌을 던지듯 물었다.
“정말, 유니온에 남으실건가요? 도련님.”
“…모르, 겠어…. 조금만… 시간을 줘….”
얼마든지.
이즈라엘의 말과 함께, 단아가 비틀거리며 거리 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 발걸음 속에는 망설임이 크게 남아있어, 조금만 더 부추기면 얼마든지 그를 붙잡을 수 있을 것만 같은 행적을 보였다.
그리고 그의 마음에 쐐기를 박듯, 이즈라엘이 말했다.
“원하신다면, 직접 보여드리겠습니다. …다음번 만남에….”
움찔거리며 한 차례 멈춘 단아는, 잊어버리겠다는 듯 고개를 강하게 휘젓더니 그대로 공간을 뜯어낸 채, 도망치듯 사라졌다.
그 서두름에 담긴 감정을 본 이즈라엘은 주인이 원하는 연극이었기를 바라며, 그와는 반대되는 거리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실로 인간이란, 허망하기 그지없었다.
귀환한 단아를 맞이한 것은 세이지였다.
그는 어쩐지 굳은 표정으로, 왠지 모르게 슬픈 표정으로. 어떻게 바라보면… 화난 모습으로 돌아온 단아를 바라보며 묻기를.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요, 형?”
그 질문에 단아가 대답하기를.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좀… 지쳐서.”
손을 휘저으며 대답을 거부한 그의 뒷모습은 실로 안타깝기 그지없어, 필시 무슨 일이 있었음은 자명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히 물어볼 엄두를 내지 못한 세이지가 그를 떠나보내듯 놓아주니, 숙소로 돌아가는 그 모습은 지쳤다기보다는….
“…아파보여요, 형….”
환자, 같이보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세이지 역시 어비스와의 만남을 피할 수 없었다.
인지하지도 못할 정도의 의식이었다.
기척, 이라고 해야할까. 아니면 속도라고 해야할까.
분명 앞에서 걸어오고 있었을 터인 그는 어느샌가 아나의 등 뒤에서, 언제든지 목을 찌를 수 있는 상태에서 굳이 세이지를 불렀다.
그 모습에 무언가 원하는게 있다는 것을 금방 알아챈 세이지가 아나를 바로 뒤에 둔 채 그에게 물었다.
“당신은… 아즈라엘, 맞나요?”
“맞습니다. 뵙게되어 영광입니다, 하늘새 2분대의 세이지 도련님, 그리고 아나 스타피트 아가씨.”
실로 출중한 예의였다.
누나 쪽인 이즈라엘의 예의는 몇 차례 보았었다. 인간성이라곤 하나도 보이지 않는, 완벽이나 다름없는 그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시간을 잰다면 0.01초조차 틀리지 않은 채 자세를 취하는 이즈라엘과는 달리, 어느 정도의 여유와 감정을 내비치며 보이는 그 모습에서는 적의가 없음을 아주 강하게 내비쳤으며, 인간성과는 멀지만, 기계적인 행위에서 벗어난 그 행위는 실로 예술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그 예를 정면으로 받은 세이지가 힘의 방출을 풀지 않은 채 묻기를.
“…도련님과 아가씨라 불러줘서 고맙지만, 당신이 어째서 여기에….”
그들의 활동 영역은 얼음성에 의해 침식된 부분… 그 이상 나오는 경우는 없었는데.
그 의문을 읽은 듯, 아즈라엘이 답했다.
“죄송합니다만 그 생각은 틀리셨습니다. 저희 남매는 주인님이 이곳에 부르신 그 순간부터, 파리 따위의 도시는 얼마든지 거닐 수 있었으니까요.”
“…그렇군요. 그럼 하나만 더… 그 옷은 이곳 파리에서 훔친건가요?”
“그 역시 틀렸다고 답 드리겠습니다. 이 옷은 저희 고향에서 가지고 온 옷입니다.”
커다란 상의에, 상의에 가려서 보이지 않는 하의.
얼추 하의실종이라 부르는 패션을 가지고 그런 예의를 차리니 이상하리만치 여겨질만했다.
거기에 섬뜩하게 빛나는 붉은 눈동자까지. 귀신을 보는 줄로만 알았다.
어느 정도 진정되었으리라 믿겠다며 말을 시작한 아즈라엘이 세이지에게 말했다.
“주인님께선 두 분에게 함께하시기를 요구하셨습니다.”
“요구했다…고요.”
압도적으로 아래로 보고있는 시각.
그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반박할 수 없었다. 실로 힘의 크기는 물론이요, 여러 부분에서 세이지나 아나나, 둘 모두 밀릴 수밖에 없었으니까.
그러나.
“거절하겠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저는 클로저라는 책임으로부터 도망치고싶진 않으니까요.”
“…클로저라.”
세이지의 대답에 이해했다는 듯 대답을 받아낸 아즈라엘이 말했다.
“책임만큼 의미없고 하찮은 것조차 없지요.”
“…무슨 말씀이신가요?”
“지위나 직책에는 책임이 따른다. …하지만, 당신같은 존재에게 정말 책임이 정당하게 따를까요?”
─당신은 사람이 아니잖습니까.
“스스로 도구라고 인정한 소모품. 그정도에 불과하면서 클로저로서의 책임이라… 우습군요.”
“설령 도구라 해도, 저는 클로저입니다.”
“그럴리가요. 클로저라는 형편없고 허울좋은 올가미에 목이 묶인 짐승이죠. 결국 책임이란 인간에게 부과되는, 인권에 대한 대가, 인격에 대한 대가. 스스로 도구임을 자처한 당신에게 책임따윈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죠.”
“듣기가 조금 거북하군요.”
“듣는 사람이 없으니까요. 아가씨께 부착된 수신기는 기기 일부를 얼려 작동하지 않을겁니다. 이곳에는 오직 두 분과 저 하나 뿐. …마음껏 말씀하시지요.”
마치 도발하듯 말하는 그의 행동에 참을 수 없다는 듯 눈살을 찌푸리자, 그 반응을 읽어낸 아즈라엘이 숨을 살짝 들이키더니 이내 허리를 숙이며 예의를 차렸다.
“…무례를 범했군요. 부디 용서를.”
“…그래요.”
세이지가 하는 수없이 그의 요청을 받아들이니, 받아들인 다음 계속해서 물었다.
“그렇다면 어째서, 저를 이토록 대하면서 포섭을 원한다 하시는지?”
그에 대해서는 잠시 말을 잘못했다며 아즈라엘이 정정했다.
“…여러분이 유니온을 등지기를 바라십니다.”
“…그 의도는, 무엇인가요?”
“이곳 프랑스… 파리, 였던가요? 틀렸다면 정정을….”
세이지가 얼른 말하라는 듯 침묵을 유지하니, 그는 허리를 편 채 천천히 말하기 시작했다.
“결국 여러분은 스스로 인간이기를 자처하건 도구이기를 자처하건… 끝내 유니온으로부터 소모품처럼 다뤄질테니까요.”
“…그건….”
“그에 대해서는 두 분에게 설명드릴만한 것이 있다고 판단하기에… 조금 시간을 내어주실 수 있으신지….”
“…무리입니다. 우리는 클로저, 파리 시가지를 안정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허면 그에 대한 후속 조치는 제가 취하도록 하겠습니다. 부디 들어주시길.”
아즈라엘이 대신 움직이겠다는 말에 믿지 못하겠다는 반응을 보이니, 믿지 못해도 들을 수 밖에 없을 것이라며 말한 그는, 천천히 세이지가, 아나 스타피트가 소모품처럼 다뤄질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하나 둘, 말이 이어지고 이어질 때마다 어딘가 끼워맞춰지고, 빠진 부분이 채워지는 듯한 감각을 세이지는 차마 피하지 못했다.
정말 저걸로 괜찮은걸까? 정말… 저게 사실인걸까.
여기저기 분산스레 흩어져있던 수많은 정보의 조각들이, 그가 말해주는 것마다 이어지며 어느샌가 완성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현실을 마주할 수 없었던 세이지가 손을 내저었다.
터엉! 하고 반발작용이 일어나니 살짝 붕 떠올라 있던 자리보다 조금 더 멀리 착지한 아즈라엘에게 세이지가 말했다.
“그런 말을… 믿을 리가 있겠습니까.”
“사실입니다. 도련님께서는 얼추 알고있는 부분이 있으시지 않으신가요?”
“…….”
“본인의 몸상태, 힘의 구현화 정도, 그리고 여러 가지 부분에서… 제가 틀린 부분이, 아니, 주인님께서 틀리신 부분이 있으리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우연, 이겠지요.”
“우연이 몇 번이나 이어지는건 아니지요. …이건 진실입니다. 도련님께선 그 현실로부터 도망치고자 하는 것인가요?”
“그 입 다무세요.”
화악!
퍼져나간 검은 힘이 사방을 짓누르니, 이미 깨져나가 끝자락만이 남은 유리가 터져버리고, 거리에서 망가져 더 이상 기능하지 않던 자동자가 덜컹이며 소음을 내기 시작했다.
그 한가운데서 힘을 강하게 부딪히고 있던 아즈라엘은.
“…마음이 번잡하신 모양이니,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거짓말에 휘둘릴 리가 있겠습니까.”
“그에 대한 진위는… 그리고 신뢰의 여부는, 어디까지나 도련님과 아가씨의 몫이니까요. …그럼….”
그림자처럼 조용히 사라지는 그 모습은 검은 힘에 눌리고 있다기에는 너무나도 편안하고 자연스러웠다.
결국 놓칠 수밖에 없었던 상황 속에서 아즈라엘이 사라지고 난 뒤.
난간을 붙잡아 주먹으로 후려치니 강한 힘에 의해 박살난 난간의 석재 파편이 거리의 도로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후두둑 떨어지는 그 모습. 그리고 난간을 내려치는 그 모습은 세이지의 몇 안되는 분노였기에 몸을 움츠린 아나가 총기를 수납했고, 겁먹은 듯 움직이는 아나의 모습에 과했나 싶어서 주먹을 살짝 풀어낸 세이지는, 그녀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돌아가자. …누가 뭐래도 우린… 클로저니까….”
그 한마디에 담긴 회한이 얼마나 큰걸지.
표면적으로 바라보기엔 너무나도 커다란 후회의 목소리에, 아나는 그저 고개를 돌린 채 후퇴할 뿐이었다.
그리고 하늘새 1분대가 전장으로 복귀할 때가 되었을 때.
그들을 맞이한 것은….
“오랜만이야, 다들… 잘 지냈어?”
하늘에서 내려온 흑백빛의 천사─연하은이었다.
그 시간 사이에 어떤 일이 일어난 것인지, 조금 더 큰 듯한 육체는 안정적인 밸런스를 맞추었으며, 황금빛으로 드러나는 눈동자는 불길하면서도 거북해, 계속해서 바라볼 수 없게 만들고 있었다.
그 상황에서 마주한 세 명의 인연은 한없이 가냘프게 흔들리고 있었으니, 언제 끊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일이었다.
서로가 경계를 거듭하는 가운데 먼저 입을 연 것은 당연히 하은이었다.
“…너무 경계하는 거 아닐까?”
하얀의 경계. 그것은 유주에게도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옛 적에 잃어버린 친구라면 이성보다 앞지르는 감정을 가지고 있었던 유주였지만, 하얀의 태도는 너무나도 이질적이기 그지없었기에. 그리고, 계속해서 바라본 다음에야 이해할 수 있었다.
눈앞에 있는 존재는 하은이 아닌 다른 무언가라고.
더이상 접근하지 말라는 듯 유주가 손을 들어올리자 그 자리에서 멈춰선 하은이 물었다.
“…어째서…?”
“어째서라던가, 그런걸 묻지 말라고….”
그녀의 얼굴을, 그녀의 몸을 한 채, 그런 식으로 물어보는 것이 너무나도 싫었다.
가면을 쓴 채 다가와서는, 도대체 무엇을 바란단 말인가.
잃어버린 친구는 물론, 그들에게도 심한 모욕이나 다름없는 행동을 서슴치 않고 저지르는 주제에.
강하게 역류하는 감정을 드러내지는 않았건만, 그의 표류하는 감정만큼이나 격렬하게 반응하는 위상력은 여기저기에 스파크를 튀며 위협을 드러내었다.
그러자 그 위협을 눈앞에 둔 채 다가가는 것을 그만둔 무언가는 씁쓸한 표정을 지어내었다.
“…역시, 안되겠지….”
“…당연한거야.”
가짜 따위가 모습을 가리고, 가면을 쓰고. 그렇게 다가오는 자에게 호의를 가질 리가 없었다.
당연하기 그지없는 결과를 두고 머뭇거린 무언가는, 이윽고 오색빛을 담은 황금빛 눈동자로 그들을 담아내며, 넌지시 물었다.
“너희들은… 만약 ‘진실’을 알게된다면, 그대로 남아있을거야?”
“무슨 의미…?”
하얀이 그 질문을 대신 받아내니, 그것은 큰 의미를 가지고있지 않다며 답했다.
“단지… 진실이라기에는 너무 가혹하고 가슴아픈 일일 뿐이니까.”
“…….”
그리고.
새하얀 입김과 함께, 그 뒤에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몸을 얼리는 냉기, 뼛속까지 얼리는 것 같은 한기.
온 세상을 얼음으로 가득 채울정도로 강한 기척을 가지고, 하늘에 떠오른 구름마저 얼려 떨어트릴 정도의 힘을 가진 한 명의 인간이었던 것.
─6번째 주인 설화… 개체명 하니엘.
“이곳엔 어째서….”
성에 들어간 이후 모습조차 보이지 않던 그것이 어째서 지금 이곳에 모습을 드러낸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뭔가 있었던걸까. 그런 의문을 품기도 전에.
“두분에게 제안을 몇 가지 하고자 할 뿐입니다.”
그것은 제안일까, 아니면… 강요일까….
공지 이후 다시금 뵙겠습니다, AI미스틱입니다.
이렇게 다시 뵙는 이유는 다름아닌, 여러분들에게 방향의 선택지를 쥐어드리기 위함입니다.
어비스의 주인 작품 내에서 말씀드렸듯, 어쩌면 이 작품은 여러분들의 선택에 따라 해피엔딩과 배드엔딩으로 나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이제라도 지키기 위해 이렇게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과연 단아는.
어떤 방향으로 뻗어나갈 수 있을까요?
단아가 알게된 정보를 여러분들께 드리지는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여쭙는 이유는, 클로저 복제 프로그램에 있습니다.
저는 게임을 즐기면서 의아해했습니다.
세하의 부모님, 알파퀸 서지수가 동의 없이 복제되었을때.
그에 대한 보복을 법으로써 정당하게 옭아매고, 심판할 수 있을까요?
지금 당장 일어나는 현상을, 미래에 가서 모두 해결해준다고 그것을 믿을 수 있을까요?
그나마 미래에 가서도 김유정은 끝내 혼수상태에 빠져서 사경을 해메는 지경에 이르렀죠.
이게 정말, 마땅한 것일까요?
김유정의 논리는 한없이 이상론에 가깝습니다.
모든 이에게 평등하게 적용되는 법의 굴레. 그것은 정당한 것임이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그 정당함이 모든 사람들에게 평등하게 돌아갈 리가 없습니다.
유니온이 관계되어있다는 시점부터 이미 평등해지지 않았기에,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김유정의 논리에 긍정하기 힘듭니다.
그렇기에 여기서 의문이 들었습니다.
만약 법의 굴레에 갇히지 않고 자신의 감정대로 행동할 수 있는 선택지가 주어진다면.
그 때, 세하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
우리는 플레이어입니다. 절대 캐릭터와 같을 수 없습니다.
모니터 너머에서 보고있기에 그 분노에 공감하면서도, 법이라는 굴레에 순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다릅니다.
우리가 인간을 죽일 수 있는 충분한 힘이 있고.
누군가가 부모님을 동의없이 만들어내고 다루겠다고 했을 때.
아무도 제지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우리는 법에 따라서 정당하게 심판해야만 한다고 스스로 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요?
클로저스의 세계는 우리의 세계가 아니기에, 우리는 완벽한 몰입을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에 대한 마땅한 선택지를 여러분께 제안하고자, 이렇게 다시 뵙게 된 것입니다.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유니온이 행해온 그 불합리와 부조리, 그리고 그 외도적인 행동에 배신감을 느끼고 절망한 채.
증오와 복수를 끓이는 단아와.
그런 무자비한 행위를 지속적으로 저질러놓았다는걸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억지로 참으며.
상처를 억누르고 괴로움을 참으며.
법과 선의의 길로부터 벗어나지 않으려는 단아는.
과연, 어느쪽이 옳은 길일까요.
어떤 선택을 하셔도 좋습니다.
결국 여러분의 선택대로 이 작품이 흘러갈지언정, 끝내 그 결말에 어떤 영향을 줄지는, 저 스스로도 모르니까요.
선택을 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여러분들이 선택하지 않으신다고 한다면, 여태껏 이어져온 어비스의 주인처럼, 계속해서 이어지는 이야기일 뿐이니까요.
이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