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양, 늑대개, 사터, 시궁쥐 새해맞이

AI미스틱 2021-01-01 2




 Good Bye 2020.
 Well come, 2021.

 Happy New Year, For You.



 몇 분이고 몇십 분이고 차를 타고 달려서 도착한 한 해안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던 이곳은, 이제 사람들을 대신하듯 차원종들이 들끓고 있었다.
 펄펄 끓어오르는 용암보다도 더럽고.
 하늘처럼 펼쳐낸 바다보다도 색바랜 차원종 무리.
 달빛 아래에서 빛나는 그 칼날은, 인간을 지키기 위한 단 하나의 칼자루.

 “가자.”

 태양조차 밝혀주지 않는 어두운 모래사장을 내뚫으며, 전장을 나아간다.
 춤추듯 펼쳐지는 전투의 꽃.
 핏물처럼 흥건하게 피어오르는 파도의 거품.
 그리고 그 사이로 모습을 비치는 진한 색깔의 모래들.
 바다에 비치는 것은 은하수이고.
 달빛에 비치는 것은 사람과 차원종이니.
 새로운 첫 날이 찾아왔음에도 불구하고 멈추지 않는 그 적대는, 언제까지 이어질까.

 피잉, 하고 흩어지는 칼날 사이를 강하고 날쌔게 훔쳐가는 흔적.
 허공을 물처럼 부드럽게 흐르는 나이프들 사이를 직선적인 경로로 찌르고 들어가는 단도.
 강하게 내려찍는 검 위에 내려앉는 얄팍한 와이어.
 십수가지의 무기가, 제각각 다른 이들의 손 위에서 놀아나며, 온 사방에서 죽음의 길로를 트고 있었다.
 그리고 전투가 끝날 즈음.
 남은 잔당의 처리가 끝나자마자 어김없이 날아오는 한 마디.

 “야, 이세하! 똑바로 하라고 했잖아!”
 “큭….”

 들키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그걸 본건가.
 아주 잠시동안 나타와 시비가 붙는 바람에 조금 도망쳐다는걸 이렇게까지 꼬집어서 말할 필요가 있을까.
 자신이 이렇게 호통을 들어야할 필요가 있는걸까.
 바로 앞에 서서 약 5분동안 설교를 늘여놓는 이슬비의 모습은, 어쩌면 이대로 내 고막을 뚫는게 아닐까, 의심이 될 정도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나타, 네 행동은 지극히 위험한 행위였다.

 “나도 안다고, 꼰대!”

 -알기만 한다면 모든 걸 다 알 수 있지. 중요한 건 행동이다, 나타.

 “**… 꼰대한테 이런 소리나 듣다니….”

 -말은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이 이후 이세하 요원과의 불화가 예상되니 그것까지 확실히 하도록 하지.

 “뭐? 미쳤어 당신?”

 -그렇다면 네가 알아서 잘 처신하면 되는거다.

 “빌어먹을 꼰대가!”

 여기저기서 터져나오는 통곡소리에 귀를 꼭 틀어막은 티나는, 달이 지나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특이하게도, 달이 저렇게나 빨리 가는데.
 태양처럼 과시하듯 빛을 흩뿌리는 것이 아닌.
 사람들 깨지 말라고, 아주 조용히 지나가는. 어린 아이의 소심한 발걸음같았다.
 한 해가 끝나고도 하늘에 머물러있던 마지막 밤이, 끝나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걸까.
 어떻게 보면, 쓸쓸한 일일지도 모른다.
 고작해봐야 기계인 그녀의 몸은 무너지면 다시 짓고, 녹슬면 보수하고. 그렇게해서 계속 살아갈텐데,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들은 더 성장해서, 더 커지고, 그렇게 언젠가 바스라지듯 떠나갈테니까.
 이곳에 남는 것은, 결국 혼자가 아닐까.

 “춥지 않아요?”
 “…미스틸테인.”

 문득 들려오는 남자아이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뒷전에 둔 두 손에 창을 쥔 채, 게단 위에서 내려다보는 미스틸테인이 눈에 비쳤다.
 먼저 말을 걸어놓고, 하늘을 쳐다본 그는 폴짝 뛰면서 계단을 내려오더니 물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그냥, 이렇게 1년이 지나간다고 생각했다.”
 “그렇네요, 벌써 2021년이죠.”

 언제까지고 손에 잡혀서, 두 번 다시 넘어가지 않을 것 같았는데.
 2020년이라는 시간이 이렇게나 허무하게 손에서 벗어나는 것인걸까.
 그토록 많은 일이 있었는데, 언제나 시간은 기다릴 줄 모르는 채, 계속해서 가고 있었다.
 급한 때나, 느긋할 때나.
 그렇게 계속해서 함께 서 있자니, 갑작스레 두 사람의 어깨를 잡으며 누군가가 나타났다.

 “어린 애들이 그렇게 죽상을 하고있으면 안된다고요?”
 “…하피.”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쭉 울상만 짓고있으면 보기에 안좋다고요.”
 “그래, 맞다.”

 그 말을 거들 듯, 제이가 옆에서 나타나선 말했다.

 “생애 두 번 없을 2021년이 다가오고 있는데, 기뻐해야지.”
 “아저씨는 아쉽지 않아요?”
 “아쉬웠던 적? 많지. 하지만 그걸 이제와서 생각해봤자, 결국 그 때의 내가 올았다고 생각한 선택이니, 아쉽다고 한들 이제와서 되돌아볼만한 일은 아니야.”

 그는 알고 있었다.
 시간 속에서 다가오는 선택은 정말 갑작스레 지나가는 일이라.
 놓친 다음에야 후회하는 것은 정말 비겁한 짓이라고.

 “하지만.”

 그 커다란 손으로 미스틸테인의 머리를 누르듯 쓰다듬은 제이는, 썬글라스에 가려 보이지 않는 눈이 어째선가 웃는다는 기분이 들었다.

 “너는 아직 어리니까, 시간이 지난다는거에 너무 연연하지 마라.”
 “…네, 아저씨.”
 “형이라고 불러.”
 “아저씨….”

 저 멀리서 마치 술래잡기라도 하듯 도망치는 이세하와 이슬비의 모습이 보이고, 그걸 뒤따르는 서유리의 모습까지.
 한눈에 보이는 곳에서, 마치 폼잡으려는 듯 앉아있는 세 명이 있었으니.

 “…시끄럽군, 조용히 하고 오겠다.”
 “그만둬요, 아저씨….”

 총을 들고 나서려는 철수를 한 번만 눈감아달라는 듯한 목소리로 말린 은하가, 옆에서 보고서를 작성하는 민현수와 그걸 돌봐주는 오세린을 보더니 물었다.

 “또 가야할 곳은 있나요, 보스?”
 “보스가 아니라니까요… 아직 예정에는 없어보여요. 해돋이는 볼 수 있을 것같아요.”
 “해돋이…?”

 오세린의 말에 고개를 기울인 미래가 철수를 쳐다보니, 그도 모른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그 두 개의 시선이 함께 향한 곳은 어김없이 은하였다.
 은하가 뭐라 설명하면 좋을까 살짝 고민하던 중, 그 틈을 파고든 루시가 답했다.

 “가족끼리 모두 같이 첫 해가 뜨는걸 보는거에요!”
 “가족끼리…?”
 “네! 가족은 아니지만, 이렇게 친한 사람끼리 첫 해가 뜨는걸 보는것도 해돋이라고 해요.”
 “그렇군, 해돋이….”
 “즐거운 일이라고요.”
 “즐거워…?”

 질문이 답을 낳고. 답이 질문을 낳으며 게속해서 이야기가 오가던 그 사이에 끼어있기 불편했는지 은하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철수가 물었다.

 “어디로 가는거지?”
 “멀리 안가요.”

 단지, 해변가를 한 번 밟고싶었을 뿐이었다.
 아버지가 휴가를 낼 적에.
 몇 번인가 와보았던 해변가.
 그 시절의 감각과, 그 감촉과. 그 어린 발바닥의 부드러움과 많이 달라진 발임에도 불구하고.
 발을 디디면 마치 잡아먹을 듯 빨아들이는 모래사장과, 발을 간지럽히는 모래알들의 폭포 사이로 걸으며 나아간다.
 무엇일까. 이 감정은.
 소중하다고 여긴 사람들과 함께 이곳에 있다는 것만으로, 무언가가 심하게, 가슴을 찌르는 것 같았다.
 그토록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해변가의 모습.
 아마 그곳도 똑같은 풍경을 하고 있을게 분명했다.
 그렇기에,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곳에 있는 지금이 어째선지 괴로웠다.
 시간이 멈춘 듯한 풍경 속에서, 손을 조금만이라도 뻗으면 닿을 것같은 과거를 눈앞에 두고.
 아무리 손을 뻗어도, 아버지의 따뜻했던 손은 더 이상 잡히지 않으니까.
 얼마나 걸었는지, 아무도 보이지 않는 해변가 끝자락까지 온 다음에야 발걸음을 멈추었다.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토록 두렵고 아픈 일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내뻗었던 손을, 내려놓았다.
 힘없이 떨어진 팔과, 이제 의욕조차 피어오르지 않아 식어버린 마음을 가진 채, 주저앉았다.
 도대체 왜.
 이런 곳에서 아버지의 손을 잡을 수 있다고 기대한걸지.
 정말, 바보같았다.
 고독감, 나 혼자 떨어진 듯한 고독감, 오랜만에 찾아오는 외로움이, 차가운 파도와 함께 들이쳤다.
 그리고.

 “여기서 뭐해?”

 그런 그녀의 옆에, 마치 자리를 맡아놨다는 듯 천천히 다가오는 인연 한 줄기.
 고개를 들자, 언젠가 보았던 핑크빛 머리카락이 비치고.
 언젠가 보았던 익숙한 얼굴이 비치었다.
 그리고 그 너머로.

 “해가 잘 보일 것 같아요.”

 황금색 머리를 가진 빵집 소녀가 다가왔다.

 “불편하지 않나요?”

 그리 말하며 자신의 관을, 마치 앉는 의자처럼 옆으로 눕힌다.
 그 위에 당당하게 먼저 앉은 루시와, 주저앉은 은하를 일으켜세운 슬비가 옆에 차례대로 앉고.
 어디서 들고온지 모를 호빵을 편의점 봉투에서 꺼낸 루시가 각각 하나씩 내어주며 말하기를.

 “추운 겨울엔 따뜻한 호빵이 맛있어요.”

 ─그게 뭐야.

 정말, 바보같은 웃음을 흘리며.
 주어진 호의를 저버리지 않고 받으며.
 자신이 따라온 과거의 길로부터 손을 뗀 채.
 이곳에 남았다.

 그리고.

 “야, 야! 오랜만의 휴가인데 좀 쉬게 두면 안되냐?!”
 “휴가가 아닙니다, 요원님.”
 “**, 휴가 분위기도 못 내다니. 이거 어디 하소연도 못하겠어.”
 “휴가 ‘분위기’가 난다는건 결국 휴가와 다를게 없으니까요.”
 “크윽….”

 완전 정곡을 찌르는듯한 말에 볼프강이 입을 다물었다.
 그의 모습은 실로 대단했다.
 바캉스를 온 것만 같은 복장을 한 채, 이 추운 겨울에 밖에서 싸운단 말인가.

 “바다에 왔으면 이런 복장을 해줘야할 것 아냐!”
 “…그러시군요. 그럼 이 요원복은 필요없는걸로….”
 “미안, 생각해보니 너무 추운것도 피해야하는게 아닐까 싶어.”
 “선배는 정말… 정말 솔직하시군요.”
 “어허, 후배야. 사람이 솔직해져야지, 안그렇니?”
 “나태하고요.”
 “….”

 시간차로 들어오는 딜량에 HP가 별로 남지 않은 볼프강에게, 제리가 마지막 일격을 가했다.

 “어서 입어요, 볼프. 온도가 더 떨어진대요.”
 “젠…장….”

 싱그러운 미소를 띄는 엘리스의 얼굴.
 이 요원복을 입게 된다면 패배나 다름없는 일….
 그러나 나 볼프강은!

 “**….”

 생존의 본능을 이기지 못했다.
 결국 요원복을 챙겨입고 계단에 좌절하듯 앉은 볼프강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모든 사람을 쳐내는듯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를 바라보며 파이에게 세트가 묻기를.

 “선생님 녀석이 이상하다.”
 “세트는 저렇게 되지 않도록 노력하세요.”
 “어째서냐?”
 “임금님이 나태해지면 백성들이 힘들어하니까요.”

 그리 말하니 웅웅거리며 고개를 끄덕인 세트가 활짝 웃으며 답했다.

 “알겠다, 백성들이 힘들어하지 않도록, 세트는 열심히 하겠다!”
 “알겠죠? 선배.”
 “너는 꼭 뒤에 더 공격을 해야겠냐?”
 “그럼 평소에 일을 열심히 하셨어야죠. 평소에 잘했으면 이런 일은 없었을텐데.”
 “크윽!”

 어째서인지 다른날보다 훨씬 더 까이는듯한 기분에 볼프강이 주먹을 쥐고 부르르거리고 있으니, 저 너머에서 풍덩! 소리가 들리길.

 “소마!”

 응, 역시 그쪽밖에 없겠지.
 마치 아이처럼 달려나가다가 그대로 모래사장의 무언가에 부딪혀 바다에 입수해버린 소마가 온 몸을 벌벌 떨며 비틀거리고 있자니, 그 몸을 어서 모래사장 위로 옮긴 파이가 빠르게 수건을 가져와 온 몸을 닦기 시작했다.

 “이런… 너무 많이 젖었어요. 옷을 갈아입어야겠는데요.”
 “으그그그그그….”
 “선배, 소마와 숙소에 갔다올테니 잘 보살펴야합니다?”
 “어, 알았어.”
 “….”

 정말 믿어도 되는걸까, 싶은 시선을 약 3초동안 던진 파이가 소마를 데리고 자리를 이탈하고.
 이윽고 자신만 남은 듯한 세계에 푹 빠져서 잠이나 잘까 자리를 두리번거리던 볼프강의 눈에 비친 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모래사장에 자신의 방패, 아이기를 꽂아둔 채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는 루나의 모습이었다.
 뭔가 호기심이 팍 들어 살금살금 그 뒤로 돌아가니, 그녀가 읊고있었던 것은.

 “올해는 반드시 방패로서….”

 ‘사냥터지기 성’에서 일어난 일.
 소마를 지키기 위해 기꺼이 ‘방패’가 되겠다 맹세해놓고, 결국 그렇게 되지 못했다.
 그런 악몽이나 다름없는 일을 되새기며 자신에게 하는 복습적인 말을, 새해맞이로서 하겠다는 의지였다.
 완전무결을 추구하는 그녀답게 잊어버리지 않도록 몇 번이고 계속해서 외우는 모습을 뒤에서 터질듯한 웃음을 꾹 참으며 몸부림치던 볼프강은, 끝내 그 팔끝이 루나에게 닿고 말았다.

 “흐에에에엑!!”

 순간 자신의 등뒤에 처리되지 않은 차원종이 있다 생각한건지, 순간 아이기스를 돌려 그 뒤에 숨은 루나의 모습에 완전히 터져버린 볼프강이 버둥거리니, 그 수치를 차마 참을 수 없었던걸지 부들거리던 루나가 소리질렀다.

 “선생님은 바보!!”

 그런 떠들썩한 소란 중에서, 앨리스가 제리에게 말했다.

 “결국 또 1년이 가네요.”
 “그러게요, 정말… 많은 일이 있었어요.”

 그 1년 사이에 있었던 일만큼.
 앞으로 1년동안 일어날 수많은 일은, 또 얼마나 복잡하고 다양할까.
 앞으로 1년동안 만날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고 다양할까.
 앞으로 1년동안 지켜볼 사람들은.
 얼마나, 더 나아갈 수 있을까.

 “해, 해 떴나요?!”
 “어서와요, 파이. 이제 곧 뜰거같아요.”

 황혼 속에서 석양이 저물 듯.
 석양보다 더욱 강한 불길을 치솟으며, 자신을 과시하는 태양빛이, 저 너머에서 일어난다.
 아슬아슬하게 도착한 파이와 소마가 자리를 잡고 앉으니, 마치 기다렸다는 듯, 바다에 자신의 위광을 찬란하게 뿜으며, 그 위용을 드러낸다.
 그리고, 해변가에서 바라보는 모든 이들의 마음속에, 안타까움이 깃든다.
 두 번 다시 돌아오지 못할 작년과, 새로이 찾아올 두려운 금년.
 어쩌면 영원히 볼 수 없을지도 모르는 두 사람을 기억하며, 새해를 맞이한다.
 하지만, 그런 두려움 속에서도 그 마음은 언제나 강하게 타오르고 있었으니.


 하늘보다도 높게 떠오를 그 태양조차, 앞으로 1년간 일어날 일에 대해 무지하겠지만.
 우리는 계속 나아갈테니까.


 잘가, 나의 2020.
 영원할 나의 2020은 과거로 남고.
 어서와, 나의 2021
 영원해질 나의 2021은, 무지한 미래로 다가온다.



 다들, 새해 복 많이받으세요.
 새해돋이를 보러가시는 분들은, 태양이 뜨기도 전에 일찍 잠에서 깬 달님을 보며, 태양을 지켜볼것이고.
 집에서 이번 새해를 맞이하시는 분들은,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태양이 여러분들을 반길테니.
 부디,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2024-10-24 23:36:04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